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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취삼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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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2
백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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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취삼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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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莊周)가 호접(胡蝶)이냐 호접(胡蝶)이 장주(莊周)이냐! 지난해 이른 봄 ○향(○向)없이 거리로 나갔다가 우연히 그림 파는 점방 앞을 지나다가 한 장의 풍경화(風景畵)를 샀다. 많은 그림 중에서 특별히 이 한 장이 맘에 무척 들었던 것이다. 평소(平素)에 문외한(門外漢)인 나이니 만큼 그 그림에 평안(評眼)이 있어 그런 것이 아니요 무단히 맘에 들었던 것이다. 그림의 경치(景致)가 이 지상(地上)의 풍경(風景) 같게 여겨지지 않고 마치 화성(火星)의 풍경(風景)같게 느껴졌다. 화성(火星)을 동경(憧憬)하는 나도 아니요, 화성(火星)에 대(對)하여 별 흥미(興味)를 느끼고 있는 것도 아니요 물론(勿論) 화성(火星)에 가본 적이라고는 꿈에라도 있을 리(理)가 없는 것이다. 공연히 아 ─ 무 이유(理由)없이 그렇게 느껴졌던 것이니 이 엉터리없는 느낌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떼어버릴 수 없는 버릇의 하나이다. 탐정(探偵)의 제육감(第六感)이라는 것에 비슷한 것이라고 나는 반성(反省)도 하지 않고 고치려고도 하지 않으며 어떤 때는 반(半)자랑같이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 이 그림을 화성(火星)의 풍경(風景)을 그린 그림이라고 느낀 것도 제육감(第六感)의 눈에는 빛인 사람의 말 같게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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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간(左右間) 나는 이 그림을 집으로 가져다가 높은 천정(天井)을 가진 침방(寢房)에 걸기로 하였다. 항상 남(南)쪽으로 머리를 두고 자는 나인고로 북(北)쪽 벽(壁)에다 걸고 밤마다 누을 때마다 눈에 잘 뜨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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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火星)의 수림(樹林) 같다고 느끼어지는 광물성(鑛物性)을 띄운 붉고 거친 호리호리한 수목(樹木)과 꽃 없이 푸르고 잔잔한 호수(湖水), 원경(遠景)의 푸른 산(山)은 그림 전체(全體)에 정숙(靜淑)한 느낌을 주고 있다. 이 그림에서 가장 쉽게 눈에 뜨이는 것은 이것뿐이다. 그림으로 일견(一見) 뜻없이 살풍경(殺風景)하며 ○(末[말])한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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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따위 그림이 이렇게 마음에 들리(理)가 만무(萬無)하다고 스스로 느끼어지는 때도 없는 것은 아니나 웬일인지 나는 이 그림이 무척 좋았다. 단순(單純)히 좋을 뿐 아니라 이 그림 속에서 천당(天堂)이며 극락(極樂)을 꿈꿀 수도 있으며 하루 밤에도 몇 번씩 나로 하여금 장주(莊周)가 되게 하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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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火星)의 풍경(風景) 같다고 느끼어 이 그림을 보며 장주(莊周)의 꿈을 꾼다는 것이 기괴(奇怪)하고 우스운 일일 것이다마는 나의 공상(空想)만은 자유자재(自由自在)의 것이니 내 스스로인들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저녁 먹고 이럭저럭 하다가 자리에 들어가면 제일(第一)먼저 이 그림이 눈에 뜨인다. 그러면 언제든지 찬에 박은 것 같이 큰 한숨이 한번 내쉬어지며 한껏 기지개가 나온다. 그러면 나는 어느 사이에 호접(胡蝶)이 되고 마는 것이다. 펄펄펄 날아서 그림의 수림(樹林) 속으로 잔잔한 푸른 호수(湖水) 위로 지상(地上)에다 ‘굿바이’를 하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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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래산(蓬萊山)이 아닌 이 살풍경(殺風景)한 경치(景致) 속에서 나는 신선(神仙)도 되며 불타(佛陀)도 되여 ○眼全[안전]○의 천사(天使)들의 음악(音樂)도 들으며 온 땅덩이를 한 눈 속에 집어넣고 ‘게암이’ 잔채 구경하듯 철소(徹笑)도 한다. 나는 전지전능(全知全能)하며 우주간(宇宙間)의 모두가 모두가 내 마음대로며 나 하나를 위(爲)하여 있는 것 같게도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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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동산(東山)이 붉으스럼 하여지고 참새소리가 들려오면 나는 그만 지상(地上)의 일철생(一徹生)으로 돌아오고 만다. 그러면 지난밤의 장주(莊周)는 간 데 없고 그 날의 인생(人生)을 또 맞게 되는 것이다. 누구나 다 ─ 마찬가지의 고로(苦勞)의 인생(人生)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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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을 산 후 오늘까지 나는 이같이 날과 밤을 두 낮으로 나누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오래 계속된 오늘에 와서는 밤이 낮인지 낮이 밤인지 어느 것이 나의 현실(現實)인지 분별할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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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완전(完全)히 이 그림 한 장 까닭에 금세(今世)의 장주(莊周)가 되고 말은 것이다. 