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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도류(兩刀流)의 도량(道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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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7
김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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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도류(兩刀流)의 도량(道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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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 쳐놓고 내 작품처럼 비평하기 쉬운 것을 없을 것이다. 내가 쓰는 평론이라는 것을 읽는 이는 그 평론이라는 것이 대부분 문학적 주장이나 창작상 고백인 때문에 작품을 보는 데 여러 가지로 참고가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주장하는 것과 떠나서 내가 작품을 제작한 적은 거의 한 번도 없었고 또 나의 주장이나 고백을 가지고 설명하지 못할 작품을 써 본 적도 퍽 드물다. 그러므로 나의 주장하는 바가 어느 정도로 작품으로서 구상화되었는가 하면 부면(部面)을 검토하는 것도 비평가로서는 하나의 일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요, 대체 그 주장하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로 현대문학의 중심 문제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나의 실험된 작품의 성과를 보면서 분석해 보는 것도 비평가들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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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우인(友人) 비평가들이나 평론가들이 이상과 같은 관점에서 나의 작품을 검토하는 것을 나는 흔히 보아왔고 또 그렇게 해주는 것이 나 자신의 본의에도 적합하다는 것이 미상불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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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사정은 작자인 나에게는 반갑기도 한 일이나 섭섭키도 할 일이고 또 이롭기도 하나 해롭기도 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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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무엇보다도 작자의 의도를 바로 포착해 주는 것이 반가운 일이며, 그렇기 때문에 엉뚱한 해석을 붙여서 작자의 생각을 딴 방면으로 계몽해 주는 일이 적은 것이 또한 섭섭한 일이다. 나의 작품을 보는 이나 이야기하는 이는 누구나 한 번은 그것을 고발문학론과 장편소설 개조론에 비추어 생각하려고 한다. 대체로 이상과 같은 두 주장과 전연 무관한 입장에서 작품을 제작한 경우가 드문 나로서는 평론가들이 그러한 태도를 취해주는 것이 대단히 반가웁다. 그러나 대체로 씨 등이 장점이나 단처(短處)나를 지적할 때에, 너무도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바와 유사한 것이 일방으론 몹시 섭섭하다. 딴 각도에서 해석을 붙여주고 판단을 내려주는 비평이야말로, 때로 엉뚱하게 오평하는 수도 있지만, 그러나 현명한 작가에겐 항상 계시와 계몽을 주는 법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좀처럼 이러한 대우를 받아보기 곤란한 나는 섭섭함을 금할 수가 없다. 이것을 공리적으로 따지자면, 과대평가를 받을 일면의 두려움이 있고 또 작품을 여지없이 유린(蹂躪) 당할 손실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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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이나 비평을 하는 한편, 작품도 쓰는, 이른바 ‘양도류(兩刀流)’의 곤란한 이해타산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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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이상의 말한 바로써도 짐작하겠지만 나는 나의 작품을 일종의 양도류의 실험적인 도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 작품 한 작품으로선 완벽을 기한 것이 없고 그러므로 완성품이 하나도 없다. 재조(才操)도 역량도 없으면서 완벽을 기하려고 노력한댔자 공연한 수고일 뿐 아니라 도 나와 같은 연소한 작가의 벌써부터 가히 취할 바 기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까 한 번 발표한 것을 개작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개작할 시간에 새로운 시험을 하자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그러므로 나의 창작집 같은 데 수록된 단편을 보면 지금 내 눈으로 보아도 창피한 것이 수두룩하다. 그러나 책으로 상재하면서도 하나의 주필(朱筆)을 가하지 아니하였다. 혹은 이것을 비양심적이라고 보는 이도 있는 모양이지만 나는 그렇게 할 필요를 인정치 않기 때문에 남이 웃어도 태연할 수 있다. 항상 나는 이미 쓴 것을 토대로 새 세계에 나가고 싶고 그렇게 하는 데서만 진전이 있을 줄 생각한다. 인제 벌써 완성품을 바랄 연치(年齒)가 아닌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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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고 보니 지금 새삼스레 나의 작품을 자기 스스로 비평하고 앉았다는 것도 싱거운 일로 되어버렸다. 주장이나 평론을 보아, 그 의도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요, 작품이 되어졌으매 그 의도가 어느 정도로 문학이 될 수 있었는가를 알 수 있었을 것이며 동시에 두 방면의 성과가 이미 작자의 손을 떠나 객관적 재료가 되어 있은 즉 그것을 내가 다시 가(可)타부(否)타함이 한갓 쑥스럽기만 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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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금후의 나의 작품이 언제나 이것들의 위에 설 것이라는 것만은 명언해 둘 수 있는 것으로 역시 금후도 나의 문학하는 태도는 이상과 같으리라는 것을 밝혀 둘 신념을 잃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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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편집자의 요구가 작품을 예거하여 각각 단평을 가해달라는 것에 있었으니 기고가로 앉아 그 청을 거역할 수 없어서, 지금 대충 대충 소위 단평이라는 것을 가해 보겠는데 평론가가 하지 않은 부면만을 중심으로 기록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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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의 거개는 『소년행』이란 창작집에 수록되어 있는데 이것을 나는 세 뭉치로 갈라서 생각하기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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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매」「소년행」「누나의 사건」「무자리」「철령까지」 이상의 작품은 주로 나의 ‘모랄’론과 관련을 시키고 싶다. 이 창작집에 수록된 것으론 비교적 창조적 문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으로 「무자리」를 그 중 결함이 적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소년을 주인공으로 삼고 기생을 누이로 설정한 처음 세 작품은 리얼리즘 문학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관념적인 주관이 섞인 것으로 기생 같은 인물은 픽션이 너무 유약(柔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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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처를 때리고」「춤추는 남편」「제퇴선(祭退膳)」은 소위 자기고발의 문학에 속할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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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미담」「가애자(可愛者)」는 그냥 고발문학에 넣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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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은 오히려 풍자문학에 근사하나 이 (2)나 (3)은 지금으로 보면 창조적 한계가 명백히 드러난 고발문학의 정체다. 그 진상과 한계성이 이미 명백하여졌고 최재서 군이‘고발문학의 한계성’에 대해서 계시에 찬 비평을 하겠노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군의 평론이 나오기를 고대(苦待)하고 있다. 이미 고발문학에서 발을 뽑은 지 얼마 되는 나로서 최군과 같은 논점에서 새로이 검토되는 것은 작자에게 있어 퍽 유익외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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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 장편소설로 「대하」가 하나 있는데 이에 대하여는 본지 전월호에 창작 노트까지 발표하였으므로 나의 장편개조론과 아울러 그것을 대비해주면 그만이겠고 제씨의 고평을 받아 그 결점 같은 것도 이미 명백해졌는데, 새로이 결점으로 내가 들고 싶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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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심리의 현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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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격창조의 유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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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풍속 현상의 공식적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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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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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후는 「대하」의 길다란 속편이 나의 창작의 중심이 될 것이요 기타의 단편 신문소설, 중편 등은 역시 일종의 테마나 재료나 기술의 실험장소로 생각하고 일하려 한다. 경향이나 기법이 전연 특이한 것들이 생겨날 지도 모르겠으나 이러한 개별적인 실험은 「대하」의 속편에서 종합되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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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 1939년 7월호, ‘내 작품을 해부함’ 특집)
【원문】양도류(兩刀流)의 도량(道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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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천(金南天) [저자]
 
  조광(朝光) [출처]
 
  1939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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