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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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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
조명희
1
새 거지
 
 
2
넓은 들에 그득히 담겼던 봄볕은 어느덧 사라지고, 어둠의 뚜껑같은 검은 하늘이 윤곽도 잘 안 보이는데 산 위에 얹혀 있으매, 그 뚜껑의 깨어진 작은 구멍 같은 초나흘 반달이 서쪽에 비껴 걸려 있다. 달이라고는 이름 뿐이 요, 그믐밤보다도 좀 나을는지 말는지 할 땅거미 들 이른 저녁이었다. 꽃필 무렵이다마는 아직도 제법 쌀쌀한 바람이 늦게 돌아오는 마을 장꾼들의 홑두루마기(이 홑두루마기는 겨울에도 입던 것이다.) 자락 속으로 기어든다.
 
3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으나 그 가운데에는 동저고리 바람에 빈지게 지고 팔장낀 사람도 있을 것이요, 좁쌀자루 같은 것을 어깨에 둘러멘 사람도 있을 것이요, 또는 북어 마리나 성냥통 같은 것을 사서 든 사람도 있을 것이다.
 
4
굼실굼실하는 거무스름한 형상들이 장거리로 드나드는 고갯길로 좇아 마을을 향하고 오며 지껄댄다.
 
5
“세상의 인심이 참 살얼음판이야. 눈 없으면 코 베어먹을 세상이지……. 이렇게 지악만 해 가다가는 끝판이 어찌 될는고……?”
 
6
“끝판이? 끝도 나는 때가 있겠지……. 창이 나서 뚫어지거나 무슨 요정이 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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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내 말좀 들어보게나. 오늘 내 하도 기막힌 꼴을 다 보았으니께.”
 
8
“무슨 기막힌 꼴을?”
 
9
“아따 저 장거리 이 주사네 말일세. 저 지나간 달 봄나무 시작하기 전에 먹을 것도 없고 하기에, 저 학선이를 보세우고 돈 쉰 냥을 한 달 기한하고 두 푼 장변에다 얻어 오지를 않았나. 그랬다가 지난 그믐에 나무 판 돈으로 변전 닷 냥을 해다 갚고 표야 받으나마 상관 없을 줄 알고 마음 탁 놓고 내려왔더니 일전에 별안간 사람을 보내서 부르데 그려. 웬 영문을 몰라서 가봤더니 다짜고짜로 하는 말이 너 왜 돈도 안 갚고 변리도 아니 가져 오느냐고 생떼를 쓰데 그려.”
 
10
“그래서…….”
 
11
“그래, 기가 탁 막히어 말이 안 나오다가 지난 그믐에 왜 변리 가져오지 않았으냐고 하니께, 이놈 네가 법치가 없으니께 그런 거짓말을 엉뚱하게 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며 그러면 돈 준 영수표를 내어 놓으라 하며 왼통 콩팔 칠팔하지 않던가, 나 역시 골이 슬며시 나데 그려, 그래 주거니 받거니 하고 서로 악다구니를 할 즈음에 지나가던 정 순사가 들어와서 듣고 있더니만, 관리는 그런 일에도 상관하는지, 남의 돈을 쓰고 왜 안 갚느냐고 딱딱 을러대며 이 주사 편을 들어서 말하지 않겠나. 나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나리가 이런 일에도 상관하느냐고 했더니, 아 그만 뺨을 냅다 때리겠지. 그 바람에 이 주사란 작자는 기세가 등등하여지며 눈을 부리대고 토막을 들먹거리며 당장에 돈을 가져 와야 망정이지 그렇지 않으면 주재소 구경을 시킨다고 그러데 그려. 아무리 분한 생각이 나지마는 촌놈이 수그러지지 않으면 별 수 있나. 하는 수 없이 오늘장에는 꼭 해다 갚겠다고 다짐두고 왔다가…….”
 
12
“그 정 순사는 무슨 상관이여?”
 
13
“아따 이 사람, 너 순사도 있는 놈들 편에 붙어 서서 이런 가난뱅이 촌놈을 긁어먹는 판이 아닌가? 그래 좌우간에 어찌할 수가 있나. 오늘 가서 집문서를 대신 들여놓고 오네 그려. 리 변전을 다시 둘러메고, 변은 거듭 무는 셈이고…… 참 기가 막혀……. 없는 놈은 이렇게 죽어 지내야 옳단 말인가.”
 
