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남극의 가을밤 ◈
카탈로그   본문  
1925.1
이익상
1
남극의 가을밤
 
 
2
지평선 위에 걸린 해와 창공에 오른 달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나의 옛날에 들은 바 해와 달 이야기를 아니 생각할수 없습니다. 새빨갛게 이 글이글하게 달은 해와 얼음덩이처럼 싸늘하고도 맑은 달이 나의 어린 마음에 깊이깊이 뿌리박았던 것이 오늘까지에도 오히려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인가 합니다.
 
3
이것은 내가 칠팔 세 되었을 때 어느 가을밤 일이었습니다.그러니 이 일처럼 나의 어렸을 때의 모든 기억 가운데 분명히 남아 있는 것은 다시 없다고 생각합니다.
 
4
어머니는 언제와 마찬가지로 등잔불 아래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가을이라 겨울옷 준비에 매우 바쁜 것이 어린 나에게도 알려줄 만하였습니다. 등잔불이라 하여도 오늘 같은 전기등 같은 것은 물론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내 집은 시골이었으므로, 그리고 가난하였으므로 램프불 같은 것조차 얻어볼 수 없었습니다. 새 양철 등잔에 대추씨만한 불송이가 어두컴컴한 빛을 방 안에 가득히 던지었을 뿐이었습니다. 이것이 다만 하나의 광명이었습니다.
 
5
그러나 그때에는 이것만으로 아무 부자유스러운 것 없이 바느질도 하고, 책도 읽고 한 것입니다. 밤마다 밤마다 이러한 등잔불 밑에 제일 가까이 앉은 것은 어머니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누이였습니다.제일 많이 등잔불과 거리를 두고 떨어져 앉아 있는 이는 언제든지 어린 나이었습니다. 이것은 어떠한 이유인지 알 수 없으나, 사내자식이 등잔불 밑에 쪼그리고 앉은 것은 보기 싫다 하여 어머니에게 가끔가끔 꾸지람을 들었으므로, 밤이 되면 등잔불과 멀리 떨어져 앉는 것이 어린 나의 매우 주의하는 일의 하나가 되었던 것입니다.
 
6
그날은 달이 특별히 밝아 보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아마 구월 보름께나 되었던 것입니다. 방 안에 등잔불이 있는데도 오히려 창 바깥의 달빛이 창살에 푸르스름하게 비칠 만큼 밝았습니다.
 
7
어머니는 바느질이 거의 끝났었을 때에 이야기책을 그 등잔불 밑에서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그러한 이야기책을 보시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던 것을 지금에도 넉넉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지금 그러한 책 이름을 일일이 기억할 수는 없습니다마는,또는 그러한 책을 지금에는 본 일도 별로 없습니다마는 ,『하씨선행록』이니,『전우치전』이니,『삼국지』이니 하는 모두 이러한 것이었습니다.물론 우리나라 언문으로 베낀 책이었습니다. 책장이 해질까 염려하여 종이에 기름까지 바른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늦도록 잠을 자지 않고 앉았던 것은 어머니의 책을 읽는 소리 가운데에서 한 마디 한 마디씩 귀에 들어오는 말을 주워 모아 가지고 내껏 어떠한 해석을 해보는 것이 큰 재미였던 것입니다.
 
8
어떠한 때에는 어머니가
 
9
“너는 잠도 오지 않느냐? 너만 할 때에는 밥만 먹으면 거꾸러져 자게 될 터인데……. 별 아이도 다 보았지!”
 
10
꾸지람도 같고, 귀여워하는 듯도 한 말을 흔히 들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어머니가 옛날이야기나 수수께끼 같은 것도 하며 나에게 흔히 들려주었습니다. 그래서 밤이 늦도록 잠을 자지 앉고 어머니의 틈나기를 나는 기다리었던 것입니다.
 
11
어머니가 바느질을 끝내고 책을 볼 때였으므로 밤은 꽤 깊었습니다.
 
12
어머니는 책 보던 눈을 나에게로 돌리며,
 
13
“저 소리 들어보아라! 너는 저게 무슨 소린 줄 아느냐?”
 
14
라고 별안간에 물었습니다.
 
