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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예이론(文藝理論)으로서의 신(新) 휴머니즘 론(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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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4
임화
1
文藝理論[문예이론]으로서의 新[신]휴머니즘論[론]
 
2
── 文藝學[문예학]의 基礎問題[기초문제]에 비쳐 본 ──
 
 
3
휴머니즘론이 문예 이론상에 제시한 문제는 아직 단편적인 것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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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論者[논자]들이 浩翰[호한]한 문예 논문을 발표하지 않았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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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人間中心[인간중심] 文學論[문학론]이란 제아무리 광범한 한도로 발전시켜도 문학의 역사적 발전 법칙이나 창작 과정의 구체성을 해명할 자격을 못가진 일반론이며 부분적, 특수적 요인을 전체의 본질로 과장하는데 불과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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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휴머니즘 文藝論[문예론]의 추상성, 단편성은 生得的[생득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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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는 차차로 이야기하거니와 먼저 여태까지 발표된 그들의 諸見解[제견해]에서도 우리는 文藝理論[문예이론]으로서의 휴머니즘을 음미하기에 상당한 자료를 발견할 수 있음을 미리 말해 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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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鐵氏[백철씨]가 인간 중심이란 입장에서 草[초]한 일련의 논문, 더우기 個性[개성]과 普遍性論[보편성론] 등은 好個[호개]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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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는 상당히 책임 있는 방법으로 신휴머니즘 문예론의 이론적 진가를 음미할 수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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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듯 문학의 궁극 목적이 인간형을 추구하는데 있는지 아닌지는 별 문제로 하고 ── 金午星[김오성]이란 이는 철학의 임무도 여기 있다 하거니와 ── 此所謂[차소위] 中心命題[중심명제]가 존립된 문학은 인간의 것이란 견해로부터 음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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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인간사회의 모든 산물과 함께 문학은 태초로부터 확실히 개나 고양이의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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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문학이 개나 고양이의 것이 아니란 말은 법률이 말이나 소의 것이 아니란 말과 같이 문학의 특성을 설명하지 못함은 물론 그 속에서 白氏[백씨] 등이 욕망하는 인간 탐구론이란 것이 나오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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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인간의 문학 가운데서도 아리스토텔레스, 호라티우스로부터 보봘로의 古典主義[고전주의] 美學[미학], 룻소 디드로의 啓蒙主義[계몽주의] 美學[미학], 칸트, 쉘러의 形式主義[형식주의] 美學[미학], 테에느 구요의 社會學的[사회학적] 美學[미학] 내지 마르크스, 엥겔스의 社會主義[사회주의] 美學[미학] 나치스의 國民文藝學[국민문예학] 등에 이르는 百[백]으로 헤일 수 있는 文藝[문예] 理論[이론]이 산출되지 않았는가?
 
14
이 사실은 文藝理論[문예이론]이란것이, 그 이론에 의거한 문학의 내적 특질로부터 형성된 것이고 문학이 시대나 사회생활의 차이를 명확히 반영한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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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문학이 인간의 것이란 말은 문학이 법률이나 철학으로부터 구별되는 특질을 설명하지 못할 뿐더러 그곳에서 특정의 文藝理論[문예이론]을 抽出[추출]할 수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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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白氏[백씨]가 보다 구체적 조건이라 제시하는 문학이 인간의 意識上[의식상] 産物[산물]이라는 논거는 좀더 사태를 상세하게 전개시키느냐 하면 그렇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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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신문화 혹은 관념형태라고 말하는 철학, 자연과학, 법률학 내지는 종교에 이르기까지 모두 인간의 意識上[의식상] 所産[소산]이 아닌가?
 
18
그러나 다 같은 의식의 소산일지라도 문학과 철학과 과학은 다르지 않은가? 물론이다. 그러나 인간 의식의 산물인 점에서 문학과 다른 문화 형태는 조금도 다르지 않다.
 
19
의식을 가지고 무엇을 창조한다는 조건은 의식을 안 가진 동물의 생활과 인간의 생활을 구별하는 표준이 될 뿐이다.
 
20
그러므로 문학이 의식의 소산이란 단순한 이유로부터는 白氏[백씨] 등이 강조하려는 문학의 개성적 특질도 직접 나오지 않는다.
 
21
철학, 물리학, 수학, 동식물학 등은 똑같이 인간 의식의 소산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이른바 개성적이 아니다.
 
22
唯物史觀[유물사관], 不確定性[불확정성] 原理[원리], 確率論[확률론], 進化法則[진화법칙], 遺傳原理[유전원리] 등에서 마르크스, 하이젠벅, 라르프, 다윈, 멘델 등의 개성을 찾고, 그들의 개성 위에서 학설의 진가를 묻는 이가 있다면 세상은 그의 정신 상태를 의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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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이란 것은 항상 개인의 두뇌 구조 중의 現象[현상]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으로 사회적인 것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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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의식이란 로빈손크루소로 탄생한 인간의 의식이 아닌 한 사회적으로 생활하는 인간의 의식이며, 그 가운데는 개인까지를 포함한 사회적 존재가 투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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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白氏[백씨]에 의하면 문학이 유독히 개성적인 이유는 그것이 전혀 타인의 협력 간섭없이 작가 개인의 被造物[피조물]이며 온전히 작가의 성격을 표현하는 때문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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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생산 형태와 내용 등 두개의 의미에서 문학을 작가 개인의 것이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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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두가지 조건이란 실상, 하등 새로운 견해도 아니고, 白氏[백씨]의 創見[창견]도 아니며 귀가 아프도록 들어 온 케케묵은 관념적 예술론의 파편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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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작품이 개인의 의식, 세계 감각, 영감 등의 표현이라든가 예술은 작가의 내적 생활로만 결정된다든가 하는 류의 주장과 一毫[일호]도 다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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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생산의 개인적 형태가 작품의 본질을 결정하는가를 음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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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知[주지]와 같이 우리가 읽고 있는 대부분의 문예작품은 개개의 작가 개인의 창조적 결과이다.
 
