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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일(落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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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6
채만식
1
落 日[낙일] (1막)
 
2
이 희곡은 ‘장소’가 전라도인만큼 대사를 전라도 사투리로 써야만 옳을 것이다. 그러나 이 희곡의 본래의 뜻이 지방색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 아니므로 읽기에나 또는 듣기에 거북하고 난해한 사투리를 피하여 경어(京語)를 그대로 써둔다. ……(작자)
 
 
3
[인물]
4
참봉……50세 가량 지주
5
참봉의 자녀(단 상근은 등장치 아니함)
6
 상근(相根)……30세
7
 상호(相浩)……26세
8
 상천(相天)……21세
9
 상희(相姬)……18세
10
 경오(敬五)……21세. 상희의 남편
11
강(康)생원……50세 가량, 식객(食客)
12
송선달……45,6세. 참봉의 손윗 일가
13
용복(龍福)이……하인
14
양복신사……은행원
15
죠상……주재소 순사
16
형사 A B C……(A는 일본인)
 
17
[장소]
18
전라도 어느 농촌
 
19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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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9월 중순의 오후
 
21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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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퇴삼간의 네귀가 번뜻하고 드높은 넓은 대청, 좌수로 대청과의 샛문이 열려진 방의 일부분이 보인다. 우수와 전면(前面)으로는 원래 유리창을 둘러달았던 것을 모조리 떼어서 우수 후방으로 보이는 댓돌 위에 차곡차곡 세워놓았다.
23
후면(後面)에는 중간에 흰 회벽이 있고 벽에는 허소치(許小痴)의 모란 족자가 한벌 걸려 있다.
24
벽 양편으로는 열려진 문이 있고 그 문으로 해서 석양에 가까운 햇볕이 좌수편으로부터 비스듬히 쬐어들어 대청바닥에 자국을 내고 있다. (등장인물은 될 수 있는 대로 이 햇볕을 관객석으로부터 가리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25
후면 문과 우수로는 넓은 타작마당의 일부분이 내어다보인다.
26
대청바닥은 윤이 번지르 흐르고 우수로 당겨서 새까만 칠을 올린 평상이 놓여 있다.
27
왕골자리로 만든 조그만씩한 방석이 서너 개 놓이고 가운데는 바둑판 장기판 담뱃대 재떨이 서랍 부채가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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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위로는 좌 후 우로 조그만씩한 현판이 걸려 있다. 전면으로는 호박주추에 올라선 두 개의 두리기둥이 있고 집은 재목에서 아직도 송진 냄새가 나는 듯이 새롭다. 막이 열리며 참봉(깎은머리에 탕건, 흰 항라 적삼에 노란 도리사 고의에 솜버선)이 담뱃대를 물고 평상 위에 후면 벽의 족자를 향하여 비스듬히 앉았고 강생원(상투에 망건, 광포 적삼에 무명 고의에 벗은 발에 풀대님)이 방석 위에 가 역시 족자를 바라보고 앉아 있다.
 

 
29
참봉   (고개를 끄덕끄덕 하며 독백) 참 영필(靈筆)이다! 입신(入神)했어 입신!
 
30
강생원  입신했구말구요! 참 영필이지! (間) 그래서 철종대왕께 불려서 어전에서 모란을 그리잖앴나요. 그때 철종대왕께서 그린 것을 보시구서 “잘 그렸다. 대국에 황대치(黃大痴)가 있었으니 그러면 너는 ‘소치’라구나 허자”…… 허신 것을 호(號)로 써서 그래 ‘허소치’라구 허지 안했나요. 나라에서 내리신 호지요. (間) 본시는 퍽 미천헌 사람이구.
 
31
참봉   진도(珍島) 사람이라지?
 
32
강    네, 아주 상한의 자식이었더랍디다. (間) 그래두 저런 포재를 지녔기 때문에 나라에서 호를 다 내려주시구.
 
