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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우지도(慕牛之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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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9월
이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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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우지도(慕牛之圖)
 
2
― 농촌 제 12 야화(夜話)
 
 
 

1

 
 
4
“아 그래, 저눔에 여편네가 언제까지나 계집애만 끌어안구 앉었을 텐가! 그깐 눔에 계집애 하나 뒈지믄 대수여!”
 
5
“아따, 계집앤 자식이 아닌가베.”
 
6
“아, 썩 못 나와! 그놈에 계집앨 갖다가…”
 
7
첨지는 고래고래 소리를 친다. 그래도 안차기로 유명한 첨지 처는,
 
8
“흥, 왜 자식새끼가 깨벌렌 줄 아나. 입때껏 잘 길러가지구 왜 그런 말을 하누.”
 
9
첨지 처는 바로 작년 가을 깨밭을 매다가,
 
10
“이 육시처참을 할 눔!”
 
11
하고 남편이 소리를 치는 바람에 이쪽 머리에서 마주 밭을 매며 들어가던 첨지의 처는 기함을 하고 벌떡 일어났다.
 
12
“아, 왜 그래유, 응!”
 
13
하고 그의 아내는 가슴이 방망이질을 한다. 아마 독사한테 물렸나 싶어 허둥지둥 달려가보니,
 
14
“이눔 좀 봐라. 이 육시처참을 할 눔!”
 
15
집게뼘으로 한뼘이나 되는 시퍼런 깨벌레다.
 
16
첨지는 뭬라곤지 외마디소리를 치면서 깨벌레를 집더니 번쩍 들어서 밭머리에다 패대기를 쳤다. “퍽!” 하고 깨벌레는 창자가 터져서 그 자리에서 즉사를 했다. 첨지는 그래도 직성이 다 못 풀렸다는 듯이,
 
17
“이눔! 깨 한 포기에 내 피땀이 얼마나 든지 아냐!”
 
18
하고는 맨발 뒤꿈치로 언저리도 없이 응껴버린다.
 
19
첨지 처는 순간 깨벌레를 잡아죽이던 때의 자기 남편의 그 끔찍한 얼굴을 상상해보자, 아무리 계집애라고는 하지마는 자기 피를 받은 자식한테 입에 못 담을 말을 쓰는 것이 끔찍스러웠다.
 
20
“넌두 어미 아빌 잘못 태나서 갖은 천대 다 받는구나. 너두 부잣집에나 태어났던들 금이야 옥이야 길리워서 갖은 호강을 다 누릴걸…”
 
21
첨지 처는 동리 큰 마름집 이 주사의 딸 금년이를 상상해보았다. 어디로 뜯어보나 인물이야 우리 복순이가 금년이한테 대랴 싶었다. 하지만 목숨이 깔딱깔딱하는데도 약 한 첩 먹이지 못하는 것은 고사하고 잠시 머리맡에 앉았지도 못하게 하는구나. 금년이는 기침 한 번만 해도 의원이다 읍내 병원엘 갑네 동리가 떠들썩했다.
 
22
“복순아, 진작 죽어서 있는 집 강아지로래도 다시 태나렴!”
 
23
가난한 어미는 불덩이처럼 달은 딸의 손을 만져준다.
 
24
그러나 어린것은 통 인사불성이다. 불러도 대답도 없고 흔들어야 반응이 없다. 오직 숨소리만 가쁘다. 벌써 맑은 물도 입에 안 대는 지 사흘이 지났다. 입술은 까칠하니 타고 어쩌다 정신이 좀 돌아서 어미를 쳐다보는 눈은 하릴없이 죽은 생선 눈깔이다.
 
25
“아, 이눔에 여편네가 누구 부아통이 터져 죽는 걸 봐야만 할 작정인가.”
 
26
하더니 참다못한 첨지가 우르르 들이닥치면서 문을 잡아제킨다.
 
27
“아, 썩 못 나와!”
 
28
“복순아, 내 얼른 댕겨오마.”
 
29
첨지 처는 이불자락을 매만져주면서,
 
30
“암만해두 죽을려나부.”
 
