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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직업극단(獨立職業劇團)과 신극단(新劇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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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 3. 2~10
함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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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立職業劇團[독립직업극단]과 新劇團[신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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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情報局[정보국]에서 演劇[연극]콩클 참가로 인정한 團體[단체]는 歌舞伎座[가무기좌]의 尾上菊五郞[미상국오랑] 一座[일좌], 市村羽左衛門[시촌우좌위문] 一座[일좌], 松本幸四郞[송본행사랑] 一座[일좌], 中村吉右衛門[중촌길우위문] 一座[일좌]와 猿之助[원지조]의 新銳劇團[신예극단] 前進座[전진좌], 新國劇[신국극] 水谷八重子[수곡팔중자]의 藝術座[예술좌], 井上正夫[정상정부]의 演劇道場[연극도장], 新成新派[신성신파], 本流新派[본류신파], 曾我迺家五郞[증아내가오랑] 一座[일좌], 松竹家庭劇[송죽가정극], 吉川絲派[길천사파] 一座[일좌], 榎本健一[가본건일] 一座[일좌]와 文樂[문락]의 十六團體[십육단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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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松竹[송죽]과 東寳[동보]의 興行[흥행]○에 매월 二十五日[이십오일] 公演[공연]을 해나갈 수 있는, 기술적으로나 흥행적으로나 어느 地盤[지반]을 갖춘 獨立團體[독립단체]들이다. 그러나 前記[전기] 歌舞伎座系[가무기좌계]의 四劇團[사극단]과 猿之助[원지조] 一座[일좌]와 文樂[문락](ブンラク)은 特殊演劇[특수연극]이므로 玆後[자후]에 稿[고]를 다시 하기로 하고, 五郞劇[오랑극]은 例[예]에 依[의]한 喜劇團體[희극단체]요, 松竹家庭劇[송죽가정극]은 お上りさん과 隱居老人[은거노인]들 相對[상대]의 저속한 희극중심의 劇[극]이요, 緣波[연파](ロツパ)와 榎健[가건](ェノケン)은 영화에서 周知[주지]하는 笑劇[소극]이니 이를 除去[제거]한 단체에 관하야 그 機構[기구]와 性格[성격]과 動向[동향]을 간단히 논의코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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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進座[전진좌] 필자가 근무하는 극단을 말하기는 我田引水[아전인수]가 되기 쉽고 恒常亢慢[항상항만]에 흐르기 쉬우므로 略[략]하되, 다만 이 극단이 歌舞伎[가무기]와 文樂[문락]의 特殊劇團[특수극단]을 除外[제외]코는 명실공히 최고 수준에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집단 생활 속에 藝術[예술]과 生活[생활]은 一體[일체]되어 가족 전부가 무대인이요, 사생활이란 존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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皇紀[황기] 2600年[년] 奉祝藝能祭[봉축예능제]에 團體賞[단체상]을 탄 〈陸奧宗光[육오종광]〉에는 藤森成吉[등삼성길]의 作品賞[작품상], 岡倉士朗[강창사랑]의 演出賞[연출상], 伊藤熹[이등희]의 裝置賞[장치상], 中村翫右衛門[중촌완우위문]의 演技賞[연기상]이 합친 것을 보면 그 舞臺的[무대적] 優越[우월]의 일면을 참작할 수 있으리라. 레파 - 트리 - 는 歷史劇[역사극], 歌舞伎[가무기], 新劇[신극]의 三體制[삼체제]를 택하나 필자는 玆[자]에 이 극단이 심혈을 傾注[경주]하는 元祿忠臣藏[원록충신장]에만 一言[일언]코저 한다. 이 작품은 大谷松竹[대곡송죽] 社長[사장]이 完成後[완성후] 明治大帝[명치대제]의 御靈前[어령전]에 奉獻[봉헌]코저 眞山靑果[진산청과]에게 慫慂[종용]하야 企劃[기획]한 것으로 各[각] 篇篇[편편] 脫稿[탈고]되는 대로 故左團體[고좌단체]가 上演[상연]했었다. 그러나 도중에 그가 物故[물고]한 後[후]는 他團體[타단체]의 全篇[전편] 連續上演[연속상연]을 一切[일체] 不許[불허]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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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前進座[전진좌]의 熱[열]과 誠意[성의]와 技術[기술]에 전폭적 신임을 하고 全篇[전편]의 連續上演[연속상연]을 허락했다. 