14
“그러니께 없는 놈은 점점 죽을 고비로만 들어간다네. 막다른 골목으로 만…….”
 
15
“막다른 골목에서는 돌쳐 선 개도 범보다 무섭다고…… 네기를 할…….”
 
16
“세상이 다 되어 가느라고 그런지, 이 동네만 한대도 걱정이여. 변이여, 변! 예전에는 그렇게 오붓하고 탐탁하던 동네가 아주 망하게 되어 가니, 살수가 없어서 집 문서가 반수 이상이나 빚으로 남의 손에 가 들어 있지를 않는가, 해마다 서간돈지 어딘지로 빠져 나가는 사람들이 늘지를 않나……, 모두 변이여, 변!…… 또 무슨 딴 변이 생길는지 누가 아는가?”
 
17
이 사람들은 이같이 주거니 받거니 지껄이며 마을 안길로 접어들어 섰다.
 
18
“어, 저 장돌네 집에 불이 다 켜졌네 그려, 인제 왔는가?”
 
19
“일전에 왔다네.…… 우선 그것만 보게. 그 이 주사란 작자가 제 일가붙 이인들 대단히 알겠나. 얼마 동안 그 집에 가서 얻어먹고 있다가 필경에는 내밀려서 쫓겨왔다네, 아무리 병신이요 홀로 된 제 일가 아낙네기로소니 그같이 모으기에만 악독한 놈이 돌아다보겠나.”
 
20
“에이 ─ 흉악한 놈, 그러니 어린 것들은 있고 어찌 산단 말인가?”
 
21
“어찌 살다니…… 죽어지지만 않는다면 장사지.”
 
22
이 사람들은 어느덧 장돌네 집 옆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 길 옆에는 그 이웃집에서 두엄을 태우느라고 모닥불을 놓았다. 그 모닥불 옆에는 마을 아이 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불을 쪼이고 있다.
 
23
“이 아이들이 봄불을 다 쪼이고 있나?”
 
24
하고 지나가던 장꾼이 말을 집어던지자, 그 아이들 총중에서 어떤 아이가,
 
25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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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지르고 쫓아 내달려 따라가며,
 
27
“왜 인자 와? 아버지 엿 사왔지.”
 
28
한다.
 
29
이 소리를 들은 여러 아이는 모두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려 부러운듯이 바라다 보고 있다.
 
30
“난 우리 아버지가 아까 장에서 왜떡 사다 준 걸.”
 
31
한 아이의 자랑하는 말이다.
 
32
“난 아까 우리 아버지가 밤 사다 준 걸, 아주…….”
 
33
아주 참 고갯짓을 하여 가며 변덕맞게 자랑하는 아이의 말이다.
 
34
“난 우리 아저씨가 집에 엿하고 왜떡하고 모두 사다줬다.”
 
35
이 아이는 남의 자랑에 지지 않으려고 뽐내는 말이다.
 
36
이 틈에 끼어 앉았던 장돌이는 부러운 듯이 이 아이 저 아이 얼굴만 말 나오는 대로 번갈아 보고 있었다. 두 손을 옆에 찌르고 쭈그리고 앉은 그 아이 ─ 코 밑에는 눈석임물이 생길을 낸 가장 작은 실개천 모양으로 뚜깨진 콧물 위에 새 콧물이 질 ─ 흘러내리는 얼굴이 그 가운데에도 제일 궁상이 드러나 보인다. 또 새집머리를 하여 가지고…….
 
37
“지난 설에 난 우리 아버지가 산자하고 밤하고 대추하고 사왔다는구먼……”
 
38
한 아이의 철 늦은 자랑이다.
 
39
“누가 지나간 것을 다 치남.”
 
40
한 아이의 빈정대는 말대처이다. 이 말에 아이들도 뒤따라,
 
41
“누가 그걸 다 치남, 에헤 그것 참 우습다.”
 
42
“에헤 그것 참 우습다.”
 
