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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
이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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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小說[소설] 빵떡
 
 
 

1. 귀향(歸鄕) 일(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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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골같은 산꼴 속에서 누구고 서울 구경을 하고 왔다면 아모리 하여도 그 소문이 퍼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것도 동이에서 제일 형세도 낫고 앞들에 있는 서울 사람 땅의 사엄도 보고 雄洞里[웅동리] 구장도 보고 하는 구장 양반같은 이가 서울 갔다 왔다먼야 그것은 으레히 그럴 일이라 別[ 별] 로 문제가 되지 않치만, 깁부귀(金富貴)가 서울 구경을 하고 왔대서야 적어도 한 번은 그 동이에서 야단벅석이 안 일어나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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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러면 그렇게도 김부귀는 남만 못한 사람이고, 하치 못한 인간인가? 絶對[절대]로 그렇게 남만 못한 사람도 아니고, 하치 못한 人間[ 인간] 도 아니다. 이 웅골 사십호 중에서 양반은 불괘 대여섯 집밖에 안되는데, 부귀네는 그 양반들 중에서도 가장 버젓한 양반이다. 지금은 형세가 밧 삭 줄어서 세력이 없지만, 양반만오로 따진다면 區長[구장] 양반네도 이 부귀네만 어림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부귀는 보통학교도 졸업하여 있다. 물론 사 년 졸업이였지만 ─. 웅골이라는 동이가 워낙이 산골이 되어서 第一[ 제일] 각가운 학교가 이십 이나 떨어저 있음으로 보통학교 졸업한 사람도 삼사 명에 불과하다. 높운 학교는 지금 구장 양반네 둘재 아들이 서울 가서 삼 년 전부터 단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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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부귀는 양반이고, 학교 공부도 하였고, 또 몸이 어데고 남보다 시원찮은 데도 없다. 가령 다리를 전다든가, 팔병신이라든가, 말을 더듬는다 든가 ─. 부귀는 이러한 당당한 양반에 집에 태여난 사지가 말정한 젊운 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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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러한 부귀가 동이 사람들의 놀임 가마니가 되어 있는 것은 도대체 어찐 연고냐? ─ 이 이유를 설명하기는 적잔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어데까지도 사실이다. 분명히 부귀는 사람들의 놀임 가마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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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사람들이 부귀의 흉을 보고 깐이보는 第一[제일]의 조건은 부귀가 학교 졸업을 하고서도 시골에 처백혀 생일을 하고 있다는 일일 것이다. 학교 졸업을 하였으면 하다못하여 면소'고쓰가이’가 되더라도 지개를 안 지는 것이 공부한 보람일 텐, 부귀는 못 생기게도 그런 관공서의 ' 고스가 이’ 노롯도 못하고, 그 스투룬 엿벡이 생일을 하느라고 똥이 끓을 지경이다. 이것이 못 생긴 짓이 아니고 무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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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한가지 깐이보이는 조건은 부귀가 열아홉 살이나 되도록 장가를 못 들어, 아즉도 애로 있다는 일이다. 남의 집 머슴사리를 하고 지낸다면 여사의 일이지만, 부귀는 이 동이에서는 이렇다는 양반으로, 살임이야 그리 넉넉지 못하지만 그래도 제 집을 가지고 살임을 해 나가면서 열 아홉 먹도록 총각 노릇을 한다는 것은 아모리 하여도 부귀가 벤벤찬코 못난 탔이다. 더구나 아버지 어머니를 일즉 여이고, 할머니만 모시는 외로운 몸으로써 그 늙은 할머니를 언저까지든지 밥을 짓게 하고 수고를 끼치는 것은 자손 된 도리에 억으러지는 괫심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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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야 학교 졸업을 하였고 양반이고 한 조흔 조건이 도리혀 반장 용을하고, 학교를 졸업 맛고서도 양반이고서도 ─ 로 되어 동이 사람들의, 더구나 가튼 또래의 젊운 아이들의 놀임 가마니가 되고 깐이보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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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귀의 별명은'눈갈망난이’다. 사람들이 놀이고 벅석들을 대면 그 커드란 허연 눈갈을 냇다 부루뜨고 노려보기 때문이다. 씅이 나면 물논 욕도 해붗이고, 주먹을 들고 덤벼도 들지만, 대개는 이 흘기는 것으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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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넙죽한 입을 저도 몰느게 벌눔거리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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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에서 제일 작난구렉인 대봉(大鳳)이니, 칠룡(七龍)이니 하는 젊은 애들은 부귀를 맛나기만 하면 으레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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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식이 왜 똑 쇠눈갈같은 눈갈로 남을 흘겨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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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그의 뺨을 덜크덕 후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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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식아! 내가 운제 너한테 눈을 흘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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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부귀는 그제서 정말로 그 커드란 허연 눈갈을 부루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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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 이것이 눈을 흘기는 것이 아니고 무어여. 이 눈갈망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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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그들은 다시 한 번 덜크덕 뺨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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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 망할 놈의 개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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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부귀는 이 언제나 하는 욕을 한 마듸하고 얻어마즌 뺨을 슬슬 만지며 눈을 흘키고만 있다. 그러나 속으로는 이것이 저 놈들이 학교 공부도 못하고 또 상놈의 씨인 탓이다 ─ 넷까지 인간같잖은 것들을 누가 가릴 줄아느냐 ─ 하고, 속우슴을 웃고 있는 것이다. 부귀는 이 때까지 한 번 일지라도 제 자신을 대봉이니 칠용이니 하는 녀석들과 가튼 줄에 있다고 생각 해적은 없다. 제 환경이 나뻐서 그렇치 게제만 되면, 때만 오면, 언제든지 헐신 높은 데로 올너 뛸 사람이라 생각했다. ─ 이 신념은 한 번도 입 밖에는 내지 않었지만, 그― 전부터 가지고 나려오는 신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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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대봉이니 칠용이니 하는 녀석들 편에서 보면 부귀의 이 태도 ─ 뺨을 맞고도 눈만 흘기고 나는 느까지짓 것들은 사람으로도 안 안다는 듯한 ─ 이 안하무인의 태도가 도모지 비위에 맞이 않었다. 그리하야 뺨을 두서너 개 친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부귀가 정말로 씅을 내어 속으로만 가지고있는 그 거만한 자손심을 뚝 꺼거버릴여고 팔을 냇다 비틀어 '아이구 아야’ 소리를 내든지, 모가지를 꽉 눌너 '아이고 어머니’─ 사실은 어머니도 없으면서 ─ 소리를 내든지 하야 정말로 앞으게 하여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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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네 할미하고, 그렇구 그렇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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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최후의 다짐을 받는다. 부귀는 그만 급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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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래, 우리 할미하고 그렇구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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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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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것도 팔만 놓고 목만 놓와 앞우지만 않으며, 바로 호과가 없어진다. 부귀는 바로 나는 네까짓 걸들과 같은 인간은 아니다 ─ 하는 자손심을 바로 회복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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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부귀다. 이러한 부귀가 서울 구경를 갔다 왔다니 어째 동이에 야단이 안 나겠느냐. 야담벅적이 안 난다면 도리혀 이상한 일일 것이다. 여하튼 부귀가 서울 구경을 ─ 이 동이에서는 구장 양반밖에 못한 서울 구경을 하고 온 것은 부귀 자신뿐 아니라, 이동이 역사상에 그대로 관과 못할 커드란 사건이라 안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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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귀는 그전부터 혹은 보통학교를 졸업하든 해부터 서울을 한 번 가보리라고 벨누고 있었든 것이다. 고 속에는 시골 사람들이 누구나 그저 서울 구경을 했으면 하는 막연한 동게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학교를 졸업하고 늦게 배운 잇백이 생일이라, 농사일 해 나가기가 여간 고되고 힘들지 않어 어떻 게든지 하여 이 생일을 집어치우자 하는 쓰라린 사정에서 나온 것이다. 동이 사람들이 학교 졸업하고서 생일한다고 흉들을 보고 깐이들보는 것도 비위에 거슬이지 안는 것은 아니다. 생일 자체가 사실에 있어 참어 나가지 못 할 몸서리나는 된일이였다. 그리하야 부귀는 구장 양반네 둘재 아들이 서울 높운 학교을 들게 되자, 방학이 되어 웅골에 돌어오기만 하면 서울에 어데고 취직을 하나 식혀달나고 칠염을 늘고늘고 하였다. 서울로 편지까지 한번 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아모리 칠염을 너어도 구장 양반의 둘재 아들의 대답은 언제나 신통하지 못한 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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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즉 학교 단이는 몸이 되어서 그런 취직이니 어쩐이 하는 일을 잘 알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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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귀는 또 가을에 추수 받으러 서울서 구장 양반네 집에 오는 추수 관들에게도 취직을 식혀달나고 칠염을 너본 일도 있었다. 물논 이것은 실패였다. 시골놈이 건방지다고 핀퉁이만 부였게 마젔다. 그리고 또 한 번은 즉접 구장 양반한테 언제고 서울 올너가시거든 아는 사람들한테 잘 말하여 취직을 식여 달나고 부탁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이것도 유야무야하게 그대로 잊어버려 젔 다. 부귀가 아니라, 구장 양반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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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취직 식혀달나고 칠염는 것도, 부탁한 것도, 모조리 실패로 돌어가자 부귀는 올봄에 그여히 결심하고 저 혼저 서울을 향하야 집을 뚝 떠난것이였다. 남에게 이뢰하여 봐아도 소용없다. 제가 즉접 가서 부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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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귀는 사실 비창한 결심을 가지고 집을 떠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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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나스기가 어렵지, 한 번 뚝 떠나만 놀면 그 때는 또 저로도 의심 할 만한 희망의 불꽃이 가슴 속에서 용소숨치는 것이다. 그리고 오 날까지 의제 자신이 다시 없이 못나고 미미한 것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한 번 뚝 나만 놓면 벌서 예전 부귀는 아니다. 부귀는 속으로 불으 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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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의들이 ─ 칠용이, 대봉이 ─ 네 녀석들이 나를 흉을 보았었지, 나를 놀였었지. 내가 헷공부핬다고, 내가 생일 한다고 ─. 이 놈들! 느 놈들 이두고 보아라! 내가 느덜이 생각하는 것처럼 못난 놈인가 아닌가? 내가 언제까지 이 시골 산 속에서 처백혀서 땅만 파고 있을 놈인가 아닌가? 흔, 이 놈들! 두구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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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귀는 읍으로 나가는 여수 고개 우에 서서 웅골을 돌어다보고, 다시 한번 제 결심을 굳게 하였다. 그리고 서울로 향하는 第一步[제일보]를 가장 힘 있게 나려 디뎠다. 어쩐지 주먹이 불군 주여지고, 발이 저절로 떼노아지는 것 같었다. 기운이 나고 신이 난다. 무슨 위대한 일을 하러 나슨 것 같다. 제 자신이 세상에 둘도 없는 큰 英雄[영웅]이 되었은 듯하였다. 왼 天下[ 천하]를 호령할 수 있는 것 같었다. 가라먼 가고, 오라먼 오고, 그저 世上[ 세상] 사람들이 모다 예예하고 제 命令[명령]에 服從[복종]할 것 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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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부귀가 어찌 능히 한 달도 못되는 불과 보름 후에 도로 이 아 수 고개를 넘어슬 줄을 뜻하였으랴!
 
