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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추문단소설평(新秋文壇小說評) ◈
해설   본문  
1925.10
현진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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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추문단소설평[新秋文壇小說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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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評)을 써 보기는 이번이 난생처음이다. 합평회에 몇 번 참예를 해서 말로는 더러 이러니 저러니 해 보았지만 글로 쓰자니 매우 벅찬 노릇이다 본래 평(評)을 그리 즐기지 않는 나이라 이번에도 될 수만 있으면 피하려고 하였으되 방(方)․최(崔) 양군이 그예 내 처녀평을 끌어 내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을 듯이 성화를 피우기 때문에 총총히 이 붓을 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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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는 그만 두고 9월호 잡지에 완결된 작품만 골라서 몇 마디씩 적어보자. 『개벽(開闢)』이 정간(停刊)을 당하고 『생장(生長)』 또한 나오지 않았으니 문예 실은 잡지라야 『조선문단(朝鮮文壇)』과 『여명(黎明)』이 있을 따름이다. 아모리 쓸쓸한 가을 바람이 부는 이 때지만 우리 문단은 때맞추어 너무나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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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레방아」─도향(稻香) 작─(『조선문단(朝鮮文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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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미있는 작품이다. 짤막한 단편이건만 장면과 정경(情景)이 얼른얼른 바꾸어지며 마치 활동사진을 보는 듯한 흥미를 자아낸다. 물레방앗간 속에서 막실(幕室)지기의 요염한 안해와 주인 영감의 “이삼십 분 후에 다시 나올” 짓, 쫓겨나가는 막실지기 부부싸움, 취해 돌아온 본부(本夫), 본부(本夫)와 간부(間夫)의 격투, 포박, 철창 생활, 출옥, 비수를 품고 지난날의 안해를 업어내어 같이 달아나자고 위협강청(威脅强請), 끝끝내 말을 아니 듣는 안해를 척살(刺殺), 자살(自殺)―, 이만한 골자이면 여러 백혈(百頁)의 장편이라도 읽을 수 있거든, 그 위에 여주인공에겐 막실지기를 얻기 전에 또 전남편이 있었고, 그 전남편 역시 달아난 그를 칼로 찔러서 허리에 흉터를 남겼다는 과거의 사실까지 숨어 있음에랴. 이 수다한 사실을 십혈(十頁) 남짓한 단편속에 비벼 넣은 작자의 수완은 감탄할 만하다. 그러나 여기 이 작품의 병통도 생겼나니 건정건정하고 지나간 흔적과 군데군데 벗어난 파탄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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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로 여주인공은 무슨 까닭으로 젊은 제 남편을 버리고 늙은 주인 영감을 따라갔을까? 그것은 물론 막실지기 안해로 고생살이를 하는 것보담 부잣집 마마님으로 호화로운 생활을 하겠다는 허영심 때문이다. 아모리 작자가 여주인공이 ‘창부형(娼婦型)’ 인 것을 역설하였다 할지라도 다른 사내 다 버리고 하필 팔모로 뜯어보아도 재산밖에 더 볼 것 없는 주인 영감에게 쏠린 이유는 되지 않을 것이다. 여기 그는 의식(衣食)밖에 모르는 천박한 여성이 되고 만다. 그런데 나종에 본남편이 찾아와서 칼을 들이대며 같이 달아나자고 조를 때에 그는 무에라고 거절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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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도 남의 마음을 알지요? 임자와 나와 이년 전에 이 곳으로 도망해 올 적에도 전남편이 나를 죽이겠다고 칼로 허리를 찔러 그 흠이 있는 것을 날마다 밤에 당신이 어루만지었지요? 내 그까짓 칼쯤을 무서워서 나 하고 싶은 것을 못 한단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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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옷과 맛난 음식만 아는 듯하던 그가 별안간에 녹록치 않은 요부성(妖婦性) 독부성(毒婦性)을 드러내고 말았다. 예까지 읽고 나면 ‘그러면 주인 영감의 말을 들은 것은 허영심 때문이 아니었던가?’ 하는 의문이 일어난다. 이 의문은 어데서 오는 것이냐. 작자는 처음부터 실상은 그의 요부성(妖婦性)을 고조하려 하였건만 주인 영감을 따라간 그의 행위가 요부성(妖婦性)의 발로보담도 천착한 허영심의 발로로 보도록 그려 놓은 탓이다. 만일 그로 하여금 주인 영감에게 가지 않고 차라리 다른 사내에게로 달아나게 하였던들 이런 흠절을 기울 수 있는 동시에 효과도 많았을 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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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계집은 주인 영감과 마마님 노릇을 할 줄로 약속을 하고 사내는 퇴거 명령을 받은 뒤에 부부끼리 싸우는 심리적 경로가 어째 어색하다. 예정대로 제가 싫어하는 사내는 쫓겨가게 되고 저는 호강을 하게 되었으니 보통 인정으로 해석하더라도 양심에 부끄럽기도 할 것이요 미우나 고우나 이년동안 동거하던 사내이거든 측은한 생각도 날 것이다. 그런데 포달스럽게 바가지를 긁는다는 것은 생각해 볼 일이다. 