43
이럴 즈음에 “장돌아”하고 수레목진 소리로 부르는 소리가 불 반짝거리는 장돌네 집으로부터 울려나온다. 그 목소리는 삶에 지쳐서 목이 쉬기까지 되었다는 듯 하였다. 또한 그 목소리는 이 까부라져가는 마을 전체를 대신 하여 지르는 것도 같았다.
 
44
“응.”
 
45
하고 대답하고 난 장돌이는 두 손을 허리끈 틈에 찌르고 주춤주춤 걸어 저의 집으로 들어갔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저의 어머니는 두 살 먹은 저의 아우를 젖 물리고 앉았고, 그 앞 방 한가운데는 김이 무럭무럭 나는 국과 밥을 얹은 밥상이 놓여 있다. 그의 어머니의 크고도 검은 눈은 들어오는 장돌이를 말없는 가운데 맞아 들이나, 다른 때보다는 무슨 이상한 빛을, 아니 무슨 뜻을 말하는 것 같았다.
 
46
그러나 아무 눈치라고는 알지 못하는 여섯 살째 드는 장돌이는 상으로 달려들어 허겁지겁 퍼먹으며, “어머니, 고깃국일세!”
 
47
“너 먹으라고 사왔다. 고기…….”
 
48
이 말을 하는 그의 어머니는 마치 갓 녹기 시작한 자배기 안의 얼음덩이같이 벌써부터 가슴 안의 자위가 삥 돌며 그득하게 무엇이 꽉 채여 있는 것 같았다.
 
49
“어머니 고깃국 좋아! 좋아!”
 
50
좋아라고 궁둥이까지 들썩거리는 장돌이의 재롱.
 
51
“오냐, 어서 많이 먹어라.”
 
52
이 목소리는 가라앉은 목 속으로 한층 가라앉아 나오는 것 같았다. 번개같이 속으로 지나쳐 가는 생각이,
 
53
‘마지막 먹는 고깃국…… 마지막 먹고나 죽자!’
 
54
아아 녹던 가슴의 얼음물은 인제 터져서 넘으려는 고비에 다달았다.
 
55
‘마지막 먹는……’ 그것을 거듭 생각하기까지는 너무나 과한 일이었다. 방바닥에 엎드려지며 쏟아지는 울음. 무릎 위에 잠자던 어린 아이의 놀란 울음. 옛날 저의 아버지 죽었을 때에 저의 어머니 울음에 혼이 난 장돌이는 까닭은 모르나마 기억은 희미한 그때와 비슷한 놀램을 봐서 따라 우는 울음. 한참 동안 이 여러 울음 소리는 서로 뒤틀려 지붕의 얕은 하늘까지 떠돌았다.
 
56
이윽고 그의 어머니는 벌떡 일어나 앉으며 그의 광대뼈 나온 볼 위로 눈물을 닦으며,
 
57
“이얘, 이얘, 장돌아 울지 말아. 내가 공연히 그랬다. 내 잘못이다…… 어서 국이나 밥하고 더 먹어라 응.”
 
58
“어머니 울지 말어 응.”
 
59
하고 장돌이는 언제 울었느냐는 듯이 다시 상으로 들이 덤비어 국을 퍼먹고 있다. 반쯤 쥔 왼주먹으로 눈물을 이리저리 씻어가며,
 
60
“어머니는 안 먹어? 어서 먹어 응.”
 
61
“어서 먹어 너나, 어머니도 차차…….”
 
62
가뜩이나 쉰 목이 또 다시 말끝이 떨리며 흐려졌다. 그러나 억지로 누르고 나가며 먹기에 골똘한 어린 아들의 꼴을 맥놓고 뜻있게, 힘있게 바라다 보는 그의 눈빛 ─ 뼈끝마다 사무치고 핏줄마다 울려 나오는 걸리고 걸린 마음의 아픈 표정 ─ 그 눈빛이 만일에 강한 광선 ─ 엑스광선 같은 것이었던들, 그 아들의 온몸을 살 속까지 투시할 것 같았다. 여자로서는 꽤 살차게 생긴 그의 성격 ─ 그 성격을 나타내는 그 눈빛 ─ 강한 금속광에는 비길수 없으나 호박이나 유릿빛보다는 더 좀 강한 그 무슨 금속의 빛에다 견줄 만한 그의 눈빛은 아들의 몸으로부터 벽으로 향하였다. 다른 때보다 이상히도 무서워 보이는 그 눈, 매섭게 꼭 다물은 그 입, 그것은 어떤 돌리지 못할 결심을 말하는 것 같다.
 
