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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란을 세우는 방법 - 조선문학재건에 대한 제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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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5
김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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鷄卵[계란]을 세우는 方法[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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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부스가 동인도를 돌아올 때, 세상에서는 “그게야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일이라” 고 일축하니까, 콜럼부스는, 달걀을 하나 내어 놓고, 누구이 달걀을 세워 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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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달걀이 설 까닭이 없어서 모두들 그러면 콜럼부스, 네가 세워 보라니까, 콜럼부스는 그 달걀을 조금 뚜들겨서 한편을 뭉그러뜨려 놓고서 세웠다. 사람들은, 그렇게 하고야 누군들 못 세우랴 비웃으매, 콜럼부스 대답이, “그렇다. 누구든 세울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좀 뭉그러뜨릴 생각을 내는 그 점에, 사람의 머리의 우열이 구별된다”고 하였다는 이야기는, 아마 소학교 교과서에서 들었을 것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유명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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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을 조금 뚜드리면 세울 수 있는 것을, 사람들은, 뚜드릴 생각은 하지도 않고 그저 세워 보려고 땀을 흘리는 것이다. 그러다가도 종내 실패를 하고, 나는 못하겠다고 포기를 하고 거기 조금 영리한 사람이 있어서 뚜들기어서 세우면, 그게 무슨 재간이냐, 뚜들겨서는 나도 세울 수가 있노라고, 도리어 큰 소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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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조선문학의 재건’ 이다 무엇이라 하는 문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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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문학’이란 어떤 것이냐. ‘재건’ 이란 무엇을 가리키는 혹은 형용하는 말이냐. 조선문학이 언제 건설되었다가 언제 무너졌기에 새삼스레 ‘재건’치 않으면 안 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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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을 세우려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연히 까다롭고 몽롱하고 막연한 문제를 만들어 가지고 스스로 자기를 시달릴 필요가 어디 있는가. 문학인이면, 문학상의 자기가 짊어진 분야를 충성스럽게 개척해 나가면 ‘건설’로 될 것이요, ‘재건’ (만약 무너졌다 하면)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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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든 다 그렇거니와, 평범하게 생각하자면 단순하고 쉬운 일을 어렵고 까다롭게 생각하자는 버릇이 우리에게 있다. 그래야 고상하고 우미한 줄로 여긴다. 달걀을 뭉그러뜨리어서 세우지 않고 물리학적으로 역학적으로 세워야만 되리라고 생각하는듯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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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젊은 문학자들은, 문학을(문학만을) 고상하고 신성한 학문으로, 따라서 문학자는 신성한 학문의 주인이니만치 문학자에게서는 문학이나 인생에 대한 엄숙하고 신성한 문장만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는 사람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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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지라 달걀을 역학 원칙에 의지해서 세워 보려는 기술을 연구하고, 토론하는 경향이 적지 않게 보인다. 달걀을 역학적으로 세우는 이론을 어떻게든 안출해 보려고 애쓰고, 까다롭고 추상적이요, 막연한―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무슨 이론을 꾸며 내어서, 이리이리 하면 달걀이 설 수도 있다고 그럴듯이 돌려 대고, 여기 어떤 실제가가 있서 달걀을 뚜들겨서 세우면, 그런 평범한 소리는 치우라고 도리어 大言[대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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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어떤 사람이 무슨 글을 쓰는 가운데서 그저 무심히 ‘달걀을 뚜들겨서 좀 뭉그러뜨리고서 그 달걀을 세워서 운운’의 구를 썼다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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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글을 읽는 독자 중에, 갑은 그저 무심하게 달걀을 뚜들겨서 뭉그러뜨리면 설 수 있을 터이니까, 讀過[독과]해 버렸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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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은 아직껏은 달걀을 세울 수 없는 것이라고 알고 있더니만치, 그 글을 읽고 비로소 한 개 새 지식을 얻었거니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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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은 그 글의 다른 부분에 ‘젓가락으로 김치를 집어 먹고’ 등이나 일반으로 그저 문장의 일 구쯤으로 가볍게 읽어 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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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 ‘평범한 소리다. 