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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世紀)의 청산(淸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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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5
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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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世紀[세기]의 清算[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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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世界大戰[세계대전]과 文學[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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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歐[서구]의 어떤 文學史[문학사]를 보아도 1914년으로부터 1918년까지 5년간에 亘[긍]한 記述[기술]이 빠저 있는 것을 보고 나는 퍽 기이하게 생각해 온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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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수록 나는 이 공백이 되어 있는 5년간의 文學史[문학사]를 알고 싶은 이상한 흥미를 일으켜서 손에 닿는 대로 여러가지 책을 뒤져 본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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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벌써 몇해 전 시골 있을 때 이야기인데, 나는 독일의 교수나 문학자의 공동위원회(소위 93大家[대가]의 선언)가 조국 옹호의 성명서를 발표했다든가, 불란서의 ‘로망ㆍ롤랑’ 같은 사람이 이와 반대되는 행위를 했다든가 하는 類[류]의 사실보다도 이 5년 간에 대체 西歐文學[서구문학]은 어떤 길을 밟았는가가 제일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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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더욱 우스운 일은 이 5년 간이란 세월을 계기로 해서 1918년으로부터 다시 시작하는 소위 前後[전후]의 文學[문학]과 1914년에서 끝나는 戰前[전전]의 文學[문학]이 가장 합리적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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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그것은 고개의 이짝과 저짝을 구별하는 분수령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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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5년 간이란 결국 大戰[대전]이 점유하고 있는 공간인데(시간으로 서는 너무나 공간적이었다!) 그러면 현대의 西歐文學史[서구문학사]를 戰前[전전],戰後[전후]로 나누는 것이 단순히 편의만에 끄치는 시대 구분이 아니라, 불가불 하나의 역사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게 된다. 물론 그것은 문학의 한계 내에서 본 역사적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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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전쟁이란 구체적으로 歐洲大戰[구주대전]이란 어떠한 문학사적 의의를 가졌는가? 자못 대답하기 곤란한 물음이 아닌가 한다. 전쟁은 예술품도 아니고 시인도 아니다. 그것은 단지 하나의 대규모의 역사적 행위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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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예술과 가장 대립되는 물건이라고 한다면, 정치의 一延長[일연장]이던지, 동시의 가장 고도화 된 정치인 전쟁은 인간의 사회생활 가운데서 예술과 가장 對蹠[대척]되는 물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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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정치를 좌우할 수 없을 망정 정치는 예술을 지배할 수 있다고 하면, 가장 고도의 정치인 전쟁은 藝術史[예술사]의 과정 가운데 결정적인 쐐기를 내려 박을 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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歐洲大戰[구주대전]은 단순히 구라파의 각 국민이 전쟁 속에 뛰어 들었다는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실로 이러한 의미에서 西歐[서구]의 現代文學史[현대문학사]를 1914년 이전과 1918년 이후와를 완전히 갈라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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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1914년~1918년의 5년 간에는 문학적 내용이란 것은 없다. 각 국민이 전문적으로 전쟁에 종사한 기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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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逸文化人[독일문화인]의 愛國主義[애국주의]나 불란서 시인들의 ‘안티 밀리타리즘’이나 모두 문화나 문학은 아니었다. 정치이고 전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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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선 전쟁이 진행되고 학생들은 운동장에서 놀고 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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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기간 동안에 구라파文學史[문학사] 위에선 19世紀[세기]와 20世紀[세기]가 비로소 깨끗한 형태로 交代[교대]하였다. 