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논쟁유감 ◈
카탈로그   본문  
1946.6.3
김남천
1
논쟁유감
 
 
2
논쟁이란 어떤 성질, 어떤 내용의 것이었던가. 논적을 상대로 하는 혹종의 싸움임에 틀림은 없다. 그러나 또 그것이 다름 아닌 싸움인 까닭에 일종의 전법(戰法)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다. 전법을 모르고 허턱대고 달려들면 정력과 지면의 낭비일 뿐 문제를 갈수록 혼란케만 할 것이다.
 
3
1. 첫째로 초점을 바로 붙들어야 한다. 관점을 세우지 못하고 논적의 자구(字句)나 따라 다니고 어떤 구절에나 붙들려 쫓아다니면 자기의 주장도 또는 상대자의 입론의 특징도 포착하지 못하고 실컷 뒤치닥거리만 하다가 나중에는 독자도, 쓰는 자도 함께 피로와 권태만을 느낌에 이를 것이다. 논적의 지배(紙背)에 들어가서 그의 약점을 단적으로 집어내어 이것을 향하여 예리한 비수를 꽂는 것 - 햇내기가 함부로 쓰다가는 실수하기 첩경인, 그러기 때문에 또 전법의 가장 찬란한 대목이기도 하리라.
 
4
2. 흥분해서는 못쓴다. 첫 구를 읽어보고 이내 돌을 던져 보거나 가쁘게 숨을 내쉬거나 안절부절을 못해서 행(幸)히 생각이 영글지 못한 채로 펜에 잉크칠을 하여서는 아니된다. 논적에게 자신과 방만과 기세를 조장시킴에 그칠 뿐 도리어 자신의 당황과 혼란을 폭로할 뿐일 것이다. 또 흥분을 하면 렌즈가 흔들려서 사물을 바로 볼 수도, 논쟁의 초점을 붙들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자를 내세우던간 거기에는 어긋난 화살과 흔들린 핀트와 회(回)를 거듭할수록 더해가는 혼한만이 되풀이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독자까지 머리가 어지러워 멀미가 나고 만다.
 
5
3. 적당한 욕석은 필요하다. 그러나 첫 줄에서 끝줄까지 욕설만 퍼부으면 실증이 나서 독자는 이야기 중턱에서 종이를 팽개쳐 버릴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효과적으로 욕설을 쓸 것인가. 레닌이 최고의 교사다. 이론을 전개할 때엔 철두철미 냉정하여 구미를 자극하는 고명 정도로 간간이 쓰고 일단 논증이 끝나면 눈코 뜰 수 없이 가두적 술어(街頭的述語)를 속사포처럼 퍼부어서 다시 숨을 돌릴 여유조차 주지 말지어다.
 
6
4. 논적이 한 명으로 등장할 때엔 이 편에서도 개인으로 등장하는 것이 이롭다. 어떤 기관이나 신문의 단평란, 사설같은 서명없는 논박은 언뜻 보면 그 속에 필자가 숨어 있기 때문에 필자 개인에게 집중될 사격을 교묘히 피한 듯하여 냉리한 전술 같으나 이것은 논쟁 방법으로선 가장 졸렬한 하수에 속한다. 왜냐하면 논적은 일개인인데 이 편은 큰 기관이요, 신문 전체이고보니 이러한 대진(對陣)은 논적에게 방만을 품게 하고 필경은 논적을 과대 평가하는 인상만 남길 것이다. 신문이나 기관전체가 왁자지껄 떠들고 나선다면 자신있는 논적은 얼마나 회심의 미소를 그리며 적진의 혼란을 비웃을 것이냐. 이것은 시작하기 전부터 지는 송사다.
 
7
5. 당수가 원외단이나 졸개를 대신으로 내세우는 건 논적을 경시한다는 것으로 되어 효과적이다. 그러나 칼도 변변히 못쓰는 수위나 교군에게 분에 넘치는 장창(長槍)을 들리어 상전이 만들어 놓은 야채밭마저 엉클어 놓으며 곱장춤을 추고 들면 그것도 또 걱정일 것이다. 졸개 중에 정예가 없으면 자신이 나서는 것이 무사답고 당당할 것이다. 일군의 장(將)은 승산에 밝아야 한다.
 
8
6. 어느 모로 쳐들어갈까 자세를 못 정하고 초점을 놓친 채 변두리만 울리고 돌면 이론의 빈곤을 폭로하여 도리어 침묵보다 못하다. 예컨대 문화인은 정치에 관여치 말라던가, 문화인은 문화나 하라던가 하는 등의 시정배적 속언이 즉 그것이다. 문인은 문인으로 돌아가가? 이때에 만약 어떤 문인이 있어 반문하되‘그대들은 정치 중개업이나 신문 기자를 그만두고 8ㆍ15 이전의 득의의 직업으로 돌아가가’하고 외치는 날이면 무슨 말로써 대답하려는가. 그러니까 이런 덜익은 이론은 입밖에 내놓지도 말 것이다. 당수나 정치중개인보다 예술가의 자존심이 높다는 것은 맹신하고 있는 것이 권력이나 의자나 권위를 티끌처럼 알고 있는‘문인’의 심리임을 알고서 논적의 약점을 바로 골라야 할 것이다.
 
 
9
법도 룰도 아무것도 모르는 논객들이 하도 횡행하기에 몇 마디 적어서 수련의 자재(資材)로 정(呈)하는 바이다. (필자는 소설가)
 
 
10
(『현대일보』, 1946년 6월 3일)
【원문】논쟁유감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평론〕
▪ 분류 : 근/현대 수필
▪ 최근 3개월 조회수 : 10
- 전체 순위 : 4277 위 (3 등급)
- 분류 순위 : 797 위 / 1794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 논쟁유감 [제목]
 
  김남천(金南天) [저자]
 
  # 현대일보 [출처]
 
  1946년 [발표]
 
  평론(評論) [분류]
 
  # 문학평론 [분류]
 
◈ 참조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수필 카탈로그   본문   한글 
◈ 논쟁유감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11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