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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적과 풍경 ◈
《카탈로그》   본문  
1955.10.15
박인환
1
서적과 풍경
 
 
2
서적은 황폐한 인간의 풍경에 광채를 띄웠다.
3
서적은 행복과 자유와 어떤 지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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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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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살육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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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해된 토지에서는 인간이 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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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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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는 역사를 이야기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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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사회가 성장하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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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는 기술과 행렬의 혼란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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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퍼덕이는 여러 페이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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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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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불란서 공화국의 수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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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산업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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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루즈벨트 씨의 미소와 아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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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기니아와 오키나와를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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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함 미주리호에 이르는 인류의 과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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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가혹한 회상을 동반하며 나타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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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옛날 위대한 반항을 기도하였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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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은 백주(白晝)의 장미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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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연하고도 아름다운 풍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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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에 그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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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에서 돌아온 앙드레 지드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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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진리와 존엄에 빛나는 얼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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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인간의 풍경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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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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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영원한 ‘풍경’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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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옹호하자고 말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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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전쟁이 치열의 고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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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하였을 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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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멸과 연옥의 풍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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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시하며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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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의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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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피로한 몸으로 백설을 밟고 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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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암흑의 세대를 휩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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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전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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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데 있는가를 탐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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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인간의 힘으로 인간인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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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봉착된 인간의 최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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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의 심연에서 구출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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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이방인 자유의 용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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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한촌 한국에서 죽는다.
43
스코틀랜드에서 애인과 작별한 R. 지미 군
44
잔 다르크의 전기를 쓴 페르디난드 씨
45
태평양의 밀림과 여러 호소(湖沼)의 질병과 싸우고
46
바타안과 코레히도르의 준열의 신화를
47
자랑하던 톰 미첨 군
48
이들은 한 사람이 아니다. 신의 제단에서
49
인류만의 과감한 행동과 분노로
50
사랑도 기도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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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고지 또는 무명계곡에서 죽었다.
 
52
나는 눈을 감는다
53
평화롭던 날 나의 서재에 군집했던
54
서적의 이름을 외운다
55
한 권 한 권이
56
인간처럼 개성이 있었고
57
죽어간 병사처럼 나에게 눈물과
58
불멸의 정신을 알려준 무수한 서적의 이름을……
59
이들은 모이면 인간이 살던
60
원야(原野)와 산과 바다와 구름과 같은
61
인상의 풍경을 내 마음에 투영해 주는 것이다.
 
62
지금 싸움은 지속된다.
63
서적은 불타오른다.
64
그러나 서적과 인상의 풍경이여
65
너의 구원(久遠)한 이야기와 표정은 너만의 것이 아니다.
66
F. 루즈벨트 씨가 죽고
67
더글러스 맥아더가 육지에 오를 때
68
정의의 불을 토하던
69
여러 함정과 기총과 태평양의 파도는 잔잔하였다.
70
이러한 시간과 역사는
71
또 다시 자유 인간이 참으로 보장될 때
72
반복될 것이다.
73
비참한 인류의
74
새로운 미주리호에의 과정이여
75
나의 서적과 풍경은
76
내 생명을 건 싸움 속에 있다.
【원문】서적과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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