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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5
김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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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수감(風俗隨感)
 
 
 

1. 상. 지참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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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사람은 아들보다도 딸 낳은 것을 기뻐한다는 이약기가 퍽 전부터 ‘내려오는 말’로서 전해져 오고 있다. 이렇게만 들으면 사내아이만을 중하게 떠받드는 세상에서 평양사람이야말로 퍽 개안한 인사들이라고 생각하실 분이 계실는지 모르나 그 까닭이 실상은 평양 부근에서 출생한 우리들로서는 저윽이 명예롭지 못한 수작이어서 딸을 낳으면 기생에 부칠 수 있고 이렇게 되면 딸 하나가 아들 열놈은 당해 낸다는 것이 설명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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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물론 평양에 기생이 흔하다는 사실을 가지고 평양 사람에게 욕을 주려고 만들어 낸 조작의 수작이겠지만 평안도 산골로 가면 얼마 전만 해도 아닌게 아니라 딸 낳으면 천냥(千兩) 벌이했다고 위안하는 말이 없지는 않았던 것이다. 기생을 부치는 것은 아니지마는 혼인하기 전에 신랑의 집으로 부터 선채(先綵)와 함께 ‘바느질삯’이라는 명목 기타로 금품을 보내는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 이것이 실상은 ‘딸을 팔았다’든가 ‘며느리를 샀다’든가 하는 인상을 주게 되는 것이요, 또 하류층에서는 이러한 매매의 관계가 어엿하게 이루어져 오던 것을 우리 같은 젊은 사람의 눈으로도 친히 볼 수가 있었던 것이다. 불행히 그들이 결혼이 중도에서 파탄이 생길 때 이 금품이 쟁소(爭訴)거리까지 되는 것을 우리는 여러번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요컨대 이 때의 이 분들의 풍속으로서는 시집갈 때 신부와 함께 따라가는 요즘의 소위 ‘지참금’이라는 것은 별로 생각조차 되어지지 못하였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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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요즘의 서울서는 평안도 산골의 투박스럽고도 비개화적인 그러한 풍속과는 정반대의 ‘지참금’이 적지 않게 유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는 일찍이 고명한 여류 명사의 한 분이 요즘의 청년들을 훈계(訓戒)하는 기염(氣焰) 가운데서 지참금을 노리는 청년 남성의 타락된 심리를 지적하고 있는 자못 격렬한 문자를 얻어 본 일이 있었는데, 이러한 풍속적인 현상이란 청년의 심정상 반성 여하로서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원인이 좀더 깊은 곳에 있는 것임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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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가의 권세나 공세 출세가 일종의 미덕으로 되어 있는 사회, 그리고 청년의 양명 출세를 보장하는 것이 권세나 금력 이외에는 없는 세상에서는 여류 명사의 호령쯤으로 근절될 수 없는 하나의 사회 심리인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여하히 고결하고 문명(文明)한 나라의 청년일지라고 제도 법칙이 주는 사회 심리에서 떠나서 자신의 미래를 회계하기란 지극히 곤란한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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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의 소설을 읽으면 19세기의 불란서 상류 계급이나 시민 계급에 있어서 여자의 지참금이 얼마나한 힘을 가지고 있는가를 낱낱이 알 수가 있다. 포피노 백작은 지참금이 적어서 자기의 녀느리로 마르비르 씨의 영양을 맞아들이기를 승낙하지 않았으나 얼마 뒤 영양의 가자(嫁資)로서 90만 프랑의 지소와 25만 프랑에 해당하는 저택이 붙이어졌을 때 그는 여러 가지 결함에도 불구하고 마르비르 씨를 사돈(査頓)으로 맺는 것에 만족을 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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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모로와 씨가 매개 결혼이 자유 선택의 결혼으로 바뀌어지고 있는 불란서의 현상을 설명하면서 그 이유와 원인의 한 가닥을 ‘지참금과 문벌의 실권(失權)’에서 찾고 있는 것은 상기한 것과 부합시켜 생각할 때 퍽도 자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씨는 그의 결혼에 관한 강연 가운데서 이러한 진화는 재산을 만든다는가 그것을 보존한다든가 하는 생각이 가장 가공적이고 또 가장 어처구니 없는 생각으로 되어 버린 데도 기인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너무나 급격한 변화와 뜻하지 않았던 몰락을 구경한 때문에 지참금과 문벌이 그처럼 영구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리하여 매개 결혼보다도 자유 결혼이 보급화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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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요즘 서울서는 자유 연애 결혼이 그 전처럼 유행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리고 ‘지참금과 문벌’의 세도가 부활된 것으로 보아 풍속은 오히려 발자크의 시대와도 흡사한 감(感)이 있다. 우리 조선 청년들은 요즘의 구라파 청년들처럼 금권(金權)의 ‘급격한 변화와 뜻하지 않았던 몰락’을 그다지 많이 구경하지 못한 것이나 아닐까. 불행히 앙드레 모로와 씨의 명민(明敏)은 미처 조선 청년의 복잡한 사회 심리에까지는 언급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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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8일)
 