第一篇[제일편] 〈江戶城[강호성]タ傷[상]〉으로부터 〈第二[제이]の使者[사자]〉, 〈最後[최후]의 大評定[대평정]〉, 〈伏見撞木町[복견당목정〉, 〈御濱御殿網豊卿[어빈어전망풍경]〉, 〈南部雪[남부설]の別[별]れ〉, 〈吉良家表門[길량가표문]〉, 〈同裏門[동리문]〉, 〈泉岳寺[천악사]〉, 〈仙石屋敷[선석옥부]〉, 〈大石最後[대석최후]の日[일]〉의 十一篇[십일편] 四六版[사륙판] 六一六頁[육일륙혈]의 방대한 巨作[거작]은 從來[종래]의 講談[강담], 小說[소설], 舞臺[무대], 映畵[영화], 浪曲[낭곡][등] 허다한 形式[형식]으로 人口[인구]에 膾炙[회자]한 忠臣藏[충신장]을 集大成[집대성]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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綿密[면밀]하 史料調査[사료조사]와 정확한 史實[사실]에 依[의]한 역사극인 이 作[작]은 從來[종래]의 ○所[소] 손에 땀을 쥐든 復讐劇[복수극]이 아니고 大石[대석] 以下[이하] 四十七士[사십칠사]의 人間解剖[인간해부], 元祿時代[원록시대]의 日本[일본] 武士道[무사도]의 精華[정화]와 그들을 통한 ‘身[신]はたとへ武藏[무장]の野邊[야변]に散[산]りぬともとどめすかまし’ 大和魂[대화혼]의 誘導[유도] 摘出[적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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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택스트레지 - 를 할 수가 없다. 한 줄만 削[삭]하면 前後[전후]가 뒤바뀌고 內容[내용]이 틀어지니 演出[연출]과 役者[역자]는 忠實[충실]한 師徒[사도]로 따라나가기 족하다. 벌써 八篇[팔편]을 上場[상장]했고 나머지 三篇[삼편]이니, 六月[육월]에는 明治神宮[명치신궁]에 松竹[송죽]과 前進座[전진좌]와 作者[작자]는 大帝[대제]의 叡慮[예려]의 萬分之一[만분지일]이라도 演劇報國[연극보국]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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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병행하야 這間[저간]에 상연한 작품에는 藤森成吉[등삼성길]의 〈若[약]き日[일]の山陽[산양]〉, 情報局[정보국][상]을 탄 秋月[추월]○太[태]의 〈耕[경]す人[인]〉, 北條秀司[북조수사]의 〈丹邦[단방]トンネル〉, 津村敏行[진촌민행]의 〈南海封鎖[남해봉쇄]〉, 八木隆一郞[팔목융일랑]의 〈野[야]の聲[성]〉, 佐佐木孝丸[좌좌목효환]의 〈銀婚式[은혼식]〉 等[등]으로 모두가 건전한 國民劇[국민극]들이요, 그 수준은 작품에 있어서나 기술에 있어서나 늘 群小[군소] 劇團[극단]의 上位[상위]에 오름에 조금도 주저치 않는다. 長十郞[장십랑], 翫右衛門[완우위문]이 役者[역자]인 동시에 演出[연출]과 理論[이론]에 있어서도 탁월한 것을 가지고 있는 점이 座[좌]의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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幸四郞[행사랑], 羽左衛門[우좌위문] 七十[칠십]에 들고 菊五郞[국오랑], 吉右衛門[길우위문] 六十[육십]에 드니 그들이 간 後[후]의 歌舞伎[가무기]를 長十郞[장십랑]이 繼承[계승]할 것은 推測[추측]할 수 있고 翫右衛門[완우위문]의 名演技[명연기]는 瀧澤修[농택수], 丸山定夫[환산정부]와 함께 爛熟[난숙]의 境[경]에 들어가고 있다. 火災[화재]로 20萬[만][원]을 灰燼[회신]에 歸[귀]튼 날도 마찌네 - 를 했고, 俳優[배우] 公三郞[공삼랑]은 喪妻[상처]를 당하고도 千秋樂[천추락]까지 쉬지를 않았으니 일체를 막론하고 舞臺[무대]를 생명으로 생각하는 그 眞摯[진지]한 태도에는 叩頭[고두]치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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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國劇[신국극] 前進座[전진좌] 十二年[십이년]의 倍[배]인 二十五年[이십오년]의 역사를 가진 이 극단은 故澤田正二郞[고택전정이랑]의 遺鉢[유발]을 계승하야 俵藤丈夫[표등장부]의 主宰[주재] 아래 辰巳柳太郞[진사유태랑] · 島田正吾[도전정오]의 兩優[양우]가 끌고 나간다. 別名[별명] 柳蛙部隊[유와부대]라 함은 小野道風[소야도풍]의 書道精進[서도정진]의 逸話[일화]에서 따온 것이로되 늘 熱[열]과 참신한 企劃[기획]으로 아주 大衆[대중]의 품에 폭 안기어 있다.〈野口英世[야구영세]〉와 〈關[관]の彌太[미태]ッペ〉, 〈眞室校長[진실교장]〉과 〈織田信長[직전신장]〉, 〈東宮大佐[동궁대좌]〉와 〈荒川[황천]の佐吉[좌길]〉같이 從來[종래]의 三本建制[삼본건제]를 打破[타파]하고 現代劇[현대극]과 時代劇[시대극] 二本建[이본건]으로 觀客[관객]의 各層[각층]을 多樣的[다양적]으로 포옹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 時代劇[시대극]이란 소위 マゲ物人情世話物[물인정세화물]로 澤正[택정]의 劍[검]이라는 殺陣中心[살진중심]의 것이다. 有樂座[유락좌]에서 상연한 〈東宮大佐[동궁대좌]〉는 北滿開拓[북만개척]의 선구자인 大佐[대좌]의 人品[인품]과 業蹟[업적]을 46세의 짧은 생애 중 가장 苦難[고난]을 極[극]한 土龍山事件[토룡산사건]을 중심으로 劇化[극화]한 것이다. 傳記劇[전기극]에 흔한 연대적 배열이 없고, 영웅화가 되지 않았고, 설명적이 아님은 作者[작자] 北條秀司[북조수사]의 능숙한 作劇術[작극술]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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辰巳[진사]의 大佐[대좌]는 不撓不屈[불요불굴]의 忍從[인종]과, 大和民族[대화민족] 大移動[대이동]을 絶叫[절규]하는 雄渾[웅혼]한 愛國精神[애국정신]과, 속에 慈愛[자애]와 抱擁力[포옹력]을 가진 人品[인품]을 유감없이 표현하였다. 島田[도전]의 行政官[행정관] 三木[삼목]이 惡化[악화]한 事態[사태]를 설명하고 移民[이민]들의 歸國[귀국]을 권하는 松花江上[송화강상]의 船中斷判場面[선중단판장면]의 兩優[양우]의 ‘嚙合[교합]セ’도 흥미 있었고, 移民[이민]들이 酷寒[혹한]과 土匪[토비]에 희망을 잃고 歸鄕[귀향]을 할려는 幕切[막절]은 悲愴[비창]했었다. 