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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 정책의 동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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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4월
김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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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정책의 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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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행 문제에 관한 고시(告示)를 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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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1월 24일 발 AP 합동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허리우드의 영화 프로듀서로 고명한 사무엘 골드윈 씨는 금후 세계 시장에 있어서의 미국의 대외국 영화 경쟁에 관하여 흥미있는 담화(談話)를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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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우드는 외국 영화와 경쟁하여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일반 관객은 오락 방면에 있어서는 반드시 애국적이 아닌 까닭이다.” 이 담화의 내용은 적어도 다음 몇 가지를 시사하여 골드윈 씨의 영화 제작업자로서의 관록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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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로 식민지 반식민지에 있어서의 미국 영화의 상품 시장화 정책을 강화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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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 그렇게 하기 위하여 외국 영화와 싸우려면 허리우드는 오락 영화를 만들어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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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로 오락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까닭은 일반 영화 관중은 애국적이 아닌 때문인 것. 그러나 넷째로 우리는 이 담화의 지배(紙背)에서 도한 이러한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니 즉 영화 관중 가운데 애국심을 가진 자가 있어라도 이것을 오락 영화를 통하여 마비시킬 것. 이러한 골드윈 씨의 영화 제작과 시장 획득 방침은 반동적인 금융 독점 자본의 대외 식민지 정책과 전혀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전후 국제 오락 정책의 새로운 동향을 시사하여 흥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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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택상 씨의 흥행물에 관한 고시가 골드윈 씨의 담화에 뒤이어 발포(發布)된 것은 하나의 우연한 사실이라라. 그러나 그 고시의 표시에 현(現)된 오락 정책을 골드윈 씨의 발언과 무관하게는 생각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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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청장(廳長) 고시는 이러한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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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극장에서 오락물만을 상영, 상연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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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 그 오락물은 사상성이 거세된 것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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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로 그 판단은 임석(臨席) 순경(巡警)이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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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화 배급을 위요(圍繞)한 제물의를 아울러 고려할 때, 단적으로 우리는 오락 정책과 문교 정책의 지향하는 바를 손쉽게 간취할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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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골드윈 씨의 형안에도 불구하고 해방 조선의 관중은 다행히(혹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불행히) 비애국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키스와 무절조와 부도덕과 넌센스, 재즈와 훤조(喧噪 喧噪의 오식인 듯 - 편집자)와 저속한 아메리카니즘과 황당한 스펙타클만 좋아하는 애국심이 없는 관중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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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저속하고 불건강한 퇴폐적인 오락은 그 자체가 정치성이나 사상성이 없는 거이 아니라 건전한 오락과 민중의 애국심을 마비시키는 의미에서 다른 또 하나의 정치적 입장에 서 있는 것이요 이 정치적 입장이 바로 사무엘 골드윈 씨가 서 있는 정치적 입장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조선의 관중은 일제의 문화 정책에서 이것의 모략성을 체험해 왔다. 저속한 오락물에 대한 방임 정책과 건전한 민족 사상을 내용으로 한 문화에 대한 탄압, 말살 정책이다. 