31
하고 일어서는 꼴을 못마땅해서 노리고 보더니만,
 
32
“글쎄, 이 철딱서니 없는 여편네야! 대들보가 부러질려는 판인데 그깐 계집애가 다 뭣에 말라비틀어진 거여! 응! 사람이 한평생 살자면 앓기두 허구 죽기두 허구 그런게지, 병이 앓을 만큼 앓어야지 붙어앉었다구 낫는 겐가!”
 
33
“누가 붙어앉었어야 낫는답디까. 약을 써야 낫는단 말이지…”
 
34
하고 첨지 처도 부아가 터지는지 한번 보기좋게 메어친다.
 
35
“약은 무슨 눔에 약, 난 내 평생에 약 한 첩 안 먹어두 이만큼 늙었단다! 병이란 앓을 만큼 앓어야 낫지, 그깐 눔에 약 쓴다구 낫는 게 아니래두 약약 한단 말야! 빌어먹을 눔에 여편네가…”
 
36
“흥, 사람한텐 약을 쓰문 안 되구 소는 약을 먹어야 낫나부다!”
 
37
봉당 앞에서 삼태기를 집어들고 휭하니 나가면서 입을 삐쭉 한다.
 
38
“온 저런 눔에 여편네. 저눔에 주둥아리 때문에 될 것두 안 된다니까.”
 
39
바깥마당 구석 홰나무 밑에, 소가 모들뜨기 숨을 쉬고 번듯이 드러누웠다. 눈이 퀭해져서 한결 더 커보인다.
 
40
첨지 처는 본실이 시앗이나 흘겨보듯 질펀하니 자빠진 암소를 곁눈질해 보며 뽕나무가 듬성듬성 선 밭두둑을 타고 동구 밖으로 빠진 등성이를 넘어간다.
 
41
첨지가 신주보다도 더 위하는 소가 며칠 전부터 죽을 안 먹더니 간밤부터는 거품만 부걱부걱 뱉고 사뭇 누워서만 배긴다.
 
42
복순이가 시름시름 초학처럼 이른봄부터 앓기 시작해서 달장간이나 잔병을 치른 끝에 다시 열이 나기 시작하더니 열병처럼 열이 내리지를 않는다. 그 어린것이 하도 못견디어해서 약첩이나 지어오라고 그렇게 성화처럼 졸라도 되레 울부라리기만 하던 첨지가 소가 병이 드니까 눈이 뒤집혀서 나댄다. 새벽부터 온 동리로 쫓아다니더니, 새이때나 돼서 웬 빈대 쭉정이 같은 영감쟁이를 데리고 와서 막걸리를 사오너라 장아찌를 꺼내라 법석을 하더니만, 어디 가서 삼 년 묵은 쑥대를 얻어오라는 것이다.
 
43
“소란 새김질을 잘해야 허는데 통 새김질을 못하는군. 새김질을 못해노면 그놈이 고여서 썩은 물이 창자로 들어가면 삽시간에 거꾸러지지. 큰일났소, 첨지!”
 
44
그 영감쟁이는 호들갑을 떨며 침 두 대를 놓고 막걸리 두 사발을 들이켰다.
 
45
“아주 하나 옆에 붙어 서서 배를 자꾸 추켜주소. 그러구 쑥을 갖다 푹 과서 퍼먹이면 새김질을 차차 하지.”
 
46
이렇게 분부를 하고 돌아간 것이다.
 
47
첨지는 여편네가 동구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상앗골까지 갔다 올 동안에 소가 다른 증세만 일으키지 말기를 빌면서, 백정이던 영감쟁이가 시키던 대로 소의 배를 추켜주고 있다. 소는 파리처럼 귀찮은지 가끔 머리를 내두른다. 입으로 숨을 쉬는 것이 아니라 엉덩이로 숨을 쉬는 것 같다.
 
48
첨지는 퀭하니 움직이지도 않는 두 눈을 들여다보다가,
 
49
“네가 죽으면 우린 어쩌란 말이냐. 어떻게든지 좀 돌리려무나! 빌어먹을 자식들은 소가 그 꼴인걸 보구 나가서 궁금치도 않단 말인가, 한눔에 새끼 들여다도 안 보구.”
 