33
송선달이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동안에 좌수로 등장(낡은 맥고모자, 휘휘 감기는 모시 두루마기, 고무신에 양말, 손에는 낡은 합죽선) 밭은 기침을 하며 대청으로 올라선다.
 
34
송선달  휘, 더웁다.
 
35
  (동시에 돌아보며)
36
참봉   아저씨 오시요?
37
강    몹시 더웁지?
 
38
송    (참봉을 보고) 어이 어떠신가? (강생원을 보고) 휘, 말두 말게. (모자와두루마기를 벗어 기둥에 건다) 노양(老陽)이 되야서 (햇볕이 쬐어드는 곳을 가리키며) 이 대청두 볕이 들어쪼이는군! (부채를 펴서 부친다)
 
39
참봉   네, 해질녘이면 저렇게 조곰씩 들어쬐는데.
 
40
송    (두 사람 사이에 앉아서 족자를 바라본다) 웬 거야?
 
41
참봉   하나 샀읍니다.
 
42
송    응. (일어서서 족자 앞으로 굽어다보며) 소치 거로구만? (도로 와서 앉아 족자를 바라보며 방백) 존 걸! 잘 되얐어! (참봉을 보고) 얼마나 주었나?
 
43
강    (시험하여 보느라고) 알으켜내면 조카놈 용허다지.
 
44
송    어라 이녀석! 버릇없이. (족자를 마슬러보며 고개를 꺄웃거리다가 방백) 글쎄 한 칠팔십 환 가격은 되겠는걸.
 
45
참봉  
46
강    (서로 보고 피쓱 웃는다)
 
47
송    (좌우를 둘러보며) 왜! 더 주었어?
 
48
강    (우수를 향하여 돌아앉으며) 멍텅구리! 아는 체는 잘허더라만!
 
49
참봉   (좌수를 향하여 돌아앉으며) 삼십 원 주었어요. (웃는다)
 
50
송    (짐짓 놀라며) 응? 삼십 원? 거참 횡잴세! 횡재!
 
51
강    아닌게아니라 삼십 원이면 헐키는 헐해! 그렇지만.
 
52
송    원참! 헐키만? 공것이지.
 
53
강    (핀잔을 주어) 공것이란 말은 내지두 말게. 이 흉년에 삼십 원이면 어딘가?
 
54
참봉   그래요. 이 흉년에 돈 귀헌 것을 생각허면 삼 원이라두 비싸기는 허지만 그래두 허소치라면 다 유명헌 명인이 아니요?
 
55
송    명인이구말구. 일개 미천헌 도중지인(島中之人)으로 그야말루 명전천추(名傳千秋)지.
 
56
참봉   세상에 났든 보람이 있지요.
 
57
송    (문득 생각하며) 그러나 참 자네는 남만 그렇게 부러워헐 것 없네. (間) 인제는 자네두.
 
58
참봉   (두릿두릿하며) 그건 무슨 말씀이세요?
 
59
송    자네두 그런 아들을 두었으니까 말이야.
 
60
참봉   그런 아들이라니요?
 
61
송    몰라? 어따 저 상호가.
 
62
참봉   네 상호가?
 
63
송    그애가 저 그림공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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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봉   (놀라 말을 가로막으며) 그림공부?
 
65
송    (답답하여) 어따 그애가 일본 가서 그림공부를 허잖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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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봉   허허허허 아저씨두 원. (間) 웬 딴청만 보구 다니시요? 허허허허 그놈이 지금 일본대학교 법률과를 다니는데 그러시오?! (間) 내년 봄이면 법률 박사가 되어가지구 고등관 시험을 보아서 군수(郡守) 운동을 헌다구 아까 아침나절에두 그러니 어서 들어가야겠다구 허는 것을 메칠만 더 있다가 가라구 했는데요?!
 
67
송    (뻔하고 앉았다가) 그러면 오늘 신문에 난 건 무슨 소리야?
 
68
참봉   (시나붓잖게) 신문에? 무어라구?
 
69
송    신문에 전라도 김제 사는 송문규랬으니까 자네지?
 
