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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人生)과 자연(自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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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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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生(인생)과 自然(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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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子[노자]는 사람이 자연에 돌아가야 할 것을 말하고 인생의 모든 불행이 자연에서 떠나서 사람이 꾀를 부리는 데서 온다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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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道廢有仁義」[대도폐유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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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하여 노자는 인의의 도를 사람의 좀장난이라고 공격하였다. 그리고 됫박을 깨뜨리고 저울대를 분지러야 사람이 속이기를 그친다고 하였다. 이것은 다 옳은 말이다. 제비는 사서 삼경을 안 읽고도 부부와 부자의 도를 지키고 있고 생리 위생학이나 의학이 없어도 곧잘 새끼를 기르고 법률이니 도덕이니 하는 꽤 까다로운 속박이 없건마는 각각 제 생명과 가족을 보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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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물과 나무며 짐승들이 사는 것을 보더라도 됫박이니 저울이니 없이도 일광과 공기와 물의 배급이 공평하게 되는 것이다. 에덴 동산 시대의 우리 조상도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그때에는 옷도 집도 나라도 필요가 없었다. 배 고프면 먹고 졸리면 잤다. 남녀간에도 서로 눈이 맞으면 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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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에덴 동산을 쫓겨난 우리 조상은 제 꾀의 힘을 빌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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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상의 고향이던 시베리아, 몽고, 중앙 아시아는 옛날에는 뭍에는 코끼리가 살고 물에는 용이 살던 더운 지방이었다. 그랬던 것이 갑작스레 지구의 축이 삥글 돌아서 얼음이 어는 추운 세계가 되어버렸다. 거기서 뻘거벗고 자연 생활을 하던 우리 조상들은 남쪽으로 남쪽으로 더운 데를 찾아서 달려 나왔다. 많이 죽고 더러 살아서 태평양이 가로 막혀서 더 내려갈 수 없는 데까지 나와서 머물었다. 그러나 여기도 겨울은 따라왔다. 우리 조상과 함께 개, 소, 말, 닭, 모기, 파리, 쥐, 고양이 같은 동물들도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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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추위를 막기 위하여서 필요한 것이 세 가지 있었으니 첫째는 먹을 것을 「해 두」는 것이요, 둘째는 의지간을 장만하는 것이요, 세째는 맘에 맞는 남녀가 짝을 짓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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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고프면 나가서 먹을 것을 찾는 것은 에덴 시대의 일이었다. 먹을 것이 있는 곳을 얻어 만나면 먹을 것이 없을 내일을 위하여, 더구나 눈덮인 겨울을 위하여 해 둘 필요가 있었다. 여기서 사유 재산이 생겼다. 이것을 잃었다가는 살 수가 없으매 목숨 다음가게 재산을 지켰다. 귀여운 처자를 위하여서는 목숨을 내어 붙이고까지 지켰다. 이 양식을 빼앗는 도적은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첫째는 썩는 일이요, 둘째는 좀 먹는 일이요, 세째로는 쥐나 기타의 짐승이 훔치는 일이요, 네째로는 같은 사람으로서 혹은 몰래 좀도적질을 하고 혹은 힘으로 치고 빼앗는 일이었다. 