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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
계용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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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절(苦節)
 
 
 

1

 
 
3
이 봄을 접어들면서 우제는 아버지가 자기를 더욱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것을 알았다. 믿지는 않으면서도 그래도 전에 같으면 가다가 한 번씩이라도 가사에 관한 의논은 있을 것이 일체 없어진 것으로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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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좀더 자세히 말하면 자기라는 인간은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로 여긴다는 말도 되는 것이라, 아니 이렇게까지 자기를 천단해 버린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괴로울꼬 생각할 때 우제의 마음은 앞뒤가 꼭 막힌 듯이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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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자기를 이심으로 밉게 보아서 그런다면 반감이나 생길 것이, 그렇다면 마음이나 오히려 편안할는지도 모를 것인데, 사랑은 하면서도 아니 사랑하길래 큰 소리 한마디 없이 아들이 없는 줄 아자꾸나 하고 인제는 아예 의논을 말려는 것인 줄은 아니, 가슴이 아픈 것이다.
 
6
본시 성질이 남달리 뚝하여 아들에게도 말 한마디를 곰살갑게 하여본 일이 없는 아버지였건만 자기를 누구보다도 알뜰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만은 우제가 모르는 배 아니었다. 오륙 식구를 거느리고 오십이 넘은 아버지가 혼자 이것들을 벌어먹이기에 사철 다리를 부르걷고 진날 마른날 없이 감탕 속에 무젖어나며 농사를 짓기가 오죽 힘들련만 모 한 대같이 꽂아 주기는 커녕 섬대가리 한번 맞들어 주지 않고 남의 일같이 눈 한번 거들떠보는 법 없이 밤낮 손 싸매고 방구석에 틀어박혀 책으로 씨름을 하는 것이 아니면 하릴없이 뒷짐이나 지고 산등성이나 거니는 것이 그의 생활의 전부이었건만 이렇다 쓴소리 한마디 아니하던 그 아버지였다.
 
7
사실, 그 아버지 자신도 우제가 삼십이 되도록 책이 아니면 붓대나 들고 고이 놀리던 손끝으로 일(농사)을 하리라고는 애초에 믿지부터 않았다. 공부를 하였거니 취직을 한다든지 무엇이나 한 자리 해서 돈 벌이를 하여 집안 식구를 먹여살릴 것이겠거니, 그리하여 어떻게 찌그러져 가는 가정을 바로 세워 놓았으면 하는 생각은 은근히 있어 왔다. 이것은 우제도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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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제는 취직은커녕 용돈 한푼 벌지 못하고 되려 그 늙은 아버지가 수염에 흰물을 들여 가며 벌어 놓은 돈을 쪼아먹고만 있었다. 돈벌이를 못하고 집에 있겠거든 아버지가 그렇게 손이 모자라서 배 바쁘게 돌아가는 것이 어심에 미안해서라도 좀 맞들어 줄 성싶은 것이련만 그것은 나 몰라 하는 듯이 우제는 눈 딱 감고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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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것을 아버지는 손이 정 모자라 돌아가지 못할 때면 마지못해 힘들지 않는 일로 놀면서라도 꽤 하염직한 일이면 이따금씩 시키는 일이 있었다. 그러나, 시켜 놓고 보면 그것은 결국 도리어 시키지 않았던 것만 못한 결과를 맞는 일이 반은 넘었다. 그것은 아버지가 시키는 일이므로 거역할 수가 없어 대답은 하지만 마음에 없는 일이라 모르는 가운데 일은 저질러지고 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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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는 그날도 모는 내기 시작하고 갑자기 양식이 떨어져 집 근처에서 벼를 한 섬 꾸어다 말리어 찧으려고 멍석에 널어 놓고 닭 볼 사람이 없어 우제더러 닭을 좀 보라 이르고 아버지는 안심하고 모를 꽂으러 들로 나갔다가 점심참에 들어와 보니, 닭은 마당으로 하나 벼를 차 버리고 한 멍석 들어서서 일변 목들이 메어서 캑캑거리며 쪼아 먹고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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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본 아버지는 어쩔 줄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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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야! 닭! 데닭! 닭! 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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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고함을 치며 찾았으나, 우제는 기웃도 아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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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방안에 사람이 없나 아버지는 팔을 내저으며 마당으로 뛰어 들어가 닭들을 쫓아내고 우제의 방을 기웃해 보니, 제법 닭을 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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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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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대답을 하던 것이 얼굴 위에다 책을 올려 놓고 번듯이 늘어져서 세상이 오는지 가는지 코만 드르렁드르렁 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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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저것이 저러고도 밥을 먹고 살아갈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어처구니가 없어 멍하니 우제를 바라만 보다가 그래도 낮잠을 자는 것이 몸에 이롭지 못할 것을 생각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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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애! 우제야 잠 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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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무릎마디를 잡아 흔들었다.
 
