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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평기준(批評基準)의 객관성(客觀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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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7.10~
이병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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批評基準[비평기준]의 客觀性[객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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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의 現代的[현대적] 動搖[동요]에 대[對]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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批評[비평]한다는 것은 어떠한 對象[대상]을 吟味[음미]하며 分折[분절]하고 理解[이해]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對象[대상]을 是認[시인]하며 肯定[긍정]할 수도 있고 非難[비난]하며 排斥[배척]할 수도 있는 結論[결론]을 가지는 同時[동시]에 나아가서는 對象[대상]의 缺點[결점]을 除去[제거]하며 보담 높은 段階[단계]로 水準[수준]을 끌어올리는 方法[방법]을 指示[지시]하여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對象[대상]의 正確[정확]한 理解[이해] 밑에 非難[비난]과 肯定[긍정]의 態度[태도]를 取[취]하고 나아가서는 方法[방법]의 指示[지시] 라는 親切[친절]을 가지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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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來[원래] 人間[인간]이란 自己[자기]가 接觸[접촉]하는 對象[대상]에 對[대]하여 그것이 正當[정당]한 批評[비평]이든 不當[부당]한 批評[비평]이든 間[간]에 左右間[좌우간] 批評[비평]치 않고는 못 배기는 本能[본능]을 가지었는 것이다. 이러한 人間[인간]의 本能[본능]이 반듯이 批評家[비평가]라는 特定[특정]한 人間[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批評家[비평가]가 存在[존재]할 수 있고 또한 存在[존재]한다는 것은 文化形態[문화형태]가 分業化[분업화]한 오늘날에 있어서 批評能力[비평능력]이 專門的[전문적]으로 發達[발달]하야 技術化[기술화]한 까닭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곳에서 비로소 批評[비평]에 있어서의 띨렛탄트와 專門家[전문가]의 區別[구별]이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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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批評家[비평가]란 읽을 줄 알고 남에게 읽힐 줄 아는 人間[인간]에 不過[불과]하다』고 한 상트·뵈브의 말은 批評家[비평가]의 本性[본성]을 端的[단적]으로 表明[표명]한데 不過[불과]한 것이다. 萬若[만약] 그렇다면 文學批評家[문학비평가]는 政治批評家[정치비평가]나 또는 思想的犯罪[사상적범죄]의 法律批評家[법률비평가]인 裁判官[재판관]과도 틀림이 없게 되는 것이다. 文學批評[문학비평]이 法律的[법률적] 判決[판결]과 같이 主文[주문], 理由[이유][등]을 嚴格[엄격]한 書式[서식]으로 늘어놓는다면 이것은 文學批評[문학비평]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요사이 朝鮮文壇[조선문단]의 一隅[일우]에 나타난 作品[작품]의 採點批評[채점비평]도 그것은 普通學校[보통학교]의 試驗答案[시험답안]이 아닌 創作批評[창작비평]에 있어서는 承認[승인]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옛날 漢文書堂[한문서당]의 古風批評[고풍비평]과도 같이 加上之上[가상지상], 中之上[중지상] 等等[등등]의 簡便[간편]한 方式[방식]의 죽은 批評[비평]보다도 차라리 不遜[불손]과 不親切[불친절]한 點[점]에 있어서 뒤떨어진 原始形[원시형]을 벗어나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哲學思想[철학사상]과 政治思想[정치사상]의 批評家[비평가]는 世界觀[세계관]과 이데오로기 —만을 論議[논의]하는 것과 같이 文學批評[문학비평]이 作品[작품]의 世界觀[세계관]과 이데오로기—만을 問題[문제]로 할 때는 그것이 正當[정당]한 文學批評[문학비평]은 될 수 없는 것이다. 