이런 모든 도적을 막기 위하여 우리 조상네는 여러 가지로 꾀를 썼으니 이를테면 볕에 말리워 썩는 것과 좀먹는 것을 막는 것도 중요한 일이어니와 가장 꾀를 쓴 것은 감추는 일이요, 가장 힘을 쓴 것은 막는 일이었다. 혹은 굴에 감추고 혹은 땅을 파고 묻고 표를 하여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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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상들이 본 고향을 쫓겨나서 견딜 만한 겨울이 있는 곳까지 와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에는 많은 꾀가 나고 많은 재주를 배웠다. 사냥과 고기잡이며, 나무나 돌로 무기를 만들고 나무와 풀 껍질과 누에의 실과 같은 섬유로 옷감을 만드는 것 같은 것도 큰 재주지마는 가장 크고 놀라운 재주는 새와 짐승을 길들여 기르고, 먹을 수 있는 풀로 열매를 심어서 가꾸는 일이니 요새 말로 하면 목축과 농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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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축 시대에 이르러서 차차 부락이 발달되었다. 물과 풀이 있는 곳에 여러 집이 모여 살게 된 것이다. 그뿐더러 한 집에서 여러 마리 짐승을 가지게 되매 빼앗으려는 자의 떼가 생기니 다 자란 짐승을 여러 백 마리 빼앗기에 성공하면 곧 부자가 되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걸음 빠른 말을 기르고 길들여서 타고 다니게 되매 이 도적의 떼는 더욱 횡행하게 되었다. 제가 짐승을 기르기보다는 남이 길러 놓은 짐승을 빼앗는 것이 힘이 적게 들고 이가 많기 때문이다. 이 도적의 떼에 대하여서 도적이 아닌 평화로운 집들은 여러 집이 한데 뭉쳐서 방비할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부락의 결속이 굳어지고 영구성을 띠게 되어서 그 부락에 독특한 습관이 생기고 법이 생기고 두목이 생기고 추념이 생겼다. 이것이 나라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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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큰도적의 떼에는 힘 약한 부락들이 대항할 수가 없어서 싸워서 진 끝에 젊은 여자와 짐승을 다 빼앗긴 부락 사람들은 심하면 살륙을 당하고 살아나면 그 도적의 떼에 항복하여 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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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도적의 떼가 수없이 있는 중에는 영특한 큰두목이 나는 수가 있었다. 그는 죽이고 빼앗은 것을 버리고 항복하는 부락민으로 하여금 해마다 몇분지 몇의 소줄을 세로 바치게 하고 그 대신에 그들이 다른 도적의 침노를 아니 받도록 보호해 주고 그 밖에도 좋은 법률을 주어서 살기가 편하게 하여 주었다. 이것이 무력과 법률을 기초로 한 나라의 시초여니와 그 가장 좋은 본보기는 징기스칸의 몽고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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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농업은 우리 생활에 중요한 다른 한 면을 주었으니 그것은 곧 종교다. 목축 국가가 무력과 법률을 기초로 하는데 대하여 농업 국가는 이 두가지 밖에 종교와 예의 또는 도덕을 발생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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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시대에 들어서서는 우리 조상은 한군데에 대대로 영주하게 되었다. 집 뒤에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의 산소가 생겼다. 목축 시대 같으면 다른데로 떠나면 그런 흉헙고 무서운 것은 안 보면 고만이지마는 농업 시대가 되고 보니 「분묘의 땅」을 떠나기가 어려웠다. 방 아랫목은 여러 사람이 죽은 자리요, 동네 언저리에는 여러 사람의 무덤이 보였다. 밤이 되면 더구나 무섭고 잠이 들어도 무서운 꿈을 꾸었다. 이 집에서 이 동네에서 살다가 죽은 사람의 혼령들이 나와서 돌아다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더욱 무서웠다. 이에 먹을 것을 만들어서 그 혼령들을 불러서 대접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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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잘 대접을 할 테니 작폐는 말고 도와 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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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손을 비벼서 비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면 저으기 마음이 든든하고 꿈자리도 덜 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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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떤 한 귀신은 대접을 받고 가만히 있어도 못 얻어 먹은 다른 귀신은 가만히 있지 아니하였다. 