 
 

2. 귀향(歸鄕) 이(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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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귀가 서울 갔다가 보름만에 제 집에 돌아온 것은 초저녁이 헐신 지나 밤이 꽤 으수 깊었을 때였다. 그럼으로 그 날 댕일에는 동이 사람중에 부귀가 돌아온 것은 아무도 몰넜다. 혼저 집을 지키고 있든 늙은 할머니야 예외였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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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잍은날 아침, 부윰할 때 일어나서 보롬 동안이나 내버려두었든 새 들 보리밭을 둘너 볼어갔다가 오는 길에 댓듬 칠용이를 맛났다. 칠용이는 주춤하며,
 
40
"부귀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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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적잔이 놀낸 듯이, 그리고 반가운 듯이 부귀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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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운제 왔니, 서울 갔다든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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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같으면 맛나기만 하면 '눈갈망난이’ 소리가 으레히 한 바탕 나올 터인데, 오늘은 아조 딴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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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늦게 왔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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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귀도 딸어서 아주 조용스러히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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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고 뒤잽이를 놀 때는 노아도, 그래도 그 사이에 무슨 우정이라는 것이 있는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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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두, 난 몰넜었구나. 그래 구경 잘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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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 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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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귀는 뭇는 말에는 대답을 않고 그대로 말을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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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경 말이다. 그러고 돈도 많이 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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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용이는 여전히 순한 소리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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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또 돈? 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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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귀는 다시 한 번 멈추웠다가 무슨 생각을 먹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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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은 훗번에 언제고 맛나 이야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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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는 그대로 구만 싹 돌어서서 휘적휘적 제 집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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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싱구운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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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용이는 입맛을 쩍쩍 다시며 좀 어이가 없어 좀 태도를 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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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깔 망난이도 서울을 갓다오든이 제법 깨엿나분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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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부귀의 뒷모양을 멀그럼이 바라보다가 그래도 더는 말을 걸지 않고 그대로 제의 길을 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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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귀가 칠용이 말처럼 서울 갔다와서 과연 제법 깨연젔는 어쩐지 몰나 도전보다 훨씬 닯어진 것만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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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부귀가 맛난 것은 칠용이뿐만이 아니였다. 대붕이도 맜났고, 또 동 내 사람 여럿을 맛났었다. 그들은 누구나 맛나는 쪽쪽 '구경 좋데’ ' 돈은 얼마나 불었니.’ '거기서 무었을 하였섰니’하고 이것저것 요리조리 서울 이야기를 작고 물었댓지만 부귀의 대답은 언제나 똑같었다. 판에 박은 듯한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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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은 훗번에 이야기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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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봉이가 끝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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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식아! 그렇게 숨기기만 하지 말고 이야기 좀 하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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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족치기도 하였지만, 부귀는 영영 이야기하지 않고 먼저 소리를 뒤 푸리 하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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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은 훗번에 이야기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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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어쩐지 가볍게 취급하지 못할 이미심장한 소리로 들였다. 무슨 쪼간이 있는 말같치 들였다. 무슨 굉장한 일이 지금은 아즉 들 되었지만, 몇 링 후에는 아주 완성할 텐데 그 때에야 이야기할 테다 하는 소리로 들였다. 그전 부귀같으면 제가 열 번 죽었다 깨나도 이런 말은 생각도 못할 것이다. 부귀가 서울 갔다 오든이 참말로 깨였나부다.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 든이, 서울 물이 좋기는 하다. 부귀가 인제는 제법이다. ─ 동이 사람들은 이 때부터 서로 사발통문이라도 돌인 것처럼 모다 전과 닯운 눈으로 부귀를 보게 되었다. 그전처럼 뺨을 치고 덤비는 것은 고사하고, 눈 갈망 난이 이 소리도 감히 하는 놈이 없게 되었다. 부귀의 말과 태도에는 그만 한무 었이 있는 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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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야 연일헤 지났다. 부귀가 서울 가서 무었을 하였는지? 돈은 얼마나 불었는지? 왜 보름만 있다가 왔는지?─ 이런 것은 전연 동이 사람에게 감춘 채로 연이레 지났다. 부귀는,
 
69
"그런 것은 훗번에 이야기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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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대답으로 사멋 뻩에여 나왔다. 동이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더 각 갑증이 상기여 부귀만 보면 별별 수단을 다 써가지고 대답을 재촉하였지만, 모다 실패로 돌어가고 말었다. 그 진상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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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는 동안에 누구가 낸 소문인지, 부귀의 서울 구경 갔다온 데 대하여 별별 소문이 다 펒었다.
 
72
"부귀는 서울 가 공부하는 구장 양반네 둘재 아들이 아주 그럴듯한 데로 취직을 식혀주어, 인제는 그 곳에 아주 있게 정해졌음으로 옷을 가질러 나려 온 것이다."
 
73
또 이런 소문도 있었다.
 
74
"부귀는 이번 올 적에 돈 백원이나 좋이 가지고 나려왔는데, 집 전지 할것 없이 세간까지 모조리 팔어가지고 수일간에 서울로 이사를 떠나갈 작정이다."
 
75
또 딴 소문에 의하면,
 
76
"부귀는 서울 어느 커드란 상점의 점원으로 들어가 가 있었는데, 사람 이하도 진실하여 주인의 맛치 하나 있는 외딸에게 장가를 가게 되어, 할머니를 모시러 온 것이다."
 
77
또 딴 소문으로는,
 
78
"부귀는 어느 큰 공장에 들어갔는데, 공장이 얼마동안 휴업을 함으로 다시 개업하면 편지로 불늘 것이라, 부귀는 지금 공장에서 편지 오기만 기달이고 있다."
 
79
이외에도 여런 가지의 소문이 떠돌었지만, 대개는 부귀가 이번에 서울 가서 잘 되었다는 소문이였다. 어던 사람은,
 
80
"부귀가 붙인 공장에서 새로 공장을 크게 짓는 증공을 수천명 늘굴터인데, 몇 일 후에 부귀가 다시 서울로 올너갈 때에는 쓸만한 사람으로 몇 명 다리고 갈 것이다."
 
81
이러한 소문을 듣고 부귀에게 은근히 저를 데려가 달나고 칠염을 넜는 자도 있었다. 이리하여 소문이 소문을 났코, 말에 말이 봍애여저서 사실 이 때의 부귀의 인기는 굉장한 것이였다. 부귀의 소문은 웅골 한 동이뿐만이 아니라, 근처 있는 여러 동이에 쫙 펒어서 여기를 가도 서울 이야기, 저기를 가도 서울 이야기다. 그러고 서울 이야기가 나는 곳마다 부귀의 붓침 성과 수단에 대한 감탄의 소리가 쏘다젔다. 사람들은 새삼스러히 부귀가 버젖한 양반이고 학교를 졸업한 것을 생각해내여, 그대로 양반의 씨는 닯으다, 학교 졸업을 한 아이는 닯으다. ─ 하고 수군거렸다.
 
82
부귀 사신으로는 물논 이러한 소문이 퍼지리라고는 예기는 하지 않었든 일 이나, 이렇게 펒지는 것이 물논 싫치는 않었다. 누가 저를 추어주는 데 싫어할 사람이 있겠느냐? 더구나 전에는 맛나면 놀여대든 대봉이니 칠용이니 하는 녀석들까지도 쑥 들어가 버려서 은근히 두려워하는 모양까지 보이니, 어째 이런한 소문이 싫을 이가 있으랴?
 
83
부귀는 도리혀 이러한 소문이 펒이는 것을 속으로 기뻐하였고, 이러한 소문이 거짓말이 아니고 참말이라는 것을 동이 사람들에게 보이도록 노력까지 하였다. 그 전에 저를 놀이든 녀석들은 이번에는 됩대 제가 한 번 놀여 보겠다는 생각까지 무럭무럭 이러났다.
 
84
부귀는 서울 올너갈 때 밀을 두 말 내고, 콩을 한 말 내고, 그 전부터 갖이고 있든 것하고 ─ 도통 합하여 二円[이엔] 三十戔[삼십전]을 로자로 가지고 집을 떠난 것이였다. 웅골서 서울까지 三百二十里[삼백이십리]라. 아모리 하야도 사흘은 걸이며, 내왕이면 엿새는 잔득 걸인다. 게다가 서울 가서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몇일이고 있으면 이 밥값만 해도 적잖을 것이다. 이것을 생각하고 결심이 굳운 부귀는 대님짝으로 지갑을 잔득 무거거서 호주머니에 넣고는 서울까지 가도록 거의 굼다싶이 하면서도 로자를 한 푼도 쓰지 않었다. 서울 와서는 할 수 없이 지갑을 풀너 밥을 꽈 여럿 때 사 먹었지만, 그대로 통 처도 밥값이 一円[일엔]을 넘지는 않었다. 서울서 나려 올 때는 사지가 느른하고 앞어서 할 수 없이 로자를 八十戔[팔십전]이나 썼었다. 그렇치만 집에 왔을 때에 부귀에 주머니에도 아즉도 六十 여 戔[ 육십 여전] 의 돈이 남어 있었다. 배를 굶어가며 쓰지 않은 六十餘戔[ 육십 여전]이다. 그러나,
 
85
"부귀는 서울 가서 돈을 꽤 많이 불어가지고 왔대여."
 
86
─ 하는 소문이 떠돌자, 이 六十餘戔[육십여전][중]에서 五十戔[ 오십전]을 가지고, 장에 가서 된살고기로 五十戔[오십전]어치 쇠고기를 사 가지고 돌아왔다.
 
87
"어데 선사할 것인가?"
 
88
하고, 오는 길에 동이 사람이 물었을 때,
 
89
"아이여, 할머니가 입맜이 없으시다구 해서 할먼이 디릴가 하고 사가지오는 것이여."
 
90
대답하였다. 전같으면 친한 동무를 맛내야 ─ 사실은 친한 동무는 하나도 업지만 ─ 술 한 잔, 떡 한 개 사내본 쩍이 업는 부귀의 일이다. 이러한 부귀가 자기 할머니 대접할여고 고기를 五十戔[오십전]어치나 사갔다!! 이 소문은 그 날 바로 또 동이에 빽 돌어다. 이리하야 부귀가 서울 가서 돈 불어온 것이 그저 뜬 소문이 아니고 참말이라? 누구나 믿잖을 수 없게 되었다. 부귀는 전에 그처럼 똘똘하고 약은 체하든 녀석들이 이렇게 헙헙하게 저한테 속아 넘어가는 것이 일편 우습기도 하고, 또 통쾌하기도 하였다.
 
91
이렇게 부귀의 소문이 한참 야담스러울 때에, 하루는 이웃 동이에 사는 최 사과( 崔司果) 가 웅골 구장 양반네 집을 찾어왔다. 최사과는 형세는 넉 넉지 못하지만, 그래도 양반이라, 구장 양반하고는 서로 하게를 하고 지나는 터이였다.
 
92
"자네, 그래, 무슨 일로 여기를 왔나?"
 
93
평안하니, 차니, 더운 하는 긴 인사가 한바탕 끝나고, 구장 양반이 최 사과한테 이렇게 물었을 때,
 
94
"왜 또 농토 달나러 온 줄 아나? 오늘은 그런 일로 온 것이 아닐세."
 
95
하고, 좀 말을 멈추웠다가 나직한 소리로,
 
96
"요새 들은이가 부귀가 서울 가서 잘 붗어가지고 몇일 안 있다가 또 가는이 어쩐이 하는데, 그것이 참말인가?"
 
97
하고 궁금스러운 모양으로 물었다.
 
98
"자네가 어짜 그런 것을 다 뭇나? ─ 별일이로구면. 그렇지만 그런 일이야 낸들 알 수 있나."
 
99
사실 구장 양반도 부귀의 일에 對[대]하야는 여러 가지 소문을 들었을 뿐이지, 그 以上[이상] 아무 것도 몰넜다.
 
100
"하기사 내가 그것을 뭇는 것이 쪼간이 있기야 하지 ─. 자네가 그때 언제인가 부귀란 놈과 내 딸과 중매를 하려고 하지 않었었나? 그때에 내 가절대로 반대하여 구만 두었지만, 내 딸 역시 어데 맛당한 혼처가 있어야지 ─. 그래서 부귀가 만일 소문대로 정년 그럴 것 같으면은 내가 혼인을 하여도 좋다는 말일세."
 
101
"그려? 그것 참 잘 되었네. 일은 그렇게 되어야지. 암, 그래야지."
 
102
구장 양반도 적잖이 기뿐 貌樣[모양]이다. 구장 양반은 그전에 참말로 중매 할 여고 한 일이 있었다. 그것은 다만 부귀를 위해서보다도 부귀가 버젓한 양반으로서 늦도록 장가를 못들어 사람들의 놀임 가마니가 되어 있는 것은 같은 동이에 사는 양반인 구장 양반에게도 결코 자미 있는 일이 못 되였기 때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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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얼는 설두를 하여 사주를 쓰도록 하세."
 
104
구장 양반은 바로 서들었다.
 
105
"앗다, 사주야 쓰기야 쓸 테지만 ─. 그보다도 그 전에 부귀가 과연 소문과 같은가 안 같은가 한 번 알어보는 것이 좋겠네."
 
106
"그도 그렇지. 그렇지만 사주 써놓고 알어보면 안 될 것이 무었인나. 궁합은 그 때 보아서 똑 들어맛든 것이고 ─. 사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자네나 내나 그러고 부귀 으르신네와 다 서로 한 글방에서 글을 배우든 친구가 아니였었나. 친구끼리의 아들과 딸이 한테된다는 ─ 그보다 더 떳떳한 일 이어데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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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그저 양반이라면 예예하는 그전 시절을 추억하며 한바탕 이약기, 저 이야기를 하다가,
 
108
"이런 데는 그저 술이 있어야지."
 
109
하고 구장 양반은 행낭을 불너서 술을 받아오라고 식혔다.
 