지나간날 이데오로기 —批評[비평]의 專制時代[전제시대]에는 世界觀[세계관]과 이데오로기 —만이 批評[비평]의 唯一[유일]한 基準[기준]이였었다. 이 批評[비평]의 危險[위험]은 오늘날 우리들이 누구나 切實[절실]히 自覺[자각]하고 잇다. 그렇다고 하여서 이데오로기 — 가 없는 文學作品[문학작품]이 創造[창조]될 수 없는 것과 같이 이데오로기—만으로도 作品[작품]은 創造[창조]될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 이데오로기—批評[비평]의 專制[전제]에 反旗[반기]를 들고 칸트的[적] 形式主義[형식주의]와 印象主義[인상주의][등]이 擡頭[대두]되고 있으나 우리는 이데오로기 —批評[비평]의 專制[전제]에 反對[반대]함과 同樣[동양]으로 칸트的[적] 形式主義[형식주의]와 印象主義[인상주의] 批評[비평]에도 反對[반대]하는 民主的[민주적]인 基準[기준]을 세우고, 여기서 이것을 擁護[옹호]하며 政當[정당]한 客觀性[객관성]을 찾어내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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批評[비평]의 論理[논리]는 文學[문학]의 論理[논리]에 依[의]하여 規定[규정]되는 것이다. 文學[문학]은 모든 事物[사물]의 論理關係[논리관계]와 歷史關係[역사관계]를 槪念的[개념적]으로가 아니고 形象的[형상적]으로 表現[표현]한다. 그럼으로 文學[문학]은 槪念的[개념적] 叙述[서술]과 같이 理知[이지]에 呼訴[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感情[감정]과 情緖[정서]에 呼訴[호소]하는 것이다. 그러나 科學的[과학적]인 槪念[개념]이 理知[이지]를 通[통]하여 感情[감정]에로 作用[작용]하는 것과 같이 文學[문학]의 形象性[형상성]은 感情[감정]을 通[통]하여 理知[이지]에 作用[작용]하는 것이다. 여기에 있어서 文學[문학]과 科學[과학] —이 兩者[양자]의 差異[차이]는 다만 程度[정도]의 差異[차이]에 不過[불과]한 것이다. 文學[문학]과 科學[과학]은 다 같이 存在[존재]에 衣[의] 하여 決定[결정]되는 것이며 따라서 서로 區別[구별]을 가진 어떠한 特殊的[특수적]인 內容[내용]을 가진 것은 아니다. 科學[과학]과 文學[문학]의 差異[차이]를 科學[과학]은 抽象的[추상적]이요 文學[문학]은 具體的[구체적]이며 科學[과학]은 槪念[개념] —卽[즉] 論理[논리]의 法則[법칙]에 依[의]한 思惟[사유]요, 文學[문학]은 —形象[형상]에 依[의] 한 思惟[사유]라고 定式化[정식화]하는 것은 이 兩者[양자]를 圖式的[도식적]으로 分離[분리]한 것이요 따라서 本質的[본질적]인 條件[조건]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科學[과학]과 文學[문학]의 內容[내용]은 社會生活[사회생활][혹]은 人間[인간]의 社會的[사회적] 實踐[실천]의 客體[객체]로서의 自然[자연]의 內容[내용]에 依[의]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은 그 形式[형식]에 依[의]하여 서로 다른 것이다. 文學[문학]과 科學[과학]의 形式[형식]의 相違[상위]는 科學[과학]과 政治[정치]와의 形式[형식]의 相違[상위]와 같이 한 개의 이데오로기 —와 다른 한 개의 이데오로기 —와의 相違[상위]와 같이 이 모든 것의 形式[형식]에 固有[고유]한 相異[상이]되는 社會的[사회적] 內容[내용]의 結果[결과]가 아니요 社會生活[사회생활]의 一面[일면]이 文學[문학] —藝術[예술] 속에 다른 一面[일면]은 政治[정치] 속에 或[혹]은 哲學[철학] 속에 完全[완전]히 開示[개시]되어 있는 것과 같은 生活[생활]의 多樣性[다양성]과 複雜性[복잡성]의 結果[결과]인 것이다. 그러함으로 機械論的[기계론적] 唯物論者[유물론자]의 任意[임의]의 形式[형식]은 그 內容[내용]에 依[의]하여 決定[결정]된다는 것만 알고 文學[문학]의 特殊[특수]한 內容[내용]과 科學[과학]의 特殊[특수]한 內容[내용]만을 設定[설정]하여 그 相違[상위]한 形式[형식]의 事實[사실]에 立脚[입각]한 것은 警戒[경계]하여야 할 誤謬[오류]를 가지고 있다. 科學[과학][혹]은 文學[문학]의 힘을 빌려서 現實[현실]을 開示[개시]하는 必要[필요]는 社會的[사회적] 關係[관계]의 多樣性[다양성] 現實[현실]의 側面[측면]의 多樣性[다양성]에 依[의]하여 決定[결정]되는 것이다. 