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필경사 잡기 ◈
카탈로그   본문  
1935.1
심훈
1
필경사잡기
2
─ 최근의 심경을 적어서 K 군에게
 
 
3
우리의 붓끝은 날마다
4
흰 종이 위를 갈(耕)며 나간다.
5
한 자루의 붓 그것은
6
우리의 쟁기(犁)요 유일한 연장이다.
7
거치른 산기슭에 한 이랑(畝)의 화전을
8
일려면 돌부리와 나무등걸에 호미 끝이
9
부러지듯이
10
아아 우리의 꿋꿋한 붓대가
11
그 몇 번이나 꺾였었던고!
 
 
12
이것은 3년 전에 출판을 하려다가 암장(暗葬)을 당한 시집원고 중 〈 필경 〉 이란 시의 제1연이다. '필경사(筆耕舍)’란 그 시의 제목을 떼어다가 이른 바 택호를 삼은 것이다.
 
 
13
하늬바람 쌀쌀한 초겨울 아침부터 내리던 세우(細雨)에 젖은 흰 돛 붉은 돛이 하나 둘 간조(干潮)된 아산만의 울퉁불퉁하게 내어민 섬들 사이를 아로새기며 꿈 속 같이 떠내려간다. 이것은 해변의 치송(稚松)이 에워두른 언덕 위에 건좌손향(乾坐巽向)으로 앉은 수간초로(數間草蘆) 그 중에도 나의 분방한 공상의 세계를 가두고 독서와 필경에 지친 몸을 쉬는 서재의 동창을 밀치고 내다본 1934년 11월 22일 오후의 경치다.
 
 
14
당진읍에서도 40리나 되는 부곡리란 마을은 서울서 불과 200리라 하 건만 전 보가 2,3일만에야 통상우편과 함께 배달되는 벽지의 궁촌이다.
 
 
15
주근일강지저습(住近溢江地低濕) 황노죽요택생(黃蘆孤竹繞宅生)
 
 
16
이 고장의 풍물이 백악천(白樂天)이 적거(謫居)하던 심양강두(瀋陽江頭) 와 비슷하다 할까. 깊은 밤 툇마루에 홀로 앉았으면 눈 앞에 아물거리는 어둠과 함께 우주의 적막이 온통 나의 좁은 폐 속으로 스며드는 듯, 무서운 고독감에 온몸이 떨릴 때가 있으니 만큼 모든 도회의 소음과 온갖 문화의 시
 
 
17
설과는 완전히 격리된 원시지대인 것이다.
 
 
18
기간조모문하물(其間朝暮聞何物) 두견체혈애야명( 杜鵑啼血哀夜鳴)
 
 
19
그러나 두견 대신에 밤에도 산비둘기가 꾹꾹루루룩 청승스럽게 울고 원숭이는 없으나 닭장을 노리는 여우와 살가지가 횡행한다. 가두의 축음기 점( 蓄音器店)에서 흘러나오는 비속한 유행가와 라디오 스피커를 울려 나오는 전파의 잡음으로 안면이 방해될 염려는 조금도 없는 이를 테면 별유천지다.
 
 
20
참새도 깃들일 추녀 끝이 있는데 가의무일지(可依無一枝)의 생활에도 이제는 그만 넌덜머리가 났다. 그래서 일생일대의 결심을 하고 《직녀성》의 원고료로( 빚도 많이 졌지만) 엉터리를 잡아 가지고 풍우를 피할 보금자리를 얽어놓은 것이 위에 적은 자칭 '필경사’다. 7원짜리 셋방 속에서 어린 것과 지지고 볶고 그나마 몇 달씩 방세를 못 내서 툭하면 축출 명령을 받아가며 마음에 없는 직업에 노명(露命)을 이어갈 때보다는 맥 반 총 탕( 麥飯葱湯) 일 망정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끓여먹고, 저의 생명인 시간을 제 임의로 쓰고, 티끌 하나 없는 공기를 마음껏 마시는 자유나마 누리게 되기를 벼르고 바란지 무릇 몇 해였던가.
 
 
21
내 무슨 지사(志士)어니 국사(國事)를 위하여 발분하였는가. 시불 이합( 時不利合) 하여 유사지적(幽師志的) 강개(慷慨)의 피눈물을 뿌리면 일신의 절조나마 지키고자 백골이 평안히 묻힐 곳을 찾아 이곳에 와 누운 것이며 그야말로 한운야학(閑雲野鶴)으로 벗을 삼을 마음의 여유나 있을 것이 아닌가.
 
 
22
동창이 밝앗나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23
소치는 아해 놈은 상긔 아니 니럿느냐
24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니.
 
 
25
내 무슨 태평성대의 일민(逸民)이어니 30에 겨우 귀가 달린 청춘의 몸으로 어느 새 남구만(南九萬)의 심경을 본떠 보려함인가.
 
