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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5년 5월 창작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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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5
김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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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五月[오월] 創作評[창작평]
 
 
 

1. 批評[비평]이란 것

 
 
3
本面[본면] 상에 2월 창작과 3월 창작에 대하여 월평을 시험한 뒤에, 나는 개인적로 다섯 통의 편지를 받았다. 세 통은 평받은 당사자의 것이요, 두통은 제3자의 것이다. 당사자의 것 중에 두 통은 나무람이요, 나머지 한통은 감사의 편지였다.
 
4
그것을 다시 知不知[지불지]로 분류하자면 5인 중 1인이 일 면식이 있을 뿐 타 4인은 미지인이다. 제3자의 편지에 관하여서는 말할 필요가 없거니와 당사자의 편지에 대해서는 몇 마디 쓸 필요가 있을 줄 안다.
 
5
작가가 비평에 대하여 너무도 신경이 예민하면 안 된다 하는 것이다. 만약 자기의 작품이 자기 양심에 비추어 부끄럼이 없고, 또한 자기의 역량에 자신이 있으면 천만 어의 비평(그것이 호평이건 악평이건)을 묵살하여야 할 것이다. 그만한 도량과 그만한 자신이 있어야 할 것이다.
 
6
비평가의 일언일구에 신경을 날카롭게 할 만치― 즉 비평가의 말에 좌우될 만치 주견이 없고, 자신이 없으면, 애당초에 발표를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7
무론 아직도 습작기에 있는 분들이라, 일언일평이 모두 마음에 걸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을 발표하여도 좋다는 이론은 서지 않는 것이다.
 
8
과거 10년간 조선에 창작평이 없었다. 소주관에 입각한 욕설과 자당 옹호의 無理[무리]가 횡행하였을 뿐이다. 이 사실이 조선 文藝道[문예도] 발달에 얼마나한 저해를 주었는가는 현재의 사실이 증명하는 바이다. 문자의 희롱의 난무, 구부러진 시각에서의 창작 조성 강제와 이런 작품의 성행, 이 때문에 생긴 혼란과 난잡― 이런 등사로 조선문학은 극단의 수난 시대를 겪었다.
 
9
지금 창작평을 시험하는 것은 조선문학을 그런 난잡탕에서 건지는 그 일조라도 될까 하여서이다.
 
10
비평에는 개인적으로의 친불친도 없다. 당도 없다. 거기는 창작의 가치의 고저가 있을 뿐이다.
 
11
2,3 양월의 창작평에 있어서도, 악평을 한 분 가운데도, 나 개인으로 莫分[막분]의 친우도 있고, 사랑하는 후배도 있고, 촉망하던 사람도 있고, 미지인도 있다.
 
12
지인이라도 增値評[증치평]을 하지 않았다. 미지인이라고 減價評[감가평]을 하지 않았다. 동배라고 붓끝을 죽이지 않았다. 후배라고 업수이 여기지 않았다. 나의 양심이 명하는 대로 가장 정직한 評筆[평필]을 가한 뿐이다.
 
13
그러면서 단지 한 가지 근심한 것은 이 지면이 보편적으로 퍼지지 못하는 종이니만치 몇 사람이나 이 글을 볼까 하는 점이었다.
 
14
지금 개인적으로 들어온 5통의 편지와 그간 나의 귀로 직접 들어 온 말들로 미루어, 그래도 창작평은 창작에 뜻 두는 사람이나 혹은 직접 당사자의 눈에는 넉넉히 뜨임을 알았다. 이것으로 나의 근심도 덜어졌다.
 
 
15
이번 5월호 잡지상에 발표된 몇 개 창작에 또 평필을 가해 보고자 한다. 미처 눈에 안 뜨인 것은 제외하거니와, 눈에 뜨인 것에 대해서는, 친불친과 애증을 초월하여 나의 본 바대로 평하는 것이다.
 
