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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傳統)의 생색(生色)과 제약(制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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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9.30
채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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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傳統의 生色 制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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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빈(任英彬) 씨라고 하면 지금으로부터 15,6년 전 이광수·방인근(方仁根) 씨들의『조선문단』을 통하여 문단에 나온 당시의 신진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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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의『조선문단』에서는 한때 신인의 작품을 추천·당선·가작의 세 가지 등급으로 골라 천거 발표를 한 적이 있었다. 요새『문장』에서 하는 방식과 비슷한 것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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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제1회 때에 겸하여 최고위인 추천으로 두 사람이 나왔는데, 그중의 하나가 전기 임영빈 씨이었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불초 필자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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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조그마한(그러나 재미스런) 인연이 있기도 한 소치리라. 우리는 그 뒤로도 함께 한 1,2년 동안 가끔가끔 작품을 발표해 왔었고, 그러다 임씨는 문득 하루아침 문단으로부터 실종이 되어 버렸었다. 그리고는 감감 소식이 없은 채 13,4년이 지나갔다. 해서 영영 문학으로부터 떠난 것이거니 했었는데, 뜻밖에도 그가 이번에 다시「민씨(閔氏)와 토요 오후(土曜午後) 를 가지고 문단에 돌현(突現)을 했다. 참으로 감회무량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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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랴부랴 작품을 읽어보았다. 읽으면서 일변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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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별반 큰 작품은 아니었었다. 물론 빈틈없이 꼭 짜인 얌전스런 소설임엔 갈데없으나 역작이라든지 혹은 대작이라든지 하는 성질의 것은 아니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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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의 ‘솜씨’와 더불어 작품 「민씨와 토요 오후」의 대문단적 수준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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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용 거기 어디서 첩경 대할 수 있는 현 중견의 작품수준과 꼭 동등한 수준의 작품이었었다. 작품이 그럴 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어떤 제재라도 가지고서 만져만 놓으면 역시 고만한 수준에서는 결코 떨어질 염려가 없을 작품을 만들어내기에 족한 썩 능란하고 터가 잡힌 그런 솜씨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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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언이폐지하면 현 문단의 중견작가의 한 사람으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을 작가적 역량을 지닌 것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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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버린 것이 아니라 그동안 공부를 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그러나 한편으로는 또 전통의 힘이란 지대함을 새삼스럽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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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년 전 그때의 신인이면 누구나 마찬가지로 임씨도 문학적 역량이란 심히 유치한 것이었었다. 지금의 신인들은 그때 당시의 신인에다 대면 한다하는 어른일 것이다. 더우기 임씨가 이번의「민씨와 토요 오후」에 의하여 보이고 있는 현유(現有) 역량과 그의 초기를 비교한다면 천양지차이가 없지 못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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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년 전에 있어서는 그렇듯 유치하던 실력밖엔 가지지 못했던 임씨가 그동안 현역으로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아왔으면서도 오늘날 그와 같이 현문단의 중견 수준을 따를 만한 작가적 역량을 체득하게 된 것이 대체 어디로부터서 우러난 것일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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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작품을 발표하는 등 현역으로는 활동을 중단은 했어도 서재적(書齋的)으로는 부적리 노력을 하고 관심을 하고 즉 공부를 계속해 온 공이 아닌 것은 아닐 것이다. 개인적인 재능의 도움이 아닌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공부랄지 재능이랄지의 수단에게 비타민을 공급하기는 진실로 조선문학의 짧으나마 전통의 힘이 아니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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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년을 두고서 여러 현 작가들의 손으로 하루 또 하루 한걸음 한걸음 꾸준히 쌓아올려 오늘의 수준에 도달을 한 조선문학의 실력 즉 그 유산이 아니고서는 아무리 노력과 재능이라고 하더라도 그 노력 그 재 능이 가서 섭취할 바 영양의 원천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전통의 고마움이란 이런 데서 그 면목이 잘 드러나는 것이라 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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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이라면 그러나 그처럼 고마운 것이면서도 일변 우리에게 대하여 냉혹한 질곡이 또한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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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임영빈 씨만 하더라도 14,5년을 서재에 물러나가서 꾸준히 공부를 계속해 내려온 배후에는 한가지의 큰 야심이 없지 못했을 것이다. 크게 한번 떨칠 수 있는 작가적 역량과 작품 즉 조선문학의 최고수준을 넘어서 세계적인 문학에의 의욕 이것이 막연하나마 노상 없지는 못했을 것이다. 혹은 그와 같은 야심이야말로 임씨로 하여금 14,5년이나 물러 가서 공부를 쌍게 한 동기일는지 모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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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막상 그가 오늘날에 예의「민씨와 토요 오후」에서 보인 바 작가적 역량과 작품적인 실가(實價)는 마침 현 중견의 수준까지엔 와서 찼을지 언정 한걸음도 그 이상은 나아가지를 못하고 말지를 않았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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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인을 그런데 한갓 임씨 개인의 공부나 재능의 불비에 돌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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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는 역시 문화적으로 그 사회 안의 개체는 그 사회가 가진 바 수준에서 용이히 뛰쳐나지 못하도록 전통이 들어서 제약을 하는 때문이었지 다른 것이 아닐 것이다.
【원문】전통(傳統)의 생색(生色)과 제약(制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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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만식(蔡萬植) [저자]
 
  매일 신보(每日申報) [출처]
 
  1940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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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영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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