110
최사과도 구장 양반도 둘 다 술을 즐겼다. 더구나 최사과는 오래도록 못 먹는 술이라, 목구녁에 들어가자 단번에 취하야 만사가 무사태펵이다. 안되는 일도 되고, 되는 일은 더 잘 되는 술이다. 웬 영문인지도 몰느고 어물어물 하는 부귀에게는 그저 사주만 쓰라고 하여 씩히고서 내일이고 모래고 구장 양반이 자서한 것은 조용히 물어보기로 하고, 최사과는 해가 다 저물어서 머둑머둑할 때 사주 쓴 것을 가지고 빗틀거리는 거름으로 자기 집으로 돌어 갔다.
 
111
부귀가 최사과네 집에 사주를 보냈다는 소문은 그 날 바로 또 동이에 빽 돌었다. 부귀는 마다는 것을 구장 양반이 작고 권고하여 억제로 씩히다 실 이하여, 사주를 씩혔다고 소문이 돌었다. 부귀는 장가만 들면 새닭을 다리고 바로 서울로 올너가 신식 살임을 할 것이라는 소문도 돌었다. 행예를 구식으로 하지 않고, 신식으로 할는지도 몰는다는 소문도 돌었다. 일이 이렇게 딱 벌어지고 소문이 이만치 쫙 퍼지고 보니, 부귀의 인긔라구 할가 ─或[ 혹] 은 지위는 동이에서 第一[제일]가는 구장 양반만이야 못하지만, 적어도 구장 양반 다음은 갔다. '눈갈망나니’라는 별명은 언제 어떻게 어데로사라젔는지, 약할래야 얻어들을 수 없게 되었다.
 
 
 

3. 결혼(結婚) 일(一)

 
113
최 사과의 집에 사주를 보낸 잍은날, 구장 양반은 행낭을 식혀 조용히 부귀를 불넜다. 물론 부귀의 자세한 내용을 듣고저 함이다. 구장 양반도 다른 동이 사람들처럼 그전부터 부귀의 진상을 알고 싶어 가만히 물어볼가도 하였지만, 부귀가 자기만 보면 슬슬 피하는 듯하고, 점잔은 체면으로 피 하는것을 억제로 붓드러 이러구저러구 뭇기나 난처하야 이 때까지 고대로 나려 온 것이였다.
 
114
부귀 편에서 본다면 구장 양반은 아모리 하여도 다른 사람들과는 닯어서무었이고 물을 때에,
 
115
"그런 것은 훗번에 이야기하기로 합시다."
 
116
하고 다른 사람한테처럼 차마 뺑송이질 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으로 부귀도 구장 양반이 불으신다 할 때, 서울 일을 감추어 오든 것도 어데까지 뿐이였었구나 ─ 하는 각오은 하지 않을 수 없었다.
 
117
"서울 갔을 때 우리 둘재 놈은 맜났었나."
 
118
구장 양반은 이런 데로부터 말을 끄냈다.
 
119
"못 보았습니다. 찾다찾다 못 찾었습니다."
 
120
부귀는 사실대로 대답하였다.
 
121
"그러면 처음에 어데로 갔었나."
 
122
"어데로-도 갈 데가 없어서 여기 땅을 갖으신 지주 영감 댁에 갔었습니다. 거기 가서 어데고 써주든지, 딴데로 취직을 식혀달나고 청 하였습니다."
 
123
"그라니 며라구 하다."
 
124
"××道[도] 道長官[도장관]을 식혀 주겠다나요."
 
125
"왜 햇필 똑 道長官[도장관]만 식혀 주겠다다?"
 
126
"공연히 사람을 놀이기만 하고 점심 때가 되어도 밥 한 술 안 해 내고 ─ 인심이 대단히 흉악합디다."
 
127
"그 집은 원세 그런 집이며, 그라구서 어쨌나?"
 
128
"그라구서는 여기저기 쏘단이였습니다."
 
129
부귀는 이만하고 차차로 피하려 하였다. 그러나 구장 양반은 그렇게 쉽게 노아 보내지는 않었다.
 
130
"아니, 소문에는 어데 큰 상점에 들어갔는이, 공장에 들어갔는이 하는데, 그런 데는 어떻게 들어갔나. 누구 소개가 있었나?"
 
131
부귀는 적잖이 거북한 말소리로, 그러나 사실 대로 대답해 버렸다.
 
132
"그런 데는 안 가봤습니다."
 
133
"그러면 어데를 들어갔었나. 돈도 불었다면서."
 
134
"아무 데도 안 들어갔습니다."
 
135
부귀는 이렇게 또 거북한 목소리로 대답 않을 수 없었다.
 
136
"아의, 아무 데도 안 들어가고, 어떻게 돈을 불었단 말인가."
 
137
구장 양반은 캐러들면 어데까지든지 캐뭇는다.
 
138
"돈도 불지 못했습니다."
 
139
부귀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이것도 사실은 사실이였다.
 
140
"하기사. 시골서 서울 처음 올너가서 돈 불기가 그리 쉽겠나. 하지만 보름이나 있었으면 하여튼 무었이라도 하였겠지? 은? 무었이라도? 그래, 도대체 무었을 하였었나."
 
141
구장 양반의 이 질문은 부귀로서는 제일 대답하기 난처한 질문이였다. 이 때까지의 대답은 그저 그렇지 않다고 부인만 하면 되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무었을 하였노라고 감추워 나려오든 제일 큰 비밀을 폭로하고 설명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부귀는,
 
142
"별로 신통한 일은 않었습니다."
 
143
하고, 한 번 피하였다. 그러나 물론 구장 양반이 이것으로만 족할 이가 없다.
 
144
"그래두 무었이고 했겠지?"
 
145
부귀는 여기서 더 어떻게 피할 수 없었다.
 
146
"큰 일본 사람 상점에 가서 빵떡 장수를 좀 하였었습니다."
 
147
"빵떡 장수? 벨 것을 하였네. ─ 그래, 그것은 돈이 잘 불어지다."
 
148
"원걸이요. 커드란 목판에다가 빵떡을 걸방해서 지고, 거리로 단이며 파는 것인데, 서울 요리를 몰나서 어데 잘 팔 수 있어야지요. 빵떡사라는 소리가 틀였는이 어전이 하고 놀이는 놈은 있어도 사는 놈이 어데 그렇게 있어요. 몇일 하다가 밥버리도 안되여서 구만 내던지고 서울서 나려 왔습니다."
 
149
처음에 말내기가 거북하지. 한 번 내만 놓으면 다옴에는 뭇잔는 말까지도 나온다.
 
150
"흠 ─."
 
151
하고, 구장 양반은 숨을 내수였지만, 그렇게 크게 실망한 것도 같지 않었다. 구장 양반은 그래도 그 동이에서 第一[제일]가는 구장 양반이라, 동이의 다른 사람들처럼 소문을 무턱대놓고 믿지는 않었었든 것이다.
 
152
"또 다른 것은 안해보았나?"
 
153
"몇 군데 가보았읍니다만, 몇 萬円[만원] 財産[재산] 가즌 保證人[ 보증인]을 세워야 된다나요 ─. 그래서 아모리 단겨본댓자 헷거름질만 하겠 서서고만 나려왔습니다. 그라고 노비도 떨어지겠어서요."
 
154
"그러면 또 언제 서울 올너가게 되나."
 
155
말의 끝을 맞드시 구장 양반은 다시 이렇게 물었다.
 
156
"글세요. 인제부터는 거긔서 올아지 않오면 가지 않을가 해요."
 
157
"그렇치, 오라잖는데 가는 것이 元來[원래] 재미가 적은 일이거든. 그러면 자네는 그저 전처럼 농사 짓고 살임을 하겠네 그려."
 
158
"녜. 어데 딴 데 갈 데가 있읍니가. 여기서 농사짓고 살어나가야지요.─ 저 ― 그런데 이러한 제 일이 최사과한테 알여저도 혼인 일은 괜찮겠 읍니가."
 
159
부귀는 주집어하면서도 그래도 똑똑하게 물었다. 사실 부귀는 이런 일이 原因[ 원인] 이 되어 혼인이 파외나 되지 않을가 속으로는 적잖이 근심이 되었든 것이다.
 
160
"그야 사주를 썼어 보냈는데 사주를 쓴 이상이야 어떨라구. 그런 것은 걱정 할 것 없겠네."
 
161
구장 양반은 그 일은 내가 떠맡겠다는 듯이 대답하였다. 부귀는 저 윽 히 안 심하였다. 부귀는 어제 저녁 나절 구장 양반네 집에 와서 사주를 쓰고 돌어가 밤에 저 혼저 곰곰이 생각하였든 것이다.
 
162
"요새 제 소문이 이처럼 야단이여서 이것만 믿고 최사과가 혼인을 승낙 하였지만, 택일하야 예식을 거행가기 전에 소문이 아조 터문이 없는 밝안 거짓 밀이라는 것이 탄로되면 그 때는 어쩌나. 그 때에 제 꼴은 어떻게 되나."
 
163
부귀는 元來[원래] 인물이 커서 다른 사람들처럼 짜졸구리한 일을 가지고 ─ 가령 남한테 욕을 한 마듸 먹었다고 그것을 언제까지든지 꽁하게 먹는다든지, 뺨 한 개 맞었다고 그 놈을 그예히 했구제할여고 언제까지든지 베룬다든가 ─ 이러한 일은 절대로 없어서 밤에 잠을 못 잔다든가, 밥 먹는데 입맛을 잃는다든가 하는 일은 이 때까지 있어본 적이 없었는데, 이 날 밤에만은 위대한 부귀도 꽤 으수 밤이 깊도록 잠을 못 일웠다. 더구나 이번 일이 파의가 될가 하는 걱정되는 한편에 장가를 들어 첫날밤에 신부를 맛 난다 든가 제집에 새닭을 다려와 둘이 살게 되어, 어떠어떠한 자미 있는 일이 있으리라는 아림답고 아글아글한 애끌는 場面[장면]이 연실 머리 우에 떨 올 느는 것이다. 파의가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되면 될사록 이 아릿다운 공상, 그만치 더 아릿다워지고 아글아글하여지는 것이다. 최사과의 딸! ─ 부귀는 그 때 언제인가 그 동이 갔을 때 샘에서 물 푸는 것을 본 일이 있었다.
 
164
밤이 이식도록 잠을 못 자고 근심하든 그 일을, 지금 구장 양반이 ─ 이동이에서 第一[제일]가는 구장 양반이 걱정할 것 없다고 말슴하시는 것이다. 부귀는 구장 양반이 이 때처럼 고맙고 믿음직한 때는 없었다. 물론 그 전에도 고맙고 믿음직한 것이라 생각하였었지만 ─.
 
 
 

4. 결혼(結婚) 이(二)

 
166
구장 양반이 부귀를 불너서 이러한 이야기를 물을 때에 바로 그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었다. 그럼으로 부귀는 이러한 제의 비밀이 차차 알여지기야 알여 질 터이지만, 그렇게 바로 모두가 알여지리라고는 생각지 않었었다. 점 잔으신 구장 양반이 이런 것을 마구 입 밖에 내시지 않을실 것이기 때문이다.
 
167
그러나 사실은 아주 딴판이였다. 구장 양반과 부귀가 이야기하고 있을 때, 칠용이니 대봉이니 하는 몇 간의 젊운 녀석들이 문틈에다 귀를 대고 이 것을 하나 빹으리지 않고 모조리 들어버렸든 것이다. 들으면서,
 
168
"이 것 봐라. 병신이 호맹이 춤을 춘다든이 이 못난 것이 우리를 판 속이였구나.─"
 
169
하고 서로 눈을 끔저거려 부귀가 나오기만 하면 바로 어떻게 처치 해 버리자는 의논이 말 한 마디 안하고 저절로 서로 양해되였다. 그러나 구장 양반네 집 있는데서 어떻게 잘못하다가는 구장 양반한테 걱정을 들을 염려가 있으므로, 부귀가 이야기를 맟우고 나올 임시는 해서 모다 대봉이네 담 모 툉이로 물너가서 기달이고 있었다.
 
170
부귀는 문을 열고 나와 아무도 듣고 있는 사람이 없음으로 저윽히 안심하고 아무럿토 않은 듯이 천천히 거름을 걸어 제 집으로 돌어가려하였다. 허나 도저히 무사히 제 집에 돌어갈 수는 없다. 대봉이네 담 모툉이를 돌어 갈 여고 할 때, 거기 기달이고 있든 여러 녀석들이 와르를 대달아 부귀의 가는 길을 꼭 맊어섰다. 그리고 그 중에서 무슨 일에고 출반주하고 잘 나스는 칠용이라는 놈이 썩 나서서,
 
171
"이 자식이 왜 똑 쇠눈갈같은 눈갈로 남을 흘겨봐."
 
172
하고 부귀의 뺨을 덜크덕 후려첫다. 거의 한 달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173
"이 자식이! 내가 운제 너한테 눈을 흘겼서."
 
