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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랏님 전 상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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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이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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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님 전 상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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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님 전 상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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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으로 논지할 지경이면 충청북도 신니면 용동 삼백삼십 번지 삼 호에 사는 김춘성이란 사람이여유 . 나이는 쉰다섯 살이구 요새 시체 국문은 잘 몰라도 옛날 언문은 그럭저럭 뜯어볼 줄도 알구 더러 끼적거리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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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사람이 나랏님께 좀 할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변도 없구 쇠발개발 그린 것을 뜯어보기 어려우실 줄 압니다만 배운 재주가 그뿐이니 할 수 없십니다. 용서해주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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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할 것이란 다른 게 아니라 이렇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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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이 사람은 농군이올십니다. 증조 때에는 어떻게 살었는지 알 수가 없십니다만서두 할아버지와 아버지두 이 사람과 매한가지로 농군이었어유. 동쪽이 훤하면 밝었나부다 하구, 어두우면 밤인가부다 할 따름이지 날짜 가는 것두 잘 모를 어른들였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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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두 매한가지유. 지금 와서는 우리 나라 국문이라구 글값을 쳐주어서 면소서문맹이냐 아니냐 조살 나오면 나두 문맹이 아니라구 제법 큰소릴치게 됐습니다만서두 이전에야 어디 우리 나라 글이 글값에 갔었던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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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우리 아버지가 한이 돼서 날 글방에다 넣구 천잘 알켰어유. 그 덕으로 진서두제 성명 삼자는 알어봅니다. 허지만서두 그까짓 어려서 천자 한 권 읽은 게 무슨 학식이 되겄시유. 판무식쟁이나 조금도 다름없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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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노니 자연시리 두더지처럼 땅을 파다가 밤이 되면 자구, 아침이 되면 일나서 지겔 지구 나서는 게 일이지유.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올십니다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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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판무식쟁이로 돼먹어왔으니 뭐 아는 게 있겠십니까. 아는 게라구는 입에 긁어 넣는 것허구 일하는 것하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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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노니까 점점 미련해질밖에 있어유. 그저 소처럼 먹구 두더지처럼 일이나 하구 그렇지유. 이 사람은 그런 사람이올십니다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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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사람의 사정이 어떠냐 논지할 지경이면 아주 딱합니다유. 일은 죽도록 해두 입에 들어가는 것은 없십니다유. 우으로는 칠십 노인이 계시구 알로는 신골방망이처럼 고만고만한 것들이 졸망하거든유. 먹기는 황소처럼 먹지유. 버는 사람은 없지유. 무얼루시리 당할 수가 있대유. 졸망이들두 높은밥 한 그릇은 게눈 감추듯 한답니다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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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어미 아비 되구설랑 자식새끼들 멕이잖을 도리야 있어유. 어미 아비는 굶으면서두 긁어먹이노라 하지만 양이 차지 않으니까 일곱 살 된 삼돌이란 놈은 어서 들었는지 걸핏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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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엄마 아빠가 가르키두 못하면서 먹이지두 못한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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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는 들이댑니다유. 거 발칙한 놈이올십니다만서두 따지구 볼 지경이면 그놈 말이 옳긴 옳거든유. 그렇십니까 안 그렇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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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나랏님 생각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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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게을러 그렇지 일하구 입에 밥 안 들어가는 법이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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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꾸중을 하실는지두 모릅니다만서두 건 안 그렇십니다유. 왜 안 그러냐 하구 생각해볼 지경이면 암만 일을 해두 먹구살 수 없도록만 이 세상 형편이 마련돼 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이렇게 말씀하시겠지만서두건 그렇습니다. 누가 잘못해서 그렇게 됐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서두 이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구 있습니다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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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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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말씀을 한번 들어보시유. 