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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오던 그 날 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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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
백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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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던 그 날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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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 년 전(六年前)이다. 그때 나는 동(東)쪽 서울에 있었다. 그 해에는 웬일인 지 몇 십 년(十年)만이라는 대설(大雪)이 내렸었다. 나는 아파트의 삼층(三層) 일실(一室)에서 저물어 가는 눈 하늘을 하염없이 내다보느라고 유리창(琉璃窓)에 이마를 기대고 서 있었다. 그때 건너편 양관(洋館) 삼층(三層)에서 역시(亦是) 눈 내리는 이웃지붕을 내다보고 있는 한 여인(女人)이 있었다. 그 여인(女人)은 오래 전(前)부터 나를 발견하였던지 내가 그 여인(女人)을 바라볼 때 그는 나에게 열심히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양관(洋館)과 내가 있는 아파트는 거의 백여 간(百餘間)이나 떨어져 있었고 또 저물어 가는 저녁때이라 그 여인(女人)의 얼굴 모습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나는 조금 서먹서먹하기는 하나 이 창(窓)을 열고 손을 내밀어 그에게 흔들어 보였더니 그는 갑자기 바쁜 일이 생긴 듯이 다시 한 번 손을 흔들어 보이고 창(窓)에서 사라졌다. 나는 어찌된 셈인지 가슴이 쓸쓸하여 졌으므로 창문에다 커텐을 내려버렸다. 그 사이에 전등이 켜지며 복도에 조심스런 발자취 소리가 들려오며 가끔 머물러서는 기척을 느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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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방 사람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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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테이블 앞 의자에 걸터앉아 원고지(原稿紙)를 펼쳐보았다. 조금 있더니 발자취 소리는 내 방 앞에 와 흐트러지며 얌전스런 노크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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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심(無心)코 들어오라고 대답하였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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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도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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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아름다운 소프라노의 음성이 대답하였다. 나는 노크한 사람의 주저하는 태도에 잠깐 생각한 후 일어서 도어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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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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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어를 열자 그 곳에 서 있는 사람이 내가 꿈에도 얘기해 본 적이 없는 눈이 부시게 반짝이는 금ㅇ(金ㅇ)을 가진 양녀(洋女)임에 질겁을 하듯 놀랐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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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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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이야기한 후 그를 방안으로 들였더니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그 이유는 그가 일본인(日本人)이나 조금도 다름없을 만큼 말이 유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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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편으로 옮겨온 지 일주일이나 됐어요. 아침마다 당신이 창(窓)을 여는 것을 보았어요. 그때마다 손을 흔들어도 당신은 못 본 척 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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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관창(洋館窓)에서 내다본 여인(女人)이 즉 자기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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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랬어요? 나는 오늘 처음 당신을 발견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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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와 어느 사이인지 십년지기(十年知己)같이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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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눈을 맞으며 우리 산보(散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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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거리로 나섰다. 가까운 일비곡공원(日比谷公園)으로 향(向)했다. 공원(公園)앞까지 가서는 둘이 함께 발을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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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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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갑자기 나에게 바짝 다가서며 인적기(人跡氣)없는 공원(公園) 안을 기웃거렸다. 나는 여기까지 눈을 맞고 걸어오는 동안 흠뻑 감상(感傷)에 잠겨 있던 터이라 그의 어깨를 껴안았다. 그리고 눈물을 감추며 애달픈 설희(雪姬)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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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희(雪姬)! 그는 나이가 나보다 한 위였으나 몸집이 나보다 무척 작아서 나를 언니라고 불렀어요. 그의 사랑하는 이는 모사건(某事件)으로 사형(死刑)을 당하고 홀어머니와 가엾이 살았는데 나는 그의 유일(唯一)의 동무였습니다. 그는 항상 검은 루바시카를 입고 내 가슴에 기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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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나는 춘희(椿姬)를 사랑한답니다. 나도 춘희(椿姬)처럼 되렵니다. 아니 나는 춘희(椿姬)보다 설희(雪姬)가 되렵니다. 함박눈이 펄펄 소리 없이 땅위에 쌓일 때 나도 소리 없이 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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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부터 그는 스스로 설희(雪姬)라고 이름을 고쳤습니다. 그 역시 춘희(椿姬)처럼 가슴을 앓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설희(雪姬)가 재작년에 정말 눈 내리는 밤 소리 없이 머언 암흑(暗黑)의 나라로 사라져 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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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가 끝나자 이 이국(異國) 여인(女人)은 바로 가슴을 헤치고 흰 단추가 목까지 달린 새까만 블라우스를 나에게 보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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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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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감격에 떨리는 듯 나를 불렀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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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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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감탄과 함께 그의 블라우스의 스타일이 그 전날 설희(雪姬)가 즐겨 입던 루바시카와 비슷함에 놀라며 행여나 설부의 영혼이 나타남이 아닌가하여 등어리에 찬 땀이 쭉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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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나는 내 영감(靈感)이 들어 맞았어요. 당신은 반드시 나에게도 유일(唯一)한 동무가 될 것 같아요. 오늘밤, 흰 눈이 내리는 가운데서 백(白)이란 성(姓)을 가진 당신을 친하게 되고, 설희(雪姬)의 이야기를 들었으며, 그 설희(雪姬) 또한 나와 운명(運命)이 같은 사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이(奇異)한 일입니다. 나는 당신보다 나이가 많은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당신을 언니라고 부르겠어요. 당신은 나를 설희(雪姬)라고 불러주세요. 정말 정말 나는 설희(雪姬)라고 이름을 고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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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그는 무슨 설움이 가득 차 오른 듯 내 어깨 위에 이마를 부비어 대었다. 나는 온몸에 소름이 끼친 채 묵묵히 서 있으며 그 여인(女人)이 설희(雪姬) 같게만 생각되어졌다. 그리하여 얼른 이 생각(生覺)을 물리치려고 안전지대(安全地帶) 위로 옮겨 섰다. 그러나 그는 무엇에 취한 듯 내 곁에로 자꾸 다가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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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파일! 아니 언니! 우리가 이렇게 서 있는 동안 눈이 자꾸 내려서 우리가 눈 가운데 포옥 파묻혀 버렸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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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그는 커다란 눈을 반짝였다. 우리는 함께 웃으며 옷 위에 쌓인 눈을 서로 바라보는 사이에 가로등(街路燈)에 펄펄 날리는 눈발이 마치 우리를 눈 속에 파묻으려는 듯 싶었다. 이윽고 함께 걷기 시작하였을 때 나의 가슴은 이국정서(異國情緖)로 가득해지며 남의 나라를 방랑(放浪)하는 듯 노스텔지어의 마음은 자못 설레였다.
【원문】눈 오던 그 날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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