174
부귀는 언겁절에 그 전에 늘 하든 이 소리를 외여첬다. 이것도 한 달만이다. 그 동안에 무었이고 무슨 일이고 저 몰느는 동안에 있었구나 ─ 하는 생각이 번적랐다. 지가 서울 갔다온 후로 이런 일은 처음 일이고, 또 아무 쪼간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175
이리하야 부귀가 눈을 흘기는 것도 잊고, 맞은 뺨을 어루만즈는 것도 잊고, 우물주물할 때 칠용이는 다시 한 번 뺨을 철거덕 치고 그 전에 늘 하는,
 
176
"이 것이 눈을 흘기는 것이지, 무었이여."
 
177
소리를 막 내놓으려 할 지음에,
 
178
"아니여, 칠용아. 그만 두어."
 
179
하고 부귀와 가장 원수같치 지내는 대봉이 녀석이 나서며 칠용이를 밀어내고,
 
180
"내가 아침을 얼마 안 먹었든이 只今[지금] 배가 곺아서 죽겠으니, 빵떡을 좀 사 먹어야겠서."
 
181
하고 부귀를 보고, 두 눈을 딱 부르 뜨며,
 
182
"이 자식아! 어서 빵떡을 내 놔! 좀 사 먹게 ─."
 
183
하고 냇다 얼너댔다.
 
184
"아니, 이 눈깔망난이가 빵떡 장수를 하나?"
 
185
옆에 섰든 딴 녀석이도 하나가 지잖으랴는 듯이 툭 이러케 말을 던젔다.
 
186
"눈갈망난이? 아니여! 눈갈망난이는 그만 두구, 이제부터는 빵떡이라고 일흠을 갈기로들 하자. 빵떡이 잛고 새로 난 것이고, 더 좋지 않으냐? 빵떡! 어서 빵떡 하나 내 놔!"
 
187
대봉이 녀석이 남의 일홈을 제 맘대로 갈여고 덤비고, 갈어서 불는다. 물론 전부터 있는 눈갈망난이라는 일홈도 맘에 맞는 일홈은 아니나 ─.
 
188
부귀에게는 이런 것은 너무나 이외의 일이다. 눈을 흘긴다고 뺨 맜진 것도 이외였지만, 제가 서울 가서 빵떡을 팔은 비밀이 어느 절에 ─ 구장 양반한테 밖에는 말 않었는데 ─ 이 놈들이 어느 절에 벌서 이렇게 알여진 것은 참으로 놀날 일이다.
 
189
"이 자식들이 및었나. 웬 빵떡은?"
 
190
부귀는 한 번 시침을 뚝 떼고 마즈막을 피해 보려 하였다.
 
191
"흔? 왼 빵떡? 목판에 걸방해 지고 팔어단기는 빵떡이지, 무었이여, 이 빵떡아."
 
192
칠용이 녀석이 그 자리에서 바로 나려 씨웠다. 그리고 더븣어서,
 
193
"도 장관을 하라는 것을 안햇서? ─ 이 실업에 아들 놈아! 넷가짓 게 웬 허기질 도장관이여. 하하하."
 
194
부귀는 이래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다. 잘못하다가는 더 큰 봉변 당하겠다 속으로 생각하고 구만 바로 바로 옆길로 튀어서 쫓어달어나 버렸다.
 
195
이처럼 바로 비밀이 탈로되고, 탈노되는 효과가 눈 앞에 나탁처올 줄을 꿈에도 생각지 않든 일이다. 부귀는 뒤에서,
 
196
"여게, 빵떡, 빵떡."
 
197
"빵떡! 빵떡 좀 팔구 가!"
 
198
하고 소리 소리 질느는 그 놈들의 소리를 들은 척도 안하고 무슨 무서운 것에서라도 피하는 듯이 불이 낳게 그대로 제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5. 결혼(結婚) 삼(三)

 
200
반동 시대가 왔다. 하날이 땅이 되고, 땅이 하날이 되는 시대가 왔다.
 
201
부귀가 서울 가서 취직을 할라가 할라다 못하고 빵떡 장사를 하다가 입 버리도 못되여, 시골로 도로 기어나려 왔다는 소문은 그 날 바로 또 동이에 빽 돌었다. 그전 소문이 굉장 야단스러웠든이 만콤, 이 소문은 더 한층 그들을 웃게 하고, 놀내게 하였고, 或[혹]은 또 즐겁게 하였다.
 
202
"제간 놈이 그렇면 그렇치. 어데를 ─."
 
203
하고 남이 잘 되기보다는 못 되기를 발아는 사람들은 제가 잘 된 것보다도 더 즐겨하며 가장 통쾌한 우슴을 거릿김없이 텇어 노았다. 더구나 지주 영감들 집에 가서 도장관 노릇을 하라는 것을 안하고 왔다는 이야기는 그들의 우 슴보를 텇우어 놓고 말었다.
 
204
"면 소고스가이도 하나 못 얻어 하는 출신이 도장관하라는 것을 내노웠다?! 하하하 ─ 하나님 압이요."
 
205
그들은 허리가 앞우도록 우섰다. 그러나 물론 이렇게 웃고만 말지는 안는다. 있는 말 없는 말 合[합]하여저 또 별별 소문이 다 맨드어진다. 모두 그럴 듯한 것으로만 ─. 부귀의 궁뎅이를 딸어서 서울 갔다온 놈도 이보다는 더 똑똑히 몰늘만치 자고 잔 데까지 꾸며내젔다.
 
206
"부귀라는 놈이 서울 올너가서 몇일동안 단기면서 일자리를 求[ 구] 하다가 가지고 간 노자는 다 쓰고 하도 배가 곺어서 어느 빵떡 파는 집에 몰내 들어가 빵떡을 훔쳐 먹다가 그만 주인한테 들켜서 넙적하게 뚜둘겨 맞고 빵떡 훔친 값으로 몇일동안 죽도록 일만 식혀먹고 그대로 내쫓어서 그 길로 시골로 나려온 것이다. 부귀라는 놈은 그저 밥만 멕여주면 좋으니 두어 달나고 개개 빌었으나 주인은 이런 눈갈망난이는 일없다고 하여 억제로 뚜둘겨 내쫓은 것이다."
 
207
그러나 딴 소문에 依[의]하면 좀 달느다.
 
208
"부귀라는 놈이 어떻게 요행으로 빵떡 집에 들어가기는 들어가서 목판에 빵떡을 해서 걸머메고 팔너 나섰는데, 쇠눈갈같은 허연 눈갈을 뒤 루번 거리며 시어터진 목소리를 삑삑 질너, 빵떡을 사라구 하니, 어너 놈이 그것 을사 먹겠느냐. 그래서 왼종일 돌어단겼어도 빵떡 하나 못 팔고 그대로 들어 가닛가 주인이이 자식, 어데 가서 낮잠만 자고 왔다고 그저 넙적하게 뚜둘겨 주고 그 자리에서 내좇어버렸다."
 
209
그러나 또 달은 소문에 依[의]하면, 또 닯으다.
 
210
"부귀가 빵떡을 가지고 팔너 단기여 그래도 팔기는 몇 개 팔었지만, 도저히 그것만 팔어서는 회게가 안되고, 또 그대로 주인 있는 데 간댓자 야단만 맞고, 떨여날 것이라, 그 으뭉한 놈이 에라 안되겠다 하고 팔다 남운 떡을 목판재 걸머메고 시골로 죽자 하고 뛰여 나려왔는데, 오는 길에 그 빵떡울 다 먹었다. 그리고 그 빈 빵떡 목판은 동이에 들어오기 전에 아 수 고개에서 팽개질 처 내버렸다."
 
211
이 外[외]에도, 或[혹]은 부귀가 서울 도 못 올너가고 어느 시골에서 머슴 사리를 하다가 왔는니, 날품을 팔다가 왔는이, 或[혹]은 종노에서 여인숙에 들어 남의 돈을 훔치다가 들겨서 주재소에 가서 보롬동안 유치장 속에 같였다가 나왔는이 ─ 별별 소문이 다 났다. 소문이란 元來[원래]부터 사람을 좋다기 始作[시작]하면 限量[한량]없이 좋다 하고, 一旦[일단] 나뚜다 하기 始作[시작]하면 限量[한량] 없이 나뿌다 하는 것이 原則[원칙]이다.
 
212
어제까지도 동이에서 第一[제일] 將來性[장래성]이 있고, 붗임性[성]이 있다고 야단들을 치든 부귀는 오늘은 벌서 동이에서 가장 으뭉스럽고, 못 생기고, 주변 없는 굼벵이로 되고 말었다. 부귀의 디위는 그 전 서울 갔다 오기 前[전]보다도 헐신 더 떨어지고 말할 수 없이 여러 가지로 不利[ 불리] 하게 되었다. 사람들에게는 이 못난 것한테 속었었다는 한 불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213
이러한 소문이 바로 이웃 동에에 사는 崔司果[최사과]의 귀에 안 들일 이가 없다. 최사과는 두 주먹을 발너쥐고 웅골 구장 양반네 집으로 좇어댔다.
 
214
물론 그의 손에는 몇일 前[전]에 제 손으로 가지고 올너간 사주가 쥑혀 있다.
 
215
"엿네. 사주 여기 있네. 나는 이 혼인을 파의하겠네."
 
216
崔司果[최사과]는 닷자곳자로 구장 양반한테 사주를 내던젔다.
 
217
"앗다, 이 사람! 앉어서 조용히 조용히 이야기하세."
 
218
적어도 구장 양반이 이런 일에 놀낼 이가 없다. 억제로 최사과를 붓 들어 앉 처 놓고 행낭을 불너 또 술을 받어오라고 식였다.
 
219
"필연코 자네가 요새 여기 떠돌아단기는 소문을 듣고 그라지. 그러치만이 사람. 소문만 가지고야 콩인지 팥인지 어떻게 아나."
 
220
"아! 그람 아주 없는 일이 그렇게 야단스럽게 퍼질 줄 아나. 아니 때인 굴둑에서 연기가 난단 말인가."
 
221
"그야 아주 없는 말이 그렇게 펒일이야 있겠네마는 바눌만한 게 몽둥이만 하다는 게 소문이 아닌가, 이사람 ─. 내가 지금 거짓말이 조곰도 없는 그 진상을 자세하게 자네한테 들여줄 터이니 가만히 앉어 듣게. 듣고서도 증 부귀하고 혼인 못하겠다면야 그 때야 또 해보는 수 있나."
 
222
하고, 구장 양반은 조용스러운 소리로 부귀를 불너서 불어보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차근차근 이야기하기 始作[시작]했다. 그러나 물론 구장 양반으로서는 이런 이야기는 아무려거나 상관 없는 일이다. 그저 술 올때까지 최 사과를 부뜰고만 있게 되면 구만이닛가 ─.
 
223
"어서 한 잔 하게. 급히 나려오느라고 목이 말럿슬테니."
 
224
술상이 나오자마자 구장 양반은 이야기를 뚝 끊어버리고 바로 술을 권했다.
 
225
"앗다, 이 사람! 이야기를 다 하구서 먹어도 먹세."
 
226
하고 최사과는 잔을 받으려 하지 않었다.
 
227
"술을 먹어가면서 하지. 무었이 그리 급하다고 ─. 그라지 말고 어서 잔을 내게. 나도 한 잔 할게."
 
228
구장 양반이 이러구저러구 하는 바람에 최사과는 잔을 들어 마셨다. 한잔만 들어가면, 두 잔 들어가기는 아주 쉽다. 석 잔 넉잔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댓 잔짐 술이 돌 때에는 먼저 이야기는 어데로 도망을 갔는제, 구만 도망을 가버리고 또 천하가 만사태평이다.
 
229
"사주를 썼으면 벌서 아주 혼인이 定[정]해진 것이 안닌가. 자네 딸이 부귀의 신부로 된 것일세. 지금서 무슨 파혼이고, 무었이고 있겠나. 그것도 의리를 몰느는 상놈들에서야 或[혹] 몰너 그러되, 모두 버젓한 양반끼리 그럴 수가 어데 있나. 안 그런가, 이 사람!"
 
230
구장 양반은 얼간이 취했으면서도 그래도 정신이 말둥하다.
 
231
"그야, 그렇치. 그럴 수야 있나. 고 때야 내가 화김에 그런 말도 했겠지만, 그것은 다 ― 늙은이의 망영이지. 모두가 연분이거든 내 딸이 부귀라는 녀석하고 그렇게 되는 것도 모두가 다 天上緣分[천상연분]이거든 ─. 잘 되고 잘못될 것을 누가 알겠나?"
 
232
"그렇구 말구. 모두가 연분이지. 하날이 다 정해준 것이거든. 그런데 자네 어잡히 定日[정일]하여 가지고 禮式[예식]을 지내야 될 터인데, 기세 할테면 定日[정일]을 여기서 하여버리는 것이 어떨가. 책역 놓고 좋은 날를 자네하고 나하구 둘이 찾온면 되잖나."
 