31
그러나 古代文學[고대문학]이나 口碑文學[구비문학]의 영역에선 이 사실은 부정된다.
 
32
희랍 신화, 각 민족의 전설, 국민 서사시 등의 작자는 특정한 개인이 아니고 대중 일반이다.
 
33
우리 조선에 전래하는 수천의 민요,‘성아성아 사촌성아!’라든가,‘아리랑’‘경복궁타령’등도 다 民衆[민중] 자신의 所作[소작]이다.
 
34
그 속에는 고대민족의 사회생활, 사회 감정이 표현되어 있을 뿐이다. 그것들은 훌륭히 개성화 된 인물을 통하여 예술적으로 精製[정제]되어 있다.
 
35
즉 우리는 古代文學[고대문학] 가운데서 群團[군단]의 생활 감정뿐 아니라 그때 생활하던 각종 개인의 姿態[자태]를 발견할 수가 있다.
 
36
조선민요에서도 우리는 이와 똑같은 것을 엿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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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古代文學[고대문학]이나, 口碑文學[구비문학]의 예술성 위에는 작품 생산의 개인적 형태란 사실이 영향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38
그러면 분명히 알 수 있는 개인에 의하여 창작된 문학 작품에는 이상의 문학과 다른 이론, 예를 들면 개성이 일체을 결정한다는 법칙이 지배하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39
무엇보다 문학이 개인의 私事[사사]가 아님은 다음과 같은 비근한 사례에서도 명료히 알 수가 있다.
 
40
발자크와 졸라는 명확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그것을 물론 발자크와 졸라 개인의 차이라고 가정하여도 좋다.
 
41
그러나 단테와 발자크 혹은 단테와 졸라의 차이에 비하면 졸라와 발자크의 차이는 실로 근소하지 않은가? 이 이유는 발자크와 졸라에 비하여 단테 개인이 대단히 다른 때문인가 하면 누구나 알듯 그렇지 않다. 그들이 생활하고 창작한 시대가 대단히 달렀던 때문이다.
 
42
시대란 무엇인가? 시대는 각각 그 사회적 내용에 따라 구별되는 것이며, 사회체제란 생산관계, 人間群[인간군]의 계급적 구성 내용에 의존한다 함은 白氏[백씨]도 알듯한 상식이다.
 
43
그러나 이 상식이란 것이 그 実[실]은 대단히 귀중한 것으로 각 작가 개인간의 차이가 그들이 살던 시대, 사회, 계급적 소속의 차이에 비하면 종속적이라는 불가사의한 내용을 해명해 준다.
 
44
그러면 발자크와 졸라의 차이, 즉 우리가 부르되 미미한 차이라는 것은 무엇으로 究明[구명]될 것인가?
 
45
그것은 단순한 개인적 차이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발자크와 졸라는 불란서 자본주의가 통과한 각각 다른 역사적 단계를 반영하고 있다.
 
46
발자크가 최후 계단의 상업 부르조아적 예술가라면 졸라는 최초 계단의 산업 자본주의적 예술가이었다.
 
47
그러므로‘人間喜劇[인간희극]’이 창조한 문학적 형상이나 내용은‘루공마카르 叢書[총서]’의 그것과 현저히 다르다.
 
48
또한 같은 불란서 리얼리즘의 창시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산업 자본주의 가운데서 보는 바와 같은 대규모의 계급적 모순이 아직 발전되지 않은 상업 자본주의의 예술, 발자크의 리얼리즘은 졸라의 자연주의에 비하여 훨씬 全幅的[전폭적]이었다.
 
49
그러나 경향과 형식에 있어 두사람이 그와 같이 근사한 작가임은 그들이 다 같은 市民社會[시민사회] 正常期[정상기]를 대표하는 예술가인 때문이다.
 
50
그러면 문학에 있어 개인의 특성, 혹은 資質[자질]의 차이란 하등의 역할을 하지 않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51
같은 소비에트 작가 이바노프와 파제프, 혹은 팡표로프와 솔로프의 사이에는 명확한 차이가 있지 않은가.
 
52
물론 있다. 그러나 위의 네 소비에트 작가 간의 차이가 아무리 크다 해도 이바노프와 파제프는 시민전쟁 시대 작가로 近似[근사]하며, 팡표로프와 솔로프는 농업사회화 시대작가로 서로 酷似[혹사]함은 周知[주지]의 일이다.
 
53
따라서 이바노프와 솔로프, 파제프와 팡표로프의 차이는 솔로프와 팡표로프, 이바노프와 파제프와의 차이보다 큰 것이었다.
 
54
그러면 작가의 개성이란 어떻게 표현되는가?
 
55
그것은 궁극에 있어 시대, 사회, 계급 혹은 그 사회, 계급이 타개하는 현실 계단의 특수한 반영 가운데 표현된다.
 
56
따라서 문학 작품의 起源[기원]은 사회적인 곳에 있으며, 현실의 예술적 파악 표현에 작가의 개성이 나타난다면 한개 종속적 계기에 불과한 것이다. 즉 예술이 일반 특성으로부터 오는 결과이지 그 본질은 아니다.
 
57
그러나 이런 종속적 계기로서의 개성일지라도 작가 개인의 소질, 재능에 따라 잘 표현하고 못하는 차이는 있지 않을까.
 
58
물론 있다. 그러나 소질, 재능은 개성 표현의 요인일 뿐 아니라 작품 전체를 창조하는 일반 능력이다.
 