 
 

2. 중. 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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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이란 말은 항용 쉬웁게 사람들의 구문(口吻)에 오르내리는 것보다는 좀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소혓바닥처럼 말려 올라간 청년의 두발을 가리키며 ‘저런 머리가 요즘 유행이야’라든가 혹종의 옷감이나 어떤 형태의 모자나 문채(紋彩)의 넥타이에 대해서 유행을 운운하는 것과 동양(同樣)으로 문학의 유행을 지껄이는 사람도 없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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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때에 그렇게 불리워지는 문인은 핸드백의 유행이 지적되었을 때와는 다른 일종의 불쾌를 느낄 것이며 당사자의 어떤 사람은 노여움까지도 품을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 그러한 사람들도 다른 장소에서 유행이라는 말을 쓰는 때엔 별반 이렇다 할 사려 분별을 가지려고 하지는 않는다. 혹여 이러한 곳에 유행이란 말이 가지는 미묘한 뉘앙스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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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것은 확실히 다르다. 부인네들은 유행을 의식하고 자기 자신이 그것을 형성하고 있는 많은 사람 중의 일인이라는 것을 즐기면서 벨벳 치마와 샌들을 신는 것이지마는 문학은 실질적으로 유행에 참여하고 있으면서도 자기의 유행으로 의식하기를 꺼리고 있다. 저것을 입지 못하고 저것을 신지 못하고 저것을 얼굴에 바르지 못하면 나는 ‘시대지(時代遲)’로 보이고 둔감으로 웃음거리가 되고 가난뱅이로 푸대접을 받고, 시골뜨기나 구세군이나 전도 부인으로 간주될는지도 모르겠다는 여성들의 심리가 솔직하게 나타나서 오히려 재미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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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에서 격리되고 뒤떨어진다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청춘을 잃어 버린고 미를 잃어 버렸다는 것의 자기 인정으로 되어질 뿐 아니라 생활상의 굴욕과 비굴까지를 스스로 인정하는 슬프고도 쓸쓸한 일종의 자기 체념으로도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고상한 우리 문인 제공(諸公)은 자기의 두상에 유행의 두 자가 붙는 것을 몹시 꺼려하고 기피한다. 그것을 그들은 확실히 모멸로 의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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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문단 풍속적으로 유행이란 말과 현상을 생각해 볼 때에 우리는 이내 유행 작가란 말을 연상할 수가 있지 아니한가. 그러나 유행 작가란 말이 가지고 있는 뉘앙스란 대체 어떠한 것일까. 우리는 좀더 이것의 정체를 명확히 하여 쓸데없는 모멸과 협박 관념을 물리치고 정당한 어감을 수립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 말만을 가지고 펄펄 뛰게 노여워한다든가 또는 헛되이 작약(雀躍)하든가 할 필요가 없을 것이요 또 내심 반가워하면서도 겉으로만 질색인 듯한 그런 곤궁한 심리의 경험도 격감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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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단에서 지명 인례(指名引例)를 하는 것은 피하려 하거니와 단우문웅(丹羽文雄)이나 석판야차랑(石坂洋次郞)이가 유행 작가라고 불리워지는 까닭은 곧 추측할 수가 있다. 