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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권(作品權)의 변(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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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3.26~
채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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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品權[작품권]의 辯[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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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이월 하순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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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모처럼 상경을 한 길이라 여기저기 서사(書肆)를 돌아다니며 오랫동안 아쉽던 신간서를 뒤적거리던 끝인데, 마지막 북촌(北村)의 한 집은 들렀더니 웬『조선소설대표작집』이라고 모양새 심히 초라하게 생긴 책자 하나가 우연히 눈에 띄었다. 자리가 전부 화문서적(和文書籍)만 놓아둔 서가요 겸해서 표제가 그럴 성하여 조선소설을 화역(和譯)한 것임은 첩경 짐작할 수가 있었으나 그 헐가판(歇價版)으로 만든 책의 됨됨이하며 와락 그리 탐탁스런 정은 내키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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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변 화역된 조선소설집이란 전에 없던 기물(奇物)인만큼 좌우간 호기심이 일지 않지도 않는 것이어서 아뭏든 한 권을 집어들고 목차를 우선 넘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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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첫머리에 김남천(金南天)의 「소년행(少年行)」을 비롯하여 이기영(李箕永)·박태원(朴泰遠)·이태준(李泰俊)·이효석(李孝石)·유진오(兪鎭午)·김동리(金東里) 등 유수한 10여 명 작가의 비교적 낯이 익은 단편들을 각각 하나씩 수록한 그리고 역시 짐작한 대로의 화역본이었고, 그런데 뜻밖에도 거기에 가서 변변치 못한 나의 작품도 한 편이 참예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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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맹랑한 일이었었다. 정녕코 「동화(童話)」라는 명색 내 원작의 내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는데, 그러나 나로서는 그것이 거기에 역재(譯載)가 되었을 줄은 전연 알지도 듣지도 못한 터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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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는커녕 사후에라도 엽서 한장의 통고인들 받은 기억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역자인 신(申)모가 어떤 누구이며, 또는 발행소인 동경의 그 ×××란 서점의 실재 여부조차도 나는 모르는 형편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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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잘것없는 나요, 그러한 나의 작품이 어찌하다가 버젓이 조선문학작품의 대표작이랍시고 당당 동경천지에로 이출(移出) 출세를 했으며, 차라리 영광인 양 도리어 황공해했어야 할 것이었으나 본시 성미가 편협한 탓인지는 몰라도 일이 흡사 도난당한 줄을 모르고 있던 제 물건을 거리의 너줄한 고물상 구석에서 깜박 발견한 것만큼이나 몹시 불쾌했던 게 그 당장의 가릴 수 없는 심정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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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자연 한편으로 궁금하기까지 한 것은 일왈(一曰) 번역이 대체 어떻게나 되었는고 하는 것과 다음 한가지는 저편의 고의 아닌 실수로 혹시 누락이 되어 나 한 사람만이 교섭에 빠진 것이냐, 또는 계획적인 그래서 상게(上揭) 10여 명 작가들 전부가 죄다 그 피해자이냐 하는 것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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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러나 부득불 당일로 송도까지 회정(回程)을 해야 할 사정이 있었고, 그런데 마침 차 시간이 또한 촉박했고 해서 내 작품만이라도 대강이나마 한번 주욱 훑어볼 겨를이 없었을뿐더러 그중의 아무고 한둘이라도 만나 일의 경위를 알아볼 여가를 가지지 못했었다. 그리고는 귀로의 차중에서야 아뿔싸! 어째 그 책자를 아뭏든지 한 권 사지 안했던고 하는 후회가 났었으나 이미 막급(莫及)이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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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 나는 단독으로라도 우선 궐(厥)들 역자며 발행자에게 석명(釋明)을 요구하는 서면을 띄울까 어쩔까 생각은 해보았으나 그대로 결단을 못한 채 다만 께름한 기억에 신경의 아닌 소모를 해야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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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며칠 전 다시 상경한 기회에 직접 혹은 간접으로 저간의 소식을 알아보았더니 전부는 미처 모르겠으되 그중 4, 5인 즉 내가 알아본 범위 안에서는 다같이 나처럼 그 웃지 못할 피해자인 것이 판명이 되었었다. 동시에 어떻게든지 그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도 각기들 생각도 하고 더러는 이야기도 되고 하는 모양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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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번역인데, 다른 작품들은 아직 모르겠어도 내 「동화」하나만 가지고 본다면 대체로 으수하게 갖다가 꾸며대지 않은 것은 아니나 도저히 번역다운 번역이랄 것이 못되고, 더우기 오다가다 참으로 절창(絶唱)짜리의 오역(誤譯)이 많다. 