그렇다고 그 많은 혼령을 이루 다 대접할 수는 없었다. 이에 힘있는 귀신을 한 분 찾아서 그를 잘 대접하여서 여러 귀신들을 물리치고 집을 지켜 달랄 생각이 났다. 조상 중에 그중 영특한 조상한 분을 특별히 위하였다. 이 조상 밑에 다른 조상들은 꼼짝 못할 법하지마는 다른 집 조상까지 우리 조상의 말을 들을 수는 없으니 걱정이었다. 이 동네 어느 귀신도 꼼짝 못할 귀신을 하나 택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생전에 온 부락 사람이 무서워하던 사람 ― 임금 같은 사람의 혼령이었다. 이에 온 부락이 모여서 이 귀신을 제사하였다. 동네에서 멀지 아니하고도 가장 정갈한 곳에 이 귀신이 거처할 자리를 성하였다. 그것은 혹은 나무요, 혹은 바위였으나 또 혹은 그들을 위해서 지어 놓은 집이었다. 집이 있으니 불도 켜 놓아야 하겠고 또 모실 사람도 있어야 하겠다. 사내 귀신이면 처녀를 좋아할 것이요, 아낙네 귀신이면 젊은 총각을 좋아할 것이었다. 강아당이(해 귀신)는 여신이매 광대가 모셨고, 가상아당이(바람비 귀신)는 남신인지라 가상아 즉 기생이 모셨다. 어여쁘고 깨끗한 처녀 총각으로 하여금 신관을 삼아서 술과 고기와 떡을 차려 놓고 혹은 노래를 부르고 혹은 춤을 추고 이렇게 굿을 하여서 귀신을 기쁘게 하니 모든 좀귀신들은 무섭지 아니하였다. 천주교의 수사, 수녀나, 불교의 남승, 여승도 다 처음에는 여기서 일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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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귀신이 부락마다 생겼거니와 여러 부락들 중에서 가장 사람이 번성하고 잘난 사람이 많은 부락은 혹은 재산이나 토지를, 혹은 미인이나 값나가는 보물을 빼앗을 목적으로 또 혹은 단순한 정복의 쾌감을 얻기 위하여 또는 바른 도를 받게 하기 위함이라 하여서 다른 부락을 향하여 전쟁을 일으키고, 한 싸움에 이기고 나면 더욱 기운이 나고 욕심이 엉큼하여져서 천리라도 만리라도 즈쳐들어가니 이리하여서 큰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요, 이렇게 이긴 부락의 귀신은 여러 부락, 여러 종족, 나중에는 여러 민족의 절을 받는 귀신이 되었다. 저 중국 민족의 요순이나 아랍족의 알라는 다 좋은 전례다. 우리나라로 보면 고구려는 강아라 즉 하늘이요, 해의 신을 민족 신으로 모셨고, 신라는 방아 즉 불의 신과 상아 즉 물의 신을 모셨고, 백제는 당아 즉 달의 신을, 고려는 낭아 즉 햇볕의 신을 모셨고, 이씨 조선은 어랑아 즉 용신을 모셨으니 다 그 임금 집의 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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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지혜라는 것이 발달되고 집들이 많이 늘고 산림이 많이 채벌이 되어서 사람들이 자연을 무서워하는 마음이 줄어들게 되니 이러한 귀신들이 모두 사람의 지혜를 따라 진화하여서 힘의 신으로부터서 이치의 신으로 승격이 되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여호와신이 예수의 하나님 신으로 진화한 것이 가장 알맞는 실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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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람의 꾀가 더욱 발달하여서 소위 과학적으로 만물을 생각하게 되매 천지간에 그뜩 찼던 조화가 무궁하던 형형색색의 귀신들이 다 스러지고 우주는 차디찬 법칙과 말 못하는 물질의 운동의 한 뭉치로 변화하고 말았다. 아시아에 있어서는 거금 이천 오백년 전 석가여래와 공부자로 말미암아 벌써 「怪力亂神」(괴력난신)을 부정하고 이치야말로 우주의 본질이라 하는 지경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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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서는 문예 부흥 이래로 자연과학의 발달을 따라서 이치로써 우주와 인생을 설명하려는 사조가 큰 세력으로 인심을 풍미한 것은 좋으나 십구 세기에 이르러서는 유리론이 그 극도에 달하여서 헤겔로써 그 절정을 삼게 되었다. 우주가 이치로 되었다는 것까지는 좋으나 우리 사람의 힘이 능히 우주의 모든 이치를 다 알아낼 수 있고 사람의 마음이 움직임으로 된 사회는 자연의 지혜와 힘보다도 더 낫게 사람의 생각의 힘으로 정정하고 개정할 수 있다고까지 믿게 되었다. 사람이 일식 월식이 생길 날짜를 일분 일초까지도 예언할 수 있는 것은 우주의 비밀을 이치로 알아내인 증거지마는 그렇다고 사람의 힘으로 천체의 운행과 물리, 화학의 법측을 수정할 수 없는 한, 사람의 정신과 욕망을 무시하고 인간 사회를 몇 사람이 다수결로 규정해 놓은 계획에 의하여서 진행시키기는 어려운 것이다. 