산업 자본주의의 온상에서 자라 나서 寫實主義[사실주의], 自然主義[자연주의] 이후 唯美主義[유미주의]를 거처 소위 世紀末[세기말]의 ‘데카다니즘’ 가운데 체류된 19世紀[세기] 문학은 20世紀[세기]에 들어 와서도 大戰[대전]이 일어날 때까지 각국 上層[상층] 금융자본가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그대로 존속해 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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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世紀[세기]가 낳은 世紀病[세기병]이라는 물질 문명과 정신 문화의 極限大[극한대]의 分離[분리], 거기에서 오는 정신의 無明[무명]한 고독, 일찍 문화의 지반이라고 믿었던 물질 문명에 대한 극도의 不信[불신]과 懷疑[회의]는 대략 다음의 두가지 형태로 類型化[유형화] 되어 20世紀[세기] 문학 위에 계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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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方[일방]으론 극도로 고도화 된 쾌락적 기분, 他方[타방]으론 純化[순화]된 문학의 현실로부터의 遊離[유리], 이 위에 공업이나 기술, 더욱이 기계의 메카니즘을 반영하는 幾多[기다]의 조잡한 철과 콘크리트의, 나치스가 말하는 소위 ‘아스팔트’ 文學[문학]이 탄생하였다. 이것은 ‘웰스’나 ‘쥬르로맹’ 이나 독일에 유행하던 ‘그릇스탓트 리릭’ 에서 보는 바와 같이, 19世紀[세기]의 전통으로서나 20世紀[세기]의 새 문화를 상상하는 입장에서나 다같이 인내하기 어려운 濫造文化[남조문화]였다. 그것은 정신인 것보다 더 많이 물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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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문제는 한짝에 고도화 된 쾌락성과 다른 짝에 純粹化[순수화]된 文學[문학]의 孤立性[고립성]── 현실과의 절대적 부조화와 현실로부터의 遊離[유리]── 이 어찌할 수 없는 상태가 무엇으로 打開[타개]되느냐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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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위에 前[전] 世紀末[세기말]로부터 ‘데카당스’에서 꼬리를 끌고 내려온 陰森[음삼]한 世紀病[세기병]이 아직 깊어 구라파 문학의 大空[대공] 위를 黑雲[흑운]과 같이 떠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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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러 시기에 한 사람의 出衆[출중]한 天才[천재]를 예상할 수가 있다. 그 하나의 天才[천재]에서 우리는 現狀[현상]의 용감한 개혁자를 또한 오늘날의 희망을 발견할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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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뽀오드레르’ 이후 몇 사람의 天才[천재]가 출현했음에도 불구하고, 구라파 문화의 깊어진 절망 상태를 개혁할 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외부의 환경이 반대로 天才[천재]들을 차례 차례 사로잡어 갔다. 感受性[감수성]과 재능의 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들은 ‘페시미즘’의 森林[삼림] 가운데로 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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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恒常[항상]의 방법으로는 구라파의 文學[문학](혹은 政治[정치])이 타개될 수 없는 상태에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명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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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쾌락성과 순수화, 절망감은 이 사실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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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수술만이 이 상태를 어느 정도일지라도 改變[개변]하지 않을가? 정치가들은 열심히 이것을 준비하고 또한 솔직히 그 필요를 역설했으나, 문학의 세계는 오직 戰慄[전율]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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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것이 19世紀[세기]의 문화와 정치의 총결산이 아닐까? 그러나 구라파인은 결코 기대를 버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戰後[전후]에 와서 西歐人[서구인]은 일체의 희망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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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외과적 수술에까지 일종의 기대와 호기심을 붙여 보던 것이 당시 구라파인의 심리가 아니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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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때 사라에보의 총성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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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1918년의 5년 간이, 바꾸어 말하면 思惟[사유] 대신에 決斷[결단]이, 精神[정신] 대신에 行動[행동]이, 자유 대신에 복종이, 구라파를 지배한 기간, 구라파의 문화나 문학은 