20
“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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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우제는 놀래어 눈을 썩썩 비비며 성큼 일어나 앉았으나 아직도 잠은 덜 깬 모양으로,
 
22
“아이고 깜짝이야! 난 또…… 아!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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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선하품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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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본 아버지는 그저 한심하다는 듯이 “끙 - ”하고 속으로 가쁜 한숨을 내쉬일 뿐 다시는 더 아무 말도 아니하고 건넌방으로 건너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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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이런 것을 하루이틀도 아니고 일상 화를 내려다가는 한정도 없겠거니와 또 들을 것도 아닌데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렇다고 또한 큰 소리를 하므로 아들의 비위를 상하기도 싫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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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아버지는 인제 아들은 아예 없는 줄 알고, 아니 믿어야 저나 내나 서로 마음이나 편하리라 생각을 하고 일은 물론, 가사에 관한 의논까지도 일체 아니 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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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을 아버지는 무엇에나 입 다물고 말은 하지 않아도 우제는 아버지의 속을 들여다나 보는 듯이 빤히 알았다. 알 수 있는 것이 우제의 마음을 더욱 괴롭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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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제는 자기가 발벗고 나서서 어떠한 짓을 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집안 식구를 붙들어 살릴 것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하건만 마음에 없는 노릇은 죽어도 하기가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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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농사 같은 것은 장담코 제 자신도 못 하리라 믿지만 무슨 회사라든가 그러한 데는 손을 쓰면 들어가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그리하여 게서 나오는 보수가 집안 식구를 다 붙들어가지는 못한다손 치더라도 자기의 입만 치워도 아버지의 등은 얼마쯤 가벼워질 것인데, 우제는 반드시 의지를 희생해서라도 살아야 된다기는 무엇 때문엔지 달갑게 마음이 허치 않았다. 아니 의지를 희생하여 빚어진 돈이 설혹 목숨을 붙들어간단들 그 목숨은 무슨 가치가 있을 것이냐? 그것은 도리어 의지에의 죄악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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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이렇듯 삶에 대한 불안이 우제로 하여금 문단에서 은퇴를 하여 농촌으로 떨어져 손 싸매고 틀어박히게 한 원인이었거니와 그의 소설은 꽤 평판이 좋았다. 농촌을 묘사하는 데 남다른 독특한 수법으로 엄청난 작품이 이따금씩 튀어나와 문제를 일으킴과 같이 일약 신진 작가로 등단을 하는 영예를 가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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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소설을 쓴다는 그것으로는 생계를 지지할 수가 없었다. 