세계를 통틀어서 근년에 시행된 통제 경제라는 것의 성적이 이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통제 경제란 이치로 보면 될 법도 한 일이지마는 사실에서는 되기 어려운 일이니 통제 경제가 잘 되려면 사람들이 다 욕심을 아니 부리는 성인이 되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전혀 욕심이 없는 무생물이 되어 버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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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의 아는 힘이란 것은 겨우 제 몸 하나가 살아가기에 필요한 것이다. 개미는 개미로 살아가기에 필요한 아는 힘을 가지고, 사람은 사람으로 살아가기에 필요할 분량의 아는 힘을 가졌다. 그도 의지해 갈 만한 힘이요, 넉넉한 힘도 아니다. 여러 개체 중에는 특별히 몸이 힘있게 생긴 놈이 있는 모양으로 아는 힘을 그중에 많이 타고 난 이도 있다. 그러나 그것도 「그 중에」낫단 말이지 엄청나게 나아서 보통 개체들이 모르는 것을 알 만한 것은 어찌다가 하나 나는 것이니, 사람으로 이르면 성인이나 영웅이다. 그러나 아무리 성인이나 영웅이라도 그 타고 난 생명에 한량이 있는 것과 같이 그 아는 힘에도 한량이 있다. 성인도 이것을 깨달으시기 때문에 겸손한 마음으로 이 크나큰 우주를 향하여 그 우주를 이룩하고 다스려가는 힘을 향하여 경건하게 읍하고 고개를 숙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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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사람이 취할 정당한 길이 있다. 그것은 우리의 아는 힘을 겸손하게 쓰는 것이다. 우리는 우주를 존경하고 자연의 법측에 순응하기에 우리의 아는 힘을 쓸 것이요, 결코 「자연을 정복한다」는 무엄한 생각을 말 것이다. 우리가 아는 힘을 쓸 것은 자연에 거역하는 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효성있는 아들이 부모의 뜻을 알아서 거기 맞추려 하듯이 자연의 이법을 알아서 거기 순응하기에 있는 것이다. 이러함으로만 우리는 개인으로나 종족으로나 멸망하지 아니하고 번창하게 살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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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정치에 있어서와 개인 생활에 있어서 다 같이 조심할 일이다. 우리의 육체가 건강을 보전하는 길은 생리학적 법축을 잘 순종하는 데 있고 결코 자연을 무시한 인위적인 꾀를 쓰는데 있지 아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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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여기서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일이 있으니 그것은 감정의 힘이다. 사람은 이성의 동물인 동시에 감정의 동물이다. 우리는 사랑하고 미워하고 슬퍼하고 기뻐한다. 희랍의 옛날 철인들이 사람이 구하는 가장 좋은 것이 세 가지라고 보고 그것을 참된 것과 착한 것과 즐거운 것이라고 하였다. 참되다는 것을 요구하는 것은 우리의 이성이다. 그러나 나머지 둘을 요구하는 것은 우리의 감정이다. 또 유교에서는 사람의 이상을 인, 의, 예, 지, 신(仁義禮智信) 다섯 가지라고 하였다. 이 중에 이성적인 것은 지요, 나머지 넷이 감정적인 것이다. 인이란 남에게 좋게 한단 말이요, 의란 남에게 해롭게 아니한단 말이요 예란 여러 사람이 골고루 즐겁게 골고루 괴롭지 않게 한단 말이요, 신이란 서로 믿게 한단 말이니 이 모든 것이 목표로 하는 바는 다 같이 사람의 감정을 편안하게 하자는 것이다. 불교의 자비가 감정적임은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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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그럴 것인 것이,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생물이 구하는 공통된 목표가 무엇이냐 하면 편안히, 즐겁게 살자는 것이다. 즉 감정의 만족을 얻고 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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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으면 살겠지마는 그 밥이 옳은 밥이냐 옳지 못한 밥이냐 하는 것으로 또 사랑으로 주는 밥이냐 미움으로 주는 밥이나 하는 것으로 맛이 틀리고 영양이 틀린다. 즐거운 마음으로 먹는 밥은 잘 내리고 잘 살고 가지만 괴롭거나 성났을 때 먹는 것은 체하기가 쉬운 것이다. 보리 밥에 쓴 된장이라도 사랑하는 식구끼리 먹으면 맛이 있고 살로 간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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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이 아니다. 