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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화(神話)ㆍ전설상(傳說上)의 우(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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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1
최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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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話[신화]ㆍ傳說上[전설상]의 牛[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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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生[인생]과의 관계로 말하여 동물의 중에 소중한 것은 가축이거니와, 가축의 중에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고금 동서 없이 牛[우]가 그것일까 합니다. 犬[견]ㆍ馬[마]ㆍ羊[양]ㆍ鷄[계] 등이 혹 식용 혹 사역용으로 대개 한두가지 소용에 당할 뿐이지마는, 牛[우]는 살려서나 죽여서나, 온 몸에 버릴 것이 없고, 털 똥까지라도 다 그대로 인생에 요긴한 소용이 되는 터입니다. 그런데 牛[우]는 가축의 중에서는 가장 큰 것이요, 또 그 내력을 보아도 인류가 야생의 동물을 붙잡아서 가축이란 것을 만들 적에, 가장 먼저 사람에게 길들여진 것이 犬[견]과 및 이 牛[우]이었다 합니다. 구석기 시대의 예술적 유적으로 유명한 西班牙[서반아]의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에는 野牛[야우]가 여러 가지 형태로 그려 있어, 다른 무엇보다도 수가 많음은, 이만큼 그네의 주의가 더 깊었음을 살필 것입니다. 또 瑞西[서서] 호반의 석기시대 유적에는 牛[우]가 이미 인류 생활의 동무로 飼養[사양]된 증거를 삼을 만한 골격이 발견되며, 서력 기원전 三[삼]천 년 이상의 애급 고대 조각에도 牛[우]가 인류의 생활상에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졌음을 나타낸 것이 많이 전해 있읍니다. 또 希伯來(헤브라이)ㆍ印度[인도]ㆍ支那[지나]의 오랜 기록에도 牛[우]가 중요한 가축임을 전하는 것이 적지 않게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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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우]가 이렇게 가축 중에서도 오래고 두드러진 것임은 저절로 인간의 생활에 있는 그 가치를 크게 하고, 지위를 높게 할밖에 없었읍니다. 모든 문화 중 제사가 무엇보다 소중하던 고대에는, 神[신]에게 바치는 희생이 또한 극히 소중한 것인데, 희생으로 쓰는 것 중에 가장 큰 것이 牛[우]이었읍니다. 이를테면 天神[천신]이나 宗廟[종묘] 같은 큰 제사에 쓰는 희생은 이 牛[우]이던 것입니다. 또 牛[우]의 실용적 가치가 큼에 인하여, 경제 제도가 유치할 시대에는 牛[우]가 재산의 표준이 되고, 화폐의 소용이 된 일도 있었읍니다. 羅甸語[나전어]의 재산을 의미하는 Pecunia 가 牛[우]를 이르는 Pecus 란 語[어]에서 나오고, 영어에 가축을 나타내는 Cattle 과 재산을 나타내는 Capital 이란 말이 한 출처 가진 것 같음이 다 牛[우]가 곧 재산이던 시절의 流風餘韻[유풍여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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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우]가 가축 중에서 가장 중대하다고 한 생각은, 한 걸음 내켜서 牛[우]를 全家畜[전가축] 乃至[내지] 全動物[전동물] 中[중]에서 가장 갸륵한 것으로 만들게 하였읍니다. 그래서 牛[우]를 나타내는 語[어]가 그대로 全動物[전동물]을 의미하는 實例[실례]를 동서 각국에 봅니다. 이를테면 영어의 Cattle, 독일어의 Vieh, 프랑스어의 Betail 이 狹義[협의]로는 牛[우]를 나타내고, 廣義[광의]로는 전가축 내지 전동물을 의미함이 이미 그 一例[일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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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문에 동물계의 중대한 사실을 나타내는 문자, 곧 牝(빈)ㆍ牡(모)ㆍ犧[희]ㆍ牲[생] 等字[등자]를 牛扁[우편]을 붙여서 만든 것은 곧 牛[우]를 전 동물의 대표로 보는 관념에서 나온 것입니다. 또 한문으로 말하면, 牛[우]를 다만 동물계의 갸륵한 것으로만 볼 것 아니라, 인간 만물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 큰 것쯤으로 생각한 모양입니다. 이를테면 물건이라는 物字[물자] 件字[건자]가 다 牛扁[우편]으로 생기고, 물건을 두 쪽에 쪼갠 半[반]이란 字[자]를 역시 牛字[우자]와 分字[분자](半字[반자] 上部[상부]의 八[팔]은 分字[분자]의 略形[약형])를 합하여 만들고, 또 황소를 나타내는 字[자]를 특별이란 特字[특자]로 전용하는 것 같음이, 죄다 牛[우]를 크고 갸륵하게 봄에서 나온 것입니다. 일본어에 牛[우]를 ウシ라고 하는데 ウシ는 동시에 어른, 頭領[두령]의 意[의]로 씀도 재미있는 일이요, 조선어에 「소」라 하는 것도 우뚝 솟았다는 「소스」란 말로 더불어 관계가 있다고 본다 하면, 소를 끔찍하게 아는 관념은 조선어에도 형적을 머물러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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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간 牛[우]가 인류의 생활에 친근한 관계를 가지고, 더욱 인류가 토지를 개간하여 농업을 일삼게 된 뒤에는 그의 힘을 입음이 거의 절대적의 것이 있는 만큼 牛[우]를 중대시하는 경향이 날로 커질밖에 없었읍니다. 그런데 원시 미개한 인민들은 얼른하면 동물을 인류보다 갸륵하게 알고 그를 神聖化[신성화]하는 일이 많아서, 이른바 동물 숭배라는 현상이 어느 국민의 古代史[고대사]에도 다 나타나 있는 터입니다. 그런즉 이러한 문화 수준의 사회에 있어서는, 牛[우]와 같은 크고 요긴한 동물이 또한 신으로 위함을 받게 됨이 진실로 당연한 일이요, 더욱 牛[우]는 살아서는 농사를 지어주고, 죽어서는 血[혈]ㆍ肉[육]ㆍ皮[피]ㆍ骨[골] 모든 것으로 우리의 수용물이 되어, 언제나 식량적으로 인생에 은혜를 주매, 여러 神格[신격] 중에서도 牛[우]를 특별히 農業神[농업신]ㆍ生產力[생산력]의 神[신]ㆍ愛育性[애육성]의 神[신]으로 관념함도 또한 次第間[차제간]의 일이었읍니다. 그리해서 고대의 신화 중에는 牛[우]가 무엇보다도 農業神[농업신]으로 숭배된 것을 나타내고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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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애급의 신화에 가장 큰 神格[신격]으로 별명을 Ausar〓萬靈中[만령중] 최고자라고까지 하는 오시리스(Osiris)는 인간에 농경의 기술과 律法[율법]과 종교를 준 人文神[인문신]으로 冥界[명계]의 주재자를 겸한 이인데, 이 이가 冥界[명계]의 神[신]이 됨은 생명이 죽고 남을 맡았다 함에 말미암은 것이요, 이 생명은 穀物[곡물]이 매년 生成[생성] 榮枯[영고]를 되풀이함을 가리키는 것인즉, 오시리스 神[신]의 주체는 곧 農事神[농사신]ㆍ穀物神[곡물신]이라고 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오시리스 神[신]은 人身牛首[인신우수]로써 표현되었읍니다. 애급의 오시리스에 해당하는 희랍의 農業神[농업신]은 디오니소스, 곧 박코스라는 이인데, 이에는 山羊[산양] 혹 牡牛[모우]로써 표현되었읍니다. 유명한 민속학자 프레이저씨는 그의 名著[명저] <黃金枝[황금지]>의 중에 이러한 사실과 아울러 북구라파 일대에서는 穀食神[곡식신]을 다 牡牛[모우]로써 표현하며, 아리안 인종은 초목의 신으로 牛[우]를 위하는 일이 있는 등 실례를 열거하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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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우리들이 익히 아는 일에는 지나의 農業神[농업신]인 神農氏[신농씨]라는 이가 역시 人身牛首[인신우수]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牛[우]를 농업ㆍ곡식 등 관계로부터 神[신], 여러 신령 중에서도 가장 갸륵한 신령으로 생각한 일은 세계를 통틀어서 널리 인정되는 바입니다. 牛[우]가 왜 농업인이며 곡물신이 되느냐 하는 점을 학문적으로 설명함에는 퍽 어수선한 고찰을 더해야 하고, 여기 대한 여러 학자의 所說[소설]이 아직 區區不一[구구불일]한 중에 있기도 하지마는, 그것이 대개 牛[우]가 농업상 소중한 동물임에 말미암았을 것만은 대체 의심 없을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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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우]를 농업신으로 안 證迹[증적]은 서양에서보다 동양에 더 명백하다 할 사실이 있읍니다. <禮記[예기]>의 月令[월령]을 보면 「季冬之月[계동지월], …出土牛以送寒氣[출토우이송한기]」한 것이 있고, <後漢書[후한서]>의 禮儀志[예의지]에는 「立春之日[입춘지일]…施土牛耕人于門外[시토우경인우문외], 以示兆民[이시조민]」이라 한 것이 있고, 支那[지나] 후세의 禮俗[예속]을 보면 立春[입춘] 전후에 혹은 土牛[토우] 혹은 生牛[생우]를 大門[대문] 외에 세워 놓고, 제단을 만들어 先農[선농], 곧 농업 처음 낸 어른을 제사지내고, 관리가 채색 비단으로 싼 몽둥이로써 그 소를 앞뒤로 두드려서 농사하는 시늉을 하는 의식이 행하였읍니다. 이것을 春牛[춘우]라 하여, 이 春牛[춘우]의 禮[예]는 支那[지나]의 문화를 받아 쓰던 조선ㆍ일본에도 다 행하던 것입니다. 후세에 와서는 牛[우]가 先農祭[선농제]의 한 設備[설비]도 되었지마는, 본래는 아마 農業祭[농업제] 그것을 이 牛[우]에게 향하여 행하던 것이라고 생각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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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우]는 농업신으로부터 곡물신이 되고, 곡물신으로부터 다시 굴러 일반 草木[초목]의 신령이 되기는 서양에서와 한가지로 동양도 그러하였읍니다. 支那[지나]에는 여기 대한 恰好[흡호]한 實證[실증]이 많이 있읍니다. <搜神記[수신기]>에 「樹精百年[수정백년], 化作靑牛[화작청우]」라 하고, <述異記[술이기]>에 「千年木精爲靑牛[천년목정위청우]」라 한 것과 같이 나무가 오래 묵으면 그 精靈[정령]이 화하여 靑牛[청우]를 이룬다 함이 고대 支那人[지나인]의 俗信[속신]이어서, 이것을 나타내는 전설이 많이 있읍니다. 