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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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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3
채만식
1
車中[차중]에서
 
 
2
안해를 데리고 모처럼 고향엘 다니러 내려가는 길이었다.
 
3
밤 열한시 이십분의 목포행(木浦行) 직통열차는 다른 간선열차와 마찬가지로 언제고 옆구리가 터지도록 만원 이상인 것이 보통인데, 맨 앞칸인 소치도 있겠지만 그렇더라고 승객이 도리어 모자랄 지경으로, 많이 좌석이 남는 것은 자못 이외가 아닐 수 없었다. 군데군데 그래서 벌써, 이인분의 한 걸상을 혼자 차지하고는 편안히 누워, 일찌감치 잠을 청하는 사람도 있고 하여, 실없이 때아닌 원시(原始)(?)풍경을 구경하겠었다.
 
4
우리 내외는 문치 가까이 한 복스에서, 어떤 향객(鄕客) 한 사람과 동석이 되었다. 나는 그 향객과 같이 앉고, 안해는 혼자 앉게 했다. 차멀미를 몹시 하는 그라, 끝내 이대로만 좌석이 여유가 있을 양이면, 그리하여 누워서 가느라면, 자연 부대끼기도 덜 부대낄 테요 해서, 우선 다행이었다. 그러나 미구에 우리는, 부득이 선량해야 했다.
 
5
남경역역(南京域驛)인데, 이윽고 발차벨이 울 즈음이야 웬 헙수룩한 촌 농 군태의 동저고리 바람에 방한 벙거지만 눌러 쓴 중년 남자 하나가, 과히 촌스럽지 않은 소녀 하나를 뒤세우고 황급히 차칸으로 들이달았다.
 
6
가쁜 숨을 허얼헐, 손에 든 모조피 트렁크와 보따리를 주체 못해 하면서, 그 어리뚱하여 좌석을 찾느라고 연방 고개를 끼웃거리는 것이나. 빈 자리는 만만히 없었다. 원은 없는 게 아니지만, 남은 좌석을 두 사람분씩 점령하고 누웠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당장은 없음이나 일반이었다.
 
7
둘이가 와서 마침 멈춰 서기는 우리가 앉은 복스 바로 옆이었다.- 모습이 비슷 같고 나이가 훨씬 층지는 걸로 보아 정녕 부녀 일행인 듯 싶었다.-둘이는 그런데, 거기 내 안해의 옆으로 한 사람 분이나마 비어 있는 좌석을 거듭 눈여겨보기는 하면서도, 섬뻑 앉으려고는 않는다.
 
8
실상은 누구든 하나만이라도 우선 앉고는 싶으나, 차마 어려워서 주저를 하는 눈치였다.
 
9
그러고서 그 아버지 되는 사람이, 부질없이 둘레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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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 찬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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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래두 좀 앉어얄 띠, 으떡허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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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걱정만 쑹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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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사람네의 이 무단한 소심이 항상, 동정스럽기 전에 더럭 우선 심정이 나서 못하는 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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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연히 빈 자리를 두어두고서, 무엇이 무서우며 누구를 거리껴, 앉기를 주저하느냔 말이다. 방금 그 맞은편 복스는 한 사람씩이 한 걸상씩을 차지하고 누웠으니, 거기를 비게 했으면 부녀가 같이 앉을 수가 더구나 있지를 않은가. 떳떳이 그리할 수가 있는 것이 아닌가.
 
15
결코 그것은 겸손이나 순박함이 아니었다. 또, 일이등 승객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종의 거만한 예절도 아니었다. 나 자신부터도 혹간 이등차를 얻어 탈 적이면 좀처럼 남이 누웠는 자리를 나 자신이서 나아가 청하려고 않고 으례 전무차장(專務車掌)이나 보이를 시키곤 하는 것이지만, 갈데없는 아니꼬운 교만인데, 그러나 촌사람들의 그것은 제법 그런 교만도 아니었다. 오로지 그것은 저보다 지체 나은 사람을 덮어놓고 어려워하며, 조심되어 하는 자굴(自屈)이요, 소심(小心)인 것이었다. 특히 양복낱이라도 입은 사람이면 감히 그에겐 말조차 붙이기를 서먹서먹해하는 ……
 
16
물론 거기에는 일반으로, 소위 지체 나은 사람이란 사람들이(이런 경우의 지체란 건 순전히 의표(儀表)로부터 오는 것인데) 하류 사람, 즉 의복이 허술한 농민이랄지 노동자들허구는 자리를 같이 하기에 노골적으로 불쾌한 내색을 한다는 사정이 없음은 아니었다. 그런데다가 가뜩이나 조선땅의 하류 사람들은, 그중에서도 촌 농민들은 오백 년 천 년을 두고 웃사람들인 관원(官員)이며 지주(地主)에게 부대껴만 살아왔지, 친하거나 당당힌 살아오지 못한 관계상, 아직까지도 그런 사람들을 보기만 해도 제풀에 공연히 그 앞이 어렵고 불안하고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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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정상을 이해할 수 있는 이상 가령 값 헐하나따나, 동정이라면 몰라도 혼자서 속으로 역정을 내다께, 생각하면 쑥스럽고 인간 용렬(庸劣)스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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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백번 쑥이요 용렬스러도, 그 못난 거동이 허턱 배알이 상하고 그래서 짜증이 나는데야 또한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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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는 나보다는 고지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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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잔뜩 시방 ‘댁은 여보, 공차 타우? 빈 자릴 두어두구서, 어째 앉질 못허우?’이렇게 버럭 지청구를 해주고 싶은 것을 꾸욱 참고 있는데, 안해가 그러자 소녀의 팔꿈치를 잡아당기면서 권을 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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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비었다! 앉어라, 응?”
 