결국 작품은 출세를 한 것이 아니고 애꿎이 망발과 창피를 당하러 동경엘 간 센쯤 된 맥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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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걸 일러 가로되 망신살이 뻗쳤다고 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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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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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문학작품은 앞으로 조만간 내지문단(內地文壇)이랄지 나아가서는 제외국의 문학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자아의 하여커나 실역량을 제시하여 써 조선문단의 대세계적인 존재를 주장하기 시작해야 할 시대를 가지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실상 또 소극적으로는 벌써 그러한 기운이 한편에서 싹트고 있기도 하는 터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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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리함으로써 조선문학은 단지 조선 안에서만의 문학임에 그치지 않고 차차로 전인류문화의 일환에서 당연히 한개의 새로운 지위를 차지하도록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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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단계를 한 걸음씩 내딛는다는 의미에서만 하더라도 평소부터 나는 조선의 문학작품이 내지문단이랄지에 소개가 되는 것을 마땅히 환영을 할지언정 조금치나 긴찮아할 이유는 가지지 않는 자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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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되 다만 거기에는 반드시 조선문학의 존엄(尊嚴)이라는 것을 상하거나 굽히거나 해서는 안된다는 중대한 조선이 한가지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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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존엄이라고 큰 글씨를 썼지만 별것이 아니요, 첫째 왈 좋은 번역이고 부수적으로는 권위있는 출판자와 과히 숭없지 않은 체재의 책자이면 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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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에 불과한 것이지만 가령 나는 일찌기 뚜루게네프를 대단히 좋아했고 그의 작품으로 내지에 소개된 것이면 모조리 한두 번씩은 다 읽곤 했는데, 물론 승서몽(昇曙夢)이니 마장고접(馬場孤蝶)이니 등의 화역이 있었다. 그러나 그래도 나는 어느만큼은 뚜루게네프의 예술을 이해하고 엔조이하고 할 수가 없진 않았었고, 한 것은 전혀 그 번역이 좋은 번역인 덕이지 다른 게 아니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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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러므로 그와 같은 번역이 좋은 번역이 아니었더라면, 그리고 언제까지고 노어(露語)의 원문을 읽을 힘이 없는 이상 나는 전문가에서 들은 풍월로 뚜루게네프가 이러저러하다는 것을 알기나 할 따름이지 실지로 그의 예술을 이해하고 엔조이하고 하지는 못했을 것이었었다. 따라서 나의 노서아문학에 대한 인식의 일단도 매우 적정치 못한 것일 것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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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어 우리의 문학작품도 남의 앞에 내놓는 마당을 당하여 더욱 지금이 처음 시초인만큼 그 번역이 얼마나 중난(重難)한 것이며 조선문학 전체의 존경에 관계가 되는 것이며를 가히 헤아릴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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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출판자의 권위와 책자의 체재인데, 번역만 좋고 보면 그런 것이야 사소한 문제라고도 하겠지만, 역시 초기인 관계상 그 영향을 고려치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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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으로 교양 있는 독서인에게는 존재의 인정조차 받지 못하거든 하물며 거기 어디 인찌끼 출판업자가 우환중 꼴사나운 허접쓰레기의 헐가판으로 아무렇게나 책을 만들어 가지고, 자 이것이 조선문학이요 그 대표작입네 하면서 발간을 하고 볼 양이면 여태까지 조선문학에 대하여 백지이던 그들 독서인으로 하여금 내용은 차치하고서 우선 저 고약한 ‘조선풍속 그림엽서’ 와다를 것 없는 하시감(下視感)을 일으키게 하기에 마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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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고서 만일 상당히 근지(根地)나 있고 한 출판자의 손을 거쳐 어느 정도의 중후한 체재를 갖춘 책자로서 간행이 되었을 경우에는 그들 독서인은 자기네의 신용하던 출판자가 그와 같이 정중한 취급을 한만큼 자연 조선문학이라는 신래(新來)의 진객(珍客)에게 대하여 신뢰와 경의를 가지게 될지언정 함부로 다루지 못할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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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조선의 문학작품이 단 한 편이라도 가사 손쉽게 방금 화역이 되어 내지면 내지에 소개가 된다고 할 기회를 당해서, 그 역자와 아울러 번역에 대하여 또는 발행자의 권위에 대하여 그리고 또 책자의 체재에 대하여까지도 우리로 앉아서 갖추갖추 일종 불안에 가까운 주의와 관심을 가지지 않지 못하는 소치는 진실로 조선문학의 그와 같은 존엄이 조심되기 때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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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이 존엄만 충분히 보장이 될진댄 얼마든지 번역을 하여 자꾸자꾸 내지에로 이출(移出)도 좋고 더는 대륙이나 구미에로 수출도 좋고 그야말로 다다익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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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반대로 어떠한 경우이며 어떠한 필요임을 막론하고 조선문학의 존엄을 상한다거나 굽히면서까지 애써 남에게 우리의 작품을 보여주자고 들며리는 조금도 없는 것이다. 