50
큰놈이 민적민적하고 집에 있으려는 것을 울부라리며 갯벌로 내쫓은 생각은 염두에도 없이 공연히 자식들만 나무라고 있다.
 
51
첨지는 측은한 생각이 들어서 소 얼굴을 바로 쳐다보기가 싫었다. 더욱이 요새 엿새를 두고 그 폭양에 짐질을 세워서 소를 잡친 것같이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52
“그악스런 것두 탈이야. 저 사람이 저러다가 소, 사람 다 잡지!”
 
53
첨지가 갯밭에 보 막는 것을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한마디씩 했다. 삼 년 가물에 비 안 오는 날 없다고 가무는 핼수록에 여우볕도 곧잘 나고 땅도 못 축이는 비나마 소나기는 한 줄기씩 하는 법인데 금년에는 해동을 한 후부터 초복이 지나도록 소나기 한 줄기 안 온다. 너 나 할 것 없이 천수답만 쳐다보고 사는 그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늘을 쳐다보고 원망을 퍼부었다.
 
54
입 험하기로는 치는 첨지다. 입이 걸 뿐만 아니라 표독스럽다. 어쩌다가 생입이 한번 터지면 그야말로 걸디건 퇴비를 퍼붓듯 해서 모두 질색을 한다.
 
55
그런 첨지건만 신기하게도 하늘을 욕하는 법이 없다. 꼭 하늘님이오, 비가 오시고, 날이 드신다. 웬만하면 입에 젖은 욕이니 실수도 하련만,
 
56
“중생이 하늘님께 뭘 잘못한 게야.”
 
57
할 뿐 원망 비슷한 말도 한마디 없다.
 
58
초복이 중복이 가깝도록 비는 올 성도 싶지 않다. 농군들은 벌써 비를 단념하고 메밀씨를 준비하기에 바빴다.
 
59
그러나 첨지는 하루 아침 식전에 갯밭 여덟 마지기 논머리에 뜸부기처럼 웅크리고 앉아서 담배를 뻑뻑 빨고 앉아서 무슨 생각엔지 골몰하더니,
 
60
“그렇지! 농사꾼이 하누님만 쳐다봐서야 쓴다던가. 두 손 잡아매고 앉아서 욕만 퍼부면 소용이 있나!”
 
61
이렇게 짚신 바닥에다 담배 꽁다리를 뚜드리고는 갯바닥을 손으로 우비우비 파본다. 개라고는 하지마는 물이 흐르는 개도 아니다. 장마나 져야 사태 물이 모여서 흘러갈 뿐 금년에는 모래 한 번 축여보지 못한 개다. 거기다가 산골 물이라 흐르는 것이 아니라 내려쏜다. 그는 개 너비를 발로 재보고 다시 여덟 마지기 윗머리를 와서 개구리가 다리를 쭉 뻗고 자빠진 채 물 한 방울 없는 웅덩이를 들여다보더니, 불 때다 말고 나왔던 사람처럼 허리 골춤을 움켜잡고 집으로 뛰어들었다. 삽짝 안에 들어서면서,
 
62
“얘들아, 냉큼 상을 물리고, 괭이, 삽, 다 챙겨 지구, 손 길말 지워라.”
 
63
고함을 친다. 집안 식구들은 막 밥상을 받은 때였지만 벼락불 같은 첨지의 성질을 알기 때문에 씹을 새도 없이 밥을 먹고 일어났다.
 
64
“점쇠야! 헌 삼태미에다 동앗바를 매라. 그러구 점쇤 먼저 휭하니 나가구.”
 
65
“어디루유.”
 
66
“갯밭으로 얼른 나가. 아, 이 자식아, 뭘 그렇게 닭 쫓던 개 울 쳐다보듯 하구 섰는게야!”
 
67
이렇게 서둘러서 갯밭을 질러막기 시작했다. 먼저 산에서 큰 돌을 져 날라다 세 켜를 쌓고 청솔을 쪄다 덮은 후에 흙과 자갈을 다지었다. 너비가 두 간통에 높이가 으수이 한 길이나 된다. 소에, 첨지 삼부자가 새벽부터 만 엿새 동안을 몰아쳐서 겨우 끝을 막았다.
 