맨첨에두 말씀 사뢰었지만서두 이 사람 은 판무식쟁이 농군이올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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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대부터 상짓말 윤 승지 어른의 땅 몇 마지기를 얻어부치어 입에 풀칠을 해왔었지유. 그것두 아버지대에 와서 열두 마지기가 여덟 마지기 닥곱으로 줄었는데 여덟 마지기에 도지가 열 섬 두 말이니,열석 섬 소출이 났다 치면 어떻게 됩니까. 두 섬 일곱 말인가요? 아니지요, 여덟 말이군요. 그래두 섬 여덟 말로 호포다 세금이다, 면비다 학교비다, 떼구자실 것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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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댈 두구 학교라구는 발도 못 들여놓은 우리 같은 농군네한테 학교비를 왜 물리는지 모르겄시유. 나랏님 하시는 일에 군소리를 하자는 건 아니유. 일테면 그렇단 말씀이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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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이 두 섬 여덟 말로 백성된 도리는 해야 하겠구 성냥 한푼어치꺼정 그걸 팔아야 샀시유. 이 사람이 칠 남매니까 할머니꺼정 열두 식구올십니다. 열두 식구가 다 찧어 먹는대두 두 달 양식밖에 안 되는 걸로 일년을 살아가자니 뀌임질이 일쑤요, 장릿벼가 대추나무 연 걸리듯 걸리는군유. 이사람이 이래보여두 장남이올십니다유. 장남이 돼노니까 아버지는 글을 좀 알켜서 지겟목바리를 좀 면케 해볼려구 천잘 알켰지만 생일날 잘 먹자구 이레도 못 굶는다는데 이십 년 후에 밥술 먹자구 당장 굶을 도리도 없잖어유. 그래두 아버진 이 사람 머리를 쓰다듬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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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성아, 눈을 까뒤집어쓰구 글 잘 배워라. 아비가 몸뚱이가 두 동강이 나는 한이 있더라도 넌 어떻게든지 공불 시킬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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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당부당부했었시유. 그래 철 모를 나이면서두 이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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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냐! 어떡하든지 내가 공불 잘해서 다음에 훌륭한 사람이 되리라. 그래 가지구 아버지두 일을 좀 덜하시게 하구 어머니두 진지를 한 그릇씩 떠 드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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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속으로 생각을 했었시유. 그게 이 사람이 몇 살 땐가 하면 아홉 살 때였시유. 고슴도치가 제 새끼는 함함하다는 식으로 울 어머닌 이 사람을 참 신통하게 여겨서 남한테도 “우리 춘성이, 우리 춘성이”하구 잘 내세웠구, 조그만 것이래두 어머니는 안 잡숫고 꼭 두었다가 이 사람을 주시곤 했었는데 한번 이런 일이 있었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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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가 불긋불긋할 때였으니까 추석 전이었을 꺼여유. 그날 이 사람은 늦게서야 글방에서 돌아왔더니 모두 저녁을 먹구 있어유. 그래, 나두 덤벼서 먹다가 어머니 생각이 나서 부엌을 넘겨다보지 않었겠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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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더니 어머니는 물찌꺼기를 떠가지구 후룩후룩 소리를 내구 잡숫는군유. 그래, 그제야 이 사람두 어머니가 늘 부엌에서 진지를 잡숫는 건 물만 마시면서 우리한테 밥을 먹은 것처럼 보일려구 그러신다는 것을 깨달었던 말이거든유. 그래, 이 사람두 철이 났었던지 먹던 밥을 내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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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난 글방 안집에서 밥하구 떡하구 먹어서 그만 먹을 테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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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이 어머니를 반 덜어드리고야 이 사람도 먹었었시유. 하지만 그때뿐이지 나이 열 살도 못 된 것이 지각이 났으면 몇 푼어치나 났었겠시유. 배가 고프면 밥 내라 게벽, 다른 애들이 떡을 먹으면 떡을 달라고 몸부림, 엿을 들구 다니면 엿 내노라 생트집, 그럴 때마다 어머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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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냐, 해주구말구. 인제 아버지 돈 벌어오시면 떡두 해주구 엿두 사주구 할게, 조곰만 참아라,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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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달래다가 그래도 울음을 안 그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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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요녀석들, 그렇잖아도 오장이 썩어내리는 어미 속을 썩일 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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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이 사람과 일곱 살 난 동생하구를 엎어놓고 막 사그리 내려팼시유. 그 날은 아침두 못 끓인 날이라 우리는 먹을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어 어쩐지 번연히 없는 줄 아는 밥을 달라기도 무엇해서 딴 트집을 잡다가 호된 매를 맞었더래유. 그래 매에 견디다 못해서 이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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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다신 안 그럴게요, 다시는. 배가 너무 고프니까 인전 아퍼유. 어머니, 다신 안 그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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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소리에 어머니는 형제를 끌어안고 그냥 막 울으셨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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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형편이었으니 글방에 더 다닐 계젠가유. 