15
나도 누님도 따라서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귀에 분명히 들릴 만큼 나오는 소리는 없었습니다.다만 조용하던 방 안이 더욱 고요하여졌을 뿐이었습니다. 누이는 한참이나 귀를 기울이고 있더니, 무슨 소리를 알아들은 것처럼 손가락으로 방문을 가리켜주었습니다. 나는 가리키는 방문에 더욱 주의를 하였습니다.
 
16
그리하였더니 과연 그 방문에서 무슨“뚝딱뚝딱”쪼는 소리 같은 것이 들리었습니다. 어머니는 나더러,
 
17
“그게 무슨 소린 줄 아느냐?”
 
18
고 물었습니다.나는 모른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어머니는 그것이
 
19
“문살각시 다듬이 하는 소리다.”
 
20
라고 설명하였습니다.
 
21
우리 시골에는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이 문살각시 다듬이 소리란 것은 그때에 처음 알았습니다. 더욱 주의를 하고 들었더니, 그것은 과연 먼 곳에서 울려오는 다듬이 소리와 조금도 틀림없이 들리었습니다.
 
22
누이는 곁에 누웠던 자尺[척]를 집어 방문을 한 번 탁 쳤습니다. 그런 뒤에는 “뚝딱뚝딱”하는 소리가 뚝 그쳐버리고 말았습니다.
 
23
어머니는 다시 가을이 되면 문살각시도 일이 바빠서 다듬이질을 한다고 설명하여주었습니다. 나는 무서운 생각이 났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 곁으로 바짝 가까이 앉았습니다.(이 문살각시 이야기는 내가 그 뒤에 보통학교에서 이과理科를 배울 때에 선생에게 물어보았더니, 그것은 귀신이 아니요 가을이 되면 그러한 벌레가 있어서 문 앞으로 쪼는 소리라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비로소 벌레인 줄 알았던 것입니다.)
 
24
한참이나 있었더니 또다시“뚝딱뚝딱”소리가 났습니다. 그때에는 누이가 일부러 방문을 열었습니다. 문살각시는 또다시 다듬이를 그쳤습니다. 우리 어머니나 누이는 이것을 다른 귀신처럼 무섭게 여기지 않고, 무슨 친근한 귀여운 벗처럼 여기는 줄 알았습니다. 누이는 문을 열고 바깥 마루로 나아갔습니다.
 
25
나도 무시무시한 생각을 하면서 뒤를 따라 나아갔었습니다. 물론 그때에는 달빛이 희푸른지, 하늘빛이 검푸른지 알 수 없었으나,달밤의 엄숙한 기운이 비록 어린 나에게라도 황홀을 느끼게 한 것은 사실인 듯합니다. 이때에 나는 누이에게 이러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26
“너는 저 달이 얼마나 큰지 알겠니?”
 
27
나는 그렇게 애써 생각도 않고 바로 대답하였습니다.
 
28
“우리 집 방석만 하지!”
 
29
이것은 우리 집에서 베나 고추 같은 것을 말릴 때 쓰는 둥근 방석만을 본 나이었으므로, 이것도 보이는 달의 크기 그것만으로 하면 이 대답보다도 더 쉬울 게 우리 집에 있는 둥근 소반이나, 또는 쟁반 같은 것을 가리켜 비교하였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나의 눈에 보이는 그것만한 것만 생각하고 그대로 대답하여도 관계찮은 것이면 누이가 달의 크기가 얼마나 한 것을 물을 리가 없다는 것을 어린 마음에도 생각하였으므로, 나의 눈에 보이는 그것보다는 좀 더 클 것이라 생각하고 에누리하여 방석만 하다고 대답한 것이었습니다.
 
30
누이는“하하”라 웃어버리었습니다. 나는 이러한 웃음을 두 번째 누이에게서 듣게 되었습니다. 한 번은 내가 하늘을 만져보러 앞산에 올라가자고 누이에게 청하다가 이러한 웃음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내가 하도 우연히 하늘을 만져볼 생각이 났었던 것입니다. 앞산 봉우리와 하늘이 꼭 닿은 것같이 생각한 까닭에,앞산 위에만 올라가면 하늘은 아무 어려울 것 없이 만져보리라고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달의 크기가 방석만 하다고 한 나의 대답을 들은 누이는 다시 내가 말한 것보다는 더 크다는 것을 말하였습니다.
 