70
참봉   네.
 
71
송    그러구 그 둘째아들 송상호랬으니까 상호는 상호지?
 
72
참봉   그렇지요.
 
73
송    그 송상호가 유명헌 그림———그 그림은(고개를 꺄웃거리며) 무어라구 했더라만? 하여간 퍽 유명헌 그림을 제전에다 출품을 했는데.
 
74
참봉   (말을 막으며) 제전은 무엇이구 출품이라니요?
 
75
송    신식문자니까 잘 모르겠네만 아마 여러 사람의 그림을 모아놓구 꼬누는 것인 듯허데.
 
76
참봉   (다가서) 그래서?
 
77
송    그래서 그 그림이 특선으로 뽑혔는데 송상호가 아주 조선서 처음 생긴 천재라구.
 
78
참봉   (의심이 더럭 나서) 그럴 리가 없지요. (강생원을 보고) 오늘 신문 좀 찾어보시요.
 
79
강    (방으로 들어간다)
 
80
참봉   정말이야요?
 
81
송    (참하게) 원 내가 무엇이 답답해서 그런 일을 가지구 거짓말을 허겠나?
 
82
강    (신문을 가지고 방에서 나오며) 있어 있어.
 
83
참봉   있어?
 
84
강    (참봉의 앞에 신문을 놓고 손가락으로 기사가 있는 곳을 짚어준다)
 
85
참봉   (신문을 집어들고 읽으면서) 응 응. (다 읽고 나서 방백) 거 참 모를 일이다. (무대 후면을 향하여) 용복아.
 
86
용복의 소리  네. (우수로 등장) 네?
 
87
참봉   너 저 아랫사랑에 가서 늬 둘째서방님 오시라구 그래라. (기색이 몹시좋잖아진다)
 
88
용복   네. (좌수로 퇴장)
 
89
참봉은 다음 상호의 소리가 들리기까지 신문을 거듭하여 읽고 있고 강생원과 송선달은 잠잠히 담배를 피우고 있다. 조금 후에 상호와 상천이가 좌수로부터 나타난다. 옷은 둘이 다 흰모시로 위아랫막이를 입었다. 상호의 머리는 길게 길렀고 얼굴은 해맑고 고요하며 수족은 섬세하다. 상천은 그 반대로 머리는 스포츠 타입으로 경쾌하게 깎고 얼굴과 걸음걸이가 쾌활하다. 논쟁이 있었는지 두 사람의 얼굴은 약간씩 흥분이 되었다. 형제가 서서 이야기하는 곳이 대청에서는 아직 보이지 아니한다.
 
90
상호   (걸음을 멈추고 상천을 돌아보며) 늬들이 아무리 그래야 다 소용이 없다. 유물론이니 변증법이니 계급투쟁이니 애지 푸로니 해싸면서 떠들어대지만 그런 것을 우리는 모다 초월허구 있다. 늬들은 우리가 들어 있는 그런 황홀헌 예술의 도취경(陶醉境)에는 감히 발길을 들여놓지두 못헌다. 생각허면 늬들이 도리어 불쌍허더라.
 
91
상천   (빈정거려) 흥 하여간 이론으로는 진 모양이지?
 
92
상호   지구 이기구 그런 것은 우리는 문제두 안삼는다. 예술의 구경(究竟)에 이론이 있을 택이 있어야지? 더구나 늬들의 그런 실제에 어그러진 이론으로.
 
93
상천   우리 이론은 실제에서 나온걸.
 
94
상호   현실헐 수 없는 공상이?
 
95
상천   로서아가 있는데 공상이야?
 
96
상호   메칠이 못간다. 설령 그러헌다더래두 백 개나 만 개의 로서아가 생겨난댔자 그것이 우리의 참된 예술경에는 감히 침범을 허지 못헌다. 예술의 도취경! (황홀히 방백) 흔연히 취허는 그 맛!
 
97
상천   흥 손쉽게 아편을 먹지.
 