이것은 석삼달삼(石川達三)이 「일음촌(日陰村)」때문이나 「산 병대」때문이 아니라 「결혼의 생태」나 「현대의 윤리」(?)로 해서 유행 작가가 된 것과 동일한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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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앙스에서 약간씩의 차이가 있겠으나 독자와 그들이 표시하는 상식과 그리로 일종의 데포르마시옹을 거쳐서 표현된 성 심리와 그런 것들을 합쳐서 생각할 때에 우리는 이내 유행 작가가 어떠한 마로 쓰여졌는가를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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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단순히 저널리즘과의 관계만으로서 이해하려는 것은 조금 피상적이다. 왜냐하면 여하한 문학도 그것이 출판을 통한 표현 보도 현상인 이상 저널리즘과 무연(無緣)인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대상으로 하는 독자층을 상정하는 것은 그다지 무의미하지 아니하다. 여학교의 교육을 받은 정도의 신여성, 이들에 의하여 건기의 문학이 가지는 감각과 모랄과 성심리는 그의 유행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정의 이단은 우리 조선 문단의 경우에도 차이 없이 적용된다. 이러한 때 문학은 불명예를 의식하여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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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조금 다른 경향도 있을 수 있다. 도목건작(島木健作)이가 유행 작가라고 불리우는 경우다. 이는 주로 근엄한 외피를 씌운 의장(擬裝)의 사상 소시민의 주관적인 도덕으로 해서 그렇게 불리워졌던 것이나 본질을 따져보면 이러한 문학이 가지는 유행성도 소시민 자체의 부동성과 사상적 천박성에 근거를 두었던 것인만큼 그다지 명예로운 칭호랄 수는 없을 것이다. 하나는 여학교 교육을 받은 신(여)성의 감정 심리에 기반을 둔 것, 하나는 부동적인 소시민의 천박한 사상 심리에 근거를 둔 것. 마셀이나 칼의 유행과 넥타이의 유행이 가지는 풍속적 의미 대차를 발견하기는 곤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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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는 유행을 다른 각도로 볼 줄도 알아야 하겠다. 다시 말하면 문학에 있어서의 유행이란 고도의 의미로 해석하면 다름 아닌 조류며 경향이다. 조류를 경멸하는 것은 그다지 현명한 일도 명예로운 일도 아니다. 왜 그러냐 하면 그것은 곧 시대 정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학이란 다름 아닌 한 시대의 정신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자기 문학에 유행성을 의식하는 것은 지극히 가당(可當)한 일일 것이다. 다행히 그가 만약 유행의 선구가 되었다면 그것은 더욱 놀랍고 명예로운 일일 것이다. 시대의 정신과는 오히려 인연이 없었던 헨리 제임스도 ‘시대 정신의 향훈이 없는 예술은 향취가 없는 조화(造花)에 불과하다’고 차탄(嗟歎)하여 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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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9일)
 