233
"그야 그렇지만 비단보가 있고, 五色[오색] 실이 있구 해서 싸서 갔다주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있서야지, 이 사람! 내가 집에 돌아가서 차차 함세."
 
234
"보하구 실하구쯤 없겠나. 그런 것은 염려말게. 그것은 내가 다 담당 함세. 자 ― 어서 좋은 날을 구하세."
 
235
구장 양반은 책역을 최사과한테 내밀며 행낭을 불너 보와 실을 장만 하도록 식히였다.
 
 
 

6. 결혼(結婚) 사(四)

 
237
이렇게 하야 부귀의 혼인 날은 사월 초사흔 날로 정해젔다. 數三年[ 수삼 년]을 두고 실타는이 좋다는이 파혼하는이 여러 가지로 말성 많든 혼담도 이렇게 딱 날자까지 정해저 버리니 그제서 비로소 이것은 움직일 수 업는것이 되었다.
 
238
사월 초 사흔날까지는 몇일 남지 않은 그 어느 날, 부귀는 구장 양 반 이혼 저 게실 때 조용하게 찾어가서 이번 큰 일을 치루게 돈을 좀 빌여 주시도록 말슴을 들이게 되었다.
 
239
이 동이에서는 혼인 때고, 장사 때고 무슨 큰 일을 치룰 때에 그 돈은 으레 히 구장 양반한테 가서 빌여야 쓰는 것이 거의 관예가 되어 있다싶이 한다. 사실 이 동이에서 급작스럽게 써야 할 五六十円[오육십엔] 七八十円[ 칠팔십엔] 의 큰 돈을 구래도 어떻게든지 하야 변통해내는 것은 구장 양반밖에는 없었다.
 
240
"오늘은 구장 으른게 특별히 말슴 들인 일이 있어서 왔는데요 ─."
 
241
하고 부귀는 좀 주제주제하다가 그여히 찾아온 理由[이유]를 말하였다. 부귀 로서는 이처럼 남에게 ─ 더구나 구장 양반같은 이처럼 큰 돈을 빌여 달나도 청해보기는 처음 일이다.
 
242
"그래, 얼마나 쓸랴고?"
 
243
구장 양반은 서슴지 않고 바로 금액을 물으시였다.
 
244
"한 ─."
 
245
하고, 부귀는 좀 돈 금액을 생각하였다. 집에서부터 여러 번 여러 번 작 적해 가지고 온 금액이지만, 그렇게 바로는 쑥 안 나왔다.
 
246
"한 ─ 八十円[팔십엔]쯤 썼으면 좋겠습니다."
 
247
"八十円[팔십엔]?!─"
 
248
구장 양반은 다소 이의이였든 貌樣[모양]이시다. 부귀는 물논 아모리 큰일을 치룬다 해도 八十円[팔십엔]이 다 드는 것이 아니다. 구장 양반은 그 전부터 十円[십엔] 달라면 五円[오엔], 二十円[이십엔] 달나면 十円[ 십엔] 돈이 이것밖게 없다 하시면서 이렇게 請[청]하는 半[반]식밖에도 안 빌 여주시는 것이 누구나 다 잘 아는 規則[규칙]이 되어 있기 때문에 부귀도 事實[ 사실] 은 꼭 四十円[사십엔]을 빌일 豫定[예정]임으로 그 倍[배]인 八十円[ 팔십엔]을 말슴 여쭌 것이다.
 
249
"八十円[팔십엔] ─ 그렇게는 只今[지금] 나한테는 없는데 ─."
 
250
하고 호주머니에서 지갑을 끄내든이,
 
251
"여기 六十円[육십엔]이 있으니, 六十円[육십엔]만 갔다가 쓰도록 하여 보게."
 
252
六十円[육십엔]을 세여서 부귀의 앞으로 노었다.
 
253
"四十円[사십엔]만 ─."
 
254
소리가 곳 부귀의 입에서 나오려 하였으나, 八十円[팔십엔]을 금방 말 한 터라 차마 나오지 않었다. 부귀는 六十円[육십엔]을 세여 넣고 바로 일어섰다.
 
255
"아니, 잠간 거기 앉게 ─."
 
256
구장 양반은 그 자리에 부귀를 도로 앉이고는 베루집을 끄내며,
 
257
"이런 것을 증서를 하고 어찌고 하는 것은 좀 어떻게 생각할는지 몰느지만은 문서만은 그래도 분명히 해 노아두어야 하닛가 자네 도장은 가젔지?"
 
258
"안 가젔어요. 곳 가질너 가지요."
 
259
부귀는 당황하게 대답하고 다시 또 일어섰다.
 
260
"은, 가서 도장을 가저오는데, 새들밭 있잔나. 그 문서도 함긔 가저 와주게. 무어 올 갈이면 돈을 죄 ― 다 해 갚을 것을 그렇게까지도 할 것이 없지만, 문서는 문서대로 해 노어야 되닛가."
 
261
부귀는 바로 문을 열고 나와 제 집으로 돌어왔다.
 
262
이번 일은 처음부터 끝가지 모두가 구장 양반의 힘으로 된 것이다. 사주도 구장 양반네 집으로 구장 양반이 서들어 쓴 것이고, 파혼한다고 좇어 온 정사과를 붙뜰어 앉이고 도리혀 그 자리에서 택일을 하게한 것도 구장 양반이였다. 모두가 구장 양반의 힘이다. 지금 빌여주시는 돈이 필연코 그저 빌 여주시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렇게 선 듯 빌여주시는 것만 해도 고마운 것이다. 동이에서 돌보아 주는 사람 하나 없는 나를 이처럼 돌보아주시니, 구장 양반같치 고마운 이는 없다.─
 
263
부귀는 맘 속으로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이렇게 생각하였지만, 그래도 고리짝 속에서 새들밭 문서를 끄낼 때에는 아주 이리 말 못할 섭섭함이 가슴을 꽉 눌넜다. 모두가 집이고 땅이고 아니 제 자신까지가 아무 것도 없는 텅 비은 것으로 되는 돗하였다.
 
264
"六十円[육십엔]에서 四十円[사십엔]만 쓰고, 二十円[이십엔]은 잔치가 끝나거든 바로 이것이 남었다고 도로 구장 양반을 갖다 디리고, 갈에는 어떻게 하든지 해서 四十円[사십엔]과 그 이자를 하여 이 새들판 문서를 찾어오자 ─."
 
265
부귀는 그 먼지가 보야케 앉은 오래 묵은 고리짝 ─ 선조부터 나려오는이 오래 묵은 고리짝에 맹서하였다.
 
266
부귀가 도장과 밭문서를 가지고 도로 구장 댁에 갔을 때에는 구장 양반은 임의 증서를 다 쓰고 도장만 치면 되게 되 있었다.
 
267
"엿네. 읽어보게. 돈 金額[금액] 六十二円[육십이엔]으로 되어 있는데, 이 二円[이엔]은 말을 하여주어야만 알 테지만 머시길세.─"
 
268
구장 양반은 이 二円[이엔] 쪼간을 말슴하셨다.
 
269
"최사과가 여기 나려와 우리 집에서 사주도 쓰고 택일도 하고 하잖었나. 그 때 내가 술을 한 번식 냈었는데, 한 번에 五十錢式[오십전식][ 합] 하여 一円[일엔]. 또 일원은 택일할 때 싸가지고 간 보하고 실하고 이것이 모다 내가 임시로 변통해준 것이라, 이 값으로 一円[일엔]을 맨 것일세. 一円[ 일엔] 一円[일엔][합]하여 二円[이엔], 무두 해서 六十二円[ 육십이엔] 이 되지 않나? 도장은 여기다 찍으면 되네."
 
270
구장 양반의 문서는 어데까지도 분명하다. 그러고 어데까지든지 경오가 밝다. 엇지 되었든 부귀는 찍으라는 데다가 도장을 꽉 찍었다.
 
 
 

7. 사랑 싸홈 일(一)

 
272
부귀는 사월 초사흔날 무사히 장가를 들었다. 닭을 채왔는지 명아리를 채 왔는지도 몰나도 어재든 새닭 하나를 다려다 놨다.
 
273
부귀는 이번 큰 일을 치룰 때 일을 좀 보아 다나고 할머니 말대로 항골이라는 데 가서 큰집 아쩟씨를 청해 왔었다. 부귀는 다리고 오는 길에,
 
274
"돈을 꼭 빗내온 돈 四十円[사십엔]밖에 없으니, 그것만 가지고 어떻게 해 보시오."
 
275
하고 미리부터 당부를 해 노았었다.
 
276
그러나 어데서 어떠케 나온 소문인지 부귀는 이번 잔치에 八十円[ 팔십엔]을 드릴 작정이라고 한다는 소문이 동이에 펒었 있었다.
 
277
"빵떡이, 요새는 빵떡이 잘 팔이는가 부구면 그래."
 
278
사람들은 피피 웃었다. 평소의 남 술 한 잔 안 사주는 부귀인지라, 이처럼 큰 돈을 쓰는 것이 적잖이 이외였었다.
 
279
그러나 이러한 소문과 이러한 비우슴이야 부귀로서는 늘 격 거오는 터이라, 아무렇도 않치만 함골 아젓씨가 이 소문을 듣고 八十円式[팔십엔식]이나 드린다면서 왜 四十円[사십엔]이라는야고 족치는 데는 사실 어쩔 수가 없었다.
 
280
"없으면 몰너도 있으면 있는 대로는 써야 한다."
 
281
"쓰자는 돈이지, 썩히자는 돈이냐!"
 
282
항골 아젓씨의 이심원하고 철저한 말슴을 딸어 결국 처음에 四十円[ 사십엔] 豫定[예정]하였든 것이 六十円[육십엔] 고시란이 들어가고 만 것이다.
 
283
그러나 부귀로서는 처음에 맘 먹었든 것보다 二十円[이십엔] 더 들었어도 그렇게 큰 고통은 아니였다. 왜냐하면 이번에 달이고 온 새닭 ─ 물논 제 가불 늘 때 새닭이라고는 안치만 ─ 이 아주 마음에 꼭 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렇게 인사세가 있고, 엽엽하고, 똑똑하고, 영이하고, 사랑스럽고……. 아니, 부귀로서는 이루 말할 수 없다고 정해버린 것이다.
 
284
"빵떡이, 어데서 마누라는 잘 얻어왔는걸."
 
285
동이 사람들도 부귀 댁만은 모두 칭찬하였다. 그러나 이 동이 사람들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부귀로서는 아무렇도 않은 일이지만, 구장댁까지 언젠가 길에서 맛났을 때,
 
286
"자네 이번에 장가 잘 들었네. 젊운 女子[여자]로는 인사세라든지, 말솜 시라든지, 손끝 여문 것이라든지, 이 동이에서는 第一[제일]가겠네. 사람은 참 잘 들어왔서. 그리고 이것도 다 德善[덕선]한 집에는 끝이 있는 것 이거든 ─."
 
287
하고 칭찬해 주신 것은 언제까지도 잊지 못할 기뿐 일이였다. 부귀는 구장 양반도 잘 나고 즘잔은 양반으로 생각하지만, 이 구장댁은 구장 양반보다도 더 잘나고 즘잔다고 늘 생각해 나려오는 것이다. 더구나 구장댁이 반 상의 구별을 자기 자신으로도 아주 똑똑하게 직혀 나려오고, 또 동이 사람들에게도 직히게 하여 나려오는 것은 부귀가 늘 올다고 생각하고, 잘하는 일이라 생각 해오는 점이다. 구장 양반 앞에서는 대봉이니 칠용이니 하는 녀석들 이 부귀를,
 
288
"빵떡, 빵떡."
 
289
하고 놀여도 구장 양반이 못 들은 척하시니가 아무렇도 안치만, 만일 구장 댁 듣는데 누가 부귀를 보고 빵덕이라고 하였다가는 그 사람이 어떻한 사람이든 구장댁한테 단단히 때긴다. 더구나 부귀가 장가를 들고서부터는 애도 아닌 으른을 놀인다고 눈에서 불이 나도록 야단을 맛는다. 무었이 어떻다고 조 곰이라도 말대구만 하면,
 
290
"그것 잘 되었다. 우리는 길게 말하기를 실혀하는 사람이라, 이 자리에 아주 끊어 말해 놓겠네. 불이는 땅하고 집하고 내놓고 어서 이 동이를 떠나주게. 그렇게 도도하고 잘나서 남을 놀이까지 하는 사람이 어데가면 못 살겠다. 어서 당장 논밭 내놓고 이 동이를 떠나주게. 그렇게 잘난 사람이 남의 땅을 붙어서야 말이 되겠나. 어서 어서 말하게 어서 어서 말하여 떠날나나, 안 떠날나나."
 
