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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도사진 잡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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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11
박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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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사진 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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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조선에 있어서의 유능한 잡지를 편집하는 R씨는 필자에게 아래와 같이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잡지에 있어서의 컷의 불필요성을 말하고 싶다. 이유는 컷 대신 사진을 사용하는 데 오늘보다 좋은 용지를 쓰게 된다면 사진 사용의 중요한 난관을 타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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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현대적 감각의 편집자는 오랜 경험에 비추어 시각적인 이미지가 사진에 있어 처음으로 유기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는 모양이다(여기에 있어서의 ‘컷’은 화가에 의한 그림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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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과 교통이 발달되고 지식과 민주사상이 고도화됨에 따라 뉴스에 대한 관심은 급속도로 높아졌다. 철도의 부설, 각국 간의 통상조약의 체약, 우편사업의 확대, 전신술의 발명으로 민중은 사회상 그리고 정치상의 사건에 관심 이상의 것을 갖게 되었다. 사진이라는 것이 없을 때에는 회화에 의한 보도와 스케치 판화로써 이를 알려주었으나 이러한 것은 대반화가의 상상이었다. 그 기록적 가치는 적었다. 신문과 잡지가 간행됨에 따라 기사의 진실성이 요구되어 그 뉴스 벨류를 높이기 위해서 판화를 쓰게 되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기사와 삽화도 작자의 개성에 좌우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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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의한 보도도 사진가의 그 사건에 대한 태도와 사건의 선택, 그 판단의 능력과 지위, 그 외 여러 가지 점에 사정은 있기는 하나 사진이 가진 기록적 가치는 다른 것보다도 크고 일반에게는 의심당하지 않는다. 사진에 의한 보도의 진보 단계는 사진술과 인쇄술의 기술적 발달의 계단과 결부되어 있다. 역사적인 가치 있는 보도사진이 처음으로 촬영된 해는 1842년의 일이다. 이 해 3월 5일부터 8일까지 함부르크시에 화재로 도시의 대반이 타버렸는데 독일에서도 유명한 다게르 사진가 헤르만 비오는 이 소적(燒跡)을 촬영하였는데 비오는 46매의 사진을 40 후레드릭크 롤로 함부르크 역사학회에 제공하기로 했으나 동 학회에서는 이 사진의 역사적 가치는 인정하기는 했으나 그만한 비용을 지불할 수 있게 이 사진이 영속할까를 걱정하며 비오의 신청을 거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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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에는 세계의 사건을 보도하기 위하여 영국에서는 1622년, 불란서에서는 1631년에 신문지가 발행되었다. 출판의 자유를 선언한 불란서 혁명 전후에 「모닝포스트」지가 1772년에, 「타임즈」지는 1791년에 창간되었다. 그리고 산문에 그림을 처음으로 쓰기로 생각하였던 것은 「옵저버」지의 윌리엄 크데만트였다. 이리하여 구라파나 아메리카에 있어서 현재의 일류 신문은 그 대다수가 19세기에 창간되었다. 그리고 신문에 들어간 그림은 유명한 인물의 초상과 역사상의 사건과 극장의 뉴스, 군함의 뉴스, 그리고 스포츠나 만화와 같이 민중이 즐거워하는 것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눈에 띠는 것은 미국 여왕과 황태자의 초상과 함부르크의 대화(大火), 셰익스피어의 주택의 경매와 멕시코의 전쟁의 그림이었다. 그러면 어찌하여 신문과 잡지에 사진이 이용되지 못하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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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것을 받아들일 민중의 마음이 적었으며 그렇지 않으면 이 시기에는 보도사진의 지반이 없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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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4~1855년 크리미어 전쟁 중에 그때의 미국 육군대신인 발 듀어 경에게 카메라를 전지에서 사용하면 어떠냐고 제안한 자가 있었다. 