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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의 현미경적 (顯微鏡的) 검사(檢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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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4
채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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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顯微鏡的 檢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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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早春의 街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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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면 전원이라야 하지 도시의 아스팔트 위에 서서 춘색(春色)을 찾는다는 것은 여간만 옹색스런 노릇이 아니다. 무릇 생활이 바쁘고 땅이 새뤄 봄의 봄다움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은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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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장동(四時長冬)의 다방에 앉아 샬리아핀의 「카르멘」에 취했다가 문을 밀치고 나서니 눈이 부시게 맑은 햇빛이 다른 것 다 없어도 위선 봄이거니 하는 반가움을 새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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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봄 머리의 따스하고도 맑은 햇빛은 하릴없이 마음상을 잘 알아주도록 오래 손을 치어난 여인같이 안길성이란 다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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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도 저기도 아무데도 하나 가득 내리고 있는 햇빛을 받으면서 나는 포도를 지향 않고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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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두시 부렵의 봄으로는 이게 한낮이다. 내가 보기를 그러루하고 보아서 그런지 길 가고 오는 사람들도 바쁜 사람 한가한 사람 누구 할 것 없이 모두 이 햇빛을 무심중에 반겨하는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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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햇빛은 어디라 없이 여리고 불안스러 데가 없지 못하다. 겨울의 여신(餘燼)이 마치 미련 질긴 인간처럼 더얼 불러감이 있어 햇살에도 올올이 사늑거리는 매운 입맛이 죄다 가시질 못한 탓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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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렇듯 약간은 미흡한 구석이 있기 때문에 차라리 다 흡족하니 보다도 감칠성이 더한 것일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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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 밑바닥에서 철과 철이 마주 갈리어 울리는 강강(剛剛)한 저 음향은 글쎄 제 자신 오히려 문명적인 리듬이기는 할는지 모르겠으나 이렇듯 아담한 춘양(春陽) 아래서는 아무리 해도 야만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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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높게 선과 선, 선과 선이 서로 얼려 구성적으로 꿋꿋한 직선미만 보여주던 빌딩이 연한 미색(米色) 타일의 조화로 이 봄빛에는 어쩌면 지극히 보드라와 보이는 것도 노상 내 착각만은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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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로에서 생명 있는 봄을 받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못 가로수뿐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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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돌(煙突) 소제부나 다름없이 먼지와 매연에 그을었던 가지가 어느덧 포르스레 생기가 돌고 싹도 제법 탄력있이 보풀어올랐다. 인제 떡잎이 피어나기도 몇날이 아니리라. 가두의 봄은 진실로 몇 그루의 가로수로 해서 겨우 면목을 지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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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봄이 옹색스러우니 이 맑고도 포근한 햇빛에 잘 조화가 되는 전원이 마음에 아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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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낡은 초(草)집, 움 돋은 장다리와 밭고랑의 보리, 숲, 들과 얼음 풀려 그 가운데로 흐르는 실개천, 언덕, 산 모두 봄 햇빛을 듬씬 맞이하여 제가끔 춘의(春意)를 속삭일 아담한 배경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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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릇파릇 봄 배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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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오기만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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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장에서는 어린 초동들이 시방도 이런 노래를 부르면서 마을 앞을 지나간다. 그럴라치면 졸립도록 짝소리없이 조용턴 마을집에서 화답을 하듯 낮닭이 늘어지게 한 홰 두 홰 울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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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윈도 속에 봄의 모형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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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도 빛깔도 엷은 여인네의 옷감이 봄의 의장(意匠)을 배경삼아 맵시있게 널려있다. 남정네 춘복감이야 넥타이도 거기에 벌써 봄이 깃들인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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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두의 장식미술도 우리의 눈을 즐겁게는 해주는 것이구나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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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두에서 가장 예민하게 봄을 표현하는 것은 역시 자연보다도 사람사람의 옷이다. 그중에도 여인의 옷과 옷맵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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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앞으로 걸어오고 있는 저 젋은 여인의 저고리 고름이야 참으로 좋지 않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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엷은 연두빛 저고리가 이 봄빛에 차근히 잘 조화되기도 하지만 왼편 가슴께로 드리운 두가닥의 저고리 고름은 어쩌면 저다지도 귀엽고 보드랍게 날리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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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는 하늘하늘 나는 양을 나는 연상하고 체모 없다 할 만큼 그를 바라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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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도리로 가리지 않은 하얀 동정이 좁다랄수록 더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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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학교에 아직 재적한 처녀인가보다. 