31
그런데 나에게는 둥글고도 큰 것으로 아는 것이 또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시골의 D라는 큰 연못이었습니다. 그 연못은 주위가 십 리나 된다고 합니다 . 그래서“D방죽(연못의 뜻)만 하지!”라 하였습니다. 누이는 웃으며 훨씬 더 크다고 말하였습니다. 나는 D방죽보다도 더 큰 것으로 둥근 것을 보지 못하였으므로, 다시 더 말할 수 없었습니다.
 
32
그러다가 이 달의 크기 문제로 필경은 어머니에게 가서 어떠한 것을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33
어머니는 그때까지 이야기책을 보고 있었습니다. 내가 누이의 말에 불복한 듯이 달을 얼마나 크냐고 어머니께 물었더니, 어머니는 웃으면서
 
34
“조선 팔도보다도 더 크다.”
 
35
고 대답하였습니다.
 
36
지금 생각하여보면, 아마 어머니가 아시는 것으로 제일 큰 것은 조선 팔도이었었던 것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37
물론 그때에 나는 조선 팔도라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둥글고 큰 것은 조선 팔도인 줄 짐작하게 되었었습니다.
 
 
38
이때에 어머니는 달이 얼마나 크냐고 묻는 말에 달과 해 이야기 생각이 났었던지, 나에게 해와 달 이야기를 하여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손에 들었던 이야기책을 방바닥에 내려놓고 이야기를 시작하시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의 내용은 대강 이러하였습니다.
 
39
어떠한 산중에 과부 한 사람이 어린 자식 셋을 데리고 가난한 살림을 하였습니다. 물론 고운 의복과 맛있는 음식을 입을 수도 없고,먹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과부는 다만 어린 자식들이 커가는 것만 큰 기쁨으로 삼고 살아오던 터이었습니다. 어떠한 가을날에 어머니는 어린 자식을 먹이려고 잔등 넘어 장잣집으로 밥을 얻으러 갔었습니다. 과부는 집에 어린아이들만 남겨주고 가는 것이 마음이 놓이지 않았으나, 주린 배를 어떻게 채울 수 없어 방문 단속을 단단히 하고 잔등 넘어 장자의 집으로 갔었습니다.
 
40
가을해가 거의 저물었을 때에 과부는 장자집의 방아를 찧어주고 그 방아 밑으로 범벅떡을 만들어 가지고 자기 집으로 급히 돌아오던 길이었습니다. 과부는 어서 집에 돌아가 어린 아이들에게 이 범벅떡을 주어서 그 기뻐하는 얼굴을 보고 싶다 생각하며 한 잔등을 넘어왔습니다. 이때에 급히 가는 길을 막아서는 큰 호랑이가 있었습니다. 과부는 깜짝 놀랐습니다. 이때에 호랑이는
 
41
“그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42
하며 앞길을 막아섰습니다.
 
43
과부는 할 수 없이 떡을 하나 던져주었습니다. 호랑이는
 
44
“또 한 덩이 주면 안 잡아먹지!”
 
45
여러 번 되풀이하여 과부의 가진 떡을 다 빼앗아서 먹어버렸습니다. 그러고 난 뒤에 호랑이는 다시
 
46
“저고리 벗어 주면 안 잡아먹지!”
 
47
“치마를 벗어 주면 안 잡어먹지!”
 
48
고개를 넘을 때마다 앞을 가로막으며 위협하여 다 빼앗아 갔습니다.
 
49
과부는 집에서 가다리는 자기 자식들 일을 생각하고 어떻게든지 목숨이나 보전하랴 하여 호랑이가 달라는 대로 의복까지 다 벗어주었습니다. 그러나 흉측한 호랑이는 의복까지 다 빼앗아서 입고―나중에는 이 과부를 잡어먹었습니다.
 
 
50
과부를 잡아먹은 호랑이는 그 과부의 옷을 입고 과부로 둔갑을 하여 가지고 집에 남아 있는 어린아이들을 잡아먹으러 갔었습니다. 집에 있는 어린아이들은 고픈 배를 참아가며 자기 어머니가 돌아오기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렇게 쉽게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어린 아기는 자기 어머니를 기다리다 못하여 어느덧 잠이 들었습니다.누이와 동생 두 어린아이는 잠도 자지 않고 자기 어머니 오기만 기다리었습니다. 이와 같이 기다리는 때에 어머니로 둔갑한 호랑이가 집으로 들어와서 방문을 열라고 하였습니다.
 