감정 생활이 생물의 표정을 결정한다. 궁상, 험상, 간악한 상, 복상, 인자한 상, 이악스러운 상, 움충맞은 상, 이러한 표정들은 다 그 생물의 감정생활에서 온다. 십년 동안만 계속하여서 매일 남을 미워하는 감정을 부리면 그는 흉악한 상을 갖추어서 젖먹이가 보면 울고 개가 보면 몹시 짖을 것이다. 그에게 사람이 붙지 아니하고 모두 비킬 것이다. 그는 의롭고 밥이 잘 안 내리고 무서운 꿈이 많고 죽을 때에도 몹시 고통하다가 죽어서도 다시 태어날 때에 이러한 존재를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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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국화, 연꽃에서는 맑은 향기가 나듯이 아름다운 감정을 가진 사람의 몸에서는 아름다운 향기를 발한다. 빛갈도 그러하다. 우리는 버섯이나 꽃을 볼 때에 그 빛갈로 그것이 독한 것인지 아닌지를 안다. 생김생김도 그러하다. 박달나무와 인삼은 처음 보는 사람도 알아낸다고 한다. 그 이파리며 가지며 빛갈이 다 여남은 식물과는 다른 것이다. 이것이 다 그 마음 특히 그 감정의 표다. 나무와 풀에도 감정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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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는 전단향이라는 향나무가 있어서 그 나무 하나가 있으면 온 수풀이다 향기롭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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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기 좋게 하고 또는 살기 괴롭게 하는 것은 거기 사는 사람들의 감정이다. 깨끗하고 온화한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집에서는 서기가 솟고 향기를 발할 것이다. 그 집에는 행복이 있을 것이다. 그런 집들이 모여 사는 동네나 나라에는 악한 병이나 독한 벌레가 살지 아니할 것이다. 그러다가 그 중에 어느 한 사람의 마음에 미움의 감정이 움직일 때에 그 나라에서 검은 한 줄기 기운이 피어 오를 것이다. 이런 기운이 많아지면 그 나라에는 빛이 스러지고 어두운 재앙이 내릴 것이다. 한 집의 표정, 한 동네, 한 나라의 표정, 그리고 이 지구의 표정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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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和萬事成[가화만사성]」,「和氣自生君子宅[화기자생군자댁]」 같은 글귀는 옛날 우리 나라에서 흔히 덕담으로 기둥에 써 붙이는 바이지마는 이것은 다만 덕담이 아니라 집의 표정을 실제로 보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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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주가 없이 사람이 살 수는 없거니와 의식주가 넉넉함으로만 사람이 행복되지 못한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부잣집에 반드시 행복이 있지 아니하고 가난한 집에 반드시 불행이 따르는 것은 아니다. 행복은 밝은 감정에서 오기 때문이다. 어떤 집에 먹을 것이 넉넉하고 또 그 식구들이 다 아름다운 감정을 가졌다면 그야말로 행복된 집일 것이다. 쓴 된장에 뜬 보리밥을 먹더라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가정은 즐거울 것이요 또 그러한 집에는 결코 빈궁이나 우환 질고가 오지 아니할 것이다. 왜 그런고 하면 사람이란 힘써 일하면 먹게 마련이요 또 마음이 편안한 자에게 몸의 건강이 따르기 때문이다. 화복을 주시는 신명이 계시다면 이런 집에 응당 복을 내리실 것이다. 한 나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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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모든 성인이 다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이 복을 구하는 길이라고 가르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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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 말한 모양으로 우리 인류는 처음에는 개인 폭력, 다음에는 단체 폭력으로 생활의 기초를 삼아 오다가 차차 꾀가 발달이 되어서 법률로 폭력을 대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법률을 범하는 자에게만 법으로 정하여 놓은 폭력을 쓰게 되니 이리하여서 체력이 약한 개인과 식구가 적은 가족도 살 수가 있게 되었다. 여기다가 도덕과 예의를 가할 때에 세상은 꽤 살기 좋게 되는 것이었다. 