볼이 봄의 훈기에 불크레니 상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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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거니 여기고 지나치는 뒤를 다시금 돌려다보니 미상볼 굽 낮은 구두요 걸음매도 규칙적이도 세련된 가벼운 리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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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우리 시민의 청각을 무시하는 악음(樂音)을 좀 통제할 수는 없는지, 예술적이라기보다도 차라리 히스테릭한 비명인 유행가 소리, 전기가 값 헐한 것만 여겨 얼마든지 확성을 시켜놓는다. 봄다운 청조(淸朝)를 요구함이야 내 욕심이라 하더라도 봄의 기운을 상하지는 않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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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마 이 땅의 토색(土色)이라도 있다면 모르거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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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나더러 서울 장안의 질서를 맡아보는 장자가 되라면 맨먼저 가두에서 발악을 하는 저 유행가의 방자스런 방가를 금하고 말리라. 적어도 봄에만은 봄답게 한아한 것으로 내걸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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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답게 한아한 음향이라니 말이지 문득 오래 전 동경(東京)서 당해보고 탐탁해하던 것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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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도 그런 풍취(風趣)를 구경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조춘 가두에는 꽃모종(花苗) 장수가 외우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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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니상’ 차림으로 홀태바지에 ‘와타지’ 에 ‘합비’ 에 ‘진가사’ 를 눌러쓴 도하의 젊은 농부가 꽃모종을 천평봉(天評捧)에 갈라 메고 서서 꽃모종 사라고 외우는 소리는 남자면서도 퍽 연연한 게 언뜻 여인네의 목청 같고 그 소리 그 정경이 봄을 한결 더 흥취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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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하나 금붕어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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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림새는 꽃모종장수와 비슷하나 그 외우는 소리는 훨씬 더 음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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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에 가까운 높은 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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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교, 킹교, 킹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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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세 번씩을 연달아 부르는데 맨 끝에치는 스르르 여운을 끌고 사라지는 게 마치 자장가를 듣는 것 같아 춘면(春眠)이 절로 솟게 한다. 좀 엄살 같으나 그네의 배구(排句)나 다도(茶道)나 분재(盆栽)같이 일종 아담한 선미(仙味)를 느끼고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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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도 김서방이나 혹은 이서방이 반벙어리 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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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붕어 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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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멋과는 동일지담(同日之談)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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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시인은 종일 봄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못 찾고 일모(日暮)에 집으로 돌아오니 빈처(貧妻)가 나물을 뜯어 저녁상에 올린 것을 보고서 봄이라 했다더니, 약삭빠른 가두의 봄을 현미경 검사를 하고 섰는 나를 꽃 장우 일위(一位)가 있어 적이 덜 무료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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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꽃장수다. 꽃장수 그 사람도 정녕 가난이야 하겠지만 연장과 꽃은 더 가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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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끌구루마에 유지(油紙)로 챙을 해가지고 떨그럭거리면서 지나가는 그 속에 들어 있는 몇 떨기 꽃은 이 거리의 봄의 여와임을 갈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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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여다 보니 매화, 복사, 진달래 그리고 몇 가지 양종(洋種)의 화초들이다. 온실 소생이라 가뜩이나 더 연약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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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꽃장수 아저시 이왕 아치(雅致) 있는 꽃장수를 하는 바이니 저다지 벙어리 삼신으로 우두커니 있지를 말고서 하다못해 아리랑조라도 청을 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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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사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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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사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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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꽃이 지잖어 봄을 사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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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봄이 늦낞어 꽃을 사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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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좀 외어 준다면 살풍경스런 이 가두의 춘색이 저으기 윤기도 있고 또 당자도 흥이 나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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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봄을 대접하여 진달래 한 분 사서 들었다, 아쉬우나마 나는 손에 봄을 든 셈이다.
【원문】봄의 현미경적 (顯微鏡的) 검사(檢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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