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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일(近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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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2
채만식
1
近 日[근일]
 
 
2
새벽 다섯시까지(어제 밤 여덟시부터 꼬바기) 앉아서 쓴 것이 장수로 넉 장, 실 스물일곱 줄을 얻고 말았다.
 
3
그 사이, 노싱을 한 봉 반씩 네 차례에 도합 여섯 봉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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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새로 뜯어논 스무 개 들이 가가아끼 한 곽이 빈탕이 되었다. 재털이가 손을 못 대게 낭자하다. 성냥 한 곽을 아마 죄다 그었나 보다. 하루 평균 치면 네 개피나 다섯 개피가 배급 표준이라는데, 그러니 조선도 성냥 전표 제도가 생겼다가는 큰 야단이 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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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용지를 파지를 내기 백 매짜리로 거진 한 축. 픽픽하는 갱지가 되어서 더 헤프기도 하지만, 둘러보니 완연 휴지 속에 파묻혀 있는 형용이다. 원고용지 구하기가 원고 쓰기보다 더 힘이 드는 이판에, 이대도록은 너무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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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치가 멍멍, 언 살을 만지기 같다. 딱 시장은 하면서도 혀가 깔깔하고 밥 생각은 나지를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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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얻은 그 넉 장에 스물일곱 줄이나마 제대로 성할 테냐 하면, 이따가 저녁이면 십상 또 작대기를 북북 주고서 번연히 처음부터 다시 쓰기 시작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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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이 후유 나온다. 내가 생각을 해도 무슨 짓인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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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야지건 말건, 일곱시 반의 전등이 꺼질 때까지는 붙잡고 느는 게 항용이지만, 부엌에서들 우세두세 새벽밥을 짓느라고 설레는 소리가 나서 가뜩이나 정신이 헛갈려, 웬만큼 걷어치운다. 네째형이 요새로 매일같이 서울을 들러 광나루의 공사장 현장엘 통래하느라고 첫차를 타기 때문에, 늘 새벽조반을 먹어야 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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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시 반이 조금 지난 걸 보고 건넌방으로 올라갔다. 형은 불빛이 아직도 밤중인 듯 휘황한 전등 밑에서 벌써 입맛 없는 밥술을 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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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부석부석한 게, 과로와 소화기관에 장해가 생긴 징조인 것이 분명했다. 지난해 겨울에도, 지질한 그 노심초사와 극도의 피로 끝에 필경 몸져 누워서는 삼동 내내 중병을 앓던 일이 생각히면서, 더럭 마음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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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물이 뜨듯하니 한술 놔서, 먹구 자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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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은 밥상머리로 가 쪼글트리고 앉는 나를 건너다보며 권을 하다가 그이면서 문득 얼굴이 어두워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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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을 아는 터라, 나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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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양치나 하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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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또렷한 음성을 지어서 대답을 한 후 말머리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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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째형님은, 가시더니 대체 웬일인지 모르겠구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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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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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은 금시로 그 비썩 마른 얼굴에 가득 근심이 끼면서 이내는 대답이 없다가, 훨씬만에야 푸뜩 탄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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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만해두 일이 꼬여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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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기 없는 말소리가 목 안으로 깔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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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느낌을 듣는 듯 가슴이 찌르고 아프고, 기왕 잠시나마 걱정을 잊은 채 밥이라도 마음 편히 먹게 할 걸 싶어, 불쑥 개두를 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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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여러 해 전부터, 네째형을 뒷받이를 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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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라고, 별반 재산은 지닌 게 없어도 일에 대한 수완이 좋아서, 다년간 ××은행의 행원 생활을 거쳐, 시방은 어떤 유수한 국책회사의 중요한 과에서 한 계(係)의 주임으로, 가장 요긴한 일머리를 맡아보고 있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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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도 몇 차례 만난 적이 있고 형이랄지 다른 사람들에게서 들음들음이 들은 바를 미루어 그의 사람 됨을 잘 아는 터인데, 도무지 그가 떠짊어지고 있는 간판허구는 얼리는 구석이 없어 보이는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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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옥 사람 용한 술친구 같아서, 헙헙하고 이해에 어둡고 남의 말 잘 곧이듣고 재물 아깐 줄 모르고. 해서 점잖게 이르자면 군자요, 실없은 말로 하자면 어리석달 만큼 호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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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말고도 그는, 누구니 누구니 여러 사람을 밑천을 대주어서 장사도 시키고 금광도 하게 하고 했었다. 하되 그게 모두가 남의 빚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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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후원을 받은 사람들이란, 그런데 태반이 허랑한 풍객들이어서 대개는 실패를 하고 나가자빠졌지만, 그중엔 그래도 몇몇, 한심 실히 잡은 축이 노상 없는 건 아니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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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성공을 한 패들도 저마다 입을 싹싹 씻고 돌아서버렸고, 덕분에 K는 빚 속에 폭 파묻혀 허덕허덕 허덕거리기나 해야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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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뭏든 그만큼이나 어리숙한 K나 하니까 세상에서는 단돈 서푼어치의 경제적인 신용도 하려 들지 않는 내 네째형쯤을, 친동기간같이 마음을 놓고 더검더검 돈을 주어 일을 시키고 했던 것이지, 될 뻔도 아닌 말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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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렇게 어떻게 해볼 도리를 합시다. 요행 한밑천 잡으면 고마운 노릇이고 쯧! 운덤에 나도 용돈이라도 좀 얻어 썼으면 좋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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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에 이런 부탁이랄까 이야기가 있었을 뿐, 말로라도 단단 무슨 언약이니 다짐이니 하는 등사가 없었고, 그러고는 백 원이 든다고 하면 백 원을, 천 원이 든다고 하면 천 원을, 부지런히 변통을 하여 척척 내놀 따름이지, 일체 경리 내용이건 일의 설계와 진행에 대해서건 전혀 간섭을 함이 없이 방임을 했었다. 좌우간 그래서 K 같은 사람의 후원을 받게 된 것은 형을 위하여 매우 행운이라 할 것이었으나, 막상 일에 있어서는 번번이 시원칠 못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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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생각잖은 마가 붙어서, 마악 일 착수를 하려다가는 탈이 나고, 시작을 하려다가는 파의가 되고. 전자는 그만두고서 작금 양년만 하더라도 거듭 낭패의 연속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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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일 년 동안을 두루두루 물색을 하고 주선을 하던 끝에 세모가 임박해서야 드디어 R이라는 사람의 소유로 영종도에 있는 사금광구의 채굴작업 전부에 대한 청부의 도득이었었다. 원은 분광을 한 귀탱이 얻어 하려고 했었으나, 더 유리하게 공사 청부가 되었었다. 공사를 청부로 맡으면, 분광과 달라 금이야 많이 나건 말건 상관이 아니요, 이편의 몫으로 일정한 수익이 보장되기 때문에 안전해서 좋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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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 같은 것도 전부 광주 편에서 설비를 하고, 그러니 이편은 조그만큼 처음 한바닥을 떼어낼 인부 공전으로 돈이라 한 천 원 가량 쥐고 가서 일을 붙여놓으면 그만이었었다. 공사 단도리(段取)라고, 작업에 대한 실제 기술이야 네째형도 어느만큼 경력이 없는 건 아니지만 십여 년을 남의 공사장으로 다니며 덕대 노릇을 하던 세째형이 있어서, 아무 겁 할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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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째형은 계획이랄지 경리랄지 광주와의 교섭 같은 걸 담당하고, 세째형은 현장을 담당하고, 그래서 아우 형제서 오붓하니 해나갈 수가 있고, 사실 또 이편의 그러한 컨디션을 참작하여 애초부터 일을 꾸민 터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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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까지도 잊지 않았거니와, 작년 섣달 보름날. 두 형은 마침내, K에게서 나온 현금 천 원과 몇 축의 전표와 볼대 한 개와 금침과 이렇게 간단한 최후의 준비를 마쳐 가지고 아침 일찍 개성역에서 영종도 현장을 향해 장도를(진실로 장도를!) 