51
그러나 문 열라고 부르는 소리는 그들의 어머니 말소리와 달랐으므로, 영리한 누이는
 
52
“당신은 우리 어머니가 아니오.”
 
53
라고 말하고 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54
호랑이는 자기가 틀림없는 너의 어머니니 문을 열어달라고 몇 번이나 말하였습니다. 나중에는 먹을 것을 많이 가지고 와서 짐이 무거우니 문을 속히 열라고 재촉하였습니다. 이때에 누이는 문 앞으로 가까이 가서 만일 우리 어머니일 것 같으면 손을 문틈으로 보이라고 하였습니다. 호랑이는 문틈으로 손을 내밀었습니다. 손은 맨 털빛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이상하여 우리 어머니 손에는 이렇게 털이 나지 않았다고 물어보았습니다.
 
55
동생 되는 어린아이는
 
56
“어머니!너무나 추욱셨겠소. 어서 들어오시오.”
 
57
하며,문을 열어주었습니다.
 
58
어머니로 둔갑한 호랑이는 들어오더니, 여러 말 하지 않고 한편 구석에서 곤히 자는 어린 아기를 붙들고 부엌으로 들어가면서
 
59
“너희들은 어서 자거라. 밥을 지어줄 터이니…….”
 
60
라 말하였습니다.
 
61
남매 두 아이들은 먹을 것을 줄 줄 알고 한참이나 기다리었으나, 아무것도 주지 않고 부엌에서 무엇인지 깨무는 소리만 들리었습니다.
 
62
동생 되는 아이는 하도 갑갑하여
 
63
“어머니!무엇을 먹소?우리도 좀 주오!”
 
64
라 말하였습니다.
 
65
호랑이는
 
66
“아니다! 너희들 먹을 것이 아니다. 내가 좀 시장해서 콩을 먹어본다!”
 
67
라 대답하였습니다.
 
68
그러나 이 소리는 콩을 깨무는 소리와는 다르므로, 남매 두 아이는 문구멍으로 부엌을 내다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지금까지 어머니로 여겼던 것이 어머니가 아니라 큰 호랑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사랑하는 어린 동생을 부엌에서 깨물어 먹는 소리가 그렇게 방에까지 들린 것이었습니다.
 
 
69
두 남매는 겨우 뒷문을 열고 밖으로 도망하여 우물 곁에 있는 큰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70
호랑이는 어린 아기를 다 먹고는 다시 방에 있는 두 아이를 잡아먹으려고 하였으나, 벌써 두사람은 거기에 있지 않았습니다. 호랑이는 사면팔방으로 찾아다니었습니다. 열린 뒷문으로 우물가에까지 왔었습니다. 그래서 우물 속을 들여다보았습니다.
 
71
마침 이때 나무 그림자가 그 우물 가운데에 비추었습니다. 우물 가운데에 비친 두아이의 그림자를 본 호랑이는 이것을 건지려고 여러 가지 건질 물건을 가지고 와서
 
72
“조리로 건지나, 두레박으로 건지나.”
 
73
라 콧노래를 부르며 우물가에로 돌아다니었습니다.
 
74
이 호랑이의 하는 짓이 하도 우스웠던지 남매 두 아이는 나무 위에서 웃어버렸습니다. 지금까지 두 아이가 우물 안에 빠졌다고만 생각하던 호랑이는 깜짝 놀라 나무 위를 쳐다보았습니다. 나무 위에는 두 아이가 앉아 있었습니다.
 
75
호랑이는 위협하듯이 물었습니다.
 
76
“너희들은 어떻게 올라갔느냐?”
 
77
“장자네 집에 가 참기름 얻어다 바르고 올라왔지!”
 
78
라고 누이가 대답하였습니다.
 
79
호랑이는 참기름 바르고 올려오려고 하였으나, 더욱 미끄러웠을 뿐이었습니다.
 
