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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하선생방랑기(無何先生放浪記) ◈
◇ 1934년 1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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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2
김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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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無何先生放浪記[무하선생방랑기]
 
2
1934년 11월
 
 
 

1. 서(序)

 
 
4
우리에게는 한때 마음놓고 울지도 웃지도 못하던, 申丹齋[신단재]선생이 말씀한 ‘任情歌哭亦難爲[임정가곡역난위]’하던 시절이 있었다. 가슴에 넘치는 비통에 우리는 벙어리(狂夫[광부])가 아니 될 길이 없었다. 無何[무하]는 이렇던 한 시절의 소산이었으니 그는 곧 者[자]의 모습이자, 독자제언의 모습이 아니었던가? 그는 미쳐, 혹은 거짓 미친 체로 天外隻驅[천외척구], 가엾은 나귀 하나를 벗삼아, 방랑의 길을 떠났던 것이다. 그의 광태와, 狂行[광행]과 광언을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君子[군자] 다만 그의 광증 속에 그의 告[고]하려던 울분과 비애를 읽어주시면, 필자의 소망은 이루었다 하리라.
 
5
四二八三年[사이팔삼년] 二月[이월] 筆者[필자]
 
 

 
 

2. 짐을 묶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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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저녁밥을 먹고 뜰에 앉았으면 흔히 산비둘기 우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가 꽤 구슬프다. 황혼의 산골짜기를 울려 나오는 둔탁한 듯한 그 애조를 들어보면 꽤 처량하다.
 
8
처자를 다 잃은 어느 사나이가 망건을 팔아 술을 사먹고 벼랑에서 떨어져 죽었다. 그 넋이 산비둘기로 태어나서 황혼이면 울어 사람에게 그 원한을 하소연하는 거라 한다. 들어보면 ‘계집 죽고, 자식 죽고, 망건 팔아 술 사먹고’이렇게 들린다. 그쯤되면 신세가 아닌 게 아니라 꽤 고달플 것이다. 그러나 또 들어보면 산비둘기의 울음이 반드시 그의 신세타령만도 아닌 것 같다. 그동안에 다시 살림을 차리고 그 살림이 제법 늘어, 늘어가는 살림 이야기를 자랑삼아 하는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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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집 얻고 자식 낳고 술값 모아 망건 사고’꼭 이렇게 들리기도 한다. 산비둘기 소리는 뜻이 모호하다. 모호하여 그 정체를 알아낼 수가 없다. 말하자면 산비둘기 울음의 뜻은 들을 탓이다. 생각하면, 모호하여 그 의미의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비단 산비둘기의 울음뿐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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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인생이란 놈! 요놈의 뜻이 당초에 알기가 어렵다. 어찌 보면 둥글둥글 수박도 같고, 또 어찌 보면 뽀족비쭉 제법 圭角[규각]도 졌다. 요리 생각하면 요럴 듯 하다가도 조리 생각하면 어느 틈에 조런 탈을 쓰고 앉는다. “요놈!”하고 멱살을 잡고 들여다보면 의례히 칠면조 대가리가 되어 빛이 변한다. 九尾狐[구미호]로 둔갑을 한다. 이런 정체불명의 괴물을 일생의 반려로 타고난 우리의 팔자가 애초부터 우거지같이 궂다. 인생도 봐보면 꼭 볼 탓이다. 그러기에 ‘인생이 요강 같다’는 정의도 그 존재를 주장할 권리가 뚜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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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짐을 묶이며 다시 생각을 해보았다. 암만 생각을 해보아도 결국 인생은 요강밖에 같을 것이 없다. 인생이 요강 같다는 것은 인생에 대한 일대 반역일지 모른다. 그러나 인생이 요강 같다는 사실이 진리임에는 틀림이 없다. 혹 그렇지 않다는 자가 있을까? 그자의 해석은 그자 볼 탓의 해석이다. 내 진리는 어디까지 내 진리다. 진리는 榮毁[영훼]와 賞罰[상벌]의 권 외에 安堵[안도]한다. 반역 여부가 본시 그 眼中[안중]에 있을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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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亞日報[동아일보]」, 1934년 11월 6일)
 
 

 
 

3. 인생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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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요강 같다’는 것은 요새 새삼스레 생각해 낸 것이 아니다. 벌써 20여년 전에 나는 金玉[금옥]같은 이 진리를 발견하였었다. “금옥 같다!” 물론 말이 안 되는 말이다. 금옥이 귀하다는 것이 원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금이 누래 귀하다 하는가? 누른 게 하필 금 뿐이뇨, 옥이 희어 중하다 하는가? 옥 외에도 흰것이 하도 많다. 이유도 없이 세속은 금옥을 귀하다, 중하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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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일종의 우견이다. 그러나 우견은 대개 賢見[현견] 보다 수가 많다. 수덕에 세력이 있다. 세력은 마침내 ‘금옥이 귀하다’는 理非理[이비리]를 理化[이화]하였다. 내 진리를 잠시 금옥에 비하였다. 요컨대, 세속적 우견에 대한 일시적 戱謔[희학] 혹은 阿諛[아유]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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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기회에 이런 커다란 깨달음을 깨달았던고.”하고 깨달음을 얻은 때와 곳을 생각해 본다. 깨달음을 얻은 후에 이미 20여년이 흘렀다. 20여년이란 짧아 보여도 짧은 세월이 아니다. 그동안에 그 때와 곳에 대한 기억이 삭아 버렸다. 다만 삭은 그 자리에 어렴풋한 흔적 하나가 보일 뿐이다. 그 흔적이란 이 깨달음을 얻음이 이미 뒷간에서 되었던 듯한 추측에 가까운 자취다. 결국 추측에 기울어지고 말 정도로 그 흔적이 희박하다. 그러나, 나는 그 흔적의 사실과의 부합성을 믿는다. 하필 왜 뒷간인고? 아닌 게 아니라 나 스스로도 물어본다. 거기엔 이런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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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간이란 본래 퍽 이상한 곳이다. 퍽 신비한 곳이다. 깨달음은 大小經重[대소경중]을 물론하고 대개 이곳에서 생겨난다. 내가 어려서 언문을 터득한 곳도 이곳이다. 전날 하루를 유리알같이 놀아놓고 아침에 講[강]할 일이 켕겨서 생판, 배워만 두었던 글을 외려 들린 곳도 이곳이다. 이곳에 들면, 이곳에 들어 행하는 本務[본무]가 뚜렷이 있다. 그러나 이런 때에 이곳에 드는 내 목적이 그 본무 담당에 있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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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만 이곳에 숨은 신통력의 가호를 얻어 한시 바삐 내 급함에 구해주기를 바랬었다. 혹 본무 이행의 資力[자력]이 절대로 결핍된 때도 없지안하였다. 이런 때라도 나는 이곳에서 찾을 절차를 분명히 찾았었다. 절차를 분명히 찾아 절차에 합당한 자세를 취하면 신통력의 가호는 대개 내게 내리는 것이다. 까맣게 사웠던 글줄이 하나씩 둘씩 다시 깨달아질 때, 아─ 그 때의 기쁨이 어찌 雲歸[운귀]하는 金剛[금강]의 隱現[은현]을 보는데 비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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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경험으로 뒷간의 신통을 믿는다. 우리의 정신문화가 이곳에서 시작되었을 것을 믿는다. 철학의 발상이 뒷간에서 되었을 것은 그 사실에 대한 毫末[호말] 만한 의심을 용납할 여유조차 내 심경엔 없다. 철학은 정신문화의 왕이다. 오묘의 극치다. 이 오묘한 문화를 배태할 만한 복지가 뒷간 외에 또 있으리란 상상은 그 상상에 천앙이 내려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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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간의 덕이 이처럼 크다. 그러나 산에 들어 산의 높음을 못보는 법이다. 噫[희]라, 사람은 뒷간의 하해같은 덕을 얻고 오히려 그 덕을 알지 못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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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亞日報[동아일보]」, 1934년 11월 7일)
 
 

 
 

4. 깨달음을 얻은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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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은 법열을 동반한다. ‘인생이 요강 같다’는 깨달음을 얻은 순간, 나는 내 심령이 법열에 도취됨을 느꼈었다. 얄미웁게도 아롱대는 인생이러니, 요놈의 정체가 판정된 것이다. 九尾狐의 꼬리가 보였다. 앓든 이가 마침내 빠졌다. 미친 개를 범이 물어 갔다. 그 순간 나는 몹시 시원하였다. 그러나 ‘시원’은 실로 순간적이었다. 시원은 부싯불같이 목숨이 짧았다. 깜박하고 시원이 사워버렸다. 다음 순간이다. ‘섭섭’이 구름 일 듯 하였다. 공허로 마음이 찼다. 가슴은 적막의 검은 바다가 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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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아!”하고는 고함을 쳤다. 마치 물에 빠진 어린애를 부르듯 하였다. 무엇이 되리라 하던 내 인생이었다. 그 인생이 결국 요강이 되고 말았다. 결국 요강밖에 못되고 말았다. 절망은 이런 때 와야 한다. 슬픔이 나를 시달렸다. 하늘로 눈을 돌렸다. 눈물 때문에 하늘이 콩죽 같았다. 눈물을 씻고 다시 생각을 해보았다. 슬프다. 인생은 역시 요강밖에 될 것이 없었다. 깨달음은 변전을 초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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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낡은 눈알을 빼고 깨달음의 瞳子[동자]를 박았다. 그 동자를 통하여 세상을 보았다.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에겐 깨달음이 없었다. 깨달음의 은총은 그들의 지붕을 피해 내렸던 것이다. 그들의 말씨에 깨달음이 없고, 그들의 걸음걸이에 깨달음이 없고, 그들의 파닥지 빛에 깨달음이 없었다. 깨달음은 내 독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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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막에서 도깨비가 장난을 할 때가 있다. 그날 밤인데, 별달리 게가 잘 내린다. 게잡이는 입이 헤 해졌다. 열이 나서 게를 건져 내었다. 닭이 울 때까지 건져 내었다. 망태가 그들먹하다. 내일의 자랑을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었다. 쇠똥덩이 만이 한망태다. 그제야 도깨비에게 속았다. 욕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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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이 없는 사람들은 자꾸 게를 잡아넣는다. 퍽들 좋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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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실 망태에 쇠똥덩이 밖에 담기는 것이 없다. 측은해졌다. 내 맘에 자비가 왔던 것이다. 자비는 깨달음의 配偶[배우]이다. 깨달음이 있는 자비가 없을 수 없다. 상추쌈과 고추장의 관계, 깨달음과 자비의 교착성을 이때 발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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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하자! 마음이 부집쇠 죄듯 하였다. 깨달음을 얻은 이의 발심이다. 발심은 샘물의 속성이 있다. 한 번 솟기 시작한 발심을 막을 힘은 없다. 내 발심은 自重[자중]을 대포알같이 발사해 버렸다. 잔인은 주린 무리 앞에서 혼자서만 진미를 먹는 것이 된다. 자비와 잔인은 양립할 수 없는 물과 불이다. 깨달음을 얻는 사람에겐 잔인이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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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에 수없는 주린 무리가 있었다. 나 혼자만 滿盤珍羞[만반진수]를 대했던 것이다. 나누자! 내 맛있는 것을 주린 저들에게도 나누어주자! 나는 깨달음을 전하러 나섰다. 이는 내 사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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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亞日報[동아일보]」, 1934년 11월 8일)
 