그러므로 친일 정당의 스포크스맨이 이러한 정책에 대해서 절대 지지를 표명하고 나서는 것은 문화나 예술에 대한 몰상식에서가 아니라 바로 그 상전(上典)의 이해에서 나온 처사인 것이다. (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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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천 5백 년 전 진(秦)나라 시황제가 이사(李斯)의 말을 듣고 시화와 백가의 서를 태우고 당대의 석학을 생매장한 사건은 문화의 유린과 그 옹호가 불리워질 때맏 언제나 입에 오르내리는 이야기거니와, 2차 대전의 풍운을 병창(兵廠) 속에 간직하고 여용 나치 예술가와 학자를 제(除)한 외의 막대한 수의 예술가, 학자, 교수 등을 국외로 추방하고 그들의 저서와 장서를 불지른 구라파 독일국의 사건은 이성이 발달한 현대에 있어서도‘야만’이 가능하다는 놀라운 사실을 보여 주어 그것이 준 공포와 충격은 우리들이 실제로 경험한 바 실로 막대한 바가 있었던 것이다. 이 테러리즘과 야만주의의 책임자는 완전히 타도되어 이제는 그의 시체의 행방만이 궁금증의 대상이 되어 있거니와, 민주주의의 승리 그 자체만으론 테러와 바바리즘이 지구상에서 온전히 가시어져 없어졌다는 것을 보장하는 것은 못되는가 싶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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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이러한 사실(史實)과 관련시킬 것도 없는 일일 것이나, 지난 30일 부(附) 장택상 수도청장의‘흥행’문제에 관계된 고시는 남차랑(南次郞)의 조선말과 조선 역사 말살령(令)만큼은 큰 충격을 주는 것으로 이것이 빚어낼 사태에 대해서 위정자가 재고려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이 고시문은 시황제나 히틀러나 남차랑(南次郞)의 그것과 비견할 역사적 문헌이 될 것이다. 실로 청장의 식견이나 어느 과장, 경위급(警衛級)의 양식(!)인 것도 아니요 바로 극장의 임석 순경이 민족 예술의 유일한 최고의 비판적 판단자요 동시에 상벌을 좌우할 수 있다는 이 경탄할 만한 고시는 아니할 말로 그렇게도 악독하고 잔악하던 일제 때에도 우리가 당해 보지 않았던 몰상식하고 당돌하고 무모하기 짝이 없는 전대미문의 사실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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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적 파시즘을 타도하라!’,‘야만주의와 폭압 정치에 유린되는 문화를 옹호하자!’는 슬로건 밑에 모든 불안이 창조력의 내면적인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고 경각(警覺)한 세계의 작가들은 1935년 6월 21일 파리 협조 회관에서 저 역사적인 ‘문화 옹호 국제 작가 회의’를 소집하였었다. 회의는 26일까지 5일간, 참집(參集)한 작가는 안데르센, 윌터 프랑크(미), 잉크랑(서), 앙드레 지드, 로망 로랑, 앙리 바르뷔스, 장 리샤르 부르크, 빅토르 마그릿드, 앙드레 말로, 루이 아라고(불), 헉스리, 포스터, 스트레치(영), 하인리히 만, 에온 포이히트 왕갤(독), 이그나츠오시로네(이), 골카, 이와노프, 티호노프, 팜표로프(소) 등 24개국의 문학가 2백 3십인. 이 회의의 의의와 결정은 오랫동안 전전 전중을 통하여 지식인의 지침이 되었거니와, 해방된 조선의 오늘‘고시’와 ‘국대안’등에 참다 못해서 궐기하는 ‘문화 옹호 남조선 문화인 예술가 총궐기 대회’는 세계의 양식에 호소하려는 민족 문화인의 당연한 분격(憤激)과 분기(奮起)로 그 의의가 거대하다고 생각한다. 광명과 암흑의 기로에 선 민족 문화를 위하여 전민족은 심사(深思)할 순간에 이른 것이다. (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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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중국 같은 반(半)식민지국에서 외래 제국주의의 군사가 중국 부녀를 능욕한 데 격분하여 학생들이 북경에서 남경에서 상해에서 일대 시위 운동을 일으켰을 때에 시위하는 학생들을 향하여‘시위는 면학이 아니니 본무인 학습으로 돌아가라. 정치에 간여치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하고 근면하는 여론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우리는 서슴지 않고 그러한 여론이 사실상으로 중국에 있어서의 외제(外帝) 식민지 정책에 봉사하고 있는 점을 폭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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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전후로부터 1930년 전후까지는 조선에 있어서 학생의 동맹 휴학이 가장 왕성하던 시기였었다. 3ㆍ1 운동의 즉후요, 일반 사회 운동이 팽창하게 일어날 뿐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투쟁이 계급 투쟁이 형태를 띠고 일어나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토착 지주나 토착 자본가가 일제와 야합하고 일제 통치에 투항하여 동족 착취와 동족 억압에 일제와 협심하고 나왔기 때문에 일본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싸움은 소작 쟁의니 농민 봉기니 노동자의 파업이니 하는 계급 투쟁의 형태를 띠고 일어나기 시작햇던 것이다. 그 당시의 학생들의 배움을 거부하는 맹휴와 시위를 노예 교육 반대와 나아가서는 일본 제국주의의 통치 그 자체를 타도하는 싸움의 수단으로 선택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기 때문에 일제 억압에서 해방된 금일 우리들은 한 사람의 반대자도 없이 광주 학생 사건을 반일 투쟁사 중 가장 빛 나는 페이지 속에 넣는 것이 아니냐. (2월 21일)
 
 
 

4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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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만약 그 당시에 맹휴나 시위하는 학생들을 향하여 ‘맹휴는 배우는 것이 본무인 학생에겐 가당치 않은 일이니 학업에 충실하라’든가 ‘정치는 전문적 운동자나 직업적 혁명가에게 맡기고 핛애은 그저 수굿하고 공부에나 열심하라’고 권하는 여론이나 지도자가 있었다면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우리는 지금 서슴지 않고 그것이 일제 학무 당국의 노예 교육 정책의 지지자이요 더 나아가서는 바로 일제와 야합한 이익 분배자의 매국노적 여론이라고 단정할 것이다. 그러나 생각하여 보시라.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얼마나 많은 교육가와 우국인사와 명사 제위들이 맹휴하고 시위하는 학생들을 비난하여‘지능이 저하되느니’,‘앎으로써 결국은 싸울 수 있다는 것이 싸우는 것보다 배우는 것이 급선무라’는 등으로 지껄였던 것이다. 이들은 맹휴가 학생이 취할 수 있는 반제 투쟁의 가장 중요한 형태인 것을 몰랐다기보다는 본질적으로 싸우지 않는 것에서 이익을 보는 일제와의 이익 분배자이요 적어도 그러한 입장에 서 있던 자이었던 것이다. 일찍이 금일 광주 학생 사건의 예찬자로 표변하고 나서는 것도 가관일뿐더러 국대안이 노예 교육과 식민지 정책의 이념에서 나온 것을 간파한 학생들이 (국대생만이 아니라 이것이 전학생이) 총맹휴로 싸우고 있는 오늘날‘배우면서 사우라’는둥‘배우는 것이 학생의 본무라’는둥 가장 나라를 근심하는 양 일부 여론이 지껄이고 있는 현상은 언제나 변함이 없는, 식민지 정책의 지지자인 본색을 폭로하여 흥미 있는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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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3호, 1947년 4월)
【원문】문화 정책의 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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