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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이조 말엽 어느 가을. 월성(月城) 지금의 경주(慶州)읍 한 모퉁이 조그마한 서당에 그 곳 선생이 수일 전에 제목을 내고 작시 숙제(作詩 宿題)를 지어 온 것을 보았는데 그 중 이 서방이란 사람의 조카되는 아이의 글이 너무 걸작이어서 그 글의 유래(由來)를 고찰하니 과연 그의 자작이 아니고 그의 숙모되는 박씨(이 서방의 안해)에게 차작(借作)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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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어느날 이 서방이 서당에 놀러왔으므로 선생이 박씨의 문장이 갸륵함을 무한히 칭송한즉 이 서방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일이라 혹은 별 다른 의심까지도 생겨 즉시 귀가하여 안해 박씨를 불러 옆에 앉혀 놓고 자기가 운(韻) 자를 낼 터이니 곧 이 자리에서 지으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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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중추명월(仲秋明月)이 서악(西岳) 새로 기우듬해졌으매 이미 초경이 되었는지 계명성(鷄鳴聲)이 질질(㗌㗌)커늘 안해 박씨는 남편의 입 떨어지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이 서방은 제목을 제일 난제(難題)를 내노라고 닭 〔鷄〕 이라 두고 지으라 명하며 가장 어려운 자를 내느라고 구(鷗) 우(牛) 후(猴)의 3자를 낸 것이 다음과 같은 명작을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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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보고 이 서방은 비로소 안해의 문장이 비범함에 탄복하고 더욱 사랑이 극진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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