그것은 무의미하고 부질없은 비굴일 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 자아의 실역량과 존재를 주장하는 데 있어서도 번연히 역효과를 낳고 말게 되는 것임으로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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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치를 허비하여 장황스럽게 늘어놓고 보니, 편집자의 주문과는 자못 동이 뜬 생경한 설화(說話)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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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뭏든 나의 그 전제 비슷한 것이 요행 무리한 훤담(喧談)이 아닐진대 이번에 신모라는 씨의 번역으로 ×××라든지 하는 서점에서 몰래 가만히 갖다가 발행을 해먹은 예의 『조선소설대표작집』이란 책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내지의 독서인들을 상대하여 조선문학을 한번 본새있이 욕보이는 데 있어서 실로 완전히 성공을 거둔 거조(擧措)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도저히 작품을 작품답게 즉 문학적으로 번역한 번역이 아니었었다. 이 말은 그러나 무단한 과장이나 미화를 시키지 않았다는 칭탈이 아님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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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자인 서점 ×××가 동경의 어디쯤 행랑 뒷골목에서 진체번호(振替番號) 한 개를 유일한 자본삼아 여린 잇속만 여새기고 앉았는 부덕 소상인인지 전혀 알 길이 없다. 결단코 신의와 권위가 있는 출판자이랄 것 같으면 동경 지어(至於) 조선인데 그렇듯 원작자들에게는 일언반구의 통고도 없이 제멋대로 골라다간 제멋대로 번역을 하여 슬그머니 발행을 해먹을 까닭이 없는 것이므로 싫어도 나는 그를 악덕상인이라고 보지 않을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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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중엔 더러 구경을 한 사람도 있을 줄 아는 데 책의 체재에 이르러서는 저것이 대관절 명칭이나마 『조선소설대표작집』이랍시고 처음 비로소 내지에 소개된 조선문학의 꼬락서닌가 하면 화가 물큰 치닫고 두번도 다시 거듭떠 보기가 싫도록 망측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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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체재가 그 몰골이요, 겸하여 번역이 또한 그 모양이니, 가사 내가 내 지인 중의 한 독자라고 하더라도 “흐응! 조선문학이라길래 무언고 했더니 고작 요거라?” 하고 비소(鼻笑)에 부쳐버릴 것은 번연한 노릇일 것이다. 그럴 뿐만 아니라 이편 조선측에서도 그와 같은 이면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혹여 우리들 몇몇 작가가 푸달진 등재료에 팔려 그 따위 악덕상인의 해거(駭擧)에 부동을 한 줄로 역시 비난이 없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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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등재료 말이 났으니 말이지 한푼도 받은 일도 없거니와 또 그것은 둘째 문제다. 무엇보다도 번역만 권위 있는 측에서 잘할 수가 있는 터이라면, 그리고 출판자며 체재가 간약(干若) 섭섭하다고 하더라도 예의와 정성만 우리에게 웬만히 보여주었다고 한다면, 그렇기만 했다면 비록 문필상의 수입이 심히 박하여 대개가 가난에 쪼들리며 지내는 우리이긴 할값에 결코 등재료 문제로 하여 원작을 빌려주기를 꺼려하거나 할 인색한 선비들은 천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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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것을 좀스런 장사치란 할 수 없는 것인지 우리에게는 한마디의 전갈도 않고서 제네들끼리 지지고 볶고 해가지골랑 제명까지, 게다가 엉뚱하게 『조선소설대표작집』이라고 붙여 발간을 해놓았으니, 한 결과는 그렇듯 번역하며 책의 체재하며가 마치 무지한 사진사의 손으로 무책임하게 만들어진 속악(俗惡)한 ‘풍속 그림엽서’ 못지 않게 조선의 문학 내지는 작가들을 10여 명이나 쓸어다가 한바탕 투철히 망신을 시켜 놓았으니 그 괘씸한 소조(所措)를 과연 어떻다고 꾸짖어야 할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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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것을 쓰고 앉았으면서도 자꾸만 그 내 집의 의장 속에 고이 들어 있어야 할 외투나 혹은 양복저고리가 백줴 거리의 고물상 처마 끝에 가서 네임까지 박힌 채 그대로 바람에 펄럭거리며 걸려 있는 꼴을 발견한 것 같은 경우가 상상이 되면서 허허 웃어야 할지 엉엉 울어야 할지 그 불쾌하기라니 유로 비길 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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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 봄거리에 망신을 착실히 하여 초학(初瘧 방예를 했으니 올 여름엔 학질은 안 앓을는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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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저작권의 옹호니 그런 의미만으로가 아니라, 조선문학과 및 작가들의 위신문제라는 점에서도 앞으로 후일의 경계를 삼기 위하여 좌우간 궐씨들을 한번 혼띔은 내줄 필요가 없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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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每日新報[매일신보] 1940. 3. 26~28>
【원문】작품권(作品權)의 변(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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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만식(蔡萬植)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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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0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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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5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