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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의 자는 얼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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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
최서해
1
아내의 자는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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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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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으니 추워질 일이다. 더울 때가 되면 덥고 추울 때가 되면 추워지는 것은 자연의 힘이다. 자연의 힘을 누가 막으며 무어라 칭원하랴? 하지만 자연의 그 힘에 대항할 만한 무기가 없는 사람들의 입에서 칭원이 안 나올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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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워지니 그것을 대항하려면 불이 필요하다. 나뭇바리나 단단히 장만해야 될 것이다. 그것은 방을 데우는 데 필요하지만 찬 눈과 쓰린 바람을 무릅쓰고 거리에 나다니려면 의복도 빠지지 못할 요구 조건의 하나이다. 자켓이나 외투 같은 것은 너무도 고상한 것이니 바라볼 생념도 없지만 튼튼한 무명옷에 솜이나 툭툭히 놓아 입어야 얼어 죽은 귀신을 면할 일이다. 나뭇바리 의복은 바깥 장치지만 속 장치도 그만큼은 필요하고 토장국 조밥이라도 뜨뜻이 불쑥이 먹어야 이 추운 겨울에 어린 아내와 같이 이놈의 펄떡거리는 심장의 뜀을 보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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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담도 이 삼대 요건─나뭇바리, 의복, 쌀─인데 어찌해야 이것을 얻나. 못 얻으면 아까운 대로 북망산천의 한줌 흙이 될 것이고 요행으로 얻으면 하루라도 무너져 가는 세상 꼬락서니를 더 볼 것이다. 그것도 세상이 다 같이 그렇다면 문제가 없다. 다 같이 그 무서운 자연의 위력 아래서 삼대 요건이 구비치 못하여 쓰러지거나 그렇지 않으면 삼대 요건이 딱 들어맞아서 다 같이 버쩍 일어서거나 한다면 그렇게 괴로울 것도 없는 일이요 슬플 것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으니 괴로운 일이요. 슬픈 일이다.’
 
6
‘어떤 사람은 삼대 요건이 그 돗수에 넘어서 걱정인데 어떤 사람…… 나 같은 놈은 돗수에 못 차기는 고사하고 아주 텅 빈 판이며 ×스의 자본론을 읽지 않아도 ×스의 머리를 가지게 된다. 프롤레타리아 운동자와 접촉을 못해도 자연 그렇게 된다. 이래서 이 세상은─소위 자본 문명 중심의 이 제도는 제이세 제삼세─백세 천세의 많은 ×스를 만드는 것이다. 하여튼 제도는 묘하다. 꽤 고솜하게 되었다. 염통에 고름 든 줄은 몰라도 손톱눈에 가시 든 줄은 안다고 자본 문명은 속 썩는 줄은 모르고 겉치장 자랑에 비린 냄새 나는 웃음을 금치 못한다. 참 묘한데, 꽤 고솜한데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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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생각이 기선의 머릿속에 스며들어서 위로 아래로 오르내리다가 ‘묘하다. 꽤 고솜하다’는 결론에 이르는 때면 그로도 알 수 없어 그는 흥하였다. 그 코웃음! 그것은 묘하고 꽤 고솜한 세상의 미래에 닥칠 어떠한 현상을 눈앞에 그려 보고 치는 코웃음만이 아니라 자기의 조그마한 힘을 조롱하는 뜻도 없지 않다.
 
8
앉으나 서나 어느때나 그의 머리는 그러한 생각에 쉴새가 없었다. 봄이나 여름에는 그 생각 가운데서도 나뭇바리와 솜 의복이 빠지니 좀 늦춰진다고도 하겠지만 늦은 가을로부터 점점 이렇게 겨울이 되는 때, 그의 생각은 한층 복잡하여지고 한층 무거워진다.
 
