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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7.10
김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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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2
언제부터 버스 타는 데 즐거움을 느끼게 되었는가 하고 나는 지금 생각해 본다.
 
3
아카시아 숲속에서 뛰뛰 크락숀을 울리고 커브를 휘어돌 때 그에게 길을 비켜 주면서 ‘앞으로 보니 그놈이 꼭 흰 양도야지 같고나’ 하고 생각했을 때부터인가 혹은 대화정에서 종로를 넘어 돈화문을 향하여 달아나는 그놈의 뒷모양을 바라보면서 ○○○○○○ 궁둥이에 달아 매인 육중한 코끼리가 날쌔게도 달아난다고 미소한 때부터인가. 그러나 버스를 탈 때 가슴의 울렁거림을 느끼지 않고 버스에 올라앉아 상쾌한 바운드를 향락하면서 창틈으로 불어들어오는 아침 공기를 면도한 얼굴 위에 희롱하며 둘 없는 만족을 가지게 된 것은 미상불 내가 혜화동에다 하숙을 잡고 동소문에서 안국동을 아침 아홉시마다 이 친구의 신세를 지게 되면서부터일 것이다.
 
4
나는 버스는 좋아하지 않았다. 지나치게 까부는 것이 싫었고 죽은깨 감추느라고 타분이발말러논 얼굴에 땀이 촘촘히 흐르는 것을 목소리만은 이상하게 밑힘이 있어 ‘대화정 갈아타세요’ 하는 차장의 하는 품이 신경을 잡아 뜯는 것이 싫었고 시간 급할 때에 남의 사정은 모르고 인력거보다도 느리게 이리 눕고 저리 자빠지면서 흔들거리고 있는 그의 느린 속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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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놈의 코끼리가 동소문서 안국동 가는 데 몇십 분을 잡아먹는 줄을 알고 차장이 가슴도 채 안 가리는 이상한 코트를 벗어버렸을 때 흰 브라우스에 파란 엑스(×)자가 청신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버릇같이 되어 버리고 ‘종로 방면 갈아타세요’ 하는 소리에서 아침 공기에 조화되는 ○○○○○을 느끼게 되고 까불리는 바운드에서 안락의자의 쾌미를 상상케 될 때에 나는 비로소 양도야지 같은 얼굴에 코끼리 같은 궁둥이를 가진 이 은색의 버스를 귀여워할 줄 알았다.
 
6
은색의 ‘코끼리’가 제비같이 날쌔게 달아나는 까만 택시보다 으뜸 될 때는 아침밖에 없다. 그것도 경학원 입구에서 창경원으로 휘어돌 때와 원남동서 돈화문으로 다리 옆을 향하여 너울거리는 푸른 가로수를 창밖으로 내던지면서 뛰뛰 소리 기운차게 아스팔트를 지치듯이 기어올라갈 때가 그의 극치다.
 
7
자리에 앉은 이는 오피스의 타자양의 경쾌한 양장, 원남동서 탄 가방 들고 눈감고 앉은 재판장의 20관(貫), 푸른 넥타이 하옵시고 흰 파나마 올려 놓은 젊은 사파리! 흰 구두 까만 구두, 밑바닥만 있고 줄 하나로 발을 얽은 참외씨 같은 구두 구두…….
 
8
짜르르 소리가 다아아에서 날 때 차장양은 ‘돈화문이요’
 
9
2분, 3분, 5분, 10분―은색의 양도야지가 돈화문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할 때에 ‘아침’의 값싼 향락자들의 경쾌한 꿈은 지나가는 택시에게 부서지고 만다. 돈화문 정류장은 양도야지와 코끼리의 물마시는 곳인가. 뚜뚜 하고는 기어 들어가고 뿡―하고는 뒷걸음친다. ‘앞차로 갈아타세요’ 이 소리는 기어코 버스를 오전짜리로 내려뜨린다.
 
10
묵묵히 내려서 앞차로 가는 사람, 중얼중얼 불평을 입 안으로 씹으면서 차에서 내리는 사람, 자리를 잃지 않으려고 업푸러질 듯이 뛰어가는 늙은이― 이 추한 풍경을 은색의 코끼리가 없애 버릴 때, 나 그대의 향락자는 은색 도야지의 영원한 숭배자가 되리다.
 
 
11
(『조선중앙일보』, 1935년 7월 10일, ‘하일산화(夏日散話)’란)
【원문】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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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천(金南天)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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