 
 

2. 好個[호개] 스케치

 
17
― 朴魯甲氏[박노갑씨]「봄」<中央[중앙]>
 
 
18
거기는 농촌.
 
19
변 노인이라는 노인이 있다. 늙은 내외와 장정 아들의 세 식구다. 아들의 지어 놓는 농사로써 굶으며 먹으며 살아 가는 가족이다.
 
20
거기서 건너다보이는 산 너머에는 금광이 있다. 농촌 장정들도 하나둘 금광으로 달려간다. 금광에 가서 성공한 사람은 아직 하나도 안 나타났지만 그래도 서로 모이면 ‘노다지’ 이야기만 하고, 노다지란 반드시 얻을 수 있는 것이고, 못 얻는 것이 변칙인 듯이 들떠서 야단들이다.
 
21
이 변 노인이라는 사람은 옛날 대과 급제도 못하였고, 참봉 진사 따위도 염도 내지 않고, 시골서 단지 자기의 행실 하나 곧은 것을 자랑삼아 살아오는 사람이다. 머리 싸매고 덤비었으면 자기도 벼 백 섬은 우스웠을 것이지만 그런 것을 눈 거듭떠 보지도 않고 협기 있는 일생을 보냈노라는 것이 이 노인의 늘 하는 자랑이다.
 
22
그런데 그 전에 이 노인에게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다 타계로 가고, 그 자손들은 옛날 은혜를 알아보지 않는다. 이런 일을 겪는 때마다 노인은 자기 경력을 이야기하며 분개한다.
 
23
이 노인의 아들도 행방불명이 된다. 마누라를 내보내 알아보니까, 그 아들이 어느덧 보리밭을 영삼이(이전 노인에게 은혜 입은 집 아들)에게 팔아 가지고 노다지 열에 들떠서 달아난 것이었다.
 
24
노인은 자기의 장수를 탄식치 않을 수 없었다.
 
25
―이것이 이 소설의 줄기다.
 
26
조선어에 아직 서투른 점이 보인다.
 
 
27
변 노인은 빨래를 입는 사나이보다 빨래를 걷어잡는 여인의 심정이 더욱 잘고 조밀한 것을 감탄한다는 것보다 지난 밤 새도록 걱정을 같이 하던 하나인 동무로서는 잠깐 새일망정 크나큰 걱정을 놓고 적은 걱정에 한만히 취한 것이 아예 마땅치 않은 것처럼 보였다.
 
 
28
한 개 ‘센텐스’ 가 이렇듯 기다랗기 때문에 문맥을 알아보기 힘든 곳이 여러 군데 있다. 조선어에 좀더 유의할 필요가 있다.
 
29
그 밖에는 국소적으로 미흡한 데는 몇 군데 있으나 대체로 보아 큰 결점이 적은 자다.
 
30
절실하게까지는 나타나지 못했지만 노인의 적막한 심경과 허세도 무던히 나타났다.
 
31
지금 젊은이들에게 ‘자기가 어찌하여 부자가 못 되었는가’를 알리고 싶어하는 심리도 수긍할 수 있다.
 
32
단 한 막이나, 변 노인이 자기 집 방 안에 앉아서 멀리 울리는 남포소리를 듣는 곳에서 출발한 이 소설은, 그냥 그 변 노인이 그 자리에 앉아서 마누라를 아들 행방 알아보려 내보냈다가 그 회보를 듣는 곳까지로서 막을 닫친다.
 
33
그러면서도 비교적 무난히 한 개 이야기의 줄기를 致謝[치사]한다.
 
34
好個[호개]스케치― 위에도 말하였거니와 조선어 구사에 좀더 연구를 쌓기를 바라는 배다.
 
 
 

3. 老農[노농]의 新派劇[신파극]

 
36
― 崔仁後氏作[최인후씨작]「상투」
 
 
37
거기는 과장과 부자연이 連出[연출]한다.
 