 

 
 

5. 어디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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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짝 짐을 나귀등에 실었다. 나귀는 귀를 쭉 뻗치고 툭툭 굽을 친다. 며칠동안의 停息[정식]과 권태를 벗어남이 진심으로 기쁜 모양이다. 고삐를 끌러 나귀등에 얹었다. 자! 나귀야 이젠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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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지금 이 나귀 하나가 있다. 나귀등에 실린 62원 17전 어치의 荒貨[황화] 뭉치가 있다. 댓자 남짓한 몸뚱이, 이 몸뚱이는 물론 때묻은 한벌 옷, 그리고 이 번대머리를 덮은 ‘마래기’한 개가 있을 뿐이다. 이것이 내 40평생이 남겨주고 간 유물의 총화다. 空山[공산]의 一墳土[일분토]되기 전 나는 이것만을 경호할 의무가 내게 남았을 뿐이다. 나귀를 앞세우고 수십보를 걸으니 골목의 끝이다. 동서로 달린 큰 길이 팔을 벌리고 앞을 막아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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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갈까? 나는 이것을 생각치 아니하였다. 생각할 필요가 없는 까닭이다. 돌아보아 하늘아래 땅 아닌 데가 어데뇨. 하늘아래 땅에 가서 못 쓸 데가 어데뇨. 다 안가도 좋은 데다. 어디로 가도 좋고, 어디로 아니가도 역시 무방하다. 仁王山[인왕산]을 넘는 구름 한조각이 駱山[낙산] 편을 향하고 달아난다. 나귀야 저 구름을 따라 우리도 동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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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10시 아스팔트 위에 초가을 얇은 빛이 깔렸다. 고객없는 상점들은 각기 제 전방의 무료만을 지키고 있다. 점원들의 우리 행색의 유심한 향락은 그들의 권태적 고독을 해탈하려는 불가항력적 노력이었다. 우리가 전신주 사이를 지나기 전에 우리의 모습이 그들의 기억에서 말끔히 씻겨졌을 것은 물론이다. 뉘집 담 안 소나무 위에 까치 한 마리가 앉아 “깟 ― 깟”소리를 친다. 까불대는 꽁지가 우리 편으로 향한 것을 보며 우리에게 대한 욕은 아니다. 나귀야 우리 시비없이 이 거리를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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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거리다. 그대로 두었으면 나귀는 길든 버릇에 그대로 그대로 동으로 갔을 것이다. 십자거리를 막 건넜을 때다. 공 하나가 데그르르 굴러 나온다. “장난만 하면 젤이냐”하는 여인네 고함이 들린다. 애놈이 공 장난을 하다 꾸중을 듣는 모양이다. 공은 하필 우리 꼴을 관망하는 발바리 다리를 쳤다. 발바리는 의외의 습격에 전 신경이 튀여 올랐다. 악,악,악, 발바리는 애매한 나귀에게 그 분을 푼다. 나귀는 요런 ‘히틀러’를 기피하는 평화주의자다. 나귀는 슬그머니 등을 오른편으로 돌린다. 이리하여 우리는 남으로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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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를 남행케한 원인을 추구한다. 추구엔 끝이 없다. 실 엉키듯한 그 몹쓸 관계와 관계, 공, 애놈, 애놈의 장난의 기호성, 어미, 어미의 장난, 혐오증, 발바리, 발바리의 다리 위치와 공의 진로, 발바리의 신경조직 내지 그의 짖음벽, 나귀의 무사주의, 무수한 존재의 시간적 偶合[우합], 무한한 X와 Y, 해답이 없음이 이 방정식의 해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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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亞日報[동아일보]」, 1934년 11월 10일)
 
 

 
 

6. 서울아 잘 있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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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으론 漢江[한강]. 나는 잠시 다리를 난간에 의지하여 늠름한 강류를 굽어보는 것이다. 오늘도 어제같이 젊은 江水[강수], 바람을 배불리 싣고 그 위로 혹 오고 혹 가는 布帆[포범]이 저 열인가 또는 스물인가. 그 한가함이 강과 함께 길고 길고나. 나는 건강에 파열되려는 몸을 강 가슴에 퍼저었다. 물굽이는 내 몸을 어루던 것이다. 물의 감촉이 신경의 말초를 노크할 때 내 세포의 하나 하나는 얼마나 그 淸冽[청렬]에 雀躍[작약]하였던고. 가장 싯퍼렇던 20대 시절 나는 내 동무와 뱃전을 치며 이 강을 오르내렸다. 그때의 우리의 노래는 높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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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넘치던 죄없은 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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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뿐이뇨? 보라, 저 峨峨[아아]한 山容[산용], 우쭐우쭐한 저 산봉우리의 어느 하나가 드러내놓지 않은 봉우리뇨? 저 후유듬한 산마루들, 그 마루의 어느 하나가 재 걸터앉지 아니한 안장이뇨? 베개되어 준 바위, 목을 축이던 샘, 향 뿌려 코를 고여준 꽃과 잎, 솔아, 단풍아, 눈아, 얼음아! 아 ─ 내 北漢[북한]아, 道峯[도봉]아, 나는 그리운 네 이름들을 두고 정처없는 이 길을 떠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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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 요강 같은 내 반생의 보금자리야, 나는 그동안 몇 번이나 네 품에서 한숨을 지었던고. 회의와 오뇌의 십자로를 방황하였던고. 몇 번이나 머리를 쥐어뜯고 몸부림을 하였던고. 哄笑[홍소]하였던고. 필경 인생이 요강같음을 알고 몇 번이나 눈물고인 베개 위에 잠이 들었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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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무덤이여, 내 동경의 쓰레기통이여. 이제 나는 웃음을, 네 품을 벗어나 정처없는 이 길을 떠나는 것이다. 전날 모함의 首魁[수괴]가 되어 충실히 함정을 파고, 다음 날 그 희생의 귀에 吊慰[조위]의 ‘재즈’를 불어주는 알뜰한 우애의 모범이여! “호수 같은 그대의 눈동자, 그 밑 진주캐다 이 목숨이 시운들 어떠랴?”과연 아름다운 노래다. 생명의 投賣商[투매상], 너 ‘까드데기’같은 순정의 시인이여! ‘쇼윈도우’의 송곳끝 같은 유행, 핏빛 목도리에 눈이 팔렷네. 잘못 지나는 쇠입을 마추고 용서를 비는 거룩한 귀부인이여! 회칠한 무덤, 눈썹그린 너 신사여, 유지여! 개기름 같은 추파를 던져 불치의 구역증을 남겨주고 간, 너 구원의 醜婦[추부]여! 요염과 음위의 시궁창, 세기말의 뒷골목이여, 소음과 混繩[혼승]의 간질적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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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 설렁탕집 파리여, 행랑방 빈대여, 서울의 動[동]과 靜[정]이여! 서울의 추와 악이여, 요강 같은 존재들이여! 그 존재를 받쳐논 지린내나는 소반이여! 지금 나는 너의 소굴을 벗어나 정처없는 길을 떠날 때 코를 풀어 네 앞에 던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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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亞日報[동아일보]」, 1934년 11월 11일)
 
 

 
 

7. 백리금파(百里金波)에서

 
 
49
고개를 넘어 산허리를 돌아 내렸다. 산 밑이 바로 들, 들은 그저 논 뿐의 연속이다 두렁 풀을 말끔히 . 깎았다. 논배미마다 수북수북 담긴 벼가 연이어서 백리금파를 이루었다. 여기저기 논들을 돌아다니는 더벅머리 떼가 있다. “우여우여”소리를 친다. 혹 “꽝꽝”석유통을 두드리기도 한다. 참새들을 쫓는 것이다.
 
50
참새들은 자리를 못붙여 한다. 우선 내 옆에 있는 더벅머리 떼가 “우여”소리를 쳤다. 참새떼가 와르르 날아 났다. 천 마리는 될 것 같다. 날아간 참새들은 원을 그리며 저편 논배미에 앉아본다. 저편의 놈들은 날아 앉는 새떼를 보았다. 깨어져라 하고 석유통을 두들긴다. 일제히 “우여”소리를 친다. 이 아우성을 질타할 만한 담력이 참새의 작은 심장에는 있을 수가 없다. 참새들은 앉기가 무섭게 다시 피곤한 나래를 쳐야 한다. 어디를 가도 “우여우여”가 있다. “꽝꽝”속을 헤매는 비운아들이다. 사실 애놈들도 고달플 것이다.
 