차라리 속으로는 기뻐서 못 견디면서도 겉으로 눈물 방울이나 흘리며 잔상히 남편을 위로하는 편이 도리어 요부의 면목이 약여(躍如)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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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장황히 늘어놓았다. 어서 결론을 짓고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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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주제는 물론 계급사상도 아니요 또 향토소설로는 지방색이 부족하니 사내의 추근추근한 사랑을 그린 것이라 할 수밖에 없다. 밝은 달 적막한 촌락의 공기를 흔드는 물레방아 소리와 함께 로맨틱한 서사시가 생겨난다. 참혹한 현실이 있는 듯하지마는 그것은 ‘현실의 옷을 입은 낭만’ 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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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작자의 취재 범위는 넓었다 하겠으나「벙어리 삼룡이」와 함께 흥미중심으로 기울어지는 싹이 보이는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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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편지」─방인근(方仁根)─(『조선문단(朝鮮文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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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오는 여름날 저녁 흰 세루 바지 회색 세루 저구리 양복을 말쑥하게 차린 청년이 가느다란 단장을 휘휘 내어 두르며 연분홍 속옷에 받혀서 위아래로 하얀 모시를 감은 여학생과 어깨를 겨누고 걸어간다. 그들의 발길에는 포근포근한 풀들이 사르락사르락 그윽한 소리를 내며 두 입술에는 여리고 애띤 사랑의 속살거림이 새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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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내가 이 작자의 작품(「살인 이후(殺人 以後)」)을 대할 적마다 느끼는 정서이다. 매력도 있다. 신선미도 있다. 그러나 풋사랑이 해뜩해뜩 오래 가지 못하는 모양으로 그의 작품에도 얼핏하면 파탄이 생기며 사랑하는 이의 얼굴빛과 같이 군데군데 빛도 나려니와 군데군데 흐려지는 것이 병통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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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지막 편지」도 이 예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연애 키스 정욕의 충동과 제어. 어느 결에 계집의 마음은 변하여 딴 사내에게 보내는 편지를 품고 있다가 안고 비비는 통에 빠트리고 들키고 서로 갈라서고 마는 것이다. 거기는 뜨거운 번민도 없고 눈물겨운 애조도 없다. 요새 청년 남녀가 흔히 겪을 듯한 ‘젋은 날’ 의 일 삽화(揷話)에 불과하다. 이왕 그렇거든 섭섭하나마 그대로 고만둘 일이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않는 작자는 남주인공으로 하여금 거짓을 없애고 향토 생활을 해야 된다는 설법(說法)을 늘어 놓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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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단장을 휘휘 내어 두르면서 여학생과 사랑을 속살거리던 청년이 제 애인을 잃었다고 졸지에 목사님이 되어 버린 느낌이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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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화(孵化)─송순일(宋順溢)─(『조선문단(朝鮮文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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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자(選者)의 평이 있으니 굳이 여러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다만 눈에 번쩍 띄일 만큼 그 솜씨가 익숙하다. 당선 소설로는 지나치게 출중한 작품이란 것만 말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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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棄兒)」─서해(曙海)─(『여명(黎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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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다반(恒茶飯) 있는 사실이다. 극히 평범한 사실이다. 생활난에 부대끼는 아비가 어린 자식의 밥 달란 소리를 듣다가 못하여 “커다란 대문이 호기롭게 선” 집 문간에 갖다 버리는 경로를 그렸을 뿐이다. 이 작고도 큰 비극은 우리가 이(齒)에 신물이 나리만큼 듣기도 하였고 또 거의 날마다 신문지상 사회면 한 구석에 두어 줄씩 끼인 것을 보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 코앞에서 사랑하는 제 자식을 버리고 간다 할지라도 마비된 우리 신경은 그리 자극도 받지 않을 것이요 감동도 되지 않을 것이다. 곁에서 ‘생활난(生活難)’ 으로 ‘기아(棄兒)’ 가 얼마나 침통하고 비참한 것임을 장황히 설명한다 하더래도 우리는 “흥, 그래?” 