68
“저 사람이 미쳤나, 이 가물에 저건 뭣하러 막구 있어. 언제 산 물이 흘러 여기 고여 보게?”
 
69
하고 보는 사람마다 한마디씩 한다.
 
70
“뭐 올에 쓰잔 건 아니라우. 작년에 미리 이래 뒀더라면 이른봄에 온 빗물이라도 잡아뒀을 껀데. 땅은 천수답을 가지구 하누님만 믿구 앉았자니 사람이 애가 타서.”
 
71
보를 끝낸 그날 점심때부터 다시 웅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삽날이 묻히게 균열이 된 논바닥에 아무리 판들 물이 있을 리 없다. 그렇건마는 그는 파고 또 팠다.
 
72
마침 달이 밝았던지라, 첨지는 큰아들인 점쇠만을 데리고 나와서 늦도록 파고 팠다. 둘레가 댓 발이나 되는 샘을 길 반이나 팠다. 그래도 물기도 없다. 점쇠는 속으로는 벌써 단념한 지 오래다. 그렇건마는 아버지의 성미를 잘 아는 터라 묵묵히 퍽 땅을 내려찍고 있을 때 첨지가 괭이를 내던지고 소리를 질렀다.
 
73
“얘, 이것 봐라!”
 
74
과연 지적지적하다. 둘은 신이 나서 팠다. 정말 물이 난다. 삼 년 가물에 쏟아지는 비가 이처럼 반가웁고 신기할 수가 있느냐! 그러는 동안에 한 뼘 밖에 안 되는 여름 밤은 훤히 동이 트기 시작했다.
 
75
이튿날 새벽 삼부자가 달려왔을 때는 한 길이나 되게 물이 고였었다. 첨지는 요 십일간 처음으로 흐뭇한 웃음을 입언저리에 띠었다.
 
76
― 그러나 그 물만으로 모를 낸다는 것은 접시물에 배를 띄우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77
이 무서운 폭양에 첨지네 소는 주인과 같이 일을 했던 것이다.
 
78
“내가 죽일 눔이지! 그 벌루 얻어먹지두 못하는 것을…”
 
79
첨지는 소와 같이 숨이 가빠하며 몇 번째나 이렇게 탄식을 한다.
 
 
 

2

 
 
81
“농군은 소를 자식같이 사랑한다”는 말이 있거니와, 첨지에게 있어서는 이 말도 오히려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
 
82
복순이란 년이 몸지어 드러눈 지 달포건만 의붓자식처럼 한번 뻐끔 들여다보면 그만이다. 그것도 어떤 때는 거르는 날이 있다.
 
83
― 하기는 하루에 두세 번 들여다볼 겨를도 없는 첨지다. 올해 같은 혹독한 가물에 다른 농군들은 팔자에 없는 농한기를 만나서 뒷짐을 지고 어슬렁대며 하늘만 쳐다보는 게 일이다. 그렇건마는 첨지는 보를 막아놨으니 이십 간통이나 되는 도랑을 쳐야 하고 봇구멍도 뚫어야 한다. 새들새들 메말라가는 밭곡에 우물물을 길어야 하고 밤에는 또 짚신 켤레라도 삼아야 한다.
 
84
말하자면 첨지에게 있어서는 그의 소는 소가 아니라 은덩이다. 아니 금덩이다. 지금부터 십 년 전 겨우 논 열 마지기와 담판 씨름을 하던 첨지가 덤벅 여덟 마지기를 불구어 광작을 차린 후부터는 첨지의 염두에는 소에 대한 욕망이 불 일듯 했던 것이다.
 
85
첨지는 소에 미친 사람이었다. 길을 가다 말고도 실한 황소를 보거나 엉덩판이 팡파짐하게 살이 찐 암소를 보거나 하면 넋잃은 사람처럼 언제까지나 바라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86
“그 소 참 좋다.”
 
87
하고 볼기짝을 탐스러운 듯이 두드려본다.
 
