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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1
채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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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風俗時評[풍속시평]
 
 
 

1

 
3
장독대를 보면 그 집 며느리 살림 솜씨를 얼른 안다는 옛말이 있거니와 그 땅 백성의 문화수준이나 문화태도 혹은 문화적인 의미로서의 품격 등을 여실하게 반영하는데, 신문의 광고면 같은 것은 가장 그 적절한 거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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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자식 ×××가 본시 불량방탕지자(不良放蕩之者)로 근일 본인의 인장을 위조하여 가지고 각지로 돌아다니면서 본인 소유의 ××소재 토지를 전집(典執)하려 하오니 강호제첨(江湖諸僉)은 행물견기(幸勿見欺)하소서. 부(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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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유의 광고가 드리껴 한동안 흔키도 하더니 웬일인지 근자에 와서는 그 자취가 신문 광고면으로부터 사라지고 말았다. 혹시 그러한 불량방탕지자’가 죄다 없어졌음인지 또는 그 ‘불량……자’를 자식으로 둔 ‘본인 씨’들이 연화대(蓮花臺)를 가고 없음인지 또 혹은 그와 같이 패스런 인심이 조금 풀어졌음인지, 아무려나 속사정은 어떠했든간에 그러한 추부(醜部)가 어엿이 노출되지 않는 것만은 만만 고마운 노릇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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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불량자식’에 대한 ‘선량지부(善良之父)’의 광고와 더불어 가히 쌍추(雙醜)라고 일컬을 저 도망간 창기(娼妓) 붙잡아 달라는 현상 광고 이것은 여전히 그칠 줄을 모르고 전면에서 횡행을 하고 있다. 창기 아무개가 생기기는 이러이러하고 옷은 무슨 옷을 입고 금니를 박았고 했는데, 아무날 아무시에 도망을 갔으니 그를 붙들어 주는 사람에게는 일금 ×백원 야라를 사례하겠노라는 사진까지 곁들인 광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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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망간 창기를 일금 ×백 원 줄께시니 붙들어 달라는 광고와 내 자식이 방탕한 불량자니 속지 말라는 그 애비의 광고가 떳떳이 신문에 나는 것은 적실코 일부 백성의 지지리 야박스런 인정의 일단을 절실히 드러내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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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광고도 상품인 바엔 내 돈 내고 상품 사는데 시비가 무슨 시비냐고 잃어버린 ‘물건’ 찾아주면 답례로 돈 주겠다는데 잘못이 무슨 잘못이냐고 도리어 불복하겠지만, 명색이 의관을 하고 사는 백성으로서 조금치라도 체면이라는 것을 생각할진댄 도저히 방법이 그대도록 박절할 법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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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견이 적은 탓인지는 몰라도 내지 등지에서는 그 많은 신문의 그 숱한 광고 가운데 내 자식이 나쁜 놈이요라든가 유곽에서 창기가 도망갔으니 붙잡아주면 돈 ×백 원 주마든가 따위의 광고가 나는 적이 있다곤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다. 모르면 몰라도 구미에서나 또는 유태인이며 지나인들도 그렇진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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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관련해서 한가지 또 궁금한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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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그 창기가 도망을 갔으니 붙잡아 주면 일금 ×백 원을 주겠노란 광고를 보고서 옳다 되었다 횡재로다! 하고 도망간 그 창기를 붙잡으려고 눈에 불을 켜가지고는 납뛰며 돌아다니는 사람도 혹시 더러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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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조차 인육시장. 오죽하니 그곳을 도망하여 나온 1필의 제물을 돈이나 한 ×백 원 받기가 좋아서 그를 붙잡아다 주려고 눈을 뒤집어쓰고 나서는 사람도 있는 것인지? 그리하여 포수에게 쫓긴 짐승처럼 바르르 떨고 숨어 있는 그 짐승 아닌 짐승 탈주 창기를 척 손목 움켜 끌어다 주고는 금 ×백 원야라를 덤쑥 받는 사람도 간혹 있는지? 만일 그랬다면 돈을 ×백 원 받아 쥐는 순간 그의 표정이 어떠했을꼬? 좋아서 희죽 웃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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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돈 ×백 원은 가지고 가선 무엇에 썼을꼬? 쌀도 사고 고기도 사먹고 했으렷다? 그게 옳게 소화가 되고 살로 가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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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도 그 돈 ×백 원을 받아가지고 돌아가는 도중 무엇 이상한 것을 만나지는 않았을까 ? 이삼 일 전 신문엔 보니 어떤 도적이 도적질을 해가지고 돌아가다가 중로에서 호랑이를 만났더라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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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광고 하나가 매약(賣藥)의 효능설명 여대치게 그거나마 우스꽝스런 문구를 연발해 가면서 골치가 아프도록 잔소리를 깨알 박듯 박아논 것을 이즈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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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으로 잔소리를 여러 소리 늘어놓아야 광고가 잘 되는 줄 아는 게 조선 백성 투의 광고투다. 물론 광고문이 그렇듯 지저분하도록까지 잔소리를 늘어놓아가며 이실고실 설명을 해주어야만 신용을 하고 알아먹어주고 하는 게 역시 백성이란다면 숭은 노상 광고주 일방에게만 있다고는 하기도 민망한 노릇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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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가 그러나 지면에 가서 설명이 가득 들어찬 것이면 그래서 지저분하고 산뜻하지가 못한 것이면 첫째 따분한 게 마음에 질려서 섬뻑 눈여겨 볼 생각부터 우선 내키지 않고, 그리고 그러한 광고일수록 그의 지저분한 광고면처럼 상품 그것도 너절한 상품이거니 싶은 선입관념이 앞을 서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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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와 고하꾸(빛깔은 琥珀[호박]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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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와 시부(맛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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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내지산의 어떤 위스키 광고문이다. 