우선 <搜神記[수신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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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周武王[주무왕] 시절에 雍州[옹주] 城南[성남]에 一大樹[일대수]가 있어 높기 一○丈[일공장]에 그늘이 一里[일리]를 덮으니, 백성들이 신령이라고 끔찍이 위하고, 四時[사시]로 羊[양]과 술과 갖은 음식으로써 제사를 지내더니, 하루는 武王[무왕]이 城外[성외]에 나갔다가 제사하는 꼴을 보고, 제가 무엇이기에 백성의 재물을 허비하게 한다는 말이냐 하고 명하여 도끼로써 베게 한즉, 거의 넘어질 무렵에 樹中[수중]으로서 피가 흘러 나와서 화하여 一牸牛[일자우]가 되어서는 달음박질 豐水[풍수]의 中[중]으로 들어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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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것이 이미 그 一例[일례]입니다. 이 비슷한 이야기는 다른 데도 또 있읍니다. 이를테면 <史記[사기]> 秦本紀[진본기] 文公[문공] 十七年條[십칠년조]의 注[주]에 <括地志[괄지지]>의 文[문]으로 인용한 것도 그 하나인대, <元中記[원중기]>는 그 사연을 더 자세하게 말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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秦[진]나라 文公[문공]이 終南山下[종남산하]에 長安宮[장안궁]이라는 別宮[별궁]을 이룩하는데, 그 남쪽에 梓(비당나무)의 古木[고목] 하나가 있어 枝葉[지엽]이 어떻게 무성하던지 궁전속이 白晝[백주]에도 침침하므로, 文公[문공]이 侍臣[시신]으로 하여금 그것을 베어버리게 하였다. 여러 사람이 덤벼서 도끼질을 한즉, 말갛던 하늘이 금새 시커머지고 風雨[풍우]가 大作[대작]하거늘, 일하던 사람들이 크게 놀라서 「나무의 神[신]이 성을 내신 모양이니 큰 버력을 입겠다」 하고 그만 일을 중지하였다. 그날 밤에 귀신 하나가 梓樹[재수]를 찾아와서 「큰 봉변을 했네그려. 아마 餘命[여명]이 얼마 남지 못하였지」한즉, 樹神[수신]이 흐흥거려 웃으면서 걱정할 것 없느니. 또 덤벼 베려 하거든 大風[대풍] 大雨[대우]를 일으켜 사람들을 쫓으면 그만이지.」하는 것을 귀신이 「그렇게 안심만 하지 말게. 만일 三[삼] 백 명이 일시에 머리 풀어 산발을 하고 나무통에 실을 돌려매고 도끼질을 하면 어찌할 터인가」하매 梓樹神[재수신]이 꼼짝 못할 單方[단방]을 들린 양하여 다시는 아무 말을 못하였다. 마침 어느 사람이 그리로 지나가다가 이 괴상스러운 문답을 모조리 듣고, 이튿날 文公[문공]에게 전후 수말을 고하니, 文公[문공]이 大喜[대희]하여 「옳지, 귀신의 하던 말대로 해서 나무를 베게 하리라」하고, 三[삼]백 명이 산발을 하고 실로 나무통을 돌려매고 도끼질을 한즉, 風雨[풍우]가 일어나지 않아서 얼른 일이 진행되었다. 그래서 나무를 동강내고, 밑둥을 세로 쪼개니, 그 속으로서 별안간 靑牛[청우] 한 마리가 뛰어나오거늘, 여러 사람들이 「비당나무 精靈[정령]이 나왔다. 비당나무 精靈[정령]이 나왔다」하면서 일시에 그것을 붙잡으려 하였으나, 그 소가 어떻게 빨리 도망을 하는지 따르지를 못하고, 그만 豐水[풍수]의 中[중]으로 뛰어들어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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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읍니다. 역시 <元中記[원중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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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한]나라 桓帝[환제]가 黃河水邊[황하수변]에 出遊[출유]하더니, 홀연 一靑牛[일청우]가 河中[하중]으로부터 나와서 뛰어다니며 놀거늘, 시종했던 이 중에 何公[하공]이란 이가 勇力[용력]이 있으므로 달려들어 그 소를 잡으려 한즉, 소가 놀라서 河水[하수]로 들어가는데, 何公[하공]이 左手[좌수]로 소의 발을 붙잡고, 右手[우수]로 도끼를 들고 쇠머리를 때려서 죽였다. 이 靑牛[청우]는 萬年[만년]된 木精[목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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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것도 있으니, 이런 것은 木精[목정]도 같고 水神[수신]도 같음이 우리의 주의를 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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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농업은 한옆으로 水利[수리]에 힘입음이 큰 것입니다. 여기서 농업신인 牛[우]가 水神[수신]ㆍ江河神[강하신]의 표상도 될 인연이 생길 것입니다 그리하여 . 水神[수신]이 牛形[우형]으로 나타나는 예도 각국민의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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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에 많이 발견하게 되었읍니다. 희랍 신화 중에서도 재미있는 한 대문으로 이르는 아켈로우스 대 헤라클레스의 연애 투쟁 실화가 이 一例[일례]로 볼 것입니다. 곧 희랍 全土[전토] 중 가장 長江[장강]으로 이르는 아켈로우스 江神[강신]은 大洋神[대양신](오케아노스)의 아들로, 형제 三[삼]천 인 중 가장 伯長[백장]인데, 한 번은 牡牛[모우]의 形[형]을 하고 입으로 물을 흘리면서 데야니라라는 색시에게 사랑을 청하다가 허다한 경쟁자 중에서도 유명한 헤라클레스로 더불어 혹은 완력, 혹은 술법으로써 실력 씨름을 하다가, 마침내 패하여 한쪽 뿔을 뽑히니, 「豐饒[풍요]」의 女神[여신]이 이것을 집어다가 자기 노리개를 만들었다 하는 것입니다. 신화학자는 여기 대하여 재미있는 해석을 붙여 가로되, 아켈로우스란 것은 장마통에 큰물이 가는 그 하천을 가리키는 것이요, 아켈로우스가 데야니라란 색시에게 사랑을 구한다 함은, 그 하천이 굼틀굼틀 데야니라 國中[국중]으로 흘러감을 이름이요, 牡牛[모우]의 形相[현상]으로 나타났다 함은 이 하천이 가다가 쾅쾅 소리를 치고 뛰놂을 비유한 것이요, 뿔이라 함은 하천이 흘러나가다가 따로 支派[지파]가 생겨감을 말하는 것인데, 헤라클레스가 제방과 水道[수도]를 내어서 이 일정한 시기마다 나는 홍수를 없이한 고로, 이 사실을 비유로 나타내기를 河神[하신] 아켈로우스를 정복하여 뿔을 뽑았다 하고, 또 홍수 나던 지방이 뒤에 膏沃[고옥]한 농토가 된 것을, 그 뿔이「豐饒[풍요]」의 神[신]의 노리개가 되었다고 한 것이니라 하였읍니다. 여하간 이 희랍 신화의 一節[일절]은 江河神[강하신]을 牛形[우형]으로 표현한 두드러진 일례입니다. 그런데 이 비슷한 例話[예화]는 지나에서도 발견할 수 있읍니다. <風俗通[풍속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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秦[진]나라의 昭王[소왕]이 李冰이빙]이란 사람으로 蜀[촉]땅의 太守[태수]를 삼으니, 冰빙]이 揚子江流[양자강류]에 水利設備[수리설비]를 하여 蒙利區域[몽리구역]이 막대하였는데, 예부터 江神[강신]에게 해마다 童女[동녀] 二[이]인을 바쳐 색시를 삼는 풍속이 있거늘, 冰빙]이 스스로 그 딸로써 신과 혼인을 정하고 친히 神祠[신사]로 가서 酒盃[주배]를 들어 권하다가, 冰빙]이 소리를 높여 신을 책망하는 듯하더니 인하여 간곳이 없고, 얼마만에 강변에서 兩蒼牛[양창우]가 어울어져서 싸우는 광경이 보였다. 한참만에 冰빙]이 땀을 쭉 흘리고 돌아와서, 官屬[관속]들더러 일러 가로되, 내가 싸우는 것을 몰랐더냐, 어찌 助力[조력]을 아니하느냐, 남쪽을 向[향]한 것이 나요 허리통에 하얀 것 보이는 것이 내 띳솔이니라 하고 다시 가서 얼려 붙거늘, 主簿[주부]가 얼른 北面[북면]한 者[자]를 찌르니, 江神[강신]이 그만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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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이야기는 江神[강신]이 牛形[우형]으로 表象[표상]된 一例[일례]로 보자 하면 그렇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또 <稽神錄[계신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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京口[경구]의 居人[거인]이 저녁때 江上[강상]에 나가 보니, 石公山下[석공산하]에 二靑牛[이청우]의 腹靑背赤[복청배적]한 것이 있어, 강변에서 가댁질을 하고, 그 곁에 키가 三丈[삼장]이나 됨직한 白衣[백의] 老翁[노옹]이 채찍을 들고 서서 있더니, 이윽하여 노옹이 돌아다보다가 사람 있는 것을 보고, 곧 二牛[이우]를 채찍질하여 물로 들여보내고, 옹이 몇 번 겅중겅중 뛰더니 뛰는 대로 키가 늘어나서 한 번 다리를 성큼 들매 그냥 石公山頂[석공산정]으로 올라가지고 다시는 보이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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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 같음은 江神[강신]을 분명 牛形[우형]으로 나타낸 똑똑한 一證[일증]입니다. 인도의 古傳說[고전설]에 인간의 신비경인 大靈山[대영산]에 龍王[용왕]이 사는 靈池[영지]가 있어, 유명한 四大河[사대하]가 다 여기서 發源[발원]해 나오는데, 남방의 辛都河[신도하](곧 인더스江[강])는 牛口中[우구중]으로부터 琉璃河[유리하]로 유출하여 五百河[오백하]를 어울러 가지고 흘러서 남해로 들어간다는 대문이 있으니, 이것은 江河[강하]의 신령을 牛形[우형]으로써 표현하는 풍이 인도에도 있음을 나타내는 것일까 합니다. 여하간 江河[강하]의 신에 牛[우]의 표상을 씀은 세계 어디서고 보는 바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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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우]에 관한 신화 혹 전설로 동양 제국민의 사이에 가장 보편하게 유행하여 오는 것은, 아마 七月[칠월] 七夕[칠석]에 대한 牽牛[견우] 織女[직녀]의 이야기이겠읍니다. <述異記[술이기]>에 전하는 바로써 그 대강을 소개하면 이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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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碧空[벽공]으로 허옇게 흘러가는 은하수 東[동]녘에 한 佳人[가인]이 사니, 天帝[천제]의 따님으로 이름을 織女[직녀]라 하였다. 그 이름과 같이 직녀는 아침 저녁 없이 베틀을 차고 앉아서 天上[천상]에 소용되는 온갖 비단을 짜 내는 것이 소임이어서 , 머리 빗고 얼굴 다듬을 겨를조차 거의 없었다. 天帝[천제]께서 하도 어여삐 여기셔서 「젊으나 젊은 애가 일에 얽매여서 지낼 뿐이요, 낙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으니, 남편이나 얻어서 서로 위로를 하게 하리라」하시고, 은하수 西[서]녘에 사는 牽牛[견우]라는 신랑에게 보내서 배필을 삼으셨다. 織女[직녀]의 생활이 갑자기 명랑해지며 신접살이 재미에 꼼빡 반하여 비단 짜는 소임을 차차 게을리하게 되니, 天帝[천제]께서 「이래서는 仙官[선관]들의 衣次[의차]가 부족하게 되겠다」하시고 兩人[양인]의 곳으로 오셔서 「織女[직녀]야, 너는 염치도 없지 아니하냐. 내외의 사랑살이도 좋으려니와, 맡은 직분이 더 중한 줄을 모르냐. 