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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4년 11월의 창작(創作) 개평(槪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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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11.
이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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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창작(創作) 개평(槪評)
 
 
 

1. 춘원(春園)의 〈군을생각하고〉(《조선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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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라는 청년의 짧은 일생을 가장 인상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병고(病苦)로 실연으로 ─ 그 위에 또 빈궁(貧窮)으로 지내다가 종용(從容)히 이 세상을 떠나게 된 운명을 오인(吾人) 앞에 여실히 내보였다. 이 작품의 무엇보다도 강한 매력을 가진 것은 오인(吾人)에게 실감을 주는 것이다. H의 그 기구한 운명에 동정 아니 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춘원의 의례히 그러한 필치(筆致)로서만 볼 것이 아니라 작중(作中)에 나타난 서한(書翰)의 구절구절은 적어도 H라는 청년의 참스러운 감정의 유로(流露)라고 생각할 수 있다. 병고(病苦)와 실연으로 말미암아 극히 모든 생각이 감상적에서 감상적으로 깊이 깊이 파고들어가는 인생관은 자연히 그렇게 될 것이다. H란 인물에 대하여 작자가 취급한 바와 동감이다. 이의가 없다. 조금 불만족하게 생각되는 점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폐병으로 죽어가면서도 교단(敎壇)을 떠나지 않으려는 것과 같은 강함 인내성을 가진 H가 선배인 ‘나’란 이에게 대한 태도며 애인인 C에 태도가 너무도 남성적이 아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누구에게든지 있는 성격상의 모순이라 이 H에게만 한하여 책(責)하는 것은 너무나 가혹한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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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작중(作中)에 C라는 인물의 그림자는 대단히 엷고 희미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C란 인물은 이 작품 가운데 한 ‘스핑스’다. 요부(妖婦) ‘타입’의 여성인 듯도 하고 순진한 숙녀 ‘타입’의 여성인 듯도 하다. 작자는 왜 C란 인물에 대하여서는 ‘스핑스’ 그대로 두었을까 하는 것이 의문이다. 소위 연인이라는 H가 병고(病苦)를 참아가며 벌어 보내는 학비로서 공부를 해가며 따로 연인을 몇 사람씩 두고 향락을 누리었다는 것이 이 작품 중에 무엇보다도 큰 문제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인간에게는 이러한 반면(反面)이 반드시 없다고 할 수 없다. 약한 인간으로서는 있음직한 일이다. H에게 치명상을 준 것은 이 실연 문제이다. 나중에 병을 간호하였다는 것 같은 것은 임종 시에 다다라 잊어버리고 극락으로 잘 돌아가라 하며 홉뜬 눈을 쓰다듬어 주는 것이나 그렇게 다를 것이 무엇일까. 작자(作者)는 이러한 최후의 간호만으로 C는 정숙한 처녀이다. 동경(東京)에서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은 한 중상(中傷)이나 풍설(風說)에 지나지 못한 것을 설명한 것이라고 생각할는지 알 수 없으나 이것만으로 동경(東京)에서 하였다는 모든 행위를 부정할 수는 없다. C라는 인물이 ‘나’라는 선배의 전보 한 장으로 를 찾아보았다는 C 그것만으로 무사기(無邪氣)하고 정숙하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이것은 작자의 속단이다. 