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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정 이지함(土亭 李之菡)은 선조(宣祖)대왕 때 충정도 한산(韓山) 사람으로서 중년에 서울로 이사와서 서대문 밖 삼개〔麻浦〕에서 살았다. 그는 고려 말년에 정포은(鄭圃隱)의 선배이던 이목은(李牧隱)의 사손으로 그의 형님은 성암(省菴 - 之蕃[지번])이요 이산해(李山海)는 그의 조카이다. 그가 말년에 친구들의 권고로 포천 현감(抱川縣監)이 되었는데 베옷 짚신 해진것으로 도임하였다. 그날 저녁에 도임상이니만치 그 고을에서 나는 소산으로 갖은 진미를 갖추어 굉장한 상을 올렸더니 그는 아무 말도 없이 수저도 들어 보지 않고서 도로 내물린다. 아전들은 아마 반찬이 시원찮아서 그 런가하고 황송황송 부랴부랴 다시 그보다도 훨씬 더 잘 차려서 두번째 올렸더니 그래도 여전히 걸떠보지도 안하고 그냥 도로 물리는고로 아전들은 더욱더 죄송하여 할 수 없이 뜰 아래 엎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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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고을은 서울과 달라서 이 이상은 도저히 더 잘 차릴 수는 없으니 그저 죽여줍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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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고을에는 잡곡밥 업니? 나는 그런 좋은 음식은 먹어본 일이 없어서 무서워 그랬다. 우리가 이렇게 넉넉치 못하게 된 까닭은 이런 음식 같은 것 의복 같은 것을 너무 사치하게 하기 때문이 아니야? 나는 오직 잡곡밥과 나물 국이면 그만이다. 이후로는 그런 좋은 음식은 결코 먹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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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하였다. 도임한 지 며칠만에 그 고을 양반 아전 할 것이 군내 유지들을 모아 놓고 한턱 낸다는 것이 나중에 상이라고 내오는데 보니까 밥상 위에 시락 국 한 그릇 놓였는지라 그 날 모인 손님들은 그 꼴을 보고서 기막히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모다 눈을 멍하고 입을 딱 벌리고만 있었다. 주인 사또가 맨 먼저 숫가락을 들고 후루룩 후루룩 가장 맛있게 먹으니 손님이 되어서 안 먹는 것도 무엇하고 하니까 할 수 없이 떠먹어 본즉 구역 이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포천원으로 2∼3년 있는 동안에 매사를 이렇게 백성을 잘 다스리다가 아산(牙山) 현감으로 전근이 되어 길을 떠나는데 온 고을 백성들이 길을 막아 유임을 간청하다가 안 된다고 울며불며 못내 잊지 않았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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