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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5.10
채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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病 後 記[병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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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삼아 놀러온 수영(洙永)군이 누웠는 내 얼굴을 새삼스럽게 보고 또 보고 하면서 혼자 딴속 있이 벌씸벌씸 연해 웃는다. 그리고는 이윽고 있다가야 어제 영화를 보러 갔더니 여승 나처럼 병색 질린 얼굴에 머리가 함부로 자라 흐트러진 인물 하나가 마침 화면에 나타나 그래 문득 나를 생각하고서 게서도 그만 실소(失笑)를 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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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눈치가 제네들 연배끼리의 동무라면 작히 흉깨나 보암직하게 내 풍신이 어설프고 우스꽝스럽던 모양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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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실히 지나간 세(歲)밑 12월 18일날 이발을 했고 그리고는 바로 떠나 서울로 전남으로 한 1주일 여행을 하다가 돌아왔고, 돌아와서는 이내 병석에 누워 있었으니 날수로 오십여 일이요 하마 두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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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같으면 그동안 적어도 세 번쯤은 이발사의 신세를 졌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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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마 여느때에도 빗질이라곤 통히 하는 법이 없고, 더우기 기름에 이르러서는 진작 중학을 마치고서 명색 전문(專門)에 입학하여 까까중이를 하이칼라로 기를 제 한동안 발라본 기억이 있을 뿐 진정 나 같을래서야 포마드 장사를 위해 기근구제회(飢饉救濟會)라도 설도를 해야 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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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도저하게 등한히 하는 머리를, 그런데 가뜩이 그 오십여 일 동안이나 영영 가렵다 가렵다 못해야만 탈지면에 알콜을 적시어 북북 문대기가 고작이요, 마침 한여름 빈 집 마당의 잡초처럼 그대로 방치를 해두었었으니 과연 잡초처럼 우거진 한여름의 빈 집 마당처럼 형오가 지지리 어설퍼 보였을 건 무릇 불문가지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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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돌아간 뒤에 궁금삼아 거울을 옆으로 가져오게 하여 비로소 상모(相貌)를 넌지시 한번 비춰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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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불 썩 복잡기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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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쩍은 이미 귀를 반이나 덮고 앞머리는 그 무성하게 자라 흐트러진 놈이 정수리를 넘어서는 참새 둥우리처럼 방석이 지었다. 문명스럽지 못한 봉발하며 또는 부석부석한데다가 핏기와 기름이 밭아 낡은 양피처럼 구긴 얼굴하며 푹 꺼진 눈시울하며 등속은 그러나 차라리 무던한 편이요, 제일 찔끔한 것이 무언고 하면, 위아래턱의 이른바 수염 체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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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아래치를 세자면 셀 수 있을 만큼(문명한 久保博士[구보박사]는 머리터럭도 세었을라더냐) 오다가다 성깃성깃 하나씩 둘씩 난 그 모양에 노랗기는 왜 그대도록 노란지…… 수염이라기보다는 흉년 탄 머리뿌렁구랬으면 좋겠는데, 그러나 내 머리턱럭은 손질과 치장을 안해서망정이지 검고 보드라울지언정 결단코 그 본새로 노라니 못생기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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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사십평생에 참으로 내 수염이 이다지 빈약한 줄은 여직 모르고 있었으니 생각하면 나도 딱할이만큼 한만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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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기는 『탁류』에서 정주사(丁主事)를, 또 근자에는 『금의 정열 』에서 성(成)주사를, 번번이 그 못생긴 수염을 갖다가 지지리도 흉을 보고 놀려주고 했었다. 한 것이 아마 천도(天道) 무심치 않아 그 대갚음으로 작자인 내 수염이 그네들 정주사며 성주사의 수염을 그만 닮아버렸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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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고 보니 미발공(美髮公) 혹은 미염공(美髯公)으로 행세를 하기는 그른 노릇, 다직해야 코밑수염을 조금 기르는 것밖엔 도리가 없겠는데, 그러나 내가 본시 그 코밑수염이란 자를 주는 것 없이 미워하는 성미인데야 종차라도 절개를 굽히고 싶지는 않고 한즉 오십에도 박박 밀어버려야 하겠으니, 시방은 아직 무방타 하겠지만 애꿎이 레부라의 혐의를 받을 일이 적지 않이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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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每日新報[매일신보] 1940. 5. 10〉
【원문】병후기(病後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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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만식(蔡萬植) [저자]
 
  매일 신보(每日申報) [출처]
 
  1940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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