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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로운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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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7
이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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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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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갑 집에 갔다가 술이 과했던지 뛰고 야단들을 하던 판에 다량의 코피를 쏟아 버렸다. 성대한 잔치여서 내객이 한꺼번에 근 백 명, 대작할 미기(美妓) 수십 명, 수십 평 되는 정원 차일 아래에 배설(排設)한 잔칫상은 일류 요정에서 특빙한 요리사의 손으로 된 것이었다. 배반낭자 홍이 도도했을 때, 객실에 들어가 음악에 맞추어 안고들 휘돌아친 것이 피곤을 한꺼번에 돋아 주었던 모양이었다. 그 자리에 쓰러져 코피를 쏟기 시작한 것이 아마도 거의 5,6홉의 양은 되지 않았을까. 기인(妓人)과 동무들이 놀라 번갈아 와서 옆을 떠나지 않고 얼음찜질을 하며 응급처치를 베푸는 것이나 멎지 않는다. 코로만 그 검붉은 것을 쏟는 것이 내 눈에도 민망해서 목으로 삼키기 시작했더니 목이 메이게 넘어간다. 사람이 몇 차례나 나가 의사를 부른 것이 좀체로 오지 않는다. 한 시간이 넘어 지난 때였을까. 공교롭게 두 사람씩이나 달려왔을 때에는 코피는 이미 멎은 뒤였다. 밤 10시를 넘은 때였다. 옆에서 보아주던 한 동무가 끔찍한 내 모습에 기를 눌렸음인지 휘뚱휘뚱 옆방으로 가더니 빈혈증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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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 사람들과 집안 사람들에게 아닌 때 큰 걱정을 끼친 것을 미안히 여겨 주인이 붙드는 것을 사양하고 가까운 곳이라 걸어서 집까지 와 자리에 누운 것은 자정을 넘은 때─홀연히 짧은 잠이 들었다가 문득 눈을 뜨니 또 된 피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억제할 수 없이 콸콸 쏟아지는 맹렬한 출혈이다. 순식간에 수건과 대야와 요 위에 홍건하다. 두 번째 변에 대경실색해서 앞집에 가 병원으로 전화를 아무리 걸어야 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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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람이 밤거리를 황겁지겁 뛰어가 의사를 데려왔을 때에는 오전 두 시로 피는 이미 멎은 뒤다. 주사를 두어 대나 놓고 비출혈에 관한 지식을 얻어듣긴 했으나 벌써 안심이 되지 않고 겁만 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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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에 아마 한 되의 피는 쏟았을 성싶다. 5,6일 동안 학교를 쉬면서 안정하고 치료를 받아도 회복이 쉽지는 않았다. 머리 속이 아프고 몸이 허전할 뿐이 아니라 손가락 끝까지가 저리다. 그런 변이 처음이라 놀라기도 놀랐지만 흘린 만큼의 피를 보급하려면 짧은 시일로는 될 것 같지 않다. 5월은 불행한 달이었다. 새달을 맞이하니 겨우 정신이 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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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원인이 아니라 몸의 쇠약에 기인한 것이었고 쇠약은 과로에서 오고 과로는 봄 이후의 원고의 집필에서 온 것인 듯하다. 2월 이래 두 가지의 장편소설에 붙들려 400자 900매의 원고를 써오는 중이다. 6월 한달 소설이 끝날 때까지는 천 매를 훨씬 넘으리라고 생각된다. 다섯 달 동안에 천 매의원고라는 것이 놀라리만치 많은 분량은 되지 않을지라도 나날이 일정한 정력을 허비해야 하는 신문소설의 과무에 반년 동안 붙들려 지낸다는 것은 결코 수월한 노릇이 아니다. 작품이 되고 못되고 간에 사자(寫字)와는 달라 머리 속을 짜내어 없는 소리로 흰 원고지를 까맣게 채워야 한다. 자여(自餘)의 단편이나 수필 원고의 청에는 일절 응하지 못하면서 그 일만으로 하루하루가 그뜩 차진다. 아무리 건강한 작가라도 과로를 느끼지 않고는 못 배겨날 것이다. 작품 성과의 일열(逸劣)을 둘째 문제로 하고 또한 가지 작가가 과로하든 어쩌든 제가 즐겨서 고른 일 제 하는데─하는 국외적(局外的)인 조롱을 떠나서 역시 문학같이 어려운 길은 없다고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넓게 묻노니 예술의 길같이 어려운 것이 어디 있으며 보다 더 어려운 길이 무엇이뇨. 독창(獨創)의 길인 까닭이다. 소설가라고 다른 재조(才操)나 능(能)이 없어서 소설만을 쓰는 것은 아니다. 소설을 쓸 정도의 사람이라면 다른 무엇을 시키든 많은 열 사람 틈에 끼어 손색이 없을 것이다. 가장 곤란한 길을 자청해 고른 것은 한갓 보람과 자랑을 느낀 까닭 이외에 무엇이 있으랴. 문화사회에서 가장 높은 영광을 받아야 할 문학인이 이곳에서 같이 몰이해 속에 묶여 버리는 데는 없을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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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한 사람의 시세를 이용해 자기 팽창을 꾀하기에 급급한 배금노가 소설가더러 이런 때 소설을 서서 무엇해 차라리 잠자코나 있지 하고 비방한다면 그 배금노의 목은 천 번 잘라도 부족할 것이다. 철학자더러 철학은 해 무엇 하느냐고 짖는 살찐 한 마리 돼지의 배짱이라고 할까. 살찐 돼지나 벌레나 배금노뿐이 아니라 무릇 무엇이든 간에─사회 어느 부의 미물이든 간에 예술가를 욕줌은 그 형이 넉넉히 능지에 마땅하지 않을까. 반년 동안에 천 매 원고를 쓴댔자 잗단 원고료로는 한 여름의 휴양비도 못 된다. 작가의 노작(勞作)을 위무(慰撫)함이 문화사회의 공덕일 때가 언제나 올 것인가. 문학작품에서 해독을 입는다면 그것은 입는 편의 지성의 저열로 말미암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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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 이 고장에서 이런 자화자찬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작가의 길이 괴로움을 다시 느끼며 집필 중의 소설이 얼른 끝날 날을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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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5일기(記)
【원문】괴로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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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효석(李孝石) [저자]
 
  삼천리(三千里) [출처]
 
  1940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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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11월 0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