38
김 첨지라는 머슴이(그는 직하고 부지런한 사람― 그의 자랑거리는 머리 위에 있는 커다란 상투) 어떤 날 장거리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면사무소 앞에서 붙들려서 상투를 잘리었다.
 
39
이 작자에게 주의해야 할 것은 작자 자신부터가 흥분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이 상투를 잘리는 대목서부터 작자는 좀더 차근차근히 김 첨지의 분노를 그릴 필요가 있는데 작자가 김 첨지보다 더 흥분하여, 김 첨지로 하여금 부자연한 분노에 잠기게 한 점이 눈에 뜨인다.
 
40
작자는 김 첨지가 상투를 자랑한 원인을 이렇다 저렇다 여러 말로 설명(안해의 추억이거니 어쩌거니)하는 모양이지만 이런 극적 공상적 추억부터가 김 첨지에게는 부자연하다. 이런 추억은 머리에 ‘포마드’를 바르고 궐련을 빠는 사람에게로 내어주고 말아야 할 것이다.
 
41
이렇게 상투를 잘린 김 첨지는 그 뒤부터는 밖에 나다니기도 부끄러워서 주인집에 박혀 신만 삼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피하여야 부득불 밖에 나가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으니 즉 주인집에서 갈이를 할 날이 이르렀다. 그는 그 날 하릴없이 머리에다 수건을 둘러서 머리 깎인 것을 감추고 밭에 나갔다.
 
42
그런데 그 동이 젊은이로서 천길이라는 장난꾼이 이 날 김 첨지가 너무도 머리의 수건을 건사하는 것을 보고 장난삼아 수건을 벗겼다.
 
43
상투를 늘 자랑하던 김 첨지의 알머리가 나타났다. 농군들은 모두 웃어 주었다.
 
44
그 날 김 첨지의 종적이 없어졌다. 그 뒤 3,4년간 김 첨지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다시 보이지 않았다. 동리에서도 거진 잊었다. 단지 그 날 수건을 벗긴 천길이나 자기 양심상 가책으로 겨우 기억하고 있을 뿐.
 
45
이리하여 몇 해 후, 김 첨지가 이 동리에 다시 나타났다. 보니 그때 잘리었던 상투가 또 다시 자라서 머리 위에 춤추고 있었다.
 
46
즉, 김 첨지는 그때 웃기운 것이 너무도 분하여 이 복수를 하고자 몇해간 유리걸식을 하면서 상투를 도로 길러 가지고 이 동리로 돌아온 것이다. 돌아와서는, 천길이의 간호를 받으면서 죽었다(걸식중 죽게 쇠약한 것이다).
 
47
여기서 김 첨지는 소규모의 몽테크리스트 백작이 되어 버렸다. 김 첨지와 같은 인물이 이런 극적 報讐[보수]를 하기 위하여 수년간을 漂泊乞食[표박걸식]을 하고 또는 돌아와서 천길이를 보고 수년 전 천길이가 자기를 비웃은 꼭 그와 같은 음조로 핫핫핫 웃어 주고 이런 극을 연할 수 있을까.
 
48
이 작자에게서 볼 점은 문장이다. 문장이라야 명문이라든가 그런 의미가 아니라, 신인의 글은 그 십중팔구가 문맥을 알아볼 수가 없는데 이 作[작]은 의미는 통할 수 있다 하는 정도이다.
 
49
인물과 성격에 더 많은 연구를 쌓아야 할 것이다. 인물과 성격 관계에 좀 더 유의하였더면, 김 첨지로 하여금 이런 신파극은 연케 하지 않았을 것이다.
 