291
하고 구장댁이 숨도 쉴 사이 없이 막 몰어댄다. 이렇게 되면 고대까지 길길이 뛰며 '빵떡, 빵떡’하는 놈도 그만 쏙 들어가서 아무 말도 못하고 멋멋하니 서 있다. 부귀는 이 꼴이야말로 가장 볼 만한 것이라고 눈이 시 도록 바라보며 속으로 통쾌한 우슴을 웃는다.
 
292
여하튼 부귀는 돈 六十円[육십엔]은 빗젔으나 장가는 잘 들었다. 무었이든지 하면 늘 손해만 보는 부귀도 이번에는 손해만 보지는 않은 셈이다. 부귀는 자기 안해가 그만콤 맘에 꼭 들었든 것이다. 구장댁 말슴대로 젊운 女子[ 여자][중]에서는 ─ 늙은 女子[여자]로는 구장댁이 있으닛가 몰나도 ─ 이 동에서는 第一[제일]이라고 몇 번이 몇 번이 생각하였다. 아니 이 동이 뿐이랴, 서울 가서도 이러한 女子[여자]는 못 보았었다고 몇 번이나 생각 하였다.
 
293
꿀과 같치 단 신혼의 몇일이 꿈과 같치 지나갔다. 그러나 몇일 안되여 이 꿈은 꺁으러지고 말었다. 부귀의로서도 아니고, 부귀댁으로서도 안니고, 실로 부귀의 할머니서로써.
 
294
오래동안 손자의 장가드는 것을 못 보아 늘 원망으로 지내든 부귀의 할머니는 부귀가 장가를 들자마자 그 때까지 잔득 쎙겨있든 마음이 갑작이 풀인 탓인지, 젊어서 귀하든 몸이 늙어서 너무나 신고한 때문이지 구만 냇다 병이 나서 자리에 누어만 있겠 되었다. 어데고 뚜려지게 앞운 것이 아니고 그저 전신이 시름시름 앞운 것이다.
 
295
부귀는 근처에서 유명하다는 약국에는 거진 죄다 돌어단기다 싶이하여 몇 첩식 약을 갖다 써 보았으나 아무 소암도 없다. 동이 사람들 말을 들어 용하다는 정쟁이를 불너다 사흘 저녁이나 정도 읽었으나 이것도 별로 신 통치 않었다. 죽을 병에는 그저 죽는 것밖에는 약이 없는 것이다.
 
296
이렇게 하야 부귀의 할머니는 한 달 반을 알타가 이 世上[세상]을 떠 낫다. 할아버지 산소에 합장을 할 것인가 공동묘지로 갈 것인가, 부귀는 좀망상거렸으도 할아버지 산소까지는 八十里[팔십리] 길이나 되어 비용이 많이 날 것임으로 안해의 말을 들어 공동묘지의 한 구역지에다가 조 고마하게 모이를 써버렸다. 이 할머니도 살었을 젝에는 구장댁처럼 반상의 구별을 여간 분명히 하지 않었는데, 반상의 구별이 없는 공동묘지에서는 장차 어떻게 지내실는지 ─. 부귀는 공동묘지 수많은 모이를 돌어보며 더욱 눈물을 흘였다.
 
297
할먼이 장새 때에도 부귀는 물논 누구나 그러하듯이 이 구장 양반한테 가서 돈을 빌여다가 큰 일을 치루었다. 이번 장사에는 가직근 주려서 三十円[ 삼십엔]을 빌여다 썼다.
 
298
그러나 구장 양반한테 빌여다 쓴 돈을 전부 친다면 장가 들 때의 돈 六十二円[ 육십이엔], 할머니 약값으로 十三円[십삼엔], 그라구 이번 장사에 쓴 돈 三十円[삼십엔] 원금만 해도 도합 百円[백엔]이 넘는다. 갈에는 이 이자만 하여도 얼마나 되는지? ─ 부귀는 이 때까지 이렇게 큰 빛을 저본 일이 없었다. 아니, 그 전에는 단 한 품을 빗지지 않었든 것이다. 부귀가 그 처럼 벤 벤 찮고 놀임 가머니가 되어 있으면서 빗 한 푼 안 젔다는 것이 으레히 몇 十円式[ 십엔 식] 하는 빚을 질머지고 있는 동이 사람들의 미음을 받는 점이기도 하였든 것이다. 그렇든 부귀가 지금와서는 어너 누구에 지잖는 빛쟁이가 되고 말었다. 하기사, 이 때까지 남의 빛 한 푼 안지고 살아온만 해도 너머 호강스러운 일이였었는지도 몰느지만 ─.
 
 
 

8. 사랑 싸홈 이(二)

 
300
그럭저럭 봄이 지나고 무더운 여름 어느 날 밤 일이다. 부귀는 그날은 들일이 늦게 끝나 저녁이 매우 저물어서 마당에다가 꺼적을 내깔고 거긔 앉어서 빤짝빤짝하는 빌볓 알에서 안해와 맛대 앉어 저녁을 먹고 있었다. 이 때 십 작 거리서 별안간,
 
301
"빵떡, 빵떡."
 
302
불느는 녀석이 있었다. 그것은 그 불느는 소리로 대봉인 것이 분명하다.
 
303
"빵떡, 집에 있나."
 
304
또 딴소리가 부귀를 불넜다. 이것은 정녕 칠용이의 목소리다.
 
305
"빵떡, 벌서 자나."
 
306
"빵떡 사 먹으러 왔는데, 어서 갖어고 나오너라."
 
307
안에서 부귀가 대답을 않으닛가 두 녀석들은 부귀의 약을 올일 작정인지, 다시 또 서로 번갈래 한 마듸식 하였다.
 
308
이러한 일은 부귀가 장가 들기 전에는 거진 날마다 있다 싶이 한 일이다. 물논 그 때에는 빵떡이라고 안 그라고, 눈깔망난이라고 하였지만. ─ 그러나 부귀가 장가를 들고서는 이런 일은 오늘 저녁이 처음이다. 부귀의 할머니가 꿍꿍 알고 누어 있고, 항골 아저씨니 무었이니라는 일가 뿌시럭이 들이두 번 큰 일을 치루는 동안에 자주 들나거리고 하여서 이 때까지 이렇게 부귀를 놀일 기회가 아주 없었든 것이다.
 
309
그럼으로 부귀댁으로서는 아조 처음 격는 일이요, 부귀도 자긔 안해 앞에서는 처음 격는 일이다.
 
310
"에이, 천하 망할 놈의 개자식들!"
 
311
그 전 같으면 부귀가 툭탁하면 내 놓는 이 욕을 으레히 그들에게 해 붗었을것이나, 오늘 저녁에는 새 안해를 앞에 놓고서는 이러한 욕도 참마 할 수 없다.
 
312
"저이들, 저것이 무었하는 거요."
 
313
부귀댁은 부귀가 아무 말도 않고 삽작 거리에서 외여치는 소리는 모른 척도 않고 밥만 푹푹 퍼먹고 있는 것을 보고 자기 남편한테 물었다.
 
314
물논 부귀댁도 부귀가 빵떡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시집 오 기전에 임의 듣고 오고, 여기 와서도 딴 여인네들이 속살거리는 데서 듣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남에 문 앞에 와서 동이 사람들이 다 듣도록 버럭버럭 소리를 질너가며 '빵떡’이라고 불늘 줄은 몰냈었다.
 
315
"아니여, 및인 놈들, 미친 지랄하는 것이여."
 
316
부귀는 그런 일은 상관 안하는 것이 좋다는 듯이 밥을 연실 퍼 느며 대답 하였다.
 
317
그러나 대봉이 칠용이 녀석들로서는 부귀가 대답을 안는다고 그대로 돌어갈 이가 없다. 어떻게든지 하야 부귀를 끌허내여 한바당 놀여먹고 놀여 먹다. 시답잖으면 한바탕 뒤잽이를 놓치 않으면 시원치 않다.
 
318
"빵떡, 너 속옷 밑에만 처백혀 있을테냐."
 
319
"빵떡, 이건 초저녁부터 그게 무슨 짓이냐."
 
320
둘은 서로 역구리를 쿡쿡 찔너가며 또 한 마디식하였다.
 
321
부귀는 먹는 밥 숫갈을 내던지고 뿔군 일어났다. 그리고 담에 지대논 지 개 작대기를 움겨쥐고 구루룰 삽작 거리로 뛰여나갔다. 삽작 밖에 섰든 두 녀석들은 그 전만 예기고 부귀릐 쫓어나오는 소리를 듣고도 서로 눈을 끔 저 거리며 인저 되었다는 우숨까지 우섰다. 부귀는 나오자마자 지개 작대기를 둘 너 메여 어물어물하는 두 녀석들 등덜미를 한 개식 보기 좋게 나려 갈기고 얻어맞으며 똥줄기가 빠지게 달어나는 두 녀석들을 보고, 그 제서,
 
322
"에이, 천하 망할 놈의 개자식들!"
 
323
하고, 늘 하는 그 욕을 해 붗었다.
 
324
부귀는 발을 돌여 도로 삽작 안으로 들어 슬 때에 오래간만에 그 놈들을 뚜둘겨 주었다는 것도 기뻐지만, 그보다도 뚜둘겨주는 것을 제 안해가 안에서 보고 있었다는 것이 더 기뻐 득이양양하여 걸어 들어오며,
 
325
"다시 또 한 번만 그래 보아라. 인제는 창아리를 내 놓을 테니 ─."
 
326
하고 작대기를 내던지고 다시 밥상 앞에 앉었다.
 
327
"지개 작대기로 패다 다치기나 하면 어쩌실라고 그라시오."
 
328
안해는 좀 不安[불안]한 듯이 물었다.
 
329
"괜찮어. 그런 놈들은 좀 뚜들겨 맞어야지."
 
330
부귀는 다시 숫갈로 밥을 뜨며 대답하였다.
 
331
"하기사 자기네들이 먼저 잘못하였으닛가요."
 
332
"암. 어데 뻬가 뜅기러저 병신이 되어도 어데가서 말하여 저만 앵 하였다."
 
333
부귀는 제 안해 앞에서 제의 식식하고 용감하고 사내다운 것을 담북 보여주고 말하여 주었다. 기운을 안쓰닛가 그렇지, 막 하기로 하면 그런 녀석들 두셋은 그저 똥뗑이 굴이 듯하겠다고도 말하였다. 구 때 신작로까지 구장 양반네 베를 저나른데도 제가 第一[제일] 많이 저 날넜고도 말하였다. 그러나 부귀의 자랑이 오즉 힘세다는 것뿐이랴! 그 녀석들이 못 당긴 學校[ 학교]를 단겼고, 그들이 넘겨다도 못 볼 당당한 양반이다. 부귀는 제가 어려서 얼마나 고생을 하여가며, 그 고생을 참어가며 이십니나 떨어저 있는 보통학교를 단겼나를 말하였다. 그리고 할머니한테 귀에 배도록 들은 자긔 할아버지 대에 얼마나 잘났었나 얼마나 굉장한 양반이였었나도 말하였다. 그리고서 이야기의 結論[결론]을 말하는 듯이,
 
334
"世上[ 세상] 이 이런 世上[세상]이 되고, 우리 집 形勢[형세]가 이렇게 되었으 닛가 그렇지 萬一[만일] 世上[세상]이 이렇지 않고 우리 집 形勢[ 형세] 가 조곰이라도 낳으면 우리는 절대로 저런 맥 무식군이의 개똥 불상 놈들하고 이 산골에 처백혀 있을 사람이 아니고, 으레히 군수나 도장관쯤은 하나 따가지고 읍으로 나가서 비젔하게 살 것이다. 아모리 못가도 명장 하나쯤은 여부없이 딸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우리가 얼마나 때를 잘못 타고 나온가를 알 것이다. 참으로 우리는 때를 잘못 타고 난 것이다."
 
335
부귀는 길―게 탄식하였다. 유사이래 어떠한 불운의 영웅도 이보다 더 긴 탄식은 못하엿을이라만치 긴 ─.
 
336
"그래 장내에는 어떻게 하실 작정이요. 어떻게 하여 먹고 살 작 정이요."
 
337
부귀댁은 부귀의 호화러운 이야기를 취하는 듯이 들으면서도 그래도 여전히 지금 어떻게 할가 ─ 하는 먹고 사는 일을 아주 잃어버리지는 않었다.
 
338
"글세. 어떻게 할지 ─."
 
339
부귀는 아무렇게나 대답하고 멀거니 맑은 밤하늘을 치여야다 보았다.
 
340
"언제나 지개를 버서 내버리고 이런 산골에서 더 넓고 좋은 데로 떠나겠는냐 말이여요."
 
