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문화 정책 답신안 해설 ◈
카탈로그   본문  
1947.7
김남천
목   차
[숨기기]
1
문화 정책 답신안 해설
 
 
 

1

 
3
1945년 8월 15일 이전에 있어서 우리의 문화, 예술이 발전을 저해하여 온 결정적인 조건이 일본 제국조의의 지배였다는 것은 우리들이 누누히 지적하여 온 바와 같다. 다시 말하면 일본 제국주의는 조선에 대한 그의 통치권을 확립한 이래 갖은 교묘하고도 또 야만적인 문화 교육 정책을 통하여 우리들의 민족 문화와 예술의 발전을 극도로 억압하고 저해한 것으로서 특히 중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 기간중에 ‘내선일체’ 와 ‘황민화 운동’ 을 통하여 취한 그들의 조선 민족 문화 예술 말살 정책은 세계에 그 유례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4
그러나 발악에 가까운 이러한 야만적인 말살 정책이 실행되기 전 주로 3ㆍ1 봉기 이래 검열 제도를 통하여 실시된 그들의 문화 정책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근소한 활동의 자유가 허여되어 있었던만큼, 그 음흉한 본질이 온폐되기 쉬우므로 우리는 그것이 의도하였던 보다 더 교묘한 노예적 식민지적 정책에 대해서 주의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왜 그러냐 하면 우리들은 출판이나 상연이나 상영 같은 것의 검열을 통하여서나마 어느 정도 그 자유가 허여되어 있었다는 점에 기만되어 이 검열제를 통한 그들의 정책의 본질에 대해서 등한하기 쉬울 것이기 때문이다.
 
5
이제 3ㆍ1 봉기로써 얻은 문화 활동의 근소한 자유를 통하여 총독 정치가 실시한 정책의 가장 본질적인 면을 적기(摘記)하면 다음과 같은 것이 되었다.
 
6
첫째 그들은 해방과 독립을 위한 모든 건전한 의욕을 억압하였다. 이 면에 있어서의 그들의 검열의 혹독함과 활동에 대한 구속은 우리들이 친히 체험한 바 야만주의 그것이었다.
 
7
그러나 둘째로 그들은 봉건적이요 전근대적인 문화의 유물에 대해선 원조와 조장을 아끼지 않았다. 민족 생활의 발전상 하등의 기여함이 없는 봉건 지주층의 문화 예술과 전근대적인 미신, 신앙은 방임 내지 조장되어 봉건적인 낡은 테두리를 깨뜨리고 전전하려는 근대적 발전을 위한 모든 민족적 욕구는 저해되었다. 이러한 봉건적인, 전근대적인 문화의 조장이 마치 민족 문화 발전을 위하여 도움이 되는 듯한 환상을 일부 문화 예술가와 풍속 취미의 전문가에게 주어 온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8
뿐만 아니라 셋째론 자본가적인 시민 문화의 저속하고 야비하고 퇴폐적인 부류에 대해서는 오락이니 순수 예술이니 하는 명목 밑에 적극적으로 조장하는 방책을 썼던 것을 지적치 않을 수 없다.
 
9
그들은 이리하여 허다한 다방과 뒷골목 방황의 문학 청년의 배출을 조장하였고 청년의 심혼을 좀먹는 저속한 연예 오락물을 우리들의 생활 속에 범람시켰다.
 
10
이러한 모든 점은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 민족 문화의 발전을 극도로 저해하였던 결정적인 조건이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들이 저 역사적인 8월 15일을 맞이하였을 때 시롭게 전개할 민족 문화 예술의 재건을 위한 활동의 규범으로서 일본 제국주의 잔재의 청소, 봉건적 잔재의 청산, 그리고 외국 문화의 섭취와 고전 계승의 정당한 방법을 세우기 위하여 국수주의를 배격할 것 등을 내세운 것은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2