63
‘별 수 없다. 우리 세 모자 죽어 버리자! 살면 무엇을 하니? 살아 나갈 수나 있니?’
 
64
이런 말이 속으로는 생각에 그치고 겉으로는 표정에 나타날 뿐이다.
 
65
죽음을 앞에 놓은 그는 누구나 다 그렇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나간 날에 겪어오던 이 일 저 일을 필름보다도 명료하게 생각에 떠올라 지나간다. 옛날 자기 부부가 만나던 때 일, 남부럽지 않게 재미있게 또는 알뜰살뜰하게 지내어 오던 일, 30이 가깝도록 아이를 낳지 못해서 남달리 애쓰던 일, 그러다가 반갑게도 첫아들(장돌이)을 낳아서 좋아하던 일, 여기까지 생각하고 장돌이를 쳐다볼 제, 장돌이는 밥숟가락을 든 채 꾸벅꾸벅 졸고 앉아 있다. 그는 부드럽고도 정이 녹는 듯한 목소리로,
 
66
“장돌아, 잘래?……”
 
67
이때같이 그의 아들을 불쌍히 여기고 이때같이 사랑스럽게 생각하기는 자기 일생에도 처음인 듯 싶었다.
 
68
“응.”
 
69
하고 코 대답을 한 장돌이는 옆으로 툭 쓰러지며 코를 골고 잠이 들었다.
 
70
포대기 자락을 집어서 자는 아들을 덮어주고 난 그는 땅이 꺼지게 긴 한숨을 한번 쉬고는, 무릎에 자는 어린 아이를 무의식적으로 손이 가서 뚜적거 리다가 그 손이 다시 올라와 턱을 괴이며 앞벽을 바라다보고, 하던 생각을 잇대어 한다. 지금 이 판에 앉아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쓸데없는 일인 줄 알지마는 어쩐지 그에게 있어서는 반드시 하지 아니치 못할 요구가 되었다.
 
71
세간살이가 어쩐지 점점 꾀이기 시작하던 토지조사 때에는 자기답으로 지어 먹던 것도 빚으로 없어지고 남에게 얻어 하던 논밭도 자꾸 줄어들어가며 살기가 매우 구차하여져서 고생살이를 하던 일, 그 가운데에도 제일 몹시 놀라기는 남의 빚에 졸리어 집행을 당하던 일, 남편이 땅 떨어지고 땅 임자 하고 싸움하고 나서 헌병소에 붙들려가 갇혔다 나오던 일, 그보다도 더한 일은 기미년에 남 따라 만세 부르다가 붙들려가서 징역은 아니 살고 매만 맞고 나오던 일이었다. 그럴 때마다 세상 사정 모르는 이 아낙네의 가슴을 얼마나 뜯었었는지…….
 
72
남편이 빚에 걱정이 되어 겨울의 긴 밤에도 잠도 안 자고 담배만 피우고 앉은 꼴을 볼 때에 그도 또한 잠을 잘 못 자며 따라서 걱정하던 일도 생각 난다. 그럴 때에 자기가 몸을 팔아 남의 집에 가서 종 노릇을 한다 할지라도 빚을 갚아 남편의 걱정을 덜 수가 있다면 그것도 넉넉히 할 듯싶은 생각도 났었다.
 
73
그 모양으로 지내어 가던 가운데, 둘째 아들을 지난 해 이른 봄에 또 낳게 되었다. 순산은 하였지만 산후에 몸조리도 잘 못한 까닭인지 산후에 부종이 나고 딴 병이 더치고 해서 자리에서 일어나지를 못하고 이내 여러 달 동안을 앓아 누웠다. 가난한 살림에 약시세도 변변히 못하고 병 구완도 잘 못하게 되어 병은 점점 더 더치고 나중에는 전간증까지 일어나게 되매, 그럴 때에 그 남편되는 이의 심사와 걱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앓아 누운 자기는 이 처지에 자기가 죽더라도 눈을 감을 수가 없다는 생각이 나서 베개 위에 눈물 적신 적이 한 두 번도 아니었었다.
 