9
‘한 몸이면 또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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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선이는 아내를 생각하면 더욱 견딜 수 없었다. 어리고 약한 아내가 차디찬 구들에서 자기의 손만 치어다보는 양이 눈앞에 떠오르는 때면 꽤 낙천적인 그의 가슴에도 버석거리는 얼음 덩어리가 꾸욱 들어박힌다. 이러는 때마다 그의 머리에는 번쩍번쩍하는 불길이 번개같이 지나갔다. 일어났다 꺼지고 꺼졌다가 일어나는 그 불길─처음에는 퍽 느리더니 이제는 돗수가 너무도 잦아서 일어났다. 꺼지는 남은 빛이 마저 사라지기 전에 뒤미처 번쩍하여 좀만 더 지나면 ×과 ××엉겨서 한 커단 ×××이 될 터이니 그렇게 되면 ××× 어찌 그 뇌 속에서만 돌리라고 보증을 하랴 기선이 자신도 그것을 느낀다. 그럴 때마다 그는 ×××생각한다. ×××─×× ×××─몇만 몇천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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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이요! 고오기몬데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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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숭숭한 생각에 어디가 어딘지도 의식치 못한 기선이는 전차 차장의 소리에 놀라서 뛰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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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모의 낯바대기같이 찡그린 하늘 아래 으릉으릉 전선을 울리면서 스쳐가는 바람은 아직도 겹옷 입은 그의 몸에 스며들어서 뼛속까지 사무친다. 그는 몸을 송그리 굴면서 장충단 쪽으로 향하였다. 금년 가을에 필운동 막바지에서 집세 때문에 몰려난 뒤에 이리로 왔다. 중앙지는 세가 너무도 비싸서 그에게는 인연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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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밥을 먹은 뒤에 그는 책상에 마주 앉아서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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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들이 어떻게 찬지 얼음판에 앉은 것같이 궁둥이가 저려 올랐다. 곁에 앉아서 바느질하는 아내도 추운지 몸을 옹송그리고 앉아서 바느질을 하는 그 낯빛은 검푸르다. 그것을 볼 때 기선의 가슴은 그저 스르르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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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읽던 책을 턱 덮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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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추운데 낼 하구 어서 자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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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담배를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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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을 어서 사야 할 텐데 어쩌면 좋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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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남편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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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 사지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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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코웃음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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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낼은 사다 주어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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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인정 있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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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내일은 꼭 사다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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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쾌활스럽게 말하면서 아내를 보고 벙긋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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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또 거짓말─ 어제는 꼭 오늘도 꼭 하고도─ 낼은 쌀도 팔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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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바느질을 하면서 뒷말을 혼잣말처럼 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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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다 해 주지─. 그것만 해, 돈만 있으면 삼층 양옥에 피아노 놓고─,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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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것 봐, 딴소리만 툭툭 하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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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힐끔 눈을 주면서 방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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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글쎄 내가 두고 안 해 주오? 없으니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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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갑갑한 듯이 아내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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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집세 때문에 오늘도 왔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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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낯에는 어둑한 기운이 스르르 덮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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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랍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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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니 창피막심해서─. 사람이─ 나가라는둥 별별 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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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말은 흐리마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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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댐에는 오거든 좀 굴어 놓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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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소리는 짜증이 절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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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저러니 내가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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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바느질감을 밀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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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것도 못 굴어 놓는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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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내가 뭐라고 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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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청원이나 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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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뱃심도 없이 어떻게 살겠소! 없는 놈이 뱃심이나 부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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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다 당신은 뱃심 잘 부립디다. 빚쟁이가 오면 말도 못 하면서 흥!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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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49
아내의 웃는 바람에 그도 웃었다. 딴은 그렇다. 빚장이가 오면 자기 역시 한풀 죽어진다. 자기가 그렇거든 아내는 더할 일이다. 그도 그런 것 저런 것 다 알면서도 제 짜증에 공연히 푸닥거리를 논 것이었다. 더구나 그 몰염치한 가주의 우악한 소리에 가냘픈 아내의 목청을 비교하여 보고 그들이 서로 만나 나가라 말아라 하고 집세 때문에 다투는 광경이 눈앞에 선연히 떠오르는 것 같아서 붙쾌하였다. 동시에 아내가 불쌍하기 그지 없었다. 그는 다시 책을 들었다. 모든 화를 잊어버리려고 하였다. 주관이 힘세게 움직일 때 객관적 용납을 허락치 않는 것이다. 입으로는 줄줄 읽었으나, 눈으로 보았으나 그것이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었다. 머릿속에는 이 생각 저 생각이 용솟음을 쳤다.
 