신문과 잡지에는 우제의 이름이 끊일 새 없이 휘날리니 집에서는 우제가 훌륭한 인물이 되어 돈을 많이 벌겠거니 하여 돈 좀 보내야 살겠다고 실로 편지가 빗발치듯 책상머리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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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무리 약을 써야 자기 한 몸밖에는 더 나아가, 아니 이것도 빳빳한 것이거늘 5, 6인의 집안 식구 - 그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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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비장한 결심으로 단연히 붓을 들고 문단에 나서게 되는 우제, 1년 내로 빚에 몰려 오던 가정이 몰락의 비운을 피치 못하여 6, 700석의 추수를 거두던 토지를 전부 들내놓아 팔 때에 한껏 섭섭한 마음은 있었지만 그 아버지는 고사하고 동리 사람들의 아까워하는 마음의 십분의 일만도 못하게 무관심하던 마음, 부르조아의 자식이라는 향기롭지 않는 레텔이 뜻 있는 사람을 대하기에 부끄럽던 마음, 그리하여 그 재산이 일조에 흩어지고 말 때 되려 인간적으로는 이제야 바른 사람이 된다는 마음까지 느끼며 두 주먹을 든든히 믿는 마음, 그리하여 지렁이같이 푸른 힘줄이 울근불근하는 두 개의 팔뚝을 들여다볼 때면 그 힘으로 무엇인들 못 할 것 같지 않았었다. 그래서 자기의 주먹으로 벌어서 가족을 붙들어살릴 것이 얼마나 신성한 살림일 것이냐, 당시 동경에서 동양대학을 다니던 그는 일 년을 앞둔 졸업까지 집어던지고 서울로 뛰어나와 원대한 희망 속에서 문학적 활동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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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소설은 밥을 먹이는 것이 못 되었다. 먹어야 사는 사람은 분명히 밥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뜻 아닌 마음이 돈이라는 그 물건에 이끌리어 들어감을 어찌할 수 없을 때 옛날의 원대한 희망은 완전한 한낱 아리따운 공상으로밖에 더 되어 나타나는 것이 없으니 이에 믿지 못하는 힘은 고민의 싹밖에 낳는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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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집에다 회답할 문구에조차 궁해서 애를 태우며 돌아가니 소용이 있을까. 돕는 이 없으니 집안의 형편은 차츰 쪼들려, 심지어는 생전 쥐어보지도 못하던 호미자루까지 어머니 아버지는 드시고 근처 집 소작을 하느라고 코피가 익어서 돌아가게까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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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렇다고 우제는 밥을 먹는 것만으로 생활의 수단을 삼기는 싫었다. 하지만 그렇게 아니하면 밥을 먹을 수가 없는 것이 빤히 내다 보이는 현실이요 등에 짊어진 일이다. 그러니 현실에 대한 고민은 날로 커 가고 그리하여 그것은 또한 권태와 오뇌까지 가져다 주어 자기도 모르게 무능한 인간으로 화하여 문단에서는 우제의 소설을 불렀건만 그는 손이 묶인 듯이 움직여지지 않아 농촌으로 굴러 떨어지게 된 것이니 그것이 벌써 사 년 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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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이태 삼 년을 집에 꼭 박혀서 주위의 온갖 치소를 한 몸에 받으며 끼니의 구차에까지 사정은 절박하였었건만 그는 치소를 되려 비웃고 보는 것이었다. 때로는 자기도 남과 같은 처지에서 수양을 못 받고 향상을 힘써 온 것이 도리어 이렇게 자기를 무력하게 만들어 집안 식구를 굶기게 하고 또는 자기의 마음까지 괴롭히지 아니치 못하게 된다고, 그리고 그것은 분명히 과도한 수양의 죄라고 저주까지 하여 보다가도, 또한 그 수양이 주는 위안이 실로 자기라는 생을 이끌어가는 것임을 알 때 그 속에서 참 생의 희열을 느끼는 때문이었다.
 
39
그리하여 오히려 스스로가 높이 앉아 현실을 내려다보고 싶은 자존심이 오직 생을 붙들어 가고 있는 것뿐이었다.
 
 
 

3

 
 
41
“아니 여보! 참 어떡할 모양이요? 난 아부님 보기가 부끄러워 못 살겠어요. 올해도 월급 자리루 못 가게 되면 농사래두 허야 않아우?”
 