98
참봉   (아들들의 말소리를 듣고 조급에서) 상호 게 있느냐?
 
99
상호   네. (웬일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상천을 바라본다. 상천은 더 걸어나와 꺄웃이 무대를 내다보다가 참봉의 기색이 좋지 아니한 것을 보고 얼핏 돌아서서 무섭다는 의미로 상호에게 혀를 날름날름해 보이고는 좌수로 퇴장. 상호는 대청으로 올라가서 송생원에게 인사를 한다)
 
100
참봉   (상호에게 신문을 집어주며) 너 이것 좀 읽어보아라. 거 웬 소리냐?
 
101
상호   (꿇어앉아 신문을 받아들고 두릿두릿한다)
 
102
강    (상호의 옆으로 와서 기사 있는 곳을 가리켜 준다)
 
103
상호   (읽어가는 동안에 얼굴빛이 변하여진다. 다 읽고 나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신문만 만지작거린다)
 
104
참봉   (상호의 얼굴을 살피고 있다가 표정의 변화가 생기는 것을 보고 노기가 얼굴로 치닫는다) 거 웬 소리냐? 알겠느냐?
 
105
상호   (겨우 가느다란 소리로) 네.
 
106
참봉   네라니? 그게 모다 정말이란 말이지?
 
107
상호   (무언)
 
108
참봉   응?
 
109
상호   (더 작은 소리로) 네.
 
110
참봉   (깡총 뛰며) 뭐? (한참 상호를 바라보다가 극도로 흥분이 되어) 원 저런 자식이 있단 말인가?! 그래 이놈 이때까지 ─오늘 아침까지 일본대학교 법률과를 다닌다는 놈이! (間) 이놈! 애비를 그렇게 속여? (間) 그래 속인 것은 속인 것이라구 (間) 그래 한 달에 칠팔십 원씩이나 학자를 갖다 쓰면서 사오 년 동안이나 그림 그릴 공부를 했어?! 화공(畵工)이 될 양으로?! 응? 그림 그리는 공바치가 될 양으로?! (間) 그래 이놈 송문규의 자식이 화공이 되야? (안절부절) 이놈.
 
111
상호   (무언)
 
112
참봉   (담뱃대를 집어 재털이에 힘껏 두드리면서) 휴우. (송선달을 보고) 아저씨 원 세상에 원 이럴 법이 있소?! 이 송문규의 자식이 화공이 되아야 옳소? (상호를 보고 엄하게) 이놈 당장에 나가거라. (間) 오늘부터는 내 자식이 아니다. (대에 담배를 넣어 붙여가지고 뻑뻑 피운다)
 
113
은행원  (좌수로 등장. 위아래를 하얀 린네르를 입고 깜장 오리가방을 옆에 꼈다)
 
114
참봉   (깜짝 놀라 얼굴에는 공포의 기색이 떠돈다)
 
115
은행원  (토방에 가 서서 모자를 벗고) 여기가 송문규씨 댁입니까?
 
116
참봉   (비실비실하며) 네네 저. (얼굴이 해쓱하여진다)
 
117
은행원  그러면 주인장 계신가요?
 
118
참봉   저, 저. (강생원에게 눈짓을 한다)
 
119
강    (겁이 다뿍 나서) 네, 누구신가요?
 
120
은행원  네, 주인장을 좀 뵈우려구요.
 
121
참봉   (방으로 살금 들어가 버린다)
 
122
강    글쎄 노형은 누구세요?
 
123
은행원  네. (명함을 꺼내주며) 이러헌 사람이올시다.
 
124
강    (명함을 받아보고는 겨우 안심하고) 네, 올라오시지요. (방을 향하여) 참봉, 이리 나오시오. 저 식산은행에 계신 분인데!
 
125
참봉   (방에서 나오며) 원 나는 누구시라구. (평상 앞에 앉아 방석을 내노며) 올라오시지요.
 
126
은행원  (올라가서 자리에 앉으며) 송참봉이신가요? (허리를 굽힌다)
 
127
참봉   (답례를 하며) 네 송문규올시다.
 
