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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향도중(歸鄕途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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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5
채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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歸鄕途中[귀향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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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총한 귀향의 길이었다. 가친의 위보(危報)를 받고도 어찌할 수 없는 구애(拘碍)로 이틀 동안이나 경성시내에 들어와 조민(躁悶)히 충그리고 있다가 그런지 사흘 만에야 밤 열한시의 목포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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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증세 심상치 않으시니 방심치 말라는 서신이 두 차례나 있었고, 그러던 끝에 드디어 위독즉래(危篤即來)하라는 전보가 달려들었었다. 그러나마 팔순의 고령이요 노환이었다. 그러니 전문에는 위독이라고 했지만 칠분(七分) 일은 당해둔 일이었다. 혹은 그동안 벌써 당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자연 준상제의 심정이요 일변 마음이 초조하여 꼬박 7년 만의 귀향이라도 달리 감회가 유유하다든가 기쁨이 솟는다든가 할 경황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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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온종일 길을 걸으면 승(僧)도 보고 속(俗)도 보고 한다든지 길을 나서니 색다른 세태와 인사(人事)가 자연 발부리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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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앞엣 찻간으로 올랐더니 의외로 성글어서 안해와 마주 한 칸씩의 좌석을 호젓이 하나씩 차지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 대중이라면 누워서 잠을 자면서도 갈 수가 있겠거니 하여 매우 다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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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차가 한 정거장 두 정거장 들르는 동안 차차로 승객은 불었다. 그리하여 미구에 우리는 가외(加外)의 좌석을 내놓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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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성(南京城)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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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복(國民服) 혹은 ‘세비로’의 과히 좋은 신사토록은 아니어 보이는, 그리고 반도 태생의 중년남자 세 사람이 척척 올라닫더니 흡사 아프리카에 가서 있는 백인 순사처럼 기광있이 이 걸상 저 걸상의 누웠는 사람들을 일으켜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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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좀 일어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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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좀 앉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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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투로 만일 불응을 했다간 두 마디부터는 그냥 을러멜 기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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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무섭다. 그러나 우리 내외는 미처 눕지는 않았던 덕으로 불행중 다행히 무섭지 않아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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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미처 본즉 그네의 뒤에는 한 그저 열 사오 세 고 또래 고 또래의 소녀가 네 명이 따랐다. 얼굴엔 넷이 죄다가 깊은 병색이 질렸고 쓰러질듯 원기들이 없었다. 제마다 가피(假皮) 트렁크는 하나씩 빠듯이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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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은 바로 유명한 공장지구 남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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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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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득 알아채고서 무심코 고개를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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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성에 있는 어떤 방직공장이나 방적공장의 여공 아이들일시 분명했다. 그리고 정녕코 병이 나서 제네들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일시 또한 분명했다. 예의 중년남자씨들은 그러니까 책임상 아이들을 쟤네들의 부모에게 도중 분실이 없이 반려하기 위하여 공장측에서 출동시킨 보호자(!)일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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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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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또 한번 짐작됨이 있어 다시금 고개를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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궐씨들의 그와 같은 아프리카 주재의 백인순사식 서슬은 그들의 직장의 일상적인 성습(性習)일 것이었다. 직공의 작업을 감시하느라고 퉁명스럽고 딱딱거리는 것이 직업인 그들이겠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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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내외의 옆으로 그들 중의 소녀가 하나씩이 앉았다. 나머지 두 소녀는 저편 줄에 가 나란히 앉았다. 언뜻 보기엔 병은 그애 둘이 가장 심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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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옆으로 앉은 두 아이더러 한마디 두마디 물어보았더니 대답하는 것이 내가 짐작한 바가 죄다 맞았었다. 남경성의 무어라더냐 하는 방적공장에 있었고, 병이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고, 저네들은 공장의 인사계 혹은 감독인 ‘선생님’들이고 하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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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는 곧 그애 둘과 사귀어서 과실을 나눠주기도 하고 그러면서 이야기가 여러가지로 얼렸다. 나이는 열네살로부터 열여섯까지고 그중 병이 더 심하여 6개월이나 공장의 전속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못해 고향을 간다는 맨 큰 아이 말고는 셋은 다 작년 가을에 뽑혀온 견습공이고 일급은 견습중에는 능률에 따라 25전 이상 80전까지도 받을 수가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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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전? 