 
 

3. 하. 골동(骨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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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세 번 기회가 있어서 골동 취미에 대한 의견을 토로해 본 적이 있었으나 문예 작품을 비평하는 문장에서 간단히 언급해 보았던 게제로 그것은 지극히 단순한 분석에 지나지 못하였다. 다시 말하면 나는 그것을 동양적 유현미(幽玄味)나 동양적 아취(雅趣)가 문예 작품에 나타난 것을 분석해 보기 위해서 토속, 민속 서화, 골동 같은 것들이 현대인의 기호나 취미로 보급화되는 경향에 관해서 몇 마디를 소비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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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것을 몇 개의 요점으로 간략(簡略)해 보면 (1) 선진 외국인의 이국적인 것에 대한 기호벽, (2) 고전 부흥열과 고전 발굴열에 최촉(催促)된 자기 문화의 애호열, (3) 복고 취미 등을 들었는데 이것은 단순하기는 하지만 그릇되었거나 잘못된 견해는 아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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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나는 다시금 다음 몇 가지를 첨부해서 생각하려 한다. 즉 경기를 타서 축재한 분들의 일종의 허영심과 이것의 일반 시민에의 침윤으로 연유된 상고(商賈, 브로커)의 형성 같은 것이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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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서화 고물의 중개 상인으로 고명한 모씨가 술회한 것을 읽으면 조선 인사 가운데서 이것을 수장(收藏)하여 지금 사계(斯界)의 중심에 앉은 이들은 모두 십년 전후에 시작한 분들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네들 간에 광범위로 이러한 취미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라는 것이다. 사회 사상의 퇴조기에 해당한다. 즉 고전 부흥열과 복고사상 대두와 시일을 같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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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선진 외국인들은 벌써부터 조선에 와서 이런 것을 수집하기에 노력하였다고 한다. 조선 호텔 앞에 양서로 간판을 붙인 집은 필자도 퍽 전부터 보아 온 것 같은데, 이것을 말할 것도 없이 선진 외국인의 이국 취미와 호기벽을 낚기 위한 상인의 착안이었을 것이다. 서양인으로부터 점점 옮아와서 대회사의 중역들을 거쳐서, 십년 전후하여 그것은 자기 문화의 발굴이라는 지극히 고상한 학문적 표어의 엄호사격하에 우리 사회에 대부대(大部隊)의 진출을 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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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경로를 보면 알겠지마는 축재(蓄財)에 있어 그리 손색이 없으면서 그 사회적인 지위와 명예에 있어 도저히 따를 길이 없는 군소 재산가와 갑작 부자들이 자기의 품격을 선양하고 교양과 취미의 의장(擬裝)을 위하여 허영심을 발동시킨 것도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글씨를 운운하고 그림을 지껄이고 질그릇이나 병조각을 주무러야 다 그렇듯한 신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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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전기 모씨의 말에 의하면 1, 2만에서 1, 2십만 가격의 골동, 미술을 수장한 분은 이제 그 수를 알기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개 중에는 기 백만 원에 해당하는 출중한 분도 있는 것 같다. 땅이나 주(株)를 가지고 있는 것만이 부자가 아니다. 광(鑛)을 가지고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골동을 가지고 있는 것도 축재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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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의「인간 희곡」을 읽으면 처처에 에리 마구스라는 골동 수집가가 나온다. 그는 유태인으로서 회화 골동의 상인으로부터 아마튜어로 물러앉자 굉장한 미술관을 만들고 그 곳에 자기가 일생을 경도해서 수집한 보석과 회화와 조각과 고물 골동을 진열해 놓고는 이것을 영맹(獰猛)한 세 마리의 개로 하여금 지키게 하고 있다. 그는 누(累)만금의 재산가이면서 1844년에는 이미 75세의 고령임에 불구하고 조식(粗食)하고 검약하고 아직도 걸작을 수집하는 데만 돈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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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스는 구라파의 지도를 한 장 가지고 있는데 걸작품의 소재를 그는 이 지도 위에 명시해 두고 그것을 끌어내서 제 손에 들어오게 하기 위하여 책략에 책략을 거듭하고 있다. 그가 희망하는 조건 내에서 걸작이 하나 발견되면 갑자기 그의 생활은 생기를 띠고 비로소 그의 분주는 시작되고 신경은 활처럼 긴장하여 ‘필승을 기할 마렝고의 일전’에 나선 것처럼 의기가 자못 등등하다고 발자크는 묘사하고 있다. 이것으로도 알 수 있지마는 발자크는 이것을 하나의 수집광, 다시 말하면 예의 편집광으로 취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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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 유명한 「종형(從兄) 퐁스」의 성격 창조를 보아도 이것은 마찬가지다. 불쌍하고 가난한 노음악가가 아무도 모르게 기십 년간을 고심하여 수집한 그의 미술관을 보라! 이 미술관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퐁스에게 있어 부모요, 애인이요, 그의 전부라고 말하는 슈무케 영감에게도 그는 그것을 알리지 않고 혼자서 숨어서 즐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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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권태나, 어떠한 우울도 사람이 어떤 마니아(편집)에 빠지고 말면 그의 혼은 구원을 받는다. 환란의 술잔, 어떤 시대의 사람에게서도 그렇게 불리워지는 술잔을 마셔 버릴 능력이 없는 사람은 무에던지 좋으니까 한 수집에 정력을 기울여 보라! 그러면 제군은 적은 비용으로 행복의 지금(地金)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라고 발자크는 기록하고 있다. 수집광! 조선 사회에서도 이러한 편집광이 나오려 하는가! 그것이 다른 부류에서보다 골동 수집광에서 비롯한다는 것도 재미나지 아니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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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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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1940년 5월 28 ~ 30일)
【원문】풍속수감(風俗隨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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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천(金南天) [저자]
 
  조선 일보(朝鮮日報)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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