畑中蓼坡[전중료파]의 滿洲國[만주국] 將軍[장군], 秋月桂太[추월계태]의 移民團長[이민단장]으로부터 滿人移民[만인이민]의 端役[단역]까지 생명이 약동하는 것은 作者[작자], 演出者[연출자](金子洋文[금자양문]), 裝置者[장치자](伊藤熹朔[이등희삭])가 演劇使節[연극사절]로 건국 10주년 경축회에 참례한 감격의 소산이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警察署[경찰서], 汽船甲板[기선갑판], 警備司令部[경비사령부], 移民團本部[이민단본부] 屋外[옥외]의 四杯[사배]의 ‘쎄트’ 는 氏[씨]의 寫實[사실]의 승리를 代言[대언]하는 重厚[중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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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不快[불쾌]한 것은 開幕[개막]의 오 - 케스트라다. 現代劇[현대극]은 배루로(引幕[인막]도), 析[석](キ)로, 朝鮮[조선]의 劇[극]은 ‘징’으로 그 풍습과 전통에 따라 빚어진 芝居道[지거도]를 무시하는 것은 定式[정식]의 二重[이중]을 무시하는 것과 같이 惡趣味[악취미]로 경박한 奇衒外[기현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旣往[기왕] 월급 주는 劇場專屬[극장전속]의 樂團[악단]이라 쓴 거겠지만 朝鮮[조선]같이 講堂演劇[강당연극]에 樂士[악사]를 불러다 풍짜풍짜하는 것은 써 - 커스나 淺草[천초]레뷰 - 를 聯想[연상]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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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荒川[황천]の佐吉[좌길]〉는 島田[도전] 主演[주연]의 ヤクザモノ가 廻廊[회랑]에 들리는 下馱[하타] 소리같이 齒切[치절]れの良[량]い臺辭[대사]와 함께 通俗的[통속적]이 돼 滋味[자미]있는 二番目物[이번목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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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谷八重子[수곡팔중자]의 藝術座[예술좌]는 帝劇[제극]에서 井上演劇道場[정상연극도장]의 山口俊雄山田己之助[산구준웅산전기지조], 新派[신파]의 藤村秀夫[등촌수부], 新銳劇團[신예극단]의 八白藏[팔백장]을 合[합]한 都市對抗[도시대항]의 蹴球團[축구단] 같은 公演[공연]을 가졌다. 그러나 다들 선수라 자기 파 - 트를 잘 지키고 우승을 하니 ‘寄[기]せ集[집]め’라고 책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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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番目[일번목]의 〈靑果[청과]の市[시]〉는 芝木好子[지목호자]의 芥川賞[개천상] 受賞作[수상작]을 阿木翁助[아목옹조]가 脚色[각색]한 것이다. 戰時下[전시하]의 中小商工業者[중소상공업자]들의 統制經濟[통제경제]를 主題[주제]로 한 것으로 시국에 적응한 企劃性[기획성]에 한 수 앞섰다. 純文藝作品[순문예작품]의 劇化[극화]란 本是[본시] 난삽한 것이나 시장의 풍경과 靑果仲買店[청과중매점]의 變遷[변천] 등을 幻燈[환등]으로 보여가며 능하게 처리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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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檎[임금]의 買占[매점]을 하는 競賣場面[경매장면]의 女主人公[여주인공] お八重[팔중]로 扮[분]한 八重子[팔중자]는 종래의 新派調[신파조]로 誇張[과장]튼 때는 깨끗이 씻고 나왔다. 市場機構改革[시장기구개혁]의 필연성을 力說[역설]하는 동생으로 扮[분]한 加藤[가등]의 소박한 演技[연기]는 八重子[팔중자]의 좋은 陰翳음예]가 됐었다. 靑春[청춘]을 店舖擴張[점포확장]과 蓄財[축재]에 허송한 お八重[팔중]가 闔門[합문]을 하고 비로소 누릉지같이 굳은 제 마음을 슬퍼할 때는 측은한 동정이 들더니 그가 傷痍軍人[상이군인]을 보고 女子[여자]의 本性[본성]으로 돌아가 새로운 希望[희망]을 갖게 되는 幕切[막절]에는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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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幕[중막]의 北條秀司[북조수사][작] 〈山彥[산언]〉은 詩情[시정]이 풍풍 풍겨오는 좋은 스켓치劇[극]이다. 三好榮子[삼호영자]와 八重子[팔중자]는 男便[남편]을 戰線[전선]에 보낸 炭燒女[탄소녀]로 扮[분]했다. 미소가 저절로 흐르는 單純[단순]한 싸움과 倦怠[권태]한 山間生活[산간생활]의 一瞬一瞬[일순일순]의 喜怒哀樂[희로애락]이 약초 냄새같이 퍼져 올라온다. 水谷史郞[수곡사랑]의 子役[자역]도 山村俊雄[산촌준웅]의 할아범도 名手[명수]가 무대에 판 듯이 척 맞었다. 남편이 귀환한다는 날, 창문을 열고 “お父[부]さん”부르는 산울림의 긴 - 여운과 月夜[월야]의 信濃山脈[신농산맥]의 아름다운 夜遠景[야원경]은 ‘언제나 朝鮮[조선]도 저런 것을 한번 해보노’하고 나를 무한히 서글프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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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番目[이번목]의 〈殘菊物語[잔국물어]〉는 村松梢楓[촌송초풍]의 藝道物[예도물]을 巖谷三一[암곡삼일]가 脚色[각색]한 것으로 明治末葉[명치말엽]의 名優[명우] 菊之助[국지조](市川人百藏扮[시천인백장분])와 お德[덕](八重子[팔중자][분])의 悲戀記[비련기]에다 師弟愛[사제애]의 嚴[엄]과 情[정]을 삽입한 것이다. 