얼른 냉큼 은하수 동녘으로 돌아가서 비단 짜는 소임을 힘쓰고, 이제부터는 一[일]년에 一次[일차]만 牽牛[견우]와 서로 만나 봄을 허락하는 것이니 그리 알아라.」하고 엄중한 분부를 내리셨다. 織女[직녀]는 天帝[천제]의 명을 거스르지 못하여, 생나무 쪼개는 듯한 작별을 하고 은하수를 건너 동녘의 옛 처소로 돌아가서 전과 같이 베틀과 씨름을 하면서 一[일]년에 한 번 허락된 날을 고대고대하였다. 牽牛[견우]와 織女[직녀]가 서로 만나는 定日[정일]은 七月[칠월] 七日[칠일]이니, 一[일]년내 이 날을 기다리다가도 공교히 이날에 비가 오게 되면 은하수의 물 부피가 늘어서 건너가지를 못하고, 동서 兩岸[양안]에서 물을 격하여 마주보고 서러워할 뿐이었다. 이 딱하고 애처로운 사정을 보다 못하여, 烏鵲[오작]이 은하수에 다리를 놓아서 織女[직녀]를 東岸[동안]으로부터 西岸[서안]으로 건네어 주는 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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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에 나오는 織女[직녀]라는 이의 이름이 비단 짜는 색시를 의미하는 것처럼, 牽牛[견우]라 함은 무론 소먹이는 이를 의미하는 것임이 무론입니다. <博物志[박물지]>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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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로 이르기를 天河[천하]는 海[해]로 더불어 通[통]했다고 하거니와, 근세에 해변에 사는 어느 사람이 해마다 八[팔]월이면 浮槎부차]가 去來[거래]하여 한 번도 失期[실기]하는 일 없음을 보고, 하도 이상하여 어느 해에는 마침 집 한 채를 지어 두었다가, 八[팔]월에 浮槎부차]가 지나가매 얼른 그 집을 槎上[차상]에 가져다가 얹고 양식을 많이 싣고 타고 앉은 즉, 一[일]○여 일쯤이나 지나서 한 곳에 다다르니, 城郭[성곽]이 있고 가옥이 다 엄위하고, 멀리 바라보매 궁전 중에 織女[직녀]가 많이 있는데 한 장부가 水邊[수변]에서 소를 먹이고 있었다. 소 데리고 있던 이가 이 사람을 보고 놀라서 물어 가로되, 어떻게 하여 여기를 왔느뇨 하거늘, 그 사람이 전후 사실을 말하고 인하여 , 여기가 어디임을 물은즉, 대답하여 가로되, 그대가 돌아가서 蜀郡[촉군]으로 가서 嚴君平[엄군평]에게 물으면 알리라 하는지라, 겁도 나고 하여 뭍에 내리지 않고 그냥 되돌아와서, 뒤에 蜀[촉]에 이르러 君平[군평]에게 물으니, 君平[군평]의 말이 某年月日[모년월일]에 客星[객성]이 있어 牽牛宿[견우숙]을 犯[범]하였었느니라 하는데, 연월을 따져 보니, 꼭 이 사람이 天河[천하]에 이르렀던 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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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이야기에는 牽牛[견우]가 소를 끌고 있음을 분명히 나타내었읍니다. 이 이야기의 다른 요소는 어찌갔든지, 人間[인간]의 江河[강하]뿐 아니라 天上[천상]의 은하수에까지 牛[우]로써 표상하는 신령으로 붙여 놓은 것이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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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牛[우]는 농업의 관계로부터 穀神[곡신]이 되고 木神[목신]이 되고 水神[수신]이 되다가, 다시 한 걸음 내켜서 그는 우리를 먹이고 길러 주는 조화력으로 더욱 신성한 대접을 받기까지 되었읍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牡牛[모우]보다 牝牛[빈우]가 더 신기스럽게 생각됨은 자연한 일입니다. 그 가장 현저한 例證[예증]으로는 유명한 北歐神話[북구신화]의 에두믈라(Aedhumla)를 들 수 있읍니다. 북구의 신화는 創世[창세]의 내력을 말하여 가로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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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九重[구중]의 세계로써 구성하였는데, 태초에 第一重[제일중]인 무스펠 하임이라는 火熱世界[화열세계]의 火[화]가 第九重[제구중]인 니플 하임이라는 霧寒世界[무한세계]의 沍氷(호빙)을 녹이매, 그 중에서 이미르라는 巨鬼[거귀]가 생겨나고, 동시에 거대한 一牝牛[일빈우](名[명]을 에두믈라라 하는 者[자])가 그 중에서 나와서, 이미르는 그 牝牛[빈우]의 젖을 먹고 장성하고, 그 牝牛[빈우]는 霜露[상로]의 凝結[응결]한 石[석]을 핥으며 살더니, 이 핥아먹는 石中[석중]으로서 初人[초인] 부레(Bure)가 나고, 부레가 子[자] 三[삼]인을 두어 「萬物[만물]의 父[부]」라는 오딘이 그 長[장]이니, 이 三[삼]형제가 서로 협력하여 巨鬼[거귀] 이미르를 죽이고 세계 창조의 大業[대업]을 완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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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대개 시방 세계의 만물은 죄다 牝牛[빈우]의 恩愛[은애] 中[중]에서 생겨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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印度[인도]의 신화 중에 가장 아름다운 形容[형용]을 몰아 가진 유명한 우샤스(曉天紅光[효천홍광]) 女神[여신]은 天帝[천제]의 女[여]요, 태양신의 母[모] 혹 애인으로, 朝朝[조조]마다 東天[동천]에 나타나서 天門[천문]을 열어 黑夜[흑야]를 타파하고 만물에게 광명의 활동력과 생명의 원천을 공급하는 고마우신 어른이라 하여 「生產[생산]의 女神[여신]」또 部族[부족]의 수호신으로 위하는 터인데, 그는 紅色[홍색]의 馬[마] 혹 牡牛[모우]를 타고 다닌다 함은 曉天[효천]의 光炎[광염]·光雲[광운]을 나타내는 것이거니와, 또 牝牛[빈우]를 타고 나오기도 한다 함은 만물을 撫育[무육]하는 자애와 및 만물을 번성케 하는 생식력의 표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우샤스 女神[여신]뿐 아니라, 印度[인도] 고대의 높은 신령 중에는 牛[우]ㆍ牝牛[빈우]와의 관계를 가진 이가 적지 아니하니, 우선 天帝[천제]인 因陀羅[인타라], 곧 우리가 帝釋[제석]이라 하는 어른은 그 어머니되는 牝牛[빈우]의 옆구리를 트고 탄생하였다 하며, 因陀羅[인타라]의 허다한 공덕 중 가장 큰 것은 세상을 旱枯[한고]케 하는 惡龍[악룡]의 驅除[구제]인데, 이 즈음의 沛然(패연)한 降雨[강우]를 혹 감로수에도 비하고, 혹 牝牛[빈우]의 몸에서 乳汁[유즙]이 湧出[용출]함에 비하기도 하였읍니다. 因陀羅[인타라]뿐 아니라 폭풍신 마루츠(Maruts)도 牝牛[빈우]를 母[모]로 하여 牛母屬[우모속]의 稱[칭]이 있읍니다. 이 외에 天父[천부]의 意[의]를 가진 디아우스(Dyaus) 神[신]은 牝牛形[빈우형]으로 표상하며, 비시누(Visnu) 神[신]은 牛[우]로써 인간에 化現[화현]함을 信[신]하며, 따라서 牛[우] 그것을 바로 무슨 신 무슨 신이라고 부르는 일도 많이 있읍니다. 시바(Siva) 神[신]의 정토에는 「난디」라는 大白牛[대백우]가 엄연히 一座[일좌]를 차지하고 있고, 시방도 시바신의 殿堂[전당]에는 神像[신상]의 代[대]로 牛[우]를 祀[사]한 곳이 많이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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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古經典[고경전]에는 牝牛[빈우]를 「不可殺者[불가살자]」(Aghnya)라고 칭호하고, 어떠한 데는 牝牛[빈우]의 禮拜[예배]를 篤勸[독권]한 句語[구어]가 있기도 합니다. 시방까지도 印度[인도] 민중이 牛[우]를 崇敬[숭경]함이 대단하여, 상류 계급에서는 그 肉[육]을 먹지 않고, 일반 민중이 죄다 牛[우]를 후대하며 街路上[가로상]에 牛匹[우필]이 群行[군행]하면 사람이 도리어 그것을 피해 가는 일이 많으므로, 서투른 여행자의 눈을 놀래는 유명한 사실이거니와, 上來[상래]에 말씀한 여러 가지 사실에 비추어 보면, 후세 印度人[인도인]의 牛[우] 존중이 우연한 것 아님을 살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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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印度[인도]의 풍속을 기록한 어느 책을 보니까, 上印度[상인도]의 어느 山中[산중]「牝牛[빈우]의 服[복]」(Cow Belly)이라는 곳이 있어, 이것을 통과하면 罪障[죄장]이 소멸한다고 하여, 원근의 예배자가 絡繹不絶[낙역부절]한다 한 것이 있으니, 대개 신령한 어머니의 속을 다시 다녀 나옴으로써 更生一新[갱생일신]의 効[효]를 얻는 줄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印度人[인도인]의 牛[우] 신성시가 어떻게 다각적 내용인 것을 볼 一例[일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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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歐神話[북구신화]와 같이 바로 인류의 시조가 牛[우]에게서 났다거나, 또 印度神話[인도신화]와 같이 존귀한 신령이 牛[우]를 母[모]로 한다는 것은 아니지마는, 건국의 시조가 牛[우]에게 哺育[포육]되는 투의 설화는 支那[지나]의 塞外民族[새외민족] 間[간]에서도 발견됩니다.<酉陽雜俎[유양잡조]>(卷十六[권십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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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虜[북로]의 祖先[조선]인 索國[삭국]에 泥師都[이사도]라는 자 있어, 二妻[이처]를 거느리고 四子[사자]를 生[생]하였더니, 一子[일자] 화하여 鴻[홍]이 되거늘, 드디어 三子[삼자]를 버리고 일러 가로되, 너희들은 古旃[고전]을 따라가라 하니, 古旃고전]이란 것은 牛[우]이었다. 그래서 三子[삼자] 牛[우]를 따르니, 牛[우]의 똥 누는 것이 죄다 肉酪[육락]을 이루었다. 함 같음이 그 一[일]입니다. 우리의 「콩쥐 팥쥐」이야기에도, 콩쥐가 계모에게 고역을 맡아 가지고 광야에 나가서 죽을 지경이 되었을 때에, 天上[천상]으로부터 검은 암소가 내려와서, 밭 다스리는 일을 대신 해 주고, 항문으로 온갖 음식과 필수품을 낳아 주며 그 고난을 벗어나게 하는 대문이 있으니, 이 검은 암소의 淵源[연원]은 索國[삭국]의 전설 같은 데 구할 것인가 합니다. 또 支那[지나]의 민간 설화에도 牛糞[우분]이 금 혹 은이 되고, 반드시 糞[분]일 것 아니라, 牛[우] 그것이 금은의 權化[권화]임을 나타내는 이야기까지 꽤 많이 있읍니다. 역시 <酉陽雜俎[유양잡조]>(卷十六[권십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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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原縣[태원현] 北[북]에 銀牛山[은우산]이 있으니, 漢[한] 建武[건무] 二一[이일]년에 웬 사람이 白牛[백우]에 올라 앉아 밭을 밟고 가거늘, 田父[전부]가 나무란즉 그이의 말이 「나는 北海使[북해사]로서, 장차 천자가 封禪[봉선]하심을 보려 함이로라」하고 그냥 소를 타고 산으로 올라갔다. 