26
이 피폐한 농촌을 음풍영월의 대상을 삼고자 일부러 당진 구석으로 귀양살이를 온 것일까. 내 무슨 은일군자이니 인생의 허함과 세사의 무상함을 활 연 대오 하였던가. 매화로 아내를 삼고 학으로 아들을 삼아 일생을 고산( 孤 山)에 은서(隱棲)하던 송나라 처사 임포(林逋)를 흉내 내고자 하루 저녁 서 회( 舒懷) 할 벗은커녕 말동무조차 없는 한미한 조선의 서촉(西蜀) 땅에 칩거 하는 것인가.
 
 
27
벌써 10여 년 전이다. 내가 중국 항주에 유학할 때 서자 호반( 西子湖畔)에 있는 임지정(林知靖, 逋의 字)의 무덤 앞에 죽장을 멈추던 생각이 난다.
 
28
화정(和靖)의 7세손(七世孫)되는 홍(洪)의 저서인 《 산가 청사( 山家淸事) 》에 의하면 당시 그의 생활은 ' 사 3( 舍三)· 매일( 寐 1)· 독서 일( 讀書 1)· 야 약 일( 冶藥 1)· 후사이( 後舍 2)· 1 저주( 一儲酒穀)· 열 농구 산구( 列農具山具)· 일안 복역 포유( 1 安㒒役疱瘤)· 칭시( 稱是). 동 1( 童一)· 비 1( 婢一)· 원정 2( 園丁二)· 견 12 족( 犬十二足)· 여 4 제( 驢四蹄)· 우4각(牛四角)’이었다 하니 이 임 처사(林 處士)에 비하면 심 처사의 생활은 실로 10대0이다. 내 소유라고는 밭 한 뙈기 논마지기도 없는것은 천하주지의 사실이다. 사1(舍一)·처1(妻一)·자2(子二) 이외에 톡톡 털어도 주머니 속에서는 희연(囍煙) 부스러기밖에 나올 것이 없는데 처자나마 나의 이유재산(利有財産)이 아닌 바에야 실로 손꼽을 거리도 되지 못 한다.
 
29
나는 생어장(生於長)을 서울서 한지라 외모와 감정까지'서울 놈’을 못면 한다. 철두철미 놀고먹는 도회인의 타입인 것을 나 스스로 인정한다. 그러나 낙오자라고까지 저를 부르고 싶지는 않으나 도회에서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피천샐닢도 없는 놈이 도회에서 명맥을 보전 하려면 첫째 바지런하고, 참새 굴레를 씌울 만큼 나약해서 백 령 백 리( 百怜百悧) 해야 하고, 월급쟁이면 중역이나 간부의 보비위(補脾胃)를 하는 술책과 무슨 사업이라도 해보려면 돈 있는 자에게 무조건하고 고 두 백배( 叩頭百拜) 하는 별다른 오장(五臟)을 가져야 하고, 권력 있는 자에게는 아유 구 용( 阿諛苟容) 하는 심법(心法)과 허리가 곡마단의 계집애처럼 앞으로 착착 휘는 재주를 습득해야만 할 뿐 아니라, 겸하여 눈뜬 놈 코 베어 먹는 천재가 구비 되어야만 비로소 입신양명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만고에 변함이 없는 진리요 철칙이다.
 
30
그렇건만 나는 성격상 이유의 여러 가지 조건 중에 하나도 들어맞는 것이 없다. 구렁이 제 몸 추듯이나 자신을 개결(介潔)한 선비요 청렴강직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나 아무튼 천생으로 게을러 빨랑빨랑하지 못하고, 이를 탐하는데 눈이 밝지 못하고, 돈 없이 아쉬운 줄은 알면서도 돈 자세하는 놈을 보면 속이 매스꺼워 입에 군침이 돌고, 권세 있는 자의 앞에서 는 고분고분하기는커녕 산돼지처럼 목덜미가 뻣뻣해진다. 그래서 한 고주( 雇主) 를 꾸준히 섬기지 못하고 수틀리면 누구 앞에서나 불평을 토하고 심지어 심술을 불끈불끈 내놓는 밥 빌어먹을 성미 때문에 이 토박한 시골 구석으로 조밥 보리밥을 얻어먹으려고 그야말로 남부여대하고 기어든 것이다. 그러니 반드시 공명이나 명예감에 담백하기 때문에 도회에서 미끄러진 것도 아니니 내 일이면서도 무가내가(無可奈可)다.
 