128
은행원  네, 저는 군산 식산은행 지점에 있는 조용택이올시다. (다시 허리를 굽신한다)
 
129
참봉   네 더운데 오시느라구 애쓰섰읍니다. (間) 나는 요새 그 ✕✕✕ 모집허러 다니는 양반인 줄 알구……
 
130
은행원  허허허허 미안합니다. (間) 그런데 제가 온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참봉께서 우리 은행에 진줄허신 삼만오천 원 약속수형이 기한이 지나서.
 
131
참봉   (놀라며 가로막으며) 네? 무엇이요? (間) 내가 삼만오천 원 약속수형을 진줄해요?
 
132
은행원  (도리어 놀라며) 네.
 
133
참봉   내가 무엇에다 쓰느라구? (사방 사람을 둘러보며 동의를 구하듯이) 글쎄 원 내가 삼만오천 원 돈을 쓸데가 있어야지요? (間) 없지요. 없어. (間) 아마 노형이 사람을 잘못 찾어오셨나보이다. (방백) 원 내가 원 그렇게 돈을 쓸데가 있어야지.
 
134
은행원  (고개를 꺄웃거리며) 그렇지만 참봉의 실인이 찍혔고 또 ‘우리가끼’에는 송상근씨라구 했으니까 댁의 큰자제지요? (오리가방을 열고 수형 한 장을 꺼내어 참봉에게 보인다)
 
135
참봉   (수형을 받아들고 앞뒤로 보다가 성이 치밀어 홱 내던지며 방백) 이놈이놈이 또 이 짓을 해?! 이놈이 집안 망허는 놈이야. (어쩔 줄을 모른다) 이놈이 또 기생첩을 얻었어. 이놈이 이놈이. (間) (은행원에게) 여보 나는 이런 것은 모르오. 나는 몰라요. 나는 이런 돈은 쓴 일 없소.
 
136
은행원  (수형을 집어넣으며) 그렇지만.
 
137
참봉   (역하게) 몰라요 나는. (間) 나는 그런 일 없소. (間) 나는 그런 일 없으니 그놈을 잡어다 징역을 살리든지 돈을 받든지 자량대루 허우. (間) 후유.
 
138
상천, 상희, 경오 좌수로 등장. 상희는 흰모시 치마적삼에 흰구두와 몽창한 파라솔. 경오는 미색 세루양복에 맥고자에 흰구두. 내외는 의복이 휘휘 감기고 구두는 뒤축이 닳고 통히 돈에 쪼들린 귀동자(貴童子) 귀동녀의 추렷한 행색이 완연히 나타난다.
 
139
이 서슬에 송선달과 강생원과 은행원은 자리를 비켜 방으로 들어가고 상호도 두 사람에게 눈으로 인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간다.
 
140
상희   (토방에 서서) 아버지. (고개를 숙인다)
 
141
참봉   (상희를 본 다음에 경오를 보고는 분이 치밀어 말은 못하고 눈만 부릅 뜬다)
 
142
경오   (상희와 나란히 서서 모자를 벗고 머리를 숙인다)
 
143
참봉   (벌떡 일어서며) 요년, 당장에 내 눈앞에서 아니 없어져?! (경오를 보고) 이놈 어느 놈이냐 늬가?! (間) 안본다 안보아. (間) 내 집 문안에 들어서지 마라. (間) 자유결혼을 했다는 연놈이 왜 자유로 살지 않구 내 집을 찾어와?!
 
144
상천   (한 걸음 나서며 어리광 비슷하게) 아버지 그만 용서허시지요?
 
145
참봉   (상천을 보고) 이놈 (방백) 다 몰아내라 다. (間) 다 보기 싫다.
 
146
상천   (빈들빈들 웃으면서) 아버지 기왕이면 돈이나 좀 주어서 몰아내시지요……? (더욱 응석을 부리듯이) 딸은 자식이 아닌가요? 죄는 졌지만 나가서 고생을 허는 게 불쌍허지 안해요?
 