이러므로 유대의 모세, 희랍의 솔론, 중국의 요순,이 모양으로 법을 처음 내인 이를 그 민족의 큰 조상으로, 성인으로 숭배하게 되었다. 우리 민족에게 처음으로 법을 주신 이는 단군 왕검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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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볕이 있으면 그늘이 있는 모양으로 사람이 법만을 존중하게 되면 법 이외의 것 즉 도덕, 예의, 인정을 가볍게 보게 된다. 법으로 정하여 놓고 형벌로 금하는 것이 아니면 하기를 꺼리지 아니하게 되어 법치국일수록 인심이 효박하게 된다. 더구나 법에서 생기는 가장 큰 병은 개인의 권리에 관한 생각이다.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은 힘있는 자의 횡포와 압제에서 힘 약한 개인을 보호하는 큰 공덕이 있지마는 사람마다 제 욕심을 채우려고 제 권리를 내 세우게 되면 세상은 훈훈한 화기가 스러지고 냉랭한 싸움판이 되고 만다. 부부는 법률상으로 보면 개인과 개인과의 계약 행위로 된 것이어서 남편에게는 남편의 권리가 있고 아내에게는 아내의 권리가 있겠지마는, 내외가 서로 권리를 주장하게 되면 그 부부는 벌써 이혼에 가까와 온 부부일 것이다. 이상대로 말하면 사람마다 남의 권리를 존중하되 제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 일이다. 사람들이 서로 이렇게 생각하면 법률이 없어도 편안히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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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은 원래 마음이 나쁜 사람을 위하여서 있는 것이니 곧 감옥에 잡아 넣어야 할 사람을 위하여서 있는 것이다. 그러나 법률이 있기 때문에 사람이 악하여지기도 한다. 법률 무서운 줄만 알고 인정이나 도덕 무서운 줄을 모르게 되기 때문이다. 「剖斗折衡民不盜[부두절형민불도]」라는 말이 이런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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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법치 사상의 가장 큰 해는 법을 가지고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근대의 국가들이 해마다 많은 법률을 만들어서, 갈수록 개인의 의사를 속박하고 있거니와, 그 중에 극단된 것이 전체주의적인 국가들이다. 그들은 소수 법을 만드는 자들의 유리론적 미신으로 그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법률을 많이 지어서 인류의 생활 양식을 그들의 머리에 떠오르는 프로그램대로 진행시키려고 하고 있다. 무솔리니, 히틀러, 스타린 같은 사람이 그 대표자다. 그들은 하나님보다 더 지혜로운 자로 자임하고 하나님이 쓰는 형벌보다도 더 무서운 형벌로써 백성을 강제하여 제 법을 복종하게 하고 있다. 그들은 부자, 부부 같은 인륜까지도 제 마음대로 뜯어 고치려 하고 있고, 개인의 자유 의사를 몰수하고 그 자리에다가 저희들의 명령을 듣는 수신기 하나씩을 장치한다. 이리하여 법을 짓는 한 개인이나 또는 한 단체를 제하고 나머지 백성들은 고동 트는 대로 움직이는 기계를 만들려고 하고 있으니 이것을 가리켜서 「무자비한 독재 정치」라고 한다. 이것은 유리론의 극단이요, 법치 주의의 폐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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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 거의 비슷비슷한 것이어서 그렇게 뛰어나게 잘난 놈도 없고 동떨어지게 못난 놈도 없는 것이다. 저마다 저 한 몸을 끌고 갈 힘과 재주는 타가지고 나온 것이 사람이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큰 병이 있다. 그것은 권세를 잡아 보면 제가 다른 사람보다 힘으로나 지혜로나 엄청나게 잘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정신병이요, 열병이다. 그들이 다른 사람과 다른 칭호를 가지고 야릇한 제복을 입고 궁궐 같은 집 속에 들어 앉아서 총메고 칼 찬 여러 천, 여러 만의 무리를 지휘하게 되면 그들은 마치 여편네 뱃속에서 나와서 화식을 먹는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망상을 하게 된다. 이 정신 병자 자신만 그런 것이 아니라, 민중들도 습관 형성의 법측에 의하여 저 소위 지도자들은 날개가 돋히고 풍운 조화를 막 부리는 천신과 같이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한 정신병이요, 미신이다. 모든 악은 진실로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깨고 보면 싱거운 꿈이언마는 꿈꾸는 동안에는 그것이 현실인 것이다. 더구나 현대에는 발달된 심리학으로 사람의 약점을 충분히 이용하여서 선전과 서약과 조직과 복종이라는 요술로 세계 인류들은 저를 잃고 지도자라는 요술장이의 꼭둑각시가 되어 한 없이 희비극을 연출하고 있다. 소위 남의 장단에 춤을 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자유라고 하고 평등이라 부르고 있다. 