말하자면 작자의 주관이 너무나 이 작품에 활동을 과함이나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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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이 C란 여성은 극히 희미하여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이 되고 말았다. 정체를 다른 사람이 알 수 없는 것이 C란 여성의 특징이라 하면 그만이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작자가 현숙(賢淑)하다고 설명은 해버릴 수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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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란 여성이 학비 대주는 연인과 육적(肉的) 향락을 주는 연인을 다 각각 두었다는 것도 ○안 여성으로 있음직한 일이오 또 이 사회에는 수두룩하게 발견할 수 있는 사실이다. 이와 같이 약한 성격을 가진 여성이라 학비 대던 옛날 연인의 그 눈물 나올 만한 광경을 볼 때에 자기의 책임관이라든가 또는 의리 인정에 자신의 영고(榮枯)를 돌아볼 여지가 없이 어떻게든지 이 병을 구해 주겠다 결심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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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같이 민감한 동시에 감격성이 많은 것이다. 감격하는 순간에는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게 되는 심리를 우리가 경험하였다하면 C가 동경에서 어떠한 다른 이성(異性)에 대하여 동경하는 그 때에는 고국에 있어 학비 대주는 학장님 애인이야 안중에 물론 없을 것이라 한다. 그가 어떠한 새로운 애(愛)의 대상을 발견하고 돌진하는 순간에는 무슨 냉정한 판단이 있느냐? 이러한 성격을 가졌다는 C라야만 비로소 애인을 배반하였다는 것과 간호하였다는 것이 모순인 듯하고 모순이 아닌 것이 비로소 명백하게 되지나 아니할까 한다. 그리하여 이와같이 됨에 좀더 파란(波瀾)과 곡절(曲折)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주요한 부분을 그대로 이와 같이 간단히 처치해버리는 것은 어떠한 일인지 알 수 없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 인물을 취급하였다면 이 작품은 그만한 효과가 더욱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C란 인물에 대하여 작자는 어떠한 요견(料見)으로 그러함인지는 알 수 없으나 C란 여성은 처녀성을 안 잃어 버린 것처럼 알고 그것을 변명하는 듯한 형적(形蹟)이 보인다. C의 정숙을 비호(庇護)하는 데에는 이것보다 더 큰 방법이 없겠지만은 독자의 생각에는 작자가 생각한 그것과는 다른 방면을 아니 생각할 수 없다. 나의 생각에는 내가 이러한 작품을 취급하게 된다하면 나는 좀더 현실을 응시하여 H란 청년의 죽음을 촉진시켜 사(死)의 연(淵)에 밀어 넣은 것을 여실히 취급할 것이다. 왜, H란 인물의 폐위(肺痿가 악증화(惡症化)한 것은 C란 여성에 대한 실연(이것은 H의 착각인지 알 수 없으나)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속히 죽게 된 것은 최후에 만난 연인과 건강을 헤아리지 않고 과도의 육교(肉交)를 한 것으로 취급한 것이다. 과학적으로 우리가 이 문제를 취급할 때에 C란 연인과 서로 만날 때에 그래도 보행할 힘을 가졌던 H임으로 육의 충동을 맹렬히 느꼈을 것이다. 더구나 폐병환자가 육(肉)에 대하여는 보통인보다 집착이 심한 것은 누구든지 아는 바이다. 만인이 한결같이 그러하다고 생각할 수는 없으나 작자가 너무나 이 H와 C사이를 순화시키려 노력한 형적(形蹟)은 도리어 이 작품에 한 하자를 줌이나 아닌가 한다. 좀더 현실을 확절(確切)히 쥐었더라면 이 작품의 효과는 순화시키려고 한 노력 그것보다 많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어쨌든 이 작품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중도에 압증(壓症)을 내지 않을 만한 가치는 확실히있고 또 그만한 실감을 우리에게 주는 것도 사실이다.