떠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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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침을 나는 고기와 생선을 사서 찬을 걸게 장만해 놓고 마치 누구의 생일이 돌아온 것처럼 삼형제의 전가솔 열두 식구가 죄다 모여, 번화히 식사를 함께 하면서 그날을 축하함으로써 형들을 위로하며 기쁨을 나누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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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이 감개 없지 못한 아침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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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서 삼 년까지 치면 도합 팔 년, 개성으로 내려가서만 오 년, 아는 원고료의 수입과 빚으로써, 육칠 인이나 되는 네째형의 가족을 부양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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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안한 계산이어서, 형이니 어린 조카들을 밥을 먹였다느니보다도 가까스로 입에 풀칠을 시켰던 것이고, 그러나 가까스로 그 입에 풀칠을 시키는 노릇이건만 오직 붓대 하나를 가졌을 뿐 백면서생인 나로서는 그것이나마 도저히 무리한 감당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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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데다가 우환이 늘 또 잦아서 생계를 가뜩이나 더 옹색케 했었다. 참혹한 꼴을 보지 않으려고 중병일 경우면 더욱 발을 벗고 서둘러 댔고, 잘 그렇게 납뛰곤 한 보람으로 무엇은 꼭 죽을 생명을 요행 건지기도 했었지만, 서울서 한번과 개성서 한번과 갓난 것 둘은 어쩔 수 없이 그만 잃게 하고 말았었다. 그중에서도 개성서 삼칠일짜리 계집아이를 유아폐렴으로 죽이던 것은 두고두고 나를 마음을 어둡게 하는 기억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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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 중병인이 있어서 산모와 유아가 한가지로 감기 기운이 있는 줄은 알았어도 깊이 주의를 할 경황이 없었고, 실상 또 산실을 거두지 않은 채라 숙질간에 미처 상면도 못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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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그날 밤에야 안해에게서 이야기를 듣고 미심결에 안방엘 비로소 들어가 보았더니 뜻밖에도 증세는 절망이도록 기울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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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망하여, 형을 탓을 하면서 일변 아이들을 시켜 의사를 청하러 보내고 하던 것이나 피부가 변색이 되고 마디숨을 쉬고 하는 것이 이미 때를 놓친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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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을 쓰고, 모른 체하고 누웠던 형은 그제서야 푸스스 일어나 앉으면서 도리어 나를 탓하며 하는 말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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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여지거나 말거나 내버려 두어라! 천석꾼이라두 못 당해내겠구나. 제 명이 있으면 살어나는 것이구, 그렇잖으면 뒤어지는 것이구, 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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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피를 토하지 못해 이런 매몰한 소리를 해야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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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여섯 남매 가운데 제일 인정 있고 마음이 약한 그였었다. 남의 집 어린것이라도 방금 옆에서 죽어가고 있다면 차마 못보아 할 그였었다. 황차 자기의 혈육인 것을, 세상이라고 나온 지 겨우 삼칠일, 그 눈 새까만 것이 말도 못하고 꽁꽁 부대끼며 숨이 넘어가는 양을, 모른체하고 앉았다니 실로 절대한 고통일 것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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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는 한편으로는 무섭게 마음이 독하고 모질기도 했었다. 수다한 권솔을 거느리고서 수입이나마나 푸달진 아우에게 입을 들얹고 있음으로써 아우를 고생을 시킨다는 것이 그로서는 다른 어떠한 것에도 비기지 못할 가장 애처로움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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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일편의 의리나 형식엣 말이 아니라, 진정으로 그는 아우의 고생이 액색했고, 그러하기 때문에 그는 극히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에 대하여는 모질고 독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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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려나 그렇게 나는 혼자서 괴로우면서도 형이 처음 한동안 약소한 수입을 바라고 직업을 붙들려고 하는 것을 완강히 만류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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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나마나, 삼사십 원의 월급자린데 그걸 가지고는 일시 나의 괴로운 부담을 덜어는 줄지언정 따로이 독립을 해서 적지 않은 가족의 의식과 아이들의 교육비를 삼을 건지가 못 되었었다. 또, 나이 사십이 넘었으니 오십이 며칠이라고, 족히 장구지책도 아니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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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년이고 십 년이고, 가족은 기왕 내가 맡고 형일랑은 단신으로 나서서, 미두를 하든지 금광을 하든지 무슨 짓을 하든지(이미 적수공권인 바에야 이상 더 밑질 건 없겠다) 요행수로 단돈 기천 원이라도 잡도록 하자는 것이 내 계획이요, 겸해서 도리요, 더욱이 그밖에는 방책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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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K의 그와 같은 적극적인 후원이 있고 해서, 형은 사 년 전부터서 금광판으로 아주 투신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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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 년 동안이 나에 게는 더욱 어려운 시기였었다. 절친한 친구 S를 권하여 출자를 시켰다가 초라한 재산에서 불소한 손을 보게 한 것도 그 무렵의 일로, 지금껏 가슴 아픈 가책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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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가난과 방황 끝에 이윽고 확실한 일 그루턱을 잡은 것이 영종도의 공사 청부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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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 반이더라고, 청부공사인즉 수익이야 번연한 것이어서 절반의 성공을 의심치 않아도 좋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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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적공이 이제야 보람이 나느니라고, 동기간을 위하여 도리를 다한 것을 만족해하면서, 나는 총총히 역을 향해 가고 있는 두 형을 언제까지고 바라보며 돌아설 줄을 몰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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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길을 떠난 그들이, 그런데 사흘 만에는 죽지 부러진 새처럼 어깨가 축 늘어져 가지고 돌아왔었다. 광주 R의 말이, 산금회사로부터 융자를 받기로 한 교섭이 보증인 관계로 마사가 생겨서 당분간 공사를 시작할 수가 없다고 한다는 것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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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하니 먼산만 바라다보일 뿐, 어떻단 말이 나오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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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편이 만일 구미(組)의 간판을 내세운 청부업자로, 자본이 넉넉히 있어가지고 보증금이라도 걸고서 계약 같은 것을 맺었단다면 그렇게 광주의 일언으로 문문히 낭패를 보지 않았을 것이었었다. 그러나 K의 소개로 초면인사를 하고서, 일을 좀 맡아 해다구, 그럼 맡아 해주마, 이러한 구두의 언약이 있었을 따름이니 광주 R이 아무리 배신을 하기로손 떳떳이 따잡을 말이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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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우리는 허랑한 꿈을 깬 모양이었으나, 기실 꿈은 아니요 역력한 생시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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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째형은 그래도 일루의 여망을 두고서 누차 R을 찾아다녔으나 종시 일은 시원치 못했고, 그러다가 병을 얻어 자리에 눕더니 한겨울을 죽도록 앓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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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바뀌어 금년 봄이자, K가 그동안 주선을 해서 충주의 용원에 있는 광에서 분광을 얻어 하기로 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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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목이며 발동기며 그 밖에 도구를 말끔 장만해 가지고 두 형이 충주로 떠난 것이 유월 초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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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에 나는 세째형의 가족만을 데리고 이리로 옮아앉았고, 여름 동안 한물을 만나 세 번이나 죽을 욕을 보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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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칠월 그믐께는, 충주로 내려간 일행이 다시금 허탕을 치고 돌아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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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당 서 돈이 나네 너 돈이 나네 한 것은 산금회사의 융자를 받느라고 꾸며댄 농간인 듯, 아무리 물정을 두루 여살펴야 흉악한 빈광으로 한바닥 파보나마나 강목을 칠 게 번연한 노릇이어서 차라릴 작파를 하고 말았다는 것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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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부질없은 친구가 K에게 광구 하나를 준 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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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까지 났고, 성적이 조금만 무엇하면 남의 광구에서 분광을 하느니보다 나을 터인즉, 그럼 그걸 개발하자는 데 K와 형의 의견이 일치. 구월에는 영광 땅까지 내려가서 두어 구덩이나 시굴을 해보았었다. 결과는, 금은 커녕 새부스러기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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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느라니 깨지는 게 북장구로, 약삭빠른 밑천만 퍽퍽 축날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여러 차례를 두고 번번이 낭패만 당하고 당하고 하느라니 제일에 사람들이 낙망이 되어, 거기서 오는 정신적인 타격이 여간한 게 아니었었다. 금광이란 어리숙하고 힘 안드는 횡재 노름이라고 이르지만, 남은 또 어떤지 몰라도, 막상 내가 앉아서 당해 보기엔 형들처럼 그렇게 애가 쓰일래서야 종차에 돈이나 몇만 원 몇십만 원 드뿍 잡는다고 하더라도 그 벌충이 되지 않을 성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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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누누이 헛수고와 낭패를 거쳐 이번에 다시 또 일자리를 마련한 것이 광나루 저편짝에 ××광산이었다. 그러하되 그새까지와는 달라, 여러가지로 착실한 구석이 없지 않은 반면, 자못 복잡하고도 미묘한 관계가 있어서, 이번이야말로 성패간 결단이 한바탕 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만큼 일은 중대했었다.
 