누가 그걸 모르랴’쯤으로 도리어 鼻笑[비소]한다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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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뒷날 무슨 일로 ‘달걀을 세울 필요’ 가 생겼다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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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의 그 글을 그저 무심히 독과한 ‘갑’ 은, 종내 달걀을 세우지 못했고 을은 즉시로 달걀을 뚜들겨서 뭉그러뜨리어 세우는 데 성공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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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은 지난날 무심히 읽은 글을 회상 상기하여서 다시 그 글을 읽고서 달걀 세우는 데 성공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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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 지난날의 비소한 글이 생각나서, 이런 평범하고 쉬운 일을 못하랴 하고, 역시 달걀 세우는 데 성공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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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론 정도 쉽게 성공을 했다 하지만, 지난날에 비소한 그 글이 없었다면, 평범한 일이나마 ‘뭉그러뜨리’ 려는 생각은 그리 쉽게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평범한 일― 경과하고 보면 평범하고 무가치하고 우스운 일이라고 결코 不顧[불고]할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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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월전에 무슨 글을 하나 써서, 어느 신문에 준 일이 있다. 그 후 일삭이나 지나도 그 글이 지상에 게재되지 않으므로 그 신문의 그 면의 책임자에게 몰서했느냐고 질문을 하였더니 대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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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兒童走卒[아동주졸]도 운위하는 그런 평범한 소리를 적어도 선생님 기명 하에 지상에 게재한다면 선생님의 명예에 관계되겠기에 그냥 보류해 두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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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운. 즉, 달걀을 뭉그러뜨리어서야 누군들 못 세우랴. 좀 고상한 방식, 우아한 수법으로 세우는 재주를 피워 보라는 것과 동일 논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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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문단의 老卒[노졸]인 여 같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글이면, ‘삶이 어떻고’ ‘문학―예술이 어떻고’ 등의 고상한 글이어야 할 터인데, 출판계가 어떻고 문법통일안이 어떻고 등의 비속하고 현실적인 글을 쓰다니, 이리하여 該君[해군]은, 그런 속된 현실 문제를 운위하는 글은 여의 명예를 위하여 보류하여 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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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 則[즉]한 문제를 운위하는 것은 비속하다 보는 것이 우리의 젊은 문학자들의 갖는 생각이다. 문학자 된 자는 모름지기 고상한 이상을 논할 것이지, 어찌 비속한 현실을 논하랴, 이런 생각을 품고 세상과 떠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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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로도 분명히 요해하지 못하는 이론을 부르짖고 제3자가 그것을 해석하고 전개해 주기를, 그 전개에서 자기도 비로소 자기의 이론의 거점을 찾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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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白民[백민]〉지에서 여에게 과제된 이 글도 ‘조선문학 재건에 대한 제의’라는 것인데, 대체 재건이란 것은 과거에 있다가 일단 없어진 것을 다시 일으키는 것인데, ‘있다가 일단 없어진 일’도 없거니와, 그러니까, 재건이라는 것은 문제도 되지 않는 것이거니와, 그 재건이라는 말을 ‘건설’이란 말로 바꾼다 치고, ‘조선문학 건설에 대한 나의 제의’라는 제목이 너무도 막연하고 불명료하고 요령부득이어서 편집자에게 좀더 구체적 설명을 요구하면, 아마 역시 다만 고상한 제목을 고르느라고 골라 낸 데 지나지 못할 것으로서, 편집자 자신도, ‘역학적으로 달걀을 세우는 이론’ 밖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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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대하여 여가 만일, 달걀을 좀 뚜들겨서 한편을 좀 뭉그러뜨리는 방법으로 대답하면, 모르긴 모르겠지만, 그런 것이야 누구든 아는 이야기가 아니냐고 비소하여 버릴 것이다.
 
29
그러나 여의 재간으로는 달걀을 세우려면 좀 한편을 뚜들겨 뭉그러뜨리는 밖에는 그 이상의 딴 재주 없을 뿐더러, 달리 달걀을 세우는 묘법이 있으리라고도 생각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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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문학을 건설하려면, 까다롭고 고상한 무슨 이론을 떠들 것이 아니라, 각자가 모두 현실에 즉하여 자기 각자의 문학도를 개척해 나아가는 것― 이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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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도 모르는 이론은 弄[농]하는 것은, 百害[백해]가 있을지언정 一利[일리]가 있을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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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과거 30년간(29년 4개월이다), 오직 문학도 위에서 살았다. 때로는 史譚[사담]이며 대중소설에도 손 붙였지만(기간으로건 분량으로건 불소한 수자가 된다) 그것도 역시 문학도요, 문학도 중에서도 오직 소설도요, 같은 문학도의 가운데서도, 시며 극이며 다른(소설이 아닌) 外入[외입]을 한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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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을 역학적으로 세워 보려고 노력한 일도 없고 다만 뭉그러뜨려서 세우면서 前進[전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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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 뜻을 두는 사람이 모두가 이렇게 나아가면 조선문학은 따라서 건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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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을 역학적으로 세워 보려는 생각을 내든가 그런 이론을 억지로라도 전개시키려는 노력을 하든가 하면 이야말로 조선문학 건설의 큰 방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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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民[백민]〉 통권 14호, 19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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