51
나와 내 나귀는 이 광경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나귀 등에서 짐을 내려놓고 그 속에서 ‘오뚝이’하나를 내었다. “얘들아 너희들 이리 와서 이것 좀 봐라”하고 나는 ‘오뚝이’를 내들고 애놈들을 불렀다. 애놈들이 모여든다.
 
52
“얘들아, 이놈의 대가리를 요렇게 꼭 누르고 있으면 요 모양으로 눈 채 있단 말이다. 그렇지만 한번 이놈을 쓱 놓기만하면 요것봐라, 요렇게 발딱 일어선단 말이다.”나는 두 서너 번 ‘오뚝이’를 눕혔다, 일으켰다 한다.
 
53
“이것을 너희들을 줄 테다. 한데 씨름들을 해라. 씨름에 이긴 사람에게 이것을 상으로 주마”
 
54
애놈들은 날래 수줍음을 버리지 못한다. 어찌어찌 두 놈을 붙여 놓았다. 한놈이 ‘아낭기’에 걸려 떨어졌다. 관중은 그동안에 열이 올랐다. 허리띠를 고쳐매고 자원하는 놈이 있다. 네 다섯 승부가 끝났다. 아직 하지 못한 애놈들은 주먹을 쥐고 제 차례가 오기를 기다린다. 승부를 좋아하는 저급한 정열은 인류의 맹장 같은 운명이다. 결국 마지막 한놈이 이겼다. 나는 씨름의 폐회를 선언하고 우승자에게 ‘오뚝이’를 주었다. 참새들은 그동안에 배가 불렀을 것이다.
 
55
이리하여 나는 千石[천석]꾼의 벼 두 되를 횡령하고 재산의 7전 여를 손해보았다. 그러나 천 마리 참새는 오늘 밤 오래간만에 배부른 꿈을 꿀 것이다.
 
 
56
(「東亞日報[동아일보]」, 1934년 11월 13일)
 
 

 
 

8. 농담과 소화제

 
 
58
애놈들의 씨름회를 해산하고 짐을 묶어 나귀등에 실으려니 짐이 별안간 무거워졌다 문득 점심을 . 못먹었다는 생각이 난다. 배가 별안간 고파진다. 해가 서쪽으로 칠푼은 기울었다. 저녁 겨뚜리 때다. 배고픈 것 까지를 잊었었다. 그 정도로 씨름에 열중하였던 것이다.
 
59
“음식점이 예서 얼마나 되느냐?”애놈들 더러 물으니 “한 5리 되지요.”하는 대답이었다. 기실 걸어보니 십리가 꽉 찬다. 마침 떡집이 있다. 단숨에 두 그릇을 먹고 물 하나 남기지 않고 먹어 버렸다. 나귀에게는 콩과 수수를 사 주었다. 떡을 먹고 나니 해가 뼘만 밖에 못 남았다. 다리도 좀 아닌 게 아니라 아프다. 기다리는 사람 하는 없는 우리 길이다.
 
60
어디를 가나 남의 집 신세를 져야 할 지금의 우리 팔자다. 아무데서나 드새 가기로 하자 하고 막 “하룻밤 새 가도 좋소”해보려던 때다. 떡집 어멈이 냉수를 떠 가지고 왔다. 물 그릇을 내게 주며 “영감님 왜 질뚝백이는 쓰셨누?”한다. 내 ‘마래기’를 조롱하는 것이다. “어! 절뚝백이라니 늙은이 ‘마래기’를 보고 그 무슨 고얀 소리인구.”“마래기? 마래기가 뭐예요?”“마래기란 이렇게 생긴 게 마래기지.”나는 내가 쓴 것을 가리켰다.
 
61
“조선에 모자란 문자가 생기기 전엔 마래기란 말이 있었거던……대개 이렇게 생긴건데 이를테면 모자지! ”
 
62
“애구 이상해라. 그런 걸 쓰구 다닐 때도 있었구먼요. 영감님 어디 좀 봐요.”하고 보라 마라 하기도 전에 마래기를 훌떡 벗긴다. 버르장머리가 아주 없다. 그러나 이럭저럭 한 때 웃어보는 것이다. 떡집 어멈은 마래기가 벗어지자 “하하”하고 배를 움켜쥐며 드립다 웃어댄다. 한참만에야 숨을 돌려가지고
 
63
“영감님 닭은 뭘로 튀기셨어요?”하고 별안간 아닌 밤에 홍두께를 내민다. “닭을 뭘로 튀겼냐니. 그건 또 무슨 소리?”“뜨거운 물을 혼자 쓰셨으니 말이죠.”내 번대머리를 놀리는 것이다. 떡집 어멈은 또 깔깔 웃는다. 마래기통에 죄없는 번대머리까지 횡액을 당하는 모양이다.
 
64
떡집 어멈은 웃음을 뚝 그쳤다. 천연덕스럽게 정색을 한다. “영감, 담배 잡수세요?”“아니 못 먹어.”
 
65
“담밸 잡숴야 심평이 되십니다.”“건 어때?”“영감님 이마가 장판방이거든요. 방에 불을 안 때어주면 견딘답니까? 신세가 궁하지요. 이치가 안그래요?”
 
66
딴은 그럴 듯도 하다. 농이란 한때의 소화제임엔 분명하다. 그러나 과하면 심정이 나기 쉽다. 나는 지금 얻은 잠시의 유쾌를 보존키 위하여 이 집을 떠나기로 한다.
 
 
67
(「東亞日報[동아일보]」, 1934년 11월 14일)
 
 

 
 

9. 물레대가리씨를 방문

 
 
69
배가 두둑하면 마음도 자연 누굿해진다. ‘뱃심’이란 말이 그런고로 생겼다. 그러므로 배부르고 ‘뱃심’없는 놈이 없고 ‘뱃심’있고 배부르지 않은 놈이 없다. 나는 떡 두 그릇에 바지괴춤이 봉긋해졌다. 설마 길이 있고 인가가 없으랴? 인가가 있고 한뎃 잠을 자려 하는 막연한 ‘뱃심’으로 나귀를 앞세우고 떡집을 떠났다. 걸어보니 길은 있되 의외로 집이 없다. 동시에 뻗어나온 산모퉁이를 안고 근 한 시간을 돌았다. 집 커녕 검불도 없다. 그럭저럭 어스름해졌다. 땅거미가 진다. 길가에 집인 듯한 것이 보인다. “됐다”하였다. “그러나, 왜 불을 아니켰뇨?”하고 자세히 보니 상여집이다.
 
70
아주 캄캄해져서야 불 비친 방문 하나가 반한 데를 왔다. 불빛은 큰 길가에 꽤 떨어져 있었다. 푼새로 밭두둑 길을 더듬어 겨우겨우 불 반한 집을 찾아들었다. 나귀는 쓰다 달다 말이 없이 내 뒤만 따른다.
 
71
“여보 말씀 좀 물읍시다.”하고 나는 볼 반한 집 사립문을 삐걱 열었다. “거 누구요?”하고 반한 방문이 열리며 물레만한 머리 하나가 나온다. 물레대가리 뒤로 어른대는 다른 대가리도 5, 6개 있다. “예, 지나가는 사람요, 지나가다가 마침 날이 저물어 그러는데 하룻밤쯤 쉬어 갈 데가 없겠소”“하룻밤 쉬어 가자구요, 미안하지만 틀린 것 같소”“웬만하거던 하룻밤쯤 드새게 해주구려.”나는 부득이 청을 해 볼 밖에 없었다.
 
72
“당신 보다시피 삼간집 한 채 밖에 없는 동린데, 마츰 우리 마누라 사돈의 구촌되는 공서방네 내외가 공서방 안으로서의 진외칠촌 조카를 데리고 서울로 가다가, 가는 길에 내 집에 들렸단 말요. 공서방하구 공서방의 안으로서 하고 내외는 공서방의 안으로서의 진외칠촌 조카를 데리구 아랫방에서 쉬기로 하구, 나는 나하구, 우리 마누라하구, 두 내외가 우리집 애놈들 넷 하구, 여섯식구가 웃방에서 자기루 했단 말이오. 객실이라군 웃방 하나밖에 없는 터에, 객실에서 쥔이 자게 되니, 어디 객실이 또 있어야 아니하우, 섭섭은 하나 당신의 일수니 이번에 갔다 이담에 오슈”
 
73
“이담에 오는 건 이담에 오는거구……우선 오늘 저녁 일이 막막해 그리우…… 혹 다른 데 가서라도 쉴만한 데 없겠오?”“글쎄요. 거참 안되긴 했는데…… 가만있자.”하고 물레대가리가 고개를 기울인다. “웃말로 가보라지.”하는 여편네 음성이 들린다. “그래, 그말이 옳아, 여보슈 웃말로 가보슈.”“어디로 가면 웃말이오?”나는 웃말 가는 길을 물었다.
 
74
“우로 가면 웃말인데…… 아 ─ 초행이래 모를 게요. 자세히 일러드릴테니 …… 자 ─ 들으슈.”하고 물레대가리가 문지방을 넘어 밖으로 나온다.
 
 
75
(「東亞日報[동아일보]」, 1934년 11월 15일)
 
 

 
 

10. 괴이한 능변(能辯)

 
 
77
“자 ─ 저 거름터 밑쪽으로 간단 말요.”하고 물레대가리는 제 힘만 여겨 뵈도 않은 거름더미를 보라 한다. “저쪽으로 한참 올라가면 다리가 나섭낸다. 그게 바루 동네부군 나무를 베논 버드나무 다리요. 다리를 건너면 ‘코주부바위’요, 코주부같애 코주부바윈데…….”물레대가리는 암만해도 나를 올빼미나 부엉이로 아는 모양이다.
 