八百藏[팔백장]은 歌舞伎[가무기] 役者[역자]니만치 능했고 八重子[팔중자]는 出身[출신]인 新派調[신파조]로 充分觀客[충분관객]을 울렸으나 대사와 무대가 考證[고증]을 무시하고 너무도 現代的[현대적]인 것이 눈에 거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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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三本[삼본]의 理智[이지], 素朴[소박], 感傷[감상]의 三性格[삼성격]을 八重子[팔중자]는 市場[시장]에서 능금과 배를 골라내듯 熟達[숙달]하게 처리해나갔다. 十年[십년] 만에 함렛트를 하던 帝劇[제극]에 다시 서는 그의 心中[심중]은 감개무량하리라. 그도 이제는 30代[대] 演技[연기]의 澁味[삽미]가 나오게 됐고 레파 - 트리 - 도 戀愛物[연애물]을 피하고 演劇的[연극적] 眞實[진실]을 추구할려고 노력하는 것은 慶賀[경하]할 일이다. 그의 무서운 精力[정력]과 다할 줄 모르는 演劇[연극]에의 愛情[애정]이 ‘베루나- 루’, ‘쿠닙뻴’같이 老境[노경]에까지 그를 舞臺[무대]에서 떠나지 말게 하기를 바라는 것은 나의 노파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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劇團新派[극단신파]는 東京劇場[동경극장]에서 吉屋信子[길옥신자][작], 脇屋光伸[협옥광신] 脚色[각색] 〈新[신]しき日[일]〉六幕[육막], 川口松太郞[천구송태랑][작] 〈紅鬼[홍귀]○〉三幕[삼막]을 上場[상장] 했다. 河合武雄[하합무웅], 井上正夫[정상정부], 水谷八重子[수곡팔중자], 花柳章太郞[화류장태랑]이 떠난 現在[현재] 喜多村綠郞[희다촌록랑] 혼자 孤疊[고첩]을 지키고 있으나 力盡力折[역진역절]의 상황이다. 관객은 新劇[신극]과 中間劇[중간극]과 映畫영화]란 괴물에 눈이 높아졌으니 七十[칠십]에 드는 老優[노우]가 女形[여형]로 눈물을 짤려는 데는 구미가 돌지 않게 됐고, 松竹[송죽]도 岡讓二[강양이], 花柳小菊[화류소국]을 넣어 協同[협동]치 않으면 흥행을 할 수 없게 됐다. 12月[월] 明治座[명치좌]를 보면 三本中[삼본중] 二本[이본]이 岡讓二[강양이] 中心[중심]의 것이다. 데릴사위가 장인을 제쳐놓고 門標[문표]를 내걸고 橫行[횡행]해도 장인은 一言[일언]도 못하고 處分[처분]만 바라니 可惜[가석]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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歌舞伎[가무기]는 日本[일본]의 역사와 民族[민족]과 함께 영원히 존재할 것이나 新派[신파]는 벌써 舊派[구파]에 屬[속]하고 現在[현재] 半派[반파](岡喜多村[강희다촌])이니 死[사]ン派[파]될 때는 時日問題[시일문제]가 되고 말았다. 이 稿[고]를 抄[초]하는 2월 1일의 初日賣上高[초일매상고]를 보면 前進座[전진좌]의 十分之一[십분지일]이라 하며 절망에 가까워 來月[내월]에는 新成新派[신성신파]와의 合同[합동]이 實現[실현]될 것이라 한다. 內容[내용]이나 藝[예]로가 아니고 대사 두 마디 하고 전환하는 장치로만 관객을 속여갈려 하므로 十五六杯[십오륙배]의 셋트에 大道具[대도구]는 짜증 안 내고, 照明家[조명가]는 너절한 演劇[연극]에 고연히 켰다 껐다 할 것 없이 五郞劇[오랑극]처럼 켜논 채 하는 게 낫다고 하는 소리를 누차 들었다 조선 . 朝鮮[ ]에 新派[신파]가 없는 것은 참으로 불행중 다행이다. 조선의 大衆劇[대중극]은 絶對[절대]로 新派[신파]는 아니다. 新派[신파]의 역사와 성장에는 稿[고]를 달리하겠거니와 가끔 新派[신파]를 云爲[운위]하는 無識[무식]한 劇評家[극평가]에게 玆[자]에 一言[일언]해두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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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寳塚劇場[동보총극장]의 新演技座[신연기좌]는 東寳[동보]가 高給[고급]의 長谷川一夫[장곡천일부]와 山田五十鈴[산전오십령]를 ○림 減縮[감축]의 現在[현재], 놀리지 않을려는 打算[타산]과 宣傳[선전]의 一鳥二石[일조이석]으로 내놓는 것이다. 春琴抄[춘금초]가 檢閱[검열]의 却下[각하]되어 三村伸太郞[삼촌신태랑] 人住利雄[인주리웅]가 急作[급작]한 伊那[이나]の勘太郞[감태랑]란 ヤクザモノ와, 久保田萬太郞[구보전만태랑][작] 演出[연출]의 〈ともしびの國[국]〉란 通俗開拓劇[통속개척극]과, 〈徂조]し春[춘]の曲[곡]〉의 三本建[삼본건]다. 劇場[극장]엔 앉었기가 챙피할 만큼 ミイチヤン, ハーチヤン이 늘어앉어 〈あい長谷川[장곡천]よ〉, 〈まあ五十鈴[오십령]〉를 連發[연발]할 뿐 劇[극]은 아무래도 좋은 모양이다. 푸로마이드만 봐도 좋거늘 實物[실물]을 눈앞에 보니 四圓[사원] 五十錢[오십전]의 입장료가 무엇이 비싸랴. 座中[좌중] 往年[왕년]의 名優[명우] 汐見洋[석견양]를 보는 것은 딱했다. 다만 長谷川一夫[장곡천일부]의 〈徂조]し春[춘]の曲[곡]〉의 靜御前[정어전]의 法樂舞[법악무]만은 소매끝에 물방울이 떨어질 듯 艶麗[염려]했고 그 이외는 소녀취미에 알맞는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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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生新派[신생신파] 나와 이 劇團[극단]과는 무슨 惡緣[악연]이 있는지 늘 별르면서도 觀劇[관극]할 기회를 잃게 된다. 