하고 코대답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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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이 참신하고 기발하면 사실 그것만으로도 얼마쯤 독자를 끌 수 있다. 그러나 중언부언한 바와 같이 이다지도 심상한 사실을 가지고 독자를 잡아당긴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노릇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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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작품을 보라! 얼마나 우리의 가슴을 치게 하며 머리를 뒤흔들어 놓는가! 그 간소하고도 강렬한 표현은 이 평범하고도 단순한 사실에 대하여 감았던 우리의 눈을 호동그렇게 떼지 않고는 말지 않는다. “전신에 피가 말라서 백골이 갈리는” 듯한 불쌍한 아이의 소리는 길이길이 우리의 귀에서 사라지지 않으리라. 네 살이나 먹도록 기른 자식을 버리고 나오자니 “디디는 자욱자욱에” 버린 아이의 “눈물이 괴듯 해서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 는불쌍한 아비의 꼴도 언제든지 우리 눈앞에서 어른어른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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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적으로 말하면 제일장에 열렬한 인도주의자인 ‘최순호’ 부처(夫妻)가 버린 아이에 대한 감정의 움직임과 그 때의 광경이 더러 어색하다. 그러나 제이장(第二章)으로 접어들자 “저물어 가는 황혼빛” 움속 생활이 전개되면서 작자의 붓끝엔 십배의 광채가 더한 듯싶었다. ‘이 작자가 아니면!’ 하는 대문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맨 끝장 버린 자식을 보려고 ‘최순호’ 의 집에 찾아갔을 때에 좀 더 자식에 대한 열애가 강조되었더면 싶다. 이 작품의 클라이맥스를 너무 쉽사리 끝맺고 만 것 같다. “난리 만난 듯” 한 주인부처(主人夫妻)를 남겨 놓고 안으로 뛰어 들어간 뒤에 비만 “출출 쏟아지고” 사방이 고요해서는 조금 심심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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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박(漂迫)」─장적우(張赤宇)─ (『여명(黎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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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순이가 이춘(李春)의 두 번째 정찰(情札)을 받고 그 답장을 쓰려 할 때 의 마음을 작자는 이렇게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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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문적(美文的)이요 열정적(熱情的)이라야 될 것인데 수식사(修飾辭)를 어떻게 현란하게 늘어놓아야 할까 하여 이마에 손을 괴고 가슴을 태우며 펜에 찍었던 잉크를 몇 번이나 그대로 버리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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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절은 곧 작자가 이 작품을 쓸 때의 심경이 아닐까. 그리고 또 영순이와 같이 “자기 마음에 곱다 싶은 말을 모다 끌어내” 인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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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작자의 그 희망은 어느 정도까지 만족을 얻었을 줄 안다. 그 만큼 그 문장은 미문적(美文的)이다. 수사에 고심한 자최도 역력히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다만 그것뿐이다. 전편을 통하여 생동하는 정경도 없고 핍진한 장면도 없다. 작자의 기름걸레 치듯 하는 표면적 설명으로 미끈미끈하게 지나갔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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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사이 흔히 신문지상에 나타나는 소위 ‘로맨스’ 를 문득 생각하였다. 그렇다. 이 작품은 소설이라느니보담 재미있는 ‘로맨스’ 에 매우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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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큼 세련된 문장과 유창한 필치로 이에 그치고 만 것을 작자를 위하여 애닯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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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평다사(妄評多謝). 9월 16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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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문단』, 192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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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01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