59
그렇지만 문학은 천재의 純然[순연]한 개인적 소산이라는 롬브로소(이탈리아 범죄학자로 범죄 인류학을 창시) 流[류]의「天才論[천재론]」이 정당하냐 하면 그렇지 않은 것이다.
 
60
천재란 분명히 생리적 기득물로서 개인 가운데 내재하는 것이나 필요한 사회 문화적 환경이 부여되지 않으면 현실화 되지 않는다.
 
61
괴테가 천재일지라도 그가 貧寒[빈한] 無識[무식]한 독일 농가에 출생하였다면 다분히 영리한 농부로 일생을 마쳤을 것이며 셰익스피어일지라도 르네상스 문화의 혁혁한 분위기 중에 나지 않고 암흑한 中世[중세] 文化[문화] 가운데 生誕[생탄]하였다면 잘해야 궁정 희극 배우자나 騎士[기사]소설 작자가 되었을 것이다.
 
62
그러므로 천재란 大文學[대문학]을 창조할 자연적 가능성에 불과하고 그것을 실현시키는 것은 역시 사회적, 문화적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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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才[천재]가 이렇게 無數[무수]한 天才[천재]들이 이름도 없이 滅亡[멸망]해 간다.’고「주검의 집 記錄[기록]」가운데서 절규한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은 이러한 사실을 증명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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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천재는 고대 희랍사회, 르네상스期[기] 등에 출현하고, 中世紀[중세기], 市民社會[시민사회] 말기에는 거대한 天才[천재]가 출현하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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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才[천재] 形成[형성]의 이론은 심히 흥미 있는 것이나, 후일을 기하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작가 개인을 천재라고 하든지 혹은 白氏[백씨]와 같이‘中心性格[중심성격]’이라고 개칭하든지 간에 문학이 작가 개인의 私事[사사]가 아닌 것만을 지적해 둔다.
 
66
그러면 문학은 누구의 것인가?
 
67
一言[일언]으로 말하면 시대와 사회, 계급의 公的[공적] 재산이다.
 
68
단순히 개인이 그의 환경을 떠나 살 수 없다는 상식보다도 위대한 개인은 사회 현실과 자기 계급의 諸欲求[제욕구]를 집중적으로 대표하는 때문이다.
 
69
이곳에 大作家[대작가]가 凡庸[범용]한 作家[작가], 俗人[속인]들과 구별되는 이유가 있다.
 
70
白鐵氏[백철씨]의 소위 중심 성격의 내용인‘육체적, 유한적인 인간이 그의 천부의 소질의 토대 위에서 자신이 생장한 전생애의 온갖 교양과 경험의 축적’가운데 시대적, 사회적인 것은 대량적으로 흡취된다.
 
71
그것으로 형성된‘全人格[전인격]의 집중적 표현’이 정치가로서 나타날 때 솔로몬, 시저, 나폴레옹이 된다.
 
72
그들 한사람의 생애를 보는 것으로 우리는 능히 희랍, 로마, 불란서 혁명시대의 태반의 내용을 엿볼 수가 있다.
 
73
그와 같이 보카치오, 세르반테스, 톨스토이 등의 작품에서 우리는 르네상스기의 이태리 문학, 초기 자본주의 시대의 서반아 문학, 19세기 중엽의 노서아 문학 일반을 이해할 수 있을 뿐더러, 그 시대의 사회 상태, 각 계급, 개인들의 세부에 이르기까지를 파노라마처럼 이해할 수가 있다.
 
74
작가가 위대하면 위대할수록 개성적인 것에 비하여, 역사적 사회적인 것이 우세한 것으로 白氏[백씨]가 大作家[대작가]일수록 개성적이라 말한 것은 하나의 독단이다.
 
75
오직 일부러라도 작가의 개성이란 속에 문제를 틀어 넣는다면 그 개성은 어떤 개성보다도 시대성과 사회성을 풍부히 가졌다는 의미에서 위대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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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凡庸[범용]한 개인이 단지 個性的[개성적]인 개성에 불과한 대신 비범한 개인은 보편적인 개성이었다는 말인가 한다. 그러므로 문학의 가치란 자기 표현의 강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 진실의 표현에 있다.
 
77
따라서 과학적 社會史[사회사]의 시대 구분 표준이 고대사회, 봉건사회, 시민사회에 있고, 某某[모모] 王朝[왕조]나 王候[왕후] 영웅의 消長[소장] 盛衰[성쇠]에 있지 않은 것처럼 文學史[문학사]는 각 작가의 系譜[계보] 작성에 始終[시종]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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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간에 유포된 通俗文學史[통속문학사]를 보아도 이점은 자명하다. 아무리 관념적인 책이라도 고전주의, 사실주의, 낭만주의, 자연주의 등의 일반 개념을 차용하고 있지 않은가?
 
79
이점 白鐵氏[백철씨]가 풍부한‘독서의 지식’과 刻苦[각고]의 연구 결과 文學史[문학사]를 세르반테스적 성격, 셰익스피어적 성격, 괴테적 성격, 기타 디킨스, 발자크, 도스토예프스키 등등 일련의 성격 계보로 재편성한 공로는 많다 아니할 수 없다.
 
80
이 史觀[사관]의 방법은 확실히 어느 한사람도 시험하지 못한 독창과 천재의 소산이리라. 그러나 유감인 것은 보통학교의 역사책에 밖에 이런 계보적 방법은 통용되지 않는다.
 
81
적어도 大人用[대인용] 역사 교과서에서는 一作家[일작가]와 一潮流[일조류]의 문학으로 성립시킨 조건이 무엇인가가 한번은 탐구되는 법이다.
 