 
 
 

2. 팔봉산인(八峯山人)의 〈붉은 쥐〉(《개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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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는 말살(抹殺)된 부분이 많다. 그러므로 그 내용이 어떠한 것인지 전부 읽을 수는 없었다. 따라서 만일 그 부분이 전편 중에 사상(思想)의 핵심이 되었다 하면 나의 지금 말하려는 것은 어떠한 추상론에 지나지 못할 것이다. 결국 일반으로 전체를 평하는 셈이 되고 말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한 점이 있거든 작자(作者)는 토(吐) 혹은 비(比)를 양해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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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맹평(盲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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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작품을 나는 세 가지의 다른 마음으로 읽었다. 제일 처음에 (1)을 읽을 때에는 박영준이란 주인공의 사건이 전개하여 올 것보다도 편지 겉봉을 써달라고 하는 옆에 방 여편네의 사건이 이 작품 중에는 중요한 ‘팩트’가 되리라고 예상하였다. 이것은 이 여편네의 지껄대는 소리라든지 모든 자기 사정을 하소연하는 말 같은 것이 어느 사건보다도 많이 취급되었고 들리는 말 가운데에만 흥미를 느끼게 된 까닭이다. 그리고 (2)에 이르러서는 명식이란 사람은 꽤 이론을 좋아하는 말썽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꽤 초연한 생각을 가진 이라 하였다. 현대의 사회고(社會苦)를 맛보는 지식계급의 한 전형의 청년이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작자(作者)의 이 심리묘사는 꽤 심각한 곳까지 이르렀다고 생각하였다. 어떤 때에는 너무나 잔소리가 많지나 아니한가 라고 생각하였다. 너무나 끌어가는 동안에 압증(壓症)이 나려 하였다. 그리고 한 의문은 이영식의 인생관에는 한 모순이 없지나 아니한가 하였다. 그리고 또 이러한 것은 소설로 쓰는 것보다 차라리 논문이나 감상문으로 썼더라면 더 좋을 뻔했다고 생각하였다. (3)에 이르러서는 사건이 너무나 급격히 변화하므로 아니 놀랄 수가 없었다. 과자집에 들어가서 빵을 훔치고 귀금속전(貴金屬廛)에 들어가서 금은(金銀)을 훔쳐 가지고 도망하다가 소방대 자동차에 치어 죽었다는 것은 너무나 돌비(突飛)한 사실이 아닌가 하였다. 아무리 하여도 상식으로는 판단할 수 없었다. 그리고 영식이가 이와 같은 직접 행동을 취하기까지에는 그 심리 중에 좀 더 어떠한 변화와 과정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말하자면 그와 같은 행동을 취할 이유가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작자(作者)는 왜 이 사건을 좀 더 구체적으로, 소상하게 취급하지 않았는가. 의심 아니 할 수 없었다. (2)에서 너무나 염증이 생기도록 한 심리묘사를 여기 와서는 범연(泛然)히 여긴 것이나 아닌가 생각 아니 할 수 없었다. 일언으로 말하면 이 작품은 너무나 무기교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문장에도 좀더 ‘리파인’된 언어를 선택하였더라면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이것은 미정고(未定稿)이라 할 수 없는 바이지마는 내용의 의미와 표현된 말에는 두 가지가 빈틈없이 들어맞지는 않는 개소(個所)가 가끔 있었다. 이것은 읽을 때의 나의 느낌이나 다시 책을 덮어놓고 이것을 다시 생각할 때 나는 이 작품 ─ 에서 ─ 느낀 여러가지 불평을 다시 한 번 돌이켜 생각해보았다. 이 작자(作者)에 대하여 내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을 그대로 주문하는 것은 너무나 무리라고 하였다. 이 작자(作者)는 우리가 보는 바 작품에 대한 기교에는 그렇게 돈착(頓着)치 않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러한 기교에는 아주 무돈착(無頓着)한 것이 나타난 것이라 하였다. 표현파식의 주관을 무엇보다도 존중히 여김을 알 수 있다. 이 작가의 생명은 여기에 있을 것을 알았다. 조그마한 어떠한 ‘카테고리'에 집어넣고 생각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경지를 개척하는 데에 이 작가의 생명은 영원히 있을 줄 믿는다. 가편(加鞭)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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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1924. 11. 10.