아버지는 내 등에다 딱다리 지겔 지워주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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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 어미가 지지리 못나서 네게다 이 원수놈의 지겔 또 지우는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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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눈물을 씻으시며 마음이 언짢아하시던 것을 보고 어머니도 우셨구, 이 사람도 따라 울었었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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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님, 이 사람은 이런 속에서 잔뼈가 굵었구 민며느리를 얻어 장가라고 들었구, 아귀같이 먹자는 칠 남매를 이 사람이 어렸을 때 크듯이 눈이 퀭하게 배를 곯리어 키우고 있답니다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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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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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님은 이 세상에서 제일 참을 수 없는 것이 뭣이라구 생각해유. 이 사람두 오십 평생에 갖은 곡경을 다 치르고 살았지만서두 이 세상에서 젤 못 참을 게 배고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랏님 같은 어른은 그런 경우를 못당해봤겠지만 이 사람은 대대손손이 일년 동안에 반은 굶고 살아왔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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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구 지금도 반은 굶구 살고 있습니다유. 하지만 배고픈 것보다도 더 못 참을 노릇이 또 있지유. 그건 철없는 어린것들이 배가 고파 죽노라고 울어 대면서 밥을 내라는데 줄 밥이 없는 경우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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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밥! 응, 엄마. 나 밥 좀, 응. 배고파, 엄마. 밥 쪼꼼만 눈꼽만큼만 주면 내 안울게. 응,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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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은커녕 말도 제대로 못하는 어린것이 이렇게 엄마를 꼬이듯 애원하는 꼴은 단 한번이라두 당해보셨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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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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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당해봤다구 이 사람은 생각합니다유. 어떻게 그걸 아느냐? 이렇게 물을 사람이 있을 게유. 보지 않아두 뻐언한 것이 만약에 단 한 번이라두 그런 경우를 당해본 사람이 정치를 한다면 먼저 백성이 배가 안 고픈 정치를 할 것이라 ― 이 사람은 이렇게 생각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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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네들처럼 어리석고 무식한 사람들은 불에 한 번 데면 덮어놓고 불을 무서워하지만 나랏님네들처럼 강하신 어른들이야 무슨 방도를 세우지 않겠십니까유. 어떤 사람은 죽을 때나 지게를 벗어노면서도 굶기를 남 밥먹듯 하구 또 어떤 사람은 뒷짐만 지구 어슬렁어슬렁 마당만 거닐어두 일평생 먹고 쓰고 남을 돈과 곡식을 창고에 들이채우고 사니 이 사람네들처럼 무식한 눈에도 그게 잘된 일이 아닌 것을 대번에 알 수 있는데 그걸 모르신단 말씀도 안 될 게 아니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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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필시 정치를 하는 나랏님네들은 배고픈 경우를 못 당해봤거나 밥을 달라고 졸라대는 아이들의 딱한 꼴을 못 본 게나 아닙니까. 이렇게 이 사람은 생각하는 바올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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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은 이 동리서 반장을 보구 있어유. 그래, 나라에서 오는 신문을 보니까 왜정 시대에 압박을 많이 받었다고 썼더군요. 그야 이를 데 있십니까유. 우리네 조선 백성이야 명색이 있었십니까유. 앉으라면 앉구 죽으라면 죽구, 즈 나라 백성 먹인다구 농사진 걸 털어 내래두 군말 한마디 못허구 갖다 바쳤구, “말을 먹여야겠으니 보리를 내 놔라.”해두“네에에 있십니다요.”하고 갖다 바쳤구, “우리 나라가 전쟁을 하니 느놈들 자식들을 모두 뽑아오너라!”해두 “예에 있십니다유”했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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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놈은 비국민이다. 웃구서 내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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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이렇게 웃지 않습니까유, 나랏님. 흐흐흐흐. 참 장한 일이올십니다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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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비행장을 닦을 테니 부역을 해라.”하면 “예, 기둘렀십니다.”하고 짚신짝을 꿰차고 대령을 했잖었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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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랏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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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한 가지 나랏님께 여쭈어볼 것이 있어유. 이 사람이 잘못 생각했는지두 모르겠십니다만서두 그전 우리 나라 한국 시대두 굶는 사람은 대대손손이 굶게만 마련이구 잘 먹구 아랫배만 쓰윽쓰윽 문질러두 개기름이 지르르 흐르게 살이 찌는 사람이 있더니 일본 정치 시대 보아두 또 한국 시대 굶던 녀석은 시대가 변해두 또 굶게만 마련이구, 지주는 늘 지주구 또 나라에서 두 지주 되는 사람들만 두둔을 해주어서 잘 먹구 잘 쓰구 잘 놀구 피둥피둥한 젊은 놈들이 네댓씩 집에서 먹구 빈들거려도 징용은 늙은 부모에 어린 처자에 단손으로 벌어먹는 홀앗이만 쏙쏙 뽑아가지 않었어유? 그래, 우리네 농군들은 모여앉기만 하면 그 까닭을 몰라서 궁리를 해보나 어디 알 수가 있어유. 그랬더니 한 친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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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 왜 그런고 하면 말이다, 일본놈들한테 알랑알랑하기 때문에 그런 거거든. 일본 놈들만 가면 아주 낙방 거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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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에 듣고 보니 참 그렇거든유. 그래, 이 사람은 은근히 일본놈들이 쫓겨가기만 칠성님께 빌었었어유. 