88
어떤 때는 심술궂은 사람처럼 쇠뿔을 잡고 한번 뒤흔들어본다.
 
89
그러나 이것까지는 오히려 농군으로서의 보통 심리다. 첨지는 밭 가운데서 일을 하다가도 쇠방울 소리가 나면 소도적이나 맞은 사람처럼 내달아서 소를 이모저모 뜯어 본다. 그러고는 반드시 한마디 하는 것이다.
 
90
“그 소 참 좋다. 자, 보시오.”
 
91
첨지에게 있어서는 좋은 소 그른 소가 없다. 명색이 소기만 하면 황소도 좋고 암소도 좋고 송아지도 좋다. 칡소는 칡소래서 좋고 누렁이는 누렁소라 좋다.
 
92
“젠장, 내 평생에 저런 놈 한 마리 삽짝 안에 못 매보나.”
 
93
소를 보고 이런 탄식을 안한 적이 별로 없을 게다.
 
94
그 첨지에게 어느 해 가을 이른 새벽에 소 한 마리가 기어들어왔다. 이태 전부터 몸종처럼 이 주사 집에 드나들면서 당부당부 해두었던 배냇소가 차지된 것이었다.
 
95
그때 여남은 살 됐던 점쇠가 타작 채비를 차리느라고 새벽부터 마당을 쓴다 절구통을 내놓는다 멍석을 깐다 법석인데 늦는 일꾼을 부르러 갔던 점쇠가 어린 깐에도 첨지의 소타령 하는 심리를 이해했던지,
 
96
“아버지, 이 주사 댁 소가 암송아질 났대여!”
 
97
하고 내닫자,
 
98
“어! 거참 신기한 일이다!”
 
99
하고 강아지가 송아지를 낳기나 한 것처럼 신기해했다.
 
100
그는 아무리 바쁜 중이라도 제 눈으로 그것을 가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101
그날부터 첨지는 완전히 이 주사 집 하인이 되고 말았다. 아니 이 주사 집 누렁소의 몸종이 되고 말았다. 쇠죽이며 고삐며 길마까지 참견을 했고 파리가 한 마리만 앉아도,
 
102
“이 목을 쳐 죽일 눔 파리, 산모한테는 종자베도 아깝지 않다는데 이 목을 쳐 죽일 눔, 산모한테 뭐 빨아먹을 게 있다고, 이 목을 쳐 죽일 눔.”
 
103
집안이 떠나가게 허들겁을 떤다.
 
104
“첨지, 첨지가 자네 어미한테 소한테 하는 정성의 반만 했대도 효자문이 섰겠네.”
 
105
하고 이 주사 집에서는 놀려댔다. 그러면 첨지는,
 
106
“그렇다뿐이겠습니까.”
 
107
하고 소처럼 히죽이 웃는다.
 
108
이 송아지가 젖을 떼우고 집으로 끌고 오던 날은 첨지는 개선장군이 성안에 들어올 때와 같이 의기가 충천했었다. 그는,
 
109
“얘들아, 소 들어간다. 소 들어간다.”
 
110
어깨춤을 추면서 고함을 질렀다.
 
111
그 언동이 「춘향전」에 나오는 방자 같다고 옆에서 보던 사람들이 허리를 잡았다. 그는 손독이 들도록 송아지를 매만졌다. 송아지란 놈이 어미 생각이 나서 목이 메게 찾을라치면 그는 똥싼 사람처럼 어쩔 줄을 몰랐다. 송아지가 죽을 한 끼 덜 먹어도 첨지는 온 동리로 돌아다니며,
 
112
“아아, 그눔이 글쎄 통 죽을 안 먹는구려.”
 
113
하고 수선을 핀다.
 
114
“허어, 거 큰일이군. 그러다가 자네 참척 보잖겠나.”
 
115
이렇게들 놀려댔다.
 
116
― 그 애지중지하던 송아지가 그예 소 구실을 못하고 죽어버렸다.
 
