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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
이광수
1
 
 
2
못자리에 물이 말랐다. 오래 가물어서 못물이 준 데다가 하지가 가까와 저마다 다투어서 모를 내노라고 물이 마른다.
 
3
『에 고이한 사람들 같으니. 아무러기로 남의 못자리까지 말린담.』
 
4
나는 혼자 중얼거리면서 꼭꼭 막아 놓은 내 물꼬를 들여다보고 섰다.
 
5
<물꼬를 터 놓을까.>
 
6
나는 혼자 생각한다. 내 웃논에서 물을 대노라고 봇물은 조금 밖에 없다.
 
7
이것을 내 논에 대면 저 아래 모내는 논에는 물이 한 방울도 아니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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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논에 모내기가 끝날 때까지 참자.>
 
9
나는 이렇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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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못자리는 바짝 말라서 높은 곳에 틈까지 텄다.
 
11
<설마 몇 시간 더 마르기로 어찌 될라꼬.>
 
12
나는 참기로 작정한다.
 
13
웃논은 벌써 모를 내었건마는 뱃심 좋은 사람들은 절절 물을 대고 있다.
 
14
『못자리가 말랐소그려.』
 
15
삽을 메고 오던 꺼먼 늙은이가 나를 보고 인사를 한다. 이 동네에 온지도 얼마 안 되고 또 꼭 집에만 있는 나는 그 꺼먼 늙은이가 누구인지 모르나 공손히 답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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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꼬를 좀 터 놓으시우. 못자리가 말라서야 쓰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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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그는 제 손으로 내 물꼬를 터 준다. 그러고 아래로 내려가는 물을 막아서 내 논으로만 들어가게 하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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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물이 얼마 되나. 그 까진거 내려 보내기로 저 모내는 데까지는 기별도 안가겠소. 댁 못자리에나 대우.』
 
19
하고 위로 올라간다.
 
20
나는 모내는 집에 미안하다 하면서 졸졸졸 내 논으로 들어가는 물줄기를 본다. 이 따위로 들어가 가지고는 열 시간을 대어도 찰 것 같지 아니하다.
 
21
나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구름은 여기저기 떠 있건마는 비가 될 듯한 구름은 안 보였다.
 
22
『산은 가까이 보이는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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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던 어떤 노인의 말을 생각하고 나는 서쪽을 바라본다. 삼각산과 도봉이 한결 가깝게 파르스름한 기운을 띠고 보인다.
 
24
<뻐꾸기가 쌍으로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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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귀를 기울였다. 금년에는 외 뻐꾸기만 울어서 흉년이라고 사람들이 걱정하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뻐꾸기가 자지러지게 쌍으로 울었다. 나는 속으로 기뻤다.
 
26
나비가 쌍쌍이 춤을 추며 하늘로 올라간다. 이것도 비가 가까운 징조라고 한다. 비만 왔으면 물 걱정은 없다. 모들도 날 것이다.
 
27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내 물 줄기를 바라보고 섰다가 깜짝 놀랐다. 갑자기 물이 소리를 하며 들어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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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개를 아까 그 꺼먼 늙은이 올라간 데로 돌렸다. 그도 나를 향하여 싱그레 웃고 있었다. 그는 자기 논에 대던 물을 나를 위하여 터 놓아 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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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30
하고 내가 소리를 질렀더니 그는 유쾌한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31
이날 밤이었다. 상노가 그저께 모낸 자리가 바짝 말랐으니 오늘 밤에 한번 축여 주지 못하면 다 말라 죽는다고들 남들이 걱정해 주었다.
 
32
『밤중에 가서 좀 대시우. 염치 보다가는 물 한 방울 못 얻어 봅니다.』
 
33
어떤 이웃의 훈수를 듣기로 하고 밤 열 한 시가 지나서 박군이 삽을 메고 나갔다. 그는 두 시간이나 있다가 돌아왔다. 그를 혼자 보내고 나만 누워 잘 수가 없어서 나도 그때까지 책을 보고 앉아 있었다.
 
34
『한 절반 닿는 것을 보고 왔어요.』
 
35
박군은 만족한 모양이었다. 나도 우리 모가 이틀은 살았다고 마음 놓고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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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아침에 누가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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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물은 괜히 댔읍니다. 남의 모 낼 물 댔다고 댁 논두렁을 여러 군데 잘라 놓아서 물 한 방울 없읍디다. 댁 논 밑에 생갈이 할 논에만 물이 그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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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일러 주었다. 제 논에 들어올 물을 우리 논에 넣은 것이 분해서 우리 논에 닿은 물을 제 논도 아닌 논에 찌어 버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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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듣고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나비가 쌍쌍이 춤을 추며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보이지나 않는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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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는 남과 다투어서 봇물 댈 생각을 버렸다. 비 오기나 기다리자. 물은 왜 없나? 정말 없나? 나는 이 동네에 유명한 실농군인 Y노인에게 물어 보았다. 그이와의 문답을 종합하면 이러하다.
 