田父[전부]가 뒤쫓아 산으로 가서 보니, 다만 牛跡[우적]과 내지른 똥이 다 은을 이루었는데, 明年[명년]에 世祖[세조] 封禪[봉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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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것이 이미 그 一例[일례]요, <湘中記[상중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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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沙[장사] 西南[서남]에 金牛巖[금우암]이 있으니, 漢武帝[한무제] 時[시]에 一田父[일전부]가 赤牛[적우]를 끌고 와서, 漁人[어인]더러 배에 태워 건네어 달라 하거늘, 漁人[어인]이 가로되 「배가 작아서 무거운 소를 이기지 못할 것 같소」한즉, 田父[전부]의 말이 「그저 들어가기만 하면 그만이지 무게로 배에 폐를 끼치지는 아니하리다」하고, 사람과 소가 다 올라탔다. 강의 반쯤 와서 소가 船中[선중]에 똥을 누니 田父[전부]의 말이 「이것으로 船價[선가]나 하겠소」하더니, 다 건너와서 漁人[어인]이 船板[선판]이 더러워졌음을 성내어 櫓[노]로써 똥을 긁어서 물로 내던지다가 거의다 하여서 비로소 그것이 金[금]임을 깨닫고, 그 神異[신이]함에 놀라서 얼른 뒤를 밟아 보니, 人[인]과 牛[우]가 다 嶺上[영상]의 巖石[암석]으로 들어가거늘, 따라 가서 파 보나 미치지 못하였다. 시방까지 파던 곳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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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것도 그 一例[일례]입니다. 牛[우] 그냥 金[금]임을 말하는 이야기로는 <述異記[술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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洞庭山上[동정산상]에 天帝壇[천제단]이 있고, 山下[산하]에 金牛穴[금우혈]이 있으니, 삼국 시절에 吳[오]의 孫權[손권]이 사람으로 하여금 금을 캐게 한대, 금이 화하여 牛[우]가 되어 山上[산상]으로 달려 올라가고, 그 자리가 그저 있으므로 이름을 金牛穴[금우혈]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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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과, <廣東通誌[광동통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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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당] 開元年間[개원년간]에 一牛[일우]가 色[색]이 황금 같거늘, 常牛[상우]들이 같이 놀다가 이상히 알아 급히 쫓으니 그 소가 뜀질하여 땅속으로 들어가는지라, 땅을 六尺餘[육척여]나 파매 尾[미] 五寸許[오촌허]만이 보이는데, 村人[촌인]이 찍어내니 그것이 금이었다. 이 일을 인하여 庵子[암자]를 穴上[혈상]에 이룩하고, 이름을 金牛庵[금우암]이라고 하였는데, 무릇 風雨[풍우]하는 夜[야]에는 金牛[금우]가 庵外[암외]에 나와서 발자국을 地上[지상]에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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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 같은 것이 있읍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牛[우]가 穀神[곡신]으로서 財神[재신]으로 옮겨 간 것을 나타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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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설화로써 牛[우]의 신화상, 뒤집어 말하여 원시 문화상에 있는 지위가 어떻게 중대하던 것과, 그것이 무엇보다도 농업경제에 관련해서 그러한 것임은 약간 짐작되셨을 줄 믿습니다. 그러나 牛[우]가 신화의 중에 커다랗게 映寫[영사]되어 있음은 농업국가뿐 아니라, 그 자신의 거대한 체구와 용맹한 성질에도 말미암았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山海經[산해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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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海上[동해상] 먼 곳에 流波山[유파산]이란 곳이 있고, 그 위에 神獸[신수]가 있어 狀[상]이 牛[우]와 같고 몸은 검고 뿔은 없고 발은 하나인데, 물로 들어가면 반드시 風雨[풍우]가 일며, 그 光[광]은 일월과 같고, 그 聲[성]은 雷[뢰]와 같으니, 그 名[명]은 가론 夔(기)라 하는 것이다. 옛날에 黃帝氏[황제씨]가 그 것을 잡아내서 그 가죽으로써 鼓[고]를 만들고 雷獸[뇌수]의 骨[골]로써 북채를 만들어 치매, 소리가 五[오]백 리에 들려 온 天下[천하]가 겁을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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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이야기 같음은 牛[우]의 위력을 대단하게 안 一例話[일예화]요, 원시 인류의 野牛[야우]에 대한 공포감이 그냥 반영된 이야기로 보아서 심히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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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하고 방면을 바꾸어서 원시인의 牛[우]에 대한 관찰을 엿볼 天然神話[천연신화], 또 事物起源[사물기원] 說明神話[설명신화]의 類[유]를 몇 가지 소개하겠읍니다. 곧 원시인의 素樸[소박]한 동물학의 一節[일절]이라 할 것입니다. 그네들은 천지 만물의 모든 현상을 볼 때에 그러한 일은 어째서 났는가, 그러한 形相[형상]은 어째서 생겼는가에 대하여 두루 의심을 가지고, 그네의 소견 깜냥만큼 일종의 설명을 시험함이 常例[상례]입니다. 그 내용은 시방 우리로서 보면 유치하다기보다 誕妄[탄망]하기 짝이 없다 할 것이지마는, 이것이 실상 인류 과학의 萌芽[맹아]도 되고 철학의 종자도 됨을 생각하지 아니하면 아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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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牛[우]의 기원에 대하여 北歐[북구]의 신화가 천지 개벽 초에 인류의 어머니로 생겼다고 말하는 것은, 前文[전문]에 소개함과 같거니와, 재미있는 것은 일본의 신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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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陽女神[태양여신]이신 天照大神[천조대신]이 인간계에 食物神[식물신]인 「保食神[보식신]」이 있단 말을 들으시고, 月神[월신]인 「月夜見命[월야견명]」을 파견하셨더니, 保食神[보식신]이 口[구]로써 飯[반]과 魚[어]ㆍ肉[육] 등을 토하여 月神[월신]을 대접하거늘, 月神[월신]이 노하여 「이런 더러울 데가 어디 있느냐」하고 劒[검]으로 保食神[보식신]을 擊殺[격살]하였다. 太陽女神[태양여신]이 이것을 마땅치 못하게 여겨, 「月神[월신] 너는 惡神[악신]이니 永[영]히 不相見[불상견]하리라」하시고, 이때부터 月[월]하고는 주야를 격하여 거처하기로 하시고, 다시 天熊大人[천웅대인]을 保食神[보식신]으로 보내 보시니, 保食神[보식신]의 屍骸[시해]의 頂[정]은 化[화]하여 牛馬[우마]가 되고, 顱上(노상)에는 粟[속], 尾上[미상]에는 蠶眼中[잠안중]에는 稗[패], 腹中[복중]에는 稻[도], 陰[음]에는 麥[맥] 及[급] 大豆[대두]가 生[생]하였는지라, 天熊大人[천웅대인]이 이것을 天照大神[천조대신]께 드린대, 大神[대신]이 이것으로써 인류를 위하여 農蠶業[농잠업]을 창시하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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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농업과 한가지 牛馬[우마]가 생겨났음을 말하고, 몽고의 신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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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神術[신술] 가진 異端者[이단자]가 지상의 모든 추장들을 정복하고 萬王[만왕]의 왕이 되려 하여 한 惡獸[악수]를 만들어내니, 이 짐승이 角[각]으로 사람을 받아서 죽이고 무서운 齒[치]로 그 고기를 뜯어먹어서, 지상의 인류가 날로 감소하여 갔다. 그 때에 추장 중에 불교의 高僧[고승]이 있어 木棒[목봉]을 이 짐승의 코에 꿰어 그 놈을 제어하는 법을 마련하여 다시는 폐가 없이 하고, 그 대신 「이 뒤에란 사람을 위하여 힘드는 일을 하라」하여, 시방까지 어기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駱駝[낙타]라고 이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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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그 起原[기원]에 붙여서 牛[우]ㆍ駱駝[낙타]의 類[유]가 코를 꿰뚫려서 고역하는 내력을 겸해 설명함은 다 재미있는 예입니다. 낙타도 牛[우]나 鹿[녹]과 함께 反芻動物[반추동물]이니, 몽고의 낙타는 다른 곳의 牛[우]로 볼 것입니다. 조선의 민간 설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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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골 부부가 어린 아들 하나를 데리고 살더니, 집이 구차하여, 부모가 相議[상의]하고 그 아들을 근처 山中[산중]에 있는 어느 道僧[도승]에게 제자로 준즉 , 도승의 말이 「그럴진대 一[일]○년 동안 限[한]을 하고 갖은 재주를 가르칠 것이니, 그 동안에는 행여 만나볼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여 굳게 서로 약조하였다. 九[구]년되던 해 봄에 그 아들이 하도 집안 일이 궁금하고 부모가 그립기도 하여, 스승 몰래 집으로 와서 본즉 어머니가 내달아 껴안고 울음 반 기쁨 반으로 수년 전에 부친이 네 이름을 부르면서 돌아가시고 나도 지내기가 더욱 쓸쓸하더니, 너를 보고 세상이 다시 명랑해지는 것 같구나 하거늘, 아들이 딱한 생각에 스승의 平日[평일] 교훈을 저버리고, 우선 집안의 구차한 것이나 좀 펴려 하여 「나는 그동안 천지 만물을 變化自在[변화자재]하는 술법을 배웠읍니다. 