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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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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 10.
계용묵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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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불
 
 
 

 
 
3
남편의 숙직날 밤처럼 근심인 것은 없었다. 취직을 못하였을 적엔 그저 걱정인 것이 밥이더니 인젠 또 잠자리가 적지 않은 걱정이다.
 
4
덮을 이불이 갖아서 제각기 따로따로 덮고 지낼 수만 있었으면야 아무리 한 방안이라고 하더라도 시아버지와 더불어 같이 지내지 못하랴만, 한 이불 속에서 자는 수는 없는 것이다. 한 이불 속이라고 하더라도 남편이 집에서 잘 때에는 시아버지가 아랫목에 눕고, 그 다음에 남편이 눕고, 그리고 영숙 자신이 눕고, 그러한 순서로 남편이 사이에 질려 잘 수 있는 밤이면 불편한 대로 그래도 잘 수는 있었지마는, 새 통에 남편이 끼지 않은 그 이불 속엔 아무리 발가락이 얼어 들어와도 시아버지가 덮은 이불을 들치고 들어가는 수가 없다.
 
5
이 딱한 밤이 또 찾아왔다.
 
6
한 달에 네 번씩 있는 이 밤이었다.
 
7
이번 숙직날부터는 어떻게 해서든지 아내의 밤잠을 편히 도모해 보리라 무척이도 애를 써 보았건만, 이불 한 자리의 마련도 그리 용이한 것이 아니었다.
 
8
“할 수 없군요. 그대루 또 하룻밤 지내야지.”
 
9
그리곤 미안쩍어 아침을 물리자 회사로 쑥 나가 버린 남편이었다.
 
10
“아이 여보오, 난 몰라요.”
 
11
이렇게 매달려는 보았으나 남편을 나무랄 수도 없었다.
 
12
자기네들보다 몇 달씩 앞서 올라온 사람들도 집 한 칸을 못 얻고 지금껏 산언덕에 거적을 두르고 겨울을 나는 형편인데, 그래도 남의 행랑칸일망정한 칸 얻어 들고 하찮은 직업도 붙들었다. 해주(海州)서 배를 타고 경계선(삼팔선)을 넘으려다가 경비대한데 붙들리어 짐을 다 떼이고(온 세간을 다 팔아 마련한), 가지고 오던 옷가지 이불때기 같은 걸 팔아 여비를 다시 마련하지 않을 수 없이 되었을 적에도 그 운용이 교묘해서 남들은 정말 알몸 그대로 올라오는데, 이불이라도 한 자리 남긴 것이 남편의 재주였다. 불평이 있을 수 없다.
 
13
‘아직 눈 위도 아닌데 뭘 못 참아.’
 
14
마음을 사려 먹고 윗목에 가 고스란히 누웠다.
 
15
이불 없이 자야 할 것이 염려되어 장작을 몇 개비 두둑히 넣었더니 구들은 윗목까지 제법 미지근하다.
 
16
시아버지는 벌써 잠이 들었는지 혹은 자는 체하는 것인지 얼굴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서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아들이 밖에 나가 자게 되는 밤이면 시아버지 역시 며느리의 잠자리가 불편할 것이 아니 근심일 수 없었다. 언제나 하던 그대로 오늘도 며느리가 이불 속으로 들어오기에 어려움성이 좀 덜어질까 해서 초저녁부터 일찌감치 벽을 향하여 드러누워선 이불을 넉넉히 뒤로 남겨 놓았다. 영숙이도 그 눈치를 모르지 않는다. 이러한 정성을 저버리고 그 이불을 같이 아니 덮잠도 미안할 것임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아직 한 번도 당기어 같이 덮어 본 일이 없다. 추운대로 댕그라니 새우처럼 까부라치고 혼자 누워서 견디어 냈다.
 
17
김장철을 지나고 나니 날씨는 제법 맵다. 어제가 옛날이다. 바람벽을 뚫고 스며드는 한기는 도저히 한 밤 동안을 이불 없이 댕그라니 누워 견디어 낼 것 같지 못하다. 참기 어려운 게 우선 발가락이다. 견디다 못하여 발가락으로 치마폭을 내려당기어 동글하게 아랫도리를 되사려쌌다.
 
 
 

 
 
19
차례를 안 지내면 안 지냈지 조상님에게 강냉이밥이야 어떻게 지어 대접하겠느냐고, 저녁상을 물리자 입쌀을 마련하러 나간 남편이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는다. 내일 아침 차례 준비를 해 놓아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앉았다가 남편이 들고 들어오는 입쌀 됫박을 받아 놓고야 결국은 확정된 차례였다. 동이 훤하게 틀 때까지 분주히 돌아가도 손이 모자란다.
 
20
시아버지와 남편은 벌써 의관을 정제하고 방안에 앉아서 부엌을 넘성거리며 말없는 재촉이다. 과실이나 부침 같은 건 이미 사당에 진열이 되었으나 메(제삿밥)가 좀처럼 끓지 않는다. 장작개비를 연방 집어넣어 그야말로 마음에까지 불을 달고, 배바쁘게 메를 지어 담아야 소반에다 받쳐들고 뒤란으로 돌아가 사당문을 열다가 놀란다. 알 수도 없는 수염이 하얀 영감이 하얗게 소복으로까지 차리고, 조상님의 신주를 안고 조그마한 눈을 거슴츠레하게 반득이며 앉아서 들어오라고 대고 손을 헤긴다.
 