78
“코주부 바위가 나서거든 코주부바위 쪽으로 가면 딴 데요. ‘코주부바위’쪽으로 가지 말고 ‘코주부바위’아닌 쪽으로 간단 말요. 그 쪽으로 가면 처음으로 나서는 집이 첫째 집인데 그게 간난네집, 그 담집이 둘째 집인데 그게 간난이네 이웃 집이구 그리구 ─ 그리구 ……가설랑은…… 고 담집이 셋째 집. 아…… 그 집이 무슨 집이드라…….”“지난 겨울에 수수팥떡 해 먹다 불낸 집이지 무슨 집야!”하는 두번째 여자 음성이 들린다.
 
79
“오라오라, 그게 참 수수팥떡 해 먹다 불낸 집이렷다. 그리구 그 담 집이 넷째, 담이 다섯째, 고담집 이니까 바루 여섯째 집이로구만…… 안 그래…… 여보슈, 그 집을 가서 이것이 여섯째 집인데 이것이 쫄쫄이 김선달 네 집이냐구 찾으슈. 사람이 있으면 나올테니 하룻밤 자구 가자구 해보슈, 재면 잘 수 있을게요…… 그렇지만 그 쫄쫄이가 원 재줄라구…….”
 
80
물레대가리는 머리를 외로 튼다. 장님 팥 밭 짓때기듯 푸념을 해놓고 급기야 ‘원 재 줄라구.’란 친구의 後氣[후기]가 너무 부족하다.
 
81
“왜 잘 재지 않는 집인가 보구려.”“원체 때보가 되서…… 원체 늙은 꼽재기가 돼서…… 근처서 김쫄쫄이라면 모를 사람이 없단 말요, 게다가 괴퍅해놔서 꼭 혼자만 잔단 말야, 모르지만 안 재기가 쉬리다. 가봐서 안 재거든 또 와보구려.”
 
82
물레대가리는 그 말의 유창이 雨後[우후]의 朴淵[박연]인양 물병을 거꾸로 세운듯 하다. 웃말 김쫄쫄이네 집을 일러주기에 滔滔數百言[도도수백언]을 서슴치 않고 낯 지른다. 그는 간난네 다음 집이 간난네 이웃집 됨을 알고 재우면 잘 수 있을 것까지를 안다. 그 變舌[변설]의 能[능]과 두뇌의 명석이 서울 하고도 복판 修養大講演會[수양대강연회] 단상에서 수천 관중을 警醒[경성]하던 대웅변가에 비길 만하다. 오늘 저녁의 웅변가는 “여러분” 하고 청중을 간곡히 부르던 것이다.
 
83
“여러분, 우리가 공부를 아니하면 바느질, 가위질, 인두질을 아니하면, 밭을 아니 갈면, 논을 아니 매면, 반들대면, 설렁대면, 일을 안하면, 놀면… 여러분 우리가 돈을 어떻게 법니까? 돈을 아니 버니 돈이 없는 지라, 돈이 없으니까 쌀 살 수 없고, 나무 살 수 없고, 된장·간장·고추장 단것두 살 수 없고, 靈光[영광] 굴비도, 南陽[남양] 굴젓도, 元山명태도, 黃州[황주] 사과도, 平壤[평양]하면 냉면이라, 大邱[대구]하니 湯飯[탕반]이요, 江華[강화]라 새우젓에, 동대문 밖 鰍湯[추탕]이며, 별관 뒤 갈비국, 섭섭하나 도모지 사먹을 도리 매우 없읍니다. 깨복숭이도, 고추가루도, 맷돌도, 절구도, 笙皇[생황], 洋琴[양금], 쇠피리젓대 나는 북장구 … 아차 실례 많습니다. 하옇든 아무것도 못삽니다. 우리 입에 널 것 없읍니다. 목에 지날 것 없읍니다. 食道[식도] 운수 정지하고 위 불경기 됩니다. 창자 빈탕이라, 변소에 갈 실력 없읍니다. 눈은 가물, 귀는 앵앵, 정신이 뱅뱅 뱅글뱅 물레같이, 팽이같이 바람개비같이, 자동차 바퀴같이 돌아갑니다. 결국 밥 숟갈 놉니다. 다리 뻗습니다. 턱을 까붑니다. 딸각, 아 ─ 고만 고택골, 彌阿里[미아리], 弘濟院[홍제원] 가야 합니다. 즉 우리는 웃읍니다.”
 
84
웅변가는 한숨을 쉬었다. 벽이 무너져라 하고 청중은 손뼉을 친다. 나는 오늘 밤의 웅변가와 물레대가리와의 伯仲[백중]을 알 수가 없다. 불세출의 ‘데모스테네스’를 草土[초토]에 묻어둠은 얄궂은 운명이나 원망하려니와, 이런 獅子吼[사자후]에 대한 ‘無感[무감]의 殘壘[잔루]’를 고수하는 내 老鈍[노둔]은 이를 어이하면 좋을고?
 
 
85
(「東亞日報[동아일보]」, 1934년 11월 16일)
 
 

 
 

11. 쫄쫄국(國) 공격

 
 
87
나는 물레대가리의 臥牛出糞的[와우출분적] 指路[지로] 연설덕에 별 고생이 없이 쫄쫄이 김선달네 집을 찾아 들었다. 오는 길에 과연 다리 하나가 있었다. 물레대가리의 이른바 ‘府君[부군] 마마’의 遺骸[유해]였을 것이다. 수백년 동안 동네 수수점병을 독차지했던 府君大神[부군대신]이 오호! 통재, 애재, 석재라. 오늘의 다리발판이 되어 무심한 나귀 굽에 그 배인지 등인지를 긁히는 것이다.
 
88
이를 보면 盛衰隆替[성쇠융체]란 반드시 인생계의 특허품도 아닌 모양이다. 昔日[석일]의 ‘서슬’에 비하여 ‘마마’의 而今冷落[이금냉락]이 너무 심치 않으냐? 나무토막일망정 회고의 혈루가 없지 못할 것이다. ‘코주부바위’는 지금이 洞中[동중]이련만 夜深不知處[야심부지처]라 용안을 뵙지 못하고 훌훌히 지났다. 천추에 못 가실 기막힌 유한인저!
 
89
日月[일원]같은 쫄쫄이의 위광, 令名[영명]이 인근에 자자하다. 물레대가리의 그의 웅변주머니를 털어 ‘때보’‘꼽재기’의 귀한 보물로 쫄쫄이의 머리를 꾸민 것이다. 명성이 이만하면 보물의 위대를 넌지시 추측할 만하다. 초범적 걸출일 것이 분명하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야 한다. 設陣[설진]은 敵勢[적세]에 응해 하는 것이다. 상대방은 一浠薄[일희박]의 성웅이다. 陳圖[진도] 밖에 ‘인정’과 ‘눈물’을 깡그리 몰아 내는 쫄쫄 선생이신지라, 섣불리 굴다간 初訪[초방] 南陽[남양]의 둘째 玄德[현덕]되기가 제격이다.
 
90
칠야초로에 一顧[일고]한 보람없이 쫄쫄선생의 지팡이 신세나 진다면 내 꼴도 꼴이려니와 암행한 關張[관장] ─ 이 아니라 나귀 면목이 미안하다. 쇠뿔은 단숨에 빼고 부집은 쇠를 봐 달궈야 한다. 나는 오는 동안에 대강 ‘쫄쫄성(城)’攻取[공취]의 전략을 세우고 마음 들메를 하였던 것이다. “못 뵌새, 평안하쇼?”이것이 내 첫 함성이었다. ‘쫄쫄국’(國)에 대한 선전 포고다. 나는 이미 ‘쫄쫄국’의 툇마루까지를 점령하였다. 선수를 써 적에게 行伍收拾[행오수습]의 여가를 주지 않는 것은 필승의 비결이다. 六韜三略[육도삼략]에도 뚜렷이 적혀 있다.
 
91
‘나폴레온’이 마침 파리까지 빌어 먹으러 온 청나라 거지에게 이 비방을 배워 가지고 급기야 전 구라파를 ‘까래방석’을 만든 것은 나만이 아는 佛宮秘話[불궁비화]다. 축구시합에 상대방의 무릎을 까는 것은 오로지 이 전략응용에 불과하다. 그들은 후생 ‘나폴레온’임에 틀림이 없다. 싸우면 이기라 한다. 이것이 학교의 최초, 최종, 최중, 최대의 요구다. 싸워 진다면 이 요구를 저버리는 게 된다. 교문에 똥칠을 하는 셈이다. 한 학교의 敎育意家[교육의가]를 雙眉[쌍미]에 졌으니, 어떻든 이겨야 한다. 속단을 책할 여유가 없다. 부득이 비방을 쓰게 된다. 비방을 쓰니 자연 상대방의 ‘초대뼈’에 금이 나는 것이다.
 
 
92
(「東亞日報[동아일보]」, 1934년 11월 17일)
 
 

 
 

12. 불원천리하고

 
 
94
“웬 양반요”하고 ‘상투꼬부랭이’하나가 불을 내든다. 첫눈에 쫄쫄일시 분명하다. 불빛에 비치는 그 상판이 과연 근처의 명망에 오를 만하고 ‘물레대가리’의 칭찬을 받을 만하다. 老狗通廊[노구통랑]도 그럴 듯하거니와 飢狗望側[기구망측]이 알관주 자리다. 쫄쫄이는 “웬 양반요”의 외마디 소리를 치고는 벙어리 호적을 만났는지 뒷 마디가 없다. 죽어가는 알병아리처럼 입을 딱 벌린 채 눈만 멀뚱댄다. 불의의 돌변을 당한 쫄쫄이의 간, 염통, 부아, 콩팥이 돌땅맞은 송사리떼처럼 갈팡질팡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모양이다. 명망에 비하여 의외로 쓸개가 적다. 한참만에야 겨우 부스러진 정신 조각을 모았는지, “웬 양반이요? 응 대체 댁이 누구요.”하고 반 발악을 쓰고는 발딱발딱 숨을 저절로 쉰다.
 