 
 

4. 愚作三四[우작삼사]

 
51
― 洪淳哲 氏 作[홍순철 씨 작]「逆境[역경]에 피는 꽃」
 
 
52
이것은 신문 삼면 기사이지 소설이라 볼 것이 아니다. 당선 소설이라는 冠稱[관칭]이 붙었으니 그만한 핸디캡을 붙여야겠지만, 그리고도 역시 신문 삼면 기사로밖에는 볼 수 없다. 이런 너무도 흔하고 평범한 사실을 소설화하려거든 창녀의 비참한 생활에 좀더 박진력 있는 붓을 가하여야 할 것인데, 그 모든 것을 단지 신문 기사식으로 넘기고 말았는지라, 한 개 기사로 되어 버렸다. 더우기 아무러한 ‘플랜’ 도 없이 두 창녀가 약소한 금전을 지닌 채 탈주를 하였으니, 그들은 어디서 반드시 도로 붙들려 올 것이다.
 
53
옛날 좌경 소설들이 모두 방화나 살인으로 끝을 맺고, 이로써 전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듯이 그 뒤를 돌보지 않은 것과 同曲[동곡]으로 탈출로 끝난 이 소설은, 단지 한 개 신문 기사다.
 
54
‘가슴을 오려 내는 듯한 설움이 북받쳐 어떤 때엔 차라리 죽고 말겠다는 결심을 하고 싶음에 조롱받기도 하였다.’ 이런 불가해의 조선어도 삼갈 것이다.
 
 
55
― 「病某[병모]를 위하야」朴老壽 氏 作 [박노수 씨 작]
 
 
56
위의 「역경에 피는 꽃」과 함께 당선작이라는 관칭이 붙어 있느니만치 전자에 지지 않는 개념적 이야기다.
 
57
한 청년이 형사의 눈을 피하기 위하여 집을 뛰쳐나간다. 그 때문에 그 청년의 어머니는 병상에 신음한다. 청년의 친구가 와서 병인을 간호한다. 그러는데 어떤 날 청년이 갑자기 형사의 감시의 눈을 피하여 잠시 어머니를 보러 왔다.
 
58
이 극적 씬에 있어서도, 독자의 가슴에 찔리는 일구의 묘사도 없다. 4頁[혈] 반의 쓸데없는 글자를 지면상에 늘어 놓은 뿐이다. 맨 종절,
 
 
59
그 후 상수(主人公[주인공]) 어머니는 병도 나아서 집을 팔아 가지고 어디로 갔는지 멀리 가 버리고 말았다.
 
 
60
무슨 암시를 주는 듯하고도 아무리 생각하여도 아무 의미도 발견할 수 없는 句[구]이다.
 
 
61
― 「가난뱅이와 미친 女子[여자]」 李學仁 氏 作 [이학인 씨 작]
 
 
62
이것은 당선 소설이 아니다. 대체 당선 소설이라 하는 것은 레벨에 있어서 본격적 작품보다 좀 떨어지는 것이 예사다. 그런데 이 <藝術[예술]>지에 있어서는 이 「가난뱅이와 광녀」나 당선작이나 모두 같은 레벨의 것이다.
 
63
이 소설 내용은 어수선한 꿈 이야기다. 꿈이라 무론 통일이 있을 까닭이 없고, 순서가 있을 까닭이 없다. 그 꿈 이야기를 그대로 적었다는 것이 이 소설이라 무론 부자연할 것이고, 통일 없을 것이고, 또한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할 것이다.
 
64
소설을 써 놓고 보니 너무도 어수선하고 꿈 이야기 같으니까 할 수 없이 ‘이런 꿈을 꾸었다’ 고 돌려 버렸는지 혹은 본시의 계획이 꿈 이야기를 쓰려 하였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이런 아무러한 체계도 갖추지 못한 꿈 이야기를 써 놓고, 그 위에 ‘소설’ 이라는 관칭을 올려 놓은 대담성에는 놀랄 따름이다.
 
 
 

5. 成功[성공] 못한 作品[작품]

 
66
― 安懷南 氏[안회남 씨] 「黃金[황금]과 薔薇[장미]
 
 
67
이 소설은 자초지종으로 완연히 한 개 신파극이다.
 
