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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철을 맞는 어린이 공화국(共和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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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4
방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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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철을 맞는 어린이 共和國[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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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가 유명한 시베리아이지만 그래도 여기는 좀 남쪽인 까닭에 벌써부터 봄 냄새가 제법 나기 시작합니다. 일기는 따뜻하여졌습니다. 길은 눈이 몹시 녹아내리는 바람에 매우 질어졌습니다. 어떤 언덕에는 풀까지 푸르스름하게 올려 밀기 시작합니다. 집에 박혀 있기가 정 소원 아닌 시절이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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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캡을 제켜 쓰고, 어깨를 좍 펴고 다니게 되니, 길이야 어떻게 되었든지 멀리 멀리로 걸어가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나 있는 곳에서 가장 멀리 있는, 내가 자주 놀러 다니는 어린이 나라로 산보 겸 방문 겸 찾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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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는 큰 나라가 아닙니다. 인구라고는 겨우 8, 9세로부터 14, 15 세까지의 남녀가 한 2, 3백 명 되고, 30, 40세씩 된 생활 인도자가 10여 명이 있을 뿐입니다.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2층 벽돌집 한 채와 그 집에 붙은 공원과 널따란 운동장 하나뿐입니다. 그러나, 그 안의 생활은 별로이 분주하게 항상 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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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기에 다다른 때는 오후 한 시쯤 되었습니다. 이 때, 마당 안과 대문 밖에서는 어린이 백여 명이 괭이, 비, 별별 기구를 다 들고 눈을 치며, 땅을 파며 한참 야단을 하는 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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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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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오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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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예, 오늘은 왜 이리 야단들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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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철이 되니까, 눈이 녹아 내리면서 마당을 매우 어지럽게 합니다. 이 때에 마당을 닦지 않으면 여러 가지로 안 될 일이 많기 때문에 위생부에서 그저께 우리 총회다가 이대로 그냥 있으면 어떠어떠한 해가 있다는 것을 보고하고 청소를 시작하자는 제의를 하면서 청결 시행 방법까지 자세히 말하였습니다. 말이 옳은 데야 무슨 시비가 있겠습니까. 총회에서 그러자고 결정하고, 인도자들의 승낙까지 받았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이렇게 공동 노동을 시작하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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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위생부야 말이지 그것은 중앙 기관에 정하여 놓은 위생부가 아닙니다. 위생에 대한 연구를 하고 싶은 사람들은 수효 제한 없이 다 모아 가지고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부는 위생부뿐이 아닙니다. 그 밖에도 연예부, 미술부, 신문부, 운동부, 수학부, 별별 부가 다 있습니다. 각 부는 연구한 결과를 자기의 사회에 벽신문(壁新聞)을 통하여서든지, 강연으로든지 여러 가지 방법으로 , 드러내어 놓습니다. 그래서, 일반이 실시해야 될 것은 총회에 반드시 문제가 일게 하고, 그렇지 않는 것은 지식을 늘리기에 도움만 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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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동 노동을 하게 된 이유를 자세히 듣고, 이어 벽돌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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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도 그다지 조용하지 못하였습니다. 한 방에서는 음악부에서 창가 연습을 하고, 한 방에서는 미술부에서 벽에 붙일 표어를 쓰고, 한 곳에서는 문에다 ‘들어오지 마시오.’라 써 붙이고 연예부에서 연극 연습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앞뒤로 분주히 왔다갔다하는 이도 적지 않았습니다. 무슨 큰일 준비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생활 인도자 한 분을 얼른 만나서 무슨 일이 있느냐 고 물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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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이 없습니다. ○○ 기념 준비를 그리 분주히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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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집합실에서는 툭툭 와 ― 소리가 굉장히 났습니다. 무슨 일일까 하고, 얼른 그리로 뛰어들어가 보니, 수십 명의 어린이들이 사다리를 끌고 이리저리로 다니면서 써 놓은 표어들과 그림들을 붙이느라고 그리 떠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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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전 습관대로(그 집에 들어만 가면 꼭 그러니까) 벽신문을 내려 읽어 보았습니다. 이번 호에는 동무 재판란에 글이 전보다 많이 씌어졌습니다. 그리고 판결도 다른 때보다 좀 이상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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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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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하오 4시에 재판장 김○○(늘 쓰는 투대로 사실을 다 적고, 검사 변호사의 말까지 다 적고)는 이렇게 결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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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는 추악한 말로 남을 욕함으로써 남의 명예를 손상시켰으며, 자기의 본분을 잃었다. 이 죄는 공동 견책에 상당하나, 3월 ○○임시이매, 피고의 자복이 깊이 진정으로 우러나와 크게 회개할 희망이 보이므로 용서하기로 결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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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신문 읽기를 마치고는 집합실에서 돌아 나왔습니다. 이 때에 어린이 한 분이 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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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에서 광고를 읽어 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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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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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광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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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레 오후 2시에 여기서 기념을 굉장히 한답니다. 그 준비를 하느라고, 우리는 날마다 꼭 하는 4시간 5시간의 공부도 오늘은 세 시간밖에 더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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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일하는 이들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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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이들은 청결을 급히 하기 위해서 세 시간씩 공부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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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내일 일요일에도 청결도 하고 준비도 하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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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야 물론이지요. 그리고 모레는 여기로 꼭 와 주십시오. 네? 그 날은 우리와 꼭 함께 지내야 됩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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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온다고 진정으로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여기저기 휘휘 들러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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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나라는 그리 항상 분주합니다. 봄철을 당하여서는 더 분주하여졌습니다. 더욱 3월에 와서는 큰 기념 준비를 세 번씩이나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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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분주한 어린이 공화국의 본 이름은 의회 학교라고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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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4권 4호, 1926년 4월호, 길동무〉
【원문】봄철을 맞는 어린이 공화국(共和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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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정환(方定煥) [저자]
 
  어린이(-) [출처]
 
  1926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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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01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