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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의 변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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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 2
박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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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의 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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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 최근에 와서 우리들이 읽는 시의 형태와 내용이 그 전보다 몹시 변모하고 있는데 이것은 시의 발전과 어떠한 관련이 있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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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 원래 평론가는 시와 소설에 관해서 운위할 자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평자의 식견과 독자성이 확연치 않으며 인간에게 있어서 그 개성과 소양이 항시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고는 볼 수 없고 더욱 심한 자에 이르러서는 파당성과 개인 감정에 치우치는 일이 많으므로 결국 시가 어떠하다, 소설의 가치가 갑·을이라고 단정한다는 것은 극히 위태로운 일이라고 믿는 것이 독자로서 현명한 일이며 그러하므로 내가 앞으로 말하는 것 역시 극히 위태한 상태의 발언이라고 믿으시고 하나의 참고로서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요즘의 시는 물론 많은 변천을 했습니다. 정지용 씨 이후에 거의 10여 년을 지속해 온 자연발생적인 사상과 스타일을 벗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 현저한 예로서는 박목월 씨와 유치환 씨의 경우가 가장 단적인 사실이 되어 있고 감광섭 씨와 노천명 씨의 시가 새로운 양식으로 내용을 갖추고 있는 것은 『동경(憧憬)』이나 『창변(窓邊)』의 시집과 최근의 작품을 대조하면 손쉽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더욱 말하자면 박목월 씨의 지난날의 시는 일본의 근대 서정파의 영향이 많았는데 그 당시는 그러한 영향도 좋았으나 민족적인 감정과 정서의 지배를 오늘에 와서 물리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는 수 없이 그의 시는 많은 혁명을 일으켜야 하며 현대의 불안이나 절박감이 크게 반영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시의 생명이며 숙명적인 과제이므로 과거의 형태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최후의 도정일 수밖에 없고 ‘오늘’은 이미 시에 있어서는 내일을 의미치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시는 다른 예술보다 그 독자를 미래에 구하고 있는 까닭에 오늘이 영원한 내일이 되도록 애를 쓰기 위해서는 언제나 다시 머무를 수 없는 비약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행위로서의 창작이며 표현으로서의 새 정신이 요망됩니다. 한국의 문화적 체계에 있어 가장 진전되고 있는 것은 시의 상태이며 그것은 즉 현실에의 비판, 사회적 관심, 인간적인 내성이 시인에게 있어 조리 있게 처방되어 간다는 것을 좌증하는 일입니다. 일제시의 시의 방법은 지금은 사멸되었습니다. 해방 후에 『청록집』과 같은 형태의 시는 이미 나타나지 않았고 6·25 이후 ─ 격동과 분발의 시기를 겪은 오늘의 시의 사유와 그 전과는 많은 구분이 되어왔습니다. 구상의 「폐허에서」는 그의 전 작품과는 완전히 이질적인 것이며 유치환 시의 「바닷가에 서서」는 인간을 객관화하고 시대의식을 잘 정리하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형태와 내용이 불가피 변모하는 수밖에 어찌할 방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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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 소위 모더니스트에 대한 비난은 그 원인이 어디 있으며 그들의 작품이 난해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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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 내 자신 여기에 관해서 각별한 주의를 하고 있습니다. 최근 새로 시를 쓰는 대부분이 김기림 씨와 이상 씨의 영향이 많습니다. 