맘이 상해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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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그놈들이 나가얄 텐데, 그놈들만 나가면 우리두 남부럽잖게 살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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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랬었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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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말이여유. 이 사람은 그것만 믿구 살았었어유. 그랬더니만 ― 아, 정말 그놈들이 쫓겨가잖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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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님 참말여유. 이 사람은 그날 막 춤을 추구 만셀 부르구 그랬어유. 막 뛰구유. 암만 만셀 불러두 시원찮었지유. 그래 막 뒹굴었어유. 여편넬 끌어 내가지구 막 춤을 추라구 주장질을 했더니 어디 들어먹어유.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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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바보야, 인전 우리두 남들처럼 잘살게 되는 거야. 배 안 곯구 헐벗잖구 자식들 공부두 시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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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윽박질렀지유. 그랬더니 이 멍추 좀 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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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팔자가 그런 게 억지루 잘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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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군유. 그래, 이 사람이 설명을 했지유. 설명을 듣더니만 여편네 방퉁이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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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만 된다면사 추구말구! 춤뿐이겠수. 소리래두 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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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군 정말 춤을 막 추었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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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 좋다! 그놈들 쫓겨갔으니 인저 우리두 밥 한번 실컷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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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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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만해두 괜히 춤추었나봐유, 야. 그런가보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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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말여유. 이 사람은 그렇게 생각합니다요. 나랏님들은 연설할 때나 글쓸 때나 “해방이 됐다, 독립이 된다.”하며 퍽 좋아하시는데 통 모르겄시유 뭐 통 다른 게 있어유. “해방이다, 독립이다.”하니까 좋은 것 같기는 해두 뭐 이 사람 같은 농군넨 그전하구 똑같은 것 같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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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긴 해방 덕을 못 본 건 아니지유. 죽두룩 농살 지었자 모두 지줏집 노적에다 들이채워만 주던 걸 나랏님이 삼분의 일만 줘라 하셔서 어떻게 고마운지 몰러유. 접때두 나랏님이 보내셨다는 어른이 면소에서 연설을 할 때 떡을 너무 해먹었다구 꾸중을 하셨지만서두 하긴 그 핸 떡두 한 번 해먹구 엿두 한 방구리 달여 먹었었시유. 이 사람 일생에 그게 첨이어유. 그래, 이 사람은 여편네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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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보게. 우리 춤춘 보람 있잖어. 인저 땅 없는 사람들한테 나랏님이 땅을 노놔준대데나. 그러구 농사 안 짓는 사람 말여, 일테면 농사 안 짓는 지주들한테서는 땅을 뺏는대여. 거 그럴 일야 그렇잖은가. 농사두 안 짓는 사람이 땅은 뭣하러 가지구 있는 겐가. 거참, 나라에서 잘하는 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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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좋아했었시유. 그랬는데 뭐 요새 들으니까 나라 정치가 달리 변한다지유? 거 참말인지 모르겄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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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나랏님한테 할말이 있어유. 이 사람은 빨갱이여유. 빨갱이가 되기루 했어요. 또 좌익두 하기루 했어유. 어떻게 해서 빨갱이가 됐느냐 하면 이렇습니다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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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도 말씀했지만두 일본놈들만 가면 우리는 굶잖는 세상이 되는 줄만 알었어유. 그랬더니 지주들이 엉뚱한 소리를 하잖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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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두 나랏님 덕분에 삼분의 일제가 됐으니까 기를 쓰구 농살 지면 우선 죽이라두 끼니를 건너진 않겠거든유. 그래, 새벽부터 거름을 내느라고 거름더미를 파제키는데 지주 댁 윤 승지네 집에서 전인이 와서 곧 오라구 그래유. 그래, 조반두 안 먹구 뛰어 갔지유. 그랬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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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성이, 자네가 부치는 땅을 자네가 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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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더군유. 이 사람이 사는 형편을 나랏님께두 말했지만두 땅 살 돈이 어디 있겠시유. 그래, “샀으면야 여북 좋겠십니까만서두 돈이 어디 있습니까요.”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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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왜 이러나. 공산이 된다니까 거저 뺏을 때를 기두르는 게지! 그럴테지. 가만히만 있으면 공산당 정부가 모두 뺏어다 바칠 테니까…”
 