68
등장하는 수개 인물.
 
69
대길이. 부자집 맏아들로 호색한이며, 그 중에서도 ‘숍걸’ 이며 ‘버스걸’ 등을 따라다니는 인물.
 
70
대용이. 그의 동생이나 또한 형과는 정반대의 모범 청년이다.
 
71
대길의 본처. 이 역시 무대식 얌전한 며느리다.
 
72
봉자. 버스 걸이고 허영심 많은 미인이고, 뒤에 대길이의 첩이 된다.
 
73
경애. ‘숍걸’ 이요, 대용이의 애인이며, 이 또한 무대식 얌전한 처녀다.
 
74
대길 형제의 부모. 富翁[부옹]이며 완고한 사람이다.
 
75
이 몇 인물이 모두 일률로 新派正劇[신파정극]에 등장하는 전형적 인물이다.
 
76
이 몇 인물이 등장하여 꾸며 나가는 사건은 완연 한 개의 연극이다. 연애의 장면, 창경원의 장면은 둘째 두고, 말미에 가서 대용이가 자기의 형 대길이를 호의로써 따귀를 때리는 장면이며, 동생에게 매맞은 부랑아 대길이가, 거기서 흔연히 회개를 하여 그의 30여 년의 버릇을 일석에 고친 곳이며, 최후 장인 대단원에서, 회개한 대길이와 15년 만에 남편을 다시 본 그의 안해와 모범 청년 대용이와 부모의 반대를 이기고 애인과 결혼한 경애의 4인이 창경원에 같이 가서 “하늘을 한참 쳐다보구 있으면 물처럼 새파란 하늘이 얼굴 위로 쏟아질 것 같애요” 하며 두 쌍 부부의 단락으로서 막을 닫치는 이 이야기는 某某[모모] 극단의 상연극에서나 볼 수 있을 배다.
 
77
“아주머니에게 그런 비애를 주고, 그런 고생을 주고, 청춘을 헛되이 버리게 한 원수를 영원히 즐겁게 만들기 위해서 아주머니는 영원히 그의 은인이 되어 그의 아버지 어머니를 보양해 주고, 그의 집과 재산을 보살펴 주고, 그의 자식을 길러 주시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까.”
 
78
(대용이가 형을 책망하는 장면)
 
 
79
“경애 씨는 저의 무한 사랑하는 애인이십니다.(중략) 무론 사랑은 인생의 꽃이라고 한 사람의 말도 정말은 사랑은 사랑이다, 그런데 그 사랑인 그것이 인생에게 있어서 아름다운 꽃이라 한 의미겠죠. 그러나 나는 꽃이라고 한 이 꽃에 불만입니다. 사랑은 인생의 꽃이 아니라, 꽃이기도 한 것입니다.”
 
80
(대용과 경애의 연애 장면)
 
 
81
이러한 부자연한 대화는 연극의 대목에나 있을 것이다.
 
82
그리고 또 문장에 관하여 운운하는 것은 좀 지엽인 감이 없지 않으나 조사를 뽑아 먹은 문장을 즐겨 쓰는 모양인데, 이 점도 조선어에 좀더 통달하기 전에 쓰는 것은 어색해 보인다. 이 작자의 오래간만에 분한 작품이지만 이 작은 전연 실패이다.
 
 
83
이 밖에 <신가정>에 李無影[이무영] 씨의 것이 있고, 중앙일보에는 김씨의 작품이 있고, <조선문단>에도 있는 모양이나 지정 매수 관계로 이만 그친다.
 
 
84
(<每日申報[매일신보]>, 1935.5.16, 18, 19, 21, 22)
【원문】1935년 5월 창작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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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5년 5월 창작평 [제목]
 
  김동인(金東仁) [저자]
 
  매일 신보(每日申報) [출처]
 
  1935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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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10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