82
그래서 테느流[류]의 사회와 자연의 환경론도 나오는 것이고, 슈필하겐 등의 比較史的[비교사적] 방법 기타도 만들어진 것이며, 白鐵氏[백철씨]와 같은 主觀主義者[주관주의자]도 좀 學的[학적]인 외모를 띠일려면 립프스와 같은 심리적 美學[미학]이나 작가의 伝記[전기]를 조사하는 文獻學[문헌학]의 방법도 생기는 것이다.
 
83
그러나 작가의 개성이나 예술 작품의 전 특징을 지배하는 것은 俗流的[속류적]으로 해석된 사회·자연·환경도 아니고, 다른 작품의 영향의 교류도 아니며 더우기 작가의 성격 심리도 아니다.
 
84
오직 작가라는 개인 가운데 전형적으로 体現[체현]된 사회계급이며 그 계급의 눈으로 관찰된 객관적 현실과 그것을 통하여 자기들의 감정·이상·욕구 등의 표현이 문예 작품을 형성하는 것이다.
 
85
따라서 모든 문예 작품은 다소간 객관적 현실을 반영하되 자기의 계급적 존재의 제한을 받으면서 조건적으로 반영한다.
 
86
우리는 이 조건성이 강한 코체의 작품이나, 엣세 전편을 통하여 자기 이외의 것을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몽테뉴에서도 당시의 사회·인간·생활의 풍부한 자태를 엿보는 것이다.
 
87
그러므로 문예작품은 그 작가뿐만 아니라, 그 창작을 낳은 사회 상태와 계급과 의식을 인식하는데 항상 객관적인 의의를 가지고 있다.
 
88
이것이 문학의 객관성이며 따라서 그 작품이 풍부한 현실을 표현하고 작가의 계급성이 현실 반영을 덜 제한하면 덜 제한할수록 그 작품의 가치는 높아진다.
 
89
이곳에서 우리는 비로소 문학이 철학, 과학 등과 같이 객관적 현실 혹은 진리를 인식 표현하는 이데올로기적 상층 건축의 일부분이란 견해에 도달한다.
 
90
철학, 자연과학 등의 일반과학도 문학과 같이 객관적 현실과 진리를 반영하되 작자와 생활한 사회, 소속된 계급의 필요나 要求[요구] 등의 제한 가운데 그것을 반영한다.
 
91
그러므로 학자들은 인간에게 존재한 인식 표현의 수단을 예술과 과학, 두개의 방법 내지 성격으로 구분한다.
 
92
그러면 왜 인간은 특히 두개의 인식과 표현의 방법을 필요로 하느냐 하면 인간은 사색하고 또한 느끼는 능력을 자신의 생물 유기체 가운데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93
누시노프에 의하면 소위 상층 건축이 예술, 과학, 정치 등의 各異[각이]한 상태로 분열됨은 각 이데올로기 양식만의 고유한 내용때문이 아니라, 사회생활의 一面[일면]이 예술 가운데, 다른 면이 정치 가운데, 第三[제삼]의 면은 철학 가운데, 가장 완전히 開示[개시]되기 때문이며 그것은 생활의 다양성, 복잡성의 결과라 한다.
 
94
그러므로 예술과 과학은 절대적으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구별될 따름이고, 그 차이는 형식에 나타나 있다.
 
95
이것은 결코 우리의 創見[창견]이 아니라 헤겔에서 비롯하고, 마르크스, 엥겔스를 통하여 발전된 일반적 견해에 불과하다.
 
96
다시 누시노프에 의하면 과학은 온전히라고는 할 수 없어도 특히 사색하는 인간 능력의 표현이고, 예술은 온전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특히 情感[정감]하는 인간 능력의 표현이라 한다.
 
97
이곳에서 예술가와 과학자의 개성적 차이를 암시 받음과 동시에 우리는 예술적 방법의 특수성과 한계에 대한 일정한 개념을 얻는다. 즉 과학이 주로 개념, 논리, 법칙에 의한 思惟[사유]인 대신 문학은 주로 形象[형상]에 의한 思惟[사유]이다.
 
 
98
예술을 과학으로부터 구별하는 형식적 계기가 形象[형상]이라면 形象性[형상성]은 자연히 예술의 본질적 특성이 된다.
 
99
그렇다고 形象性[형상성]이 문학의 유일한 최종의 근원이 되느냐 하면 이런 견해는 문학이 감정만을 표현한다는 소박한 이론과 함께 誤謬[오류]이다.
 
100
上述[상술]과 같이 문학은 과학과 같이 공통한 일반 내용을 가졌을 뿐 아니라, 形象性[형상성]은 그 내용을 완전히 표현하는 데서 비로소 본래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101
관념론적 문학자들 ── 白氏[백씨]까지를 포함하여서 ── 은 항상 이 형식을 내용에까지 誇張[과장]하고 내용을 부정하여 버림으로 문학의 근원을 形象性[형상성]에서 찾는다.
 
102
그러면 形象[형상], 혹은 形象性[형상성]이란 무엇인가? 이 形象[형상]은 문학에 있어서 개성화된 인간이며 다른 예술에 있어서는 일반적 表象性[표상성]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白氏[백씨]가 저와 같이 發憤忘食[발분망식]하며 강조하고, 문학의 모든 문제를 개성이란 一色[일색]으로 塗抹[도말]한 궁극 원인에 봉착한 셈이다.
 
103
즉 白氏[백씨]는 前項[전항]에서 말한 文學[문학] 生産[생산]의 한 종속적 계기인 작가 개성을 문학 전체의 특성으로 확대한 것과 같이 이곳에서는 形象[형상]의 개성적 특징을 문학의 본질에까지 과장한 것이다.
 