그럼 기숙사 밥값은 얼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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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면서 묻는 말에 1일 3식인데 1일 식가(食價) 15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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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안해가 이번엔 놀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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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끼 5전어치 밥을 먹구서 어떡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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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많어요. 반찬두 먹을 만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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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녀가 이렇게 대답을 하는 뒤끝을 받아서 다른 하나가 설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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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건 괜찮어요. 제일 집에 가구 싶어서 견딜 수가 없어요. 그리구 병이 나문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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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에 앉은 아이는 각기(脚氣)라고 하는데 넷 중에서는 제일 병색이 덜하고 원기가 있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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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은편인 안해의 옆에 앉은 아이도 비교적 겉으로는 대단치 않은 것 같으나 이윽고 자세히 보잔즉 누구보다도 불행한 병인 성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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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질이 벌써 선병질로 눈이 크고 목이 가늘고 길고 가슴이 앞으로 옥고 그런데 연해 밭은기침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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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때면 오한이 나고 담이 나오고 구미가 없고 별로 두드러지게 아픈 데는 없는데 몸이 나른하니 눕고만 싶고 하냐고 물었더니 어떻게 그렇게 아느냐 하면서 다 그렇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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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체질에 그런 증세이면 열에 일곱은 결핵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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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서 출생 성장하고 있는 아이들은 도시에서 출생 성장하고 있는 아이들보다도 폐의 결핵에 대한 저항력이 대단히 약한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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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녀도 그러므로 저의 고향인 농촌에서 끝내 살았다면 혹은 그러한 불행한 병의 감염을 받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그야 농촌에 그대로 있었더라도 종내 걸리고 말았을 수도 있는 것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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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녀는 지금 일급을 저축한 10원의 돈과 두 벌의 인조견 의복과 한 개의 가피 트렁크와 반년 남짓이 입을 얻어먹었다는 것과 그리고 얼마간의 도회지적인 허영심과 이렇게를 전보수(全報酬)로 받아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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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친환(親患)에 단지(斷指)라더니 우리 내외는 제 친환은 잊어버리고 남의 불행에 언제까지고 마음이 어두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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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평택 등지를 지나면서는 좌석이 다시 얼마쯤 성글어졌다. 그러자 문득 보니 소녀들의 보호자씨들은 그중 둘이는 바로 이웃 자리에서 어느 겨를인지 제각기 2인분의 걸상 하나씩을 차지하고는 편안히 드러누워 우렁차게 코를 골고 있었다. 염치없는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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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보호해야 할 병든 어린아이들은 꼬바기 앉아서 가느라고 가뜩이나 고달파하는데 그것을 오불관언(吾不關焉)하고서 늡늡장병 저네들만 기다랗게 다리를 뻗고 누워서 잠을 자며 가다니 참으로 심청이 괘씸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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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혼자서 그것을 속으로 분개할 객기는 있으면서도 그 인정머리 없고 배짱 두꺼운 ‘선생님’이며 ‘보호자’들을 따잡고 나서서 토론(吐論)할 만용은 솟지 않는 것이 마음에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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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좁은 좌석에 기름 짜듯이 끼어앉아 곱다시 앉은 채 졸다가 깨다가 하는 동안 그럭저럭 대전까지 당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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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부터 갈증이 심하여 마침 차를 한 병 살까 하고 벗어 걸었던 양복저고리를 떼어 입고 폼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심야가 되어서 차는 팔지 않고 ‘우동’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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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증은 정히 참기가 어렵고 ‘우동’이라도 국물을 좀 마시느라고 몇 사람이 벌써 ‘우동’파는 노점을 둘러싸고 섰는 등 뒤에 가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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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사람은 자꾸자꾸 모여들어 순식간에 나는 ‘우동’ 노점 얼러 군중에게 겹겹이 포위되고 말았다. 밀치고 닥치고 소리지르고 눈 부릅뜨고 웃고 뭐 굉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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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귀다툼 속에 끼여 그 일 분자 노릇을 하기가 심히 민망하여 차라리 빠져 나오려고 애를 써보았으나 아무도 비켜주는 자애스런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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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끼며 바보처럼 서서 생각했다. 인간은 참으로 ‘식물(食物)’이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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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농판스런 생각을 하고 섰는 동안에 어떤 얌전치 못한 친구의 ‘식물’이 되고 있는 줄이야 천만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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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서 미는 대로 밀려 들어가서 우동 두 사발을 타가지고 나와 아무려나 목이 타는 갈증을 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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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찻간으로 돌아오려면서 귤을 한 꾸러미 사느라고 양복저고리의 포켓에 손을 넣어보니 지갑이 간 곳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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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돈지갑을 지니고 다니지 않는 성미였다. 