저는 이분들이 지금 살아 있지 않는다고 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며 그분들의 업적에 지대한 존경을 표하는 한 사람이지만 이분들은 시대적으로 오늘에 있어서는 유물적(遺物的) 가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신기’와 ‘곡예’에 무한한 애착을 느끼었고 그 ‘신기’에는 정신과 행위가 동반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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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예’ …… 이것은 몸부림에 불과했으며 의식으로서 우러난 것이 아니라 남들을 그저 웃기고 울리고 하려는 순간적인 기분이 만든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상 씨에는 한국적인 오리지널리티는 있었으나 기림 씨는 외국문학의 소개와 그들의 시의 스타일을 이식한 데 지나지 않습니다. 그 무렵과 같이 고집과 보수가 횡행하던 시대에 있어서 그들은 적은 혁명가이며 저항자라고 훌륭히 여기나 시의 가치는 오늘에서 보면 높은 것이 못 됩니다. 기림 씨는 더욱이 시를 과학에 접근시키려고 애를 썼는데 시를 과학과 혼합시키고 과학이 시를 지배하는 듯 말한 것은 유치 천만이며 큰 착각입니다. 시는 과학이 있기 이전에 독자적이며 우위한 경지를 이루고 있었다는 것을 내가 여기에 말하지 않아도 여러분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 몇 가지 사태를 오늘의 세대가 좋아한다든가 영향을 받는다든가 해서는 곤란하며 기림과 이상에게 그 반역정신만 본받으면 그것만으로서 훌륭합니다. 모더니스트라고 하면 반드시 트리스탄 차라, 폴 엘뤼아르, 앙드레 브르통을 중심으로 한 다다이즘이나 쉬르레알리슴의 운동을 지지하는 분도 있는데 이것 역시 위태로운 일이며 그들이 한 자동기술법의 시대도 1936~1939년을 전후하여 자연 소멸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들은 전통과 정통을 구분하는 분간력을 우선 체득하여야 하며 저는 정통을 택하는 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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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S. 엘리엇 이후 뉴컨트리파의 운동과 에즈라 파운드나 H. D가 바라다보고 분석한 현대의 제상은 하나의 정통적인 세계관으로서 그 후에 많은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아직도 훌륭히 일하는 W. H. 오든, S. 스펜더, 죽은 딜런 토머스, 에디트 시트웰 등…… 현대의 정치와 사회의 심연에서 허덕이는 인간의 정신과 행위를 노래한 이들이 휠씬 오늘의 시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에 반해서 최근의 모더니스트의 일부 시인은 아직도 기림 씨나 이상 씨 트리스탄 , 차라, 앙드레 브르통의 기교와 수법이 현대시의 새로운 형태인 줄 알고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훌륭한 사상과 언어를 도리어 그들과 교환하는 어리석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혼란되고 자신의 질서가 부조리화되고 읽는 사람에게 큰 콤플렉스를 초래시킬 때가 많습니다. 물론 현대시인으로서 이러한 과정은 누구나 한 번은 경험하게 되는 법인데 그런 경험으로서의 작품을 발표한다든가 발표해 주는 편집자의 책임이 논의될 수도 있는 일입니다. 여하간 대부분의 신인이 이러한 결함에 있으면서도 감상주의에 빠지지 않고 냉철한 주지적인 작품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은 현재의 비난이 앞으로의 찬사가 될 수 있는 일이며 한국의 현대시가 더욱 진전해 갈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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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 지난 1년간에 있어 문제될 수 있는 시인은 어떠한 분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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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 1954년은 한국의 시단을 위해서 행운의 1년이라고 우선 말하고 싶으며 본지(『신태양』)의 문예란 특집에서 7월호 이후 매월 4, 5편의 시를 게재했다는 것은 우리로서는 경하해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설주 씨와 김용호 씨가 공편한 『연간시집』(1953년판), 『현대시인선집 ─ 상하권』, 『한국애정명시선』이 간행된 것과 김종길 씨가 역편한 『20세기 영시집』은 우리 시단에 하나의 정리와 자극이 되었습니다. 그리 문제될 것은 못 되지만 60이 넘은 오상순 씨가 그의 건재를 의미하는 수 편의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물론 관념주의와 자아에 가득 찬 작품이긴 하나 늙으면 시를 못 쓰는 우리나라 시인으로서는 독보적인 존재이며 프로페서적인 면을 따지면 그리 저급한 작품은 아닙니다. 김광섭, 모윤숙, 노천명 제씨의 활동도 즐거운 일입니다. 