80
아무 철도 모르는 동생 아이는
 
81
“장자네 집에 가 도끼를 얻어다가 콕콕 하고 올라왔지!”
 
82
라고 일러주었습니다.
 
83
호랑이는 참으로 도끼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래서 도끼를 발붙일 자국을 만들어가며 올라왔습니다. 얼마 아니면 이 남매 두 아이도 호랑이의 밥이 되려 할 때에, 두아이는 하느님께
 
84
“우리를 살리려거든 새 동아줄을 내려주시고, 죽이려거든 썩은 동아줄을 내려주십시오.”
 
85
하고 빌었습니다.
 
86
이때에 새 동아줄이 주르륵 내려왔습니다. 그리하여 남매 두 아이는 줄을 붙잡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이 뒤에 올라온 호랑이도 어린아이를 본을 받아 하느님께 빌었습니다. 썩은 동아줄이 내려왔습니다. 호랑이는 이것을 붙잡고 올라갔습니다. 얼마 아니 되어 줄이 끊어져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이 줄을 붙잡았던 호랑이는 수백 길이나 되는 공중에서 수수밭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때에 막 베어낸 수수깡이 꽁무니에 찔리어 죽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수수에 피가 묻은 것은 이러한 까닭이라 합니다.
 
87
그리고 하늘로 올라간 남매 두 사람은 하느님 앞에 불리어 가서 누이는 해가 되고,동생은 달이 되었다고 합니다.이것도 처음에 하느님이 누이더러 달이 되라 하였으나, 달은 밤에 있는 것이라 여자로 밤에 다니는 것은 무섭다 하여 낮의 해가 되었다 합니다. 한낮에 다니면 여러 사람이 너무나 물긋물긋 바라보니까, 이것을 피하려고 눈이 현란하여 찬찬히 보지 못할 만큼 해는 반짝거리게 되었다 합니다. 그리하여 여자인 해는 사람 눈으로 하여금 똑바로 보지 못하게 한다 합니다.
 
88
어린 나는 이 이야기를 어머니에게서 들을 때에 얼마나 슬프고도 우스웠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이 이야기를 내놓을 때에 맨 처음부터 우리 집과 비교하며 말하였었습니다. 우리 집과 같이 가난하게 지내었다는 둥, 또는 너희들 남매간과 같이 의좋게 지내었다는 둥, 여러가지 우리 집과 같은 것을 말하였습니다.
 
89
그래서 듣고 있는 나도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일처럼 생각하지는 않았었습니다 자기 자신에 . 당한 일이나 조금도 다름없이 알았습니다. 더구나 이 이야기하는 어머니는 그때의 광경을 그대로 듣는 사람에게 연상시킬 만큼 얼굴의 표정을 변하여가며 말하였습니다.이 이야기를 듣는 동안에 나는 몇 번이나 어머니 앞으로 가까이 가까이 갔는지 알 수 없습니다.
 
90
그리고 특별히“옷 벗어 주면 안 잡아먹지!”,“떡을 주면 안 잡아먹지!”하는 호랑이의 흉녕兇獰한 소리를 어머니가 우리 지방의 고유한 악센트를 붙이어 호랑이가 바로 그 곁에서 부르짓는 것처럼 말씀할 때에, 나는 전신에 소름이 끼쳤습니다. 또는 나무 위에 올라 앉아 숨어 있으면서, 무엇이 우스워 그렇게 웃어버렸는지 나는 알 수 없었습니다.
 
 
91
어째든 이 하룻밤 이야기가 영원히 영원히 나의 머리에 슬어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에도 이 이야기를 다시 생각할 때마다 나에게는 무엇이라 형언할수 없는 적막이 찾아와서 나의 가슴을 오롯이 점령하게 됩니다.
 
 
92
《신여성》,1925년1월
【원문】남극의 가을밤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소설〕
▪ 분류 : 근/현대 소설
▪ 최근 3개월 조회수 : 38
- 전체 순위 : 1356 위 (2 등급)
- 분류 순위 : 174 위 / 882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 남극의 가을밤 [제목]
 
  이익상(李益相) [저자]
 
  신여성(新女性) [출처]
 
  1925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 참조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소설 카탈로그   본문   한글 
◈ 남극의 가을밤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11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