74
인부를 한 몇백 명이고 이편의 힘과 알선으로 끌어대어 데모찌 인부로 거느리고서 시다우께(下請負)를 하든지 판띠기를 여러 패 붙이든지 한다.
 
75
가령 이편이 삼백 명 인부를 끌고 들어가서 일 년 동안 작업을 한다면 사만 평 내지 오만 평은 파줄 수가 있다. 광주측에서는 그런데 가뜩이나 이즈음 인부가 귀하기까지 하여 자기네로서는 작업능력이 변변치 못한 터이라, 이편에서 그렇게 인부를 많이 대가지고 휘딱 일을 해치워 준다면 여간한 그게 생색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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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광주는 한 발에 백 원이면 백 원의 상당한 단가를 내고서 일을 시켰고, 이편은 또 이편대로 그 상당한 단가를 받고서 일을 해주었고 했은즉 그로써 그만이지 따로이 무슨 고마움이니 생색이니 하는 정실이 붙을 며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덕대가 있어, 어떤 광의 시다우께를 맡아가지고 한 달 동안에 삼천 평을 판다는 것과, 그리함으로써 일년 후엔 사만 평이나 오만 평을 파냈다는 결과는 단지 무기적인 숫자적 누적에만 그치질 않고서, 광을 갖다가 사오만 평이나 개발을 했다는 사실이 한 새로운 가치를 주장하게 된다. 즉 양으로부터 질에의 비약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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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에서는 금이 자꾸자꾸 필요하고, 광주로도 어서어서 금을 캐고 싶고 하건만, 도무지 손이 자라질 못해 광이 모두 묵어자빠진 형편이라, 비록 정당한 공사 단가는 공사 단가대로 받으면서 작업에 종사했다고 하더라도, 일 년 동안에 광구를 사오만 평이나 개발을 해주었다는 사실은 스스로 별개의 공로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78
이러한 공로에 대하여 그것이 실질적으로 나타나는 마당이면, 광주측은 그 보답으로써 광구 가운데 어느 자리고 금분 썩 좋은 곳을 한 삼사천 평 분광권을 이편에게 주겠다는 것이었었다.
 
79
인부를 들여대서 공사를 맡아 하기야 이편의 전문이니, 땅 짚고 헴치기나 다름없었다.
 
80
거기에다가 다시 종차 이편의 공로를 보아, 원은 아무한테도 주지 않기로 했다는 방침을 굽혀, 좋은 자리를 떼어서 몇천 평 분광을 주겠다는 조건이니, 이중으로 유리한 판이었었다.
 
81
또, 이것은 훨씬 뒤에야 말이 났었지만, ××광은 새가 많고 묵어서 고리가 매우 푸짐한 모양인데 그렇다며 광주측이 ‘함지탕’까지는 내놀 이치가 없겠으나 가령 작살탕만 얻는다고 하더라도 꽤 무던할 테였었다.
 
82
조건은 그래서 갖추 이렇게 유리했었다.
 
83
그러나, 반드시 이편이 광을 단시일에 많이 개발해 주었다는 공로에 대해서만 따라오는 조건이었었다.
 
84
광을 단시일에 많이 개발하자면 대규모로 벌여야 하고, 공사를 크게 하자면 첫째 왈 인부가 많아야 했었다. 그런데 정작 이 인부가 없었다.
 
85
시절이 시절이라, 또 마침 추수를 당해 놓아서 한꺼번에 삼사백 명은 도저히 어렵고, 연말 안으로 백 명 하나는 먼 지방 인부를 대령시키마 했었다. 그리고 차차로 농한기라 근읍의 광주 등지에서 제풀로 모여드는 인부가 적지 않을 터인즉, 잘하면 이백 명은 그럭저럭 데모찌 인부를 부릴 수가 있는 줄로 장담을 했었다.
 
86
도대체 이 백 명이니 이백 명이니의 인부를 확신한 것이 이편의 오산이었었다. 네째형이 월전에 한 바퀴 다녀왔고 그 뒤를 받아 세째형이 이번에 다시 내려가고 해서, 청주 홍성 삼례 옥구 그 등지에다가 인부 선하와 여비로 오백 원 돈을 깔아놓았으나, 그새 한 달 장간에 들어는 인부라곤 이십 명이 채 못되었다.
 