 
31
도회는 과연 나의 반생에 무엇을 끼쳐주었는가! 술과 실연과 환경에 대 한 환멸과 생에 대한 권태와 그리고 회색의 인생관을 주었을 뿐이다. 나이 어린 로맨티스트에게 일찌감치 세기말적 기분을 길러주고, 의지가 굳지 못 한희 뚝 희 뚝 하는 예술청년으로하여금 찰나적 향락주의에 침론( 沈論) 케하고, 활 사회( 活社會)에 무용의 장물(長物)이요, 실인생의 부유층(蜉蝣層)인 창백한 인텔리의 낙인을 찍어서 행려병자와 같이 아스팔트 바닥에다가 내어 버리려 들지 않았는가.
 
32
……그러나 아직도 양심만은 마비되지 않아서 남들과 같이 팜플렛 조각을 밀수입 해 가지고 일찌감치 프로 행상을 나설 용기조차 내지를 못하였던 것이다.
 
33
나는 어려서부터 문예에 뜻을 두었었다. 시를 쓰는 체 각본을 꾸미는 체하고 영화박이는 흉내도 내고, 여러 해 보람 없는 저널리스트 노릇을 하다가 최근에는 엉뚱하게 적어도 3,4만 독자를 상대로 하는 신문에 서너 차례 나의 장편소설을 쓰고 있다. 바늘구멍으로 약대를 끄집어내려는 대담함에 식은 땀이 등어리를 적심을 스스로 깨달을 때가 많다. 동시에 더욱이 문 예의 길이란 가시밭을 맨발로 밟고 나가는 것이나 다름없이 간난한 것을 깨 달았다. 이 길을 개척하고자 하면 소질과 본분이야 있고 없고 간에 적어도 한 10년 하고 살을 저미고 뼈를 깎아내는 듯한 노력과 수련을 쌓는 시기가 있어야 비로소 제 일보를 내어디딜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래로 방랑성을 다분히 타고난 나는 소년시기로부터 거의 장년기에 이르는 오늘날까지 그 정신생활에 있어서도 비현실적인 몽환경(夢幻境)을 더듬으며 헤매어 왔다. 앞길에 일정한 목표를 세우지 못하고 비틀걸음을 치는 자에게 진심 한 행동이 있을 수 없다. 위대한 작품이 나오기를 바랄 수 없다.
 
 
34
이미 때는 늦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라도 과거의 하루살이적 생활을 청산하고 머리 속의 신기루를 내 주먹으로 깨뜨리고 발을 낙지의 흡반과 같이 흙위에 붙이고 일어서야만 할 것을 저 자신과 약속하고 또한 맹서한 것이다!
 
35
어쭙지 않은 사회봉사, 입에 발린 자기희생, 그리고 어떠한 주의에 노예가 되기 전에 맨 먼저 너 자신을 응시하여라! 새로운 생활에 말뚝을, 모래성 위에 꽂지 말고, 질척질척한 진흙 속에다가 박아라. 떡메질을 해서 깊이깊이 박아라!
 
36
'다년간 생활고를 맛보면서 꿈꾸는 이기적인 고독한 생활 속으로 은둔 한 것이다. 몇 주의 수목이 듬성듬성 선 화원에 에워싸인 수간두 옥( 數間斗屋) 과 아내의 소일거리인 조그만 계사(鷄舍)와 애채 재배의 취미를 가진 그 의 일 편의 토지를 일구어서, 그들이 부르조아적인 열반 속으로 들어간 것은 철도의 수가 승합마차보다도 적고 인류는 석유등 아래서 꿈을 꾸고 전신( 電信) 이 인생최고의 발명을 대표할 때였다.’ 이것은 뿌라 쓰 코 이 바니 에스의 단편 〈키스〉를 읽다가 미고소(微苦笑)를 금치 못한 일 절이다.
 
37
그러나 나는 이기적인 고독한 생활을 무위하려는 것도 아니요 또한 중세기적인 농촌에 아취(雅趣)가 생겨서 현실을 도피하려고 '필경사’ 속에다 청춘을 감금시킨 것이 아니다. 다만 수도원의 수녀와 같이 무슨 계획을 꾸미다가 잡혀가서 한 10년 독방생활을 하는 셈만 치고 도회의 유혹과 소위 문 화지대를 벗어나 다시금 일개의 문학청년으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비록 일 단사 호음( 一單食瓠飮) 의 생활이라도 내 손으로 지탱해 나가면서 형극의 길을 제일보로부터 고쳐 걸으려는 것이다.
【원문】필경사 잡기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수필〕
▪ 분류 : 근/현대 수필
▪ 최근 3개월 조회수 : 11
- 전체 순위 : 4029 위 (3 등급)
- 분류 순위 : 721 위 / 1794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 필경사 잡기 [제목]
 
  심훈(沈薰) [저자]
 
  1935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 참조
  # 필경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수필 카탈로그   본문   한글 
◈ 필경사 잡기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10월 0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