22
“………”
 
23
소녀는 그제서야, 배깃이 웃을 듯하면서 말없이 얼른 자리에 앉는다. 아버지 되는 사람은 허리를 꾸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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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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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뒤미처 벙거지까지 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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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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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정을 삭혀, 친절하려고 했으나 말이 그다지 순하게는 나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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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꺼정 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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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계(金堤:김제)까장 가넝만이라우?”
 
30
“게, 밤새두룩 이렇게 서서 갈 심이요?”
 
31
“예헤! 아니라우! 그리두 자리가 말짱 저렇기……”
 
32
“눈 사람을, 가서 깨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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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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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망설이고 있는 것을, 나는 어성을 더욱 거칠게
 
35
“잔말 말구, 가서 흔들어 깨워요! 안 듣거들랑 차장더러 말을 하구……”
 
36
맞은편 복스에서 가면(假眠)을 하고 누웠던 양복씨는 몇번을 찔벅거려서야 겨우 푸스스 일어났다. 그러면서, 좀 앉자고 사정하는 것을, 빚연기라도 해주는 채권자처럼 다뿍 못마땅한 상오를 하며, 조금 비켜주는 시늉을 한다. 나는 약차하면 그 사람을 내 자리로 오게 하고, 내가 그리로 갈 작정으로, 엉거주춤 몸을 일으키기까지 했다가 도로 앉았다.
 
37
고개를 돌리는데 소녀의 고마와하는 눈이 기다리고 있었다.
 
38
그 얼굴이 무엇인지 모를 애련함을 느끼게 하여, 다시금 자세히 여살펴보았다.
 
39
열세 살이나 먹었을까 네 살이나 먹었을까, 연약하디연약한 얼굴인데, 눈이 퍽 컸다. 그리고 목이 가늘고 길고.
 
40
어린아이들이 특히 계집아이가, 얼굴이 그렇게 생겨놓으면, 흔히 보이기를 애련해 보이는 법이다.
 
41
이 아이는 그런데, 화색(和色)이 없고, 몹시 기력이 지치기까지 한 것 같아서, 한결 그런 느낌을 더하게 하는 성싶었다.
 
42
불쑥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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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디가 아푸냐?”
 
44
“얘애.”
 
45
말소리가 아주 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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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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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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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가 아픈지 몰라?”
 
49
“얘애. 그냥 기운이 없구……”
 
50
그러면서 캑캑, 밭은 기침을 하느라고 손바닥으로 입을 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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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뜻 그 기침이 미심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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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질로 생긴 얼굴이고, 눈이, 눈만 어울리지 않게 크고, 목이 길고, 가늘고, 그렇게 보니, 가슴도 좁은 것 같고.
 
53
“흐음……영등포 어떤 공장에 있었지?”
 
54
통치마를 입고, 긴 양말에 운동화를 신고 했어도 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아닌 줄은 진작 알았었다. 저고리 고름이 발등까지 닿도록 긴 것도, 학교 아이들에겐 없는 풍속이었다.
 
55
소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56
“××회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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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주를 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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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버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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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만때버틈이라우.”
 
60
“아푸긴?”
 
61
“츰 시초는 …… 저어, 작년 가을버틈이라우. 그러구 지난 달버틈 아주, 밥두 잘 못 먹구, 기운이 없어서 밤낮 누웠기만 허구……”
 
62
“기침이 나구?”
 
63
“얘애.”
 
64
“저녁때가 되구 한다치면 몸이 오삭오삭 춥구, 그렇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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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애.”
 
66
“담이 많이 나오구?”
 
67
“얘애.”
 
68
“밤에 잘 때 식은땀 나구?”
 
69
“얘애…… 어떻게 그렇게 알어기라우?”
 
70
차차루, 퍽 신기한 듯, 눈이 빛나더니 드디어 묻던 것이다.
 
71
“으음, 아는수가 있지…… 그래, 어깨가 무겁지?”
 
72
“얘애.”
 
73
“병원에 다녔든?”
 
74
“얘애, 회사 병원으……”
 
75
“그래, 의사가 무에래지?”
 
76
“그냥 그저, 몸이 약히서 그런다구만 허지, 안 가르쳐 주어라우!”
 
77
“으음……”
 
78
나는 몇번이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얼굴이 마냥 흐려듦을 깨닫지 못했다.
 
79
그런 나의 얼굴을 말끔히 건너다보고 있다가, 이윽고 소녀는
 
80
“안 낫는 병이지라우?”
 
81
하고 묻는다.
 