休止[휴지]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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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化[문화]나 文學[문학]은 ‘決斷[결단]’ 과 ‘行動[행동]’ 과 ‘服從[복종]’ 가운데선 서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현대의 西歐文學史[서구문학사]가 이 5년 간에 空白[공백]을 삽입했다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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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思惟[사유]와 精神[정신]과 自由[자유]가 휴식하고 있을 때, 결단과 행동과 복종의 구라파는 ─19世紀末[세기말]로부터 20世紀[세기]─1914년에 이르기까지 문화나 문학이, 바꾸어 말하면 思惟[사유]와 精神[정신]과 自由[자유]의 구라파가 해결하지 못한 과제를 순수히 외과적인 방법에 의한 해결에 종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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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19世紀[세기]가 長久[장구]한 시일 동안에 준비해 가지고 20世紀[세기]에 이르도록 去益[거익] 氾濫[범람]시켜 오던 19世紀[세기] 文化[문화]──文學上[문학상]의 온갖 汚穢物[오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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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ㆍ파이’ 란 사람의 「現代佛蘭西文學[현대불란서문학]」이란 책을 보면, 1900년으로부터 1914년까지의 문학의 정신상태를 대단히 흥미있게 이야기 하였다. 1900년으로부터 1914년까지의 「佛蘭西散文文學[불란서산문문학]」이란 項[항]에 결론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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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은 感[감]하기 위한 노력의 최고점을 보인다. 이 해는 항공, 카이요 사건, 푸루우스트의 최초의 소설, 쾌락과 공포와의 어지러워진 顔面[안면]같이 붉은 채, 우리들의 감각이 세련됨으로써 불란서는 세계에서 前代未聞[전대미문]의 섬세하고 하이카라한 나라가 되었다. 육체도, 정신도, 魂[혼]도 불란서에 있어서는 모든 것이 무한히 풍요하고, 향락하고 고뇌하는데 쾌적한 것 같았다. 佛蘭西史[불란서사]의 어떤 시대에서도 우리는 이와같이 복잡하고, 韻響[운향] 높고, 장식적인 존재를 가진 일은 일찌기 없었다’. 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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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西歐文化[서구문화]의 교양과 전통 가운데서 아직 19世紀[세기]인의 고전적 풍모를 보유하면서 ‘에피큘’의 세계의 가치를 음미하던 ‘아나톨ㆍ프랑스’의 그것과는 현저히 성질이 다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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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그러니까 전쟁이 발발하기 2년 전에 출판된 ‘발레리이라르보’의 「삐아나뿌우스」란 소설은 소개자의 말에 의하면 20世紀[세기]의 歐洲[구주]에 있어 한사람의 백만장자가 맛볼 수 있는 쾌락의 카타로그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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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우리에게 있어 분명히 두려운 문학의 一典型[일전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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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책의 저자는 「1900년으로부터 1914년까지의 佛蘭西[불란서]의 詩[시]」란 제목 아래 혹은 「詩[시]의 純粹化[순수화]」란 부제를 붙이고 다음과 같은 말을 冒頭[모두]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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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散文文學[산문문학]이 그 사회적 혁명을 충실히 지키고 육체, 물질적 생활, 인간의 교섭 등이 주는 모든 감각에 도취하고 있을 때 他方[타방]에서 詩[시]는 램보 이래에 지배되고 있던 욕망에 이끌려 民衆[민중], 物質[물질], 現代[현대]로부터 멀리 乖離[괴리]하는 것과 같이 보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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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浪漫主義[낭만주의] 몰락 이후 불란서 詩시[가] 걸어 온 길의 한 마감이었다. 20世紀[세기] 初[초]의 불란서 詩壇[시단]을 지배한 사람이 3人[인]의 神秘家[신비가] ‘짬’ ‘크로오텔’ ‘페기이’ 이었다는 사실 가운데 우리는 戰前[전전] 불란서 詩壇[시단]의 大綱[대강]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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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볼리즘’ 은 현대로부터 詩[시]를 박탈시키고 純粹化[순수화]시키고 超自然[초자연]의 세계와 결부시켰다. 그들은 물질의 세계에 抗[항]하여 정신의 세계 가운데로 신뢰를 옮긴데 불과하다. 카톨리시즘이 심볼리즘 가운데 기여한 가치를 상기함으로서 우리는 충분한 해답을 얻을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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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산문이 감각의 향락으로 몰입한 대신 專[전]혀 詩[시]가 정신의 神秘境[신비경]으로 들어 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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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곧 사람과 大地[대지]를 연결하는 공간과 같은 것이었다. 인간은 언제나 天上[천상]과 大地[대지]와의 사이 가운데 살아 있는 것이다. 