 
50
이러한 생활도 하루나 이틀이면 모르지만 벌써 얼마냐? 삼십 년 가까이 어느날 볕이라고 볼 때가 없으니 고생도 할 대로 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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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나 명년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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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희망을 붙여 왔으나 그 날이 그 턱이다. 겨우 일자리라고 얻어 놓으면 월급이 나오지 않고 그렇다고 뛰어나오면 역시 일자리를 얻기 어렵고 이제는 막다른 골목이다. 그것도 혼자 있는 때 같으면 배고프나 헐벗으나 괜찮겠지만 여편네까지 거느리게 되니 짐은 몇 갑절이나 더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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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한 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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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너무도 괴로운 때면 이렇게 아니 하였다는 것을 후회하였다. 어느 때든지 생활 곤란을 면하고야 장가든다고 성명한 자기가 아니였던가 하고 생각하면 자기라는 인격의 의지가 너무도 약하게 보였다. 그러나 한걸음 더 들어가는 때에는 그의 생각은 뒤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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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이다. 청춘이다. 사람은 빵에 주리나 성에 주리나 주린 의미에 있어서는 한가지다. 생활 곤란─그것이 내게는 점점 더 닥치면 닥쳤지 늦추어질 날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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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어떤 놈은 계집을 세넷씩 가지고 어떤 놈은 하나인 것도 못 먹여서─.”
 
57
이렇게 생각하면 가슴이 좀 풀리고 무슨 빛이 나아갈 앞길의 빛이 뵈는 것 같으나 이론은 어디까지 이론이요, 실제는 어디까지 사실이다. 자기의 현상을 돌아볼 때도 가슴은 뿌듯하였다. 그는 펴놓았던 책을 덮으면서 아내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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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아랫목에 펴놓은 이불 위에 입은 채 옹송그리고 누워서 삭 삭 잔다.
 
59
창백한 아내의 얼굴─ 자기와 처음 만날 때에는 포동포동한 두 뺨이 발그레하고 빨간 입술에 윤기가 흐르더니 불과 일 년이 못 되어서 뺨이 드러나고 입술이 검푸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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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주림의 상징이여 ! 굶은 귀신이여! 그것을 본 그의 머리에는 지나간 기억이 또다시 번쩍거렸다. 밥이 적으면 자기는 배가 아프다고 핑계를 하고 적게 먹었고 구들이 차면 자기의 체온을 아내에게 전하려고 애를 썼다. 그 아내도 어떤 때는 꾀배를 앓고 드러누워서 밥을 한술이라도 더 자기 입에 넣으려고 애쓰는 것을 보았다. 그의 눈은 흐리었다. 가슴은 쓰렸다.
 
61
그런 것 저런 것 생각하면서 지난해의 모습이 다 스러진 아내의 자는 낯을 볼 때 그는 자신도 모르게,
 
62
“오오 주린 귀신이여!”
 
63
하였다. 그의 눈에는 핏대가 섰다. 그 모든 것이 보기가 싫었다. 주위는 검은 연기가 들어찬 것 같았다. 그만 칼이나 도끼로 아내를 푹 찍어서 그 꼴을 보지 말고 자기도 죽어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초초 분분이 흘러서 끓던 생각이 주저앉을 때 그의 가슴에는 말할 수 없는 정회가 치밀었다. 아내에게 대한 그 몹쓸 생각을 뉘우쳤다. 뉘우치는 정이 치밀어오를 때 그는 그로도 모를 힘에 아내의 목을 꼭 껴안았다.
 
64
기선의 두 눈에서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은 방울방울이 아내의 낯에 떨어졌다. 그 바람에 잠을 깬 아내도 기선의 목을 꼭 껴안았다.
 
65
뜨거운 청춘의 가슴에 끓어넘치는 순진한 정이 서로 엉키는 때에 사람은 새로운 힘을 얻는다.
【원문】아내의 자는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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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서해(崔曙海)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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