42
아내는 남편의 동정을 살피다 못하여 농사 시절이 되어도 또 손 싸 매고 앉았으매 어느 날 저녁 우제가 상을 받으려 건넌방으로 건너온 짬을 타서 말은 꺼냈다.
 
43
내외간이라고 하지만 아내는 실상 남편에게 말 한마디 자유로 할 기회가 없었다. 아내는 아침 일찍이 일어나 아버지와 같이 들로 일 나갔다 어둡게야 들어오고 우제는 늦도록 자다 하루 세 때 밥상을 받으러 큰방으로 건너올 뿐 자기 방에는 누구 하나 얼른하지 못하게 하고 혼자 틀어박혀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겨울에는 나무 때문에 두 방 부지를 할 수가 없어 우제도 큰방 윗간으로 건너와 아내와 한 방에 모이지만 해춘만 되면 건너방으로 건너가 혼자 박혔다. 그래서 아내는 또 이 봄을 잡으면서부터는 무슨 할 말이 있어도 상 받으러 건너오는 그 때를 이용하지 아니하고는 기회가 없었다.
 
44
“글쎄 안 그렇소? 당신이 일을 하면 이렇게 사는 것도 그래두 발이 좀 페울 터인데 아버님 혼자서 감당을 못하고 농사하는 걸 싻을 늘 넣게 되니 농사는 지으나마나, 글쎄 금년도 벌써 양식이 떨어진 게 아니요.”
 
45
아내는 역심과 안타까움에 울 듯한 표정으로 그러나 남편의 환심을 사지 않아서는 안 될 것인 듯이 반은 애교에 가까운 어조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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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제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그저 먹는 밥이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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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구 글쎄 애쌔끼들이 또 한심하지 않소. 공부를 못 시키겠으면 연골에 농사라도 배워 주야디 석 달치나 월사금을 안 가져가니 선생이 벌을 씨운다고 어젯밤은 밤새두룩 울며 조르드니 오늘은 학교에도 안가고 그래서 아부님이 아침에 모나 꽂자고 들로 데리고 나간 걸 당신은 아마 모를걸요, 글쎄 어떡해요, 이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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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을 우제가 비록 외딴 방에 혼자 묻혀 있었다 해도 모르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거니와, 하나도 아니요 엄창 둘인 자식들의 장래 문제에 대하여 생각해 오지 않은 배 아니어니 이런 소리에는 더욱 가슴만 답답할 뿐 언제나 생각하고 한숨 쉬던 때와 같이 저것들은 왜 생겨 나왔을까? 저것들만 없어도 몸은 한결 가볍지 않을 것인가? 우제는 다시금 외어 보며 말없는 한숨만 꺼지게 쉬었다.
 
49
이때에 모를 꽂으러 나갔던 자식들이 사지가 나른하여 다리를 뚝 부르걷은 채 할아버지와 같이 주룽주룽 달려 들어왔다.
 
50
우제는 아내의 입에서 좀더 무서운 말이 나올 것 같아 은근히 뒷말에 마음을 졸이고 앉았다. 아내가 더 말할 기회를 잃고 밥상을 가지러 부엌으로 내려가는 것을 다행으로 그래도 좀 늦어지는 것 같은 마음의 고비에 다시 밥술을 들었다.
 
51
밥상이 들어오자 윗간으로 뛰어올라가 손을 넣어 보던 맏놈 덕숙은 잠깐 눈이 둥그레지더니,
 
52
“아니! 내 수깔! 이새끼 흥순이 내 수깔 감췄구나.”
 
53
하고 동생 흥순이를 향하여 눈을 부릅뜬다.
 
54
그러나 흥순이는 아무 대답도 없이 이불귀에서 숟갈을 끄집어내선 밥상을 마주하고 앉는다.
 
55
“요새끼 수까락 내라. 놈으 수깔을 감춰 놓고 이제 함자 밥 다 먹으려구?”
 