74
봄이 가고 여름이 오고, 또한 가을이 닥쳤다. 그러나 병은 얼른 낫지를 아니하였다. 다른 잔병은 거두워가기 시작하고 종신병이라는 전간증은 영영히 지니게 되고 말았다. 사람이 소같이 튼튼하고 미련한 터가 아닌 담에야, 그같이 된 노력, 된 걱정에 시달리고 지친 끝에 넘어지지 아니할 수가 있으랴. 그 남편은 필경에 병이라는 구덩이에 넘어지고 말았다. 보름이나 앓다가 넘어진 채로 영영 넘어지고 말았다. 자기도 이 남편의 뒤를 따라 죽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바는 아니지마는 어린 아이들을 두고서는 그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악착스러운 경우를 치르면서 자기의 목숨이 죽어지지 않고 부지하여 나간다는 것은 자기 생각에 여편네란 것은 아무리 하여도 사내 목숨보다는 모진 것이라고 스스로 깨닫기도 하였다.
 
75
남편이 지어 놓고 간 농사라고 남의 땅 몇 마지기 지어 놓은 것 ─ 그것으로 초련 먹고 도지하고 빚 갚고 그만이다. 콩말박 팥말박 좁쌀말박 잡곡 남스렁이로 다만 두 식구 죽물을 흘려 넘겨가며 그럭저럭 겨울을 지내고서는, 그야말로 생쥐 입가심할 곡식조차 씨도 없었다. 남의 집에 드난살이라도 하여볼까 하고 여기저기 알아보았으나 아이들도 많이 가졌을 뿐 아니라, 지랄증 가진 병신이라는 탓으로 거절만 당하고 말았다. 악독하기로 유명한 이 주사였지마는 일가라는 관계로 그 집을 찾아가서 온갖 토심을 다 받아가며 얻어 먹고 있다가 한 달 만에 거기서도 필경에는 쫓겨나게 되어 3∼4일 전에야 다 쓰러져 가는 자기 오막살이 집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76
일전에 그 집에서 쫓겨날 제 그 이 주사 내외의 꼴이라니 ─ 이 주사는 눈을 부릅뜨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
 
77
“내 집에 무슨 턱으로 와 있단 말이야. 지금 세상에 일가란 것이 다 무엇 이야. 어서 나가, 어서 나가.”
 
78
하고 야단을 쳤고 암쾡이 같은 이주사댁의 독살스러운 눈치와 말소리,
 
79
“자식새끼를 죽 ─ 데리고 와서 하루 이틀도 과만한데, 한 달 가량씩이나 있을 까닭이 무엇이야. 무엇…….”
 
80
어린 아이를 들쳐업고, 걸리고 하고 그 집문 밖으로 쫓겨 나설 때, 그는 과연 눈물이 앞을 가려 걸음을 걸을 수가 없었다. 오다가 마을 어귀 밖 물방아 홈통에 그만 세 식구가 빠져 죽고 싶은 생각도 났었다. 그러나 내친 걸음에 집에까지 와서 오늘까지 있었던 터이다. 지금도 그 물방아 홈통을 생각하고 있다. 지금 뿐 아니라, 어제도 그저께도 그그저께도 생각하였다. 오던 날 밤엔 잠 한숨도 못자고 밤새도록 생각하였다. 그날 낮에 몹시도 분하고 저주스러운 생각에 물방아 홈통을 생각하였다마는, 그 분한 것을 빼어 놓고라도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보아도 사실 살 길은 없었다.
 
81
‘오냐, 별 수 없다. 죽자!’
 
82
이를 갈아 악물며 결심하였다.
 
83
그러나 그 이튿날에 와서는 결심이 누그러졌다가 다시 채쳐 올리고, 또 이튿날이 오면 채쳐 올린 결심이 다시 누그러지고 하다가, 오늘 와서는 ‘에라 안 되겠다!’ 마지막 결심을 채쳐 올리고 나서는, 있는 독개 그릇 남스 렁이를 헐값으로 이웃집에 팔아서는 이틀을 굶던 끝에 쌀을 팔아서 밥도 짓고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는 어린 것이 걸린다는 생각이 나서 마을 장꾼에게 부탁하여 쇠고기도 사다가 국을 끓인 터이다.
 