일부터 과대망상병(誇大忘想病)에 걸린 금세(今世)의 ‘돈키호테’나 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될 수 있는 대로 이 그림 속에 밤마다 나비가 되어 날아다니고 싶을 뿐이다. 이 그림 까닭에 나의 인생(人生)을 도취(陶醉)시켰을 뿐이라 그 도취(陶醉)의 삼매경(三昧境)에다 모든 고로(苦勞)를 녹여 버리고 만 것이다. 이 심경(心境)을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서는 얼마나 우스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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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이 같은 사람이 오 ─ 직 나 한 사람뿐이 아닌 것을 알은 후 무척 위로(慰勞)를 받은 적이 있다. 그것은 나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동해 중부선(東海中部線)의 B정차장(停車場)이 있다. 이 정차장(停車場)에 어느 날 저녁에 한 동무를 맞으러 나갔다가 시간(時間)이 삼십분(三十分) 가량 이르므로 외투 ‘에리’에다 턱을 감추고 대합실(待合室) 한편에 앉아 기다리게 되었다. 문득 어디서 처량한 단소(短簫)의 소리가 들려 왔으므로 심심하던 차라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와 보았다. 그 소리는 그 정차장(停車場) 역장(役長)의 사택(舍宅)에서 흘러 나왔다. 나는 염치 불구하고 살그머니 걸어 그 소리나는 창(窓) 밑에 가 서서 들여다 보았다. 아직 전기(電氣)가 없는 이 촌(村) 역장(役長)이 갈스릿한 ‘램프’ 아래서 그 부인(夫人)과 단 둘이 마주 앉아 단소(短簫)를 불며 그 부인(夫人)은 고개를 갸웃하여 삼매선(三昧線)으로 반주(伴奏)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따금 부인(夫人)은 작은 목소리로 오래를 불러 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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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게 조용하게 흘러나오는 그 소리에 나는 잠깐 도취(陶醉)가 되었었다. 내 곁에 문득 서 있는 ○花[화] 나무가지가 따르릇 소리를 내어 내 가슴은 턱없이 센치멘탈 하여졌다. 밤바다 그림 속에 놀 때의 형언(形言)할 수 없는 ○快[쾌]한 녹색(綠色)의 향기(香氣)가 코끝을 살짝 스쳐 지나갔다. 문득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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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들도 저 때는 도취(陶醉)하여 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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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입 속에서 속삭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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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한결같이 계속하며 흥(興)에 겨워 몸과 머리를 좌우(左右)로 흔들거리며 두 눈을 감았다 떴다. 두 볼을 불룩 ─ 하며 열심(熱心)으로 단소(短簫)를 불고 있었다. 나는 무슨 생각이 났던지 갑자기 손가락으로 두 귀를 꼭 막고 창(窓)으로 들여다보았다. 갑자기 폭소(爆笑)가 터져 오름을 억지로 참고 이윽히 참고 들여다보다가 참다못하여 가만히 소리를 낼 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는 그들이였으나 그 소리가 쉬에 들리지 않게 해 놓고 다만 그들의 동작(動作)만을 엿볼 때 우습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기다란 막대기를 입에 물고 저 자식이 무슨 저런 망칙한 표정(表情)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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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거니 기적성(汽笛聲)이 들리자 나는 웃는 얼굴 그대로 대합실(待合室)로 돌아와 프렛 폼을 내어다 보았다. 조금 있더니 적(笛)을 불던 그 역장(役長)도 모자를 쓰며 프랫 폼으로 가장 점잖하게 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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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밤 집으로 돌아와서 전(前)보다 일찍 침방(寢房)에 누워 그림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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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저 그림 속에 밤마다 장주(莊周)가 되어 천사(天使)들의 음악(音樂) 속에 놀고 있는 줄은 누가 안다면 내가 웃어준 아까의 역장(役長) 같이 나를 또 웃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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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흐흥’하는 코웃음을 쳐 보았다. 그러나 나는 그 날 밤부터 더 한층 이 그림이 나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것이 되고 말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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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1934.2).
【원문】도취삼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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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신애(白信愛) [저자]
 
  중앙(中央) [출처]
 
  1934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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