87
종업원 고입제한령이 생긴 후라, 함부로 남의 공사장에 가서 인부를 뽑아오지도 못하거니와 농촌의 사슬 인부도 허락한 법규 안에서 데려와야 했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밝기만 하질 않아서 인부에도 야미가 굉장했다. 큰 구미들이 사방 각지로 알선꾼을 흩어보내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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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부 한 사람 알선료가 십 원,
 
89
인부의 왕복 여비 부담,
 
90
인부의 가족에게 쌀 서 말씩 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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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흐뭇한 조건으로, 남의 공사장 인부고 농촌의 사슬 인부고 싹싹 긁어가는 참이었었다.
 
92
그러한데다가 농촌은 농촌대로 손이 모자라 입동이 지나도록 벼를 걷지 못해서 야단이고.
 
93
이러한 판국에서, 이편은 옛날 수하에 두고 부렸다는 하찮은 정실과 향토 관계만 의지삼아, 겨우 한쪽 여비만 부담하고서 떳떳이 인부를 모셔오자니(참으로 칙사처럼 모셔오자니!) 허파에서 바람은 날 대로 나고도 소득은 보잘게없었다.
 
94
예상대로 인부가 들어서지 않으니 또 한가지 낭패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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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혈은 몰라도 사금에 있어서 인부들에게 제일 곤란이 식사였었다.
 
96
항용 육두미(六斗米)라고, 쌀 엿 말을 받아가지고 한 달을 먹이는데, 그 ‘밥쟁이’ 의 밥이란 눈알만한 주발에다가 살살 펴서 푼 게 꾹 누르면 반 주발도 못 된다. 그것을, 쓰디쓴 김치 줄거리와 그리 잘 보이는 시래깃국 단 두 가지를 해서 하루 세 때씩 얻어먹으니, 소 같은 장정들이 사뭇 허천이 난다. 그러나마 잡곡까지 섞는다면 그들은 더 죽어야 한다.
 
97
그러므로 어느 공사장이고 밥이 정 나쁘면 인부가 오래 붙지를 않고, 반대로 밥이 좋으면 그들 본래의 이동성을 누르고서 잘 흩어지지 않는다.
 
98
이 점을 고려하여, 인부고야를 이편에서 직접 경영하기로 했었다.
 
99
‘밥쟁이’ 처럼 이문을 보지 않기로 하자면, 설혹 얼마간 찔러넣는다고 하더라도, 제일 밥을 좀 많이씩 주고, 국이니 김치 같은 것도 되도록 먹음직하게 해주고, 그런다치면 인부의 이동을 제법 막아낼 수도 있으려니와, 한편으로는 밥이 좋다는 소문을 듣고 바로 이웃의 딴 광구에서는 물론이요 멀리 타지에서도 차차로 모여 수효가 수월찮을 것이었었다.
 
100
육백여 원은 들여서 그릇을 장만한다, 김장을 담근다, 집을 빌려 수리를 한다, 넉넉 백 명 하나는 치를 준비를 말끔 해놓았었다. 했던 것이 지금 겨우 스무 명.
 
101
스무 명은 말고 단둘이라도 그대로 놀릴 수는 없는 것이라, 십여 일전에 한 판띠기를 아무려나 우선 붙여, 앞으로 며칠 아니면 감이 올라 오게까지 되었었다. 그러나 달랑 인부 스무 명을 데리고서 그 짓을 하고 있다니 광주측에다가 탕탕 큰 소리를 한 것을 무어라고 뒷갈망을 하며, 백 명을 먹여내자고 설비한 인부고야는 무슨 면목이겠느냔 말이다.
 
102
흡사 문틈에 손을 넣은 형용이라 하겠었다.
 
103
그새까지는 낭패를 했다고야 하지만 번번이 일을 시작하려다가 말고 말고 했을 뿐으로, 그러니 하나의 완전한 실패는 아니었었다. 또 실없으면 저편 사람네가 실없었지 이편이 면목이 없을 까닭은 없었다.
 
104
그러나 이번 일은 이미 혼란스럽게 벌인 춤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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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행 계속하여 인부가 모여 주어서 연말 연초까지에 칠팔십 명 내지 백 명만 찬다고 하더라도 면무렴은 할 형편이나, 만일 이대로 영영 국면이 타개가 되지 않는다면, 손해는 손해대로 보아둔 것이고 사람은 사람대로 밑져야 하고, 그리고서는 일껏 도득한 기회가 허사가 되니, 이후의 경륜이 아득하고.
 
106
이쯤, 두루 사정은 외나무다리를 건너가는 듯 절박했었다.
 
107
근자에 나는 정신이 태반은, 일 돌아가는 경과에 가 함빡 쏠려 있다. 좀 초연하다 해도 시시로 변동하는 정세가 신경을 와서 어지럽히는 것을 이겨낼 수가 없다. 요새로 바싹 더 작품이 써지지 않는 것도 원인의 한 부분은 그 때문인 것이다.
 
108
다직해야 한낱 사사로운 집안일이다. 하되, 결국 이욕에 골몰함이요 재물 까닭이다. 더우기 천하 부황한 투기사업 금광노름이다. 잡무하고도 그러므로 가장 속스런(形而下的인) 잡무다.
 
109
세상은 문학하는 사람을 일러 선비라고 한다. 그리고 지금의 나 모양으로 재물을 탐해 속스런 잡무에 팔림을 선비의 도리에 어그러지는 행실이라 한다. 일면의 사실이요, 절절히 점잖은 말이다. 미상불 나 자신으로도 문득문득 스스로 혐오와 불쾌를 느끼고 부끄러워하고 한다.
 
110
그러나 그러면서도 어찌할 수 없이 형세가 당장 마음이 핍절하니 무가내한 노릇이다.
 
111
동기간은 아무래도 정다운 것이다. 나는 그들이 불쌍해 못한다. 추레하니 풀죽은 기상, 악식에서 오는 윤기 없는 얼굴, 그 얼굴에 가득 낀 근심, 그리고 방금 저 하고 가는 옷 주제와 초라한 행색, 남은 벌써 동복에 외투까지 푸근히 떨쳐 입고 다니는 때다. 우리는 그런데, 삼형제 틈에 외투라곤 내가 입던 것 하나밖에 없다. 그것을 세째형이 먼길을 가느라고 입고 떠났다. 나는 그래서 금족을 하고 들앉았고, 네째형은 외투가 없이 출입을 해야 했다.
 
112
빛깔은 허여멀겋게 엷고, 다 낡아빠진 스카치 춘추복을 홋홋하니 그것만 달랑 입고서 잔뜩 몸을 웅숭크리고 초작초작 서리가 눈처럼 내린 첫새벽의 자갈밭을 걸어가며 있는 양자를 무연히 바라다보고 섰던 나는 어느덧 안두가 뜨거워올라 강잉해서 고개를 돌렸다.
 
113
남남끼린들 불쌍한 정상이면 마음이 통치 않을 리 없는 것이지만, 제 동기간에 대한 연민의 정은 살이 아프다.
 