本流新派[본류신파]를 脫退[탈퇴]한 花柳章太郞氏[화류장태랑씨]가 大矢市次郞[대시시차랑], 伊志井寬[이지정관], 大江良太郞[대강량태랑], 柳英二郞[유영이랑]과 同人制[동인제]로 組織[조직]한 것으로 先年[선년] 情報局[정보국] 콩클 受賞[수상]한 眞船豊[진선풍][작] 〈山蔘道[산삼도]〉를 비롯하야 좋은 舞臺[무대]를 많이 보여주고 있고, 가끔 築地[축지]에서 ‘勉强會[면강회]’를 가져 硏究的[연구적] 態度[태도]를 버리지 않는 것도 好意[호의]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新生[신생]이건 後生[후생]이건 新派[신파]인 이상 運命[운명]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井上正夫[정상정부]가 수립을 제창한 中間演劇[중간연극]은 八木隆一郞[팔목융일랑], 北條秀司[북조수사]의 두 우수한 극작가를 내놓았고 〈能[능]の唄[패]〉, 〈閣下[각하]〉, 〈天高[천고]き日[일]〉와 三好十郞[삼호십랑]의 〈彥六大[언륙대]いに笑[소]ふ〉等[등]을 通[통]하야 藝術性[예술성]과 大衆性[대중성]을 融合[융합]시키기에 성공했다. 그러나 좋은 相對役[상대역]이던 岡田嘉子[강전가자]가 三面[삼면]을 裝飾[장식]한 後[후] 그는 田村秋子[전촌추자]와 細川[세천]ちか子[자]의 兩人[양인]에게 交涉[교섭]을 했으나 快諾[쾌락]을 얻지 못했다. 近者[근자]에는 座員[좌원]의 山村俊雄[산촌준웅], 山田己之助[산전기지조]를 매월 水谷[수곡]의 藝術店[예술점]에 贊助[찬조]시킬 뿐 自己[자기]는 演劇行動[연극행동]을 당분간 적극적으로 아니 할 것이라 한다. 좋은 女優[여우]로 더불어 自己[자기]가 살려는 것은 좋으나 그게 가능치 않다고 자기를 포기하는 것은 考慮[고려]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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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局下[시국하] 演劇[연극]의 使命[사명]을 重且大[중차대]하고 新協[신협], 新築地[신축지]의 解散後[해산후]의 荒凉[황량]한 劇界[극계]에 氏[씨]마저 年[년] 2,3회의 水谷[수곡]과 合同公演[합동공연] 이외는 獨自公演[독자공연]을 안 갖는 것은 몹시 아까운 일이다. 12월에 콩클 참가작품으로 水谷[수곡]과 〈岩崎谷[암기곡]〉을 上演[상연]하야 西鄕隆盛[서향융성]로 扮[분]했으나 潤氣[윤기]가 없고 생경했었다. 座員[좌원]의 대다수가 탈퇴하야 정신적 고통이 컸음에 인한 것이라고도 추측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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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劇團體[신극단체] 井上[정상]의 이 소극적 태도에 불만을 가진 山村聰[산촌총] 以下[이하]의 座員[좌원]들이 文化座[문화좌]라는 旗幟[기치]를 걸고 新劇的[신극적] 發足下[발족하]에 三好十郞[삼호십랑]의 〈三日間[삼일간]〉을 들고 築地[축지]에 나왔다. 脚本[각본]은 歸還勇士[귀환용사]의 雜誌記者[잡지기자]를 주인공으로 戰時[전시]에 昏迷[혼미]하는 지식인의 약점을 상당히 모질게 찔렀으나 全體[전체]가 愚嫉[우질](푸념)에 終始[종시]하고 動作[동작]이 없이 機械的[기계적] 發音[발음]으로 假名[가명]을 외이고 있는 듯했다. 〈報國七生院[보국칠생원]〉, 〈炭塵[탄진]〉, 〈戰國群盜傳[전국군도전]〉의 迫力[박력]도, 〈妻戀行[처련행]〉의 서정도, 〈彥六[언륙]もの〉의 풍자도 없는, 옥수수 썩은 外皮[외피]를 씹는 劇[극]이다. 그가 지식인의 고민을 취급한 작품으로는 〈幽靈莊[유령장]〉, 〈浮標[부표]〉그리고 이 〈三日間[삼일간]〉이나 心理的[심리적]인 묘사에는 トカキ를 팽키처럼 누덕누덕 장황히 늘어놓는 버릇이 있다. 연기공부를 하기에는 좋으나 너무도 찔깃찔깃하다. 如何[여하]한 名優[명우]라도 表情[표정]과 動作[동작]으로는 表現[표현]의 限度[한도]가 있어 心理的[심리적]인 個所[개소]는 戯曲[희곡]이 臺辭[대사]의 文學[문학]이니만치 相對役[상대역]을 通[통]하야 끌어내도록 하는 게 亦是[역시]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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佐佐木隆[좌좌목융]의 演出[연출]은 臺本[대본]을 붙든 채 반 익은 계란을 집은 듯 운신을 못하고 東大獨文科[동대독문과] 出身[출신]의 인테리 배우 山村聰[산촌총]도 大劇場演技[대극장연기]의 틀을 벗지 못한 채 咫尺[지척]에서 呼吸[호흡]을 듣는 소극장에 나왔으므로 동작과 억양이 맞지 않았다. 다만 伊藤喜朔[이등희삭]의 田園[전원]의 아름다운 裝置[장치]만이 두부집에 걸린 體鏡[체경]같이 빛나고 있었다. 들은 즉 新興[신흥]의 손으로 關西[관서]를 一巡[일순]한다기에 多幸[다행]을 빌었더니 大阪公演[대판공연] 때 보니 三流[삼류]의 漫才[만재]쇼 - 劇場[극장]에서 그것도 添物[첨물]로 一幕[일막]을 들고 나와 含淚[함루]치 아니치 못했다. 원컨대 社會[사회]가 늙은 井上[정상]을 支持[지지]할 것만 아니라 이들 다음 世代[세대]를 지켜 나갈 젊은 新人[신인]을 북돋고 길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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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寳演劇硏究會[동보연극연구회]는 帝劇[제극]의 復活[부활]과 함께 東寳資本[동보자본]의 산하에 前進座[전진좌], 藝術座[예술좌], 新國劇[신국극]에서 引拔[인발]한 中堅[중견]에다 舊創作座[구창작좌], 築地座[축지좌]의 演技者[연기자]들을 加[가]하야 組織[조직]한 團體[단체]로 每月[매월] 下旬[하순]의 二三日[이삼일]을 쪼개 硏究的[연구적]으로 公演[공연]을 갖고 있다. 前年[전년]의 東寳劇團[동보극단]의 실패를 회복할려는 의도에서 상당한 ○性[성]을 각오하고 계속해나갈 모양이다. 外野村晋[외야촌진], 山崎進藏[산기진장], 中江良介[중강량개], 藤輪欣司[등륜흔사], 木崎豊[목기풍], 高稿豊子[고고풍자], 淸州[청주]すみ子[자], 志賀夏江[지하하강]이 주된 演技陣[연기진]이고 高木次郞[고목차랑], 西片鐵也[서편철야]가 演出責任[연출책임]을 지고 있다. 