文學[문학]의 힘을 빌려서 現實[현실]을 開示[개시]한다던지 認識[인식]한다던지 그것에 作用[작용]한다던지 하는 人間[인간]의 能力[능력]은 산(生)『올가니즘』의 內部[내부]에 있어서의 組織[조직]된 것으로 思索[사색]한다던지 感受[감수]하는 物質[물질]의 能力[능력] 그것에 根據[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思索[사색]하는 能力[능력]은 感受[감수]하는 能力[능력]과 같이 산(生)『올가니즘』의 內部[내부]에 있어서의 唯一[유일]한 組織[조직]된 物質[물질]속에 뿌리박고 있는 까닭에 感情[감정]과는 分離[분리]할 수 없는 統一思想體[통일사상체]다. 全部[전부]가 그렇다고 할 수는 없으나 科學[과학]은 特[특]히 思索[사색]하는 人間[인간]의 能力[능력]을 表現[표현]하는 것이며, 文學[문학]은 特[특]히 感受[감수]하는 人間[인간]의 能力[능력]을 表現[표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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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決[결]코 科學[과학]은 人間[인간]의 思想[사상]만을 表現[표현]하며, 開示[개시]하는 것이요, 文學[문학]은 人間[인간]의 感情[감정]만을 표현 表現[ ]한다는 것을 意味[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科學[과학]은 모든 世界[세계]를, 思想[사상]과 感情[감정]과를 包含[포함]한 것의 全[전] 人間[인간]을 特[특]히 槪念[개념]의 힘을 빌려서 認識[인식]하는데 對[대]하여 文學[문학]은 特[특]히 形象[형상]의 힘을 빌려서 世界[세계]와 人間[인간]과 그의 思想[사상] 感情[감정]을 認識[인식]하는 것임을 意味[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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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文學[문학]이 感情[감정]과 情緖[정서]에 作用[작용]된다는 것으로서 文學[문학]에 있어서 形成[형성]의 完全性[완전성], 美的[미적] 意義[의의]라는 問題[문제]가 생기게 된다. 美的快感[미적쾌감]을 주지 못하는 것은 藝術[예술]로서의 條件[조건]을 具備[구비]하지 못한 것이며 美的快感[미적쾌감]은 形式[형식]의 完全性[완전성]에 基因[기인]함이 많은 까닭으로 —그리하여 心理的[심리적]인 事實[사실]과 作用[작용], 意識的[의식적] 生活行爲[생활행위], 思想[사상]의 모든 對象[대상]을 항상 感情體驗[감정체험]을 通[통]하여 直觀的[직관적] 形象[형상] 속에 表現[표현]하지 않으면 안 되는 文學[문학]에 있어서는 形式[형식]은 至極[지극]이 重要[중요]한 契機[계기]가 되는 것이다. 過去[과거]의 이데오로기 —批評[비평]의 一面性[일면성] 은 形式[형식]의 構成[구성], 樣式[양식]의 多樣性[다양성]에 對[대]하야 恒常[항상] 鈍感[둔감]이였다는데 있어서 正當[정당]한 基準[기준]의 客觀性[객관성]을 捕捉[포착]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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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一切[일절]의 精神的[정신적] 物質的[물질적]인 事象[사상]을 感情的[감정적] 形象的[형상적] 直觀[직관]의 形式[형식]에 있어서 表現[표현]하는 文學[문학]은 또한 그것의 享受者[향수자] 一般[일반]의 感情[감정]과 直觀[직관]에 作用[작용]하고 그 作用[작용]과 抵抗[저항]과의 性質[성질] 樣相[양상]이 重要[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勿論[물론] 一切[일절]의 事物[사물]은 感性的[감성적] 直觀[직관]과 感情[감정]에 作用[작용]하는 것이나 物理的[물리적]인 形象[형상]에 있어서는 그것이 感性的[감성적]인 直觀[직관]에 美的[미적] 印象[인상]을 준다든지 그와 反對[반대]되는 印象[인상]을 준다는 그 作用[작용]에 依[의]하여서는 價値[가치]가 決定[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한 個[개]의 食物[식물]은 그 食物[식물]의 外的[외적] 形象[형상]에 따라서 그 形象[형상]이 美的[미적] 印象[인상]을 준다하여 그 使用價値[사용가치]가 높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니 食物[식물]의 外的[외적] 印象[인상]보다도 그것의 美味[미미]와 營養[영양](카로리)의 統一[통일]에 依[의]하여 그 食物[식물]의 使用價値[사용가치]는 決定[결정]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럼으로 從來[종래]의 뿌르조아 印象批評[인상비평]은 形式構成[형식구성]의 