114
쿨룩쿨룩 기침 소리가 커서 돌려다보니, 하마 주저앉을 듯 자지러졌다. 오랜 해소병까지 있어서, 찬바람만 비치기 시작하면 한겨울을 두고 저렇게 고생을 하던 것이다.
 
115
결코 큰 부자를 바라며 턱없이 호강을 시키려 하고자 함이 아니었고, 시방도 아니다. 대부는 하늘이 낸다는 속언을 나는 짐짓 믿는다. 최소한도의 의식이 족할 정도면 그만이다.
 
116
그만 것을 위하여 나는 나대로 여러 해 동안 공력을 들였고, 그들로서 고생을 해왔다. 저기 하고, 가는 모양이 바로 그들의 고생을 잘 발음한다.
 
117
그러고서 이제 바야흐로 나의 조그마한 적공과 그들의 지지리 치른 고생이 보람이 나느냐 혹은 허사가 되느냐 하는 고패를 당했다. 도저히 거기에 초조와 불안으로 더불어 관심을 깊이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은 나로서는 거짓말이다. 않고는 간대로 배겨낼 수 있는 내가 아니다.
 
118
진리의 신념이어서가 아니다. 따라서, 순교적인 각오로서가 아니다. 한참 모내기가 바쁜 날, 남의 집 머습이 손끝에 잔 가시가 든 걸 가지고 진종일 논두덕에 앉아서 애만 쓰는 형국이랄 것이다.
 
119
퍼뜩 붓을 멈추고 나의 신경상태를 응시한다.
 
120
아무리 그렇더라도, 나 자신의 그와 같이 작고 속스런 인간을, 문학적으로 승화되지 못한 한낱 시정적인 사실이요 족히 진실과는 거리가 먼 나의 정신상 나체(裸體) 그대로를, 그대로 갖다가 이런 모양으로 문학 속에 담아서 어엿이 남의 면전에다 내놀 까닭이야 없는 게 아닌가?
 
121
정녕코, 이즈음 내가 문학의 내용세계에 있어서 이윽고 빠져가며 있는 슬럼프에 대한 무의식한 자포자기요, 그 악질한 악화가 아닐는가 싶다.
 
122
작품이 부질없이 신변답사로 기울고 있었다. 일찌기 돌려다본 적도 없고 돌려다보려고도 않던, 소위 사소설에의 접근이었다.
 
123
이미 발표를 한 것으로 「회(懷)」가 벌써 그러한 경향이 자못 농후했다. 쓰다가 팽개쳐 둔 「종씨(宗氏)」가 그러했고 「하중(荷重)」이 그러했다. 방금 승강을 먹고 있는 「집」이 번연히 그러하다.
 
124
“집이라고 하는 것이 막상 이다지도 졸연찮이 마음을, 근심을 골몰케 하도록 정을 차지하는 것인 줄은 몰랐었다. 흡사 노인자제처럼 얼뚱스러웠다. 다직 까치둥우리 됨직한 한 채의 오두막집이. 재물로 치자면야 그러니 지극히 적은 재물이건만, 그의 화폐가격만으로는 능히 환산이 되지 않는 또 하나의 가치를, 직접 마음에 통하여 정을 지배하는 힘을, 그는 가지고 있었다. 집을 지녀보기도 처음이었다. 집을 잃어보기도 처음이었다. 그리고서 처음으로 집이라는 것을 안 셈이다. 다 늦게야 인생을 조그마한 또 한 과(再一課) 배웠다고 할는지.”
 
125
이것이 「집」의 첫머리 몇줄째부터의 한 토막이다.
 
126
단순한 집타령이요, 울 안에서 나 혼자만의 진실이다.
 
127
「하중(荷重)……」은 옛 연애를 만나고 나서 지금의 안해가 짐스럽다는 것이고 「종씨(宗氏)」는 이웃의 우습게 생긴 종씨를 이야기하면서 역시 내 신변사를 늘어논 객담이다.
 
128
이렇게 나는, 와락 진리롭지도 못한, 겸해서 편협한 소견으로 남에게 인생을 감히 결론하려 드는 것이다.
 
129
마침내 그러다간 한 걸음 더 나가서, 지극히 비속한 시정잡사와 항다반의 인정미담인 표정을 해가지고 스스로 문학 가운데 등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130
신변잡사의 사소설이 문학의 정도가 아니요 가히 삼가야 할 것이거늘, 본디 너절한 병폐가 있는 내가 또 한가지 사도에 탐혹을 하다니, 생각하면 한심한 노릇이다.
 
131
길이 막힌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정상한 길을 찾도록까지 손을 멈출지언정 아쉰 대로 덮어놓고 사도를 나가다께, 절절이 불가한 짓이다.
 
132
황차, 그러한 건전치 못한 코스를 밟으면서 이다지 상식에 벗도록까지 건강을 무리하며 생리를 학대한다는 것은, 결과가 막상 천하를 얻는 소업이라고 하더라도 족히 취할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마, 그렇게 정력을 들여가며 노력하기를 내용의 미화를 위해서보다도 실상은 많이 문장의 정리와 말의 선택에 몰두하는 탓이고 보니, 완전히 무의미한 장난이다. 밤을 꼬바기 밝혀가면서 몇날 며칠이고 그 모양으로 말이다.
 
133
싸릿문 바깥에 나서서, 형을 배웅하고 있던 나다.
 
134
어느 겨를에 그런데
 
135
“퍼뜩 붓을 멈추고 나의 신경상태를 응시……”
 
136
하는 내가 풀쩍 뛰어들었다.
 
137
그 두 가지의 나는, 도저히 같은 시공(時空)에는 용납이 되지 않는 실로 세계가 서로 다른 나 들이다.
 
138
확실히 미신이요 과학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유독 일인칭 사소설만이 부릴 수 있는 요술인가 보다.
 
 
139
방으로 들어와서, 밤새껏 펴둔 채 싸늘하게 식은 이부자리에 가 눕는다.
 
140
오목가슴이 쓰리고 시장기가 정히 심하다.
 
141
입맛은 있으나 없으나 조금 요기를 하고 잤으면 몸도 덜 축가고 좋겠지만, 삭일 일이 걱정이다. 식곤증으로, 수저를 놓자 이내 졸리곤 해서 단 오분도 견디지를 못한다. 밤에 자지 않은 잠을 비로소 자야 하니 졸리는 게 다행은 다행이나 밥이 내리지를 않은 채라 위장이 무리다. 요새로 바짝 더 체증이 심하기도 줄곧 그렇게 위장을 무리했기 때문이다.
 
142
이런 때에는 포도주가 그놈 꼭 두 잔이 약이다. 우선 위에서 그대로 흡수가 되니 소화에 염려가 없고, 영양은 그 분량으로 한 끼의 식사를 당하고, 그리고 알콜분이 적당해서 잠이 잘 오고.
 
