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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앙일보사를 나온 이래 나는 하는 일 없이 그날그날을 덧없이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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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을 잃은 지 이미 3년. 몇몇 친구들의 우의적 원조로 말미암아 생활하고 있는 나의 마음은 모래 위에 쌓은 탑 기둥같이 언제나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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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심신을 건전하고 상쾌하게 만들어주는 직업상의 정열적 행복감을 아침저녁으로 절실히 느끼는 요즈음의 내 자신을 문뜩 발견하고, 남모르게 놀라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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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들은 이러한 나의 심리적 변화를 알아줌인지 혹은 금광에 손대라고도 하고, 혹은 금광회사의 조직체 속에 나의 이름을 넣어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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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의 뜻은 금광이라는 실업적 색채를 띤 세계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고, 그러한 무아경에 자아를 집어넣어 흥분적 시각을 소모시키기에 내 정신은 너무나 소극적이고 사색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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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나의 심리상태는 비단 여기서만 발견하는 것이 아니다. 무릇 상업, 교육 ─ 이러한 것에서는 먼 거리에 서 있는 나다. 내가 교육 방면으로 전신하거나 상업 방면으로 옮긴다 해서 세상에서 나를 나무라거나 물리칠 리는 없을 것이다. 또 그러한 나를 사회에서 반기거나 기대할 리도 없을 것이다. 얼른 말하자면 그러한 일을 하지 못할 나를 누구보다도 내 자신이 역력히 인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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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내 앞에 마땅한 직업이 나타날 리도 없을 것이요, 또 그러한 기회도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주관적 사업의욕에서 출발하는 나의 생활기도는 객관적 제 정세의 불리한 조건 아래 낱낱이 거부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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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쓴 것 같은 말을 어떤 청년에게 하였더니, “그러나 선생의 정신력만 굳세다면 능히 그러한 객관적으로 불리한 요소를 물리치고 자진해서 무슨 사업이든지 하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하는 반문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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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할 때 그 청년의 눈에는 열이 있었다. 불타는 듯한 인간적 극복심이 있었다. 가장 굳세게 인생을 탐구하고 가장 대담하게 세상을 호흡하려는 기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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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반문을 듣고 미소를 금치 못했다. 왜 그런고 하면 이 청년의 물음 그 자체가 내가 항상 품고 있는 생각이기 때문이며, 또한 언제나 내 두뇌를 떠나지 않고 깊이 깊이 함축되어 있는 나의 평상시의 준비적 문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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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렇다. 객관적 제 정세를 대담하게 물리치고 팔을 걷고 나선다면 이루어지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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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은 어떠한 사업이나 계획에 대한 실천 이전의 심적 준비를 말하는 것이다. 그 의도하는 사업을 성취시키려면 계획과 심적 준비만으로는 도저히 될 수 없는 일이다. 거기에는 반드시 사회적 후원(유형무형을 막론하고)과 물자적 기본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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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이 청년의 말을 듣고 다시금 내 마음에 타이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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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력만 건전하다면 어떠한 객관적 불리한 입장에 서 있다 해도 능히 극복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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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금광이나 상업이나 교육이나 이 모든 것이 내 자신에게 도저히 이루어지지 못할 일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사업 그 자체와는 별개의 관점에서 이러한 사업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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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금광에 있어서 평생에 두 번 얻기 어려운 기회를 남 먼저 파악하는 그 기민성과 그리고 자아를 황홀경에 유입시키는 단적이나마 빛나는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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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상업에 있어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개인의 의사를 일단 조절하는 인내력과 그리고 차기의 성공을 위한 목전의 소리를 물리치는 함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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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교육에 있어서는 완전히 자기를 죽이고 남을 위하여 몸을 바치는 희생적 정신과 거기 부대되는 지도적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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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다. 이상 별기한 중의 어느 것이나 내 마음에 비추어 스스로 내 좌우명으로 삼고 일상의 심경연마의 벗으로 삼는다. 비록 시간적으로 보아 짧을지라도 전지전능을 경주하여 꾸미는 일의 아름다움과 기쁨! 나는 이것을 좋아하고 이것을 부러워한다. 내가 평생 찾아 헤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나의 심금토로의 도화선이 될 이러한 정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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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정신적으로 불규칙한 생활을 하니 답답하고 괴롭기가 짝이 없다. 일정한 사업을 하고 있을 때에는 한가한 시간이 몹시 그립더니 이렇게 놀고 있으니 고통 됨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기쁘고 행복한 때는 일하는 순간이요, 가장 슬프고 괴로운 때는 할 일이 없어 노는 때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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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청년에 지지 않을만한 정열과 의욕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나. 얻음이 많고 느낌이 많은 이 땅에서 나는 내 힘이 다할 때까지 장차 나에게 과제될 바 무슨 일이든지 힘 미치는 데까지 애써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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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위에 탑을 쌓는 노력과 불안. 나는 짐 실은 수레를 끄는 말 등에 채찍질하듯 내 마음에도 채찍질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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