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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8
이효석
1
화 초(1)
 
 
2
꽃가게에서 꽃을 사들고 거리를 걸으면 길 가던 사람들이 누구나 다 그 꽃 묶음을 부럽게 바라본다.
 
3
나는 사람들의 그 눈치를 아는 까닭에 꽃을 살 때에는 반드시 넓은 종이에 묶음을 몽땅 깊게 싸도록 꽃주인에게 몇 번이고 거듭 청한다. 그러나 요새는 종이가 귀해서 길거리의 꽃장수는 물론이요 큼직한 꽃가게에서도 전에는 파라핀지나 그렇지 않으면 특비(特備)의 포장지에다 싸주던 가게에서도 신문지를 쓰게 되었고 그것조차 넓은 것을 아껴서 좁은 토막종이로 대신하게 되었다. 아무리 잘 싸달라고 졸라도 대개 꽃송이는 밖으로 내드리우게 밖에는 되지 않는다. 자연 사람들의 시선을 받게 된다. 전차를 타도 보도를 걸어도 사람들은 염치없이 꽃묶음에 눈을 보낸다. 아이들은 그 한 가지를 원하기까지 한다. 꽃을 사람에게 보임이 조금도 성가시거나 꺼릴 일은 아닌 것이나 번거로운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됨이 결코 유쾌한 일은 못 된다. 고집스런 눈을 받을 때에는 귀찮은 생각조차 든다.
 
4
그러나 이는 반가운 일이다. 사람들은 꽃을 사랑하는 것이다. 보기를 좋아하고 가지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것이 누구의 것이든 그 아름다움에 무의식 중에 눈을 끌리우게 되고 염치없이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아름다운 까닭으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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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좋은 줄 모르고 짓밟아 버리고 먹어 버림은 돼지뿐이다. 돼지는 꽃을 사랑할 줄 모른다. 돼지만이 꽃을 사랑할 줄 모른다.
 
6
세상의 뭇 예술가여 안심하라. 사람들은 누구나 꽃을 사랑할 줄 알고 아름다운 것을 분별할 줄 아는 것이다. 이 천성은 변할 날이 없을 것을 단언하여도 좋다.
 
7
돼지에게까지 꽃을 알리려고 하지 않아도 좋은 것이며 그 노력이 실패 되었다고 슬퍼할 것도 없는 것이다.
 
 
8
대조(大朝)의 D씨가 하룻밤, 꽃묶음을 들고 찾아왔다. 처음 방문이라 선물로 가져왔던 모양이었다.
 
9
해바라기, 간드랭이, 야국, 야란(野蘭) 등의 길게 꺾은 굉장히 큰 한 묶음이다.
 
10
신문인이라 신문지쯤 아낄 것 없다는 듯이 사면전폭(四面全幅)에 싼 것이나 오히려 종이가 좁다는 듯 꽃은 화려한 반신을 지폭(紙幅) 밖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것을 심을 화병은 세상에 없을 법하다. 회령자기(會寧磁器)인 조그만 물빛 항아리를 내다가 꽂으니 그 화용(華容)이 거의 창의 반면을 차지하게 되었다.
 
11
“뜰의 것을 꺾어 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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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말에 놀랐다. 그의 집 뜰이 얼마나 넓은지는 모르나 그도 도회인이라 가게에서 오히려 사들여야 할 처지에 뜰 어느 구석에서 그 많은 꽃을 아끼지 않고 꺾어 냈단 말인가. 그 흐붓한 가지가지의 꽃을 꺾어 낼 때 조금도 아까운 생각이 없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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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저렇게 많이 꺾어 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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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흔하게 피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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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방에는 조그만 화병에 코스모스와 시차초의 한 묶음이 꽂혀 있었으니 물론 거리에서 사온 것이었다. 집에도 코스모스, 시차초 뿐이 아니라 프록스, 샐비어, 금잔화, 백일홍, 봉선화 등이 피어는 있다. 그러나 나는 그 한송이도 꺾어 내기를 아껴 한다. 병에 꽂은 것은 대개 밖에서 사온다. 아이들이 꽃 한 송이를 다쳤다고 얼마나 호되게 꾸짖고 책망하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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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씨가 꽃을 사랑하지 않을 리는 만무한 것이요, 사랑하니까 선물로도 가져온 것임을 아는 것이나 흔하게 피어만 있으면 그렇게 듬뿍 꺾어 낼 수 있는 것인지 어쩐지 나는 그의 그 대도(大度)의 아량이 부러워 견딜 수 없다. 한꺼번에 그렇게 듬뿍 꺾어 내고도 아까워하지 않는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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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만약 수백 평의 뜰이 있어 그 속에 백화가 지천으로 피어 있다고 치더라도 나는 동무에게 선사할 때 그 값어치를 거리에서 사가면 사갔지 뜰의 것을 꺾어 낼 성 부르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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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욕심쟁이인 것인가. 인색한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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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평론 1940. 8
【원문】화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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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효석(李孝石)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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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0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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