56
단박 달려 내려와 흥순의 따귀를 겨눈다.
 
57
“어즈께는 너 고롬 내 수까락은 와 감춰 놓고 나보단 밥 많이 먹었네?”
 
58
흥순이도 지지 않으려고 눈알을 발가쥐고 딱 마주선다.
 
59
“뭐시야, 요새끼 그래서 너 어즈께 내레 수까락 감추는 걸 봤네?”
 
60
“넌 그래서 내레 감추는 걸 봤네?”
 
61
“요새끼 고롬 누구레 감췄간 너 밖에.”
 
62
“글쎄 넌 어즈께 와 내 수까락 감추고 밥 함자 다 먹었네?”
 
63
“요새끼 내레 내레 감추는 걸 봐서 글쎄?”
 
64
“넌 또 내레 감추는 걸 봔? 그래.”
 
65
누구도 족히 항복은 아니 하려 하고 서로 결러 댄다.
 
66
오늘도 또 싸움이 일어나는 것을 본 어머니는 얼마나 저것들이 배가 고파서 어제부터는 전에 없던 밥싸움까지 할꼬 생각할 때 어머니의 마음은 알뜰하게 아팠다. 그러나 그들의 배를 불려 줄 여유에 군색하니 위로할 말이 없다.
 
67
“낼은 많이 담어 줄 거니 어서 쌈질들 말구 식기 전에 먹어들 치워라. 작은놈 넌 내 밥 더 먹으렴?”
 
68
어머니는 달래며 자기의 밥그릇을 밀어 놓는다. 그러나 피차에 흥분이 된 그들은 어머니의 소리는 듣는지 마는지 그냥 입논을 계속하더니 마침내는 서로 손이 오고가고야 만다.
 
69
우제는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자식들의 이 밥싸움은 자기의 무력을 비웃고 그리고 모욕을 주는 것 같았다.
 
70
“이 자식들아!”
 
71
벌떡 일어선 우제는 당연히 할 수 있는 자기의 책임이라는 듯이 어느새 두 자식의 따귀를 한 대씩 갈기고 가장 위엄 있게 아니 있는 성이 모두 두눈에 불꼬치를 붙였다.
 
72
그러나 다음 순간 우제는 더 할 말을 몰랐다. 자기의 무력을 자식들이 말하는 것은 불쾌한 일이나 자기의 무력은 자기가 아니 질 수 없는 책임인 것을 아는 때문이다 하니, 밥에 구차를 받는 자식들이 금시에 불쌍하기 짝이 없었다. 자기는 오늘도 뒷짐을 지고 산 속을 거닐며 돌아간 일밖에, 그리고 쓸데없는 공상이 있었던 것밖에 없었음을 생각하고 그래도 자식들은 온종일을 밥을 위하여 다리를 부르걷고 모를 꽂은 것이 아니었던가 하니 자기는 자식들에게 도리어 머리를 숙이고 부끄러워하여야 할 자기였던 것이다. 그는 자식들의 앞에서 자기의 배를 불리겠다고 다시 밥술을 잡기가 부끄러웠다.
 
73
그리하여 이내 건넌방으로 뛰어 건너왔건만 내었던 증이 잘못인 줄은 알면서도 누르지 못하고 그래야 마땅한 듯이 그대로 눈을 흘겨빨며 건너오지 않을 수 없었던 자기를 역시 건너와서야 자기의 되지 못한 자존심을 스스로 책할 수 있는 우제였다.
 
74
자식들은 아버지의 매가 억울하다는 듯이 어머니와 할아버지가 그렇게도 달래건만 그치지 않고 느끼며 울고 있었다.
 
 
 

4

 
 
76
“내 그 겨울 양복하구 책들을 저녁에든 뉘가 와서 달라거든 내주시오.”
 
77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아침 우제는 아내를 마주하고 섰다.
 