여기가 어느 때나 역사가 만들어지는 장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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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戰前[전전] 西歐文學[서구문학]과 詩人[시인]은 정신의天上[천상]을 飛翔[비상]했고, 散文學[산문학]은 감각의 地面[지면]을 匍匐[포복]하여 정작 인간이 사는 곳에는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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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간은 마치 맨 먼저 내가 말한 1914년과 1918년 사이의 文學史的[문학사적] 공간과 대비할 수 있다. 大戰[대전]은 바로 이 5년 간의 공간이 미증유의 폭력을 발휘하여 세계를 횡행한 사실이다. 모욕된 인간이 언제나 원수를 갚는 것처럼, 모욕된 현실은 또한 어느 때나 인간에게 보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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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大戰[대전]은 1914~1918년 간을 점유한 공간의 폭행이 아니라, 실로 정신을 향하여 비상하던 詩[시]와 감각의 지면을 포복한 散文[산문]과의 사이에 어붓자식처럼 放棄[방기]되었던 공간의 강력한 반항이었고 복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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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훌륭한 정신일지라도 사실의 세계를 무시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무시된 사실은 언제나 정신에 복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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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相剋[상극]하는 두갈래 경향으로 문학이 分裂[분열]하여 다투는 사이에 버러진 현실, 산 인간의 세계는 大戰[대전]이 되어 구라파 天地[천지]를 5년간 橫行[횡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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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수 많은 도시와 伽藍[가람]과 人命[인명]을 파괴한 大戰[대전]은 단순히 가능적 세계의 낡은 樣姿[양자]를 깨뜨렸을 뿐만 아니라, 정신의 세계, 문학과 예술세계의 낡은 樣姿[양자]와 전통과 습관의 盡滅[진멸]에 종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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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戰[대전]은 하나의 학교였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대체 어떤 학교였는가 이 학교로부터는 실로 예기치 못했던 두려운 학생들이 새로운 교육을 받고 사회에 나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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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베르날ㆍ퐈이’ 에 의하면 이 학생들은 大戰[대전]이 인생의 최초의 경험이었던 청년들이다. 그들은 연애를 배울 나이에 전쟁을 배운 것이다. 불안, 위험, 狂躁[광조], 무질서 등의 부자연한 모든 것이 어느 틈에 그들에겐 자연스런 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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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가장 젊고 감수성이 빠르고, 明敏[명민]한 사람들 가운덴 형용할 수 없는 狂暴[광포]한 한 풍조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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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戰後[전후] 20世紀文學[세기문학]의 첫 출발을 담당한 새 ‘제네레슌’ 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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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新興文學[신흥문학]이 물결 치고 그 위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즘과 派[파]로 분립되어 세계를 횡행한 문학의 생산자들이 이 청년들이었다. 이것이 무엇이라고 설명되든지 간에 그것은 별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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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病症[병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환자가 있을 따름이다,’ 빤자망ㆍ크레뮤가 前後文化[전후문화]의 정신 상태를 記述[기술]할제 쓴 최초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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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이유 회담은 이 ‘모욕된 사실’을 처리하지는 아니하였다. ‘病症[병증] 없는 환자’ 란 바로 19世紀末[세기말]부터 20世紀[세기] 初頭[초두]에 亘[긍]하여 시인과 소설가들이 버려 두었던 사실의 子息[자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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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우리는 大戰[대전]이 19世紀[세기]를 청산한 때인 지금, 20世紀[세기]의 문화는 아직 만들어 내지 못한 채 10년을 살아 온 것이다.
 
58
우리도 지금 새 학교에 들어갈려 하고 있으며, 학교는 새 학생을 또 낳을 것이다. 어떠한 졸업생이 나올 것인지? 그것은 우리 역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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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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