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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12.10
채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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鐵 條 網[철조망]
 
 
2
두통을 나수느라고 들창을 열고 서서 한동안 멀리‘화장(華藏)고개’를 바라다보다가 불현듯 생각이 나 막대를 이끌고 모처럼만에 산책을 나섰다.
 
3
참으로 오래간만에 나서는 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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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고 다니던 코스라 무심코 뒤꼍으로 해서 밭 사이의 언덕길을 올라 외딴집 모퉁이를 지나니, 별안간 보지 못하던 철조망이 나의 산책지인 율림 들어가는 길목을 가로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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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새 3년을 두고 내 것같이 무시로 그리고 아무 거리낌없이 올라가 소요를 하곤 하던 그 율림이었었는데, 불의에 그 기승스런 마름쇠 울타리가 가로막혔음을 보았을 적엔 놈(者[자])의 장애성(障碍性)이 덮어놓고 괘씸해 못했다.
 
6
그러다가 뒤미처 문득‘옳거니! 내 땅이 아니었었지!’하는 생각이 나면서는 부질없이 그를 노(怒)했던 나 자신이 속담의 소나기 맞은 ×놈 본이요, 반대로 철조망씨는 오히려 그 출현이 더디었던 듯 지극히 정당해 보였다.
 
7
히틀러씨의 심장과는 계통이 다른 생리이어서 감히‘갖지 못한’자세(姿勢)를 자세(姿勢)하여‘한몫 먹자고’부등부등 떼를 쓰잘 비위는 통히 없고, 그러고 보니 겨우 형식뿐이지 드나들자면 또한 드나들지 못할 것은 없는 그 몇 가닥의 철조망이건만 나에게 대해서는 마지노 라인 이상의 방어성을 가진 자인지라 곱다시 발길을 돌려놓았더니라다.
 
8
앞으로 다시 명년이 오도록 이곳서 우거(寓居)를 할는지 어찌 될는지는 막측(莫測)이나 봄 일찌기 할미꽃이며 괴밥꽃이 필 그 무렵부터 시작하여 늦은 가을까지 가지각색 야생의 꽃과 풀향기와 그리고 원근의 조망 이런 것으로 나를 즐겁게 해주던 동산(東山)이 이제부터는 영영 금단의 역이 되고 말았나 하면, 새 채비로‘소유(所有)’의 존재가 원망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9
벌써 누차 하는 말이지만, 이 철조망 한가지만 두고 보아도 토지를 가지지를 못한 문필인에게 전원이란 서울 올라다니는 데 시간과 비용을 들이게 하는 불편한 곳일 따름이지 정이 붙어지질 않는 영원한 이방임을 새삼스러이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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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대지와 친하라 흙과 친하라 라는 권(勸)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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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친하재도 친할 대지, 친할 흙이 없는데야 무책임한 권이 아닐 수 없을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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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어려서부터 농사일로 잔뼈가 굵어온 타고난 농사꾼이라면야 제 토지는 있거나 없거나 하다못해 소작이라도 부쳐먹고 산다지만, 만일 나 같은 족속이 지주께 나아가서 토지를 빌려줍시사고 한다면, 씨는 나의 거칠지 못한 손길과 창백한 얼굴을 가리켜 종자 밑지는 장난일라컨 그만두는 게 좋겠다고 대답하기가 십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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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생각이 나거니와 문우(文友) 무영(無影)이 직업과 도시를 한꺼번에 하직하고서 촌간(村間)으로 물러갔고, 간 뒤의 제일성인「제1과 제1장」이란 작품을 본다치면, 흙에 큰 희망을 둔 새생활을 발견한 모양인데, 겸하여 그의「궁촌일기(宮村日記)」에 의하면 앞으로 약간의 토지라도 획득하려는 열이 넘쳐 보였는데. 사실로 그러한 묘방(妙方)을 터득한 게 있기만 하단다면, 한번 그를 찾아가서 전습(傳習)을 청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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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년을 부지런히 가꾸어 1년의 식량이 될 수 있는 최소한도의 토지가 있다고 하면, 그날로써 벌제위명(伐齊爲名)의 이 어둡잖은 문필장난을 폐하고 말겠다.
 
 
15
<每日新報[매일신보] 1939. 12. 10>
【원문】철조망(鐵條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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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만식(蔡萬植) [저자]
 
  매일 신보(每日申報) [출처]
 
  1939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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