 
12
8월 15일은 조선의 문화사상, 획기적인 의의를 가지는 날이 되었었다.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가 남겨 놓았던 모든 독소와 잔재를 일소하고 단일적인 민족 문화의 건설과 완전한 근대적 의미의 예술적, 문화적 창조를 저해하고 방해하는 봉건적, 전근대적인 유물을 깨끗이 청소하고 시민 문화의 퇴폐적이고 저속한 조류를 가지어 버림으로써 우리들의 커다란 희망을 가지고 책정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우리들의 눈앞에 벌어졌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의 퇴진과 함께 그 비호 하에 유지, 배양되어 오던 봉건적인, 전근대적인 모든 요소는 지극히 약체화된 상태로서 고립되었기 때문에 민족 문화 예술 발전의 무한한 가능성은 유사 이래의 가장 정당하고 또 유효한 조건 밑에 놓여졌던 것이다. 한말의 개화 운동으로써도 또는 3ㆍ1의 혁혁한 봉기에 의하여서도 해결되지 못하였던 진정한 근대적 의미에서의 민족 문화와 예술은 비로소 그 자유로운 발전이 보장되었던 것이다.
 
13
그러나 남조선을 뒤덮은 그 뒤에 정치적, 경제적 제정세는 우리 문화 건설의 앞에 거대한 곤란을 초래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우리 예술 문화 발전의 가능성에 대한 보장은 전혀 뜻하지 않았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것을 우리는 단적으로 다음과 같이 지적할 수 있을까 한다.
 
14
첫째로 새로운 친일 반동 세력은 우리 민족 문화 발전의 결정적인 조건인 일본 제국주의의 독소를 일소하는 사업을 곤란케 할 뿐 아니라 그것을 소탕하려는 우리들의 대립물로 화하여지고 있는 것, 다시 말하면 물러간 일본 제국주의 대신의 그와 방불한 정책으로서 우리에게 군림하고 있는 것.
 
15
둘째로 일본 제국주의의 퇴진으로 인하여 고립되었던 전근대적인, 봉건적인 유물이 특히 반동적 지주층과 외래 국제 반동 세력과 새로이 야합함으로써 민족 문화와 민족 예술의 건설을 위한 가능성이 조건을 무력하게 하고 있는 것.
 
16
셋째로 일본 제국주의의 퇴진으로 인하여 일거에 청소될 저속한 오락 정책이 모리배와 친일 재벌과 외래 반동 세력의 노예화, 식민지화 정책과 야합하여 민족 문화 발전의 가능성을 박탁하려고 하고 있는 것.
 
17
넷째로 외래 반동 세력과 국내의 친일파 반동 지주, 친일 재벌과의 연합 세력으로 장악된 남조선의 반(反)인민적 정권은 문화와 예술과 교육의 민주주의적 건설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 되는 언론, 출판, 결사, 집회의 모든 보장을 박탈하여 드디어 우리 문화의 앞에 이 이상 참을 수 없는 위기와 위험을 초래하고 있는 것.
 
18
다섯째로 친일 반동배들이 정권과 문화 기관(학원, 연구, 문화 시설)을 장악한 결과 8ㆍ15 이후의 남조선의 문화 교육 정책은 일제 시대 일본이 패망 직전에 강행하였던 황민화 운동을 본받아 극도의 국수주의적 방책을 채용하고 있어 민족 문화의 고유한 전통이 과학적으로 발전적으로 계승되는 사실이 추장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편협하고 고루한 나치스적 관제적 독단에 의하여 학원과 연구 기관이 황폐화되고 어용 관제배들만의 모리엽관처(謀利獵官處)가 되어진 관계로 외래 문화와 선진 사상의 비판적인 섭취로 새 문화를 향상시키는 사업이 전연 몰각되어 있다.
 
19
그러므로 고위 제6호 문교 정책 자문 제3‘민족 문화 예술 과학 발전 촉진에 관한 대책 여하’의 답신으로 우선 다음과 같은 총괄적인 부분이 문화 발전의 전제적 조건으로 제시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20
“조선에서의 민족 문화 발전의 방향은 첫째로 일제 잔재적인 문화를 숙청할 것.
 
21
둘째로 일체의 봉건 유제를 청소할 것.
 
22
셋째로 민족 고유한 문화의 전통을 발전적으로 계승하여 조선 문화의 토대로서 향상시킬 것.
 