95
“누구 할 것 있오. 지리산 구름처럼 海東靑[해동청] 보라매처럼, 이리저리 떠도는 행객이오, 오늘은 충청도, 내일은 경상도로 떠도는 몸이라, 가는 데가 고향이고, 자는 집이 내 집이요, 지나가다가 마침 날은 저물고 주막은 멀고 멀고하기에 귀댁 소문을 듣고 왔소이다. 비록 삼천 식객은 없으실망정 나그네 잘 대접하시고 인심 후하기로 인근에 이름이 있으시드군요…… 그래 불원천리는 아니나 이렇게 찾아 왔소이다. 다 이렇게 만나는 것도 천생연분이지요. 하옇든 어찌 하시지 말고 하룻밤 신세를 지게 해주슈.”
 
96
나는 신들메를 끌렀다. 그리고 느닷없이 문을 막아선 쫄쫄이를 옆으로 밀치며 선뜻 방안으로 들어갔다. “방이 과히 좁진 않구먼요. 이만하면 둘 아니라 셋도 넉넉히 자겠소이다.”하고는 방안을 둘러 보았다. “어, 참 인사가 늦었소이다. 뵌적 없읍니다. 쥔장이 뉘 댁이신지요.”“뉘 댁이라니, 뉘 댁은 알아서 무엇하오.”“그래도 그럴 수가 있나요. 하룻밤을 자도 만리성을 쌓는다는 말이 있는데, 자고 가면서 쥔 양반의 성명을 모른대서야 어디 인사가 됐오.”“잊어버려 모르겠소.”“허, 그것 똑 나와 비슷하외다. 그려, 이 사람 역시 조상적에 물려준 성명 세 자는 귀찮기에 다 떼버렸소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나를 부를 때에 그래도 무에라 아니 부를 길이 없어 혹 無何[무하]선생이라고 부르지요. 쥔장도 그렇게만 알아두슈.”
 
97
“무하구 급살맞은 개고 간에, 남의 집을 더군다나 밤에 쥔의 들어오란 말도 없이 제집처럼 들어오는 인사가 어디 있오. 그런 법이 당초 어디 있느냐 말요, 응, 불한당이기 전에야 이럴 법이 어디 있담.”“괴치 않은 말씀요. 그러나 다행히 불한당은 아니니 그 점은 맘을 노슈”“여보 불한당 전에야 이런 법이 어디 있소. 응,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 말요.”“허, 쥔장이 자꾸 법, 법 하시는 걸 보니 법을 꽤 즐기시는 모양이군요. 그렇게 좋아하는 법이면 법 이얘기를 좀 해드릴테니 들어보슈.”하고 나는 법타령을 시작하였다.
 
 
98
(「東亞日報[동아일보]」, 1934년 11월 18일)
 
 

 
 

13. 신판(新版) 법타령

 
 
100
철책 밖에서 ‘놀리는 놈’이 “서랏”소리를 친다. 柵[책]에 든 범이 일어선다. 앉으라 “왝”한다. 범은 쭈그려뵌다. 누우라 하니 누웠다가 굴으라 하니 등을 땅에 대고 데굴데굴한다. 개나 할 짓이다. 산 중 왕으론 차마 못할 노릇이다. 못할 노릇을 범이 하는 것이다. 꼴이 말이 아니다. 그러나 범은 이 놀음 후에 한덩이 고기가 생길 것을 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이 ‘포도청’에 걸리면 범도 개다. 체면보다 코 아래 세 치가 더 급한 것을 깨달은 점에 있어 범은 사람과 그 현명의 정도가 같다.
 
101
거름을 맨손으로 쥐어 호박에 북을 준다. 호박을 먹으려니 이 짓을 하는 것이다. 나는 ‘一夜宿[일야숙]’의 호박을 따야 한다. 부득이 ‘법타령’의 ‘多辯肥[다변비]’를 쫄쫄이 귀에 담아 줘 본다.
 
102
“쥔장, 대저 참으로 조물옹이 천지를 만들 적에 한참 생각을 했었읍넨다. 삼라만상이라 하나 온 우주에 있는 것이 어디 만상뿐이요. 그야말로 부지기 만만상이란 말요. 자, 그 부지기 만만상을 만들어 내야 할텐데 아무 行伍[행오]나 질서가 없이 함부로 만들어 냈다가는 암만해도 큰일이 날 것 같드란 말요. 맞부딪쳐 깨지는 놈 서로 다 헛갈리는 놈 별의 별 놈의 별의 별 일이 다 생길 것 같단 말요. 해서 조물옹도 얘 이래서는 안되겠다. 법을 만들어야 겠다. 법을 만들어서 제 각기 제 자리를 찾고 제 갈림길을 가고 제 할 일을 하게 하자, 하는 생각을 했었드란 말요. 이래서 법이라는 것이 생겼읍넨다.
 
103
한데 법을 만들 적에 조물옹도 원체 많은 법을 만드노라니 자연 만들기 싫은 때도 있고 졸린 때도 있었을 것이 아니요, 그래 이후 조물옹으로도 혹 만들기가 싫다던지 졸린다던지 할적에 자기도 모르게 만들지 않을 법을 만들었단말요. 晝夜[주야]가 들고나는 법, 四時[사시]가 빙빙도는 법, 물은 아래로 흐르는 법이요, 달은 차면 이우는 법, 꽃은 피면 떨어지는 법, 이런 법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고, 그저 무해무덕한 법이지요. 그러나 개중에는 꼭 있어야 할 법도 있단 말요. 이런 법은 조물옹도 정신을 바짝차리고 만든 법이 외다. 자 ─ 가령 몹쓸 시어미 일찍 죽고 물건은 많은데 추워지고 모내기를 할 때 가물고, 짐지기 싫은데 등창이 나고, 글 안 해간 날 선생님이 알으니 이런 법이야 있는 것이 좀 좋소.
 
104
그러나 있어서 재미없는 법도 꽤 있단 말요. 미운 놈이 오래 살고, 돈 없을 때 배고프고, 어려운 집에 자식이 많고, 나막신 없을 때 비가 오고, 춘데 똥이 마려우니, 이런 법은 알아 낼 법이 아닌 데 냈읍니다. 이런 유상무상의 공법만도 생각하면 섣달 그믐날 빚장이 같애 처지가 극난이란 말요.
 
105
한데 사람이란 원래 어리석은 법이라, 저희끼리 또 무슨 법, 무슨 법하고 법을 만들어 냈단 말요. 어려운데 祭[제]를 지내라, 쌓두고 굶어 죽으라, 놀고 싶은데 글을 배우라, 이런 야릇한 법을 냈단 말요. 더운 이 방 두고 한뎃 잠 자라는 법이야 될 법이나 한 법이오. 여보 법을 말할 양이면 저문데 손이 오면 흔연이 맞는 법이, 맞아서는 쓴 물 한 그릇이라도 주는 법이외다. 먼 길을 걸으면 피곤한 법이고, 피곤하면 눕고 싶은 법이란 말요. 눕고 싶으니, 목침을 찾는 법이고, 목침을 찾으면 베는 법이고, 베랴니 자연 이렇게 눕게 되는 법이외다.”하고 나는 옆에 있는 목침을 집어 베고는 ─
 
 
106
(「東亞日報[동아일보]」, 1934년 11월 20일)
 
 

 
 

14. 집게형벌의 수난

 
 
108
나는 어느 산길을 걷고 있었다. 날이 춥다. 눈보라가 친다. 바람에 아름드리 참나무가지가 부러진다. 눈이 길로 쌓였다. 길이 한이 없다. 가도 가도 그저 거기다. 어찌어찌 산꼭대기에 올랐다. 좌우가 자욱하다. 차차 훤해진다.
 
109
문득 내 발 밑에 깊이 모를 구덩이 나선다. 나는 깎아질린 절벽 끝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것이다. 물레대가리가 저 아래서 “길 잘못 들었소”소리를 친다.
 
110
별안간 뒤에서 왈칵 밀치는 놈이 있다. 뚝 떨어지며 해해 웃는 쫄쫄이를 보았다. 나는 풀썩 눈 속에 빠져버렸다. 뼈가 저려온다. 숨이 탁 막힌다.
 
111
“이젠 죽는구나”생각이 난다. 가슴이 더욱 답답해진다. “아 ─” 하고 눈을 번쩍 떴다. 꿈이었다. 눈을 뜨니 내 옆에 어렴풋한 사람의 그림자 하나가 있다. 그림자에서 솜틀다리처럼 내 코 위로 뻗친 팔 하나가 보인다. 그 순간 나는 내 코가 개한테 물린 것처럼 무엇에게 찝힌 것을 깨달았다.
 
112
나는 곤하면 흔히 코를 곤다. 필시 고단에 못이겨 코를 골았던 모양이다. 쫄쫄이가 홧김에 내 코에 ‘집게형벌’을 가하는 길이었다. 나는 “낑”하고 옆으로 돌아 누워 겨우 코의 ‘형틀’을 벗겨 주었다. 돌아누우며 나는 쫄쫄이가 南浦產[남포산]인 것을 直覺[직각]하였다. 이 직각엔 유래가 있다. 평양 놈은 받기를 잘하고 진남포 놈은 코떼어 먹기가 일등이다. 불행히 제일 잘 받는 평양 놈과 제일 코 잘 떼어먹는 진남포 놈이 한 이웃에서 살게 되었다.
 
113
맹꽁이 뱃심믿듯 각기 제 재주를 믿고 안하무인이었다. 하루는 진남포 놈의 계집이 코를 풀어 던졌다. 던진 것이 하필 지나는 평양 놈 이마에 “딱”하고 붙어 버렸다. 평양 놈은 성미가 급한지라 단번에 “이 놈의 에미나이, 뉫시깔이 없나보다.”해버렸다.
 