내가 우선 말이 될 터이니, 염려 말고 나를 장에 가서 팔아 쓰세요」한대, 어머니가 그것이 될 말이냐고 말리는 동안에 어느덧 건장한 말 한 필로 화해버리거늘,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하고 장으로 끌고 나간즉 원체 밋밋하고 튼튼하므로, 즉시 고가에 팔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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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이 팔려 가서는 얼마 지난 뒤에 도로 사람이 되어서 집으로 돌아오고, 이러기를 몇 번 하여 남 속이는 재미가 나게 되었더니, 하루는 꿈에 스승이 나타나서 꾸짖어 가로되, 「내가 너에게 재주를 가르치고 이에 마음자리를 바르고 튼튼하게 만든 뒤에 집으로 돌려보내려 하였더니, 네가 一[일]년 남은 限[한]을 채우지 못하고 미리 도망하여 돌아와서 그런 짓을 하니 심히 애달픈 일이다. 그러나 제가 지은 죄는 제가 벌을 받아야 하나니, 너는 시방부터 소라는 짐승이 되어, 여러 사람에게 고역을 하고 지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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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그만 간 곳이 없는데 놀라 깨달으니 한 꿈이요, 이미 몸이 변하여 소가 되어서 다시는 이 허물을 벗지 못하고 이리저리 팔려 다니면서 죽을 힘을 들여 일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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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제二[이]차적의 냄새가 나고, 특별히 탐욕과 사기를 부리다가 牛身[우신]으로 報應[보응]하는 이야기로는 印度[인도]와 支那[지나]에 다 많이 있는 바인즉, 그것을 옛날 이야기라고 꼭 말하기 어렵되, 여하간 조선에서는 牛[우]의 기원을 이렇게 말한다 하는 例[예]로 알아둘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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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우]는 인생과의 교섭이 深切[심절]한 만큼 그 형체와 거동에 대하여 원시인민들이 큰 관심을 가지고, 그것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전설의 위에 반영되어 있읍니다. 牛[우]는 왜 齒[치]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에 대하여, 安南地方[안남지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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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牛[우]에게는 上下齒[상하치]가 있고, 馬[마]에게는 없더니, 한 번은 牛[우]가 연회로서 돌아오다가 노상에서 馬[마]를 만난즉, 馬[마]가 나도 잔치 참례를 가는 터이니 잠시 上齒[상치]를 빌어 달라고 하므로, 牛[우]가 그리하라 하고 내어준대, 馬가 그냥 牛[우]의 齒[치]를 횡령해 버리고, 경주를 하여 이기는 자가 소유하기로 하니 牛[우]가 경주로 馬[마]를 이길 리가 없어, 마침내 牛[우]가 齒[치]를 永失[영실]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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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이야기가 있으며, 牛[우]의 角[각]은 왜 꼬부라졌느냐 함에 대하여 米洲印甸人(인디언)의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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下界[하계]의 山[산]이 더 높아지지를 아니하여, 사람이 上界[상계]로 올라갈 방도가 없어 애를 쓰더니, 마침 牛[우]가 와서 뿔을 뻗치거늘 사람이 그것을 디디고 上界[상계]로 올라가니, 이 때의 무게에 눌려서 빳빳하던 뿔이 휘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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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전설이 있으며, 牛[우]의 蹄[제]가 왜 쪼개졌느냐 함에 대하여, 북인도 지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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仙人[선인]이 활로 鹿[녹]을 쏜다 하는 것이 잘못 牛[우]의 蹄[제]를 맞추니, 다친 자리가 낫기는 하였으나 이때부터 蹄[제]의 중간이 쪼개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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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전설이 있으며, 牛步[우보] 遲遲[지지]함에 대하여 독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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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牛[우]의 힘센 것을 알고, 무거운 짐을 얹어서 부렸다. 牛[우]가 순하게 짐을 싣고 길을 빨리 가다가 「언제쯤 쉬게 하느냐고 사람에게 물어보니, 사람의 대답이「쉬는 것이 무엇이냐, 죽어야 쉬리라」하거늘, 牛[우]가 이 말을 듣고 「그러면 재빠르게 할수록 바삭스러울 뿐이다」하고, 이때부터 모든 것이 느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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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전설이 있으며, 牛[우]가 왜 蠅[승]과 蚊蟲[문충]에게 쫓기느냐 함에 대하여 北歐[북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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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애가 牛[우]더러 「너의 피 한 방울만 빨아먹게 해 주렴」한즉, 牛[우]가 등애를 우습게 보고서 「우리가 싸움을 하여 네가 이기면 얼마든지 피를 빨아먹게 하마」하였다. 그래서 등애가 牛[우]의 耳中[이중]으로 들어가서 북새질을 치매 牛[우]가 마침내 항복을 하고 피를 빨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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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전설이 있고, 匈牙利(헝가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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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가 牧牛人[목우인]에게 우유를 청하셨을 때에, 牧子[목자]가 대답을 아니하는 고로, 그리스도가 목자를 괴롭게 하기 위하여 牛[우]를 蠅[승]에게 쫓기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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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전설이 있으며, 牛[우]가 왜 耒耜(뇌사)를 끌게 되었느냐 함에 대하여 북인도 지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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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땅을 가는 일도 없고 농사짓는 연장이란 것도 없으며, 다만 사람이 날마다 곡식 一粒[일립]을 집어가지고 牛[우]의 주위를 세 번 휘돌아와서 「이만하면 오늘 먹을 것이 되지」하면 牛[우]는 입을 다문 채 고개만 끄덕거리는데, 이 穀粒[곡립]이 가족 一日[일일]의 양식으로 넉넉하였다. 한 번은 조심성 많은 어느 사람의 집에 손님의 와서 주인이 혹시 모자라나 하고 곡식 二粒[이립]을 집어내니, 牛[우]가 노하여 사람을 저주하였다. 이 결과로 사람은 田土[전토]를 경작하지 아니하면 생활할 수가 없이 되고, 牛[우]도 그 벌로 쟁기를 끌어 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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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전설이 있읍니다. 이 외에도 牛[우]의 형태를 설명하는 전설이 각국민간에 허다히 있음은 무론 사람이 牛[우]의 모든 點[점]에 깊이 주의를 한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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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번 방면을 바꾸어서 순수한 전설의 세계를 둘러보면, 牛[우]의 존재는 여기서도 대단히 뚜렷함을 깨닫습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종교적 전설에 牛[우]가 많이 껴들어 나옴입니다. 牛[우]는 힘이 센 고로, 진리의 勇者[용자]인 敎主[교주]의 비유로 쓰이기도 하니, 불교에서 옛날의 유명한 大菩薩[대보살]내지 석가모니를 牛王[우왕]이라고 일컫기도 하고(涅槃經十八[열반경십팔], 無量壽經[무량수경] 下[하] 大毘婆要論一七七[대비파요론일칠칠]), 기독교에서 대희생자 基督[기독]의 힘을 나타내는 것으로 씀이 (路加傳十五[노가전십오], 二七[이칠]) 다 그 通例[통례]입니다. 또 牛[우]는 성질이 溫順[온순]하여 흔히 여성으로 생각되고, 그 복종과 근로의 德[덕]을 신앙생활의 표상으로 봄이 牛[우]와 종교와의 인연이 얽히는 한 이유도 되며, 특히 기독교에서는 牛[우]를 깨끗한 동물로 天主前[천주전]에 희생으로 씀으로부터 一轉[일전]하여 종교적 의미인 희생의 표상을 삼아서 그 의의가 더욱 중대하게 되기도 하였읍니다(利未記金篇[이미기금편] 參照[참조]). 이렇게 敎門[교문] 본래의 旨意[지의]로 말하면, 牛[우]는 어느 敎[교]에서든지 좋게만 표현될 것이지마는, 사실은 반드시 그렇지 아니하여, 기독교의 전설에서는 미상불 古風[고풍] 그대로를 지킴인지 牛[우]에게 호의 내지 경의를 가졌으되, 불교로 말하면 인도 本處[본처]에서는 어찌갔든지, 支那[지나]ㆍ朝鮮[조선]ㆍ日本[일본] 등으로 유통하는 동안에 차차 牛[우]의 고역을 貪心[탐심]의 報應[보응]으로 보고, 그래서 불법의 인연으로 좋은 곳에 轉生[전생]하는 투의 이야기가 많아져서, 말하자면 牛[우]를 나쁜 편으로 풀린 경향이 있읍니다. 우선 후세 기독교 국민간에 행하는 牛[우]에 관한 전설을 들추건대, 남부 露西亞[노서아]ㆍ불가리아ㆍ불란서 等處[등처]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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耶穌(예수)가 탄생하시던 夜[야]에 구유간에 짚을 펴고 누웠는데, 牛[우]는 조심하여 耶穌[야소]에게서 멀리 떨어져 가고, 馬[마]는 조심은커녕 耶穌[야소]의 깔고 누운 짚을 먹으려고까지 하거늘, 성모 마리아가 이것을 보고 牛[우]를 축복하고 馬[마]를 저주하였다.
 