41
이 동네 논은 샘논, 고래논, 보뜰논, 세 가지가 있다. 샘논이란 것은 제 논 안에 또는 제 논 가까이 샘을 가진 논이다. 그 샘이 논보다 높이 있으면 가만히 있더라도 저절로 논에 물이 닿으니 영영 물 걱정은 없는 논이다. 만일 샘이 논과 같은 평면 이하에 있으면 사람이 물을 퍼대어야만 논에 물이 드는 것이니 이것은 좀 인력이 드는 것이어서 누워서 떡 먹기는 못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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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논이란 것은 산 골짜기에 있는 것으로서 산에서 졸졸 내려오는 장류수를 받는 논이니 이것도 누워서 떡 먹기와 같은 논이지마는 이런 것은 대개는 큰 배미는 없고 조그마한 배미가 층층대 모양으로 되어 있어서 세모난 놈, 찌부러진놈, 꼬부라진 놈, 이 모양으로 생김생김이나 크기가 형형색색 이어서, 소위 마늘 배미, 종지 배미, 접시 배미라는 별명을 가진 것이 있고 양푼 배미, 대야 배미라면 무척 큰 배미다. 이곳에 그중 착한 사람인 P노인이 부치는 꽃나미 논이란 것은 겨우 서마지기가 배미수로는 마흔 다섯이나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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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뜰논은 보라고 하는 돌을 쳐서 개울물을 끌어대는 것으로서 이것은 좀 대규모의 관개법이다. 우리 동네 앞으로 흐르는 개울 물을 끌어 대는 보가 상노깨 보, 두리개보, 사갑들 웃보, 아랫보, 이 모양으로 넷이 있는데 그중에 두리개 보라는 것이 제일 물이 넉넉한 보라고 하나 그것도 요새 가물에는 겨우 차례를 정하여서 이 논에 하루 저 논에 하루씩 물을 대고 있는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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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것은 두리개 보에는 약간한 법이 있어서 물싸움이 적은데, 상노깨 보라는 것은 조금도 질서가 없어서 뱃심 좋고 염치 없는 사람만이 물을 얻어 보게 되어 있다. 아마 두리개 보에는 언제 한 번 좋은 지도자가 나서 법을 정했던 모양이다. 법이란 한 번 정해서 한참 동안 실시에 힘을 써서 한번 자리만 잡히면 용이히 변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사람에게 이런 성질이 있기 때문에 나라도 되고 문화도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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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상노깨 보의 몽리 관계자는 사십명이나 된다는데 도무지 법이 없다. 여기는 개벽 이래에 아직 한 번도 지도자가 난 일이 없은 것이다. 이 원시 상태, 무정부 상태를 정리하여서 물을 골고루 받게 하는 일은 오직 대정치가의 출현을 기다려서야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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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상노깨 보를 친다고 다들 나오라고 해서 우리집 박군도 삽을 메고 나갔다. 이것이 금년 철 잡아서 벌써 네번째다. 금년철이라야 두 달 동안이다. 처음에는 해묵은 봇돌을 치느라고 전부 났고, 둘째번 세째번은 상노깨들에 못자리를 가진 사람들만이 났고 이번에는 모가 거의 난 뒤라 전원이 출동하라는 것이다.
 
47
Y노인의 말을 듣건댄 만일 사십명이 전부 나서 하루만 잘 일을 한다면 이보는 두리개 보보다도 물이 흔하리라고 한다. 첫째로 수원지를 길게 올려 파면 얼마든지 샘을 얻을 수가 있고, 둘째로 물을 돌려 오는 돌창 밑에 진흙을 깔면 물이 새지 아니할 것이요, 세째로 물을 서로서로 차례를 정하여 대기만 하면 마르는 논이 없으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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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왜 그것을 안해요?』
 
49
하고 묻는 내 말에 Y씨는,
 
50
『사람들이 내 말을 들어먹어야지요. 나오라니 나오기를 해요? 나오더라도 일을 아니해요. 사십명이 다 나와서 제 일 하듯 하면야 하루에 다 되지오니까. 이건, 사십명더러 나오라면 스물도 잘 안 오고, 오더라도 노라리란 말씀야요. 그리고는 남이 애써 파서 봇돌에 물이 내려올 때에 나도나도하고 제 논에만 물을 대겠다고 아우성을 하지오니까.』
 
51
하고 쓴웃음을 웃는다.
 
52
『그럼, 물을 두고 논을 말리우는 것 아냐요?』
 
53
『이를테면 그렇지요.』
 
54
『거, 어떻게 잘 해 볼 수 없을까요?』
 
55
『안 됩니다. 말을 들어먹어야지요. 저마다 잘난 걸요. 민주 주의고요.』
 
56
Y노인은 민주 주의라는 말을 썼다. 이 노인이 아는 민주주의는 「저마다 잘나서 아무의 말도 아니 듣는 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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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노인의 생각에는 사람들이 말을 아니 들어먹으니 상노깨 벌은 만만세에 가물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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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물을 두고도 논을 말리우는 우리 신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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