114
“이 놈의 두상, 내 보고 그랬슴마, 못 보고 그런 게 아닙마.”“못봤기루, 이놈의 뱃시때기를 짓 꾀트릴라.”안에서 이 소리를 들은 진남포 놈이 “야, 야, 이 망한 놈의 쌕기, 뭘 이리니 쯧쯧.”하고 혀를 차며 나온다. “야, 너 무에라노 애미네 역성드니, 이런 쌍 노마네 간낫쌕기.”
 
115
이러해서 두 놈이 쌈을 하기로 하였다. 평양 놈이 ‘왓작’들어가면서 진남포 놈 대갈바리를 받았다. ‘지식끈’한다. 받긴 진남포 놈은 “빽”하고 담 넘어 구렁이같이 낙동강 기러기똥같이 떨어진다. “이놈 죽었다.”하고 평양 놈은 떨어진 진남포 놈을 들여다 보았다. 진남포 놈은 정신없이 떨어져 가지고도 무엇을 “쩝쩝”한다. 아차 만져보니 평양 놈의 코가 어느 틈에 비겁 석양풍이었던 것이다.
 
116
닭우는 소리가 들린다. 밖에서 “후”하고 나귀가 긴 한숨을 쉰다. 더 자다가는 코가 위태하다. 나는 슬그머니 일어나 댓님을 묶은 것이다.
 
 
117
(「東亞日報[동아일보]」, 1934년 11월 21일)
 
 

 
 

15. 실과 비누를

 
 
119
닭은 몇 홰를 울었는고, 상현달은 벌써 떨어져 서편 하늘의 훤한 빛이 말끔히 가셔 버렸다. 삼태성은 하늘 용마루를 넘어 서푼쯤 서로 기울었다. 소는 외양간에서 쉴 때다. 사람은 따뜻한 자릿 속에서 단꿈을 빚을 때다. 이때 나귀와 나는 가을 새벽길을 걷고 있다. 바람은 틈에 스민다. 草路[초로]에 발이 시리다. 이슬은 나귀 굽에도 찰 것이다. 우리는 ‘고적의 바다’를 저어가는 두 쌍의 ‘치’없는 배다.
 
120
가을의 새벽 하늘은 깊다. 한없이 멀리 보인다. 무한한 공간, 그리고 무한한 시간, 이 속에 명멸하는 모든 존재란 과연 얼마나 한 생명과 가치를 가진 것일까? 생각하면 모두가 空[공]이다, 虛[허]다, 無[무]다, 요강이다. 나귀는 가다가다 침침한 속에 길가로 고개를 내민다. 풀을 뜯으려는 것이다. 사실 나도 배가 고프다. 이따금씩 명치 밑에 “쪼르룩”소리가 궁하게 인다.
 
121
國庫[국고]가 아니라 胃庫空乏[위고공핍]의 怨[원]이다. 내 배가 이럴진대 나귀의 궁함은 불문가지다. 궁하건 윤하건 간에 내 방랑은 내가 자취한 것이다. 외를 내 멋에 거꾸로 먹는 것이다. 내 멋에 인생을 게 걸음도 해보고 가제 걸음도 해본다.
 
122
명치 밑 “쪼르룩”을 空山[공산]의 두견성 삼아 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귀는 무슨 죄인가. 어둑한 속에 베여논 풀단이 보인다. 주섬주섬 댓단을 안아왔다. 안아온 풀더미에 불을 질렀다. 툭툭 타오른다. 맑은 새벽 하늘에 청옥 기둥이 선다. 나귀도 불을 향해 섰다. 천사의 모습이 나귀상에 있었다. 불꽃에 콩밭이 보인다. 나귀의 아침 대접을 이곳에서 할 생각이 났다. 더듬더듬 한아름 콩을 꺾어왔다. 꺾어 온 콩을 나귀 앞에 놓아 준다. 나귀는 굽을 치며, 진상된 ‘콩수라’를 드시는 것이다.
 
123
나는 ‘수라’의 한두 가지를 불 속에 넣었다. 까뭇까뭇 ‘꼬투리’의 털이 탄다. 그 털이 채 다 타기 전에 콩 가지를 꺼내야 한다. ‘꼬투리’를 깐다. 잇 새에 씹히는 달콤한 진미란 天下無比[천하무비]다. 이것이 돈없는 나그네의 흔히 먹는 ‘콩청대’다.
 
124
로마의 일없는 계집 사내가 이 맛을 알았던들 애꾸진 공작의 혀를 뽑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다. 콩 한 단일망정 남이 땀 흘려 지은 것이다. 남의 땀흘려 지은 것을 공으로 먹는다는 것은 내 도리도 나귀 도리도 아니다. 나는 집에서 쥘쌈지 하나를 내어 그 속에 한태의 실과 비누 두 개를 넣었다. 나는 이 뭉치를 막대기에 꿰어 콩포기 밑에 세웠다.
 
 
125
(「東亞日報[동아일보]」, 1934년 11월 22일)
 
 

 
 

16. 심야의 고함(高喊)

 
 
127
달이 환하다. 골이 무던히 깊다. 저 아래서 졸졸 물소리가 난다. 아마 돌새를 흐르는 시낸가 보다. “거기 섰어!”하고 뜻하지 않은 고성이 길가 나무 그늘에서 난다. 다음 순간에 소리 임자는 우뚝 길을 막아 섰다. 온 얼굴을 싸매고 눈만 내 놓은 것이 나무잎을 새드는 달빛에 보인다. 손에 번쩍이는 것은 칼이 분명하다.
 
128
“내가 누군지 알지.” 눈 싸맨 친구가 두번째 소리를 친다. 의외로 위엄이 적은 음성이다. “글쎄, 만난 적이 없는 것 같아 잘 모르겠는데, 더구나 얼굴을 싸매서 알아 볼 수가 없구먼…….”“누군지 몰라도 무엇하는 사람인지 알지.”“글쎄, 대강 짐작은 하겠네.”
 
129
“어서 내놓고 가!”“무얼 내노라나?”“무엇은 무엇야, 돈이지”
 
130
“돈을 내노라, 얼마나 군색해 그리시나?”“얼마 군색한 것은 알아 무얼해, 다 내놔야지!”“허허” 나는 웃었다. “그래도 날더러 달라는 사람이 그렇게 무작정하고 달랠 수야 있나, 쓸만큼 말을 하게!”“쓸 것은 2백원야 어서 내놔?”
 
131
“그거 참, 미안한 일이로구, 부족한 것은 다른 사람더러 달래보게, 난 2백원 다는 없네. 주머니에 몇 원 가량 있고 이 나귀등에 실은 荒貨[황화] 물건 얼마 뿐일세, 물건을 팔면 5, 60원 될 걸세. 팔면 그때 돌려드리지, 우선 있는 것이나 받게.” 나는 주머니에서 돈 지갑을 내주었다. 눈 싸맨 친구는 내주는 지갑을 받았다. 받은 지갑을 제 주머니에 넣으려다가 그는 문득 돌로 깎은 사람처럼 가만히 섰다. 별안간 얼굴의 싸맨 것을 푼다. 달빛에 보이는 얼굴이 꽤 어글어글하다. 다만 입이 대구 같이 크다.
 
132
“되가지십쇼.”하고 대구입은 넣으려던 지갑을 내 앞으로 내민다. “내가 이런 짓을 하려고 맘을 먹은 것이 잘못이올시다. 자 ─ 되가지십쇼.” 음성이 턱없이 부드럽다. “몇 푼 안되지만 별 소리 말고 쓰시게, 여북 궁해서 줄지 안 줄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달래 봤겠나.”
 
133
“여보시요, 내가 도적질도 처음입니다마는 영감 같은 어른을 뵙기도 처음입니다. 저도 이렇게 될 놈이 아니올시다.”대구입은 펄썩 길가에 주저 앉는다. “이게 될 짓입니까? 도적놈이 되다니, 이게 무슨 꼴입니까? 하도 사정이 절박하고, 억울해 그랬지만 못된 짓입니다. 도적놈이 되다니, 아 ─ 도적놈이 되다니!”대구입은 급기야 흑흑 느껴운다.
 
134
“여보게, 그러지 말게, 세상에 도적놈 아닌 놈이 몇 놈 있는 줄 아나, 다 도적놈인데, 그중에 묘하게 하는 놈, 좀더 크게 하는 놈은 죄 대신 상과 讃[찬]을 받고, 어리석게 하는 놈, 적게 하는 놈이 애꾸지 걸려들어 경을 치는 것 뿐이니, 자네는 그래도 나는 도둑질을 한다 하고 내세울만큼 도적 중에는 마음이 바른 상 도둑일세, 자 ─ 사내가 울었으니, 어디 자네 억울한 이야기나 듣세.”하고 나는 대구입의 어깨를 흔들었다.
 
 
135
(「東亞日報[동아일보]」, 1934년 11월 24일)
 
 

 
 

17. 길순(吉順)의 애사(哀史)

 
 
137
‘대구입’의 억울한 사정을 들어보면 이러하다. 속칭 ‘최배때기’란 놈이 대구입이 머슴을 살고 있는 너머 동리에 산다. 논마지기나 있어 잘처먹는 덕에 육십이 다 됐건만 아직도 살이 양돼지 같다. 이런 놈이 으례 배가 부른 것이다. 혹 직유법을 써서 ‘최맹꽁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맹꽁이’가 너무 길다는 말이 나서 ‘꽁이’는 떼어 버리고 단순히
 
138
‘최맹’하고 부르는 적이 많다 한다. 놈인 즉 세상의 추함을 다 타고난 다복자라 한다. 대구입은 서슴치 않고 놈의 화상을 그려낸다. 바로 ‘토끼화상’이 눈물을 흘릴 지경이다. 코는 질병 같고, 귀는 집신짝 같고, 눈깔은 퉁방울 같고, 아가린 당나발 같고, 목은 늘옴치래기에 배가 ‘맹’이요, 키는 뚱지린 막대기다. 어려서 마마 귀신을 따라 지옥문에 들어서다가 그런 놈은 지옥에도 둘데가 없다하여 되쫓겨 나온만치 얽다 못해 찍어내서 비할량이면 땜쟁이 발등 같고, 우박맞은 잿더미 같고, 신전 마루도 같고, 멍석, 고석매 같고, 황귤, 여주 낙화생 같고, 국수판 밑바닥도 같다.
 