83
“원,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유.”
 
84
그랬더니,
 
85
“흥, 작년에 남의 땅을 거저 해먹다시피 했으니 고만 돈야 있겠지. 잔말 말구 살 테면 사게. 안 사겠으면 그만두게. 자네들이야 어찌하든 난 지금까지의 의리도 있고 해서 기왕 팔 것이면 동가홍상으로 자넬 줄라는 건데 뺏어야만 직성이 풀린다면 할 수 없는 노릇이지!”
 
86
민주니 공산이니 하는 소리는 이 사람두 여러 번 들었시유. 민주라는 것이 없는 놈더러 갑자기 땅을 사라고, 못 사면 떼고 하는 것인 줄 누가 알었시유.
 
87
이 사람은 그때까지두 공산이니 민주니 하기에 공산은 없던 사람이 잘살게 된다니까 좋긴 좋지만서두 있던 사람은 땅두 뺏고 돈두 뺏고 집까지 뺏고 동리서 내몰아낸다니 다같이 잘사는 건 좋지만 남한테 못할 일이야 해서 쓰겄는가 하고 민주에 찬성을 하잖었시유? 그랬더니 사람의 명맥을 똑 자르려 듭니다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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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사정사정해보았으나 승지란 천성이 야박한 사람이어서 벽창호처럼 “안 돼”소리만 연상 하는군그래유.
 
89
값만 수월하다면야 어떻게 됐든간에 가을곡식을 송두리째 들이대서라도 붙들고 싶었지만서두 평당 삼십오원을 달라 하니 육만원 돈이 있어유. 십여 식구에 남의 땅 소작 해먹는 녀석한테 육만원이란 돈이 어디서 납니까유야.
 
90
나랏님, 그래, 닭을 한쌍 꿰차고서 오 년 연부로 해줍소사 붙들구 빌었더니 미친 소리 말라고 호령입니다유. 그래, 그만 땅이 팔리잖었겠어유.
 
91
어디 이 사람뿐입니까유. 앞집 채 서방네 뒷말 박군식이네 의지가지 없이 된 사람이 십여 가구올십니다요. 못자리는 봐야겠는데 새 지주가 땅을 내노라니 또 그리로 닭 마리에 알을 싸가지구 가서 졸러봤지유. 단번에 안 된답니다요. 그래 싸움싸움하다가 관청에 가서 사정을 해봤십니다. 그랬더니 관가에서도,
 
92
“사라는데 왜 안 사고 그래? 사기도 싫고 땅을 내놓지도 않고 그럼 땅 가진 사람은 어떻게 하란 말요, 응?”
 
93
나랏님, 이럽니다요. 글쎄, 그러니 지체도 학식도 없는 소작농이 어떻게 살 것입니까.
 
94
나랏님께 말씀입니다만서두 승지 댁에는 일본 정치 시대에는 군청·면소·주재소 양반이 늘 떠나지 않고 젤 큰 부자인데 공출도 젤 적었구 배급 시대두 아쉬운 줄 모르구 흔전만전 썼지유.
 