341
부귀댁은 거듭처 물었다. 부귀댁의 이 넓고 좋은 데는 곳 서울을 알으 키는 것이다. 부귀댁은 아즉도 가슴 속 어느 구석엔가 서울 가는 꿈을 감추어가지고 있다. 이 곶에 시집오기 前[전]에 소문으로 듣든 그 서울가는 이야기의 한 쪼각을 ─. 오늘 저녁엘 별 이야기를 다 했으면서 한 마듸도 서울 이야기를 안해 주었읍으로 은근히 서울 이야기를 해 달나고 재촉해본 것이다.
 
342
그러나 남편은 이러한 안해의 뜾을 알어주는지 몰너주는지 여전히 맑은 밤하 날을 발아 보고,
 
343
"글세, 언제나 ─."
 
 
 

9. 사랑 싸홈 삼(三)

 
345
잍은날 일이다. 부귀는 아츰올 일즉 아니 먹고 어제 저녁에 댄 논물이 어떻게 되었나 볼여고 구레보 논으로 슬슬 걸어나갔다. 아즉 해도 뜨기 前[ 전] 이라, 논둑에는 이슬이 잡북 나려 있고, 베폭들이 쑥쑥 자라서 보기만 하여도 신이 나는 듯하다. 부귀는 이슬 채이는 것도 상관없이 고무신을 신 흔 채 보수멍으로 向[향]하였다.
 
346
그러나 이 구테 보수멍에는 임의 먼저 와서 기달이고 있는 녀석이 있다.
 
347
그것은 대봉이다. 어쩌녁에 지개 작대기로 등덜미를 뚜들겨 맞고 도망질 해 냇 뺀 대봉이다. 대봉이는 아침도 먹지 안이하고 벌서부터 이 수멍에 와서 부귀의 나오는 것을 기달이고 있었다. 물논 어제 뚜둘겨 맞은 앙 갑 푸리를 하려고다.
 
348
사실인즉 엇저녁에 같치 뚜둘겨 맞고 같치 도망질한 칠용이 하고 둘이 오늘 점심 나절 느퇴나무 거리고 부귀를 끓어내여 아주 실컨 부귀를 뚜둘겨서 챙을 다스릴 작정이였었는데, 대봉이는 점심 때까지 참지 못하고 칠용이와 둘이 하는 것을 둘이 한다 하더라도 저 혼저 제대로 먼저 한 번 앙 갑 푸리를 하지 않고는 못 견데여서 여기 와서 부귀가 논에 물고 보러 나오는 것을 기 달이고 있었든 것이다.
 
349
"너 잘 나왔다."
 
350
대봉이는 부귀가 아조 수멍에다 올 때까지 수멍 넘에로 감적같치 몸을 숨기고 있다가 급작스리 내달어 부귀의 가는 길을 꼭 맊아스며 말을 걸었다.
 
351
부귀는 그 자리에 주춤하여 번능적으로 피하여 도망할려고 몸을 뒤로 빼는 듯이 하였다.
 
352
"너 잘 맛낫다."
 
353
대봉이는 한 말을 다시 한 번 뒤푸리하였다. 부귀는 어제 저녁에 한 일이 있어 그래지 않어도 원수가같지 지내든 대봉이 녀석이 도저히 그대로 논에 가게 하지 않을 것을 깨달었다. 깨달었으나 대봉이를 막어낼 아무 좋은 방법도 생각나지 않었다. 부귀는 몸을 날여 삑 돌어서서 오든 길을 도로 도망질 하였다. 그러나 열거름을 채 못가서 대봉이에게 붓들이고 말었다.
 
354
"도망 칠가? 전도 어제 한 일은 알고 있는 모양이로구나."
 
355
대봉이는 두 손으로 부귀의 멱살을 잔득 취켜들었다.
 
356
"이 자식아, 이 빵떡아."
 
357
"얘, 대봉아! 내가 잘못하였다. 용서해다고."
 
358
부귀는 멱살을 잔득 들인 채, 대봉이의 멱살을 쥘 생각도 않고 숨을 헉헉거리며 빌었다.
 
359
"용수고 술걸느는 것이고 다 일 없다. 너도 이 놈, 한 대 맞어 보아라!"
 
360
하고 대봉이는 한 손으로 만 멱살을 걸어쥐고는 딴 한손으로 부귀의 뺨을 철그덕 올여붙었다.
 
361
"여, 나리! 그저 지가 죽을 줄올 몰느고 그랬으니 ─."
 
362
"누가 빵떡한테 나리 소리 들을 줄 아느냐!"
 
363
대봉이는 또 한 개 뺨을 절크덕 올여붙었다.
 
364
"나리, 나리, 그저, 지가."
 
365
"무었이 나리여!"
 
366
대봉이는 세 개, 네 개, 연 일곱 개의 뺨을 거듭 처 올여 붗었다. 멱살을 잔득 들인 모가지도 샛빩았고 양쪽 뺨도 금시에 빩았에 되었다. 그전에 그저 심심푸리로 놀니느라고 때릴 때의 뺨이 아니고, 어제밤에 뚜둘겨 맞은 앙 갑 푸리를 할여고 치는 뺨이라, 그 한 개 한 개가 볼탁지가 떨어저 나가는것 같치 앞었다.
 
367
"네가 이 놈 누구 세를 믿고 지개 막대기로 사람올 패느냐. 마 누란지, 코 딱 진지 세를 믿고 그랬느냐, 이 자식!"
 
368
대봉이는 손을 좀 늧우고 숨을 둘느며 말로 따진다. 부귀는 그냥 빌기 만해도 소용업다고 생각 하여,
 
369
"하기사, 느의들 먼저 우리 집에 와서 빵떡 빵떡하고 걸지 않었니."
 
370
"아니, 빵떡이라고 그란 것이 어떠타는 말이여. 이 자식아, 너를 보고 빵떡이라 그랫다고 네가 참말로 빵떡이 되느냐, 별명이 빵떡이닛가 그러 케불 느는 수밖에는 없잖으냐, 이 자식아."
 
371
"그래도 남의 집 삽작 앞에 와서."
 
372
"그전에는 안 그랏느냐, 그 전엔 왜 가만이 있었어.
 
373
"그 전은 그 전이고, 지금은 지금이지."
 
374
"흔, 그럴게라. 그래도 마누라쟁이 앞에서 빵떡 소리는 듣고 싶지 않은 貌樣[ 모양] 이로구나."
 
375
"마누라 때문두 아니지만 ─."
 
376
"무었이 아니여. 이 자식아! 그 중에 마누라쟁이 앞에서는 그래도 제가 머라고 뻣내다가 우리가 빵떡이라구 하니가 제 마누라쟁이한테 한 번 법 낼 여고 이 자식! 네가 지개 작대기를 끓고 나온 것이 아니냐, 그렇지!"
 
377
"어젠 일이야, 어찌되였든 말이다. 느덜 우리 집에 와서는 이 다음부터 그런 소리 말어다고."
 
378
"그라면 어떻게 할테냐, 네가? 또 지개 막대기를 끌고 나올 작정이냐."
 
379
"왼 지개 작대기는? ─ 얘, 대봉아, 그라구 저러구 간에 인제 이 멱살을 좀 노아다고. 논에 물고를 좀 보고 와야지."
 
380
"노아주, 그저, 요 자식을! ─ 그렇지만 노아 주었다. 불상해서 노아 주었다."
 
381
대봉이는 그 때까지 주고 있든 부귀의 멱살을 놓었다. 숨을 둘 너 가지고 다시 한바탕 패댈 장정이였지만, 부귀라는 놈이 작고 빌고, 맞고만 있 음으로 팬 대도 도모지 싱거웠었기 때문이다.
 
382
그러나 대봉이는 언제나 뒤잽이 논 끝에 받는 마지막 집을 받는 것을 잊이는 않었다.
 
383
"내가 네 할미하고 그렇구 그렇치."
 
384
"그래, 그래. 우리 할머니하고 그렇구 그렇다."
 
385
부귀는 서슴지 않고 대답하였다.
 
386
부귀는 제 논 있는 대로 걸어가고 대봉이는 그래도 부귀라는 놈이 미 슴 스러워서 그대로 잠간 동안 수멍 우에 서 있었다. 부귀는 무었을 생각 하였는지 한 여나무 거름 걸어가서, '해해해’하고 구만 우슴올 터추어 놓는 것이다.
 
387
"이 자식, 거기 있서."
 
388
대봉이는 뒤에서 냇다 소리를 질느고 쫓어갔다. 부귀는 이번에는 좇어 달어 날 생각도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서버렸다.
 
389
"무었이 우수워, 이 자식아."
 
390
대봉이는 또 부귀의 멱살을 취켜들었다. 부귀는 멱살을 취켜들이고 서도 여전히 넙죽한 주둥이를 벌눔거려가며 웃고 있다.
 
391
"이 자식아, 무었이 우수워!"
 
392
대봉이는 뺨을 한 개 절컥 올여 붗었다.
 
393
"너 말여. 허허허. 우리 할머니는 몇일 전에 공동묘지로 가시였단 말이여! 허허허."
 
394
"올치, 요 녀석이. 그래서 웃었구나. 그러면 너 ― 너 ― 올타 되었다. 네 매누라하고 나하고 그렇구 그렇지."
 
395
"그건야 ─."
 
396
"안 되어? 정 안되여?"
 
397
"그래, 그래. 된다, 된여. 그래, 그렇구 그렇다."
 
398
대봉이는 멱살 쥐였든 손을 노었다. 부귀는 다시 또 걸어갔다. 대봉이는 이번에는 부귀 녀석이 또 웃을가 하고 기달이고 섰었으나 이번에는 웃지 않었다.
 
399
"제가 그렇면 그렇치."
 
400
대봉이는 그제서 만족하고 죄 집을 向[향]하였다.
 
401
그러나 사실은 이번에도 부귀는 웃고 있었다. 소리를 내서가 아니라, 속으로 웃고 있었다.
 
402
"제 놈이, 머 마누라하고 그렇구 그렇다면 나는 또 제 놈의 마누라하고 그렇구 그렇지 머 ─."
 
 
 

10. 차무서리 일(一)

 
404
대봉이는 부귀한테 뚜둘겨 맞은 분푸리, 아주 톡톡이 하였지만, 칠용이 녀석은 부귀의 털에 손도 못댄 채 十餘日[십여일]을 허속하였다. 대봉이 그저 우악하여 기운으로 하는 것이 자랑이지만은 칠용이는 대봉이와는 좀 닯우다. 좀 닯우무로 十餘日[십여일]식이나 그런 것은 잊어버린 듯이 참고 나려오고 부귀를 보아도 아무 별누는 말 한 마듸 뒤집어 씨우지 않고 도리 혀그 前[전]보다 친절까지 하였다. 남들이 빵떡 빵떡하고 놀이면 칠용이는 부귀를 못 놀이도록 뜯어 말이기까지 하였다.
 
405
"이 자식이 왜 요새 이러가."
 
406
하고 부귀는 도리혀 재미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달이 아무 해도 붙이지 않음으로,
 
407
"저 녀석이 인제는 철이 나너라고 그라나."
 
408
쯤 생각하였다. 부귀는 元來[원래]부터 남을 철저하게 믿지는 안치만, 또 철저하게 의심도 안는 승질이닛가 ─
 
 
 

11. 차무서리 이(二)

 
410
무더운 여름 어느 날 밤 일이다. 부귀 저녁을 먹고 삽작 앞에 서서 어데고 놀너갈 데가 없나 하고 고개를 기우리고 있었다.
 
411
第一[제일] 먼저 구장댁 마당이 생각났다. 거기 가면 사람도 많이 모여있고, 시원도 하고, 안질 자리도 좋고 ……. 하지만 부귀는 은제나 그러하듯이 이번에도 그리고 가는 것은 바로 단념하였다.
 
412
"빵떡, 빵떡."
 
413
하는 조소의 소리가 그의 귀에 울여오는 듯하였다.
 
414
"천하 망할 놈의 개자식들 ─."
 
415
언제나 하는 이 욕을 속으로 해붗이고 침을 탁 뱉어버렸다.
 
416
그러면 어데 딴 데가 있나…… 하고 여기저기를 생각해 보았으나, 별로 신통한 데는 없었다. 여전히 제 집 마당에서 마누라와 맛대 앉어 하다 못 해 예전 이야기라도 하고 있는 수밖에는 없는 듯하였다.
 
417
그러나 오늘 저녁에는 제 집 마당에도 앉어 있을 수 없게 되었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낮에 지가 새들 콩밭을 매고 있느라닛가 마누라가 점심을 이 고와 이런 말을 하였기 때문이다.
 