117
이듬해 여름, 막 새로 대껴놓은 보리쌀을 반 말푼수나 먹고 위확장이 돼서 걷잡을 새도 없이 삽시간에 죽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118
“그래두 굶겨죽인 것보담 나예. 저두 이 세상에 태났다 배부른 양 한 번 보고 죽었으니 한이야 없겠지.”
 
119
송아지를 묻고 와서 첨지는 이렇게 말했다.
 
120
이듬해 봄에 첨지는 두번째 배냇 송아지를 얻어들였다. 그 송아지가 착실히 커서 삼 년 후에 호랑이 새끼처럼 어여쁜 송아지와 바꾸어졌다.
 
121
그것이 정말 첨지의 소였다.
 
122
― 말하자면 이 소 한 마리에 첨지의 십 년 공덕이 든 셈이었다. 아니 첨지가 오십 평생 꿈에나마 “내 소 한 마리 가져지이다” 하고 빌던 그 소원이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오늘날에서야 이루어진 셈이었다.
 
123
“이눔아, 왜 정신을 못 차리고 이러느냐? 제발제발 좀 돌려다오.”
 
124
첨지는 눈 속이 뜨끈해오는 것을 그것이라고 깨달았다. 소에게도 주인의 마음이 통해지기나 한 것처럼 눈을 껌벅껌벅 구슬픈 표정을 지어보이는 것이었다.
 
125
첨지의 처가 삼 년 묵은 쑥대를 얻어가지고 온 것은 점심때가 훨씬 겨워서였다. 초조한 나머지 바늘방석에 앉은 사람처럼 안절부절을 못하던 때라 물에 빠진 사람처럼 함치르르 땀에 젖은 처를 보기가 무섭게 욕부터 퍼부었다.
 
126
“저런 여펜네한테 불수산 지러 보냈으면 꼭 알맞겠다. 금강산은 길을 몰라 못 갈테니 저 마산에라도 올라갔다 오렴.”
 
127
“아따, 누군 늦을래 늦은 줄 아우. 난두 다리에 자개품이 나게 갔다 온게여.”
 
128
“그놈에 다리는 자개품을 할 줄 모르고 하품을 했던 게다.”
 
129
“공 없는 말만 하는 혀끝은 저승에 가면 짤러낸대여!”
 
130
하고 첨지의 처는 큰소리를 했지마는 기실 쑥대를 얻어가지고 장터로 돌아왔던 것이다. 혹여 남편 눈에 뜨일까봐 허리 골춤에다 웅크렸지만 박 주부네 약국에서 복순이란 년의 약 두 첩을 지어왔다. 쑥을 삶는 불에 장작을 지피어 한편으로는 약도 달이었다. 약을 달이면서도 첨지의 처는,
 
131
'아무리 소도 중하지만 사람이 살고 봐야지. 기왕 둘 중에 꼭 하나가 갈 마련이라면 복순아 네가 살아라.'
 
132
이렇게 속으로 빌고 빌었다.
 
133
그러나 지금의 첨지의 머리에는 복순이가 앓는다는 인식조차도 희미했다. 첨지는 아궁이 앞에 붙어앉았다. 쑥물을 퍼다가는,
 
134
“자아, 이것 먹고 일나라. 십 년 들인 공을 네가 저바려서야 되겠느냐? 자, 먹어라.”
 
135
자식한테 타이르듯 준준히 말해 들리는 것이었다.
 
136
그러나 무슨 결심이나 한 듯이 이를 꽉 악물고 소는 먹지를 않았다. 첨지로 보면 한 번 데인 가슴이라 이렇게 실랑이를 하는 동안에 차츰차츰 소의 기력이 약해가고 드디어 죽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할 때 말귀를 알아듣는 것 같았으면 대가리부터 사뭇 내려조기고 싶었다.
 
137
그때 점쇠 형제가 어디서 들었는지 숨이 턱에 닿게 뛰어들었다. 첨지는 반색을 하며,
 
138
“참 잘 왔다! 자, 너들은 이리 와 솔 붙들어라. 입을 벌려.”
 
139
형제가 덤비어 입을 벌리나 그렇게 녹녹하지가 않다. 하는 수 없이 그들은 소를 아카시아 나무 가지에다 코를 치켜달고 벌린 입에다가 지겟작대기를 가로질렀다. 그러고는 첨지가 헐떡거리며 쑥물을 퍼부었다.
 