147
참봉   (때릴 듯이)듣기 싫여 이놈. (방백) 다 나가거라. 다 보기 싫다. (間) 엣 세상이 이렇게 망허구 집안이 요 따위로 망허다니! 다 나가거라.
 
148
순사와 형사 A B C 좌수로 등장. 상희와 경오는 우수로 비껴선다.
 
149
참봉   (노기를 애써 숨기며) 죠상이시요? 올라오십시요.
 
150
순사   (거수경례) 네.
 
151
상천   (형사 A를 보고) 오라간만이요.
 
152
형사 A  요오. 지쯔와교오 기미니혼쇼마데 이쑈니기데모라히따인다가네. 소래까라. (야. 실은 오늘 너를 본서까지 같이 와주었으면 되겠는데. 그리고……)
 
153
상천   (고개를 끄덕거리며 참봉의 눈치를 살핀다)
 
154
형사 A  소래가라가다꾸소우사꾸모 아룬다가. (그리고 가택수사도 있겠다)
 
155
상천   (모든 것을 깨달았다는 듯이) 응. (팔찌를 끼고 생각한다)
 
156
참봉   (형사가 많이 온 것을 비로소 깨닫고 눈이 동그래져서 순사더러) 웬일이요 죠상?
 
157
순사   네. (난처한 듯이) 저 상천씨가 검속이 되게 되야서 (間) 그러구 가택수색두 있게 되야서.
 
158
참봉   (놀랄 기운조차 시진하여 펄썩 주저앉으며) 응? 검속이라니? 가택수색이라니? 그놈이 무슨 죄가 있다구? 응? 여보 죠상?
 
159
순사   (난처해서) 아마 저 ✕✕✕ 사건에 관련이 됐나봐요.
 
160
형사 A  (순사를 보고 핀잔을 주어) 기미! 손나구다랑고도오, 베라베라사베룬자나이요, 소래요리까 사쏘꾸 시고도니도리가가렛. (너. 그 너저분한 소리를 혓바닥으로 놀리지 마라. 그보다는 빨리 일을 해.)
 
161
순사   하이. (네)
 
162
참봉   응? 이게 웬 소리냐? 상천아! ✕✕✕ 사건이라니? 사회주의 허는 놈들 말이지? 이놈아 상천아. (방금 울 듯하다)
 
163
상천   (창백하게 웃으면서 앞으로 나선다)
 
164
참봉   (애조를 띠어) 이놈아 응 이놈덜아 응. (間) 집안이 이렇게 망해야 옳으냐?! 상천아 이놈아, 늬가 무엇이 그리워서 그런 놈들 축에 들었드냐?!
 
165
형사 A  (형사 B에게 손으로 상천을 가리킨다)
 
166
형사 B  (상천의 팔을 잡으며 좌수를 향하여) 갑시다.
 
167
상천   (몸을 틀어 참봉에게 향하여 평탄하게 그러나 힘있게) 아버지! 그런 것입니다. 저(대청바닥에 비스듬히 자국이 난 햇볕을 가리키며) 해를 보십시오. (間) 아침에 떠올라서 왼종일 있다가 저녁때가 되면 저렇게 지지 않습니까?! 아버지는 아무리 오늘 하로가 섭섭허셔두 아무리 밤이 싫으셔두 그러나 해는 집니다. 아버지, 밤이 싫으시지요? 자식된 도리로 아버지의 신상이 매우 민망은 헙니다마는 그래두 해는 져요. (또박또박) 해는 져요.
 
168
상천은 형사 B에게 팔을 붙잡혀 좌수로 걸어가고 모인 사람은 실신한 것처럼 그 뒤를 바라보고 나머지 형사와 순사가 척척 대청으로 올라설 때에 막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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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낙일 [제목]
 
  채만식(蔡萬植) [저자]
 
  1930년 [발표]
 
  희곡(戱曲)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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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일(落日)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11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