84
지금은 한밤이다. 여기까지 생각을 하여 오던 그는 생각도 떠나갈 끝이 없었다. 물방아 홈통이 눈에 번쩍 또 떠올랐다. 아무 것도 모르고 씩씩 자는 어린 것들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85
‘저것들을 잘 키워 살릴 수만 있다면 내 몸뚱이가 갈 데 없어지더라도’
 
86
‘나나 혼자 죽고 저것들은 살려 놓는다며, 아니다. 내가 없으면 저것들이 혼자 살 수가 있나…….’
 
87
‘다른 사람은 거지가 되어서도 살아 나가더라만…… 나도 거지 노릇이나 할까?…….’
 
88
‘아이고 그 고생. 그 토심을 어떻게 받아 가며 살까?…… 저것(장돌이)이 20 될 때까지 한 열댓 해만……. 아니다, 죽는 편이 낫겠다!’
 
89
꼭대기까지 기어 올랐던 마음이 깃발같이 매어달려 다시 흐느적흐느적 거기서 떨어질까? 내려올까?
 
90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두 살 먹은 아이가 깨어 운다. 뚜적거려도 냉큼 잠을 자지 않는다. 끼고 누워서 젖을 물렸다.
 
91
‘어쩔고…….’
 
 
92
사람의 자취가 고요한 정밤중이다.
 
93
초생달도 넘어간 지 오래고, 이 천지는 온전히 어둠의 차지가 되고 말았 다. 손이 곱아질 만큼 찬바람은 ‘가지 마라 가지 마라’ 하듯이 길 앞에서 가로막아 자주 엄습한다. 사립문 밖을 나선 세 개의 인간은 마을 복판길을 걸어 어귀 밖으로 향하고 있다. 등에 업힌 어린 아이는 코를 곤다. 앞에 서서 걷는 장돌이, 두 손을 허리끈 틈에 찌르고 추워서 떨며 타달타달 걷는 장돌이,
 
94
“어머니 어디 가?”
 
95
“오냐, 저기 가자.”
 
96
물방아 홈통에 다다랐다. 미구에 논으로 들로 갈려서 흩어질 물이 아직도 한 개천에 모아 홈통 위의 풍채로부터 폭포같이 쏟아져 내린다. 시꺼먼 방아 홈통물은 끝없이 깊어 보였다. 강물같이 넓어 보이기도 한다. 홈통 둑에 이르러,
 
97
“어머니 무서워! 무서워.”
 
98
장돌의 어린 목소리는 쏴 ─ 하고 주위를 뒤집어 엎어 흔드는 물소리 속으로 희미하게 귓가로 울려 지나간다.
 
99
둑에 섰던 그는 “사람 죽는다”하고 어리석은 짓이나마 마지막으로 세상을 저주하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는, 떨리는 이를 악물며 발발 떨고 있는 장돌이를 번쩍 안아서 용솟음치는 시꺼먼 물 속에 집어처넣었다. ‘으악’ 소리가 난다. 자기도 그 ‘으악!’ 소리를 따라 물로 뛰어들며 ‘으악!’ 소리를 질렀다. 허우적거렸다.
 
100
뒤따라 “으악!” 소리가 난다. 눈을 떠 보았다. 야단스럽게 꾸는 꿈서슬에 두 살 먹은 아이가 놀라 깨었나 보다. 다시 젖을 물리고 뚜적거려 주었다.
 
101
꿈이 너무도 생시같이 역력함을 야릇하다고 생각하였다.
 
102
“참으로 죽으려나 보다!”
 
103
입속말로 지껄이고서는 진저리를 부르르 쳤다.
 
 
104
며칠 뒤에 이 세 인간은 건넛마을에서 또 건넛마을로, 이 집에서 또 저 집으로 이리저리로 돌아다니며,
 
105
“밥 좀 주시유.”
 
106
“쌀 한 움큼만 주시유.”
 
107
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원문】새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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