82
나는 속을 들킨 것 같아 황망히
 
83
“안 낫긴 왜?”
 
84
“낫어요?”
 
85
묻는다느니보다도 떠보는 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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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욱 흠선히
 
87
“낫구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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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병인데요?”
 
89
아뿔싸. 나는 그만 그애의 꾀에 넘어간 맥이었다. 선뜻 그래서, 대답할 말이 궁하여
 
90
“병? 으음…… 글쎄에……”
 
91
하고 일컷 더듬다가
 
92
“나두 자센 모르겠다만, 아마 몸이 약해서 그렇겠지!”
 
93
“그건 나두 아는데요, 머!”
 
94
“아냐! 병이 없어두 몸이 약한다치면 더러 그런 수가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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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말이라우?”
 
96
소녀는 수월히 나한테 속고 말던 것이다. 웃으면서 안심하는 눈이 그러했다.
 
97
나는, 나대로 또한 안심을 하면서, 커다랗게 고개를 끄덕거려 주었다.
 
98
“그러구, 참말루 꼭 낫어라우?,
 
99
“아무렴…… 느이 집이 가서, 응? 저어 달걀이랑, 또오 고기랑 많이 먹구, 그리고, 운동은 하지 말구서 가만히 드러눴구, 그럼 인제 낫는다.”
 
100
“의사두 그러더만이라우…… 그러구, 간유(肝油)를 사다가 두구 먹으라구라우.”
 
101
“간유! 아암 간유 조오치.”
 
102
“그렇지만 돈이 있어야 허지라우! 우리 짐은 퍽 가난히여서……”
 
103
나는 대답해 줄 말이 없어서 무연(撫然)히 소녀를 건너다보기나 할 따름이었다. 그러다가, 종시 한심한 생각이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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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얼마나 모아가지구 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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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이십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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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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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원 각구, 간유 사먹구 허먼, 다아 나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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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109
그러나 나는 끝까지 거짓말을 했지, 별수 없었다.
 
110
“쯧! 낫겠지!”
 
111
“제발, 어서 얼른 좀 낫어주었으면!”
 
112
잠깐, 말이 끊긴 사이, 안해가 과실을 꺼내서 소녀를 주고 하면서 이번엔 저희끼리 이야기가 어울렸다.
 
113
안해는, 일금(日給)은 얼마나 받았으며, 밥값은 얼마씩이며, 일은 어떤 일을 했으며, 또 집안에 부모랑 누가 있으며, 이런 이야기를 묻고, 소녀는 종알종알 대답을 하고.
 
114
그동안 나는, 안해가 소녀의 아버지를 주라는 사과와 귤을 손에 쥔채, 정신을 놓고 앉아서, 그 당신의 태평(泰平)으로 꾸벅꾸벅 조는 꼬락서니만 바라다보고 있었다.
 
115
“그래, 몸 인제 다아 낫어가지구?”
 
116
이윽고 안해가 소녀더러 이런 말을 다시 묻던 것이다.
 
117
“다시 또 공장으루 가니?”
 
118
“아니라우!”
 
119
나는 문득 돌려다보았다. 그때까지 소녀는 고개를 가로 흔들고 있다.
 
120
안해는 웃으면서,
 
121
“왜?”
 
122
“싫여라우?”
 
123
“일이?”
 
124
“집이 가구 싶어서 못 있어라우!”
 
125
“오오!”
 
126
그리고는 조금 있다가, 타이르듯
 
127
“그래, 잘 생각했다!”
 
128
“또 오라구는 히여두……”
 
129
“인전 비누질이랑 살림살이하는 거나 배워가지구 응?……”
 
130
“몸 다아 낫거든, 말야?”
 
131
“얘애.”
 
132
“일찌감치, 존 데루 시집이나 가거라?”
 
133
“……”
 
134
그래도 계집아이라서, 시집이란 말엔 부끄럼을 타 고개를 외로 튼다.
 
135
“지금, 열네 살? 다섯 살?”
 
136
“열네 살이라우,”
 
137
“그럼, 삼 년이나 사 년만 있으믄 시집 가두 하겠구나? 그렇지?”
 
138
“……”
 
139
“자알 조섭해서, 몸 다아 낫거들랑, 조오은 시집으루 시집 가는거야, 응?”
 
140
“……”
 
141
“응?”
 
142
“얘애.”
 
143
“오옳지!”
 
144
안해도 웃고, 소녀도 웃고, 나도 진작부터 웃고 있었다.
 
145
그러나 나는 뒤미처, 웃음이 지워지면서, 혼자 속으로 뇌었다.
 
146
‘허! T·B가 낫거든! T·B가 낫거든, 시집을 가고!’
 
147
부지할 수 없는 슬픔과, 일변 노염이 복받쳐올랐다.
 
148
만만하니, 시방 저 천치처럼 입을 벌리고 꾸벅거리며 졸기에 세상 모르는 화상이라도, 면상(面上)을 이 과실로 냅다 갈겨주었으면 속이 후련할 것 같았다.
 
149
물론 그에게 죄가 있는 것 아니었다. 그러나 그 죄없는 것이 차라리 보기 싫고 미웠다.
【원문】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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