78
이야기만 들어도 심상치 않은데 갈아입은 남편을 볼 때 어디로 떠나려는 행색임을 일견 눈치챌 수 있었다.
 
79
“왜 어드루 가우?”
 
80
“응.”
 
81
이 밖에는 더 말하려고도 아니하고 더 듣기를 원치도 않은 듯이 우제는 휘적휘적 대문 밖으로 나갔다.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제 아침 자식들이 밥에 주려 싸움까지 하는 광경을 묵도하고 났을 때, 우제는 그들의 배를 곯림으로 자기의 밥그릇이 들어오는 그 밥은 차마 목구멍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리하여 어디 만주로나 떠나 보자는 계획이었던 것이다.
 
82
특별히 그가 만주를 택하게 된 것은 의지를 희생하여 뜻 아닌 마음을 판대도 밥 먹기가 힘든 세상임은 이미 지내 본 경험인, 팔진댄 눈 딱 감고 가장 악하게 팔아 보자는 데서였다.
 
83
읍으로 들어간 그는 생명과 같이 귀히 여기던 마저 남은 이백여 부의 서적을 이미 말하여 두었던 책전에 다시 부탁을 하고, 양복도 역시 같은 방법을 취하여 백 원에 가까운 돈을 묶어 가지고 북행차를 잡아탔다.
 
84
사냥꾼이 짐승을 찾아 산을 뒤타듯 행여나 여기는 무엇이 없을까. 그렇지 않아도 투기 도시로 이름난 곳이라 우선 안동현에 내렸다.
 
85
여기서는 한창 시세를 만난 은 밀수가 제 시절이었다.
 
86
누가 얼마를 잡았느니 누가 얼마를 떼이었느니 맞앉으면 누구나 하는 것이 그 소리다.
 
87
우제도 여기에 마음이 동했다.
 
88
무엇이나 돈만 생기는 일이면 하여 보려 마음을 먹고 떠난 길이라 앞뒷굽을 재어 볼 여유도 없이 그는 남들이 하는 방법 그대로 여자의 ××를 사용하여 그 운반을 취하기로 하고 곧 여자 다섯 명을 사서 은 밀수를 시작하였다.
 
89
그러나 일단 착수를 하여 놓고 보니 아무리 눈을 감자 해도 감을 수 없는 짓이었다.
 
90
남들도 다 하는 짓이요 또 밥이 없는 여자들이니 이것이 오히려 그들의 원하는 짓이라고는 해도 우제의 양심의 눈은 여기에까지 감기지는 못했다.
 
91
하루에도 몇 차례씩 매일 같은 길을 왔다 갔다 하는 여자들이라 해관에서도 그러한 종류의 여자들에게는 응당히 밀수품의 간직이 있으리라는 것은 짐작하지만, 인류 도덕상 거기에까지 손을 못 대고 단지 몸을 흥치게 하여 보는 그런 방법에 그치고 마니 이 난관만을 넘게끔 교묘하게 간직만 하면 그것은 확실히 안전한 운반 방법이요, 따라서 돈이 잡힐 것도 빤히 눈앞에 내다보였다. 하건만 이 인간의 모욕! 두 눈을 갖추 뜨고 앉아서 무엇을 못하여 여자의 ××을 사용함으로써 입을 치자는 것은 그 치는 본의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고, 그렇지 않은지라 스스로가 인간을 모욕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생각할 때 이 노릇을 그대로 차마 계속할 수가 없었다.
 
92
이틀 동안에 여섯 차례를 하고 난 우제는 참다 못해 마침내 사용하던 여자들에게 해산을 선언했다. 그러니 이 돌연한 우제의 태도의 그들은 한 차례도 떼이지 아니하고 일을 잘 보아 주는데 왜 그러느냐고 어서 더 자기네들을 써 달라고 애원복걸, 아니 이것도 직업이라 한 여자는 그날의 끼니에 딱한 사정까지 호소하였다.
 