143
작년 오월부터 시작하여 지나간 초가을까지 한 일 년 넘겨 ××××라는 포도주를 대놓고, 밤이고 새벽이고 자리에 눕기 전에 두 잔씩을 늘 그렇게 먹어본 것인데 효험이 꽤 무던했었다. 판판 약질인 내가 그와 같이 몸을 함부로 하면서도 용히 지탱을 하기는 혹시 그 덕이 아닌지도 모른다.
 
144
한 달에 네 병이면 족하고, 값으로는 오 원이 좀 넘는다. 오 원 각수로 그만쯤 힘을 본다면 헐하다 할지언정 과할 것은 없었다.
 
145
그러나 이즈음 그렇도록 경황이 없고 일변 옹색한 가용에서 나 한몸만의 영양을 위하여 액수의 다과는 막론하고 그러한 명목의 지출을 시키기는 차마 염치가 아니다.
 
146
그럴 뿐만 아니라, 근자에는 도무지 물건을 구할 수가 없다. 한동안은 빈 병을 가지고 가야 겨우 얻어오고 하던 것이, 가을 이후론 통히 구경조차 할 길이 없다.
 
147
서울이면 다른 종류는 더러 있고, 두어 차례 무어라드냐 하는 걸 사다가 시험해 보았으나 값은 곱절 비싸면서 효력과 맛은 별양 신통치가 않아서, 다시는 염도 내지 말았었다.
 
148
머리는 상혈이 된 채 안개속같이 흐리멍덩하고 눈꺼풀만 무거우면서, 가뜩이 시장하기까지 해서 종시 잠은 오지 않는다.
 
149
문살에 해가 반짝 들면서 눈이 부시다. 벌떡 일어나서 소쇄라도 하고 싶으나 추워서 꼼짝도 하기가 싫다. 담배만 거듭 피운다.
 
150
안해가 살며시 문을 열더니 아직 잠이 들지 않은 걸 보고는, 조심조심 들어와서 머리맡으로 앉는다. 긴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낯꽃이다.
 
151
“날이 이렇게 드윽 치워서 어떡헌다우?”
 
152
혼잣말하듯 걱정을 하는 소리가 다 알아들을 소리다.
 
153
“철두 늦구 했으니 올일랑 김장은 그만두지?”
 
154
“………”
 
155
더 할 말이 없다는 듯이 피식 웃고는 이윽고 있다가
 
156
“아직 늦일 건 없어두. 쯧! 진지상 으설푸다구, 거 동네 김치 좀 파는 집 없느냐 소릴랑 마시우?”
 
157
“………”
 
158
“그러구 차음……”
 
159
김장 걱정은 실상 지날 이야기고, 지날 이야기처럼 내는 지금이 정작인 눈치다.
 
160
“……저어, 간밤에요오……”
 
161
“저 거시키, 여우 우는 소리 들으섰수?”
 
162
“………”
 
163
“앞산에서, 간밤에……”
 
164
“………”
 
165
“여우가아, 울어쌓드라우! 밤중에……”
 
166
“여우가 밤에 울지 낮에 울까?”
 
167
듣다 못해 버럭 머쓰려버린다.
 
168
저는 간밤이라면서 놀라와하지만, 벌써 한 달 장간이나 저녁마다이다. 저녁마다, 고 방정맞은 짐승이 하필 또 건너편 공동묘지에서 한식경씩을 울어대곤 한다. 정밤중 두시나 세시에. 어떻게도 섬뜩하고 마음이 불길한지 모른다. 그래도 사위스런 여자들이라 또 어쩌니어쩌니 할까 봐서 통히 그런 말을 비추지 않았었다.
 
169
“저어, 형님이 그러시는데요……”
 
170
안해는 이윽고 무춤해 앉았다가, 무서 무서 하면서도 강단을 짜서, 그 뒤치를 다시 잇는다.
 
171
“……하두우 하두, 일이 잘 되든 않구 해서, 걱정들만 하시니깐 꼭 민망해 못하겠다구요……”
 
172
“………”
 
173
“늘 그리구, 꿈자리도 사납구, 또오……”
 
174
“………”
 
175
“못된 짐승이 그렇게 발싸심을 하구 하니깐 말이조오……”
 
176
“………”
 
177
“그러니깐 저어, 형남이 그러시는데요오, 저어, 고사래두 좀……”
 
178
“………”
 
179
진작에 무어라고든 것지르고 말았을 것이로되, 거듭 형님이 형님이 하여, 형수가 그 사이에 개재를 해놔서 차마 조심을 하는 줄은 모르고서, 위인은 마지막
 
180
“못본 체하시구, 상관 마시우우?”
 
181
이렇게 뒤를 다 누른다.
 
182
“듣기 싫여! ……”
 
183
필경 소리가 컸다.
 
184
“……고살 지내서 일이 잘될 테 같으면 세상에 가난한 사람이 왜 있어? ……”
 
185
“………”
 
186
“산에서 사는 짐승이, 산에서 좀 울기루서니?”
 
187
“………”
 
188
“어머닌 벌써 사십 년이나 두구서 저녁마다 치성을 드리서! ……”
 
189
“………”
 
190
“뒤 울안에다가 단을 무어 노시구서. 저녁마다, 그 노인이, 손수 정화술 길어다 노시구서, 사십 년을 하루두 거르잖구 치성을 드리서! ……”
 
191
“………”
 
192
“비선을 해서 복이 돌아오구 할 테 같으면 어머니가 드리신 정성 하나만 가지구두 우리 육남매가 그 복 다아 주첼 못해.”
 
193
불면 끝에 신경이 까스러운 탓인지, 말이 무단히 여세가 거칠었다.
 
194
안해는 다시는 더 말을 붙여볼 길이 없어, 시치름하고 있다가 하릴없이 도로 나간다.
 
195
혼자 누웠느라니 문득 생각이 나면서 마음에 걸린다. 고사를 지냈으면 좋을 성싶다. 꺼림해 못하겠다. 그야말로 상관을 말고서 못 들은 체할 것을, 두말도 못하게 윽박질러 버린 것이 후회가 난다. 본체만체할테니, 주작대로들 지금이라도 설도를 했으면 은근히 고맙겠다.
 
196
그들은 그러나, 내가 한번 금한 것을 부득부득 우겨가면서 하려고 하기엔, 너무도 나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이다. 순종도 이런 때만은 긴치가 않다.
 
 
197
애당초에 내 동의를 얻잔 건 무어든고 하여, 의지와 신체가 한가지로 솜뭉텅이 같은 안해란 위인이 미워 못하겠다.
 
198
이래저래 짜증만 더 난다. 볼먹은 소리로 안해를 쳐불러, 배쌍화탕을 지어오래서 달여들이라고 지청구를 한다. 그래저래, 고사 지내잔 말을 한 것이 동티가 난 줄만 알고서 영 생심을 못할밖에.
 
199
신문을 가져와서, 어제 석간부터 밀린 여러 장을 뒤적인다. 대판신문의, 서원사공에 관한 다찌끼리는 그의 일대가 곧 일본제국의 정치상 자유주의의 성쇠의 기록이어서 읽기에 흥미가 있다.
 