널따란 스페이스에 가서 사진을 박은 위스키병과 단 그 두 마디가 씌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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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요시(味[미]よ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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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요시(香[향]よ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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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니 스이고고찌요시(更[경]に 醉心地[취심지]よ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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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이라는 꽤 유명한 화주(和酒)의 광고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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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잘 먹지도 못하고 즐겨하지도 않는 나 같은 사람도 그 광고문에 팔려 그런 술이라면 한잔 해보고 싶은 생각이 문득 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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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잘 먹지도 못하고 즐겨하지도 않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런 술이면 한 잔 먹어보고 싶은 생각이 나게 했으니 광고의 효과는 백 퍼센트 성공이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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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효과가 그와 같이 성공일 뿐만 아니라 광고문의 점잖음이랄지 간결하고 세련된 품이랄지 가장 능란한 광고술인 동시에 문자에 의한 상업예술(?)의 극치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먼저의 그 책광고 따위에 비하면 참으로 영의정 판서와 촌머슴꾼 같은 반상의 차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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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백성이 내지인에게 대하면 문화수준이 상당한 거리만큼 뒤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서 결코 일반문화가 영의정 판서 대 촌머슴꾼토록의 차이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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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에 과실전 망신은 모과가 시키고 일가 망신은 대부가 시킨다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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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한약방의 매약광고에 “…… 병 곤칠 양반은……” 운운한 문구가 있는 것을 보고 혼자 미소를 했다. 누군지는 몰라도 그야말로 그 양반 재미있는 양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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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빨리 ‘인사(人士)’라거니 ‘제위’라거니 심하면 ‘사람’이라거니 본새의 말투보다는 그 “……양반은……”소리가 얼큰한 우거지 국맛 같아서 구수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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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 보면 광고문구 가운데는 실로 포복할 절창과 얼굴 뜨거운 망발이 허다하다. 그런 중에서도 내지광고의 번역이나 내지신문에의 조선광고에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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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활동사진 시대의 극장광고로 ‘화물옥부(化物屋部)’ ‘적루포대(赤壘布隊)’ 등은 벌써 옛말이라고 하더라도 동대문의 모 관상대가씨가 대판조일(大阪朝日)에 광고를 한바탕 낸 그 선전문이란 가위 천하 명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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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는 아니지만 용어와 발음을 가장 정확히 한다는 제 2 방송의 아나운서가 “이것은……저것은……”을 어엿이 “이거든……저거든……” 하기가 일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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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습관의 실수라고 국어에서 쓰는 “……고또……”는 으례껀 “…… 일……”이라고 번역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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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그래서 “샤도오 도오루고도와 기껜데스” (차도를 통행하는 것은 위험하다)를 번역하되 “차도로 다니는 일은 위험합니다”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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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제 2 방송의 용어 이야기가 났으니 말이지 조선말을 제일 잘 써야 할 터이면서도 서투른 매약광고문 다음가게 조선말을 잘못 쓰는 건 제 2 방송의 소위 방송국, 그중에도 아동극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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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네”와 “비 오네”는 회화에 있어서 그러니까 극의 대사에 있어서 대단히 쓰이는 경우가 다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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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쯤은 모르지 않음직한 지휘자겠는데 (지금도 마악 그런 아동극을 한 대문 듣고 난 참이지만) 정녕코 “비 오네” 해야 할 장면인 것을 “비가 오네!”라고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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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언제고 회화라는 게 “너 무얼 하니? ” “밥을 먹는다” “그앤 누구냐?” “나˙ 의˙ 동생이란다!” 이런 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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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네라서 일상생활에 “내˙ 동생이란다!”