93
그러나 이때의 우제의 마음만은 세었다. 오늘도 모여드는 여자들을 일일이 물리치고 달리 그 운반하는 방법을 찾다 못해 그는 다시 북으로 차를 탔다. 봉천을 거치어 신경까지 곳곳이 뒤타며 달포나 두고 헤매어 보았으나 눈에 띄는 것이 없었다. 물론 상당한 자본이 있다면 투기적 사업이 없는 것도 아닌 것은 아니었으나 그만한 여유가 있다면 본래 이런 짓을 하려고 이까지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하잘 것이 있나, 소자본으로서는 역시 소규모의 밀수가 아니면 색시 장사나 아편 밀매가 내다보이는 장사였다.
 
94
그리하여 우제는 좀더 내 마음이 악해져라 스스로 격려를 하며 개원(開原) 지방에 자리를 잡고 앉아 모르핀 소매를 벌여 놓았다.
 
95
하나 아무리 악의 화신에로 마음을 채찍질하였으나 그렇기에 얼마 동안은 견디었다 할까, 이 또한 끝내 그의 마음을 붙잡고 견디는 것은 못 되었다.
 
96
어떻게 생각하면 이 노릇이 현실에 대한 불평을 품은 이의 괴로움을 잊게 하여 주는 위안이 확실히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러기에 이러한 이유를 내세우고 스스로 마음을 속여도 온 것이지만 여기에 한번 입을 대인 사람이면 기필코 일 개월 내외에 중독이 되어 심지어는 처자까지 팔아먹고 몸까지 망치고 마는 예가, 아니 그것은 백이면 백이다 그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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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란 젊은 층들이 와서 약을 사갈 때 우제는 썩 대답을 못 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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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젊으신 양반이 왜 이런 데 입속을 하십니까, 끊어 주십시오.”
 
99
하고 알뜰히 타이르고 싶은 충동에 마음이 끓는 때문이었다. 그러나 팔기 위하여 열어 놓은 장사다. 아니 팔 수도 없는 때문에 -.
 
100
그리하여 이런 경우를 당하고 나면 우제는 말없는 눈물을 아프게 삼키고 온종일 불안한 기분 속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101
하루는 아침에 자고 일어나 문 밖에 나서니 아편쟁이 하나가 토방 아래 죽어 넘어져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어젯밤 자기의 손으로 팔목에 침을 놓아준 일이 있는 사십 전후의 조선 청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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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청년의 기상이 말이 아니기에 아편을 끊으라고 팔기를 주저하니 끊는 것은 나중 문제이고 맞아야 시제 사람이 살겠다는 죽는 짓을 하며 어서 놓아 달라고 팔을 부르걷고 애원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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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아편쟁이의 누구나 하는 버릇이다. 우제는 눈 딱 감고 또 한 대를 그의 팔뚝에 되는 대로 꿰어 주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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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랬던 것이 원인이 되어 그의 주검을 눈앞에 놓고 어젯밤 일을 생각하니, 새삼스럽게 그 침 한 대를 종내 아끼었더라면 그 청년은 죽음의 길에서 구원을 받았을는지도 모를 것이 아닌가 하면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진 듯이 마음이 두려웠다.
 
105
그러나 그동안에 약간의 이익을 내다보고 자기의 손으로 봉지를 지어 준 그 하얀 가루는 몇 천 명의 생명을 이제 앞으로 죽일는지 또는 자기 모르게 죽였는지 모를 것을 생각할 때에 우제는 그 노릇을 더 계속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분명히 인류에의 죄악이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은 확실히 이익이 날 것이니 색시 장사를 동업하자고 붙잡고 놓지 않는 것을 우제는 이제 그런 노릇은 다시 할 용기가 없어 이렇게 아니 하고는 살 수 없는 것이 사람인가? 다시 그곳을 떠나 둘 곳 없는 심사에 어떻게 마음을 풀지를 몰라 쓸데없이 남북 만주를 무른 평초 같이 밟으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5

 
 
107
그러나 다시 두 달 후였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섣달 중순의 어느 날 아침 우제는 고향의 k읍 조그마한 역에서 차를 내리는 몸이었다.
 