23
넷째로 민주주의적인 외국 문화를 널리 섭취하여 이것을 소화 발전시킴으로써 민족 문화를 급속히 향상시킬 것.“
 
 
 

3

 
25
그러나 이상과 같은 방책에 의하여 문화 발전이 추진된다고 하여도 그것이 기본적을 삼천만 인민 자신의 문화가 되지 않아서는 아무런 의의가 없을 뿐 아니라 또 문화 발전의 무한한 토대가 이루어질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문화가 인민의 문화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주지와 같이 일제 문화 정책의 중요한 특징을 문맹 정책에 있다. 문화를 다대수 인민으로부터 격리시키고 그들의 비과학적 비문명적인 노예 생활 위에 식민지적 착취와 억압의 전당을 세워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8ㆍ15 직후부터 문화 운동이 지향한 바는 문화가 인민 위에 건설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하여는 문화의 대중화와 인민 가운데 토대를 두는 문화의 건설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불행이 남조선에 있어서의 위정 당국은 친일 재벌과 반동 지주의 대변자로 장악되었기 때문에 일제적 통치와 권세와 착취 유지에 위협이 되는 인민의 문화적 향상에 대해서는 계책이 없을 뿐 아니라 이것을 지향하여 싸우는 문화운동의 위에 억압과 방해로 군림하였다. 8할 이상의 문맹은 방기된 채 학생들의 계몽 운동, 문맹 퇴치 운동만이 통제 억압 당하고 인민 대중을 즐겁게 하고 그들을 민주주의적으로 계몽 교육하려는 예술가의 생활 위에는 언제나 방해와 테러와 간섭과 탄압이 뒤따랐던 것이다(1ㆍ30 자택상 고시). 또한 인민 대중이 문화를 향수할 수 있고 문화를 창조할 수 있는 전제가 되는 모든 민주 개혁은 실시되어 있지 않고 또 그들의 생활을 향상시키는 법령은 고려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인민에게 복무하고 인민의 이익을 위하여 복무하려는 문화 활동 위에는 언제난 박해가 뒤따랐던 것이다. 이제 이것을 인민의 이익의 토대 위에 건설하려고 하는 북조선의 사업을 참고로 일별하면 사태가 더욱 명료히 될 것이다.
 
26
첫째로 북조선은 남조선과 달라서 민족의 원수와 인민의 원수는 모든 권력 기관에서 제외되었을 뿐 아니라 민족 생활의 전영역에서 완전히 숙청되었다.
 
27
붉은 군대는 친일파와 번동파를 조금도 원조하지 아니하였을 뿐 아니라 조선 인민들이 자기들의 원수를 청산하는 사업을 극력 원조하였고 그들 스스로가 또한 조선 인민들과 더불어 직접으로 이 신성한 사업을 수(遂)하여 주었다. 즉 붉은 군대는 진심으로 조선 인민을 해방하여 주었다.
 
28
둘째로 북조선은 남조선과 달라서 일체의 권력이 조선 인민들의 수중으로 돌아왔다. 위대한 붉은 군대는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권력을 응취(應取)하여 그것을 자기들의 수중에 넣어두는 대신 그 자리에서 조선 인민들의 정권인 인민위원회로 넘겨 주었다. 그리하여 북조선 인민들은 사실상으로 국가의 주권자가 되었고 북조선만이 조선 인민의 나라가 된 것이다.
 
29
셋째로 남조선과 달라서 민족의 원수를 청산하고 완전히 나라의 주인공이 된 북조선 인민들은 자기들이 희망하는 대로 모든 개혁을 실시할 수 있게 되었다.
 
30
첫째 조선 인민의 8할을 수천 년 동안 무지와 암흑 가운데 속박하였던 토지로부터 농민을 완전히 해방하였다. 그리하여 북조선 농민은 농촌의 주인이 되고 오랫동안 조선의 경제와 문화를 뒤떨어지게 만든 봉건적 관계는 일소되었다.
 
31
둘째 농업 현물세가 실시되어 여태까지 농민 생활을 파괴하고 있던 가혹한 부담을 제거하고 그들의 생활과 문화의 수준을 향상시키도록 하였다.
 
32
셋째 노동자의 8시간 노동제와 사회 보험의 권력을 보장하는 노동법령을 실시하여 그들의 노예적, 식민지적 착취와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였다.
 