라고 했지 “나˙ 의˙ 동생이란다”라고 할 염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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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무슨 생각으로 극을 하면서는 산문을 그대로 가져다가 대사하는지 무를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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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어(至於) 이즈막 토키의 대사(臺詞)하여는 탈선이지만 차라리 탄을 마는 게 수리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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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판조일에까지 광고진출을 하는 관상대가씨도 있는 세상인데 도서광고는 본바닥 신문에서조차 간대로 발견을 할 수가 없는 또한 이 고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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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의 잡지들이 각기 매월 한번씩 압도적인 대스페이스의 매약광고 틈사구니에다가 가엾을 만큼 근천스럽게 그달호가 나왔다는 소식을 가만히 알리곤 할 뿐 단행본이라고는 가뭄에 콩씨도 그렇게 드물게 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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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이 조선문으로는 단 하나밖에 없다는 것과 출판업이 본래 수익이 넉넉치 못한 장산데, 그 반면 광고단가가 벅찬 것 등의 사정 때문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제약 이전에 근본적으로 도서의 간행이 지극히 영성(零星)한 거기에 원인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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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간행이 영성한 원인은 그리고 백성들이 도서를 찾지 않는 데 있고, 백성들이 도서를 찾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이 독서를 하지 않는다는 표적이고, 독서를 하지 않는 백성은? 2월이 되어도 나물이 나지 않는 백성이라든지 즉 문화와 자진하여 등진 백성……
 
 
50
구미제국은 실지로 목도를 한 바가 없으니 모르겠으되 내지에서는 전차랄지 기차와 선내(船內)에서랄지 정거장의 대합실 심하면 길을 걸으면서까지 손에 책이며 잡지며 신문이며를 펴들고 읽는 사람이 퍽 많다. 열이면 적어도 반수가 넘으면 넘었지 덜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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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란 고장에서는 그런데 겨우 기차 통학생들이 조석 내왕의 차중에서 교과서 등속을 읽는 게 고작이지 일반은 기차에서고 전차에서고 책이나 잡지는커녕 제법 신문 한 장 읽는 사람을 구경하기가 힘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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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조선 사람들은 생활에 있어서 독서 즉 문자라는 것을 가까이 할 줄 모르는 백성인 사실을 단적으로 시(示)하는 증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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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가 사람에게 정신의 양식이랄진댄, 그러므로 그 사실은 조선 사람이 정신의 양식을 멀리하고 사는 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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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그것이 출판의 부진이라는 현상을 통해서 썩 아주 정직하게 책광고 없는 신문광고면 위에 역력히 반영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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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조선 사람이 살기가 넉넉치 못하고 또 많이가 문맹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정히 가난하여 신문이나 도서비를 지출할 여유가 없는 사람이야 탓할 바가 아니다. 문맹하여 독서할 능력이 없는 사람 역시 문제 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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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생활도 간구하지 않고 학식도 상당하고 하면서도 그런 사람들까지도 어떻게 된 백성들인지 전혀 독서라는 것하고는 담을 쌓고 지난다. 도통(道通)을 하자는 것도 아니건만 우두커니 앉았으면서도 심심타 못해 사지를 꼬고 선하품을 하면서도 독서는 해볼 염(念)도 내지를 않는다. 그게 열이면 아홉 반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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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삼아 오후 넌지시 종로 네거리의 한귀퉁이에 가서 10분 동안만 섰어 볼 것이다. 백 명에 하나쯤 있을까말까 하고는 그 허우대 좋고 밀끔밀끔한 청년이며 신사네 치고서 반반히 잡지 한 권 사서 손에 들고 다니는 사람이 별로이 있는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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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전에 동경의 어떤 잡지에서 경성제대의 교수 몇 사람을 모아 조선문제에 대한 좌담회를 연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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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좌담회 기사 가운데 다음과 같은 의미의 한 대문이 있었다. 즉 조선 학생들은 재학중에는 공부도 부지런히 하고 재주도 있어서 장래성도 있어 보이고 그리하여 동급의 내지인 학생과 비하여 빠지지 않는 사람이 많이 없는 게 아니나 그러나 그들은 한번 졸업을 하고 교문을 나가면 그 뒤로는 일체 학문과는 멀어지고 마는 통폐가 없지 않더라고. 그리고 그러하기 때문에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도 대개는 큰 비약이나 향상이 적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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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주로 경성제대를 나온 사람들을 두고 이른 말이겠지만 전반의 조선사람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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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이 내가 명색 문필에 종사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서 내가 속한 방면의 저작물을 즉 한글 출판의 도서나 잡지를 남에게 읽히자는 정책으로 이런 말을 늘어놓고 있는 줄 여겨서는 그것은 심히 삐뚤어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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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한글로 된 도서리요. 크게 화문(和文)의 것을 읽어도 좋다. 영문이나 지나 문장의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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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좋으니 조선 백성은 차차로 문자와 친하지 않아서는 영영 쌍놈 면할 날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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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每日新報[매일신보] 1941. 1. 25, 2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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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만식(蔡萬植)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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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1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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