139
원래 ‘該博[해박]’은 천품이요, 욕심은 한이 없고 느물느물하기가 아주 ‘능구리’다. 그래도 돈양 있는 놈의 격을 맞추느라 주색에 사족을 못쓰고 놀기라면 신을 거꾸로 끌고 나선다. 술집에 들면 연해 주모에게 곁눈질을 하였다. 그 꼴을 보면 전에 먹은 오례송편이 다 올라올 지경이라, 주모도 참다 못해 생강쪽을 찾으러 밖으로 나가 버린다는 것이다. 이놈이 제 손녀 뻘이나 되는 길순이에게 불측한 생각을 하니 죽일 놈이 아니냐는 것이다. 길순은 대구입이 있는 집과 이웃해 사는 색시다.
 
140
오십이 넘은 과부의 외딸로 대구입과 그렇지 않은 사이다. 장차로는 검은 머리가 파뿌리와 같이 되기를 언약까지 한 것이다. 그러나 호사다마라, 30년 전에 죽은 아버지 監葬[감장]을 하노라 길순은 최맹에게서 20원 빚을 내었었다. 이것이 새끼에 새끼를 쳐서 지금은 1백 50원 얼마가 되었다는 것이다.
 
141
無依[무의]한 홀어머니와 딸이 이것도 갚을 길이 막연한데 설상가상으로 노모까지 수삭전부터 병이 들었다. 약을 써보고 싶은 길순의 마음이나 푼전이 없는 터다. 최맹은 이 기회를 엿보았다. 최맹은 한편으로 길순의 빚을 재촉하며 한편으로 사람을 놓아 길순이가 맹의 말만 잘 들으면 빚 탕감은 물론, 병모의 약도 써 준다는 것이다. 길순은 이틀 전 대구입에게 눈물로 이 설음을 말하였다. 대구입은 목을 백 가지로 틀어 보나 계책이 없었다. 생각다 못해 이 짓을 나온 것이라 한다.
 
142
“그렇게 될 밖에 없겠네…… 그런데 그 놈이 정말로 노름을 좋아하나?”“좋아하다 뿐입니까? 제 아비가 죽었을 때 조상은 제 아우놈에게 맡겨두고 저는 상여꾼들 하고 ‘갈기뜯기’를 한 놈인데요.”“그러면 두말 말고 나와 같이 가세, 가서 놈을 투전판으로 끌어내게!”
 
 
143
(「東亞日報[동아일보]」, 1934년 11월 25일)
 
 

 
 

18. 아, 행복!

 
 
145
‘대구입’과 나는 하도 목이 쉬도록 “싸구려”를 불러 황화뭉치를 두드려 팔았다. 그 판돈 기십원이 내 주머니에 있다. 등잔 밑에 ‘최맹’과 나의 ‘기름바지’가 정좌하였다. 대구입은 망을 보느라 문턱에 있다. ‘기름바지’란 이 노름판의 반죽을 짓기 위하여 잠시 청을 받아 온 ‘개평’상습의 공리주의 노름꾼이다. 3분된 천하 앞으로의 풍진이 어찌 될까가 문제다. 처음 몇 번을 일부러 잃어 보였다.
 
146
先虛[선허]는 적에게 방심할 여유를 준다. 또한 적의 호전벽을 조장하는 것이다. 몇 번 안에 기름바지는 지갑을 털렸다. 뒤에 얻을 개평을 꿈꾸며 물러 앉는다. 무하와 최맹의 ‘워터루’해후다. 투전장이 지르르 앞에 벌어진다. 투전장이 끝 수 적은 글자를 배에 깔고 엎딘 것은 물론이다. 투전철학의 蘊奧[온오]를 도달하지 못한 자는 그 등만을 보고 그 배를 보지 못한다.
 
147
그러나 이 방면의 깨달음을 얻은 어른에겐 배도 등이다. 눈을 감고 보는 셈이다. 앞에 俯伏[부복]한 투전장들 끝 수가 환연한 것이다. 그리하여 저쪽 이쪽의 ‘끝수’를 떼기 전에 계산해 버리는 것이다. 개똥보다 더러운 놈들이 사회의 柱石[주석]이니 有志[유지]니 한다. 이와 같은 정도로 무량 불가사의한 묘법이다.
 
148
‘맹’의 눈엔 첫장을 떼는 듯 하다. 그러나 무하선생은 이미 셋째 장을 짚으신 것이다. 짚어서는 분명 손에 드는 것 같다. 그러나 집힌 놈은 어느 틈에 소매 속에 숨은 놈과 체번을 한 것이다. 꼭 석장 밖에 쥔 것 같지 안되, 기실 내 손에는 다섯 놈이 엎디어 뽑아 줄 때를 기다린다. 신출귀몰이란 이런 때만 써야 한다.
 
149
“2, 7이냐, 저칠, 이칠, 헌 누데기 똥칠이냐.”하고 투전장을 내부친다. ‘최맹’은 간질하는 애놈처럼 깜짝 놀란다. 놈의 배가 아깝다. 간담이 한 오천 길 추락을 하는 모양이다. 長板橋[장판교] 싸움에 조조가 귀 떨어지면 다음 장을 주워가지고 뛰어버린 일이 있다. 그때의 翼德[익덕]의 함성도 내 ‘호통’만한 효과를 냈을까 싶지 않다.
 
150
구승에 일패는 미끼로 준다. 수 30합을 싸웠다. 최맹의 백여 ‘텁석부리’가 모두 내 주머니로 귀순을 하였다. 최맹은 그 美顔[미안]이 흙빛이 된다. 밖으로 나간다. 어디서 구했는지 또 ‘텁석부리’뭉치가 붕긋했다. 제2회 대전이 벌어졌다. 전세는 전과 다를 리가 없다. 현현묘묘 8만 4천 ‘수’에 ‘최맹’이 하오 패할 적마다 ‘최맹’은 공을 건다. 결국 몇 곱이 되건 종말의 피난처는 무하 호중(囊中[낭중])이다. 그럭저럭 ‘최맹’의 후원병의 칠푼이 내 호중으로 移陣[이진]을 하였다.
 
151
“이 방에 웬 불을 이리 땠어!” 최맹은 냉방에서 생판 불 땐 탓을 한다. 급기야 저고리를 벗고 만다. 얼마 있다 바지까지 配送[배송]을 낸다. 동방예의지국에 태어난 만치 ‘속잠뱅이’는 채 안 벗는 것이 가상가상이다. 최맹은 마지막 밑천이 잘려 버렸다.
 
152
“엄마, 나 죽소.”하고 뒤로 자빠진다. 창문이 훤해진다. 나는 모든 전리품으로 ‘기름바지’와 ‘대구입’과 길순은 얼마동안 소위 행복이란 것을 맛 볼 것이다. 몇 푼 돈에 따르는 행복, 한 사람의 안면근육의 이완 혹은 긴장에 따라 있다 없다 하는 행복! 아 ─ 행복이란 무엇인고 이 역시 요강이 아닌가?
 
 
153
(「東亞日報[동아일보]」, 1934년 11월 27일)
 
 

 
 

19. 쌍동이의 일생

 
 
155
둘러막은 거적도 다 썩었다. 신문조각으로 바른 풍지가 型紙[형지]뿐이다. ‘움’중에도 이런 말 못된 ‘움’은 또 없을 게다. 과연 듣던 말과 같다. “예”하고 6, 7세되는 애놈이 나온다. 더벅머리에 때도 아니 씻엇거니와 무섭게 말라 눈만 걸렸다. 다 해진 속옷 한 벌을 몸에 걸쳤을 뿐이다. 해진 구멍으로 말라빠진 살이 울근불근 한다.
 
156
“너희 집에서 애기를 낳대지?”“예”
 
157
“그래 쌍동이를 낳니?”“예”“너희 아버지는 고기를 잡으러 갔다 죽었다는 말이 옳으냐?”애놈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애들은 어찌 됐니?”
 
158
“다 죽었어요. 엄마가 배가 고파 젖이 없어 다 굶어 죽었어요.”애놈은 눈물을 씻는다. “누가 오셨니?”“외할머니가 왔는데 지금 아랫동네로 밥을 얻으러 갔어요.”나는 더 물을 필요가 없었다. 주머니에 있는 대로 털어주었다.
 
159
‘조지 키싱’이란 글 줄이나 쓰는 친구가 영국에 있었다. 친구가 이런 말을 한 일이 있다. “세상엔 시를 쓰네, 글을 짓네 하는 자들이 있다. 그 자들이 제 지은 것을 내놓고는 사람들이 읽네 안 읽네 한다. 아무도 청한 일은 없다. 청도 안한 것을 자의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읽네 안 읽네 한다. 도대체 경위가 안 되는 말이다. 그 자들의 속심을 알 수가 없다.”
 
160
“구두 한 켤레를 마췄다. 다 됐는데 찾아 가지를 않는다. 구두쟁이는 마춘 자를 시비한다. 구두쟁이는 시비할 권리가 있다.”“그러나 시를 누가 써 달라 하였는가? 글을 언제 지으라 하였는가? 제 혼자 쓴 것이다. 그리고 읽네 안 읽네란 말은 안된다.” 친구의 말이 그럴 듯하다.
 
161
‘인생’하고 나는 길을 걸으며 생각을 한다. 내가 인생을 “줍쇼!”해본 적이 있는가? 호박에 말뚝 박던 생각은 난다. 그러나 인생을 “줍쇼!”해 본적은 암만 해도 없는 것 같다. 賣藥行商[매약행상]이 억지로 金鷄蠟封[금계납봉]을 던지고 갔다. 이것이 인생이다. 이것이 사람의 인생, 나귀의 노생, 소의 우생, 벼룩의 조생, 파리의 구생이다. 쌍둥이는 落地後[낙지후] 3일은 굶다 갔다.
 