한 것을 아내와 동행이어서 그가 가지고 온 것을 약간의 잔돈과 행구(行具)의 열쇠 등을 건사한 채 무심코 양복저고리 포켓 속에 넣어두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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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간에서 폼으로 내려올 때까지도 정녕 들어 있었다. 우동은 양복바지의 포켓에 남은 백동화(白銅貨)로 샀었다. 그러나 폼에서는 없어졌을리가 없고 우동 노점의 그 북새통에 손이 들어온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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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 불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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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라야 1원 각수의 잔돈이요, 그러므로 대단스런 손재(損財)랄 것은 없었다. 그보다는 열쇠를 잃었으니 잠가둔 두 개의 행구가 곤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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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곤란감도 아니고 손재에 관한 것도 아닌 무엇인지 모를 불쾌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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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간으로 돌아와서 안해더러 이야기를 했더니 질색을 한다. 그 역시 나처럼 무엇인지 모르게 불쾌한 기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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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왜 그렇게 함부로 건사를 했느냐고 탓이다. 나는 뎁다 왜 돈지갑을 가지고 와서 이런 일을 당하게 하느냐고 탓을 했다. 옆에 있던 두 소녀가 재그르르 하고 웃어서 안해도 그만 웃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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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連山)까진가 와서야 지갑 속에 차표가 두 장 다 들었던 것을 우리는 깜박 깨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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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랴부랴 이등실로 전무차장을 찾아가서 사연을 말했더니 매우 안되었어 하며 임피(臨陂)역으론 이 차가 통과하지 않으니까 자기가 말해 줄 수는 없으나 그대로 가서 역장과 직접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대응이 퍽 친절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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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실상 그러한 청을 하려고 한 것이 아닌데 저편에서 자진하여 그런 편법을 가르쳐 주는 게 의외요 일변 고마왔으나 종내 차표를 새로이 사야 할 것으로 말했다. 촌의 역장이, 고향이라곤 하지만 안면도 없는 터에 내 말을 신용하여 법규를 굽혀가면서 나를 무임승차자로 다루지 않으랄 법이 없는 것이니 떳떳이 차표를 사느니만 같지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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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을 지나면서 차표검사를 했은즉 원은 수원 이남의 찻삯을 내야 할 것이었으나 전무차장은 또 한 번 호의를 베풀어 대전에서부터 계산을 해주었다. 그러면서 일후 그 차표가 발견이 되면 추징분(追徵分)은 돌려 보내기로 되었다면서 주소와 성명을 적기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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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득 ‘스리’가 남의 지갑을 훔치기는 했어도 돈 이외의 서류 등 제게 필요치 않은 것은 피해자한테로 우송을 해주었다는 대중소설의 명(名) ‘스리’가 생각이 나서 그런 재미스런 ‘스리’가 실지로 있기만 하다면 ‘스리’를 맞는 것도 한 자리의 흥이요 술이라도 한잔 대접함직한 노릇이라고 혼자 고소(苦笑)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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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는 새 차표를 해가지고 자리로 돌아오기를 곰곰 기다리고 있다가 아주 긴히 ‘아마 액땜을 했나 보우 ?’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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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 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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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 병환 신술 걸루다 땠나봐요! 괜찮으실려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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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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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피식 웃고 말았으나 속으로는 귀가 솔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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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을 지나고 나서부터는 차창 밖으로 새벽이 부윳이 밝으면서 언제보아도 흐뭇지게 넓은 들판 김만경평야가 비로소 드러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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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해도 남방이라서 연변의 보리밭에는 보리순이 제법 벌써 탐스럽게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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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들은 중간에서 셋은 떨어지고 TB의 소녀 하나만 아직껏 동행이었다. 차창 밖이 밝자 연해 내다보면서 김제(金堤)까지 몇 정거장이냐고 묻고 또 묻고 하기를 마지않았다. 퍽도 즐거운 모양이나 그 즐거워하는 양이 미소로 와질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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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이 다 나으면 다시 공장으로 가려느냐고 물었더니 소녀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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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냐 잘 생각했다고, 인제는 집에 가서 몸조리를 해서 수이 다 나아가지고 조금 더 자라거든 시집이나 귀히 가라고 이르는 말에 소녀는 기집 아이답게 부끄럼은 타면서도 “내에”하고 대답을 해서 나는 차라리 더 마음이 언짢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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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이 나으면! TB가 나으면! 시집을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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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속으로 이렇게 몇번이고 뇌다가 필경 나도 모르게 쯧쯧 혀를 차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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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每日新報[매일신보] 1941. 5.15∼18〉
【원문】귀향도중(歸鄕途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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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
  # 귀향도중 [제목]
 
  채만식(蔡萬植) [저자]
 
  매일 신보(每日申報) [출처]
 
  1941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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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7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