95
참말여유. 이 사람뿐이 아니라 온 동리 사람들이 눈으로 보았어유. 조상 제상에두 북어조차 배급이라 맨국을 떠놓는데 그 댁에선 이름진 날이면 갈비다 쇠머리다 정종이다, 없는 게 있습니까. 그것두 다 전표루 가져오니까 또박또박 공정가격이 아닙니까. 그렇게 사온 것을 쓰구 남으면 동리 사람한테 몇 십 곱 야미값으로 넘기지유.
 
96
참말여유. 뭣하러 익은 밥 먹구 선소리 할 리가 있나유. 더군다나 나랏님께야 없는 말 하겠시유.
 
97
그랬더니 해방 후에 또 ○○○○들이 전처럼 드나듭니다요. 그러니 옛날과 꼭 마찬가지가 되고 말었시유.
 
98
○○ 적게 하는 거나 배급 더 타는 게나 마찬가진데 돈이 있어노니까 물건을 사다가 비싼 이를 먹구 동리 사람들한테 노나먹이를 하니 돈은 점점 그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잖어유.
 
99
돈이 누룩머리를 앓으니까 정미소를 낸다, 과수원을 산다,(○○○○가 돼두 과수원은 안 뺏는다면서유) 동리 돈을 갈퀴루 긁듯 벅벅 긁어들이어 다른 집에는 지금 돈으루두 단돈 백원 있는 집이 수월찮어유.
 
100
그러니 또 빚을 쓰잖습니까. 빚을 주어두 꼭 보름밖에 안 주구 보름 동안에 또박또박 일할 선이자를 떼어유. 한 달이면 이할이 아녀유.
 
101
나랏님네는 빚을 안 써봤으니까 모르시겠지만서두 이 사람은 육십 평생에 이할 변이란 듣도 보도 못했시유. 이 사람 일생에 젤 고리로 쓴 게 서푼 변이었어유. 서푼의 칠배나 되는 변이 대체 어디 있어유. 땅은 정부가 서면 뺏긴다고 돈이란 돈은 벅벅 긁어서 갖다가 두니 이대루만 가면 승지네가 이 면내 돈은 다 긁을 겁니다.
 
102
이런 승지네만 두둔하는 세상이 또 올 줄이야 이 사람은 천만 뜻밖이올십니다.
 
103
나랏님두 잘 아실 거야유. 일본 정치 시대에 이 승지 같은 사람이 순사나 면소 서기한테 쑤석쑤석하면 사상이 불온하다고 잡아다 감옥에두 보내구, 배급 고루 먹자구 했다구 쑤석대서 징용을 보내구, 얼굴이 좀 반반하면 남편을 탄광으루 보내구서 뒤로 손을 대구 그런 일이 어디 한두 가지였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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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사람들한테 다 물어봐유. 해방이 되니까 뭐가 좋으냐구. 그러면 모두들 징용이 없어 좋구, 징병이 없어 좋구, 공출이 없어 좋구, 그 일본놈들 앞잡이 서서 기고만장 하던 놈들 꼴 안 봐 좋구 다 이렇게 대답할 거야유. 그랬는데 인전 징용 징병 대신에 쑤석쑤석하기만 하면 ○○○이라구 바루 ○○소로 보내버리잖어유.
 
105
이 사람두 해방 후에 두 번이나 잡혀갔다 왔시유. 땅은 떼이구, 먹구살 순 없구, 식구는 십여 식구, 그래 땅 못 사서 뺏긴 사람들끼리 공론을 하구 땅을 죽어두 내놓지 말자구 했었시유. 그랬더니 하루는 ○○ 두 분이 ○을 ○구 와서 ○○○○ ○○○에다 ○○는군유.
 
106
“너 공산당이냐.”
 
107
“아녀유.”
 
108
“아니가 뭐야. 너 작당을 해가지구 지주한테 대항을 했지! 그러구 경찰서를 습격해가지구 무기를 뺏어서 면소를 불사르구 지주들 집을 불지를랴구 그랬겠다! 무기를 어느 산속에 갖다 감추었다는데 어디냐, 대라!”
 