樣態[양태]에 對[대]하야 部分的[부분적]으로 關心[관심]을 가지기는 하였으나 그 批評[비평]의 基準[기준]이 主觀的[주관적]인 獨斷[독단]에 흐르고 있었음으로 批評[비평] 自身[자신]에 아무런 客觀性[객관성]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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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客觀的[객관적] 藝術[예술]이 存在[존재]하지 않은 것과 같이 客觀的[객관적] 批評[비평]도 存在[존재]치 않는다』라는 아나톨·프랑스의 印象主義[인상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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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냐하면 美[미]라는 것은 어데 있든지 如何[여하]한 結果[결과]로 拙雜[졸잡]하게 나타날지라도 美[미]는 언제든지 美[미]다. 그럼으로 美[미]는 그 自體[자체] 어디서든지 一樣[일양]이라고 말할 수 있다. 或[혹] 程度[정도]가 있다면 그 程度[정도]는 精神[정신]의 氣質[기질], 性格[성격], 傾向[경향], 日時[일시] 그리고 瞬間[순간]에 依[의]하여 本質的[본질적]으로 變化[변화]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한 루메 −틀의 말은 印象主義[인상주의]의 論理的[논리적] 惡魔性[악마성](단테)을 如實[여실]히 吐露[토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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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形式[형식]에 對[대]한 批評[비평]이 客觀性[객관성]을 가지기 爲[위]하여는 그 批評[비평]의 基準[기준]이 主觀的[주관적] 獨斷主義[독단주의]에 彷徨[방황]하지 말고 客觀的[객관적]인 科學性[과학성]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리하여 批評[비평] 基準[기준]의 客觀性[객관성]이라는 것은 그 基準[기준]이 科學的[과학적]으로 證明[증명]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元來[원래] 批評[비평]이라는 것은 作家[작가], 批評家[비평가], 讀者[독자]의 三者[삼자]가 다 같이 是認[시인]하며 首肯[수긍]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니 客觀的[객관적]인 科學性[과학성]은 三者[삼자]가 合致[합치]되는 意見[의견]을 가지기 爲[위]한 唯一[유일]의 場所[장소]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서 벗어나서는 이 三者[삼자]가 合致[합치]되고 서로 맛나볼 場所[장소]는 永遠[영원]히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形式[형식]은 恒常[항상] 內容[내용]을 가지고 있으며 內容[내용] 없는 形式[형식]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藝術[예술]의 內容[내용]이라는 것은 藝術[예술] 속에 反映[반영]되어 있는 階級的[계급적] 現實[현실]이며 階級社會[계급사회]의 實踐[실천]임에 틀님이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階級[계급]의 이데올로기 −의 體系[체계]는 그의 實踐[실천]을 基礎[기초]로 하고 成長[성장]하는 것이요 그 實踐[실천]은 모든 이데올로기 −의 諸形態[제형태]의 內容[내용]인 것이다. 그럼으로 文學[문학]은 다른 이데올로기 −와 다른 自己特有[자기특유]의 內容[내용]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그 形式[형식]에 있어서 다른 이데올로기 −와 相違[상위]되여 있다는 것은 앞에서도 말한 바이거니와 우리는 이 內容[내용]과 形式[형식]의 二元論[이원론]에 反對[반대]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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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形式[형식]의 完全性[완전성] 이라는 것은 內容[내용]과의 調和[조화]를 保持[보지]하여 있다든지 그 形式構成[형식구성]은 深刻[심각]한 感銘[감명]을 줄만한 思想[사상]을 나타내어 보이고 있다든지 모든 形象[형상]의 性格[성격]을 明白[명백]이 한다든지 스타일의 多樣[다양]과 個性的[개성적]인 獨創性[독창성]이 