 
84
하는 전설과, 말타島[도]에 있는,
 
 
85
耶穌[야소]가 베들레헴의 암굴에서 탄생하셨을 때에 갖은 동물이 암굴로 찾아와서 더운 입김을 불어 耶穌[야소]의 몸을 따스하게 하는데, 牝牛[빈우]만은 마침 잉태하여 몸소 갈 수가 없으므로, 牡牛[모우]를 시켜 전갈로 약속하기를 새로 낳을 송아지를 耶穌[야소]께 선물하겠읍니다고 하니, 耶穌[야소]께서 매우 기뻐하여 牛[우]를 축복하셨다.
 
 
86
하는 전설과, 露西亞[노서아]ㆍ波蘭[파란]ㆍ보히미아 기타 여러 지방에 있는,
 
 
87
어느 때 耶穌[야소]께서 巡行[순행]하시는 路次[노차]에 한 내를 당도하여 馬[마]더러 내를 건네어 달라 하시니, 馬[마]가 풀을 뜯으면서 말을 듣지 아니하거늘, 그 근처에 있는 牛[우]가 자진하여 耶穌[야소]를 태워 내를 건네어 드렸다.
 
 
88
하는 전설이 죄다 그러한 套[투]로 된 것입니다. 그런데 불교편의 예를 보건대 <冥報記[명보기]>에,
 
 
89
唐[당]나라 雍州[옹주] 萬年縣[만년현]의 閭村[여촌]에 謝氏女[사씨녀]가 있어 一女[일녀]를 데리고 살다가 近村[그촌]의 來某[내모]에게 시집보내고 永徽[영휘] 末[말]에 身亡[신망]하였는데, 龍朔[용삭] 원년 八[팔]월에 그 딸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내가 생전에 술을 팔 때에 되를 작게 만들어 놓고 비싼 값을 받고 적은 분량을 준 죄로, 죽은 뒤에 北山下[북산하] 어느 집에 牛[우]로 태어나서, 요새 法界寺[법계사] 夏侯大師[하후대사]에게 팔려서 城南[성남]의 밭을 가는데, 괴로운 말은 이루 다 못하노라 하거늘, 딸이 깨어서 설움을 이기지 못하여 남편에게 이런 말을 하였었다. 이듬해 정월에 法界寺[법계사]의 女僧[여승]이 오거늘, 夏侯大師[하후대사]라는 이가 있느냐 하매, 女僧[여승]의 말이 과연 그런 어른이 있다 하거늘, 딸이 곧 夏侯大師[하후대사]를 찾아가서 물은대, 과연 北山下[북산하]에서 牛[우]를 사서 城南田[성남전]을 갈리노라 하므로, 딸이 곧 소 자는데를 찾아갔다. 이 소가 사나와서 꼭 한 사람의 말만 듣고 다른 사람이 가까이 가면 받고 야단을 하여 모두 犯接[범접]을 못하더니, 이 딸의 오는 것을 보고 얼른 달려들어 그 온 몸을 핥고 땀을 쭉 흘리거늘, 딸이 곧 夏侯大師[하후대사]에게 돈을 주고 소를 물려서 집으로 데려다가 어머니 어머니 하고 봉양을 하니, 서울의 貴人[귀인]들이 많이 불러다 보고 시주를 하였다.
 
 
90
하는 것과, <原化記[원화기]>에,
 
 
91
唐[당]나라 貞元年間[정원년간]에 蘇州[소주] 海鹽縣[해염현]에 사는 戴文[대문]이란 자가 집이 부하건마는 貪心[탐심]스러워서, 鄕人[향인]이 빚을 쓰면 重邊[중변]을 매고 받기를 각박히 하니, 사람들이 말하기를 神明[신명]이 무심치 아니하리라 하더니, 수년 후에 戴文[대문]이 病死[병사]하고 隣人[인인]의 집 牛[우]가 검정 송아지를 낳으니, 갈비 밑에 白毛[백모]로 戴文[대문]이란 字[자]가 현연하게 나타나서 동리가 다 알매, 文[문]의 子[자]가 부끄러워서 厚謝[후사]를 주고 인두로 그 白毛[백모]를 지져 없이해달라 하거늘, 隣人[인인]이 청을 들었다. 그러자 文[문]의 子[자]가 牛身[우신]에 표적이 없어짐을 믿고 官家[관가]에 呈狀[정장]하기를, 隣人[인인]이 거짓 犢牛[독우]에 文字[문자]가 있단 말을 하였다 하여 縣[현]에서 隣人[인인]과 牛[우]를 잡아들여 본즉, 그 동안 白毛[백모]가 다시 나와 분명히 成字[성자]를 하고, 戴文[대문]아 하고 부르면 얼른 알아듣고 달려들었다. 隣人[인인]이 文[문]의 子[자]가 盜去[도거]할까 저허하여 夜[야]에는 다른 외양에 집어넣고 지내더니 수년만에 죽었다.
 
 
92
하는 것과 <會昌解頤錄[회창해이록]>에,
 
 
93
史無畏[사무외]란 자는 曹州人[조주인]인데, 張從眞[장종진]으로 더불어 친분 있게 지내는데, 無畏[무외]는 구차하고 從眞[종진]은 부하므로, 從眞[종진]이 無畏[무외]더러 권하기를, 내가 돈천 냥을 꾸어줄 것이니 얼마든지 놀려서 장사를 하고 나중에 본전만 돌려보내 달라 하여, 無畏[무외]의 父子[부자]가 이 돈을 가지고 外方[외방] 장사를 하여 不數年之間[불수년지간]에 큰 부자가 되었다. 이 동안에 從眞[종진]은 火災[화재]를 만나고 이어 불한당이 들어서 가세가 말 못되니, 이에 無畏[무외]에게 가서 말하기를, 오늘날 이 곤경을 당하여 전일 천 냥을 다 바라지도 아니하노니, 한 二三[이삼]백쯤 갚아 주지 못하겠는가, 無畏[무외]가 말을 듣지말자 와락 역정을 내어 가로되, 그대가 돈 받을 것이 있다 하니 文券[문권]이 있을 터인즉 그것을 가지고 오소 하였다. 從眞[종진]이 기가 막혀 가슴을 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庭中[정중]에 焚香[분향]을 해 놓고 하늘께 축원하기를, 천지신명이여 이 원통한 일을 살피시옵소서 하는데, 言辭[언사]가 강개하여 듣는 이도 치가 떨리더니, 오후쯤 하여 맑던 하늘에 검정 구름이 모여들고는 천둥 번개에 비가 장대같이 쏟아지고, 벼락 한 장이 딱 하고 소리를 내더니, 無畏[무외]가 금새 변하여 牛[우]가 되고, 朱書[주서]로 腹下[복하]에 썼으되, 「負心人史無畏[부심인사무외]」라 하여 一[일]○여 일만에 죽었다. 監司[감사]가 사연을 그림으로 그려서 나라에 바쳤다.
 
 
94
하는 것과, <續夷堅志[속이견지]>에,
 
 
95
옛날에 阿李[아리]란 老女[노녀]가 있어, 자식은 外方[외방]으로 장사를 나가고 며느리 七嫂[칠수]만을 데리고 지내는데, 며느리가 끼니마다 밥을 두 동으로 지어서, 麥飯[맥반]은 시어머니를 먹이고 저는 입쌀밥을 먹으며, 조금만 수에 틀리면 욕질이 일쑤요 麥飯[맥반]조차 주지를 아니하나, 시어미가 꾹 참고 말을 하지 못하였다. 하루는 며느리가 隣家[인가]로 나들이 가고 시어머니가 집을 보더니, 동냥 중이 와서 밥을 빌어지라 하거늘 阿李[아리] 가로되, 나도 배를 곯리고 지내는데 중 줄 것이 어디 있소, 중이 厨中[주중]의 白飯[백반]을 가리킨대 李[이]가 가로되, 이것은 내 며느리의 밥이니 남을 줄 수 없소, 내가 아침에 먹던 麥飯[맥반]을 一合[일홉]쯤 남겨 점심을 하려 한 것이 있으니, 그것이라도 가져갈 테면 가져가오 하였다. 중이 미처 대답을 못하여서 며느리가 밖으로서 돌아오더니 大怒[대로]하여 하는 말이, 네가 내 白飯[백반]을 달라려거든 네 가사를 벗어서 나를 다오 한즉, 중이 얼른 벗어 놓거늘, 며느리가 받아서 몸에 걸치자마자 중은 간곳이 없고, 가사가 몸에 덮여 化[화]하여 牛皮[우피]가 되어 다시는 벗어지지 않고, 胸間[흉간]으로부터 시작하여 털이 나더니 금새 금새 온 몸에 퍼지고 겨우 頭部[두부]만이 남는지라, 급히 그 父母[부모]에게 기별하여 와서 본 즉 전신이 牛[우]를 이루었다.
 
 
96
하는 것 같이 輪廻[윤회] 轉生[전생]을 말하되 惡因惡報[악인악보]에 붙이는 것이 많으며, 그렇지 아니하면 <春渚記聞[춘저기문]>에,
 
 
97
昭興[소흥] 九[구]년에 湖州[호주] 普安院[보안원] 女僧[여승] 沈大師[심대사]란 이가, 吳江縣[오강현] 潘氏[반씨] 형제가 分財[분재]를 하는데 집에 華嚴經[화염경]이 있어 차마 둘에 쪼개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시험삼아 가서 시주를 請[청]하니 다 좋다 하므로 大師[대사]가 말하기를, 그러면 가서 香火[향화]를 갖추어 가지고 와서 모셔 가오리다 한즉, 潘氏[반씨] 老人[노인]이 가로되, 그대 간 뒤에 中變[중변]이 있을지 모르니 내가 배를 줄 것이니 아주 싣고 가는 것이 어떤가, 大師[대사]가 작히 좋으리까 하여 經[경]을 배에 가져다가 얹은즉, 마침 가물이 심하여 배질할 만한 물이 없는지라, 노인이 다시 牛[우]를 빌어 經[경]을 싣고 가게 하였다. 그래서 牛[우]가 다녀왔는데 노인이 中夜[중야]에 홀연 그 마누라더러 말하기를, 내가 經[경]을 시주하여 공양은 되었지마는 牛[우]는 잃어버리는 것일세 하거늘 마누라가 잼처 , 물은대 대답하되, 내가 시방 꿈을 꾸니 牛[우]가 와서 人言[인언]으로 말하기를, 그동안 길러 주신 恩德[은덕]도 크거니와 이번에 佛經[불경]을 끌고 가게 하여 주셔서 그 공덕으로 시방 畜生[축생]의 몸을 면하고 곧 안락처로 왕생하오니, 고마운 말씀을 어찌 다 하오리까 하더라 하고, 얼른 가서 보니 牛[우]가 벌써 죽었더라.
 