162
설마 이 생을 달랬을 리야 있겠는가? 어느 몹쓸 권유원이 ‘生封紙[생봉지]’를 맡기고 갔다. ‘不見[불견]’표 붙은 문 안에 억지로 넣어진 신문장이다. 알뜰히 맡아둘까? 우리 호의다. 그대로 던져둘까, 우리 권리다.
 
163
‘인생·인생’하고 벌벌떠는 자제들이 있다. 위하는 품이 할아비 신주 이상이다. 닭이 똥을 주워먹는 ‘응애 공’들이다. 저 뿐이면 불쌍히 여길 여지도 없다. 꼴에 남 시비를 한다. 시러배 자제들이다.
 
164
뉘 ‘생’을 달라한고, 제 굳이 떠맡기고, 잘 산다 못 산다가 경위 없는 수작이다. 어즈버 천백세사가 요강 같다 하리라.
 
 
165
(「東亞日報[동아일보]」, 1934년 11월 28일)
 
 

 
 

20. 돌나귀가 되어서

 
 
167
깊은 데가 넙적다리밖에 안 차는 물이다. 그러나 수세가 급하다. 바닥에 조약돌이 깔려 있다. 까딱하면 물구나무가 십중 팔구다. 철로 보면 너무 차다. 찬물이 발등, 정갱이, 무릎마디, 허벅지 식으로 차츰 더듬어 올 때 짜릿짜릿한 맛이 자리다 못해 저리다. 바로 청신환 뺨칠만 하다. 나는 모래 위에 비스듬이 누워 물 소리를 듣고 있다. 내(川[천]) 이편 저편에 적은 들이 열렸다. 들을 두른 산, 들도 누르고 산도 아직 누르다. 햇볕이 이마를 간지른다. 다정한 가을 볕이다. 혼곤해 진다. 졸음이 오려던 때다. 저편 냇가에 양복장이 하나가 나타난다. 사방이 지나치게 고요하다. 이런 때 나타난 일점의 움직임이 저윽이 마음에 반가웠다.
 
168
양복장이는 물가에서 망설망설한다. 허리를 구부려 물에 손을 담가 본다. “아 ─ 차다.”소리를 이쪽까지 들리게 친다. 냉수가 차다 한다. 바로 불이 뜨겁다. 해가 밝다 할 놈이다. 양복장이는 사방을 둘러 본다. 잠깐 있다.
 
169
“여봐!”하고 내 편을 건너대고 부른다. 다른 사람이나 아무도 없다. 나귀더러 ‘여봐!’할 리도 없다. 나를 부른 것이 분명하다. 덮어놓고 ‘여봐’란 수작이 괘씸하다. 괘씸 6괘씸·3백 91퍼센트 괘씸타. 곧 ‘이 고얀놈’하고 욕을 건너대고 싶다. 그러나 꼴을 보자 하는 생각에 “예 ─”하고 東軒[동헌] 호통에 軍奴[군노] 대령을 하였다. “그 나귈 가지고 와서 물 좀 건너게, 나는 이골 도청에 계신 마돌쇠라는 산림지기일세, 나 알지?”
 
170
암만해도 한번 버르장이를 가르칠 필요가 있다. “예, 아다 뿐입니까, 곧 갑니다.”나는 나귀를 끌고 되 물을 건너 갔다. “관리란 모두 백성을 위해 계시는 어른들 아닌가? 그러기에 백성이 좀 관리 어른을 위해 수고를 하는 것이 괜찮단 말야, 괜찮을 뿐 아니라 당연한 일이지. 여보게 안 그런가.”“그렇다 뿐입니까.”“그런데 이 나귀가 사납지나 않든가.”“좀 사납지만 어떻겠읍니까?”
 
171
“그야 그렇지, 비록 나귀놈이기로 관리를 몰라볼 리가 있나”나는 연해 “어디어”소리를 치며 나귀를 몬다. 물 한 중간을 왔다. 나는 주머니에서 칼 송곳을 내었다 슬그머니 . 나귀 옆으로 서며 나귀 응덩이에 별안간 동침 한대를 주었다. 나귀에겐 불의의 ‘뜨끔’에 대한 본능적 반응 작용이 있다. 나귀는 껑충 두 뒷다리를 들며 물을 찬다. 나귀 등은 일순간이었다. 그러나 일순간 가엾다. 마걸쇠선생은 나귀갈기에게 구원을 청할 새도 없이 용궁행을 하려 들던 것이다. 잠수 연습으로는 좀 철이 늦다.
 
172
“아바바!”하고 일어난 마기수는 상판에 몸을 씻는다.
 
173
“이 나귀는 돌나귀가 되어서 관리 어른을 몰라 뵌 모양입니다.”
 
 
174
(「東亞日報[동아일보]」, 1934년 11월 29일)
 
 

 
 

21. ‘똥통’을 메고

 
 
176
‘똥통’을 메고 나섰다. 나는 사흘만에 이 ‘갈망의 업’을 얻은 것이다. 내가 이 업을 얻은 것은 천행이랄 밖에 없다. 이같이 귀한 업이 더러운 사바에 하나는 있을 법 하되 물부터 바라는 것이 죄다. 신성, 고결은 이런 업을 讃[찬]하려 생겨난 문자다. 혹 영의정에 비해 어떠냐? 순전한 모독이다. 이런 언사는 天誅[천주]를 두려하지 않는 데서만 기인한다. ‘바이론’을 ‘최맹’에 비긴 셈이다. ‘바울’을 ‘유다’에, 공자를 盜跖도척]에 무하선생을 ‘쫄쫄이’에게 비한 것이다.
 
177
왜 그러냐? 이는 명명백백하기 햇볕 같다. 이런 명백한 사실을 모를 정도로 미욱한가, 그 미욱을 부끄러워 안할 정도로 파렴치엔 일러 준댓자 소귀에 경이다. 차라리 金[금]의 침묵을 지키자. ‘똥통’은 두 글자가 우선 음향 상으로 더없이 아름답다. 이 음향을 듣고 음악적 법열을 아니 느낄 것이 없다.
 
178
입을 둥글게 모으고 먼저 두 자에 공통된 中終兩聲[중종양성] ‘옹’을 발음해 보라. 얼마나 둥글고 부드러운 음이뇨? 섬섬옥수가 칠현금을 더듬어 宮[궁]과 商[상]을 튕기는 듯 하다. 이 음에 문득 날카롭고 문득 강한 ‘ㄸ·ㅌ’양 음이 붙어 能柔能强[능유능강] 且方且圓[차방차원]의 幽玄響[유현향]을 지은 것이다. 천지·음양, 금 목 수 화 토, 오행·이십팔숙에 相剋[상극]이 끝나고 相生[상생]이 나타난 경지다. 실로 ‘베토벤’의 제9 ‘심포니’가 발뒤꿈치를 못 따를 것이다.
 
179
이런 음악미를 알지 못하는 귀는 귀되 귀 못 되는 귀다. 외발 가진 돌조귀, 두 발 가진 까마귀, 세 발 가진 퉁노귀, 네 발 가진 당나귀다. 자귀, 깍귀, 마귀, 따귀, 돌아갈 귀 밖에 못되는 귀다. ‘에드가 알런 포우’는 음향의 묘미를 해득한 시인이다. 그는 불행히 돈이면 한 아버지 하는 살풍경한 미국에 태어났다. ‘똥’과 ‘통’은 들어보지도 못한 그라, 이 좋은 음향미를 시편에 써 볼 길 없었다. 사후도 못 풀 천추의 恨事[한사]다.
 
180
‘똥통’역 ‘통’의 일종이다. ‘통’은 문득 우리 심중에 ‘아테네’를 연상케 한다. 백주에 등불을 켜들고 가는 늙은이가 있다.
 
181
거리의 구석구석을 찾아본다. 참으로 맘 바른 놈을 찾는 ‘디오게네스’다. 참으로 맘 바른 놈이 있을 리가 없다. 그는 피곤한 다리를 끌고 집으로 돌아온다. 집이라는 것이 그의 몸 하나를 용납할 한 개의 ‘통’이다. ‘아테네’는 이 ‘통’으로 인하여 얼마만한 광휘를 더하였나뇨? 당시 ‘알렉산더’라는 20남짓한 더벅머리가 있었다. 속임수로 바보놈들을 후려 벼룩이 볼기짝만한 구라파를 제 거라 할만치 되었다. 의기양양 ‘디오게네스’영감이 있는 데까지를 짓쳐들어갔다. 고관이니 대작이니 하는 쓸개빠진 벌거숭이들이 더벅머리를 맞아들였다. 개중에 ‘디오게네스’영감이 없다. “나를 무시한다. 그럴 수가 있나, 그러면 내가 가보리라”하고 더벅머리가 ‘디오게네스’영감을 찾아갔다.
 
182
“당신이 ‘디오게네스’시오?” “그런가보오.” “나는 구라파를 무릎꿇인 ‘알렉산더’대왕이오.” “예 그래요?” “무엇이든지 소원을 청하시오.” “청요, 해를 가려 서지 말고 좀 비켜주쇼, 그게 내 청이오.” 귀로에 오른 ‘알렉산더’ 말하기를 “내가 ‘알렉산더’가 못 됐던들 ‘디오게네스’가 됐을 게다.”
 
183
무하선생은 ‘알렉산더’의 免[면]‘좀’을 선언한다.
 
 
184
(「東亞日報[동아일보]」, 1934년 11월 30일)
【원문】193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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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
  # 무하선생방랑기 [제목]
 
  김상용(金尙鎔) [저자]
 
  동아 일보(東亞日報) [출처]
 
  1938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 참조
  193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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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01월 0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