418
"어데고 남만 못한 데가 있어 或[혹]은 다리를 전다든가, 팔 병신이라든가 ─ 면 몰나도 일을 하면 이렇게 잘하는 멀정한 이가 왜 남에게 숙맥 구실을 하고 병신 행실을 하우. 손이 없우, 팔이 없우. 놀이는 놈이 있으면 그깐 놈들을 왜 놔두우. 주먹은 두었다가 쌀머 먹을 작정이요. 그리고 자기 자신두 밤에 저녁을 먹으면 구장댁네 마당같은 데로 더러 마실도 가고 해야지, 맛날 집에만 들어 앉었으니 남들이 욕을 하지 안하우. 밤낮 사내 하고 붙어 있다고 나까지 辱[욕] 먹지 않소. 이제부터는 밤에 마실도 단기고 좀 그러우."
 
419
부귀 자신도 元來[원래]부터 마실이 가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 떠들석하는 곳이 언제나 가고 싶운 것이다. 다만 그 놈들 이 놀 여대는 통에 놀이는 끝에 뒤잡이가 되어 한케뜨게 되면 결국 뚜둘겨 맞는것도 저고, 옷를 찢는 것도 저라, 늘 혼저 손해를 봄으로 언제부터인자 저절로 사람들 모인 데는 안 가도록, 안 가도록 버릇이 되었을 뿐이다.
 
420
그러나 오늘 저녁에는 어데로고 마실을 가야 하겠다. 똑 가야만 하겠다. 허나 아모리 생각해 보아도 아모 데도 갈 데가 없다. 그렇다고 삽작 앞에 말둑처럼 언제까지든지 서 있을 수도 없다. 그래도 사내 대장부로서 제 마누라 앞에 마실 갈 데가 없다구야 하는 수가 있나. 어데로든지 가야지 ─. 하고 막 개천을 건너스려 하닛가,
 
421
"너 부귀 아니냐?"
 
422
하고, 칠용이가 이리로 오며 말을 걸었다.
 
423
"왜, 이 놈아!"
 
424
"내가 일부러 지금 너를 찾어오는 길이다. 너 어데 가니?"
 
425
"가기는 어델 가. 바람 쏘이러 나왔지 ─."
 
426
"그럼 잘 되었다. 어서 이리 오너라."
 
427
"왜 이 자식아."
 
428
"글세 나만 딸어 와. 수 생기는 일이 있을 테닛가."
 
429
"똥을 쌀 여석! 이 놈들이 또 누구를 놀여먹을라고 그렇게 누가 속을 줄아니?"
 
430
칠용이라는 녀석한테는 그 전에 몇 번 속운 일이 있었다. 이 녀석도 다른 녀석들 하고 어울이면 물논 '빵떡 빵떡’하고 놀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 도아조 처년스럽게 거짓말을 하여가지고 속여먹기를 잘한다. 부귀는 칠용이한테 는 처음부터 경게하였다.
 
431
"아니여, 오늘 저녁에는 그런 일이 아니여 ─."
 
432
"그람, 무슨 일이여, 이 자식아!"
 
433
"事實[사실]은 말이여 ─."
 
434
하고 소리를 나직이 하여 부귀의 귀에 입을 밧삭 대고,
 
435
"저기 말여. 대봉이네 새들밭에 지금 우리 몇 간이 차무서리를 갈 터인데, 너도 한 목 찌이란 말이여."
 
436
"대봉이네?"
 
437
대봉이는 부귀가 맛나기만 하면 서로 욕찌거리를 하고 뒤잡이를 놓는 제일 고햔 놈이다. 빵떡이라는 별명을 맨 처음에 지어낸 것도 이 녀석이고, 그 후에 빵떡 빵떡하며 놀여먹기도 이 녀석에 第一[제일] 심한 것이다.
 
438
"들키면 어떻게 하구?"
 
439
부귀는 대봉이네 밭이라는 데, 벌서 맘이 끌였다.
 
440
"들키기는 왜 들켜. 대봉이는 즈 외가에 갔다온다고 秦州[진주]에 갔으닛가 갓다오는 데 아모리 하여도 三四日[삼사일] 걸일 테고 대봉이 아버지는 더위를 먹어가지고 제 집에서 허비저거리고 있으니 직힐 사람이 누가 있겠니? ─ 그라고 또 서령 틀킨다 해두 뛰여 달어나면 그만 아니냐? 이 어 두운 밤에 어너 녀석인지 알어 ─."
 
441
"그래도 나는 싫다."
 
442
부귀는 한 번 뺑속이질을 하였다.
 
443
"너 대봉이네 차무밭에 차무가 얼마나 달였는지 알기나 아니? 그저 사과루만 다석 두둑을 쭉 놨는데, 그것이 지금 모두 함박위었다. 너는 그 따우 차무 어데서 맛도 못봤으리라."
 
444
"그 집에서 나종에 알구 보면 큰일나잔니."
 
445
"그 자리에서만 들키잔으면 상광있나. 심심푸리로 작난 삼어 서리 하는것이야, 어떠냐. 예전에는 닭서리도 했었다는데 ─."
 
446
칠용이는 말에 맥히는 볍은 업다. 얼마든지, 무었이든지 끄아낸다. 부귀는 한참 생각 하다,
 
447
"그람 나도 가볼가. 그렇치만 만일 들키면 야단은 느덜 혼저 맞는다."
 
448
"그야, 염여 말어라."
 
449
부귀는 칠용이의 뒤를 딸어 느퇴나무 거리로 나왔다. 거기에는 두 녀석들이 벌서 와서 기달이고 있었다. 이 두 녀석들과 칠용이와 부귀와 도합 네 녀석이 바로 새들로 행하였다. 꼴불꼴불한 논둑길에는 벌서 이슬이 나려 있었다. 칠용이는 맨 앞에 서서 대봉이가 겉으로는 약은 체해도 사실은 똥 바보라고 숭을 보았다. 그리고 참말로 기운으로 하면 부귀한테 어림도 없을 것이라고도 하였다. 부귀는 이처럼 세 녀석이나 뫃여서 전같으면 으레히 한차레 ' 빵떡’ 소리를 내 놀텐데 그런 것은 잊어버린 듯이 한 마듸도 내지 않고 또 게다가 지가 가장 미워하고 원수같치 여기는 대봉이의 흉을 보는데 적잔 이 모든 이링 유쾌하였다.
 
450
그럭저럭 대봉이네 차무밭 머리까지 다달었다. 네 놈 중에 누구든지 하나가 잠뱅이를 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잠뱅이에다 차무를 잔득 따 느가지고 둘너메고 나와 어데로구 가서 나누어 먹는 것이다. 이것은 차 무서리하는 데는 으레 그런 것이다.
 
451
"부귀야, 너 잠뱅이 벗어라."
 
452
칠용이는 또 부귀를 꼬수었다.
 
453
"난 빤스를 안 입었으니 느덜 중에 누가 벗으라무나."
 
454
부귀는 사실 빤스를 입지 않었다. 낮에 일한 때에는 빤스만 입고, 저녁에는 잠뱅이만 입는 버릇이었다.
 
455
"우리도 모두 빤스를 안 입었다. 어서, 네가 버서라."
 
456
또 한 녀석이 부귀를 달냇다.
 
457
"잠뱅이 값으로 차무 개나 더 줄테니 어서 버서라."
 
458
딴 한 녀석이 마저 말을 보태였다.
 
459
다른 때 같으면 부귀가 그렇게 유낙낙하게 그들의 말을 들었을 이는 없다. 그러나 오늘 저녁에는 고대부터 기분이 좋웠고, 또 이러한 때 옷을 벗고 덤비는 것이 도리혀 勇敢[용감]한 것같치 생각되였다. 부귀는 주저 하지 않고 잠뱅이를 훌훌 벗어 허리 바로 잠뱅이 허리통 잇는데를 잔득 붓 드러매 가지고 앞장을 서서 차무밭으로 덤벼들었다. 칠용이와 딴 두 녀석들도 딸어 들어섰다.
 
 
 

12. 차무서리 삼(三)

 
461
처음에는 한 두둑식 맡어서 따 나가자고 하여, 네 녀석이 각각 서서따 나갔다. 그리다가 칠용이가 저는 익은 것을 못 알어보고 또 잠뱅이 속의 차 무도 꽤 많어저서 무거울 테니 제가 혼저 차무 잠뱅이를 맡어서 메갰다고 하였다. 부귀는 그 때까지 메고 있든 차무 잠뱅이를 칠용이한테 맛기고 칠용이 따든 두둑까지 맡어서 따게 되었다.
 
462
그러나 이렇게 한참 따 나갈 때 옆에 있는 수수밭으로 부터,
 
463
"이 놈들아! 차무 도적놈들아!"
 
464
하고 고함을 질으며 차무밭 주인인지, 지개 작대기를 둘너매고 내달어왔다.
 
465
"차무 밭 임잔가부다, 냇빼라!"
 
466
칠용이가 소리를 질으며 앞어 뛰어 달어났다. 부귀도 그 뒤를 딸으고 딴두 놈도 그 뒤를 딸웠다. 네 녀석은 눈둑 밭둑 가리지 않고 불이 낫케 냇뱄다. 그러나 밭 임자는
 
467
"이 놈들, 거기 있거라."
 
468
연실 고함을 질으며 지개 작대기를 휘휘 둘느며 좇어달었다.
 
469
"이것 큰일났고나. 이 차무 잠뱅이를 가저갈여다가는 네 놈이 다 붓 들이겠다."
 
470
숨을 헐더거리며 칠용이는 그 때가지 메고 있든 차무 잠뱅이를 냇다 논 도랑에다 태기를 처 버리고,
 
471
"네 놈이 한테 몰이지 말고 각각 헤처저라."
 
472
하며, 제대로 딴 길로 뛰어 달아났다. 딴 두 놈들도 각각 헤여저 달아나고, 부귀만 쪼겨오든 길을 고대로 쪼겨냈뱄다.
 
473
부귀는 얼마즘을 정신 없이 쪼겨달어나다가 쫓어오는 소리가 없음으로 겨우 뒤를 돌어다 본즉 딴놈들은 어데로 뛰어갓는지 보이지 않고 아까 차무잠 뱅이를 내던지든 논 도랑 있는 데서 차무 밭 임자인가 차무 잠뱅이를 찾는지 지웃하는 것이 어둠 속에 으슬풋이 보이였다.
 
474
"아자! 잠뱅이를!"
 
475
부귀는 그제서 버섰든 잠뱅이 생각이 번적 났다. 손으로 만저보니 아조뻘거숭이다. 부귀는 단번에 지가 그처럼 어수룩하게 그 놈들 말대로 잠뱅에를 버섯든 것을 후회하였다. 그러나 후회한다고 물논 어떠케고 되는 것은 아니다.
 
476
"어쩔가 ─."
 
477
부귀는 길 옆에 쭈꿀트리고 앉어서 생각하였다. 바로 밭임자한테 가서 개개 빌고서 잠뱅이를 찾일 것인가, 或[혹]은 바로 집으로 돌아갈 것인가 ─.
 
478
가재도 않도과, 안가재도 않되고 ─. 부귀는 제 생전에 이 때처럼 몸이 달어 본 적은 없었다. 후에도 늘 생각하듯이 참으로 몸이 밧삭 달었다.
 
479
그러나 부귀는 그여히 옷 찾기를 단염하고 일어섰다. 지금 가서 개개 빌고 달내본댓자 씅이 잔득 난 밭임자가 그대로 내 줄이가 만무하고 지개 작대기로 공연히 뚜둘겨만 맞을 것이다. 그보다는 차라리 이대로 집으로 갓 다가 내일 그 주인을 찾아가서 조용히 말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480
부귀는 누구고 맛나지나 않을가 두려워 하야 좌우를 둘너보며, 힘 하나 없는 거름으로 제 집으로 향하였다.
 
481
그러나 그 날은 부귀에게 재수가 아주 없는 날이지, 쇠똥에 밋그러저서 갯똥에 코를 박는 셈으로, 구장댁네 집 모툉이를 돌아가다가 해필 크 때 大門[ 대문] 안에서 쑥 나오는 구장 양반과 그냥 꼭 맛부닥쳤다. 부귀는 참으로 차무 밭 주인이 소리 지를 때보다 더 깜작 놀냈다.
 
482
"거기 누구냐!"
 
483
구장 양반은 부귀가 깜작 놀나 주춤하는 것을 보고 냇다 호령하시엿다.
 
484
"진지 잡수셨읍니가. 저 ― 부귀입니다."
 
485
부귀는 겨우 이렇게 어물거리고 두 손으로 앞을 가리며 흘금흘금 뒤를 돌아다 보며 구장 양반이 밧삭 달여들기 前[전]에 제 집에 있는 데로 도망질 하여 버렸다. 구장 양반은 부귀가 뻘거숭인 것을 보았는지, 어쩐지는 몰느나, 그래도 점잔은 이라, 大門[대문] 앞에 웃득 서서 딸어오지는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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