104
이것은 단순한 이론상의 혼란 착오일 뿐 아니라 白氏[백씨]에게 있어서는 문학을 개인의 私事[사사]로, 자기 표현물로 국한시키려는 주관주의의 위장 도구로 사용되었다.
 
105
白氏[백씨]의 문학론은 그런 때문에 문학사나 창작과정의 과학적 분석 概括[개괄]에서 나온 결과도 아니며 더우기 문학사의 발전, 창작과정을 현실적으로 설명하는 진정한 이론이 아니다.
 
106
자기의 임의의 주장을 정당화 하기 위하여 문학사와 창작과정에서 독립하여 또는 일부러 왜곡하고 조작하는 소박한 便宜主義[편의주의]에 불과하다.
 
107
소위 휴머니즘 文學論[문학론]의 抽象性[추상성], 斷片性[단편성]이 生得的[생득적]이라 함은 이런 의미에서이다.
 
108
문학의 독자적 세계인 形象理論[형상이론]에 가면 이 見地[견지]의 허망함은 일층 확대된다.
 
109
그러면 어째서 문학은 형상을 통하여서만 성립되며 문학의 고유한 形象性[형상성]은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예술이 현실을 파악하는 방법의 고유성에 기인한다.
 
110
‘과학은 현실의 다양함을 파악할 때 현실의 개별적 事象[사상]을 抽象[추상]하여 그것을 일반화 하나 예술은 반대로 현실의 개별적 사상을 추상하지 않고 個物[개물]을 오히려 가장 개별적인 것으로 파악한다.’(甘粕石介[감박석개])
 
111
그러나 개별적 事象[사상]을 個物[개물]로서 파악한다 함은 결코 어떤 인간이면 인간, 동물이면 동물을 그 개체의 형체대로 寫眞的[사진적]으로 재현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112
‘일반적인 것이 부분적인 것을, 合理的[합리적]인 것이 우연적인 것을, 종합적인 것이 半端[반단]의 것을, 총계적인 것이 단일한 것을 지배하고 있는데 과학의 抽象性[추상성]이 있다.
 
113
문학의 예술성과 그 거대한 意義[의의]는 같은 조건으로 결정되나 과학과 달라 문학은 총체적인 것을 통하여서가 아니라 個人化[개인화]된 것을 통하여 그 내용을 開示[개시]한다.’(누시노프)
 
114
다시 말하면‘과학이 현실의 감정적인 個別[개별] 現象[현상]을 논리적 일반 형태로 포착하는 대신 예술은 일반적, 필연적인 것을 감정적, 표상적인 형태로 파악한다.’(甘粕石介[감박석개])
 
115
甘粕氏[감박씨]가‘예술은 추상하지 않는다.’고 말한 의미는 예술이 과학처럼 개별 현상을 논리적, 일반적 형태로 파악치 않는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116
따라서 개별화, 개인화라는 것은 主觀主義[주관주의]나 俗流[속류] 寫實主義[사실주의]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한 개성, 개인이 아니라 과학이 논리나 법칙 공식 가운데 종합한 현실 내용을 문학의 방법으로 파악, 표현하는 한개 특수한 형식에 불과하다.
 
117
만일 과학이 一般[일반]만을 표현하고 문학이 個別[개별]만을 표현한다면 인간생활을 보편적 입장에서 취급하는 사회학이나 역사학에 비하여 문학은 一個人[일개인]만을 표현하는 보잘것 없는 물건이 될 것이다.
 
118
이러한 견해는 모두가 인간생활의 진실로부터 먼 妄見[망견]이다.
 
119
사회학이나 역사학이 보편적인 것 가운데 인간생활의 개별적인 것을 표현하는 대신 문학은 개별적인 것 가운데 보편적인 것을 표현할 따름이다.
 
120
진리(혹은 寫實[사실])란 단순히 일반적인 것도 아니며, 단순히 개별적인 것도 아니다. 일반과 개별의 통일이 항상 진리이고 진실이다.
 
121
이런 문학적 진실이 집중적으로 표현된 곳이 바로 인간적 형상이다. 그러므로 문학의 形象[형상]은 임의의 개인을 소박하게 재현한 초상화가 아니라 다수한 同質的[동질적] 人間群[인간군]의 보편성이 개인적 형식 가운데 함축된 성격 타잎이다.
 
122
‘第一流[제일류]의 극작가, 소설가의 손으로 된 위대한 타잎은 동시에 예술 세계에 있어 위대한 개성이라 말할 수 있는 것으로 그것은 심오한 의미에 있어 현실적인 동시에 상징적이다. 文學史上[문학사상]에서 이것들(타잎─ 筆者[필자])이 중요한 의의를 가진 연유는 실로 이 두개의 長所[장소]를 가진 때문이다.’
 
123
이 쿠이요의 말은 白鐵氏流[백철씨류]의‘가장 보편적인 것이 가장 개성적이며 가장 개성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이다.’는 소피스트적 절충론에 비하면 현저히 문제의 본질에 육박하고 있으나 타잎에 있어 보편성의 우위를 정당히 평가하지 못한 결함이 있다.
 
124
성격, 타잎에 있어 보편성은 분명히 개인성을 지배한다.
 
125
그러므로 문학의 성격, 타잎은 과학의 범주, 공식과 같이 현실 인식에 있어 보편적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성격, 타잎에 있어 개인성은 경시되어도 좋으냐 하면 그렇지 않다.
 
126
단지 보편성과 개인성이 각각 정당한 위치에서 이해될 것이 요구될 따름이다.
 
127
여태까지 모든 觀念的[관념적] 文藝論者[문예론자]들은 白氏[백씨]에서와 같이 개인성을 보편성의 우위로 顚倒[전도]하거나 동등의 것으로 절충화하거나 혹은 낭만주의와 같이 필요 이상으로 보편성을 과장하여 이 문제에 정당한 해결을 얻지 못했다. (과거 프로문학도 이 후자의 오류에 빠져 公式主義[공식주의]를 가진 일이 있다.)
 