33
넷째 장구한 동안 가부장적 봉건 제도 하에 예속되었던 부인들은 그 속박에서 영원히 해방하여 남자와 더불어 민주 건국에 참가하도록 하였다.
 
34
다섯째 일본인과 민족 반역자의 소유였던 중요 산업과 경제 기관을 국유화하여 토지 개혁과 더불어 모든 산업과 경제를 인민적 방면으로 전화시켜 놓았다.
 
35
요컨대 조선 인민들의 피를 흘려 가면서 열렬히 희구함에 불구하고 모든 것이 일제 시대 그대로인 남조선과는 정반대의 현실이 북조선에는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즉 북조선에서는 우리가 말하는 일제 지배의 잔재와 봉건 유제가 완전히 청산되고 전생활이 민주 독립의 대로를 걷고 있는 것이다. 북조선이야말로 진정으로 해방되었고 북조선 인민들이야말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36
남조선과는 정반대로 북조선에서 문화, 예술의 성장을 저지하던 장애물이 제거된 것은 물론 문화, 예술의 급속한 발전을 백방으로 조력할 온갖 조건이 구비된 것이다.
 
37
위대한 붉은 군대는 문화에 있어서도 일본 제국주의의 독소를 일소하도록 조선 인민들을 원조하고 주권을 장악한 조선 인민들은 우선 모든 문화 기관과 예술 시설의 주인이 되었고 그 모든 것은 문화, 예술가들의 손으로 돌아왔다.
 
38
학교는 남조선과 같이 관료나 모리배의 수중으로 가지 않고 진정한 교육자들의 수중으로 돌아갔다. 극장은 남조선과 같이 흥행사나 모리배나 테러단의 자금 조달자의 수중으로 돌아가지 않고 연극인과 영화인으로 수중으로 돌아왔다.
 
39
인쇄소는 남조선과 같이 반동파나 모리배의 수중으로 가지 않고 문학자와 신문 기자와 저술가들의 자유로 사용할 수 있도록 처분되었다.
 
40
종이는 남조선과 같이 반동파나 모리배에게 불하, 점유되지 않고 문화 출판과 예술가들이 임의로 사용할 수 있도록 충분히 배급되어 있다.
 
41
영화 기계나 필름이 없던 북조선에 새로운 영화 예술을 건설하기 위하여 붉은 군대는 기재를 날라 주고 있다. 이러한 제조건이 주어진 동시에 북조선 인민위원회는 민족 문화, 예술의 발전과 부흥을 위하여 문화, 예술가들의 특별한 정치적 안호(安護)를 가(加)하고 그들의 단체들이 자유로 활동할 수 있도록 온갖 원조를 주고 있다. 토지 개혁에 있어서도 문화 건설의 공로가 있는 문화인에게는 특별히 토지와 임야의 몰수를 면제시키고 문학예술총동맹과 그 산하 제단체에 대하여는 광대한 건물과 서적과 교통기관과 부속 재산을 맡기었으며 그 위에 또한 문화, 예술가들의 생활과 활동을 원조하기 위하여 바로 북조선 예술가 후원회가 조직되어서 민간으로부터 또한 문화, 예술가들의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요컨데 장구한 동안의 일제의 질곡으로부터 해방된 조선의 문화, 예술가들이 마음놓고 창조적 사업에 몰두할 수 있고 또한 그들이 즐거이 국가와 인민들을 위하여 활동할 수 있는 온갖 편의와 따뜻한 조건이 국가에 의하여 부여되고 있는 것이다. 실로 북조선에는 문화, 예술의 자유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 부여되고 있는 것이다.
 