第一回[제일회]가 富澤一郞[부택일랑][작] 〈三十六時間淀泊[삼십륙시간정박]〉三幕四場[삼막사장](파니욜의 화니 - 를 九州[구주]를 背景[배경]하고 飜案[번안]한 것), 第二回[제이회]가 久保田萬太郞[구보전만태랑][작] 演出[연출]의 〈카 - 루·붓세〉一幕[일막], 井伏鱒二[정복준이][작] 高田保[고전보] 脚色[각색] 〈多甚古村[다심고촌]〉二幕[이막]이다. 새로 創立[창립]한 劇團[극단]이되 素人[소인] 아닌 상당한 기술자를 모았으나 〈寄[기]せ集[집]め〉의 觀[관]이 濃厚[농후]하고 演技[연기]의 無統一[무통일]이 눈에 띄는 것은 좋은 지도자를 못 가진 緣由[연유]임이리라. 演劇[연극]이란 興行師[흥행사] 밑에 生產[생산]은 돼도 創造[창조]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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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敎師[교사] 없는 語學室[어학실], 師範[사범] 없는 道場[도장]이란 月日[월일]의 評[평]은 너무도 모진 苦舌[고설]이었다. 興行[흥행]은 말이 아니고, 단지 三日公演[삼일공연]을 料金[요금] 80錢[전] 2圓[원]에 東寳[동보]의 宣傳[선전]도 效[효]없고, 그 넓은 帝劇[제극]에는 바람이 싹싹 불 지경이었다. 藝術的[예술적]으로 한 형태를 갖추고 大衆[대중]에 膾炙[회자]하야 硏究會看板[연구회간판]을 뜯어버리고 二十五日[이십오일] 公演[공연]을 하게 될려면 4,5年[년]도 긴 歲月[세월]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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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主宰者[주재자] 秦豊吉[진풍길]란 興行師[흥행사]라 매월 오댕꼬치를 빼듯 莫大[막대]한 缺損[결손]을 보는 劇團[극단]을 끝까지 犧牲[희생]해 나갈까가 問題[문제]다. 第三回[제삼회]의 小林宗吉[소림종길][작] 〈彌榮村建設記[미영촌건설기]〉는 近間[근간]의 劇界[극계]의 收穫[수확]이었다. 그 正確[정확]한 數字的[수자적] 農村調査[농촌조사] 속에 理想鄕[이상향] 建設[건설]에의 烈烈[열렬]한 日本[일본]의 農民魂[농민혼]이 一貫[일관]하야 全篇[전편]이 異樣[이양]한 迫力[박력]과 感謝[감사]를 주는, 어느 開拓移民劇[개척이민극]보다 秀逸[수일]했다. ‘滿洲[만주]로 가자, 거기에는 기름진 땅이 있다’하고 개나리 봇짐을 强勸[강권]하는 槪念的[개념적]인 곳은 한 곳도 없다. 武裝移民[무장이민]과 匪賊[비적]의 戰鬪場面[전투장면]도 實戰[실전]을 보는 것 같았고 橫川信幸[횡천신행]의 荒凉[황량]한 曠野[광야]의 裝置[장치]는 照明[조명]과 함께 한층 劇[극]을 살렸다. 〈東宮大座[동궁대좌]〉와 달라 詩[시]도 있고, 潤氣[윤기]도 있고, 더욱이 白雪[백설]의 새벽, 大陸[대륙]의 花嫁[화가]를 迎接[영접]하는 場面[장면]에는 장가가고 싶은 생각이 났고, 正月[정월]을 앞두고 故鄕[고향]의 彌榮節[미영절]을 부르며 떡을 치는 幕切[막절]은 충분히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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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四回[제사회] 〈화우스트〉四幕[사막]을 奉豊吉[봉풍길][역] 演出[연출]로 上場[상장]했다. 그 陣容[진용]으로 이 위대한 巨作[거작]을 企劃[기획]한 것은 괴 - 테에 대한 冒瀆[모독]이요, 秦豊吉[진풍길]의 토 - 찌까的[적] 心臟[심장]이라고 批難[비난]이 많았으나 石濱日出雄[석빈일출웅]의 簡潔[간결]한 樣式的[양식적] 裝置[장치]는 演劇資材統制[연극자재통제]가 실시된 現時下[현시하]에 符合[부합]한 試作[시작]이었다. 裝置[장치]란 黑幕[흑막] 앞에 뱃도 한 개만 놓고도 華麗[화려]한 宮殿[궁전]의 內室[내실]을 表現[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朝鮮[조선]같이 越中富山[월중부산]의 萬金丹賣商[만금단매상]같이 매일 매일을 巡演[순연] 안 하면 成立[성립]할 수 없는 演劇[연극]에는 樣式化[양식화]된 簡潔[간결]한 것이 한층 더 절실히 요구된다. 조명도 음악도 좋았으나 화우스트, 매휘스트회레스, 그레 - 챈 등 人物[인물]과 演技[연기]의 距離[거리]는 너무도 멀었다. 특히 臺本[대본]의 택스트래지 - 는 無謀[무모]를 劇[극]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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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五回[제오회] 寒川光太郞[한천광태랑][작] 富澤一部[부택일부] 脚色[각색]의 〈北風[북풍]ぞ吹[취]かく〉五幕[오막] 九場[구장]은 明治[명치] 中葉[중엽]을 背景[배경]하고 北海道[북해도]에 건너가 藥草栽培[약초재배]에 苦鬪[고투]하는 開拓劇[개척극]이다. 필자는 大阪公演[대판공연] 때문에 觀劇[관극]치 못했으나 내용이 〈石狩川[석수천]〉, 〈人生劇場[인생극장]〉, 〈마리우스〉를 한데 섞은 찌개라는 것이 共通[공통]한 評[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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藝術小劇場[예술소극장]의 〈印度[인도]〉四幕九場[사막구장]은 田鄕虎雄[전향호웅]의 出世作[출세작]으로 十年前[십년전] 改造[개조]에 當選[당선]했던 것이다. 1930年[년] 깐듸 - 의 指導下[지도하]에 全印[전인]에 展開[전개]한 非暴力反英運動[비폭력반영운동]이 主題[주제]인 것을 今般[금반] 演出者[연출자] 靑山杉作[청산삼작], 北村喜八[북촌희팔]이 補筆添削[보필첨삭]하야 一層[일층] 反英運動[반영운동]은 强調[강조]했다. 