그리하여 브랜든과 도슨 양 소위가 선발되어 종군사진가로서 출발하였다. 크리미어 전쟁에서는 많은 사진이 촬영되었다. 그 중에서도 유명한 것은 로저 펜튼이 촬영한 것이다. 펜튼은 귀국한 후 159매를 신문에 발표하였다. 크리미어 전쟁의 사진은 쇼 레페바에서도 간행되었다. 그리고 F. 피트도 보도사진가로서 유명한데 1857년의 인도 내란에 종군하여 여러 가지로 촬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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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동안 사진술은 기술적인 부면에서 장족의 발달을 하게 되였다. 지리학과 측량을 위한 공중촬영, 천체사진, 현미경 촬영 등으로 우리의 생활과는 분리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리하여 세계 각지에는 사진협회가 결성되었다. 세계 최초의 사진 전문의 신문은 1847년부터 1849년까지 아메리카 보스턴에서 발행된 「다게레오타이프」지였다. 구라파에서는 1851년에 불란서에서 발행된 「르미엘」지가 오래되었다. 1844년에 처음으로 사진을 신문과 잡지의 삽화로써 사용하였을 때에는 사진 그것 자체를 본문의 지면에 붙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진과 본문의 기사와 함께 인쇄한다는 방법은 1880년까지는 전연 없었다. 사진을 기계적인 방법으로 인쇄하기는 1880년에 뉴욕시의 S. H. 훌간이 처음으로 실용적 성과를 얻었다. 사진에서 직접 얻은 이 세계 최초의 인쇄사진은 훌간이 발명하고 그리고 자신의 손으로 제작한 스크린에서 인쇄한 것으로 1880년 3월 4일의 「뉴욕데일리그래픽」지에 게재되었다. 1893년 훌간 씨는 「뉴욕헤럴드」지의 미술부장이었다. 이리하여 신문의 뉴스 벨류는 고도로 증대되어 갔다. 19세기의 후반 이래 신문은 커다란 세적(世的) 노력의 하나였다. 1855년도부터 불과 10년밖에 경과되지 않은 1865년의 런던의 신문 발행부수를 본다 해도 그 전의 25년간에 있어서의 전 신문의 발행부수의 6배로 되어 있다. 그리고 세계의 신문지는 모두가 그 기사 속에 또는 부록으로 많은 사진을 쓰게 되었다. 최근 신문에 대한 수요는 증대되어 가 영국의 유명한 신문으로 특히 사진과 회화를 많이 쓰고 있는 발행부수를 조사하여 본다면 「데일리스케치」지 85만, 「데일리미러 」지 136만, 「선데이픽토리얼」지 100만 내지 200만, 「뉴스오브더월드」지 330만, 「피플」지 300만, 「데일리익스프레스」지 225만 등이며 영국에서는 발행되는 신문지 부수는 일간신문 약 1,900만, 일요신문 1,600만이다. 각 신문지 일부에 평균 10매의 사진이 기재된다 하더라도 매주 사진은 13억이라는 숫자가 되는 것이다. 아메리카의 신문 발행부수는 일간 약 4,000만, 일요신문 3,000만이다. 삽화 신문 최고(最古)의 하나인 「세터데이이브닝포스트」지는 지금 필라델피아에서 발행되는데 약 300만의 독자를 가지고 있다. 불란서에서는 「파리주르날」지가 180만, 「프티파리지엔」지 152만, 「주르날」지가 95만이 가장 많은 숫자다. 그리고 소련연방에서는 「프라우다」지 300만, 「이즈베스티야」지 200만이며, 일본에서는 「조일(朝日)」, 「일일(日日)」, 「독매(讀賣)」등이 독자 100만 이상의 발행부수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신문지의 발행부수에서 우리들은 오늘 세계 중의 신문과 잡지가 어느 정도의 사진을 산포하는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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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사건, 제주도 사건 등에 여러 가지 기사가 현지의 참상을 알려주었는데 우리는 한 장의 독도 사건의 사진을 보는 것이 더욱 우리로 하여금 분노를 얻게 하였다. 그러나 제주도 사건은 어째서 그러했는지 별로 현지를 촬영한 사진을 보지 못했다. 각 잡지와 신문 특파원은 붓이 움직이는 최대한 능력으로 참극을 묘사했으나 만일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면 무엇을 알 수 있겠나. 저기에 정확한 보도사진이 겸하였다면 우리는 더욱이 상황을 알고 눈앞에 볼 수 있을 것이다. 보도사진이 조선에 있어서 개척해 나갈 앞날은 문자 그대로 다난(多難)할 뿐이다. 신문, 잡지는 용지 관계 그리고 인쇄 관계로서 초지를 일관치 못할 것이며 모든 것이 완성되었다하더라도 그때에는 사진촬영자가 없다. 단순히 예술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하여 보도사진의 촬영은 할 수 없다. 보도사진의 저널리즘 정신과 예민한 보도 센스, 레이아웃에 있어서의 구성적 조형적 능력은 그들로 하여금 시간의 속도와 시간적 추이를 요구할 것이다. 보도사진은 세계사회상 커다란 모험을 주고 있고 조선에 있어서는 예외 없이 실패하고 있다. 특히 신문지에 나타나는 보도사진의 부정확성이며 편집자는 사진의 배치에 있어서라도 회화의 펄프의 선(線)을 재고할 필요를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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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성』(1948. 11)
【원문】보도사진 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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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환(朴寅煥) [저자]
 
  # 민성 [출처]
 
  1948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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