豊富[풍부]하다든지 마즈막으로 그 形式[형식]은 新興[신흥]된 現實[현실]의 眞實[진실]을 積極的[적극적]으로 反映[반영]하여 있다는 數字[숫자]에 依[의]하여 決定[결정]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모든 形式批評[형식비평]의 基準[기준]이 客觀的[객관적]으로 正當[정당]하다는 것은 科學的[과학적]으로 證明[증명]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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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形式[형식]을 分析[분석]하기 爲[위]하야는 內容[내용]을 잘 理解[이해]하지 않고는 안되는 것이다. 그리고 內容[내용]의 批判[비판]은 다만 그 作品[작품]을 政治[정치], 道德[도덕], 思想的[사상적] 潮流[조류], 文化的[문화적] 環境[환경]과 그것의 物質的[물질적] 條件[조건]의 關係[관계] 속에서 把握[파악]할 뿐 아니라 作家[작가] 自身[자신]의 階級的[계급적] 地位[지위]와 生活態度[생활태도]를 理解[이해]하며 作家[작가]의 創作方法[창작방법]과 創作能力[창작능력], 作品[작품]의 內容[내용] 形式[형식]을 文學史的[문학사적] 關聯[관련] 속에서 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한 개의 作品[작품]을 對[대]하면 그 作品[작품]의 正當[정당]한 批評[비평]을 가지기 爲[위]하여 그 作品[작품]의 起源[기원]을 硏究[연구]하고 그 作品[작품]이 如何[여하]한 社會的[사회적] 根據[근거] 속에서 生産[생산]되였는가 하는 데 對[대]한 明確[명확]한 見解[견해]를 가지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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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藝術[예술] 一般[일반]을 文化[문화], 社會[사회], 風習[풍습], 階級[계급], 道德[도덕] 等等[등등]의 諸歷史的[제역사적] 關聯[관련] 속에서 分析[분석]하고 批評[비평]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니 이러한 批評方法[비평방법]은 우리가 周知[주지]하는 바 루나찰스키 −的[적] 方法[방법]인 것이다. 이 方法[방법]은 在來[재래]의 뿌르조아 觀照主義的[관조주의적]인 歷史主義[역사주의] 批評[비평]을 超越[초월]한 一步[일보] 前進[전진]한 것이며 實[실]로 科學的[과학적]인 方法[방법]은 素朴[소박]하나마 이러한 歷史主義的[역사주의적] 方法[방법] 속에서 찾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니 歷史主義的[역사주의적] 方法[방법]이 完全[완전]하면 할수록 科學的[과학적]임에 가까워지며 그와 合致[합치]하여 文學批評[문학비평]이 文學史[문학사]의 한 部門[부문]으로 化[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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藝術社會學[예술사회학]이 藝術作品[예술작품]을 떠나서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이 文學史[문학사]는 文學批評[문학비평]을 떠나서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함으로 完全[완전]한 批評家[비평가]는 正當[정당]한 意味[의미]에 있어서 倫理學[윤리학], 經濟學[경제학], 政治學[정치학], 社會學的[사회학적][제] 知識[지식]과 傾向[경향]을 完成[완성]함에서 비로소 期約[기약]할 수 있는 것이며, 社會的[사회적][제] 關係[관계]와 文學[문학]의 關係[관계]의 關聯性[관련성]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文壇[문단]에서는 文學批評[문학비평]은 다른 어떠한 이데올로기 −다시 말하면 政治[정치], 經濟[경제], 哲學[철학] 等等[등등]으로부터는 門外[문외]에 있을지라도 可能[가능]하다는 見解[견해]가 一般的[일반적]인 常識[상식]으로 되어있고, 이것의 相互關聯[상호관련]을 말하는 것은 一見文學[일견 문학]의 神秘境[신비경]과 自治城[자치성]을 冒瀆[모독]하는 듯이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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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學[문학] 自體[자체]의 完全[완전]한 獨立[독립]! 