 
98
하는 것 같은 功德談[공덕담]의 類[유]가 많습니다. 여하간 牛[우] 그것을 惡報[악보]로 보는 이야기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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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요전에 말씀할 것이 늦어진 嫌[혐]이 있읍니다마는, 牛[우] 그것을 神[신]으로 위하고, 轉[전]하여 牛像[우상]을 신으로 奉祀[봉사]하는 풍습은 세계 각지에 꽤 널리 행한 바입니다. 세계에서 제일 유명하고 또 오랜 것은 무론 애급의 聖牛[성우]들이요, 이 聖牛[성우] 중의 가장 유명한 것은 멤피스市[시]의 아피스(Apis)니, 이는 大父神[대부신]「브다」神[신]의 化身[화신]으로 자연의 왕성한 생산력의 表象[표상]이라 하여 생전에는 神殿[신전]에서 봉양되고, 사후에는 장엄한 陵[능]과 廟[묘]에 崇祀[숭사]되어, 시방도 사카라 지방에 남아 있는 그 墓所[묘소]는 장엄함이 보는 이를 경탄케 하는 터입니다. 일반으로 셈틱人[인]은 牡牛[모우]로써 태양의 全能力[전능력], 특히 그 파괴의 再生力[재생력]을 표상하여, 이것을 바알神[신]이라고 예배하고 希伯來(헤브라이)人[인]도 고대에 金犢[금독]의 像[상]이 예배의 대상이 되었음은 <出埃及記[출애급기]>(三二章[삼이장] 以下[이하])에 기록되었음과 같고, 이 拜牛[배우]의 派[파]와 여호와 一神敎派[일신교파]와의 갈등은 <列王記[열왕기]>(上十三[상십삼] 及[급] 下二三章等[하이삼장등])에 나타남과 같습니다.
 
101
支那[지나]에도 牛[우]를 신으로 崇祀[숭사]하는 俗[속]이 예로부터 있어, 그 流風餘韻[유풍여운]이 각처에서 발견됨은 <月令廣義[월령광의]>에,
 
 
102
牛[우]에게는 牛王[우왕]의 祀[사]가 있는데, 越地方[월지방]에서는 牛字[우자]를 誤解[오해]해 가지고 冉伯牛(염백우)의 像[상]을 그려 놓고 제사하는 자가 있다.
 
 
103
함과 <廣東通志[광동통지]>에,
 
 
104
遂溪縣[수계현]의 第三都英靈下村[제삼도영령하촌]에 예로부터 土地堂[토지당]이 있더니, 陳時[진시]에 어떠한 행인이 牛[우]를 몰고 堂前[당전]으로 지나는데, 죄다 化[화]하여 石[석]이 되고 石[석]이 다 牛頭形[우두형]인지라 눌러서 거기 집을 짓고 사니, 이것이 雷種[뇌종]의 祖地[조지]이었다. 後人[후인]이 그 牛形石[우형석]을 인하여 石牛廟[석우묘]를 지었다.
 
 
105
함과 <廣州記[광주기]>에,
 
 
106
欝郡山[울군산] 동남에 一池[일지]가 있고 池邊[지변]에 一石牛[일석우]가 있어, 사람들이 尊祀[존사]하며 旱災[한재]가 있으면 백성이 牛[우]를 잡아서 祈雨[기우]하되, 牛血[우혈]로써 泥[니]를 반죽하여 石牛[석우]의 背[배]에 바르면, 禮[예]가 끝나자 大雨[대우]가 와서 牛背[우배]를 씻어 泥[니]가 다 지면 곧 날이 든다.
 
 
107
함 等[등]과 같으며 <陜西通志[협서통지]>에,
 
 
108
石牛[석우]가 寧羗州[영강주] 五丁峽[오정협] 內[내]에 있어 수가 十二頭[십이두]라기도 하고, 五頭[오두]라기도 하니, 곧 秦[진] 惠王[혜왕]이 만들어서 써 蜀[촉]을 속이던 것인데, 후에 蜀[촉]의 鄧艾廟[등애묘] 內[내]에 두었더니, 시방은 聖壽寺[성수사]에 옮겨 있다.
 
 
109
하는 것도, 필시 고대의 신앙적으로 쓰던 牛像[우상]의 유물일 것입니다.
 
 
110
震域[진역]에 牛[우]를 신으로 위한 사실이 있고 없음은 孤陋[고루]하여 단언할 수 없는 바로되, <三國志[삼국지]> 魏書[위서]의 <夫餘傳[부여전]>에,
 
 
111
殷[은] 正月[정월]로써 祭天[제천]할새, 國中[국중]이 大會[대회]하여 연일 飮食歌舞[음식가무]하니, 이것을 이름하되 迎鼓[영고]라 하며, 이 기회로써 刑獄[형옥]을 처단하고 囚徒[수도]를 해방하였다. 軍事[군사]가 있으면 또한 祭天[제천]하는데, 牛[우]를 잡고 蹄[제]를 보아 써 길흉을 占[점]하되 蹄[제]가 쪼개진 것은 凶[흉]타 하고 꼭 붙은 것은 吉[길]타 하였다.
 
 
112
하는 것을 보면, 牛[우]를 靈物[영물]로 친 것만은 사실일까 합니다.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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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그 다음 <輿地勝覽[여지승람]> 江原道[강원도] 三陟府條[삼척부조]에,
 
 
115
太白山頂[태백산정]에 天王堂[천왕당]이란 神祀[신사]가 있어, 강원ㆍ경상 양도의 근방 郡邑人[군읍인]들이 춘추로 제사를 하는데, 牛[우]를 神座[신좌] 前[전]에 매고 惶怯[황겁]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나며 이르기를, 혹시 돌아다보면 신이 불공하게 여겨 버력을 준다고 한다. 三[삼]일 지난 뒤에 府[부]에 그 牛[우]를 거둬다가 쓰고, 이름하기를 退牛[퇴우]라고 하였다.
 
 
116
한 것이 있는데, 여기 牛[우]를 가져다가 神前[신전]에 매는 것이 단순히 희생적 의미라면 모르거니와, 그렇지 않고 그 앞서서의 근거가 있었다 하면 그것은 무론 牛[우]에 대한 종교적 존중일 것입니다. 일본에는 牛頭天王[우두천왕]이란 신이 있어, 俗神道[속신도]에서는 素戔鳴尊[소잔명존]에 附會[부회]하여 尊崇[존숭]하며, 實質[실질]로 말하면 印度[인도]의 瞿摩揭利婆[구마게리파](Gavagriva 譯[역]하면 牛頭[우두]) 神[신]의 전래라 하지마는, 여하간 명칭 이외에는 牛[우]인 形迹[형적]이 없으며, 다만 牛頭[우두]ㆍ牛迹[우적]ㆍ牛血[우혈] 등에 관한 민간신앙이 있어, 牛[우]에 대한 종교적 古風[고풍]을 약간 엿보게 합니다. 여하간 牛[우]를 신으로 위하는 형적은 여러 국민의 사이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바입니다.
 
117
여기 또 한 가지 말씀해 둘 것은 마찬가지 牛[우]를 신성시하는 데도 국민을 따라서 숭상하는 바가 같지 아니한 점입니다. 이를테면 埃及[애급]에서는 牡牛[모우]를 聖視[성시]하거늘 印度[인도]에서는 牝牛[빈우]를 聖視[성시]하고, 埃及[애급]에서는 黑牛[흑우]를 尊崇[존숭]하거늘, 印度[인도]에서는 白牛[백우]를 尊崇[존숭]함과 같습니다. 통틀어 支那[지나]ㆍ朝鮮[조선]ㆍ日本[일본]에서는 黑牛[흑우]를 聖視[성시]함이 埃及[애급]과 같으니, 支那[지나]의 神仙傳說[신선전설]에 老子[노자]가 西[서]으로 關[관]을 나갈 때에도 靑牛[청우]를 탔었다 함이든지, 封衡[봉형]이란 神仙家[신선가]가 항상 靑牛[청우]를 타고 다녀서 世人[세인]들이 靑牛居士[청우거사]라고 불렀다 하는 靑牛[청우]가 다 黑牛[흑우]를 이름입니다. 우리의 콩쥐팥쥐 전설에 나오는 「검은 암소」는 흑색으로는 埃及系[애급계]에 통하고, 牝性[빈성]으로는 印度系[인도계]에 연락됨이 또한 재미있읍니다.
 
118
牛[우]를 주제로 하는 전설의 여러 종류를 일일이 들어 말씀하기는 심히 번거로운 일이지마는, 우선 牛[우]가 인생으로 더불어 특별히 밀접한 교섭이 있음으로부터 생겨난 이야기를 두어 종류 들추어 보겠읍니다. 하나는 소 도둑질과 및 소 임자 재판의 이야기입니다. <梁書[양서]> 顧憲之傳[고헌지전]에,
 
 
119
顧憲之[고헌지]가 建康令[건강령]이 되었을 때, 한 놈이 남의 소를 훔쳐갔더니 주인이 알아보고 내라 하매, 그 놈이 본래부터 제 것이라고 뻗대고 여기 대한 증인이 반반씩이어서 前後[전후]의 官長[관장]들이 판결을 내리지 못하였다. 憲之[헌지]가 이르매, 訟案[송안]을 뒤져 보고 二家[이가]를 불러 일러 가로되, 「다시 여러 말을 마라. 내가 다 査得[사득]하였노라」 하고 이에 그 소를 풀어 놓아서 제멋대로 다니게 하여 소가 곧장 本主[본주]의 집으로 돌아가니, 도둑놈이 하는 수 없이 服罪[복죄]하였다.
 
 
120
함과, <隋書[수서]> 於仲文傳[어중문전]에,
 
 
121
於仲文[어중문]이 安固太守[안고태수]로 간즉 任[임]ㆍ杜[두] 兩姓[양성]의 집에서 각각 牛[우]를 잃었다가 任[임]의 집에서 一牛[우]를 얻으매, 양가에서 다 제 것이라 하여 州郡[주군]이 오래도록 판단치 못하는 疑訟[의송]이 있거늘, 仲文[중문]이 가로되, 이것이 어려울 것 있느냐 하고 이에 양가로 하여금 각각 牛群[우군]을 몰아가지고 오게 하여 말썽되는 牛[우]를 풀어 놓으매, 그 牛[우]가 드디어 任氏[임씨]의 牛群[우군] 중으로 들어가매, 또 가만히 사람을 시켜 그 牛[우]의 몸에 생채기를 내매 任氏[임씨]는 매우 애처러워하는데, 杜家[두가]에서는 아무렇지 아니하거늘, 仲文[중문]이 이에 杜氏[두씨]를 족치니 杜氏[두씨]가 服罪[복죄]하였다.
 