그 중 노 여사는 시감적(時感的)이며 감상주의에 젖은 몇 편도 있었으나 “논개 치마에 불이 붙어”를 이야기한 「곡(哭) 촉석루」는 옛날의 면목을 일신하는 것이며 김광섭 씨의 대부분의 작품이 성공된 리리시즘의 경지를 이루고 있는 것 역시 후진인 여러 시인에게 좋은 교시를 준 것이라고 보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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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환, 박목월, 구상, 이경순 제씨들은 무척 시대감각이 예민해진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구상의 허탈된 정신, 목월의 탈피 등은 그들을 좋아하고 모방하여 온 여러 사람들에게 큰 경종이 될 것이며, 『청록시집』의 간행을 모멘트로 하여 유씨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 사색의 한계를 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너무도 시사적인 주제를 택하였기 때문에 시가 생경한 채로 불완전한 소화를 한 일이 허다했습니다. 다음에 크게 문제되는 것은 김차영 씨와 박태진 씨입니다. 다른 분들은 이 두 사람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있으나 그것은 너무 신인을 무시하는 행위이며 편견의 노출입니다 김씨와 박씨의 . 시작의 태도는 전연 다르지만 구극적으로 도달하고 있는 시의 사념은 같은 것이며 현대의 불안과 모순을 냉철한 이성으로 노래하고 자기 언어로써 표현한 이와 같은 시인은 별로 드물 것입니다. 지금 저에게 그분들에 관한 자료가 없어서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으나 몇 편 안 되는 두 분의 시는 오래도록 미래에 독자를 가질 것입니다. 조병화 씨와 김춘수 씨의 작품은 언제나 천편일률적이면서도 그리고 통속적이면서도 ‘맛’이 있는 인생주의가 풍기고 있습니다. 『인간고도』는 조 시인의 절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그의 신작시를 대할 때마다 저는 차가운 미소를 띠는 것은 그의 시에 페이소스가 있는 때문입니다. ‘고독하다…… 외롭다’는 그의 전용어가 많이 나오는 것은 결코 그가 고독하지도 않고 외롭지도 않다는 반증이며 진실로 그러한 사람은 마음속에 간직해 두는 것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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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로 씨, 전봉건 씨는 다른 각도에서 현대를 고찰하고 있기는 하나 자신의 것으로 소화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불만입니다. 더욱이 전 시인은 너무 객관적으로 통찰하고 있기 때문에 외국시를 번역해서 읽는 기분이 생기는 것은 저의 이해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돌려도 좋습니다. 김규동 씨, 이활 씨는 다른 기회에 미루기로 하고 시집 『서정의 유형(流刑)』의 신동집 씨의 절망감은 하나의 신풍이 되겠습니다. 부산에서 발행된 『현대문학』에 조향, 노영란, 장현, 정영태 제씨가 모두 우수한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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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의 MENU」(조), 「로터리의 어느 날」(노)은 현대시의 대표작들이며 그의 표현의 기법은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지난 1년 동안을 회고하는 다른 사람들의 시감(時感)의 김경린 씨와 박인환 씨를 드러낸 사람이 있는데 사실 이 두사람은 별로 훌륭하고 가치 있는 작품을 발견치 못했으며 평자(評者)가 얼마나 잠재의식적이라는 것을 말하는 태만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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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고원 씨가 주재하는 순시지(純詩誌) 『시작』이 3집까지 나온 것과 『현대예술』지가 3집에 걸쳐 신인들의 작품을 소개한 것은 시가 새로운 세대에로 그 중극적(中極的)인 역할을 전환하고 있다는 데서 의의 있는 일이며 김종문 씨가 T. S. 엘리엇의 『시와 극』, 칼 샤피로의 『나의 약설(約說)』을 번역한 것 역시 우리가 축복해야 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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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양』(195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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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환(朴寅煥)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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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5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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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6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