128
그러나 이 문제야말로 문예이론의 가장 심각한 진수이며 현재 과학적 文藝學[문예학]에서 形象論[형상론]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形象論[형상론]이란 바로 성격과 타잎을 구성하는 보편성과 개인성의 문제, 양자의 상호 관계에 관한 이론이다…….
 
129
성격이나 타잎은 그 내용(보편성)에 있어 모든 同質人[동질인]과 공통되고 그 형식(개인성)에 있어 모든 同質人[동질인]과 구별되나 지배적인 것은 내용(보편성)이라고…….
 
130
여기에 어떤 걸작 중의 주인공으로 노름꾼의 形象[형상]이 있다고 가정하자.
 
131
그 노름꾼은 우선 얼굴, 체구, 어조, 의복, 습성 등등 세부에 있어 어떠한 노름꾼과도 다른 개인적 특성을 가졌어야 한다.
 
132
그러나 그의 사상, 감정, 이상, 최후로 사회적 운명 등에 있어 모든 노름꾼과 공통되어야 한다. 즉 한개 사회적 성격, 타잎으로서의 노름꾼의 의미를 충분히 전형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그 형상은 훌륭한 노름꾼의 보편적 타잎은 아니니까. 그러나 묘사된 노름꾼이 다른 노름꾼 개개인과 구별되는 제반의 세부 특징이라는 것은 아무리 개성적이라 해도 노름꾼 아닌 다른 인간 ── (예를 들면 은행가)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노름꾼적 특성임을 꼭 要[요]한다.
 
133
의복의 예를 든다면 먼저 노름꾼은 연미복이나 씰크햍을 써서는 안된다.
 
134
설사 어떤 實在[실재]한 노름꾼의 한사람이 우연히 연미복이나 씰크햍을 쓴 예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노름꾼의 개성을 표시하는 의복으로 문학 가운데 묘사될 수는 없다. (이 노름꾼은 歐美[구미]의 호화스런 도박사가 아니라 조선 농부 등에서 보는 노름꾼 그것이다.)
 
135
그러므로 묘사된 노름꾼의 여하히 이채 있는 개인적 특성도 甲[갑]이란 노름꾼과 乙[을]이라는 노름꾼과 상대적으로 다를 뿐이지 非[비]노름꾼의 개인적 특성에 비하면 상호 근사하다.
 
136
즉 절대적으로 동일하여 그 개인성은 하나의 노름꾼적 개인성이라야 한다.
 
137
다시 말하면 묘사된‘노름꾼’의 개인성은 모든‘노름꾼’의 공통성이 성격 타잎으로 표현되기 위한 형식이다.
 
138
그러나 이 우스운 것과 같은 형식이 其實[기실]은 사회학적 범주로서의 노름꾼적 개념으로부터 문학적 형상으로서의 노름꾼적 성격, 타잎을 구별하는 본질적 契機[계기]라는 중대한 의의를 갖는다.
 
139
그러므로 개인성은 形象[형상]의 성격성 타잎性[성]과 모순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성격과 타잎 위에 생생한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다.
 
140
우리는 형상적 인물이 그 계층의 공통성 이외에 그의 가장 특징적인 개인성을 체현했을 때 비로소 산 인간처럼 그 형상의 實在性[실재성]에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141
햄릿, 동키호테로부터 오블로모프, 안나 카레리나, 바사로프, 슈센잔, 그란테, 달주프 등이 다 이런 인물이다.
 
142
이러한 의미에서 과거 프로문학의 충분히 개인화 되지 않은 성격, 타잎을 公式主義[공식주의]의 산물이라 비판함은 白鐵氏[백철씨]나 우리나 일반이다.
 
143
그러나 그 가운데서‘개성적이면 개성적일수록 보편성에 도달할 수 있다.’던가‘문학자가 위선 탐구하는 것은 처음에도 개성이요 나중에도 개성이다.’라는 白鐵氏流[백철씨류]의 창백한 절규는 나오지 않는다.
 
144
개인적 특성을 아무리 白氏[백씨]말대로 머리꼭대기로부터 발끝까지 추구해도 성격과 타잎은 되지 않는다.
 
145
개인화의 형식 가운데 보편성의 내용이 유기적으로 통일될 때 문학은 훌륭한 예술적 형상을 창조할 뿐이다.
 
146
이 이론, 개인화 된 보편성, 보편화 된 개인성의 변증법이 개인화의 일면에서 과장될 때 공식주의 비판은 경향문학 否定[부정]으로 轉化[전화]하는 것이다.
 
147
여기에 경향문학의 결함을 지적하는 체하고 뒷손으로 경향문학을 타도하려는 白氏[백씨]의 숨은 손이 나타나는 것이다.
 
 
148
끝으로 形象[형상]의 타잎化[화]는 무엇으로 수행되는가를 해명하여 白氏[백씨]의 이론(?)의 최후의 근거를 폭로하자.
 
149
上述[상술]에도 언급한 것처럼 이미 눈에‘個人[개인]’두자밖에 안 보이는 白鐵氏[백철씨]에 의하면‘문학은 본래 자기 개성에 상응하는 상대적 진리를 탐구하는 것에 불과하다.’
 
150
이른바‘상대적 진리’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되 白氏[백씨]에 의하면 객관적으로는 타당하던 안하던 간에 자기가‘절대와 같이 믿고 과장하고 또 독자에게 절대와 같이 설명시키는’물건일 듯싶다.
 
151
쉽게 말하면 白氏[백씨]가 언제나 高調[고조]하는 것은 작가의 개성 즉 작가의 주관이다.
 