特殊的[특수적]인 境地[경지]에서 文學批評[문학비평]을 可能視[가능시]하는 곳에서 비로소 우리의 文學批評[문학비평]은 客觀的[객관적] 基準[기준]이 樹立[수립]되지 않으며 渾沌[혼돈]한 現狀[현상]을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實[실]로 오늘날 批評界[비평계]를 휩쓸고 있는 千態萬狀[천태만상]의 批評[비평] 形態[형태]는 百[백]가지 批評[비평]에 百個[백개]의 基準[기준]이 主觀的[주관적]으로 割據[할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文學批評[문학비평]의 科學的[과학적]인 基準[기준]의 客觀性[객관성]을 차지하는데 있어서 科學的[과학적]이란 그 用語[용어]에 야릇한 反感[반감]을 가지고 燥急[조급]스러이 科學的[과학적]임은 文學批評[문학비평]의 要素[요소]인 藝術[예술]의 創造性[창조성]의 否定[부정]이라고 解釋[해석]하여서는 안 된다. 文學作品[문학작품]은 앞에서도 여러 번 말한 것과 같이 現實[현실]의 諸相[제상]이 想像[상상]에 依[의]하여 形象化[형상화]된 一種[일종]의 픽슌으로서 人間[인간]의 情緖[정서]와 心理感情[심리감정]에 作用[작용]하는 것이다. 普通[보통] 우리가 鑑賞[감상]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作用[작용]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나 이 鑑賞[감상]은 氣分[기분], 想像[상상], 空想[공상][등]의 心理的[심리적] 活用[활용]을 가지지 않고는 行[행]해질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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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함으로 描寫[묘사]된 形象[형상]을 完全[완전]히 鑑賞[감상]하기 爲[위]하여는 批評家[비평가] 自身[자신]이 爲先[위선] 豊富[풍부]한 空想[공상]과 想像[상상]과 銳敏[예민]한 感受性[감수성]을 自然的[자연적] 素質[소질]로서 가지지 않고는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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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뵈브의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한 것은 實[실]로 文字[문자]의 解得[해득]만이 아니라 옳게 읽는 −다시 말하면 正當[정당]히 鑑賞[감상]할 줄 아는 사람을 指稱[지칭]한 말이 아니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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勿論[물론] 本源的[본원적]인 正當[정당]한 意味[의미]에 있어서의 批評[비평]은 鑑賞[감상]한 그것만으로 表現[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特定[특정]한 基準[기준]에 依[의]하여 裁斷[재단]하고 分析[분석]하면서 叙述[서술]하는 것이나 文學[문학]의 鑑賞[감상]에 있어서 空想[공상]과 情緖[정서]를 美的[미적] 形象[형상]이 觸發[촉발]하는 限[한], 批評[비평] 속에 創造的[창조적] 契機[계기]가 包含[포함]되는 것을 否定[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文學批評[문학비평]은 또한 作家[작가]와 作品[작품]의 時代的[시대적] 社會的[사회적] 個性[개성]과 性格[성격]을 解明[해명]하야 叙述[서술]하는 것이며 그것으로 말미암아 作家[작가]와 作品[작품]의 特徵的[특징적]인 것과 本質的[본질적]인 것이 普遍化[보편화] 되기는 하나 그 普遍化[보편화]의 度[도]가 低弱[저약]하고 普遍化[보편화]된 것이 個性[개성]과 性格[성격]을 가질 必要[필요]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性格[성격] 描寫[묘사]에 있어서 美的[미적] 創造[창조]가 營爲[영위]된다는 것은 아무런 不當[부당]한 것도 아니요 또한 不可能[불가능]한 것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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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現代[현대]가 가진 바 批評[비평]의 動搖[동요] 속에서 우리는 不絶[부절]히 正當[정당]한 批評[비평]의 길을 찾으려고 努力[노력]하여야 하며 批評[비평]의 本源的[본원적]인 그리고 正當[정당]한 客觀性[객관성]의 探求[탐구]와 그것의 基準[기준]을 確立[확립]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批評[비평]의 危機[위기]의 絶咡[절이] 속에서 오히려 現實的[현실적][제] 觀念[관념]의 渾沌[혼돈]과 아울러 十人十色[십인십색]의 渾沌[혼돈]된 基準[기준]으로 作品[작품]에 칼을 대여서 裁斷[재단]하고 있는 이상 批評[비평]은 永遠[영원]한 危機[위기]에서 벗어날 道理[도리]가 없을 것이다. 