109
닷새 동안 지긋지긋한 문초를 받구 나왔어유. 나와가지구 승질 찾아가 왜 사람을 모함을 했느냐구 대들었어유. 그랬더니 승지 말이,
 
110
“흥, 이놈이, 그래두 혼을 덜 난 게야. 더 가서 경을 쳐야 하겠느냐 ―”
 
111
이 말을 듣고 나니 승지가 모함한 게 사실이 아녀유. 그래 막 들이댔더니 만 이튿날 밤에 순사가 또 잡으러 왔어유. 그래, 갔더니 동민을 선동해서 폭동을 일으킬려구 했다구 죽을 곤경을 치르구 꼭 한 달 만에야 나왔십니다.
 
112
아, 정말이유. 다시는 안 그런다는 증서에 지장까지 찍었으니까 가봐두 알어유.
 
113
나랏님은 서울 사시니까 농군네 사정을 몰라유. 시골 ○○에서 나라에서 나려보낸 물건이 어떻게 처치되는지, 동리 돈푼 있는 사람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없는 사람들이 일본 시대보다도 얼마큼이나 더 못살게 됐는지 모르실 꺼야유. 허지만 참 어려워유. 이 사람이 거짓말이거든 손가락에다 불을 키여유.
 
114
모르는 사람은 이 사람이 좌익을 하는 게 공산당이 쑤석거려서 그런다구 그럴지 몰러유. 나랏님두 그러실 께여유. 뭐 보나 안 보나 허지만 그건 틀린 사실이지유. 이 사람은 그럴 사람이 아니어유. 정말 공산당이 하는 말두 들었지유. 뭐 어떻게 하느니 어떻게 하느니 그렇지만서두 이 사람두 다 새겨들어유. 뭐 ○○이 조선을 일본처럼 식민지를 맨들려구 그런다구 하는 사람두 있지만 ○○이 점잖은 나라라는데 벼룩이의 간을 내먹지요, 좁은 조선 땅을 빨아먹겠시유. 그건 잘 알지만 ○○이 빨아먹지는 않더라도 승지 같은 이가 동리 사람들을 전보다두 더 빨아먹는 걸 가만히 보구 있는 것을 이 사람은 통 모르겄시유.
 
115
참말이유. 우린 인저 여편네꺼정 승지네 집에 잡혀먹게 됐시유. 그런 사람들이 어디 우리 동리뿐인가유. 동리마다 있잖어유.
 
116
○○○○ 나리들이 곧 토지개혁을 해서 땅 없는 사람들두 땅을 갖게 하구, 큰 부자는 줄여서 평균하게 잘살게 한다더니 또 변했다지요. 무식해서유 알진 못허구 답답만 해유. 나중에 잘사는 것두 좋지만 생일날 잘 먹자구 이레를 굶었더니 죽더라잖어유. ○○○이 어떻게 하시는 건지 모르겠어유. 정말 ― 이 사람 같은 처지에 있는 게 우리 동리 육십 호에만두 십여 명이니 전국에 얼마나 많겠어유.
 
117
이 사람 같은 처지 사람들이 ○○○○ 나리가 된다면 벌써 어떻게 하든지 땅을 싸게 사두록 한다든지 나라에서 돈을 취해준다든지 소작권을 못 떼게 한다든지 무슨 조처를 했을 것 같어유. 지금 ○유 만들구 있는 어른들이 승지와 같은 지주구 돈 있구 그런 사람들이라면서유. 그게 참말이라면 이 사람은 죽어두 ○○하겠시유.
 
118
나랏님!
 
119
무식하구 허잘것없는 사람이지만 이 사람의 청 하나만 들어주시면 좋겠십니다. ○○ 만들구 계시는 ○○○○ 나리들하구 또 ○○○○을 하구 있는 어른들하구 꼭 세끼만 밥을 못 먹게 하는 법을 내주십시오. 그러구 그 어른들 가족도 세 끼만 굶게 되면 이 사람의 경우도 알아줄 것입니다.
 
120
그러구 지주들이 땅을 못 팔게 해주시면 그 은혜는 백골난망이겠십니다.
 
121
그만하겠습니다.
 
 
122
<「산가」수록,1949년>
【원문】나랏님 전 상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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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무영(李無影) [저자]
 
  1949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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