 
 
 

3. 회월의 〈이중병자〉(《개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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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라는 신경병 환자가 C란 병원에 입원 치료하는 중에 간호부 윤경이란 여성에게 어떠한 위안을 얻어 맛보다가 ○○은 연애로 변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짝사랑이었고 윤경에게는 참 연인인 박 의사란 이가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얼마 지난 뒤에 윤경과 박 의사 두 사람이 그 병원에서는 제일 고가(高價)인 현미경을 훔쳐가지고 도망함 뒤에야 비로소 자기와는 서로 켕기지 않는 사랑을 저 혼자 한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간단한 사실을 극히 면밀하게 묘사한 것이다. 이 작품을 대단히 유쾌한 마음으로 읽었다. 물론 신경병 환자의 심리를 그대로 묘사한 것이라 간혹 불건전한 부분이 없지 아니하나 이것은 도리어 이 작품의 자연성을 잃지 않은 특색이다. 음울한 병원과 병실을 배경으로 하고 사실이 전개하니까 우리가 항용 생각하면 이러한 것에서 취재(取才)한 작품의 기분이라 한 것도 좀더 음울하고 처참한 맛이 있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런 곳 이러한 인물을 취급하면서도 하등의 음울 처창(悽悵한 것이 적다. 도리어 명쾌한 맛이넘친다. 읽은 뒤에 마음이 무거워지는 일은 없다. 이 작품의 가치의 판단은 다 읽고 책을 덮으면서 빙그레 웃는 표정 하나가 웅변으로 말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을 통하여 보이는 작자(作者)의 수완에는 어떠한 인생의 암흑면이라도 광명한 곳으로 끄집어 내 놓을 때에는 그것이 광명한 것 같이 내어놓을 힘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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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어떠한 의미에서 이 작품은 부자연하다. 명쾌한 재료는 어디까지든지 명쾌하게 음울한 재료는 음울하게 취급하여야 할 것이라 말 할 수 있으나 이것은 그러한 의미와는 딴 문제이다. 취재(取才)의 여하를 불문하고 작자의 주관 그것이 다소간이라도 사실을 살리고 죽이고 하는 이상에는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신문 기사 하나를 쓰는 때에도 붓끝 하나의 돌아가는 것을 따라 독자의 읽은 인상이 판연히 다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작자의 고유한 기품이나 성격이 감출 수 없이 그 작품에 나타나는 것은 그 작품의 특색인 동시(同時)에 작가의 기분이 되는 것이다. 물론 억강부회(抑强附會)하는 경우에는 부자연으로 돌아가고 말 것은 물론이다. 성격 그대로의 허위 없는 표현에는 도리어 진실미가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정히 그것이다. 다시 이 이중병자에서 얻은 바 암시가 있다 하면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다만 인간은 공리적(功利的)에서 떠날 수 없다는 것이다. 윤경이가 병원을 탈출한 뒤의 편지 박 의사의 한 말 ─“당신의 사랑은 오락적이라 하면 우리의 사랑은 치명적 생활의 연합이올시다”라 한 것과 또는 윤경의 편지에 “당신이 나를 당신의 안해와 같이 사랑하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에게서 조그마한 요소일지라도 나와 합할만한 정신을 정신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나는 죽는 땅에 나아갈지라도 그의 사업적 정신에서 일치하겠습니다.”라는 것을 종합해 보더라도 작자가 이러한 연애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윤경이나 박 의사로 하여금 그러한 것을 대변시킨 것이나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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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작품은 큰 흥미를 가지고 읽었다. 병자인 ‘윤주’를 조금도 정신병자라는 생각이 없이 읽었다. 물론 병원이나 병실의 침○(沈○)한 공기를 통하여 작중의 인물을 본 일은 없었고 맑은 바람이 불고 밝은 광선이 쪼이는 가을들에서 활동하는 청년 남녀의 무리를 바라는 듯하였다. 그래서 읽은 뒤의 인상은 명쾌하다 ‘나는 이중병자이다. 아! 나는 건전한 생활의 전지에서 쫓기어 나고 말았다. 나의 몸은 병이 들었다. 또 하나의 정신에 병이 들었었다 ─ 정신병자이다’라고 실연의 타령을 부르는 것은 어떠한 어여쁜 아이가 연극 흉내를 내는 것을 보는 것처럼 어여쁜 생각은 있을지언정 참안되었다 가엾다! 불쌍하다는 생각은 할 수 없다. 이것은 윤주는 정신병 환자이면서도 어느 곳인지 이성(理性)의 주머니가 달려있는 듯한 까닭이다.