 
122
함 같은 裁判奇談[재판기담]은 이 밖에도 내외의 史乘[사승]에 유사한 사실이 많이 적혀 있는 바입니다. 또 <唐書[당서]> 張允濟傳[장윤제전]에,
 
 
123
張允濟[장윤제]는 靑州[청주] 北海人[북해인]으로 隋[수]에 벼슬하여 武陽令[무양령]이 되어 明察[명찰]로 得名[득명]을 했었다. 元武[원무] 땅의 백성이 牝牛[빈우]를 데리고 妻家[처가]살이를 하여 송아지 一[일]○여 두를 늘렸는데, 처가로서 나오려 할제 이 송아지를 내어주지 아니하므로, 官家 [관가]에 呈狀[정상]을 했으나 官長[관장]이 판결을 내지 못하거늘, 이에 允濟[윤제]에게로 갔다. 允濟[윤제]가 가로되, 너희 고을 원이 있는데 어찌 내게로 오느냐 해도, 그 백성이 울면서 그 寃抑[원억]함을 하소연한대, 允濟[윤제] 이에 좌우로 하여금 그 백성을 結縛[결박]하고 머리에 蒙頭[몽두]를 씌워 가지고 그 처가 앞으로 지나가면서 소도둑놈을 잡았다 하고 民家[민가]의 소를 말끔 내어오라 하여 그 所從來[소종래]를 따지니, 처가에서 웬 셈인지 모르고 언뜻 말하기를, 이 소들은 사위집 것이요 우리하고는 상관이 없읍니다 하거늘, 곧 좌우를 시켜 蒙頭[몽두]를 벗겨 가로되, 「이래도 그 소를 사위에게 내어주지 못할까」한즉, 처가에서 叩頭服罪[고두복죄]하고, 元武[원무]의 官吏[관리]는 크게 수치를 당하였다.
 
 
124
함과, 또 <宋史[송사]> 包拯傳[포증전]에,
 
 
125
包拯[포증]이 天長縣[천장현]의 원이 되었을 때, 도둑놈이 남의 소의 혀를 베어 간 일이 있어, 소 임자가 와서 呈狀[정상]하거늘, 拯[증]이 가로되 「오냐, 가서 그 소를 잡아서 고기를 팔라」했더니, 좀 있다가 또 웬 놈이 와서 사사로이 소 잡은 놈이 있읍니다고 고자질을 하거늘 拯[증]이 가로되, 「이놈, 어쩌자고 남의 소의 혀를 베어 가고 또 와서 고자질까지를 하느냐」하니 도둑놈이 놀라서 服罪[복죄]하였다.
 
 
126
하는 종류의 소도둑놈 처단의 이야기도 가끔 史上[사상]에 나타납니다.
 
127
또 한 가지 말씀할 것은, 소를 윤리적 지각 있는 것으로 보는 이야기입니다. 이 義牛談[의우담]에는 事實[사실]도 있겠지요마는, 또 예술적의 것도 있는 모양입니다. <幽明錄[유명록]에,
 
 
128
元嘉年間[원가년간]에 益州刺史[익주자사] 吉翰[길한]이 南得州[남득주]로 遷任[천임]되었는데, 앞서서 蜀中[촉중]에서 一[일] 靑牛[청우]를 데리고 와서 타고 다니더니, 翰[한]이 병든 지 여러 날 되매, 牛[우]가 또한 먹을 생각을 아니하고, 및 죽으매 牛[우]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吉氏[길씨]의 喪[상]이 아직 還都[환도]치 아니하여서 먼저 牛[우]를 떠나보내려 한대, 牛[우]가 가기를 즐기지 아니하거늘 이상히 여겨 그만두었더니, 喪[상]이 船[선]에 오른 뒤에 곧 따라갔다.
 
 
129
하고, <冷齋夜話[냉재야화]>에,
 
 
130
筠溪快山[군계쾌산]에서 虎[호]가 牧牛童子[목우동자]를 훔쳐 가려 하거늘, 兩牛[양우]가 한꺼번에 달려들어 虎[호]를 쫓고, 虎[호] 무러와서 나무를 짊어지고 노리매, 牛[우]가 끝까지 捍護(한호)하여 犯接[범접]하지를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童子[동자]는 이리하는 중에 죽어버렸다.
 
 
131
하는 따위 忠牛談[충우담]은 아마 事實[사실]이 그랬을 것이요, <汝寧府志[여령부지]>에,
 
 
132
明[명]나라 正德 初年[정덕초년]에 畢昭[필소]란 이가 汝寧[여령]의 원이 되었더니, 홀연 一犢[일독]이 官門[관문]으로 돌입하여 대청 앞에 와서 무릎을 꿇고 미잉미잉 소리를 질러 무엇을 하소연하는 것 같거늘, 昭[소]가 가로되 네가 아마 억울한 일이 있는 것이지 한즉, 犢[독]이 곧 고개를 숙였다. 因[인]하여 官差[관차]를 내어 그 가는 데를 따라가 보게 한즉, 犢[독]이 달음질하여 屠家[도가]로 들어가는데, 一牛[일우]를 잡아매어 땅에 누이고 아직 칼을 박지 아니하니 곧 犢[독]의 어미라, 官差[관차]가 屠漢[도한]을 잡아들여 복죄하고, 牛[우]가 죽음을 면하니 그 犢[독]을 이름하여 가로되 孝牛[효우]라 하였다.
 
 
133
함과 같은 孝牛談[효우담]은 무론 말든 말이겠지요. 옛날에는 조선서나 支那[지나]에서 소를 몰래 잡지 못한 것입니다. 조선 근세의 事實談[사실담]에는 <梅山雜識[매산잡식]>(卷下)에,
 
 
134
安州[안주] 西村[서촌]에 金姓人[김성인]이 장에 가서 곡식을 팔고 소를 타고 밤에 돌아올새, 感啼峴[감제현]에 당도하여 문득 一虎[일호]를 만나, 겁이 나서 그만 소에게서 떨어지니, 虎[호]는 기어코 그 사람을 해하려 하고 그대로 牛[우]는 임자를 위하여 虎[호]를 받아서 온 밤이 새도록 서로 싸우다가, 牛[우]가 대신 해를 입고 牛主[우주]는 살았는지라, 時人[시인]이 이르기를 義牛[의우]라 하였다.
 
 
135
한 것이 있습니다.
 
 
136
13
 
 
137
牛[우]가 주인을 위한 것인지, 혹시 自衛[자위]를 위한 반사적 행위인지는 판단해 말할 수 없지마는, 여하간 이러한 일은 실제로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牛[우]를 충의의 物[물]로 생각한 동기는, 무론 犬馬[견마]와 한가지 牛[우]가 가축 중에서도 사람으로부터 의리를 찾을 만큼 친절한 관계를 가졌음에 있을 것입니다.
 
138
이 밖에 牛[우]가 人語[인어]를 하고 내지 천하의 운수를 예언하는 이야기, 牛[우]가 인간 이외에 독립한 왕국을 가지고 따로 점잖게 생활하는 이야기, 因果報應[인과보응]으로 牛身[우신]을 받아서 종교적 영험을 나타내는 이야기, 牛肉[우육]은 워낙 먹지 아니할 것인데 이것을 貪食[탐식]하다가 생전 혹 사후에 크게 버력을 입는 이야기 등이 각각 한 그룹을 이루어서, 牛[우]의 전설적 내용을 심히 풍부 다채하게 만들었지마는, 이것은 대개 牛[우] 독특의 것이 아니라 다른 동물에도 흔히 부수하여 있는 통속적의 것이매, 아직 여기서는 일체로 모르는 체하기로 합니다. 다만 마지막으로 牛肉[우육] 먹음을 경계하는 이야기의 일례에,
 
 
139
張覲[장근]이란 이의 家人[가인]이 한번은 꿈에 한 곳에 이르니 큰 집이 있고 현판에 金字[금자]로 牛王之宮[우왕지궁]이라 하였는데, 문으로 들어간즉 죽은 그의 姨母[이모]가 달려들어 말하기를, 내가 생전에 牛肉[우육]을 즐겨 많이 죽였더니 사후에 여기 와서 限[한] 없는 고초를 받고 날마다 가시밥 한 되씩을 먹기에 기가 막힌다고 하였다. 말이 마치지 못하여 곧 牛首人[우수인]이 밥을 가지고 왔는데, 그것을 보니 작은 鐵蒺藜(철질려)가 보리알만큼씩 하고 가시 끝이 몹시 날카로우며, 밥이 목구멍을 넘어가매 데굴데굴 굴러 내려가서 腸胃[장위]를 찔러 아프기 그지없고, 인하여 가려운 증이 나서 손으로 긁으면 온 몸이 벗겨져 피가 철철 흐르고, 牛首人[우수인]이 옆에 있다가 쇠갈퀴로써 득득 긁어 주면 마침내 고기가 떨어지고 뼈가 드러남과 함께 먹었던 鐵蒺藜[철질려] 밥이 죄다 그대로 나오며, 한 번 그 이름을 부르면 形體[형체]가 도로 복구를 하였다. 이 사람이 보기에 끔찍끔찍하여 얼른 도망하여 나오려 하매, 牛首人[우수인]이 좀 가만히 있으라 하고 가로되, 너도 전에 牛肉四兩[우육사량]을 먹었으니, 마땅히 이 밥 二合[이홉]을 먹고 가라 하거늘, 살려줍시사 하여도 아무 소용이 없어 입을 벌리고 그 밥을 받아 삼키니, 밥이 목구멍을 넘기가 무섭게 어떻게 아픈지, 그만 데굴데굴 굴다가 겨우 꿈이 깨었는데, 腮(시)와 頰(협)과 舌[설]이 다 헐어서 곧 말을 하지 못하고 이튿날에야 겨우 입을 놀려 夢中[몽중]에 겪은 일을 옮겼다 (春渚記聞[춘저기문]).
 
 
140
하는 것 같은 극단의 것이 있음을 소개하여 써 인류가 牛肉[우육]을 먹으면서도 양심으로는 이렇게도 가책을 느끼기도 하는 일이 있음을 다시 생각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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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九三七年一月九日[일구삼칠년일월구일]~一月二九日[일월이구일] 每日申報[매일신보]>
【원문】신화(神話)ㆍ전설상(傳說上)의 우(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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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남선(崔南善) [저자]
 
  매일 신보(每日申報) [출처]
 
  1937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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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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