152
이미 귀가 아프게 들은 말이되 문학적 형상의 성격, 타잎이란 과연 純粹[순수]한 主觀[주관]의 所産[소산]인지 보자.
 
153
白氏[백씨]는 개성적인 것은‘문학의 성격 ── (白氏[백씨]는 성격이란 말을 작가적 성격, 형상적 성격, 작품 경향 등 3개를 부합한 표현으로 난잡하게 사용하고 있다!) 뿐 아니라 언어에도 나타남을 강조키 위하여 모 언어학자의 긴 논술을 끌었다.
 
154
그러나 氏[씨]의 모든 논술에서와 같이 이곳에서도 氏[씨]의 인용구는 氏[씨]를 도웁지 않았다.
 
155
우리들과 같은 몽매한일지라도 작품 위에(더구나 언어, 문장, 톤 등에) 작가의 개성적 특징이 나타남을 인정하는 것은 상술과 같거니와 문학적 형상이 자기 표현에 불과하다 함은 허망이 그 극에 달한 소리다.
 
156
무엇보다 먼저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그 작가가 생활한 시대나, 아는 역사상에서 原型[원형]을 가져다가 작가의 창작 과정을 통하여 성격과 타잎으로 창조한다.
 
157
지주, 소작인, 舎音[사음], 공장주, 노동자, 은행가, 상인, 관리, 교원, 인테리, 니힐리스트, 코뮤니스트, 작가, 미술가 등 일정한 사회적 타잎이 현실적으로 생활하는 와중에서 문학은 예술적 형상 가운데 그것을 재현하는 것이다.
 
158
그러나 작가는 아무 타잎이나 갖다가 形象化[형상화] 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표준에서 선발한다.
 
159
이 표준은 보통 작가가 체험한 생활과정 중의 인물이 되기도 하고 잘 아는 인물이 되기도 하나 궁극에서는 작가의 필요에 의존한다.
 
160
작가는 자기가 보고 아는 모든 인간을 함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특히 자기 작품 가운데 등장시키고 싶은 인물이 있는 것이다. 그 의지는 그가 작품 가운데 표현하려는 내용에 의존한다.
 
161
그것은 작가가 의식하든 안하든 간에‘작가의 계급적 존재에 의하여 결정되고 또한 일정한 계급적 과제에 봉사하는 작가의 계급적 관념’(누시노프)이다.
 
162
예를 들면 숙명론적 결과란 종교적 관념을 표현하기 위하여 작가 春園[춘원]은‘李金鳳[이금봉]’과‘金長老[김장로]’와 같은 인물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163
또한 콤뮤니즘이 유해한 사상이란 관념을 선전키 위하여는‘혁명가의 아내’와 같은 여자가 취택된다. 그러나 관념이란 전혀 초계급, 초물질적인 작가의 영감의 소산이냐 하면 前引[전인]처럼 계급적인 것이며 그 세계관의 일부분이다.
 
164
단지 작가의 사회적 실천의 과제의 변화에 따라, 작가의 세계관은 각종의 관념으로 표현되며 거기에 상응한 형상을 통하여 그 관념을 표현한다.
 
165
한사람의 春園[춘원]은 연애의 자유란 관념을 위하여「無情[무정]」「開拓者[개척자]」의 주인공들을, 복고적 영웅주의의 관념을 위하여는 소설「李舜臣[이순신]」을, 충절이란 관념을 위하여는「端宗哀史[단종애사]」의 주인공들을 등장시킨 것이다.
 
166
그 작품들에서 春園[춘원]의 一般世界觀[일반세계관]은 각각 다르게 나타난 것이 아니라 반봉건적인 이곳의 시민계급의 예술가로서 춘원은 이곳의 시민계급이 過程[과정]한 각 歷史階級[역사계급]이 제출한 현실적 과제를 관념으로서 표현한데 불과하다.
 
167
즉 봉건 도덕으로부터 윤리적으로 탈출하려 하는 20년대의 자유연애를 신흥세력의 대두때문에, 봉건층과 타합할 필요가 生[생]하였을 때 민족적 위대, 충절 등을 각각 자기의 작품 형상 가운데 표현하였다.
 
168
그러나 한 작가가 작품 위에 형상화시키는 인물, 사회적 타잎은 작가의 관념(세계관)에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회적 타잎의 사회적 비중에도 의존한다.
 
169
즉 인텔리켄차가 그 사회생활에서 演[연]하는 역할(좋은 의미이고 나쁜 의미이고)이 클때면 그 시대 문학의 지배적 형상이 된다.
 
170
단지 인텔리적 입장에 선 문학뿐만 아니라 非[비]인테리적이려는 문학에서도 그러하다. 왜냐하면 그러한 層[층] 혹은 계급은 그 외의 모든 계급의 実踐上[실천상] 중대한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171
이런 예는 역시 春園[춘원]의 작품「革命家[혁명가]의 안해」「흙」에서 볼 수 있다.
 
172
春園[춘원]은 콤뮤니스트도 아니오, 농민의 작가도 아니나 春園[춘원]이 사상적으로 본 민족적 시민의 사회적 실천상 콤뮤니스트와 농민은 중대한 요인이고 관념인 때문에 그의 작품의 형상이 된 것이다.
 
173
그러나 주지와 같이 春園[춘원]은 조선의 콤뮤니스트나 農民[농민]을 진실하게 형상화 하지 않았다.
 
174
그것은 다시 이러한 새 사실을 제시한다. 즉 동일한 사회적 타잎이 작가에 따라 전혀 다르게 형상화 된다는 것이다.
 
175
다시 말하면‘일정한 형상이 근본적으로는 동일하게 묘사된 작품과 조그만 변화, 轉形[전형]밖에 안된 작품과 아주 다른 톤, 묘사, 형태를 띤 작품, (누시노프) 등으로 나뉘는 것이다.
 