祖國[조국]을 救[구]할려도 印度人[인도인] 매니 - 타가 英國[영국]의 謀略[모략]에 걸려 쓰러지기까지를 사건의 골격으로 하고, 當時[당시] 民衆[민중]의 悲慘[비참]한 生活[생활]과 官憲[관헌]의 强壓[강압]과 到來[도래]할 時代[시대]의 黎明[여명]에 있어서는 大學生[대학생]들, 穩健派[온건파]의 領袖[영수]를 父[부]로 가진 革命派[혁명파]의 아들의 相克[상극] 등이 名手[명수]의 布石[포석]같이 配置[배치]돼있다. 當選作[당선작]다운 氣魄[기백]도 意慾[의욕]도 淸新[청신]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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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을 당한 回敎徒[회교도] 이마 - 므·사헤부와 메니 - 타의 누이동생 스다 - 의 러브신은 깨끗했고, 岸壁[안벽]에 선 깐듸 - 가 民族解放[민족해방]을 부르짖는 場面[장면]은 素人[소인]의 朗讀[낭독] 같은 〈에로큐 -숀〉이었으나 의연히 聖者[성자]로 우러러보였다. 메니 - 타가 폼페이 州知事[주지사]의 감방에서 어릴 때 고향의 민요를 부르는 장면에는 옆에 앉았던 印度人[인도인] 大學生[대학생]은 고개를 숙이고 울고 있었다. 한 가지 可惜[가석]한 것은 이 傑作[걸작]이 全然[전연] 素人俳優[소인배우]로 小劇場[소극장]에서 演出[연출]하는 것이다. 이 舞臺[무대]를 보고 절실히 느낀 것은 演劇[연극]이 얼마나 集團性[집단성]에 基礎[기초]를 두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未熟[미숙]한 俳優[배우]에는 靑山杉作[청산삼작], 北村喜八[북촌희팔]의 優秀[우수]한 演出者[연출자]가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舞臺[무대]는 依然[의연] 空虛[공허]하다. ‘나는 素人[소인]을 데불고 演劇[연극]하는 것이 滋味[자미]다’라는 것은 愚[우]의 骨頂[골정]이다. 基礎舞臺[기초무대]를 쓴 吉田謙吉[길전겸길]의 裝置[장치]는 簡潔中[간결중]에도 조곰도 무게를 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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苦樂座[고락좌] ‘如何[여하]한 苦難[고난] 속에도 血路[혈로]와 希望[희망]이 있다. 우리들은 到來[도래]할 밝은 日本[일본]에의 希望[희망]과 責任[책임]과 確信[확신]이 있다. 先祖[선조]에서 받은 거 - 룩한 피의 흐름이 있다. 그것을 舞臺[무대]를 通[통]하야 부르짖자는 것이 信念[신념]이다’라는 標榜下[표방하]에 薄田硏二[박전연이], 丸山定夫[환산정부], 德川夢聲[덕천몽성], 藤原鷄太[등원계태]의 四人[사인]이 同人制[동인제]로 原泉子[원천자], 澤村貞子[택촌정자], 鶴丸睦彥[학환목언] 등과 함께 年[년] 4회의 公演[공연]을 갖는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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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舞臺[무대]에는 前記[전기] 信念[신념]은 片鱗[편린]도 찾아볼 수 없었다. 森本熏[삼본훈][작] 〈生[생]れた土地[토지]〉는 鑛山[광산]에 勤勞[근로]하던 老囑託醫[노촉탁의]가 아들의 出征[출정]을 契機[계기]로 無醫村[무의촌]으로 가는 라듸오 드라마 一景[일경], 〈玄關風呂[현관풍려]〉는 尾崎一雄[미기일웅]의 通稱[통칭] 〈吉兵衛[길병위]もの〉를 八田尙之[팔전상지]가 脚色[각색]한 無人氣作家[무인기작가]의 身邊記[신변기], 〈見知[견지]らぬ人[인]〉五幕[오막]은 眞船豊[진선풍]의 찔깃찔깃한 人間[인간]의 醜惡面[추악면]을 摘出[적출]한 것으로 獨白[독백]으로 一場面[일장면]을 끌고 나가는 테 - 제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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奇異[기이]한 것은 薄田[박전]가 〈生[생]れた土地[토지]〉의 主人公[주인공] 老醫啓介[노의계개]로, 丸山定夫[환산정부]가 〈見知[견지]らぬ人[인]〉의 かぶと町[정] 仲買店小使[중매점소사] 鮫川忠助[교천충조]로, 藤原鷄太[등원계태]가 〈玄關風呂[현관풍려]〉의 作家[작가]로 各其[각기] 一本式[일본식] 主人公[주인공]을 演[연]하는 것이다. 가뜩이나 적은 식구로 아파 - 트 式[식] 레파 - 트리 - 를 짜는 것은 앞으로 피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作品[작품], 演技[연기], 演出[연출]이다 小劇場的[소극장적]인 것을 觀客層[관객층]도 判異[판이]하고 大劇場中[대극장중]에도 間口[간구]가 멋없이 넓은 新宿大劇[신숙대극]에 들고 나와 裝置[장치]와 演技[연기]가 제각기 놀고 있었다. 영화배우로서의 포스터 봐류 - 를 自信[자신]한 모양이나 二十日[이십일] 興行[흥행]을 하는데 三日[삼일]째부터 劇場[극장]이 텅텅 비었었다. 다만 丸山定夫[환산정부]와 薄田硏二[박전연이]가 貫祿[관록]있는 演技[연기]로 진흙 속에서 연꽃을 꺾으려고 苦鬪[고투]하는 게 눈물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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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學座[문학좌]는 座名[좌명]과 함께 文學置重[문학치중]의 團體[단체]로 新協[신협], 新築地[신축지] 解消[해소][후] 唯一鮮明[유일선명]한 新劇的[신극적] 形態[형태]를 갖추고 있다. 岩田豊雄[암전풍웅], 久保田萬太郞[구보전만태랑], 岸田國士[안전국사]가 文代[문대] 幹事制[간사제]로 創立[창립]했으나 다 一線[일선]에서 물러나고 현재는 三津田建[삼진전건]이 座主[좌주]로 主宰[주재]해나가고 있다. 岸田[안전]은 論[논]만에 實[실]이 없고 岩田[암전]도 新聞小說[신문소설]에는 두각을 냈으나 舞臺創造[무대창조]에는 아무 것도 기여한 바 없었다. 