200
일동방적(日東紡績)이 우수한 스프 생산기술을 동업자에게 공개한다는 기사는 개인적 이윤본위로부터 국가적 생산본위로 갈려드는 경제 신체제의 선성이어서 큰 뉴스가 아닐 수 없다.
 
201
우편이 왔으나 세째형에게서는 아무 기별이 없다. 무슨 탈이 난 모양이다.
 
202
종씨가 오더니, 요새 공판을 하려 왔다가 불을 맞고는 주체를 못해하는 벼가 더러 싼 게 있다면서, 두 집 얼려서 몇 섬씩 사두자고 권한다.
 
203
그 다음, 나무장사가 오더니, 나뭇간을 한 이십 원짜리 하나만 사주면 사십 원어치 되게시리 장작을 대겠노란다.
 
204
금광에 가서 엄벙덤벙한다니까 돈냥이나 착실히 있는 줄 아는 눈치들이다. 집 흥정을 부탁한 한서방은 오더니, 이백 오십 원이면 사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205
뒷집 주정뱅이 최서방은 오더니, 그 망나니가 죄다 어디로 가고는 두 무릎 단정히 꿇고 앉아서, 새로 장가를 가겠는데 규수네 편에서 시방 같이 사는 막지기 여편네의 승낙서를 요구하니, 그걸 한 장 대필해 달란다.
 
206
병목안 산다는 웬 자는 오더니, 인부가 소용이 되느냐면서 사오 인 있기는 있는데 선하를 돈 십 원씩 주어야 가겠단다. 이 너저분한 나그네들과 너저분한 교섭을 일일이 다 치르고 나니 하마 오정이다.
 
207
전등이 켜져 있고 시간은 여섯시고 하여, 잠결이라, 아이들처럼 새벽이거니 하다가 겨우 석양인 줄을 안다.
 
208
대여섯 시간 잠을 잔 덕분에 머리가 가뿐하고 제법 정신이 든다.
 
209
머리맡에는 전보가 한 장.
 
210
삼례에서 오늘 밤차로 열 명이 떠난다는, 세째형의 전보다. 그거나마 인부가 부는 것도 바가왔지만, 제일에 사고가 생기지 않은 소식이어서 안심이다.
 
211
아침에는 그렇게도 속이 쓰리고 시장하던 것이, 그때부터 반일이 지났건만 인제는 도리어 아무렇지도 않고 밥 생각이 없다. 병은 단단히 깊어가는가 보다.
 
212
네째형은 열두시 막차에야 돌아왔다. 언제나 마찬가지로, 그 사이 찻시간마다 아이를 정거장엘 내보내고 내보내고 하면서 연해 궁금히 기다리자니,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아서 잡지와 책을 뒤적이며 누워 있었다.
 
213
“전보, 무어라구 왔어?”
 
214
형은 아이한테 들었던지, 토방으로 올라서면서부터 바쁘게 묻는다. 무얼 여러 가지 산 것을 아이와 나눠 들고.
 
215
“삼례서 열이 오늘 밤차루 떠난다구요.”
 
216
형은 알아보게 미우를 펴면서, 뒤미처 전보를 재삼 훑어 읽고는 그제서야 자리에 앉는다.
 
217
“한꺼번에 와짝 모이기는 바랄 수 없지만, 이렇게라도 어서어서 좀더 수효가 부웃기나 했으면!”
 
218
“현장은 별일 없어요?”
 
219
“한 놈 도망갔어!”
 
220
“………”
 
221
“어느 일판이구 도망가는 놈이야 있는 법이지만, 그 푸달진 속에서 벌써부터 축이 나니!”
 
222
“어디서 온……”
 
223
“홍성…… 여비 써준 것허구, 선하 준 것까지 치면 십오 원이나 멕힌걸!”
 
224
“………”
 
225
“………”
 
226
“시장하실 텐데?”
 
227
“저녁 먹었다.”
 
228
형은 사가지고 온 봉지 꾸러미를 풀어놓는다. 덩이 굵은 배, 빨간 사과와 연시, 노싱, 담배, 영신환 이런 것들이다.
 
229
나는 어려서 어머니 아버지한테 항상 주전부리를 통하여 막내동이다운, 막내동이에게만 한한, 자깃한 사랑을 받던 적이 절로 생각이 났다. 사십이다 된 아우건만 아직도 어린아이인 듯, 지금도 형들이 옛날에 어머니 아버지가 정성스러이 잔정을 써서 나를 거천하듯이, 꼬옥 그런 망상과 태도로, 색다른 것이랄지 맛있는 음식이면 옴탁옴탁 먹이고 싶어하고 하던 것이다.
 
230
배, 사과, 연시 모두가 보고 있을수록 식욕보다도 가슴 뿌듯하니 어리광스런 행복이 솟고, 무엇인지 모르게 마음 든든했다.
 
231
“그리구, 이건 두어 두구서……”
 
232
형은 길쭉한 상자곽을 끌어당겨, 맨 노나끈을 푼다. ××주라는 약술이었다.
 
233
“……먹어본 사람 말이, 포도주만 못하잖다드구나. 두어 두구서 두어짠썩 먹구 해라……”
 
234
형은 술병을 꺼내서 책상머리에 놓아 준다. 그러고는 훨씬 담배를 붙여물고서 푸우 한 모금 길게 내뿜더니, 이윽고 혼잣말하듯 푸뜩푸뜩 하는 말이다.
 
235
“무슨 그리 우난 노릇을 한다구! 얼굴이 저게 무어란 말이냐!”
 
236
무연히 한탄겨운 음성으로 잠깐 내 얼굴을 돌려다보고는 도로 외면을 하고 앉아 한눈을 팔면서 잊은 듯 동안이 뜬다.
 
237
나는 묵묵할 뿐이고, 안해가 나와서 배를 벗기는 칼소리만 사각사각 높다.
 
238
“인제는 없으면 없는 대루 살자꾸나! 인제래야 시방 같어서는 통히 막연하다마는……”
 
239
“………”
 
240
“푸달진 생화를 바라구서 몇몇해를 피골이 밭두룩 저 지경이니!……”
 
241
“늦었는데 어서 올라가서 지무시요? 배나, 시언해 뵈느만, 좀 잡숫구서……”
 
242
“그러나마 너 혼자 생계를 도모하자는 노릇이라두, 동기간으루 앉어서 보기엔 피눈물이 날 텐데!……”
 
243
“………”
 
244
“항차, 알량하구 무능한 동기간을 돌보느라구! …… 요전에 큰형님이 오시서, 네 신수 된 걸 보시구서 우시드라면서?”
 
245
끝은 목멘다.
 
246
나는 가슴에 차오르는 것을 누르고 얼른
 
247
“낼 아침에두 첫차루 가서야지요?”
 
248
그리고는 안해더러, 시간을 잘 맞추어 조반을 지으라고 신칙을 했다.
 
 
249
“세번째 또다시 한물을 치렀다. 집은 역시 못쓰게 되고 말았다.”
 
250
간밤엣치, 넉 장에 스물일곱 줄 그건 역시 작대기를 긋고서, 새로 쓴 첫머리 두 줄이다.
 