 
 
 

4. 임노월(林蘆月)의 〈악몽(惡夢)〉(《영대(靈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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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삼각관계를 취급한 작품이다. ○투(○套)의 연애소설보다는 조금 신선한 맛이 없는 것은 아니로되 아무리 생각하여도 서양에 흔히 유행하는 탐정소설의 일부분의 발췌인 듯한 감이 불무(不無)하다. 물론 특별한 예술미를 찾아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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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적(戀敵)의 주살혐의(誅殺嫌疑)로 경찰서 누상(樓上)에서 취조를 받을 때에 취조하는 형사가 A. B. C의 범례를 내놓고 설명하는 것 같은 것은 탐정소설의 형식 그것에 아무것도 다른 것이 없다. 그러나 탐정소설에는 오히려 흥미나 신기한 맛이 있지마는 이것에는 그러한 흥미조차 느낄 수 없는 중언부언한 것이 그렇게 길어지고 말았다. 작자(作者)는 어떠한 요견(了見)으로 한 형사의 한 자리의 말을 그 작품의 반 이상이나 차지하게 하였는지 알 수 없다. 훨씬 더 간단하게 명료하게 취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의 안목이 다만 그러한 탐정적 흥미만에 두지 않았다 할 것 같으면 ─ 이것이 이 작품의 조화를 깨뜨려 버리고 말았다. 절름발이 작품을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통일이 없는 작품이다. 작품에서는 진실한 맛이란 것은 얻어볼 수 없다. 세상은 허무니 인생은 도피니 사(死)는 유일의 실재니 사(死)는 위대하니 하는 것은 다만 문자나 관념유희에 지나지 못하는 것으로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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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하여도 진실한 맛을 찾아낼 수 없다. 이러한 작품에서 그러한 것을 구하고 맛보려는 것이 도리어 무리한 요구인지 알 수 없으나 단꿈인 것으로만 생각난다. 동시에 작자의 정신이 어느 곳에 가 들어있는지 알 수 없다. 삼각 연애에 있어서 이성(異性)의 애(愛) 그것만을 독점치 못하여 번뇌 우수(憂愁)하는 것보다 차라리 그러한 모순에는 부생(副生)하는 인간적인 감정에서 많은 오뇌(懊惱)가 있을 줄 믿는다. 이 작중의 ‘나’란 인물은 상당한 교양이 있는 듯하다(이것은 길가에서 자기 벗을 만났을 때 그는 자기의 대학에서 공부할 때의 동창이라고 설명한 것을 보더라도 상당한 교양이 있음직한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 그러나 작중에 나타나는 그것만으로 보면 ‘나’란 인물은 상당한 교양이 있는 사람의 고민하는 그것은 아니다. 어린아이가 장난감을 못 얻어서 투덜대는 것이나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대학을 마치었다는 것이 거짓말이 아니면 이 인물은 얼마큼 저능아의 풍모가 없지 않다. 나는 여기에서 어떠한 (아이러니)를 아니 느낄 수 없다. 좀더 인간고(人間苦)를 맛본 뒤에 고민하는 고민이 아니면 근대인의 참된 고민이 될 수 없는 것을 알음직한 교양 있는 인사(人士)에게는 좀더 심각한 인생관을 품게 하여야 할 것이다. 수박 겉 핥기의 고민은 한갓 ‘센티멘탈’한 것에 빠져버리고 말 것이다. 이러한 작품에서 무론(無論) 그러한 것을 구하는 것은 무리이다. 표현에 농담음영(濃淡陰影)이 없을 수 없으나 이 작품은 너무나 분명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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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평다사(盲評多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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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1924. 11. 17.
【원문】1924년 11월의 창작(創作) 개평(槪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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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10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