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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선의궁 앞 큰길 건너편이외다. 대문을 나서면 고양이 이마빡만한 배추밭이 있읍니다. 그 밭을 왼편으로 끼고 이삼 간 나오면 실개천이 있읍니다. 그것은 바로 선의궁 앞 큰길가인데 인왕산에서 흐르는 물과 우리 동리에서 먹는 우물물이 서로 어울려서 졸졸졸 흐르고 있읍니다. 그 개천가에는 늙은 버드나무가 드문드문 실같이 늘어진 가지를 떠이고 서 있읍니다. 실같이 늘어진 그 가지가 연두빛으로 물들어 봄바람에 하늘거리는 것을 이제야 비로소 보았읍니다. 아침에 어린애가 밥짓는 아내를 하도 조르기에 안고 큰길로 나갔다가 보았읍니다. 이것은 거짓말 같은 참말입니다. 내가 이 동리로 이사한 지가 하루이틀이 아니요, 그 버드나뭇가지가 푸른 것이 또한 하루이틀이 아니었을 터인데 내 눈에 뜨인 것은 어제 아침이었읍니다. 마음이 허울의 수고를 받으니 그런지 ? 또는 내가 너무도 무심하여서 그런지는 모르나 하여튼 바로 집 앞에 우거져 가는 버들잎을 어제 비로소 볼 때 나는 어쩐지 나라는 존재를 너무도 어이없이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아른한 아침 연기 속을 고요히, 그리고도 정답게 흘러내리는 아침볕을 받고 서서 어린애 뺨같이 부드러운 싹에 실실이 푸른 그 가지를 보는 내 가슴은 까닭모를 애틋한 느낌에 흔들리었읍니다. 북악의 푸른 빛과 인왕산 머리의 아지랭이도 모두 처음 보는 것 같았읍니다. 천지는 이렇게 푸르렀읍니다. 늙은 나무에까지 움이 텄읍니다. 그래도 나는 몰랐읍니다. 한 사래의 밭도 없는 내가 철은 알아 무엇하리이까마는 생각하면 철을 모르는 인간같이 미미한 존재는 세상에서 또 없을 것입니다. 무엇이 나의 귀를 막고 무엇이 나의 눈을 가리었던고 ? 나는 가슴에 안겨서 철없이 방긋거리는 어린것의 뺨을 문지르며 따스한 햇발이 흐르는 신록의 천지를 다시 보았읍니다. 저 빛이야 철을 잃으리까마는 이것들 장래는 어찌 될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