176
韓雪野[한설야], 宋影[송영], 金南天[김남천] 등의 소설과 春園[춘원]의 「革命家[혁명가]의 안해」가운데 형상화 된 콤뮤니스트의 타잎의 근본적 차이는 이 사실의 좋은 예이다.
 
177
이것은 작가의 세계관, 작품 가운데서 표시되는 관념이 예술적 형상을 돕기도 하고 저해도 하며 궁극에서는 예술적 타잎의 창조 과정을 지배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178
즉‘形象[형상]은 작가의 사회적 思惟[사유]와 계급적 관념의 특수한 표현 형식’이란 이론의 재인식이다.
 
179
바꾸어 말하면 세계관이 문학의 모태이며, 작품의 조직적 근원은 형상 자체가 아니라 작품이 의미하고 표현하려는 내용(관념)이다.
 
180
따라서 문학은 다른 관념 형태와 같이 특정의 사회인이 세계를 인식하고 세계를 정복하려는 행동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회인의 행동이 정당하지 않은 것처럼 모든 문학적 타잎이 다 진실하지는 않다.
 
181
타잎 가운데, 현실상 사회적 타잎 가운데 존재하고 또 존재할 수 있는 諸要素[제요소]를 엣센스와 같이 전형적으로 체현하지 않는 한, 세부에 있어 산 인간처럼 개인적 특징을 具有[구유]하고 있다 치더라도 (「革命家[혁명가]의 안해」참조) 그것은 진정한 예술적 형상이 아니다.
 
182
즉 일상생활이나 ▣▣▣에 있어서 콤뮤니스트와 비슷하더라도 그것이 진정한 콤뮤니스트에 있는 본질적인 것을 결합하고 있지 못하면 콤뮤니스트의 형상이 아니다. 그러므로 문학적 타잎은 작가의 사상성을 집중적으로 표현하고 현실적 타잎을 형상 가운데 보다 본질적으로 표현해서나 또는 외면적으로 왜곡하여서나 좌우간 독자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다.
 
183
문학의 궁극 목적이 人間型[인간형] 深究[심구]에 있다는 白鐵氏[백철씨] 등의 견해는 문학의 인식적 또 실천적 본질과도 背馳[배치]될 뿐 아니라 형상의 타잎性[성]과 개인성의 문제와도 틀린다.
 
184
마치 白氏[백씨]가 작가의 개성과 사회를 작품 형상의 타잎성과 개인성을 혼동하고 顚倒[전도]한 것처럼 문학의 현실성과 形象性[형상성]을 혼동하고 역립시킨 것이다.
 
185
문학은 인간적 타잎(그러나 白鐵氏流[백철씨류]의 인간형은 아니다!)을 창조함이 자기 목적이 아니라, 문학적 타잎을 통하여 다른 거대한 가치와 임무 ── 인식과 실천을 실현하는 것이다.
 
186
그렇지 않고 단순히 문학이 소위 인간형 탐구란 자기 목적에 불과하다면 문학이 인간생활의 중요한 필수품의 하나가 될 필요가 없다. 아마도 역사상에 문학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187
 
188
나는 本論[본론]에서‘인간형의 탐구’라는 견해를 創造上[창조상]의 주장이란 측면에서가 아니라 주로 文藝學[문예학]의 기초문제 위에서 음미하였다.
 
189
아마 그것은 일개 낭만주의 문학론에 불과할 것이다.(인간의 無規定的[무규정적] 고뇌나 행동성이란 의미에서.)
 
190
그러나 그것은 별개 테마이고 또 창작 방법의 문제를 논문의 논쟁적인 성질상 조금도 전개 못함이 유감이다.
 
191
그리고 白氏[백씨] 등의 견해를 逐條逐句[축조축구]로 비판치 않음은 氏[씨]의 논문이 무원칙적 인용구로 충만되어 이론이란 겨우 上引[상인]한 분량 외에는 거의 없는 것과, 한편 우리의 견해를 보다 많이 소개하고 싶었던 때문이다.
 
192
또한 휴머니즘 文藝論[문예론]의 社會思想的[사회사상적] 의의를 議論[의논]치 않음은‘르네상스와 신휴머니즘’중에 詳論[상론]하였으니 독자는 該論文[해론문]을 참조하기 바란다.
 
193
끝으로 왜 白氏[백씨]의 이론을 新[신]휴머니즘 文藝論[문예론]으로 취급하였느냐 하는 문제인데 金午星氏[김오성씨] 등의 2, 3개 논문이 있기는 하나 전혀 文藝理論[문예이론]으로서 이렇다 할 것을 제시하지 않았고‘인간형 탐구’란 기본적 의미에서는 역시 일치되므로 그리 취급하여 무방할 것 같다.
 
194
더우기 우리의 관심이 휴머니즘 一般[일반]이 아니라 조선적 휴머니즘이란 구체적 대상에 있으므로 그리한 것이다.
 
195
현재로서는 白氏[백씨]의 文藝論[문예론]이 조선 휴머니즘 文藝[문예] 理論[이론]의 대부분의 내용이 되었고, 휴머니즘이란 개인 중심의 프래그머티즘을 文藝論上[문예론상]에 확대하면 결국 이밖에 안되는 것이다.
 
 
196
본 논문중에 白氏[백씨]로부터의 인용문은 전부 昨夏[작하] 조선일보 소재 「創作[창작]에 있어 個人[개인]과 普遍性[보편성]」이란 白氏[백씨]의 논문중의 것이다.
 
197
\ir;(1938. 11)
【원문】문예이론(文藝理論)으로서의 신(新) 휴머니즘 론(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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