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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7
백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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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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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원(農園) 한 옆에 칠백 평 가량 되는 못(池[지])을 판 것은 재작년 봄이다. 처음 못을 팔 때는 양어(養魚)를 해볼 작정이었으나 양어를 하려면 못 주위를 많이 수축하여야 되므로 대구(大邱)까지 가서 여러 가지 재목은 사다 두고도 여가가 없어 차일피일 하다가 그대로 버려두게 되었다. 날마다 석양이 되면 아이들과 이 못가에 내려가서 조각배를 띄워놓고 장난이나 하게 되므로 이 못은 그대로 버려둔 채 그 해가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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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어를 하지 않는다면 연(蓮)이라도 심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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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제의한 것은 작년 봄이다. 양어를 하려면 힘이 많이 든다는 말에 별 흥미가 다 ― 달아났는지 여가가 있으면서도 아 ― 무도 반대하지 않았었다. 오빠와 H의 성미를 잘 아는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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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를 쓰고 연을 심어 놓으면 또 양어를 한다고 야단을 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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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의심은 하면서도 좋아라고 당장에 연뿌리를 사다가 심었다. 심은 지 두어 달 후 작년 이른 여름 하루, 아침에는 ○○ 안개 고리같이 잘게 잘게 잡히는 물결 위에 단 한 개가 동동 떠 있었다. 그 이튿날은 또 두 개가 떠올랐다. 그것이 연잎사귀였던 것이다. 나는 이것을 보고 어떻게 기뻤던지 ‘옳다. 기막히게 어여쁜 연당(蓮塘)을 만들리라’고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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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는 농원에서 일하는 일꾼들이 쉬는 여가를 타서 남몰래 살짝 불러 가지고 지반(池畔)을 미화(美化)시키려고 노력하였다. 높은 언덕에는 사구라를 심고 평평한 곳에는 칡(藤)도 심고 동편으로 좀 넓은 곳에는 송판으로 간단한 ○취도 만들어 놓고 못의 반 중간까지 다리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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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마치면 농원 식구 전부가 이 못가로 모여들어 한 밤이 깊도록 시원한 바람을 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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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어사(朴文秀[박문수]) 숙종대왕(肅宗大王) 이태조(李太祖) 또는 홍길동(洪吉童) 등 이야기를 끄집어내면 농원지기 일꾼들과 할머니 어머니는 ‘유식한 이야기’라고 무척 기뻐한다. 때에는 H가 만도린으로 양산도나 하면 못가에 사람들은 흥이나 못 살 지경에 이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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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 오늘 저녁의 이야기와 노래 값은 내일 저쪽 못둑을 조금 고쳐주면 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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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 일꾼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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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 이 못은 우리의 극락인데 고치고 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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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못일이라면 기쁘게 거들어 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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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일꾼들을 저렇게 꼬여 넘기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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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어머니는 돈 들이지 않고 못이 그만치 어울리게 한 내 수단에 고소하는 것이었으나 밤마다 못가에 노는 재미에 나를 꾸중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처음 양어지를 만들려고 못을 팠던 것은 모두 잊어버린 모양인지 누구든지 ‘연당’이라고 이 못을 이름 짓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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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 더위의 날이다. 아무 선문(先聞)도 없이 오빠와 H가 어망(魚網)을 둘러메고 나타났다. 나는 연당에 고기를 잡아넣어 양어지를 만들지 않으려나…… 하는 불안이 갑자기 솟아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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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잡이를 가느니 낮잠이나 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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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모르는 척 시침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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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당에 고기가 없어 말이 된담. 붕어도 놀고 학 두루미도 놀고 해야 참으로 연당이 값이 오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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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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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나는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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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 그러지 말고 이 ‘바께스’들고 따라가. 그러면 연당을 양어지로 만들지 않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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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와 H는 나보다 한 손 위였다. 내 맘속을 환희 들여다보고 있는데 나는 더 분이 났다. 그러나 좌우간 우선 고기 잡는 재미나 보아놓고 할 단판이라고 생각하고 바께스를 들고 따라나섰다. 나는 고기 잡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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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고이 적삼을 걷어 부치고 대패밥 모자에 수건을 질끈 동여 뒤통수에 떡 붙이고 어망을 둘러메고 신들번들 웃으면서 걸어가는 뒷모양들을 바라보며 ‘어디 보자 죽어도 양어는 못하리라!’하는 생각으로 일부러 ‘바께스’를 덜거덕거리며 따라가는 것이었다. 오빠와 H는 내가 애가 타하는 것을 일부러 모른 척 하고 힐끔힐끔 돌○보며 서로 꾹꾹 찔러가며 웃곤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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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강가에 가도 나는 고기 잡는 재미는 간 데 없고 도로히 고기가 잡힐까봐 방정만 떠는 것이었다. 그러면 H는 수건으로 나의 두 손을 매어 강가 버드나무 둥치에 매어두고 어망을 치는 것이었다. 그 뿐이 아니라 미운 강아지 바람마지에 앉아 똥눈다는 격으로 집에 돌아올 때는 다른 어부들에게 고기를 더 사 보태 가지고 오는 것이었다. 그러면 나는 바께스를 들고 달아나서는 부엌으로 숨어 버리면 오빠는 밖에서 울려대고 기운 센 H는 달려와서 바께스를 빼앗아 못으로 달아나는 것이었다. 나는 뒤미쳐 따르다가 못해 그대로 주저앉아 소리를 질러 우는 형용을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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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에도 여음이 오니 나의 사랑하는 연당에는 연잎사귀가 가득 떠올랐다. 나는 작년 일이 생각나서 남 모르게 낚시대를 사다가 서투른 솜씨로 연잎 사이로 사라져 가는 물결 위에 던졌다. 물론 나의 낚시 끝에 물려 오를 멍청이 고기는 한 마리도 없었다. 이러는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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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고기는 왜 낚아? 여자는 본래 낚시질하는 것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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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그만 이 낚시대도 빼앗아 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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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무너져도 이것은 내 연당이라오. 얼마나 애써 만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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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금년에 또 시달릴 것을 생각하며 미소하였다. 그러나 밤이 되면 금년도 역시 우리 농원 식구에게는 이 못가가 유일의 낙경(樂境)이 되는 것이었다. 나는 일꾼들에게 들려줄 이야기거리를 생각하며 연잎사귀를 스쳐오는 귀염상스런 바람줄기를 옷 속으로 잡아넣고 찰싹하고 뛰어 오르는 고기 소리를 들었다. 오빠와 H는 금년도 의연히 이 못을 ‘연당’이라고 부르는 것이 ‘양어지 될 날은 아직 멀었다.’하는 느낌을 주어 혼자 기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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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가정》(1934.7.)
【원문】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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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당 [제목]
 
  백신애(白信愛) [저자]
 
  # 신가정 [출처]
 
  1934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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