140
마침 안방에서도 첨지의 처가 딸년의 입을 벌리고 약을 퍼넣고 있었다.
 
141
이렇게 한참 드잡이를 놓을 판에 마침 장터 고기관지기가 지나다 보고는 배를 몇 번 뻥뻥 두드려보고 잇몸을 들춰 이를 검사하더니 다시 눈 속을 들여다본다.
 
142
“허! 틀렸쉬다. 거참 좋은 손데 그랬다. 이거 파쇼.”
 
143
“팔어? 팔다께?”
 
144
첨지는 멱살이나 들듯이 눈을 딱 부릅떴다.
 
145
“아따, 팔기 싫건 그만두구려. 내가 이 솔 사고 싶어 그러는 게 아니라 우물쭈물하다가 시각만 넘기면 개값 받기도 어려우니까 하는 소리요. 내야 뭐 아오만 몇 십 년 해먹었으니깐 짐작이 돼서 하는 소리요. 이게 소위 위폐(牛肺[우폐])라는 겐데 이놈이 대장으로만 들어가면 뭐 별수 있소. 세 시간 넘기기가 어렵지. 아직까지는 숨이 붙었으니까 단 한푼이라도 손핼 덜 보란 소리지.”
 
146
하고 휘적휘적 가버린다.
 
147
첨지는 눈이 홱 돌아갔다. 점쇠도 옆에서 듣고서,
 
148
“아버지, 기왕 죽는다면 그렇게라도 해서 반값이나마 건지는 게 득책이 아니겠어요?”
 
149
하고 말을 하기가 무섭게,
 
150
“뭐야, 이놈에 자식아, 이 소가 죽어? 죽긴 왜 죽어. 하누님이 소를 아끼는 농사꾼의 마음을 그렇게 안 돌보실 수가 있다더냐.”
 
151
하고 대들었다. 그러나 소는 차도는커녕 점점 까부러질 뿐이다.
 
152
첨지는 드디어 결심을 했다. 그는 죽일 바에는 관지기 말따라 반값이라도 건지는 것이 득책일 것 같았다. 첨지는 점쇠를 뒤미처 쫓아보냈다.
 
153
“그래, 대관절 얼말 줄 테요?”
 
154
“일백이십원 드리리다.”
 
155
“일백이십원? 좀더 내오. 내 너무 억울해 그러오.”
 
156
“오원 한 장 더 내지.”
 
157
한참이나 실랑이 끝에 일백사십오원에 낙찰이 되었다.
 
158
“자! 백원이오. 나머진 나중에 와 찾게 하오.”
 
159
관지기는 지갑에서 십원짜리 열 장을 내놓고 바로 쇠고삐를 잡았다.
 
160
“아 그래, 바로 끌어가시료?”
 
161
기가 막혀 하는 소리에 관지기는,
 
162
“십분 늦으면 십분만큼 내 손핸데.”
 
163
하면서 고삐를 바짝 추켜들고 나선다.
 
164
소는 작별이나 하는 듯이 멀끄러미 첨지를 쳐다본다. 그러고는 안 떨어지는 발을 처적처적 옮겨놓으며 관지기를 따라 동구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165
소가 저만큼 갔다. 첨지는 말뚝처럼 서서 눈에 익은 소 방둥이가 저쪽 밭 머리를 돌아갈 때까지 바라다보고 섰더니, 갑자기 두 주먹을 움켜쥐고 살처럼 내달았다. 첨지는 관지기의 앞을 탁 가로막으며 한 손으로는 쇠고삐를 잡고 한 손으로는 쥐었던 지전 뭉치를 관지기에게 되쥐어주었다.
 
166
“왜 이라쇼?”
 
167
“나 안 팔겠소!”
 
168
“안 팔다께! 그래 눈 번히 뜨고 일백오십원 돈을 공뗄 작정이오.”
 
169
“그까짓 일백오십원 있으나 없으나… 떨어진 때부터 내 손으로 키운 게니 죽여두 내 손에서 죽게 하겠소!”
 