42
불과 백명 전후의 작은 단체로 출발한 북조선예술총동맹은 결성된 지 불과 수개월만인 지난 가을에 문학, 연극, 음악, 미술, 영화, 무용, 사진 등의 단일 동맹을 기초로 한 문학예술총동맹으로 재조직되었고 그 때 동맹원 수 일만 오천 명, 대부분의 시, 군에 지부를 가졌어으며, 수천 개의 서클을 가진 거대한 운동으로 성장하여 있다. 이 외에 과학기술총동맹, 교육총동맹, 농촌기술총동맹, 체육총동맹, 보건총동맹들과 같은 총수 수십 만의 회원을 가진 종합단체들을 병립하여서 조선 민족 문화사상 일찍이 보지 못하던 일대 문화적 위관(偉觀)을 보여주게 되었다. 이 단체들이 연합하여서 북조선 문화단체총의회가 결성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문화, 예술의 역사적 대진군은 먼저도 말한 바와 같이 정치 기관의 절대한 원조와 문화 예술 단체에 주어진 각종 특권 급 편의와 이 운동에 종사하는 문화 예술가들에게 주어진 자유에 의하여 수행되어지는 것이다. 이리하여 인민 전체를 문화적으로 향상시키는 만반 사업이 전문가들의 운동과 인민 자신의 자주적인 운동과의 연결 위에 찬연히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43
그러므로 우리는 제문답신으로 계속하여‘다섯째로는 문화가 종래와 같이 일부 사회 특권 계급의 전유물로서 인민과 유리되어 있지 않고 문화가 인민과 더불어 인민의 생활 위에서 참다운 인민을 위한 인민의 문화로서 발전시키게 하는 데 있는 것이다’라고 제기하는 것이다.
 
44
이에 계속하여 서상(敍上)의 총괄적인 전제적 제시 밑에 각각 예술, 과학 발전에 관한 촉진책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 답신의 내용을 이루고 있는 바 이것은 물론 상기한 년간의 2 문화 운동에서 얻은 바 실지 체험 중에서 선진 외국의 실례를 참고하여 짜낸 초미의 대책들이다.
 
 
 

예술 발전 촉진에 관한 대책

 
46
ㄱ. 예술 발전 촉진에 있어서는 첫번째 일제 잔재의 모든 악영향을 일소하고 민족 고유의 예술과 민주주의 조선에 적합한 신예술의 발전 촉진에 대하여 정부는 제반의 대책을 취할 것이다.
 
47
ㄴ. 민주주의적 예술의 발전과 그 활동에 대하여 정부는 완전한 자유를 보장하는 동시에 이에 대한 제반의 원리를 취할 것이다.
 
48
ㄷ. 국립 예술원, 국립 극장, 기타 각종의 예술 기관의 조직과 그 시설을 증대하여 과거와 같이 예술이 일부 특권 계급의 전유물이 됨을 일소하고 인민 전체의 예술이 되고 인민 생활과 호흡을 같이하는 인민적 예술의 건설과 발전을 도모할 것이다.
 
49
ㄹ. 국가적인 각종 예술상을 제정하여 민족 예술의 발전을 촉진시킬 것이다.
 
 
 

과학 발전 촉진에 관한 대책

 
51
ㄱ. 과학원을 창설할 것. 국가의 최고 과학 기관으로서 과학원을 창설하여 과학 연구의 계획과 조직, 외국 과학 이론의 수입, 과학의 대중화 등 과학 발전에 관한 계획과 조직의 제반 사업을 할 것이다.
 
52
ㄴ. 과학 연구에 관한 각종 연구소 내지 연구 조직 창설, 과학 종류별로 국가에서 긴요한 과학 이론 급 기술에 관한 연구의 촉진.
 
53
ㄷ. 라디오 이동 강좌, 강연회, 전람회 급 출판물 등을 통하여 과학 사상 보급에 노력할 것이다.
 
54
ㄹ. 국립 도서관의 설립
 
 
55
정부는 국립 도서관을 설립하여 국내외 도서의 수집 정리 보존과 대중의 도서 이용 사업을 적극 발전시킬 것이며 특히 지방에 있어서는 지방 행정기관의 원조하에 도서관의 개설과 확충에 노력할 것이다.
 
 
56
(『인민평론』8호, 1947년 7월)
【원문】문화 정책 답신안 해설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평론〕
▪ 분류 : 근/현대 수필
▪ 최근 3개월 조회수 : 7
- 전체 순위 : 5490 위 (4 등급)
- 분류 순위 : 1207 위 / 1821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김남천(金南天) [저자]
 
  # 인민평론 [출처]
 
  1947년 [발표]
 
  평론(評論) [분류]
 
◈ 참조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수필 카탈로그   본문   한글 
◈ 문화 정책 답신안 해설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01월 0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