108
어디를 가나 눈 뜨고 할 말이 없었고 그런지라 불안한 마음은 둘 곳이 없어 두 달 동안의 방랑이 아편 노름에서 확실히 손에 넣을 수 있었던 이백 원에 가까운 돈도 모두 술잔 위에 버리고 손을 쓸 수가 없었던 것이다.
 
109
불그레하게 솟아오르는 아침 햇살을 등에 받으며 그래도 집이라고 우제는 찾아들었다.
 
110
마당에 들어서니 아버지는 반가워하는 기색을 숨기지는 못하나 당황한 빛에,
 
111
“너 인제 오누나 -.”
 
112
한마디의 인사가 있을 뿐.
 
113
“떠들지 말고 윗방으로 가만히 들어가거라.”
 
114
하고 이상하게 입안에다 말을 넣고 속삭이다시피 이른다.
 
115
우제는 웬 까닭인지를 몰라 대답도 없이 멍하니 섰으니,
 
116
“네 아낙이 산고를 하는데 사람을 꺼려서 그런다.”
 
117
하고 먼저 웃방 문을 조심스럽게 연다.
 
118
우제는 자기도 모르게 뒤따라 문 안에 발을 들여 놓았다. 장지는 닫아서 보이지는 않으나 아랫방에서는 고통을 못 참는 산부의 신음성이 그칠 새 없이 흘러 올라오고 있다.
 
119
우제는 정신 빠진 사람처럼 앉지도 못하고 그대로 우뚝 서서 있었다. 이미 있는 자식도 자기에서는 과중한 부담이거든 그 위에 또 한 아이 생기다니, 이 고해에 무엇 하러 그것이 또 기어나와? 하나 그 다음 순간 우제는 확 하고 낯가죽이 달아오름을 참기 어려웠다. 분명히 부부의 관계에 있어서는 범연하지 않았던 자기임을 깨달은 때문이다. 아내를 사랑하였던 것도 아니요 아니 도리어 역겨움에 못 참는 적이 많았건만 그 관계에 있어선 역시 참을 수 없었던 것이 자기였던 것이다. 아! 이 5년 동안의 생활의 찌게미! 오직 그것이 숨길 수 없이 드러나는 뚜렷한 생활이었던 것을 생각하니 부끄럽기 짝이 없어 고개도 못 들고 묵묵히 섰노라니,
 
120
“으아악! 으아악! 으악……”
 
121
하고 마침내 산성이 흘러올라온다.
 
122
우제는 그 소리를 차마 들을 수가 없었다. 자꾸만 으악 하는 그 소리는 이 고해에 나를 왜 쏟아 놓소, 능히 사람을 만들어 줄 힘이 있소 하고 에미애비를 원망하는 소리같이 들려 큰 죄나 짓는 것처럼 몸이 오싹거렸던 것이다.
 
123
“아들이와? 딸이와?”
 
124
그래도 아버지는 자손이 귀함인지 남녀의 구별에 궁금한 듯 장지를 방싯이 열며 마누라더러 묻는다.
 
125
“아들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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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아들이야? 귀하다 참 셋째로구나!”
 
127
아버지는 손자를 연달아 셋째나 보는 것이 장한 듯 새삼스럽게 기세를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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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제는 아들이라는 것이 더욱 과중한 짐인 듯, 그 무슨 강압 관념에 장쾌한 생각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저 안이한 마음이 무엇 때문이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으면서도 못 견디게 줄어들음을 느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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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지〕《백광》(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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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단행본〕*『한국문학대전집』(태극출판사, 1976)
【원문】고절(苦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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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용묵(桂鎔默) [저자]
 
  # 백광(잡지) [출처]
 
  1935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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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11월 0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