21
“아이머니!”
 
22
저도 모르게 소리를 치며 뒤에 덧달려 들어오던 남편을 붙안았다.
 
23
“며느리, 너 꿈 뀌네”
 
24
꼭 시아버지 목소리 같다. 그게 더욱이 듣기에 무섭다. 얼굴을 비비며 파고 들어 허리를 바싹 껴안았다.
 
25
“얘, 며늘아! 며늘아!”
 
26
안긴 몸이 몸부림을 친다.
 
27
안긴 몸이 며느리라고 부르는 소리에 귓맛이 쨍하고 새롭다. 얼떨떨한 정신이 점점 수습되며 눈이 뜨인다. 살피보니 고향 집 사당이 아니다. 서서 붙안았던 남편도 남편이 아니다. 역시 들어 있는 셋방, 그 방 안이요,품안에 바싹 끌어안고 누운 것은 내복 바람인 시아버지의 부대한 몸집이다. 별안간 정신이 팔짝 든다. 놀라 닁큼 일어나 앉았다.
 
28
‘꿈!’
 
29
그러나 다 꿈이 아니었다. 남편을 붙안기까지만 꿈이었고 꼭 시아버지 목소리로 꿈을 꾸느냐고 묻던 그 소리부터는 뻐젓한 현실이었던 것임이 미루어진다. 온몸에 땀이 바짝 서린다.
 
30
‘이게 무슨 일이야!’
 
31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다. 치마폭으로 아랫도리를 되사려싸고 누웠다가 발가락이 정말 참을 수 없이 얼어 들어와 이불귀를 들치고 발만은 넌지시 넣은 생각이 어렴풋하지만, 대체 어떻게 시아버지 이불속으로 들어갔는지, 그리고선 꿈을 꾸다가 이 망신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
 
32
‘시아버지는 정말 꿈을 꾸다가 그런 줄 알겠지’
 
33
그렇게 알아는 준대도 아니 부끄러울 수 없다.
 
34
시아버지도 웬걸 그새 벌써 잠이야 고쳐 들었으랴만 자는 체하는 것도 역시 자기가 부끄러워할 것을 염려하는 데서라고 짐작하니 몸이 다 오싹거린다. 숨도 크게 쉬기가 부끄러워 그대로 앉았을 수가 없다. 밖으로 뛰어 나왔다.
 
35
밤은 얼마나 깊었는지 주위는 고요한데 한기만이 깔맵다.
 
36
안집 장독대 옆에까지밖엔 더 내어디딜 면적이 없는 마당이다. 거닐 데가 없다. 아무 데나 주춤하고 섰다. 사당에서 신주를 안고 손을 헤기던 그 하얀 영감이 눈앞에 그대로 나타난다. 현물세(現物稅)를 세 차례씩이나 바치고 먹을 양식이 없어 강냉이를 사다가 그것도 죽을 끓여 먹는 형세에, 차례를 지낼 수가 없어 남편은 자기의 금동곳을 들고 나가 팔아다 입쌀과 바꾸어서 차례를 지내던 작년 설 일이 그대로 비슷이 꾸어졌는데 사당 안에 하얀 영감은 왜 꿈에 나타났을까? 그건 무얼까? 좋은 징졸까 나쁜 징졸까 자기네 집과는 강계(江界) 사람이 바꿔든다고 했는데, 그 집 영감이 그렇게 눈이 거슴츠레하고 하얄까? 그러면 그 영감이 신주는 왜 끌어안고 앉아서 자기를 들어오라고 손을 왜 헤기는 것일까? 헤기는 그 하얀 손이 지금도 눈앞에 또렷하다. 몸서리가 오싹 떨린다. 무서워 견딜 수가 없다. 돌아서니 방안으로도 발길이 내키지 않는다. 시아버지가 눈에 보인다. 허리를 양팔로 바싹 끌어안았던 생각을 하면 시아버지를 바라볼 낯이 없다. 눈앞엔 그대로 손을 헤기는 하얀 영감이 사라지지 않고 무섭게 만든다. 꿈이면 꿈이지 생각만 해도 오조조한 하얀 영감이 하필 신주를 붙안고 앉아 손을 헤겨서 시아버지에게 망신을 시켜 놓나? 그대로 밖에 섰기도 무섭고,방안으로 들어가기도 부끄럽고-.
 
37
한숨과 같이 영숙은 어쩔 바를 모르고 어둠 속을 그냥 헤맨다.
 
38
어디로서 나타났는지 미국 비행기 한 대가 가슴패기에다 새빨간 불을 달고 푸릉푸릉 별도 숨은 새까만 밤하늘을 당돌기 시작하는데…….
 
 
39
(1947. 10. 19.)
 
 
40
〔발표지〕 《민성》 (1947. 10.)
41
〔수록단행본〕『별을 헨다』 (처희문사. 1954)
【원문】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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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03월 0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