이곳에 있어서 우리는 오래 前[전]에 克服[극복]되고 그 主觀性[주관성]과 不具性[불구성]이 證明[증명]된 사론 批評[비평]의 原始狀態[원시상태]와 惡質的[악질적]인 印象主義批評[인상주의비평]과 政治的[정치적]인 關係[관계]를 無祝[무축]하고 모랄만을 强調[강조]하는 모랄 批評[비평] 乃至[내지] 末梢的[말초적]인 文獻學的[문헌학적] 批評[비평] 等等[등등]은 그것이 티보 −티가 말한 所謂[소위] 專門家的[전문가적] 批評[비평]이든 大家[대가]의 批評[비평]이든 間[간]에 모다 排擊[배격]하지 않으면 안 되는 同時[동시]에 批評[비평] 基準[기준]의 客觀性[객관성]을 차지한 科學的[과학적]인 批評[비평]에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 科學的[과학적]인 批評[비평] 基準[기준]의 確立[확립]이 오늘날 우리들 앞에 놓이어진 다만 한 個[개] 남은 唯一[유일]의 危機[위기]에서 벗어날 길일 것이며 우리의 文學的[문학적] 事業[사업]에 있어서 重要[중요]한 課題[과제]가 아니면 안 될 것이다. 여기에 萬若[만약] 批評[비평]의 客觀的[객관적] 基準[기준] −다시 말하면 앞에서 말한 歷史主義的[역사주의적] 科學的[과학적] 方法[방법]이 없고 또는 있을 수 없는 것이라면 우리는 오늘날 批評[비평]의 兩極[양극]의 專制[전제] −이데오로기 − 批評[비평]과 칸트的[적] 印象主義批評[인상주의적비평]이 제 各各[각각]으로 批評[비평]할 對象[대상]의 作品[작품]을 黨派的[당파적]으로 嚴格[엄격]히 分離[분리]하야 부르조아 文學作品[문학작품]은 印象主義批評方法[인상주의비평방법]을 가진 批評家[비평가]의 손에서 行[행]할 것이요 進步的[진보적] 階級[계급] 作品[작품]은 이데오로기 −批評[비평]의 方法[방법]을 가진 裁判官[재판관] −批評家[비평가]가 批評[비평]하여야 할 것이다. 왜 그러냐하면 文學[문학]의 科學的[과학적] 法則[법칙], 批評[비평] 基準[기준]의 客觀性[객관성]이 없이는 批評[비평]한대야 부르조아 作品[작품]은 이데오로기 −批評[비평]의 거울에 비치일 때는 그 거울 속에 비치어질 아무런 要素[요소]가 남아있지 않을 것이요 階級關係[계급관계]와 觀念[관념]의 階級的[계급적] 制約性[제약성]이란 社會學的[사회학적] 意義[의의]와 그것의 歷史性[역사성]을 理解[이해] 못하는 印象主義批評家[인상주의비평가]에게는 上述[상술]한 모든 社會的[사회적] 現實[현실]의 積極的[적극적]인 關心[관심]을 담은 形象[형상]이 審美的[심미적] 神秘性[신비성]에 基準[기준]을 둔 그들 批評家[비평가]의 거울에 政當[정당]히 비칠 理[리]가 萬無[만무]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作品[작품]의 分擔[분담]이 없이 統一[통일]된 批評[비평]이 承認[승인]된다면 여기에는 嚴格[엄격]한 批評基準[비평기준]의 客觀性[객관성]을 探求[탐구]하고 그것을 科學的[과학적]인 證明[증명] 속에서 正當[정당]한 批評道德[비평도덕]의 礎石[초석]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보담 높은 歷史主義的[역사주의적] 批評[비평]으로! 루날찰스키 −的[적] 方法[방법]의 批判的[비판적] 取捨[취사]에서 그 遺産[유산]의 正當[정당]한 發展[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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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우리들의 批評[비평]이 危機[위기]에서 벗어날 길이 숨어 있다.
【원문】비평기준(批評基準)의 객관성(客觀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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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각(李秉珏) [저자]
 
  조선 일보(朝鮮日報) [출처]
 
  1936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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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평기준(批評基準)의 객관성(客觀性)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01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