다 - 만 久保田萬太郞[구보전만태랑]이 作[작], 演出[연출]로 한 스타일을 樹立[수립]하고 있다. 作品[작품] 안된 イロハ順[순]의 97名[명]의 連名[연명]은 擧槪[거개]가 副業[부업]이라 一生[일생]을 바쳐도 다 못할 劇藝術[극예술]을 심심풀이로 創造[창조]할려하니 眞實[진실]의 意味[의미]의 劇團[극단]은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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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1월에 上演[상연]한 〈鶉순]〉四幕七場[사막칠장]은 今年度[금년도] 新劇[신극]의 最高收穫[최고수확]이었다. ‘나는 一切[일체]를 버렸다. 원고지를 들고 집을 나왔다. 京都知恩院孤庵[경도지은원고암]의 一室[일실]에서 化石[화석]같이 매일 매일 앉아 뜰만 내다보고 있었다. 〈鶉[순]〉은 이 내 마음 한 구석에서 피어오르듯 나온 作品[작품]이다.’ 主題[주제]인 都市的[도시적] 虛榮心[허영심], 物質主義[물질주의]에 徹[철]서 妻[처]와, 人間性[인간성]의 赤裸裸[적나라]한 眞實[진실]에 살려는 遠山大助[원산대조]의 爭鬪[쟁투]는 進取[진취]하는 者[자]와 後退[후퇴]하는 者[자]의 時代相[시대상]을 表徵[표징]하는 것이었다. 沒理解[몰이해]인 채 억지로 뭉쳐진 듯한 家庭[가정]을 꽃으로 緩和[완화]할려는 歸還兵士[귀환병사]의 아들도 잘 浮彫[부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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遠山[원산]이가 그믐날 밤 오뎅집에서 만난 未知[미지]의 사나이에게 잊었던 人間性[인간성]의 眞實[진실]을 發見[발견]하고 그를 따라가는 것은 입센의 어린아이 욜푸가 魔術[마술]을 하는 老婆[노파]를 따라가는 것같이 年齡[연령]과 動機[동기]에는 差度[차도]가 있을망정 人間[인간]이 늘 多情[다정]을 그리는 것은 共同[공동]한 本性[본성]이라는 것을 말함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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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いたち〉를 낳은 久保田[구보전]과 眞船[진선]은 여기에 熹朔[희삭]의 裝置[장치]와 함께 또 다시 劃期的[획기적] 舞臺[무대]를 創造[창조]했다. 오뎅집 神社境內[신사경내] 遠山[원산]의 집 省線[성선]가 - 드 밑에 象徵的[상징적]인 보 - 얀 裝置[장치]는 演技者[연기자]들의 呼吸[호흡]과 똑같이 生動[생동]하고 있었다. 滿醉[만취]한 氏[씨]가 廊下[낭하]에서 떠드는 童心[동심]의 一片[일편]을 裝置[장치]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杉村春子[삼촌춘자]의 妻[처]는 至[지]○였고 森雅之[삼아지]의 大助[대조] 三津田健[삼진전건]의 未知[미지]의 사나이, 東山千榮子[동산천영자]의 仲媒女[중매녀], 다 깊이와 幅[폭]과 무게가 있는 生動[생동]하는 演技[연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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眞船[진선]의 작품에는 〈いたち〉, 〈裸[나]の町[정]〉, 〈かひ〉등 全部[전부]가 어둠에 싸여 빛이 없으나 이 作[작]에는 窓[창]이 있어 幕切[막절]에 觀客[관객]도 演技者[연기자]도 救[구]함을 받게 된다. 十二月[십이월]의 킨태 - 로 - 作[작] 〈女[여]ばかりの村[촌]〉二幕[이막]은 궁둥이가 들석들석할 만큼 輕快[경쾌]한 喜劇[희극]이다. 長岡輝子[장강휘자]의 戯畫化[희화화]한 演出[연출]이 좋았고, 山口[산구]의 빼 - 빼를 빼놓고는 바다 臭氣[취기]가 조곰도 없는, 充分[충분] 즐길 수 있는 好劇[호극]이다. 久保田萬太郞[구보전만태랑][작] 演出[연출]의 〈町[정]の音[음]〉三幕[삼막]은 눈오는 날 밤거리 一隅[일우]에서 時局下[시국하]의 발소리와 微妙[미묘]한 人情[인정]의 機微[기미]를 들을려는 作[작]이다. 역시 久保田[구보전]이즘에 一貫[일관]한 俳句趣味[배구취미]가 濃厚[농후]할 뿐 그 以外[이외]를 願[원]하는 것은 無理[무리]인 愚作[우작]이다. 效果[효과]에 있어 애픽트 - 마신의 使用[사용]으로 눈이 퍼붓는 것을 보이는데, 역시 눈은 振籠[진롱]에서 잘게 쓴 紙片[지편]을 떨어뜨리는 것이 實感[실감]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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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體[전체]를 通[통]해 結論[결론]을 짓고 朝鮮[조선]과의 聯關[연관]을 論[논]할려고 했더니 벌써 二十四枚[이십사매]이다. 일단 閣筆[각필]하고 다음에 또 抄[초]하기로 한다.
 
 
44
(東京國民演劇[동경국민연극]의 展望[전망] ; 《매일신보》1943. 3. 2~10.)
【원문】독립직업극단(獨立職業劇團)과 신극단(新劇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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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세덕(咸世德) [저자]
 
  매일 신보(每日申報) [출처]
 
  1943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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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12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