사람이 가장 원하는 것이 자유와 평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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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배고픈 것을 싫어하지마는 그보다 못지 않게 남에게 얽매이는 것을 싫어한다. 거지로 배를 곯더라도 감옥에서 배부르기를 원하는 자는 없다. 심히 배가 고픈 순간에는 제 자유를 팔아서라도 목숨을 부지하려 하지마는 한 끼 밥을 먹고 나면 자유를 원하는 것이다. 평등도 그러하다. 사람은 남의 밑에 서기를 괴로와 한다. 지금은 낮은 데 있더라도 있다가 높이 올라갈 수 있다는 희망은 있어야 산다. 그래서 모든 폭동이나 혁명은 자유와 평등을 얻으려는 데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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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자유를 속박하는 것은 국가요, 평등을 유린하는 것은 계급이다. 국가는 없을 수 없는 물건이 되었으나 계급은 없을수록 좋은 것이요,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계급이란 누르는 자와 눌리는 자의 차별을 의미한 것이다. 양반과 상놈이 계급이요, 지주와 소작인이 계급이요, 공장주와 직공이 계급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한 무서운 계급이 있으니 그것은 근래 전체 주의, 계급 독재주의의 당과 당원이 아닌 인민의 계급이다. 이 경우에서 소수의 당원은 두뇌가 있어도 다수의 인민은 손발이요, 기계다, 노예다. 우리는 이러한 나라에서 살 수는 없는 것이다. 늘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는 나다, 제 마음대로 말도 못하고, 하고 싶은 일도 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사는 것보다도 죽는 것이 나을 것이다. 평생의 감옥살이, 군대살이 그게 어디 할 노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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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요구하는 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최소한도로 밖에 제한하지 아니하는 나라다. 통제 경제도 없고 배급도 공출도 없는 나라다. 남에게 해가 되거나 공안을 상하지 않는 한 개인이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일을 다하고 나이와 덕과 학문 외에는 사람보다 높은 사람도 없고 사람보다 낮은 사람도 없는 나라다. 제 힘껏 일하면서 제 마음껏 즐거울 수 있는 나라다. 감옥이나 병영과 같이 규률이 많고 엄한 나라 말고 공원과 같이 아무 압력도 느끼지 않는 나라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존경함으로 질서가 유지되는 나라다. 이러한 나라는 사람이 제 꾀에 대한 교만을 버리고 우주가 저보다 먼저 난 것을 깨닫는 날에야 온다. 사람이 제 이성이란 것을 과신하여서 하나님을 책망하고 그가 하여 놓은 일을 뜯어 고친다고 외람된 반역을 하는 동안 그에게는 오직 불행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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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가 어찌해 수효가 비슷하게 나나. 전쟁으로 많은 남자가 죽은 뒤에는 어찌하여 남자가 더 많이 나서 얼른 남녀의 수효가 평형이 되나. 어찌하여 악한 자는 망하고 선한자가 창성하나. 우리는 우주의 이 힘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신뢰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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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지배하는 법측도 일종의 자연계의 법측이다. 인위로 다소의 변경을 가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조족지혈이다. 그도 농업에서와 같이 자연력을 보좌하여 촉진하는 데서 성공할 수 있어도 하늘의 뜻을 반항하여 저해하는 것으로는 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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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나보다 크고 하나님은 나보다 더 아신다.』
 
47
『자연으로 돌아가라.』
 
48
『정치는 인성 ― 특히 본능과 인정을 표준으로 하고 좀 꾀 부리기를 그치라.』
 
49
아아 자유롭고 평등하고 서로 사랑하는 세상아 오라 ―
【원문】인생(人生)과 자연(自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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