251
그렇게 쓴 원고지를 앞에 놓고는, 팔꿈치를 책상 복판에 세워 잔뜩 턱을 양편으로 치괴고서, 지금이 두시 반인데 이내 다른 생각이다.
 
252
아까 형이 하던 말
 
253
“무슨 그리 우난 노릇을 한다구!”
 
254
참으로 그렇다. 무슨 그리 우난 노릇을 한다고.
 
255
형은 물론 내 문학을 가리켜 우난 노릇이 아니란 뜻으로 말을 한 게 아니고 ‘푸달진 생화’ 즉 원고료를 의미함이었었다.
 
256
그렇다고서 그가 아우의 문학을, 아우의 예술을, 한갓 원고료를 벌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기던 것이냐 하면 결코 아니었었다.
 
257
일반적으로는 그는, 문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상관도 없는 사람이요, 또한 알려고도 상관하려고도 않으며, 할 필요도 없는 사람인 것이 사실이었었다.
 
258
그리고서 그는, 단지 그의 중난스런 아우가 ‘하는 일’(문학이나 예술이기 이전에 우선 단지 아우가 ‘하는 일’) 그것을 세상에 대하여 끔직 자랑스러하는 사람이요,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요, 겸해서 잘 되게 받들어 주고 싶어하는 사람이요 할 따름이었었다.
 
259
이의 객관적인 결과 가운데 하나로서 그는 내가 마땅히 속무와 재리 관계와 생계와 집안 근심과 이런 것을 죄다 떠나 안심코 편안히 앉아서 소설을 써야만 한다는 사실을 인식했던 것이었었다. 따라서 그는, 내가 원고료를 벌기 위하여 소설을 쓴다는 것은 커다란 불행이요 고통이던 것이었었다.
 
260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는, 말뿐이 아니라 진정껏, 아우는 동기간의 생활을 돌보느라고 원고료를 벌기 위하여 다만 소설을 쓰거니 여기도록 양심을 강제해야 했었다. 그것은 마치, 삼칠일짜리의 자기 혈육이 방금 죽어가며 부대끼는 것을 불쌍히 여기지 않으려 들었음과 매한가지로, 양심의 핍절한 강제였었다.
 
261
그다지 몸을 무리하며 노력을 함은, 주장이 소설을 잘 쓰자는 제 노릇이요, 원고료는 거기에 절로 따르는 여벌이거니, 이렇게 치지를 한다는 것은, 그로서는 도저히 죄스러 못할 노릇이있었다.
 
262
아뭏든 그리하여, 형이 말한 바와 같아 나의 원고료의 수입이란 노력에 비해 심히 푸달진 것인 게 사실이다. 그러므로 나 자신 역시, 그러한 의미로서
 
263
“무슨 그리 우난 노릇을 한다고!”
 
264
할 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265
그러나 나는 모름지기 나의 문학 그것을 두고서, 꼭같은 말이나
 
266
“무슨 그리 우난 노릇을 한다구!”
 
267
하고 자성을 하지 않아서는 안될 마당엘 다다른 것이다.
 
268
「집」이나 「종씨(宗氏)」나 「하중(荷重)……」이나, 그야 간혹 그런 것도 쓸 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영영 그리로 향을 잡고만다는 것은, 이처럼 상식도 아닌 노력을 들이기엔 답지도 않은 문학을 위해서야 너무도 아까운 정성이다.
 
269
꼬옥 한가지 나아지고 싶은 길이 있기야 하지만, 넘지 못할 준령을 이미 누차 당해본 나머지다.
 
270
그러니 오직 남은 것은, 진작에 제명까지 붙여논 「인부(人負)고야」의 방향일밖에 없을 것이다.
 
271
마침 또 기회도 좋고.
 
272
한 일 년 붓을 쉬어도 그만이다. 붓을 쉬기가 정히 안 되었거들랑 「집」 등속을 그대로 얼마 동안 써도 무방하다. 좌우간 그리고, 저리로 가보는 것이다.
 
273
형이 자주 기침을 하는 소리가, 잠이 깬 듯해서 건넌방으로 올라갔다.
 
274
조옴 몸이 고단할까마는, 기침도 기침이려니와, 생각이 많아 깊은 밤에도 단잠을 이루지 못하던 것이다.
 
275
“집, 이것 팔어버립시다?”
 
276
머리맡으로 가서 앉으면서 우선 이렇게 허두를 냈다.
 
277
형은 누운 채 마악 담배를 붙이다가 말고
 
278
“지금 어떻게?……”
 
279
그리고는 뒤미처 다시
 
280
“……누구 작자가 있어?”
 
281
“이백오십 원이면 사겠단 사람이 있데요.”
 
282
“………”
 
283
“………”
 
284
“이 엄동에 이거나마 팔구서 어떡허자구!”
 
285
“세째형님 내의분은 아무래두 수히 절러루 가서야 안해요?”
 
286
“너는?”
 
287
“저두 근처다가 방이나 한간 얻어 가구요.”
 
288
“이백오십 원에 판댔자 수중에 떨어질 거라군 단돈 몇십원두 못 될테지만, 촌으루 가서 방 한간이나 얻자면야……”
 
289
“그 흉악한 촌구석으루 가서, 어떻게 지내느냐?”
 
290
“못 지낼 것두 없으려니와, 저두 가서, 하다못해 인부들 전표 띠어 주는 심부림이라두 해야지요!”
 
291
“………”
 
292
“………”
 
293
“애야?”
 
294
“네에!”
 
295
너두 다아 생각이 있구 요량이 있어서 하는 말일 테지만, 글쎄에……
 
296
“………”
 
297
“나는 너마저 노가다판으루 데리구 들어가구 싶든 않다! ……”
 
298
“………”
 
299
“한번 투신을 하는 날이면 좀초롬 당꾸바지에 지까다빌 벗게 되질 않는 법인데, 말이루구나……”
 
300
“………”
 
301
“두구서, 잘 다시 좀 생각을 해보는 게 좋겠다?”
 
302
“제일에, 건강 때문에 그래요!”
 
303
형의 반대를 막자면, 달리 설명을 하느니보다도 이 한마디가 가장 효과적이던 것이다.
 
304
형은 과연 잠잠히 말이 없다. 그러나 얼굴은 실심한 빛으로 어둡다. 자기 말따나, 나마저 도까다판으로 끌어들이기도 못할 노릇, 그렇다고 번연히 보는 바 이렇듯 불건강한 생활을 그대로 계속케 할 수도 또한 없는 노릇, 이러나저러나 그로서는 상심사요 슬픔이었을 것이다.
 
305
민망했으나 이미 돌이킬 바이 없는 것, 이윽고 있다가 물러나왔다. 내일 아침 일찌기, 한서방을 청하여 집을 팔도록 하느니라고 생각을 하면서.
 
306
그리고, 막상 형이 저어하는 대로 도까다가 되어가지고 평생 발을 뽑지 못하는 한이 있을값이라도, 장차에 그리 되는 날 그리 되고 말값이라도, 시방껏은 그 길을 접어드는 게 득책이리라 생각을 하면서.
 
 
307
<春秋[춘추] 1호, 194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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