170
그러고는 소를 쳐다보고,
 
171
“너두 그게 소원이지? 그렇지!”
 
172
소가 덤덤하니 눈만 껌벅껌벅하니까,
 
173
“아! 이 자식아, 왜 그렇단 말을 못해!”
 
174
하면서 뺨을 철썩 후려갈긴다.
 
175
순간 첨지의 눈에서는 눈물이 빚어 떨어졌다.
 
176
첨지는 소를 몰고 오면서도 눈물이 나게 좋았다.
 
177
‘내가 너를 어려서부터 길러가지고 돈 일백오십원에 네 면중에다 도끼질을 시키랴, 가죽을 벳기고 갈비를 짜르고 살을 첨첨이 도리게 하랴, 인젠 네 쥔 손에 돌아왔으니 마음놓고 조금이라도 더 살다 죽어라.’
 
178
그는 이렇게 마음속으로 빌고 빌었다.
 
179
첨지는 끽 오래 살아야 해전일 게라고 죽은 후 처치를 자식들을 데리고 이것저것 공론을 했다.
 
180
“나는 저 죽는 거 내 눈으로는 안 보겠다. 너들이나 지켜라.”
 
181
첨지는 휘적휘적 갯밭 논으로 나갔다. 형제가 얼마나 그악스럽게 했는지 봇도랑도 물꼬도 시원스럽게 터놨다. 여기에 한 줄기만 퍼부었으면 웅덩이 물하고 그럭저럭 꽂아는 보겠다만 ― 이런 생각을 해가며 첨지는 오늘 죽을지도 모르고 어제까지 그 큰 돌이며 흙짐질을 한 소의 일생이 너무나 하염없다 싶었다.
 
182
첨지는 그놈이 실어다 쌓은 방천의 그 수많은 돌을 일일이 챙겨보는 것이었다.
 
183
그때 저기서 점돌이란 놈이 헐레벌떡 뛰어온다.
 
184
‘갔구나!’
 
185
첨지가 맥이 탁 풀려서 바라다만 보고 있으려니까 점돌이가 뭐라곤지 소리를 자꾸친다.
 
186
첨지는 그 무서운 소리를 안 들으리라고 두 손으로 귀를 탁 틀어막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187
이윽고 내달은 점돌이는,
 
188
“아버지!”
 
189
하고 소리를 쳤다.
 
190
“왜 이 망할 자식이 신이 나서 지랄이야.”
 
191
하고 첨지도 벌떡 일어나면서 마구 고함을 쳤다.
 
192
“살았어요! 아버지!”
 
193
하며 입이 쩍 벌어진다.
 
194
“뭣이야? 살았어!”
 
195
“살구말구요. 지금 죽을 줬더니 그냥 쭉쭉 들이마셔요.”
 
196
― 그러나 점돌이가 이렇게 말을 한 때는 첨지는 벌써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그는 허둥지둥 논둑을 달리고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 자기가 이렇게 빠른 줄을 몰랐다. 아니 이렇게 느린 줄을 몰랐었다. 그는 소 앞에 내달으며 그대로 목을 얼싸안듯이 하고 그대로 울어버렸다.
 
197
그것은 첨지에게 있어서 지극히 다행한 일이었다.
 
198
그러나 첨지에게 또 한 가지 다행한 일이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 복순이에게 등한 했던 것을 뉘우친 것이요 그 뉘우침이 또 한 가지 불행을 정복했으니 중태에 빠졌던 복순이도 차차 열이 내리고 생기가 돌기 시작했던 것이다.
 
199
그러나 여기에 첨지를 위해서 또 한 가지 다행한 일이 생겼다. 그런 지 사흘째 가던 날 밤부터 봄 이래로 벼르고 벼르던 비가 퍼붓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그냥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천수답에게는 겨우 균열을 면해준 정도였으나 첨지네 여덟 마지기에는 흡족은 못하나마 그렇게 부족되는 물도 아니었다.
 
 
200
<「춘추」26호,1942년 9월>
【원문】모우지도(慕牛之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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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무영(李無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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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2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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